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에 무죄…당시 재판부 ‘침묵’

제5공화국 때의 대표적인 조작 시국사건인 학림사건 연루자들이 지난 14일 대법원의 재심

판결에서 31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으면서 당시 재판에 관여했던 법조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주요 공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고문받은 사실을 재판정에서 폭로했는데도 중형을 선고하는 등 과거 국가권력의 횡포에 일조한 데 대해, 최소한 현직 고위 공직자들은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1심 재판(1982년 1월22일 선고)은 허정훈 재판장(사망)과 이영애·장용국 배석판사가 맡았고, 2심 재판(1982년 5월22일 선고)은 최종영 재판장과 황우여·이강국 배석판사가 맡았다. 대법원 판결(1982년 9월14일 선고)은 정태균·윤일영·김덕주·오성환 대법관이 맡았다. 이 가운데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최종영 재판장은 이후 대법원장(1999~2005년)을 지낸 뒤 현재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 변호사로 있다. 황우여 배석판사는 1996년 정계에 입문해 현재 새누리당 대표로 있고, 이강국 배석판사는 헌법재판소(헌재) 소장이다. 1심의 이영애 배석판사는 18대 국회의원(자유선진당)을 지냈다.

이들 대부분은 직접 나서 입장을 밝히길 꺼리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와 관련한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대신 18일 측근을 통해 “대법원 무죄판결을 존중하고 학림사건으로 고통과 피해를 입었던 분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했지만, 직접 나서서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강국 헌재 소장은 공보실을 통해 “학림사건은 주심이 아닌 배석판사로 참여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최종영 전 대법원장은 “어떤 언론도 상대하지 않겠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7년 복역 이태복 전 장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학림사건 당시 주임검사를 맡아 사건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은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안 전 지검장은 “당시 피의자들을 고문한 적이 없고 정당한 수사를 했는데, 대법원이 이제 와서 왜 무죄판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쳐 서울지검장을 지냈다. 2008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학림사건 주범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8년 특별사면 받을 때까지 7년간 옥살이를 했던 이태복 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재판 받을 때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했지만 판사들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특히 황우여 대표와 이강국 소장은 지금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만큼 학림사건 판결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항소심 때 “최종영 판사에게 ‘8시간 노동제와 최저 임금제는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말하자 최 판사는 ‘그건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더 말하지 못하게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모습을 황우여·이강국 판사는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고 덧붙였다.

학림사건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이 민주화세력을 탄압하려고 학생운동 단체 등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처벌한 사건이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해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최규엽 새세상 연구소장 등 2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당시 사법부가 청와대의 ‘쪽지 하명’을 받아 엉터리 판결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허재현 박현철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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