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아니라 전략이다(1) 야권의 대선운동, 개념부터 탑재하자

2012. 09. 07. 금요일
미디어전략팀장 게으른수다쟁이

 

 

 

 

원래 이 글은 지난 총선 때 기획된 것이었다. 간만에 찾아온 본격 정치시즌에 쫌 잘난 척 해볼려고 기획하고 예고편만 달랑 올려놓고는 흐믓했었더랬다. 그리고 담편들을 위해 이리저리 원고를 만들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어느 날, 홀연히 지하 벙커 공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수개월동안 햇볕 보기도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한달, 두달 밀리다보니 글이 올라갈 타이밍도 다 놓쳐버렸다.

 

마치 부킹녀 떠난 자리에 빈 양주병만 남은 허탈감처럼 무기력해진 나는 아예 자판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러다보니 벌써 올해도 9월이다.

 

이제 본격 대선국면이니 그때 쓰려던 글들을 슥샥 손질해서 다시 시작해본다. 설마 혹시라도 기다리신 분들이 있다면 아주 쵸큼이지만 그래도 좀 미안타.

 

'전략'이란 단어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초등학생까지 전략이란 단어에 거부감이 없어졌으니 발길에 채이는 모든 것들이 '전략적 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네임택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서도 이 '전략'이란 단어가 그처럼 흔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너무나 흔해지다보니 '전략'이란 단어에 무게감이 사라지고 마치 수학의 '근의 공식'처럼, 비슷한 문제에 무작정 대입시키고 답 나오기만 바라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발길에 채이는 것이 전략비평들이나 오히려 본질은 사라지고 비평만 남는다.

 

 

결과적으로 기획현장에서 '전략'을 만드는 과정과 의미, 사고 체계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오용되면서 전략적이지 못한 전략들이 난무하고 전략적이지 못한 비평들이 판단의 기준마저 흐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래도 딴지미디어'전략'팀을 이끌고 있는 본인이 나선다. 괜히 팀 이름에 전략이란 단어를 넣은 것이 아니었던 거시다.

 

현업에 있는 분들에게는 일면 부족한 글이겠지만, 일반인들이나 초보 기획자들의 생각 속에 전략을 제자리로 돌려 놓기, 제대로 전략적으로 사고해보기를 유도하는 것 이게 '초짜기획자의 전략수첩' 이 시리즈의 목표다.

 

대충 읽다보면 광고든 마케팅이든 정치든 대충 전략을 입안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 자체를 유추해볼 수도 있고, 그리고 초짜 기획자들에게는 그냥 한 선배가 그동안 현장에서 고민했던 결과물로 이해하고, 어쩌면 현장에서 마주치게 될 상황에서 대안들을 찾을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수차례 고쳐쓰기에도 불구하고 독자 열분들이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들은 어쩔 수없다. 그냥 다 내가 부족한 탓이거니 할 수밖에.

 

 

1. '전략'-그 이름의 무게를 느껴보자.

시중의 많은 마케팅 전략서들이 서문에 전략(Strategy)의 어원을 그리스어인 스트라테고스 (strategos: 줄세우기, 집단적인 힘과 압력의 행사를 의미한다고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혹자는 이 단어를 예를 들며 군대의 오와열을 정비하듯이 마케팅이나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설명하기도 하고 체계적인 계획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유사이전에 있었을 작은 집단간의 다툼이나, 싸움에서 어떤 명확한 개념이 없었을 때도 전략이란 것은 태동하고 있었을 터이다. 자신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을 걸고, 가진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집중하여 투쟁이 벌어지는 순간, 전략이란 것은 All or Nothing을 염두에 두고 적의 약점을 비집기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적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들이 아니었을까?

 

테무진이 그러했고 이순신이 그러했듯이 그들이 국운을 걸었던 그 전날 밤의 그것처럼, 전략은 무겁고도 치명적인 결과를 예고한다.

 

전략의 위엄

테무진의 전략, 전술을 강의중인 극강미남 필독(@ddanzifielddog)선생

 

결국, 생과 사를 구분 짓고 국가 또는 공동체의 존망을 결정짓는 전장에서 전략이 태동했고 발전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은 생과 사를 더하고, 그 성공여부에 따라 모든 것을 다 가지거나 다 잃게 되는 천근같은 '무게'를 가지고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략의 발생이유는 그 자체로 본질이다. 전략은 태생적으로나 본질적으로 'All or Nothing'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전략이란 단어에 걸맞는 행위가 되려면 당신이 만든 문서, 당신이 뱉은 말 한마디에 사실상 해당 주체(기업이나 정치인이나 자영업자나)의 생사, 존망이 모두 다 걸어야 하는 행위여야 비로소 '전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그냥 시도이거나 기획으로 명명되어야 마땅하다.

 

굳이 이 무게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별 것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야 전략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업에 관련된 기획자, 전략가라면 단어의 무게감을 확연하게 느끼고 전략을 입안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전략에는 아니면 말고는 없는 것이다.

 

전략은 All or Nothing의 존재 라는 것, 이것은 특히 선거 판에서 단기간에 승자독식의 결판을 내어야 할 때는 더욱 더 중요하다.

 

일단 전략의 개념을 이정도만 머리 속에 넣고 또 설명될 기회가 있을 테니 차근 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2. 전략의 시작은 '정의(Definition)'이다.

당신이 모기업의 기획실이나 마케팅실, 또는 홍보팀이나 광고대행사 등 관련업종의 종사자로 입사했다고 하자.

 

어리바리하게 출근해 있는 당신에게 사수랍시고 와서는 자사와 경쟁사의 마케팅이든 시장침투이든 시장 방어이든 여하간에 전략을 파악하고 분석해보라고 지시한다. 그 이유나 방법은 설명해주지 않았고 그 한마디만 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로 사라진다.

 

학교에서 분명히 환경을 분석하는 방식은 배웠다. 그 배움의 순서대로 시장자료를 출력하고 경쟁사동향을 분석하면서 소비자 자료를 층층히 쌓아놓고 정리해나가기 시작한다. 대부분 수치와 도표로 도배된 보고서들은 뭐가 유의미하고 뭐가 무의미한 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난무하고 형형색색의 그래프들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료의 양이 아니다. 당신이 그 자료를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각각의 요소들을 주시하는 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관점의 예

'관점'이란 자료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본 숫자나 정보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줄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사고해보는 것인데…해석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하자.

 

어떠한 관점에 의해서 자료를 본다고 함은 자료를 새롭게 구성하고 재'정의'함을 의미한다. 전략은 당신이 내릴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정의'되어졌는가에 의해서 A급 기획자가 될지 C급 기획자가 될지 좌우된다.

