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노무현대통령님 시해 관련 이명박에게 정식 요구
매우 중요한 내용을 하나 참고로 드립니다.
봉하사저 경비대에서 당일 할당된 주파수를 벗어나 무전기를 사용하면 청와대 경호처 CP에서 실시간으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즉 2009년 05월 23일 아침 무전이 녹음되지 않았다는 것은 저질 코메디이며 더 중요한 핵심 범죄내용을 감추기 위한 꼼수입니다.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 공론화를 방해하기 위해
한겨레 인터넷팀 운영직원까지 프락치로 사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노무현 대통령님 시해의문을 추적하고 있는 우리는 아래를 공식 요청합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 자살 전날 권 여사와 큰 부부싸움 벌였다”
http://usinsideworld.com/article/view.php?bbs_id=news&doc_num=9390
ㅁ 임종규 뉴스메이커 선임기자/ 최영수 뉴스메이커 서울주재 기자
이 기사에 언급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공식적으로 발표된 노무현대통령 시해관련 각본이 거짓이므로 각본 구성을 책임졌던 청와대와 청와대 경호처 검찰 등의 책임을 묻고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 수사를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하에서 실시하기를 요구합니다.
이 기사에 언급된 내용이 거짓이라면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이라 주접떨고 있는 생명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을 하고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 추적을 교란하고 시해의문 공론화를 방해하기 위해 획책하고 있는 포털검색 통제와 우리가 추적해서 발표한 사실을 조작했던 것 등을 인정하시길 요구합니다. 그 내용에는 한겨레 인터넷팀 운영자를 프락치로 동원해서 시해의문 공론화자료를 토막 내고 있었던 것이 포함됩니다.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시해의문 추적을 마쳤으며
시해의문 공론화가 이루어져 노도와 같은 불길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시해세력 쪽에서 이 기사와 같은 공식적인 주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 출처를 우리가 추적해두었던 것과 비교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둘째 책임 공방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끝까지 잘 보아 두시길 바랍니다.
마음짱 2010/03/24 20:57
저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징적 가치마저도 격하시키려 혈안이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과 권여사님에게 "당신의 욕심으로 전혀 준비 안된 사람들을 범의 굴과 같은 정치판에 데리고 들어 온 것을 도리어 미안해하신 분이셨는데...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한, 부부 싸움 끝에 감정 조절을 못하여 자살에 이른, 수준 낮은 사람으로 또 한번 흠집을 내고 있습니다.
부부 싸움 끝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로, 권여사님은 만취 상태로 잠에 빠져서 부산대병원에 늦게서야 도착했다고 주장이 있으므로,
1. 경찰은 부산대 병원 도착전까지 부재중, 송 수신 전화가 많이 울렸을 권여사님, 사저에서 부부싸움을 지켜보았다는 비서관들의 핸드폰 통화 내역 및 그들 행적에 대한 조사 발표로 경찰의 주장에 하자가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2. 유서를 발견하기 위해 7시경 문 비서관 연락을 받고 7시 30분 쯤 사저에 들어갔다는 박 비서관이 아닌, 권여사님을 깨우기 위해 7시 전후로 사저에 들어 왔다는 비서관이 누구인지, 그 시간대에 그는 사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5월 27일 경찰 발표에서 누락된 비서관의 정체, 행적을 밝혀야 한다.
3. 서거 당일 새벽녘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부부 싸움을 지켜보았다는 비서관들, 권여사님을 깨우기 위해 7시 전후로 사저에 들어온 비서관, 부산대병원을 출발하시기 위해 사저를 나선 권여사님의 모습이 찍힌 서거 당일 사저 CCTV와 10시 30분 권여사님이 부산대병원 도착 CCTV 등의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여 그동안의 발표와 다른 것에 대한 경찰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soul 2010/03/24 23:56
CCTV에 의한다면,
5월 22일 낮에는 가족과 함께 다정히 정원 손질을 하시고,
5월 22일 밤~새벽에는 엄청 격한 부부싸움을 하시고,
5월 23일 새벽 산책길에 차분히 사저 주변 풀을 뜯으시고,
부엉이바위에 올랐더니 다시 격한 마음이 드셨으며,
경호관에 대한 배려심으로 정토원 심부름을 보내셨지만,
사저에서 곧바로 보실 수도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가족에 대한 배려심도 없이 투신하셨구나
...라고 씨부리는군요.
