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서 인플레가 닥쳐온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인플레를 얘기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엄청나게 돈을 풀어대고 있다, 그러니 돈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물가(내지 자산가격)은 당연히 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빨리 주식, 부동산을 사야된다, 고 합니다.
결국 인플레 논리가 자산시장에 투자(내지 투기)하도록 부추기는 논리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인플레’ 얘기는 거짓말입니다.
이는 건전한 상식을 동원하여 가만히 생각해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라는 글에서, 돈을 엄청나게 풀어대고 있으니 물가(와 자산가격)가 오른다, 고 하는 논리는, 통념에 빠진 오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통념(通念)은 보통 때 통하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라 비상 상황입니다. 이런 비상 시기에 아직도 통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생존이 위태로워집니다.
통념은 사고의 논리 중 중간단계를 생략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평상시라면 일일이 매번 논리구조를 따져본다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형성되고 활용되는 것이 통념입니다. 인지(認知)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절약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평상시에는 훌륭한 기능을 하던 통념이, 비상시가 되면 오히려 개인의 생존을 위태롭게 합니다.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평상시에 익숙했던 통념이 과연 지금도 타당한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이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열린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선입견’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건전한 상식을 동원해서 기꺼이 따져보겠다는 열의만 있다면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통념에서 벗어나려면 건전한 상식을 동원하여 생략된 중간 단계가 지금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됩니다.
위에 링크를 건 지난 글에서는 ‘돈을 엄청나게 풀어대고 있으니 물가(와 자산가격)가 오른다’는 통념의 논리에 대해,
돈(통화량) = 본원통화 + 신용(통화), 임을 밝힘으로써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통념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 글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식 만을 동원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기 통념이 제기하고 있는 한 가지 명제가 있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풀리고 있으니 물가(와 자산가격)이 오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명제는 참일까요?
분명한 것은
돈이 풀리고 있다 -> 물가와 자산가격이 오른다,
사이에는 생략된 중간단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간단계가 지금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됩니다.
물가는 어떻게 오를까요?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사려고 들면 오릅니다.
너도나도 사려고 드는 소비자들간의 경쟁 때문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수요의 증가).
이것 외에 물가가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 외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면 소비자들이 너도나도 사려고 들까요?
그건 소비자들의 손에 돈이 많이 쥐어지면 그렇게 됩니다.
평상시 매달 200만원의 돈이 손에 들어오던 가장 A씨가 앞으로는 매달 300만원이 들어오는 것으로 상황이 변하면,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는,
지금까지 주택대출 원리금을 갚느라 애들에게 실컷 먹여보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던 소갈비를 양껏 사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달 손에 들어오는 돈이 늘어나는 상황이 가장 A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러하다면, 너도나도 애들에게 소갈비를 사주기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소갈비 가격은 오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가가 오르는 메커니즘은 이와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상황과 반대로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 대부분의 가장들 손에 매달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 큰 무리없이 갚아올 수 있었던 주택대출 원리금 상환이 갑자기 큰 부담으로 눈앞에 다가옵니다.
안 그래도 걱정스럽던 애들 장래의 교육비, 자신들의 노후대책까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옵니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저축을 더 늘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국 평상시에 해오던 지출까지도 더욱 줄여야 합니다.
그럼 물가가 오르기 어렵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매년 물가는 조금씩 올라왔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렵더라도 당장 금년에는 물가가 좀 오를 수 있습니다. 예년만큼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가장들이 앞으로 자기에게 매달 들어오는 소득이 줄어들고 있고, 조만간 이 상황이 나아질 수 없음을 점점 명확하게 깨닫게 되면, 그럼 물가는 점점 보통 때 오르던 만큼 오를 수 없게 될 것입니다.(이런 정도가 일본의 상태쯤 됩니다)
상황이 더 심해지면 심지어 물가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이게 디플레이션입니다. 심해지면 공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다시 통념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돈이 풀리고 있다 -> 물가와 자산가격이 오른다
중간에 생략된 단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돈이 풀리고 있다 -> 돈이 가장들(소비자)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소득 증가) -> 가장들이 기꺼이 돈을 써야 한다(수요 증가) -> 물가와 자산가격이 오른다
가만히 따져보면, 인플레는 이러한 논리구조를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돈이 풀리고 있다’ 만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돈이 소비자들 손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소득 증대).
소비자들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데 소비를 늘릴 수 있을까요?
소비자들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데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을까요?
본원통화 증발로 빚어졌던 하이퍼 인플레이션 사례인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우에도 위와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 가계의 명목소득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는 물가와 자산가격이 더 크게 오름으로써 가계는 더욱 곤란을 겪게 되었지요.
분명한 것은 가계의 명목소득이 오른다는 사실입니다.
가계의 명목소득이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본원통화 증발로 인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빚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돈이 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닥쳐온다고 겁주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립니다.
과연 인플레이션이 가능할지 여부는 가장들의 수입이 늘어날지를 따져보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업이 늘고 있습니다.
관공서에서는 행정인턴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어보니 근무기간이 이제 몇 달 안남았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채용한 그 많은 행정인턴들의 근무기간이 끝나면, 이 젊은이들이 쉽게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내년이면 또 졸업생들이 새로 구직시장에 쏟아져나올텐데 이들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왠만한 중소기업들 연봉삭감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인원감축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으로들 여깁니다.