 

'정의'의 또 다른 이름은 인사이트(Insight)라고 한다. 정보의 세세한 의미를 파악하고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팩트를 엮어서 새로운 환경을 재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용어로 인사이트라고 표현하지만, 일상어로는 '통찰'가깝다. 통찰은 한마디로 당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해야할 것들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자료들을 모두 외우다시피 해야한다. 머 리속에 백지로 채워진 방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 모든 자료들이 카테고리별로 일목요연하게 그림그릴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각각의 정보들이 다른 카테고리의 정보와 함께 해석되어질 때 이것을 입체적으로 사고한다고 말하고 소위 인사이트'Insight'가 가능해지고 궁극적으로 '정의(Definition)'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총수는 가카치세의 한국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좌우파의 진영논리, 계층간의 갈등 현상들을 한마디로 '두려움'으로 정의한다. 너불편집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외로움'때문이라 진단한다. 총수는 이 정의를 바탕으로 '쫄지마'를 외치고 편집장은 딴지 내에서 아직은 극비인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또 '외로움 극복의 서'를 쓴다.

 

상황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전략적 방향을 만드는 것이다. 상황이 '정의'되어야 행동이 '결정'되어지고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기며 이것이 하나로 바늘에 관통될 수 있어야 비로소 '전략'이란 단어가 만들어진다.

 

'정의' Definition의 예

모피 광고의 대부분은 여성의 나체에 모피만을 입힌다.
속옷과 모피가 함께 쇼를 하는 경향도 많다.
결국, 모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리티를 파는 것이다.

 

섹슈얼리티- 이것이 모피시장의 'definition'이다.

 

이것이 상황분석에서 필요한 '정의'이다.

 

덧붙일 것은 정의(Definition)에 정답이 있을 것이란 환상도 역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정보의 양 내에서 통찰할 수 밖에 없고, 가장 설득력있어 보이는 '정의'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정의에 의해 논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안심하라. '논란'도 '전략'의 일부다. 완전무결하고 오류 없는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3. 대부분의 전략은 논란을 만든다.

앞선 예고편에서 전략적인 관점에서만 평가한다면 역대 대통령중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최고라고 평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대선과정에서 펼쳐놓은 주된 공약들 동북아균형자론이니 행정수도니 하는 것들이 모두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일반인들부터 전문가, 경쟁 집단까지 그가 한마디할 때마다 이것이 가능할지 아닐지에 대해 첨예하게 논쟁을 했다. 그리고 논쟁이 최고점에 달할 때 다시 다른 논쟁거리를 툭하니 던져 놓는다.

 

시장은 흔들리고. 이슈에 따라 사람들은 이합집산을 해가며 지지율부터 지지단체까지 마구 춤을 춘다. 마지막에 당시 정몽준의 지지철회선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선되었다.

 

물론 정몽준의 행위는 최후까지 기냐 아니냐를 고민하던 사람에게 완전히 노무현후보에게 무게추를 달아준 것이기도 했다.

 

가카의 당선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평했다. 하지만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미 대선전에 모든 키워드를 '경제'와 상대의 '무능'에 맞춰놓은 한나라당에 의해 가카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한반도 대운하'로 여론은 양분되었다. 국토를 절반으로 갈라놓겠다는 그의 구상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격론을 벌이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2MB를 버릴 것인지, 가질 것인지에 집중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에 비해 야권진영에서는 가카의 개인비리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전략'이란 것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나온 야권의 유일한 대응 이슈가 당시 정동영후보의 '달로 로켓보내기'였다. 게임은 그 순간에 끝났다.

 

대운하-가카에게는 이름은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버리는 것보다는 소비에 더 강한 면이 있는데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응한다.
특히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안된다'보다는 '한다'에

미묘하게 더 끌리게 되는 데 이것이 정치적으로 관점으로 볼 때
'FTA'찬반 논란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되었다.

 

하다 못해 마트에서도 적어도 주부가 백원 더 비싼 콩나물을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며 들었다 놨다를 해야 기회가 생기는 법인데, 아예 눈길하나 끌지 못했으니 이미 승부는 결정난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의 세계인 홈쇼핑에서 '마감임박', '주문폭주'등의 용어를 쓰는 이유는 바로 그 순간이 바로 시청자들의 고민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게 하지 않으면 선택도 없기 때문이다.

 

논란을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면, 시장의 안정된 상태를 깨트리지 못하고 그렇다면 시장 점유율이나 업계 순위를 만들지 못한다. 만약 어떠한 이슈로 사람들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반응이든 시장이 혼란스럽다면 지금 당신은 매우 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전략적이지 못했던 슬로건
잘 만들었다는 있었지만, 복지는 이미 새누리당까지 들고 나왔던 필수요소였고

저녁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손학규에게는 사람들이 '그게 가능해'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더욱 강력한 무엇인가가 더 필요했던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저녁이 있는 삶'은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가장 아쉬운 선거 슬로건 중에 하나이다. 물론, 복지분야에 대한 카피의 완성도는 사실상 지금까지 봤던 선거 슬로건 중에서는 최상에 속한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말이 이쁘다'를 제외하고는 선거 전략적인 속성을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혀 고민에 빠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민이 없는데 손학규 후보에게 모아지는 눈길은 한계가 있다. 그냥 슬로건으로 수명이 끝났다.

 

손학규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잠재적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에 대한 차별성이 아닌 그를 선택하게 만들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 부분은 '나는꼽사리다' 공개방송에 출연한 그의 이야기 속에서도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전략적 가이드 라인이 제대로 세워졌다면, 그 토대에서 벗어나 아무리 좋은 카피, 크리에이티브, 이미지가 만들어졌더라도, 기획자들은 그것을 버린다. 참고로, 전략가에겐 버리는 것도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손학규후보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4. 모든 전략은 1등전략이다.

모든 전략은 1등을 위한 전략이다. 3등이 2등이 되기 위한 그런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건희대제의 1등 제일주의인가 싶겠지만 이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마켓쉐어 ( M/S, Market Share, 시장점유율을 말한다)상에 1위, 2위 3위는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100명의 사람 중에 50명의 사람이 1등으로 생각하는 제품이 존재하고 30명의 사람이 1등이라 생각하는 제품도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 제품을 구매하거나, 그 정치인에게 표를 던질 때는 시장의 3위라서, 2위라서라는 개념은 없다. 그들이 선택한 모든 제품은 자신이 판단했을 때 가장 좋고, 타당한 1등 제품이었기에 구매한 것이다. 2번째로 좋아하는데 그것을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전략은 1등을 위한 전략이어야 한다. 일단 내 앞의 경쟁자를 제치고 1위를 겨냥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1등이 되고자 하는 것에 소비자들은 호응한다. 삼성의 말도 안되는 '세계 일류 드립'은 사실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서 모든 후보자들이 문재인을 겨냥한다. 자신들의 선명성이나 차별점을 끌어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억지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틀린 방식이다.