노건호씨 가족은 어디에???
싹쓸이 하면 피가 한 장!!!
(사진은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하고 계시는 Soul님이 정리해주신 것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 자살 전날 권 여사와 큰 부부싸움 벌였다”
정부고위관계자 본지에 밝혀…“노무현은 줄담배 피며 잠못자고 권양숙은 만취상태서 잠들었다”..
권양숙, 비서관이 깨워도 못 일어나… 노무현 시신 안치된 병원에 뒤늦게 도착
▲ 2009년 5월 28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서 권양숙 여사가 헌화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의 죽음과 관련한 배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본지는 그동안 노무현이 자살하던 2009년 5월 23일, 부인 권양숙 여사(이하 권양숙)가 왜 노무현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뒤늦게 나타났을까 라는 점에 대해 궁금증과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상식적인 계산으로 볼 때 3시간 이상 늦게 도착한 것이다.
- 왜 이명박이 먼저 알고 있었는가?
무전기 미사용은 용서해준다 하더라도 인기척이 드믄 새벽이라 부엉이바위에서 큰소리로 외치면 사저 초소병이 들을 수 있는데 이명박에게 먼저 보고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합니다.
청와대 경호처 "23일 7시 10분에 추락 보고"
청와대 경호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인 지난 23일 오전 7시 10분에 추락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첫 보고에는 서거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며 보고 내용은 10분 뒤인 7시20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SBS 최종편집 : 2009-05-27 17:26
이에 본지는 그 동안 노무현 측근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면서 노무현이 자살한 시간을 전후한 권양숙의 행적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해 측근들 대부분은 입을 굳게 닫아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한국 언론에서도 노무현의 자살과 죽음에 대해서만 부각시켰지, 권양숙의 이날 행적에 대해선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 측근이 누구인지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남편이 유고(有故)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권양숙은 뒤늦게 병원에 나타났을까. 이를 두고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소문만 갖고 기사를 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노무현은 오전 6시 40분경 사저(私邸)가 위치한 봉하마을의 뒷산으로 경호원 한 명과 함께 산책을 나섰으며 오전 6시 50분경 속칭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 최소한 둘 중의 하나가 거짓입니다.
청와대 경호처가 본관하고 있다가 조작한 CCTV는 05시 47분에 나가신 것으로 손질되어 있는데 최소한 두 주장 중 하나가 거짓이 되므로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합니다.
2. 노 前 대통령의 서거 과정 및 대통령 수행경호관의 행적 종합
가. 노무현 前 대통령께서는 5.23.05:21:09 사저 거실내 개인 컴퓨터에서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하여 5:26:11 1차로 저장을 하신 후, 05:35경 경호관에게 인터폰으로 “산책 나갈께요”라고 연락, 작성된 유서를 수정하여 05:44:31 최종저장하신 후, 사저 정문 앞에서 대기하던 이 경호관과 함께 05:47 사저 정문을 나와 산책을 시작하심.
- 06월 05일 발표 최종각본
뒤늦게 투신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발견한 경호원은 즉시 인근 김해 세영병원으로 노무현을 긴급후송 했다. 이때가 7시 5분경이었다.
의식을 잃은 노무현은 이 병원에서 5분가량 머물렀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세영병원 측은 자신들 보다 시설이 좋은 부산대병원으로 노무현을 후송했다.
- 거짓입니다.
