• 사법부를 질타할 때면 날카롭고 빨라지던 목소리는 수학연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 온화하고 차분해졌다. 그리고 웃음이 많아졌다.
김명호(54)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4세에 조교수로 임용된 전도유망한 학자였다. 그러나 1995년 대학 본고사 수학문제가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학과 교수들이 그를 징계요청했고 대학은 그에게 3개월 징계를 내린 후 예정된 부교수 지위를 보장하지 않았고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그는 1995년 10월 법원에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냈으나 당시 법원은 '부교수 임용은 대학의 자유재량'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에서 응용수학 관련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1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자 3월에 귀국, 다시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2007년 1월 다시 대학의 재량권에 손을 들어줬다.

며칠 후 그는 재판진행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2심 재판장인 박홍우 판사의 집으로 석궁을 들고 갔고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원고측은 결정적 증거가 될 화살이나 옷, 상처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법부를 공격한 데 대한 보복성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정지영 감독)이 내년 초에 개봉될 예정이다. 수학 밖에 모르던 학자는 7년여의 법정다툼을 통해 법지식으로 무장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감옥 안에서 계속했고 올 1월 출소한 후에도 계속하고 있다. 그가 고소 고발한 이들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부터 판사 교도관은 물론 남경필 국회의원까지 다양하다. 현재도 4건이 계류중이다. 그는 사법부의 잘못을 파헤치는 정의의 사도인가, 올바른 항변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분노하여 소송꾼이 된 것일까.

_남경필 의원은 왜 고발하셨어요?

"민노당이 밝힌 한미FTA 관련 독소조항 12개를 봤는데 그게 틀렸으면 민노당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하고 사실이면 남경필 의원을 국헌문란에 의한 내란죄로 처벌하라는 내용으로 11월 19일에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을 했습니다. 형법 91조를 보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의 기능을 소멸하는 일'도 '국헌문란'이에요. 그래서 '내란을 위한 예비음모'로 고발했습니다. 헌법 119조에 의하면 국가는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한미FTA는 그걸 국가가 못한다는 독소조항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걸 남경필 의원이 강행하기 위해 국회에 상정한 것은 내란예비음모라는 거지요. 판사들이 요즘 한미FTA 관련해서 바른 소리를 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던데 그건 아니거든요. 판사는 판사의 직무로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은 안하고 그러는 것도 마음에 안들어요. 조약은 국내법과 똑같은 효과를 갖는다고 했잖아요. 이걸 인정을 하면 일단 한미FTA가 발효가 되어도 판사들이 위헌법률신청을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말을 미리 하면 헌법재판소에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과는 있지만 국내법은 아니다' 이럴까봐 내가 다 말은 안하고 한미FTA를 강행하려고 한 남경필 의원을 우선 고발한 겁니다. 헌법재판소고 대법원이고 판례를 가지고 법을 사장시키는 사람들이니까."

_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군요.

"내가 사법부와 싸우면서 깨달은 것은 이 사람들은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2005년도에 부교수 지위확인 소송을 걸면서부터 관련법을 공부했어요. 제가 보니 우리나라 법은 굉장히 정확하게 되어 있어요. 이건 뭐 수학처럼 정확해요. 죄가 있으면 그에 대한 처벌은 95% 정도가 법전에 아주 명확하게 나와 있어요. 안락사 낙태 환경 이런 거처럼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분야나 답이 없지 나머지는 다 있어요. 그런데 판사들이 이 법을 지키지 않아요. 심지어는 판례를 만들어서 법에 나온 내용을 뒤집어요. 판결문을 보면 전부 법이 아니라 이전 판례를 인용해요. 그리고 더 나쁜 판례가 나와서 이전 판례를 뒤집어도 그냥 자기 맘대로 갖다 쓰는 식이에요. 가령 교수 재임용에 대한 판결만 봐도 77년도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이 예정된 걸로 본다'라고 써있어요.