 

유권자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문재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그들이 싸워줬으면 하는 상대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다. 그 후보와 싸워서 어떻게 이길 것인지, 누가 더 이 길수 있을 지에 대한 판단으로 경선에 임한다. 이건 앞서 말했지만 경쟁자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해서 나오는 오류들이다. 불행히도 자신들이 누구와 싸우고 있는 지 모른다는 거다.

 

1962년 미국에서 시작된 폭스바겐 'Think Small' 캠페인
베이비붐 세대가 크고 강한차를 선호하는 미국시장에서 
게다가 전범국인 독일차이기도 하여 고전하던 폭스바겐은 이 캠페인으로
10만대 수준의 판매량을 단 1년만에 20만대로 끌어올렸다.
시장의 하위그룹이었지만, 시장전체를 조망하고
자신들의 경쟁자를 '크고 강함'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가진 자산을 최대의 강점으로 끌어올렸다.
이것이 1등 전략이다.

 

광고든 마케팅이든 전략은 자신을 시장의 유일무이한 존재 'the one'이 되고 경쟁자들은 'others'로 만드는 것이다. USP전략이든, Positioning전략이든 상관없다. 모든 전략은 시장의 1위가 되기 위해 모든 경쟁자들을 Others로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유일무이한 대안이자 길이란 사실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슈를 선점한다는 것의 중요성이 발생한다. 한 후보, 제품이 내세운 이슈에 동조하든 욕을 하든 먼저 내세운 쪽을 제외하고는 그 순간에 'others'로 전락하고 만다. 3등이 2등하겠다는 전략은 결국 수 많은 others 중에 사람들이 차이점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인데 차라리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더 낫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은 전략의 아주 일부분이지만, 가장 많이 간과되어지고 또는 무시되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전략이 담고 있는 것들은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일단 이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시작해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대한 시야를 넓게 가지고 그리고 그것이 옳든 틀리든 정의해보고 전략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보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다음은 대선(예비)후보들의 슬로건들이다. 보고 다시 한번 차근 차근 짚어보자. 지금까지 듣던 이야기들과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다면 잘 따라온 것이다.

 

 

한 곳에 모아보면 정말 재미있다. 어떤 '정의'였고, 어떤 '논란'이 필요했으며 어떻게 '1위'가 되고자 했는 지 곰곰히 살펴보자. 의외로 아무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다른 지점의 문제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들을 포함해서 이제 전략 설정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넘어간다. 담에보자.

 

그럼 졸~라!

 

 

미디어전략팀장 게으른수다쟁이

http://www.ddanzi.com/blog/archives/103794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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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한장

KIN보드 2012. 9. 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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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은 내년부터 1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공중급유기 4대 도입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내년 예산에 550억원의 착수금을 요구하였으나 기획재정부는 이를 360억원으로 조정한 뒤 청와대와 협의하였다. 그런데 8월30일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청와대 외교안보실은 기재부 예산실장에게 이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공중급유기는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도 덧붙여졌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 체공시간을 늘려 작전반경을 확대하도록 하는 게 바로 공중급유기다. 독도에서 한국군 방어훈련으로 심기가 불편한 일본에 청와대가 파격적 배려를 한 셈이다.

올해 추진되는 차기전투기사업과 함께 공중급유기는 공군 전력 증강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희한한 정치논리로 성사 직전의 사업이 날아갔으니 공군은 거의 멘탈이 붕괴된 상황이다. 죽은 사업을 다시 살리려고 공군 참모총장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상황은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그날 열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는 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9월7일로 예정된 독도 방어훈련에서 해병대의 입도 훈련을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상륙기동헬기와 상륙공격헬기를 도입하여 항공력으로 상륙전을 모색하는 해병대는 독도에서도 그 위용을 과시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독도 방어훈련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예고된 훈련이었기 때문에 일본 눈치 보느라고 훈련을 취소한 데 대한 분노는 더 컸다.

더 심각한 결정도 내려졌다. 국방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점을 고려해 양국 군사협력 문제를 재검토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9월말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욱일승천기를 게양한 일본 함정이 들어와 우리 함정과 기동하면서 양국의 군 관계자가 악수하고 환담하는 것을 수용해야 할 것인지, 국방부는 연기하거나 재검토할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결정했고, 이 때문에 국방부와 해군은 내키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하고 원치 않는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국방부에 국민의 질타가 쏟아질 터이니 이 역시 멘탈이 붕괴될 일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육군도 예외일 리가 없다. 앞으로 5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입하여 유도탄 전력을 증강하고 무인공격기까지 보유하려는 육군은 지대지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이 최대 숙원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서 일본이 한국과 독도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에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연장해주지 말라”고 로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미사일 사정거리가 연장되면 일본열도가 그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이 흔들리고 있으니 육군의 멘탈이 붕괴될 일 아닌가?

일본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한국군 전력 증강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적극적 억제전략’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본다면 지난 3년간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안보정책은 저절로 붕괴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보수안보세력의 국가주의가 일본의 국가주의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뼛속까지 친일이고 친미”라고 스스로 말하는 그들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고도 북한에 대해 무슨 원칙 있는 접근을 할 것이며, 적극적 억제를 한단 말인가? 청와대 안보수석의 황당한 궤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05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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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온라인과 언론을 뒤흔든 화제는 '안철수 협박'과 '안철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안철수 원장 측근이었던 금태섭 변호사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에서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대선불출마를 종용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4일 오전 7시57분께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의 전화를 받았다.1999년 산업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과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출신과 최근까지 사귄 것을 알고 있다, 대선에 출마하면 폭로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 전문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금태섭 변호사: 갑자기 연락을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깊은 고민 끝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9월 4일 월요일 아침 7시 57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정준길 공보위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7분간 통화를 하면서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습니다.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에 대한 협박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 우리 국민의 변화 열망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안철수 원장에게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한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대선 기획단의 음모와 활동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제시해야 합니다. 

다음은 구체적 내용입니다. 

첫째, 안철수 연구소 설립 초창기 1999년 산업은행에서 투자 받았는데 투자 팀장 강모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둘째, 안철수가 목동에 거주하는 30대 여성과 최근까지 사귀고 있다. 

정씨는 구체적 근거는 말하지 않은 채 “우리가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대선에 나오면 죽는다. 안철수 원장에게 그것을 말하고 불출마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불출마를 종용했습니다. 