세영병원은 삼성병원에 알리고 삼성병원으로 후송을 결정했는데 이명박의 청와대 명령이 아니라면 누구에 의해 양산부산대 병원으로 바뀌어 후송되었는지 확인되어야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긴급후송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원인을 알 수 없는 건강상의 이유로 김해 진영의 세영병원이 운영하는 앰뷸런스를 탄 채 마산 삼성병원 응급실로 갈 것이란 전갈을 삼성병원 측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다만, 노 전 대통령이 23일 7시를 전후해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신체상의 문제가 발생한 것만은 사실이며 이를 치료하고자 진영 세영병원 앰뷸런스를 이용해 가까운 마산 삼성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자 오전7시40분에 세영병원 관계자가 삼성병원 측에 치료 협조를 요청한 것은 확인됐다.
...
출처: 경남도민일보 특별취재팀 2009년 05월 23일 (토) 09:34:38
하지만 심한 전신골절을 당한 노무현은 세영병원으로 옮겨질 때부터 소생 가능성이 없었다.
권양숙이 부산대병원에 나타난 것은 노무현이 사망한 지 한참 뒤인 오전 10시 30분께.
일부 언론이나 노무현 측은 이 부분에 대해 권양숙이 오전 9시 25분경 병원에 왔다고 애써 도착시간을 축소시켰다. 그러나 본지 확인결과 그녀는 오전 10시 30분경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도착했으며 노무현의 시신을 확인한 후 혼절했다.
여기서 갖는 의문점은 정상적인 상태의 부인이라면 남편의 투신사실을 보고 받자마자 오전 7시께부터 ‘버선발 차림으로라도’ 승용차나 구급차에 동승했어야 마땅하다.
- 오전 07시에 투신 사실을 알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밝혀주세요. 반드시, 꼭
만약 이때 동행을 못했다면 비서관이나 경호원과 함께 세영병원을 거치지 말고 막 바로 부산대병원행을 택해 최소 오전 8시 30분 이전에는 병원에 도착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권양숙은 10시 30분이 돼서야 초췌한 얼굴로 병원에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노무현이 죽은 후 최소 3시간이 지나서야 자살한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는 엉뚱한데서 풀렸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 온 A 씨(전직 뉴욕한인단체장)가 지난 1월 본지에 전화를 걸어 와 한국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던 중 “한국정부 고위층(차관급 이상) B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던 날의 권양숙 여사 행적과 관련 해 상당부분 알고 있으니 취재를 해 보라”는 제보를 해 왔다.
하지만 본지의 B 씨를 상대로 한 취재는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전화시도와 측근을 통한 접촉 끝에 어렵게 B 씨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다음은 B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왜 권양숙 여사가 시신이 안치된 부산대 병원에 뒤늦게 나타났나.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먼저 익명을 보장해 줄 수 있나.
--물론이다.
▲ 이것은 기자 대 취재원의 부탁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부탁이다.
--알았다. 약속을 지키겠다. 먼저 당시 상황을 누구한테 들었나.
▲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말 할 수 없지만 노 대통령 자살 당시 사저에 근무하던 사람에게 들었다.
- 이 주장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이명박 정부는 책임을 져야합니다.
유서라는 괴문서를 인정할 수 없는 분들에게 변명하기 위해서 내놓은 각본입니다.
9. 수사 결과 종합
나. 故 노 前 대통령의 私邸 內 컴퓨터에 저장된 유서파일은 조작흔적이 없고, 당일 사저 내에는 유가족 밖에 없었고, 노 前 대통령께서 당일 새벽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유가족의 진술, 사저주변 CCTV 자료분석, 경호관의 통신자료, 수행 경호관 휴대폰, 경호 CP 근무일지, 초소대원 진술,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사저에 근무하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유서라는 괴문서는 언제 누가 저장을 시켰습니까?
더 중요한 질문은 여기에서 일단멈추겠습니다.
--비서관인가. 경호원인가.
▲ 그것은 말 할 수 없다.
--직접 만나 들었나.
▲ 그렇다. 내 측근 C 씨와 함께 들었다.