그런데 87년에 법률해석을 변경해서 '재임용은 학교자유 재량이다' 이렇게 바꿨어요. 그리고는 87년 판례에 따라 재임용을 다툰 교수 400여명이 패소를 했어요. 원래 법률해석 변경을 하려면 전원합의체를 거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이 87년 판례는 전원합의체가 아니었거든요. 내가 2005년도에 재판을 하면서 이걸 지적해서 이용훈 대법원장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냈더니 한 달 뒤에 답을 하면서 제 질문 자체를 바꿔버렸어요. 사법부 설명은 77년도 판례가 한양대 교수가 사고로 죽으면서 손해배상을 다투는 것이고 87년건은 재임용건이라 사건명이 다르다 그러지만 두 건 다 사립학교법에 대한 해석을 다룬다는 점은 같거든요. 더 웃기는 것은 77년도 판례가 (인쇄물로 된) 판례집총람에는 나오는데 대법원 홈페이지에서는 요지가 사라졌어요. 그런데도 이런 사법부의 행동에 교수라는 사람들이 400여명씩이나 당하고서도 아무런 저항이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다 바보(실제로는 이보다 더한 욕설)라는 겁니다."

_사람들이야 사법부가 정의를 지켜주는 곳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바보라는 겁니다. 원칙적으로는 판사는 '법의 입'이래야 맞지요. 그런데 판사들이 그렇지 않아요. 판사만 그런 게 아니라 검사도 사법고시를 붙는 순간 '법을 위반할 자격증'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판사들은 재판 결과를 결정해놓고 결과에 맞춰서 법이나 판례를 끌어다 붙이기만 한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해요. 석궁사건이 터지자마자 대법원장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재판을 통해 따져보지도 않고 이미 유죄판결을 내린 거잖아요. 제가 천번만번 주장하고 싶은 것은 사법부부터 법을 지켜라, 이것 뿐입니다."

_최근의 정봉주씨 판결에 대해서도 발언하셨지요?

"대법원이 2심 판결에 대해서 상고한 것을 기각했는데 이건 2심의 법적용이 바르게 되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2심 판결은 실상 2000년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입니다. 과거 판례에 따르면 정봉주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처벌을 받으려면 일단 이것이 허위사실인지, 두번째로는 정봉주씨가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검찰이 입증해야 합니다. 공인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자유롭게 하는 진보적인 판례지요. 감옥에서 <미국인권과 법>이라는 책을 보니 이게 1964년에 뉴욕타임즈 대 설리반 사건이라는 판례를 우리가 따른 것이었어요. 신문이 오보를 했더라도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면 공인에 대한 비판을 단속해서는 안된다, 그런 내용인데 이번 대법원 결정은 이런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겁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규칙 133조에는 증거신청 순서가 검사 변호사 피고인으로 나와요. 검사가 입증하지 않으면 변호사나 피고인이 입증할 필요는 없다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검찰이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사법부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민사소송법 119조에는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하기 위해' 소장 접수한 지 4개월 이내에 재판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정봉주씨 재판은 3년을 끌다가 나온 것이니 이것도 문제 아닙니까? 재판을 끌면 돈 많은 사람은 문제가 없어요. 서민만 죽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소송 끌기가 훈시규정으로 남발되는 것도 문제에요."

_훈시규정은 법인가요?

"법에는 없어요. 그런데 판례에는 숱하게 등장해요. 이렇게 하라는 규정이래요. 법과는 달리 판결을 늦추는 것도 물어보면 훈시규정이라고 해요. 법과 달리 무슨 일이 집행되어서 물어보면 다 훈시규정이에요. 법에 없는 일을 남발하는 사법부가 과연 법의 집행자인가요? 이렇게까지 사법부가 법을 안 지킬 바에는 대법원장 대법관 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지검장들 모두 투표로 선출하는 게 나아요. 적어도 국민의 뜻을 반영은 할 거잖아요."

_그런데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 법전을 다 읽었습니까?

"다 읽을 필요가 뭐 있어요. 필요한 항목만 읽으면 되지."

_그동안 만나본 판사 가운데 제대로 된 판사는 한명도 없었습니까?