그 내용이 새누리당 측에 전달되고 있지 않는가,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거대권력이 현 상황을 지휘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한 의문이 듭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의 근원지와 조직적 유포에 대한 제보가 있습니다. 국민의 염원을 협박하는 것입니다. 이는 안철수 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낡고 구태연한 거대 음모. 국민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어떤 사실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태섭 변호사가 밝힌 정준길 공보위원의 협박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뇌물이고, 두 번째는 여성편력입니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치명적인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녹취록이 없어서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금 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미 논란이 됐던 경찰의 안철수 원장 조사 관련과 이어져 정가에 떠돌던 새누리당의 안철수 네거티브 전략팀 운영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준길 위원의 안철수 원장 대선 불출마 협박을 보려면, 과연 금태섭,정준길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필자가 늘 주장하는 그 배경에 숨겨진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의 살아온 인생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검사직을 내던진 정준길'

정준길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입니다. 새누리당 공보위원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정준길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시 35회를 거쳐 검사가 됐습니다. 울산지검에 근무하면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파견돼 안대희 (현재 새누리당 대선기구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중앙수사부장과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준길의 경력을 보면 검사를 그만두고 어떤 법무법인에 간 것이 아니라 CJ그룹이라는 기업으로 갑니다. 전략구매 실장이라고 하지만 직함은 상무였습니다.이런 그의 모습은 그리 흔치 않은 행보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는 법조계가 아닌 기업으로 갔을까요? 

정준길이 기업에 간 이유는 그가 펴낸 자전 에세이 '길의 노래'에 나와 있었습니다. 
 
“평생 직업으로 삼고자 했던 검찰을 떠나면서 새로운 삶의 길로 7~8년 정도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국회의원에 출마해 보겠다고 나름대로 중기 계획을 세웠었다.” 
 

▲ 정준길 변호사의 자전 에세이 '길의 노래' 출판기념회 © 디지털광진


정준길은 대한변호사협회 수석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정계 입문을 노렸고, 2008년 CJ에 사표를 내고 한나라당 광진구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4.11 총선을 앞둔 2011년 '길의 노래'출판 기념회를 자신이 출마하려던 광진구에서 개최했습니다. 건대동문회관에서 열린 정준길 변호사의 출판기념회에는 대표적인 친박계인 현경대 전 의원이 참석해, 그가 지금의 박근혜 대선캠프에 어떻게 참여했느냐를 짐작하게 합니다.

박근혜 후보 지지모임인 '국민희망포럼'의 법무실장을 지내기도 한 정준길은 대표적인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이었습니다.그는 2012년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추미애 후보에게 패배한 뒤 박근혜 대선캠프에 합류해 박근혜 후보의 대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선캠프에서도 나와 앞으로 어떻게 다시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정치판을 떠날 사람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 

'검찰개혁을 외치다 쫓겨난 금태섭'

금태섭 변호사는 안철수 원장 측근 이전에 대한민국 검찰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입니다. 2006년 9월 금태섭 변호사는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한겨레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 금태섭 검사가 기고한 연재물 © 한겨레 신문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에 근무하던 금태섭 변호사는 법에 명시된 피의자의 권리를 일반인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10회 연재를 계획으로 한겨레 신문에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단 1회 기고 후 검찰과의 마찰로 연재를 그만두게 됩니다. 

한겨레 신문에 글을 올리고 난 뒤에 6개월 후에 검찰을 나온 금태섭 변호사는 법무법인 지성에 근무하면서 서강대학교 법학전문 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금태섭 변호사는 현직 검사로 '조직의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던 기고문을 쓴 이유에 대해서, 검찰이 과연 피의자를 보호하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과 선진국처럼 변하지 못하는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고민하다가 글을 썼다고 합니다. 

안철수 원장과 금태섭 변호사가 전면에 나서게 된 배경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시장의 멘토단으로 참여하면서입니다. 금변호사와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처음 만났으며, "우리 둘 사이에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고 말해 두 사람이 각자의 행보 속에 비슷한 성향으로 친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금태섭 변호사가 안철수 원장의 측근으로 나왔던 기자회견도 중요하지만, 그가 왜 좋아했던 검사직을 그만두었는지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원장 불출마 협박에 담긴 단편들'

정치블로거로 살다 보면 왜 지금 시점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를 자꾸 되짚어 보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새누리당이 안철수 원장 뒷조사를 적극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로서는 과연 얼마큼 새누리당이 안철수 원장을 이용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 황우여 대표가 새누리당 당직자에게 받은 문자


안철수 원장 불출마 종용 기자회견이 열리던 시각, 국회 본회의장에 있던 황우여 대표는 새누리당 당직자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습니다. 

"안철수 관련 "협박"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실관계가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함"이라는 문자를 통해 우리는 새누리당이 어떻게 하든 앞서 말한 정치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뇌물과 여자문제를 진실처럼 몰아가려고 한다는 기획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9월4일 오전에 받았던 전화를 굳이 슈퍼 디데이로 불리던 민주당 광주,전남 경선이 열리던 9월6일 기자회견을 했는지도 한 번쯤은 되짚어봐야 합니다.

필자가 왜 단편들이라는 단어를 썼느냐면, 정확한 팩트가 없는 혼전의 양상이 지금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언뜻 들었던 얘기들이 갑자기 사실로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안철수전담팀 등)


과연 새누리당은 무슨 의도로 정준길을 시켜 전화하게 했고, 과연 정준길은 무엇을 노리고 '안철수 저격수'를 자처했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준길 위원처럼 검사 출신이며 치밀한 사람이 무턱대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거나 뻔히 이슈화될 수 있는데 아무리 친구지만(정준길과 금태섭은 서울대 법대 동기) 적처럼 대치 상황에 있던 금태섭 변호사에게 전화했다는 점도 무심코 넘어가기는 자꾸 배경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단락에서 필자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치권의 모든 움직임을 그냥 단순히 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가 함께 고민하며 의견을 나누고 싶기도 합니다.

▲ 4.11총선 당시 정준길 후보 지지유세를 하는 박근혜© 광진의소리


사람을 평가하면서 단순히 그가 어떤 인물이었느냐를 보기보다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본다면, 금태섭 변호사는 검찰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정준길은 자신의 정치적 권력과 야망을 위해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됩니다.

정준길은 9월6일 어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직을 사퇴했습니다. 또한 '가슴이 아프다'라며 갑자기 자신이 건 전화가 친구를 향한 우정어린 충고였다고 항변했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20여년이 넘은 친구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과연 제가 이런 행태의 정치를 계속 해야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짜 정준길은 이런 순진한 생각으로 전화를 했을까?)