--당시 노무현 사저에 근무하던 사람은 사건 당시 노무현 부부의 상황에 대해 무엇이라 얘기하던가.
▲ 노 대통령이 자살하기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부싸움이 있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갈 정도였다고 한다. 화가 난 노 대통령이 집기까지 집어 던질 정도였단다.
--당시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 말해 줄 수 있나.
▲ 내용은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뇌물수수혐의로 ‘치욕적인’ 검찰수사를 받고, 앞으로 수사망이 권 여사에게로 조여 오는 데에 대한 불만과 서로에 대한 원망이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갈 정도였으면 두 사람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했다는 얘기인데.
▲ 그렇다. 권 여사는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소리가 크게 났으면 사저 근무자들이 알았을텐데.
▲ 부부싸움이 워낙 격해 비서관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 비서관 누구입니까?
이것에 대한 반박은 유서라는 괴문서를 KBS에 팔았으며 전날(22일)일찍 퇴근시켰다고 인터뷰를 하고 시해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궁물참여에서 공식변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공식각본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도움을 받았던 측근은 반드시 변명을 하시길 바랍니다.
--부부싸움은 언제 끝났나.
▲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지만 새벽녘이 돼서야 끝났다고 한다.
--부부싸움 이후의 상황은.
▲ 노 대통령은 줄담배를 피우며 잠 한숨 못 잤고, 권 여사는 만취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 노무현 가족들과 측근들의 비리에 성난 국민들이 노무현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아래는 비리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권 여사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노 대통령 아들 건호 씨-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는 결국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부부싸움 직후 유서를 썼다는 얘기인데.
▲ 시간 정황상 그렇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유서를 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유서라는 괴문서를 누가 책임져야하는지 5월에 반드시 밝혀드리겠습니다.
--노 대통령이 투신한 사실을 권 여사에게 언제 알렸나.
▲ 투신 사실을 경호원을 통해 전해들은 비서관이 즉시 권 여사에게 알리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전 7시 전후라는 얘기인데 권 여사의 반응은.
▲ 권 여사가 만취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인지 비서관이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비서관이 깨운 지 얼마 만에 권 여사가 일어났나.
▲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으나 대략 한 시간이상이 지난 후 간신히 일어났다고 한다.
-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하는 우리도 05월 23일 당일 07시 이전 사저에 비서관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알려드립니다.
http://blog.hani.co.kr/wishunification/24952
05월 24일 경남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
-- 유서 발견 경위는.
▲ 수행 경호관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
출처:
연합뉴스 2009.05.24 (일) 오후 12:12
- 경남경찰청 이노구 수사과장 문답
조선일보 2009.05.25 (월) 오전 3:15
- [盧전대통령 서거] 노(盧) 전(前)대통령 유서 작성 1분 뒤 "산책가겠다" 연락
문용욱비서관이 청와대 경호원 겸직이 아니라면
무전과 관련하여 문용욱비서관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통신보안 위법
인원보안 위법
시설보안 위법
--당시 권 여사의 반응은.
▲ 넋이 빠진 얼굴이었다고 한다.
--이후의 상황은.
▲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이다. 이게 권 여사가 부산대병원에 뒤늦게 나타난 이유이다.
--결국 그날 밤의 큰 부부싸움이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이끌고 간 이유 중 하나가 는 셈인가.
▲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평생 동고동락한 부인으로부터 모진 소리를 듣고 노 대통령의 심정이 정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은 위험부담을 안고 왜 이번 취재에 응했나.
▲ 노 대통령 자살사건이후 별의별 루머가 다 떠돌았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한 음모론까지 나왔다. 부부싸움 얘기도 루머에 속해 있었다.
노무현은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역사에 바르게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내게 말을 전해 준 사람이나 나나 확실한 신분의 사람이다. 내가 이명박 정부 내 고위층의 한명인데 허튼 소리를 하겠나. 나 역시 개인적으로도 노 대통령 자살 당일의 상황이 궁금했었다.
- 이 부분이 핵심으로 보여 집니다.