최고로 탄탄한 대기업들 조차 예년에 의례 주어지던 상여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삭감입니다.
과연 우리나라 가장들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까?
결국 고용상황이 좋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가늠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경상수지 흑자가 많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거라고 얘기하는 경우들을 자주 봅니다. 정말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8월 경상수지 흑자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만, 감소되기 이전 7월의 기록을 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7월 경상수지: 43억9740만 달러 흑자
수출은 지난해 7월보다 20.5% 감소했지만,
수입이 34.8% 줄어 흑자 달성
흑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출이 지난해보다 20.5% 줄었습니다. 결국 산업현장에서 생산활동이 작년보다 20.5% 만큼 줄어들었습니다.
고용이 늘어날까요? 급여가 올라갈까요?
수입도 중요합니다. 중소기업들은 수출보다 수입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입이 34.8%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중소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고용과 급여에 미칠 영향은 뻔한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흑자가 무슨 소용입니까? 고용과 급여가 올라갈까요?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많이 풀렸다는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아래 그래프는 미국의 본원통화 증감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단위는 10억불입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원래 8000억불 대에서 놀던 미국의 본원통화가 작년 10월 금융위기를 맞아 순식간에 최대 1조 8000억불 대까지 두 배 이상 급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원통화의 급팽창을 두고 ‘달러를 윤전기에서 찍어내고 있다’,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대고 있으니 달러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온다’ 는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조짐이 완연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 순식간에 8000억불 대에서 1조 8000억불 대로 급팽창한 본원통화는 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래 비교 그래프를 보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파란색은 본원통화, 빨간색은 시중은행들이 FRB에 맡겨놓은 지불준비 예치금의 증감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시중은행들이 예금 인출에 대비하여 비축하는 지불준비금을 직접 자기 금고에 보관할 수도 있고, 중앙은행에 맡겨둘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중앙은행에 맡겨둔 것이 지불준비 예치금입니다.
단위는 둘 다 10억불입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본원통화가 급증한 금액 만큼 거의 동일하게 시중은행들의 지불준비 예치금이 급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도표는 본원통화와 지준 예치금의 증감액을 정리한 표입니다.
위 도표를 통해 작년 8월말부터 금년 8월말까지 1년동안 증감을 살펴보면,
본원통화 증가가 8930억불, 시중은행들의 지준 예치금 증가가 8240억불로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시중은행들을 중심으로 한 금융시스템은 혈관에 해당합니다. 이 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죽게 됩니다.
그동안 미 FRB가 증가시킨 본원통화는 시중은행들의 지불준비금을 증가시켜줌으로써 시중은행들이 도미노효과로 무너지는 것을 막는데 사용된 것입니다.
본원통화가 증가한 금액 만큼 거의 그대로 시중은행들의 지불준비 예치금(중앙은행에 맡겨두는 돈)이 증가했다는 의미는, 본원통화의 증가가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 대출증가 = 통화 팽창)에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본원통화가 증가했을 뿐 통화량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통화량 = 본원통화 + 신용(통화) ].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대고 있다’, ‘달러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다’라는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통화의 팽창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위 도표에서 눈여겨 볼 것은 금년 2월 11일의 기록입니다. 단 2주만에 약 1980억불의 본원통화를 회수했습니다. 지준예치금이 거의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본원통화가 거의 그대로 지준 예치금에 잠겨있기 때문에 본원통화의 회수가 아주 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위 도표에서 본원통화와 지준예치금 증감액 부분 만을 막대그래프로 표시한 것입니다. 파란색이 본원통화, 빨간색이 지준예치금이고, 단위는 10억불입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금년 2월부터는 본원통화의 일방적인 공급이 아니라 슬슬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원통화를 회수하면 거의 같은 금액만큼 지준 예치금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본원통화가 8000억불 대에서 순식간에 1조 8000억불 대까지 늘어났지만, 회수 또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본원통화가 저리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경색(시중은행 신용창조 기능의 위축) 때문에 본원통화 공급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동안 물가상승이 나타났다면 본원통화 공급을 저렇게 늘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미국이나 우리나 중앙은행의 법적인 의무는 중앙은행권 가치의 유지, 즉 물가안정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경기부양, 실업구제가 제 1 과제가 아닙니다.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으면 앞으로 전개될 사태를 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아직 물가상승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출구전략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 본원통화는 물가상승을 불러오기 전에 회수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론기사를 보면,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돈이 엄청나게 풀리고 있다’고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있을 뿐, 실제 가장들(소비자)의 손에 들어오는 돈이 전혀 늘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결정적인 것입니다.
가장들의 고용사정이 실제로 나아지고 급여가 오르기 시작한다면(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전망, 별 근거도 없어 보이는 전망이 아니라), 당연히 저의 견해는 수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별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내용을 보니 인플레를 부르는 다른 측면들, 예를 들어 공급 충격, 독과점, 환율의 영향 등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사실 이 글의 말미에 이런 요인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했던 것인데 오늘은 어렵겠고, 따로 정리해서 내일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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