앞으로 정준길과 금태섭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준길은 어찌 됐든 정치판의 말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잠시 사라집니다, 그러나가 그가 걸었던 한 통화의 전화는 12월 대선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는 퇴보하면서 정치판의 말들은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런 정치판을 보는 국민은 최소한 두세 수는 미리 보는 안목을 지니는 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정치를 어렵고 더럽고 추악하게 만드는 정치인들입니다. 



http://impeter.tistory.com/1960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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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가실때는 전체 복사+붙여넣기 말고 링크로만 http://konatamoe.com/20165267804 퍼가주시기 바랍니다.

애플사는 삼성에 자사의 특허들과 자사 제품들의 디자인을 카피당했다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고, 결국 삼성은 1조2000억원을 배상하게 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삼성이 애플의 스마트폰, 태블릿, iOS의 인터페이스, 패키지, 악세서리, 광고까지 배끼고 있는 것은 IT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많이 느끼고 계셨을것입니다. 현재 삼성은 갤럭시 노트, 갤럭시S2, 갤럭시S3등 휴대폰 사업에서 세계 일류가 됬지만 갤럭시S가 처음 나올때만해도 삼성은 스마트폰에서 '기타'제조사로 분류되는 수준이었고 세계 스마트폰은 아이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성능도 가장 좋은 폰이었습니다.

삼성은 애플의 모든 것을 카피하며 점유율을 높여갔고 결국 성능도 좋고 모든것이 좋은 이유도 있고 결국 휴대폰에서 애플을 앞질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것들을 애플을 배꼈습니다. 제가 미국의 판사가 아니니 소송에 대한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단지 삼성이 애플의 어떤 것들을 어떻게 배껴왔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객관적인 자료를 보거나, 비교 사진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제품이 최고라는 생각과 이상한 곳에서 발휘되는 잘못 된 애국심 등의 복합적인 요인들이 합쳐져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도가 지나친 카피 행위에도 둔감하고, 국내 기업을 옹호하기에 바쁩니다. 언론은 카피에 대한 잘못과 책임은 따지지 않고 마치 대한민국이 미국에 진 것처럼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패배했다는 기사만 쓰기에 바쁘고, 국민들은 범죄행위인 타사 제품을 베끼는 것이 어떻냐면서 말도 안되는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기업 윤리나 디자인적인 침해 등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는 언론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소송에서 져서 억울하다는 듯한 기사만 있고 애플의 것들을 베낀 범죄 행위에 대한 사과나 문제에 대한 책임에 대한 기사는 없을까요? 만약 중국 회사가 삼성의 스마트폰이나 TV의 기술과 디자인을 훔쳐서 일류 기업이 됬다고해도 중국기업을 옹호할건가요? 잘못된 편견과 잘못된 애국심을 버리고 회사대 회사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봅시다.

국내의 많은 파워블로거들 또한 기업들의 체험단과 기업의 여러 제공들에 이미 뼈속까지 기업의 노예가 되어버려서 국내 기업을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요 언론또한 기업대 기업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잘못된 애국심에만 빠져 마치 삼성=대한민국인 것 처럼 잘못된 바탕하에 애국심을 일으키거나 삼성을 옹호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일 뿐입니다.

과연 국내 기업이 잘못된 행동을 해도 덮어두는게 우리나라 기업을 사랑하는 행위일까요? 기업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바로잡아주는 것이 국민들이, 그리고 진정 기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 아닐까요?
타 기업의 이미지와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서 똑같이 만드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 행위이며 중국이 베껴 만들어 팔면 욕하면서, 똑같이 한국이 베껴 만들때는 감싸는 행위는 우리나라 국민의 잘못된 애국주의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매우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이미 있는 것을 베껴서 모방하는 것은 쉽고 간단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애플이 뭔가를 창조했든 안했든 원조든 아니든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 애플의 것들을 끊임없이 베낀것인가에 대한것을 근거 자료와 함께 알아본 것입니다.

잘못된 애국심과 삼성을 좋아하든, 애플을 좋아하든 이런것들은 모두 버리고 단순히 카피를 했는가 카피를 한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바라봅시다. 토론과 의견을 하는것은 좋지만 댓글로 주장을 할때는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만의 감정에 의한 욕설이나 앱등이, 삼엽충등 비하 발언이 아닌, 사진이나 문서 링크등의 자료를 가지고 근거있는 주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품디자인
#A-1










아이폰3GS 출시 후 1년 뒤에 출시된 갤럭시S는 아이폰을 베껴서 만들었습니다. 
똑같은 은색 크롬 테두리 처리와 똑같은 모서리 둘이 거의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은 갤럭시S를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최고 인기 스마트폰이었던 아이폰3GS와 같은 느낌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폰3GS의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 것입니다. 갤럭시S의 경우 모서리를 깎은 R값이 아이폰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스마트폰폰 디자인이야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슷한 디자인이 생길 수도 있는건 당연하지만 똑같은 디자인의 크롬 테두리의 모서리를 깍은 R값까지 정확하게 일치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이폰을 고의적으로 카피했다는 주장이 인정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허 번역 원문-

http://www.engadget.com/2012/08/25/breaking-down-apples-1-billion-courtroom-victory-over-samsung/


이번 미국 판결 중 - 디자인 특허

D '677 특허: iPhone의 에지-투-에지 유리, 스피커 슬랏 및 디스플레이 보더

D '087 특허: 둥근 코너들과 홈 버튼

D '305 특허: iOS에서 그리드-스타일 아이콘 배열

D '889 특허: iPad의 에지-투-에지 유리, 둥근 코너들 및 좁은 베젤


배심은 '381 바운스백 특허를 삼성의 전체 21개 기기들이 침해했다고 판정했고, 삼성 본사가 삼성 미국법인에 침해한 제품들을 팔도록 권유했다고 판정을 내렸다.

배심은 '915와 '163 주밍 및 스크롤링 특허들을 삼성의 거의 모든 기기들이 침해했다고 판정했고, 역시 삼성 본사가 미국법인에게 판매를 권유했다고 판정했다.


배심은 D '305 그리드-스타일 아이콘 배열 특허를 삼성의 모든 기기들이 침해했다고 판정했다.
배심은 D '087 둥근 코너들 특허를 삼성 갤럭시 S, 갤럭시 S 4G, 바이브런트가 침해했다고 판정했다.
배심은 D '677 에지-투-에지 유리 특허를 삼성의 갤럭시 에이스를 제외한 전 기기들이 침해했다고 판정했다.