"[바로가기 클릭] 노무현시해 이명박과청와대 경호처 명령"
지금까지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중인 우리는 시해의문 공론화가 성공을 해서 게임이 시작되면 바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는 자료 마무리를 해두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검색 통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시해의문 공론화를 위해서 발표한 자료들이 수정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1월 이후 한겨레 인터넷팀 운영직원의 프락치짓거리를 확인 했으며 12월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시해의문 공론화 방해를 위해서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해의문 추적을 교란하기 위해서 경광등을 피 묻은 손으로 조작을 했던 활동 명 Mind(= namoo0318 = 봉하사랑(hhcho5607) = mind 사용 닉네임이 더 있지만 지금은 공개를 하지 않겠습니다.)와 한겨레 인터넷팀 운영직원의 협조 작업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 넘는 수준입니다.
--당신의 얘기를 같이 들은 C 씨에게 확인해 볼 수 있겠나.
▲ 그렇게 하라.
이후 본지는 C 씨를 서울에서 만나 B 씨의 얘기를 전해주었다.
C 씨는 “모두 사실”이라며 “오히려 B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얘기 안 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 씨는 “두 사람의 정확한 부부싸움 내용은 알 필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한명숙 전 국민총리가 영결식장에서 “당신을 지키지 못 해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 한길이 어머님 당신이 2009년 05월 23일 김해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갈 때 어떤 생각이었는가와 유서라는 괴문서를 누가 들이밀면서 설득을 했는가를 곱씹어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만약 이에 해당하는 일을 소홀히 하신다면 한길이 어머님 당신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노무현 측근들은 “우리의 잘못으로 당신을 죽게 만들어 죄송하다”고 말해야 한다. 노무현의 죽음은 측근들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시해 당하게 만든 죄보다 시해당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행동한 죄가 더 클 것입니다.
이 기사는 왜 나왔을까요?
하나만 말씀드린다면 저것이 사실이라면 실시간으로 청와대 경호처 CP에 중계하고 있었던 봉하마을 사저 경호대의 무전기를 통해 이명박에게 보고가 되었고 그에 따라 이명박 나팔들이 이미 보도를 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한겨레 인터넷팀 운영직원 프락치처럼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 공론화 방해를 위해 은밀하게 활동하는 알바들이 없어야합니다.
4월이 되면 한겨레 인터넷팀 프락치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그 이후 이 기사와 관련 이미 추적해둔 이명박의 청와대가 부정할 수 없는 매우 유의미한 자료를 공개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노무현대통령님 시해 세력과 정면 승부를 할 수 있도록
시해세력의 경호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세포들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해의문 추적을 하지도 않으면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시해의문 공론화 방해를 하며 가당치도 않은 변명을 하는 이들이 시해세력의 앞잡이로 뻔뻔스런 낯짝 들이밀며 나서지 못하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봉에서서 저들을 제거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하고 있는 우리가 자료는 제공을 하겠습니다.
그 자료를 널릴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자료를 퍼뜨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들이 시해세력의 경호실장 역할을 하면서
노무현대통령 시해의문을 추적을 방해하고 시해의문 공론화를 방해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올바른 판단을 한줄의 덧글로 남겨주신다면 저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시해세력과 정면승부를 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노무현대통령님 시해에 대한 증명준비는 이미 끝냈습니다.
우리가 시해세력과 정면승부를 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의 추천 하나하나가 모이면 우리가 시해세력과 싸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 만들어집니다.
아래 배너사진을 클릭하시면 시해의문추적 카페가 나옵니다.
'사람사는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주국방.. (0) | 2010.03.29 |
---|---|
목표란?.. (0) | 2010.03.29 |
민주주의와 노무현,...... (0) | 2010.03.24 |
초딩도 이해하는 한명숙 사건 풀이 [zamsi] (0) | 2010.03.23 |
누리꾼은 왜 5년전 노무현 음성을 찾아냈을까 (0) | 2010.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