"춘천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소 건물에 석면을 사용했다는 것을 제가 고발했습니다. 그 사건을 담당한 전상범 판사는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세 번이나 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결국 판사이동으로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제가 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판사였습니다. 제가 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다 욕을 하는 것 아닙니다. 법대로 올바르게 하는 사람은 인정합니다. 저는 사실 국민들도 다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판사들이 법을 맘대로 휘젓는 것은 형 받는 사람들이 형을 적게 받으려고 문제가 되도 다투지 않아서 그래요.제가 석궁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도 인권변호사라는 사람들이 와서 다 저한테 타협을 하고 사과를 시키려고 해요. 그건 절대 인정할 수 없어요."

_우리나라 법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요?

"형사소송법민사소송법만 보면 정말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판사들이 법을 안 지키려고 할 때는 이때는 막을 방도가 없어요. 미국에는 배심원제가 있고 유럽에도 참심제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없어요."

_국민참여재판이 있잖아요.

"그것도 제가 감옥에 있을 때 위헌심판청구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에는 국민배심원제를 채택할수 있는 권한이 판사한테 있어요. 그리고 배심원 결정을 판사가 뒤집을 수 있는 거예요.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것이 판사를 믿지 못해서 나온 것인데 판사 맘대로 한다면 이건 국민참여재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위헌소송을 냈더니 당연히 만장일치로 각하가 됐지요."

_감옥에서도 그런 소송을 다 할 수 있습니까?

"네, 용산참사에 대해서도 제가 이광범 판사를 고발했어요. 이 판사가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한 판사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판사로 평가되고 있는데, 사실 이 수사기록은 용산참사 경찰관에 대한 재정심판에 검찰이 제출한 것이거든요. 원래 재정심판에 제출한 자료는 공표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공표했으니 법을 어긴 것입니다."

_당시에 용산참사에 대한 수사기록을 제출하라는 재판부 결정을 검찰이 계속 듣지 않아서 한 일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것은 별건입니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이 원고인 다른 사건에서 수사기록을 내지 않은 것인데 두 사건을 모두 이광범 판사가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공개가 명시된 재정심판에 제출한 수사기록을 판사가 공개했으니 법을 어긴 것이잖아요."

_하지만 사법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검찰에 대한 제재로는 적절한 것 아닌가요?

"그거야말로 문제지요. 재판부가 우리는 검찰보다 도덕적이고 우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법을 위반한 것이잖아요. 법위에 군림하겠다는 그런 자세야 말로 문제인 겁니다. 검찰이 문제의 사건에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용산참사 피해자 입장을 들어서 판결 내리면 되는 문제인데 법을 어기면서 재판부의 도덕적 우위를 입증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_그러니까 비판 대상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군요.

"사법부가 이렇게 법을 어겨도 왜 시민단체나 국민 하나하나가 막지 못하는 줄 아십니까? 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원칙이 아니라 제 입맛에 맞으면 지지하고 안 맞으면 반대하니까 이러는 겁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재판에 걸리면 어떻게든 자기 처벌만 약하게 받으려고 법을 지키지도 않는 사법부에 쩔쩔매고 잘 보이려 하고 그 사건만 해결이 되면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가 하나도 안 바뀌어요."

_실력있는 수학자인데, 이렇게 소송으로 소모하는 게 재능이 아깝지 않나요?

"제 논문 좋은 거는 쫓겨나서 미국 가서 콤플렉스 시스템에 대한 것을 <인포메이션 사이언스>에 쓴 거 하나 정도예요. 그걸로 미국 학계에서 발표도 하고 아마도 지금도 신약개발 분야에서 후속 연구가 계속 이뤄지고 있을 거예요. 공부라는 게 책상머리에서 하는 게 다가 아니잖아요.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혀내는 일련의 작업들이 더 큰 공부입니다."

_그럼 앞으로 사법부를 비판하는 작업을 계속 하실 건가요?

"아, 그거야 뭐 시민으로 당연한 권리이니까 계속 발언을 할 거지만 제 목표는 대학 복직이에요. 그리고 이제야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어요. 그 신약연구에 쓰이는 것과 같은 수학 응용 데이터 연구를 계속할 참입니다."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사진=박서강 기자
입력시간 : 2011.12.25 21:48:28
수정시간 : 2011.12.26 12:29:29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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