배심은 유일하게 D '889 iPad의 에지-투-에지 특허만 삼성 갤럭시 탭 10.1과 갤럭시 탭 10.1 4G LTE가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배심은 D' 087 특허만 제외하고, 모든 특허들을 삼성이 고의로 침해했다고 판정했고, 애플의 모든 특허들이 유효하다고 판정했다.



잘 모르는분들이 단순히 폰의 모서리만 둥글면 다 애플 가이드에 걸린다고 지레 짐작하시는데 모서리 R값을 포함하여 여러 복합적인 것들이 특허로 등록되어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재판에서도 애플에게 지적 된 20여종의 제품 중 모서리 디자인을 침해한 것은 크롬 테두리의 모서리 R값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갤럭시S, 갤럭시S 4G, 바이브런트(갤럭시S 변종) 뿐 입니다. 일부러 아이폰3GS 모서리의 R값에 일치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무작정 둥근 직사각형폰은 다 애플 디자인에 걸린다고 근거없는 주장을하는 분들이 많아서 알려드립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GADGET LAB 쪽에 설명되어있습니다.
똑같은 전면 디자인, 똑같은 크롬 테두리 처리, 똑같은 크롬 곡면 모서리의 R값까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카피'했다라는 것입니다. '애플의 가이드라인 따르면 휴대폰을 삼각형으로 만들어야 된다', '자동차 바퀴가 네개면 카피다'같은 말도 안되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는분들은 객관적인 근거와 사실부터 알아야 합니다.





삼성은 애플과의 소송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2012년 초에 아이폰3GS를 그대로 똑같이 카피한 갤럭시 에이스 플러스를 중국, 유럽,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지역에 출시했습니다. 마치 디자인 카피 소송을 건 애플을 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기의 디자인도 똑같을뿐더러 아이폰3GS의 제품 사진 배치까지 동일합니다. 삼성은 디자인을 베끼는 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 짝퉁기업인지 한국 대기업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대기업이라는 휴대폰 제조사가 타사 제품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서 출시하고 있으며, 이미 갤럭시S, 갤럭시탭등은 애플사에 디자인 표절 소송으로 세계 각국에서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이런 디자인의 신제품은 삼성에게 이어지는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들이 직사각형에 모서리는 약간 둥글지만 제조사마다 모두 특색이 있고 개성이 있어서 모두 천차만별의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 오히려 디자인을 아이폰처럼 만들래야 만들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직 삼성 갤럭시만이 계속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똑같이 카피하고 있습니다. 


제품 마케팅 사진
#A-2

누군가 이렇게 제품 사진을 똑같이 찍으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준걸까요?
아닙니다. 삼성이 사진 구도와 배치를 베낀겁니다.

‘갤럭시S’ 광고 사진은 해외에서 유명했습니다. 갤럭시S 제품 사진은 아이폰3GS 광고사진을 그대로 베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성 로고만 없으면 일반인은 어떤게 애플 제품인지 삼성 제품인지 구분하지 못 할 수준입니다.



삼성은 애플 제품 사진 배치까지 그대로 카피했습니다.

 

삼성 갤럭시S, 갤럭시탭등은 기존 애플의 제품 사진 구도를 그대로 도용하여 같은 형식으로 제품사진을 찍고있습니다.
삼성만이 제품 디자인 뿐 아니라 마케팅 광고 이미지구도까지 애플을 철저히 베끼고 있습니다.
애플의 제품 사진까지 이렇게 똑같이 찍어서 마케팅하는 제조사는 엘지, 노키아, 팬택, 모토로라 어느곳도 아닌 오직 삼성뿐입니다.

삼성은 왜 애플과 같은 구도와 편집을해서까지 제품 사진을 완벽하게 똑같이 찍어야만 했을까요?
미국에서 수년간 아이폰은 최고 인기 제품으로써 수년간 판매 1,2위를 유지하며, 삼성은 스마트폰 판매량 5위에도 못들었기 때문에 기타 제조사로 분류됬을 정도로 판매량도 적고 스마트폰에서 인지도도 없었습니다. 이런 삼성이 애플의 모든것을 베끼면서 아이폰, 아이패드의 대항마를 자처했고 현재는 이로인해 인지도가 매우 많이 올라갔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판매량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인터페이스
#A-3

아이콘의 배치방식과 아이콘 주변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태두리를 굳이 iOS처럼 만들어 채웠습니다. 특히 전화 아이콘은 삼성의 갤럭시S가 아이폰과 상당히 많이 비슷합니다.캘린더에 날짜가 표시되는 방식도 iOS와 동일합니다. 어플리케이션이 나타나는 창과, 하단에는 아이콘 4개가 올려져 있는 움직이지 않는 "도크"가 구분되어 있는 점도 같습니다.

모든 스마트폰은 다 아이폰하고 똑같은 인터페이스를 쓸 수 밖에 없다고요?
아이폰과 똑같지 않으면 어떤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도 만들 수 없다고요?



이것은 안드로이드 레퍼런스폰 넥서스원의 안드로이드 2.3 진저브레드 매뉴 서랍입니다.
어플에 씌워진 둥근 네모 배경도 없고, 아래 독도 없습니다. 아이폰의 iOS와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왼쪽부터 LG, HTC, 모토로라, 소니의 안드로이드 초기의 매뉴 서랍입니다.
어떤 안드로이드 제조사의 UI가 iOS매뉴 화면과 비슷한가요? 그 어떤 제조사도 애플의 iOS와 비슷한 UI는 없습니다. 



안드로이드 제조사들 중 오직 삼성만이 애플 iOS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카피했습니다.
아이콘 배경에 iOS의 아이콘과 같게 보이는 둥근 사각형을 씌웠고, 아래 4개의 아이콘 독까지 그대로 카피하였습니다.


아래의 아이폰 비교 평가 결과 보고서 원문 링크입니다. (134페이지부터 한글로 되어있습니다.)
갤럭시S를 아이폰3GS와 똑같이 만들려고한 증거자료로 제시한 삼성의 '갤럭시S와 아이폰 SW 비교 평가 결과 보고서'입니다.
이 문서를 보면 삼설 갤럭시S를 아이폰과 인터페이스와 UX를 모든 부분에서 얼마나 똑같이 만들려고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페키지
#B-1

아이폰 국내 출시 이후, 갤럭시S부터 아이폰 박스와 똑같은 형태로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박스 재질부터 배치 방식까지 아이폰을 베껴서 당시 최고 인기였던 아이폰처럼 갤럭시S를 똑같이 포장시켜 출시한 것 입니다.

갤럭시S2 패키지는 아이폰 패키지와 더 똑같아졌습니다.






삼성의 주장대로 패키지 디자인 인상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중요한 요소를 아이폰 패키지 디자인을 똑같이 베꼈습니다.

자존심도 없는지 애플 제품을 똑같이 베낀걸 부끄러워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베낀 패키지 디자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이폰 패키지를 똑같이 베낀걸 말이라도 못하면...




 


어떻게 베꼈냐고요? 별다른 설명도 필요없이 갤럭시S2는 제품과 포장지 사이의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것까지 아이폰 패키지와 똑같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폰의 패키지를 똑같이 베끼고 있습니다. 

이게 보편적인 휴대폰 박스 디자인 아니냐고요?
아이폰 패키지와 똑같이 만들지 않으면 어떤 폰의 패키지도 만들 수 없다고요?





갤럭시S 출시전 삼성 햅틱 씨리즈와 옴니아 씨리즈의 패키지입니다.
아이폰 패키지와 전혀 다릅니다.




다른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의 패키지도 다양하고 개성있는 패키지도 많습니다.
삼성만은 갤럭시S부터 구지 애플 아이폰 패키지를 카피해서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베낀 이유는 설명을 안해도 되겠죠.


태블릿 페키지
#B-2

갤럭시탭과 아이패드의 포장 박스입니다. 포장이 전면 하얀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 살짝 기울어진 각도의 제품 사진이 위치합니다. 그동안 삼성의 포장 방식에 주목해보면, 박스 전면에는 전면 / 측면의 두 가지 갤탭의 일러스트가 들어갔어야 합니다.

태블릿 박스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한데도 아이패드 박스와 분위기도 똑같이 만들고 박스 재질과 크기까지 거의 똑같이 만들었습니다.




내부 포장방식에 있어서도 둘 다 상자에 여유가 없는 방식으로 포장되었습니다. 갤탭이 더 길게 생긴 것 빼면 차이가 전혀 없습니다. 저기서 제품 가리고 뭐가 갤탭인지 아이패드인지 구분하라하면 일반인들은 거의 못 알아 볼 수준입니다.

당시 아이패드만이 95%의 점유율로 태블릿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인기 제품이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갤럭시탭이 갤럭시S처럼 애플에 무임 승차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아이패드를 똑같이 따라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이패드처럼 패키지 포장을 하지 않으면 어떤 태블릿 패키지도 만들 수 없다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시는분이 있으실까봐 다른 제조사들의 안드로이드 태블릿 패키지 사진을 첨부합니다.





디자인도 아이패드와 비슷합니다.

당시 아이패드가 태블릿 시장의 95%를 점유한 유일무이한 최고 인기 태블릿이었기 때문에 삼성은 태블릿용OS가 아닌 휴대폰용 안드로이드2.2 OS로 갤럭시탭을 아이패드 디자인과 분위기를 모방하여 급조하였습니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타사의 기기만을 계속 베껴서 비슷하게 만든다는 것은 국제 망신입니다. 중국만 짝퉁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삼성도 짝퉁 기기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은 국내에서 아이폰 흥행 후 mp3 제품까지 아이팟 터치 특유의 박스 포장방식으로 똑같이 베꼈습니다.
굳이 투명 플라스틱 똑같은 소재를 사용해서 케이스 모양과 배치방식까지 아이팟 패키지를 그대로 똑같이 베꼈습니다.
  
삼성은 무슨 의도로 애플을 계속 똑같이 베끼는걸까요.
왜 다른 제조사들은 애플을 베끼지 않는데 삼성'만' 모든 것에서 애플을 베끼려고 하는지는 모두 알수 있듯이 이미 세계에서 최고수준의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의 이미지와 디자인을 베껴서 마치 애플 제품 분위기처럼 포장하려는 것입니다.


악세서리 디자인
#B-3
갤럭시탭 30핀 어댑터, 애플 30핀 어탭터

애플 어댑터를 아주 비슷한 형태와 프린팅 위치와 모양까지 거의 똑같이 배꼈습니다.
젠더도 아주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굳이 애플 어댑터를 형틀 수준으로 똑같이 베껴 만든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쓸데없는 삼성에 대한 잘못된 애국심 때문에 '젠더를 만들때는 애플 젠더 모양과 똑같이 만들 수 밖에 없다'거나 
'이 애플의 젠더 디자인이 좋은데 삼성도 똑같이 만들면 어떠냐'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색이 다르면 디자인이 똑같아도 상관없다는 주의인가봅니다. 애플의 어댑터와 젠더를 형태와 모양 디자인을 완전히 배꼈습니다.
이정도면 짝퉁을 만드는 중국만 비난할게 아니라 짝퉁을 만드는 한국을 비난해야 할 수준입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은 짝퉁을 만드는 중국 기업이나 한국 기업 삼성이나 어떻게 생각할까요?


주변기기 부분에서도 삼성이 애플을 따라한 부분이 잘 보입니다.

애플 30핀과 삼성 30핀은 겉모양만 같을 뿐 실제로는 핀매열이 다르기 때문에 호환 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애플 30핀에 대항하는 PDMI라는 업계 표준 30핀 커넥터 규격이 있지만, 삼성 30핀은 PDMI와도 다른 핀배열로 호환이 안됩니다.




왼쪽은 애플 USB 케이블 광고 사진, 오른쪽은 갤럭시탭 USB 케이블 제품 사진입니다.

제품만 똑같이 베낀 것이 아니라, 판매 광고 사진까지 똑같이 제작했습니다.

제작부터 광고까지 애플의 디자인과 분위기를 그대로 도용한 것입니다. 정말 간단히 예를 들어 LG와 팬택을 보면 애플과 비슷한 것은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 많은 제조사들 중에 오직 삼성만이 이렇게 애플의 제품 디자인부터 광고까지 모든 것을 베끼고 있습니다.


충전기 디자인은 다양한 제조사마다 천차만별로 다양한데도 삼성만은 애플의 특성있는 충전기 디자인을 복사 수준으로 거의 똑같이 베꼈습니다. 이렇게 애플의 디자인을 베껴 만든 곳은 수 많은 제조사들 중에서 오직 삼성 뿐 입니다. 제품, 박스, 구성품까지 타 업체의 이미지와 디자인을 그대로 똑같이 도용하는 것은 범죄 행위입니다. 

국내의 대부분의 파워블로거들은 기업의 여러 제공들과 체험단 선정으로 이미 기업의 노예가 되버려 국내 기업에 대한 올바른 비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언론들도 기업의 광고료 때문에 삼성을객관적인 시각에서 판단하는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의 어떤 글을 보든 마치 삼성=한국 애국심인 것처럼 포장되어 삼성의 편에서 쓴 글들 뿐입니다. 이것이 객관적인 글일까요? 현재 대부분의 국내 블로거들과 언론들이 이런 상태입니다.

하지만 해외 유명 블로그들과 IT싸이트, 언론들에서는 삼성이 제품부터 악세서리와 UI까지 모조리 애플 제품들을 똑같이 베낀 것에 대한 비난글들이 많습니다. 과연 한국에는 이런 비판글들이 얼마나 있었나요? 기업들의 노예가 되버린 한국의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이런 글을 쓸 수가 없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코나타의 모바일 생활'만은 근거와 사실을 바탕으로한 객관적이고 정직한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 macgasm
#C-1

아래는 원문 번역입니다. 
삼성이 또 다시 뻔뻔하게 아이폰3G의 디자인을 훔쳤습니다.
오늘 삼성이 아이폰3G갤럭시 에이스 플러스를 발표했습니다. 이폰은 아이폰3G와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명확하게 삼성의 앞으로의 계획을 보여줍니다. 삼성의 2012년 제품 계획은? 바로 애플의 공식 위조범이 되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삼성은 국제법이나 애플의 소송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은 경쟁사들로 부터오는 창조물들의 디자인을 상업적으로 완벽하게 훔치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나는 여기 앉아서 보고있는 내 삼성TV가 누군가의 디자인으로부터 베겨져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아마 다음(구입할) TV는 삼성이 아닌 LG나 소니 아니면 다른 어떤 제조사의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아이폰3G 4년 후 삼성은 아이폰3G가 오리지널의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나봅니다. 그들이 다시 카피를 시작한 것을 보면 나는 삼성에게 너무 많은 신뢰를 준 것 같습니다.



해외 언론 Obama Pacman
#C-2

아래는 원문 번역입니다.
삼성이 애플의 아이팟 터치를 베끼다.
삼성이 2011년에 드디어  2007년에 출시된 애플의 아이팟 터치의 짝퉁을 출시했습니다.
첫 아이팟 터치는 2007년 9월에 출시됬고 사진은 2009년의 3세대 아이팟 터치입니다.
삼성의 갤럭시 4.0 안드로이드 MP3 플레이어는 2011년 10월에 출시됬습니다. 애플 아이팟 터치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삼성은 2010년의 아이팟 터치의 가격까지 베꼈습니다.
2010년의 8기가 아이팟 터치 4세대는 $229 ,10월에 출시된 갤럭시 플레이어는 가격까지 베껴서 $229로 출시됬습니다.
삼성에겐 안타깝께도 10월 출시 직전인 9월, 애플에서 아이팟 터치의 가격을  $199로 인하했습니다."



해외 언론 9TO5Mac
#C-3

http://9to5mac.com/2011/09/24/oh-samsung-you-are-making-this-too-easy/  

아래는 원문 번역입니다. 

Oh Samsung, you are making this too easy.

오 삼성아, 넌 너무 쉽게 만들고있어.

삼성의 상당히 인상적인 갤럭시S2를 사용해보다가 USB 어댑터가 "비슷하다"는걸 느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니 모든 방향으로 밀리미터의 차이내로 똑같은 복제품이더군요. 특히 삼성의 예전 어댑터 디자인과 비교해본다면 말이죠.



이건 아이폰 충전기를 베끼기 이전의 미국 갤럭시 충전기입니다. 삼성은 기존까지 이렇게 작게 충전기를 만들다가 갤럭시S2부터 애플과 똑같은 덩치 큰 모양의 충전기를 만들어서 오히려 더 무겁고 불편해졌습니다.



해외 언론 GIZMODO
#C-4

http://gizmodo.com/5845036/samsung-has-like-totally-never-copied-apples-designs/gallery/1 


아래는 원문 번역입니다. 
삼성은 전혀 애플을 베낀게 절.대.로. 아니라니까.
애플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베꼈다고 생각하지만 삼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그리고 애플은 하늘이 파랗다고 생각하고 삼성은... 그냥 농담이었어요. 두 회사 뭔가 "우연의 일치"가 있는 모양이지만 (법정에서) 삼성을 좋게 봐줄것 같지 않네요.






삼성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훨신 앞서있던 애플의 이미지를 훔쳐 무임승차하기 위해 대항마를 자처하며 제품 디자인, UI, 악세서리, 마케팅까지 모든 부분을 베꼈습니다. 분명 베낀건 베낀것입니다. 안베낀 것을 베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일방적인 비하와 근거자료와 사실을 바탕으로한 일리있는 지적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스마트폰이라는 한정된 카테고리에서 디자인은 우연히 비슷할 수도 있는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특정 제조사만을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끊임없이 똑같이 베끼는 행위는 분명한 범죄입니다. 어쩌다가 아니면 일부분을 한두번쯤 베낄 수도 있다고 칩시다. 어차피 같은 카테고리의 제품들이기 때문에 제품 패키지가 비슷할 수도 있는겁니다. 모서리가 둥근 부분이 어쩌다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거나 베젤 부분이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거나 아니라면 고의적으로 한두번쯤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 정도는 괜찮다고 볼 수 있을것입니다. 저도 그런것까지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도를 넘어서 수년간 애플의 모든 것을 고의적으로 끊임없이 베끼고 소송이 진행 된 이후에도 계속 베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와서 소송에서는 모든 것을 베낀게 아니라고 거짓말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애플도 타사의 제품이나 아이디어를 쓴적은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삼성처럼 하나의 기업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베낀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애플이 모든 제품을 새로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제품의 시초가 누구인지 전부 다 알아내고 판단하는 것은 힘듭니다. 애플이 뭐든 다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못뜨고 있던 제품들을 애플이 활용해서 띄웠다고 하는것들이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애플이 뭔가를 창조했든 안했든 원조든 아니든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 애플의 것들을 끊임없이 베낀것인가에 대한 것을 근거 자료와 함께 알아본 것입니다. 또 '타사의 제품을 베끼는 것이 범죄가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라는 잘못된 의식이 만연한게 안타깝습니다.

요즘 삼성은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 같은 독창적인 최고의 제품들로 세계시장에서 흥행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제품들로 정당하게 승승장구 했으면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칩니다.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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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일 대졸 취업률은 98%,  한국은 59.9%일까?  
 
    
올해 한국은 대학졸업자의 평균 취업률은 59.9%, 10명 중 4명이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고 한다. 이에 반해 독일 대졸 취업률은 98%,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할 수 있다. 
  
독일의 대졸자 취업률이 한국보다 현격히 높은 이유는 단순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


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 기업이나 국가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대졸인력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독일 학생의 대학진학률은 40-50%사이다. 이수치도 최근에 전개된 일련의 교


육개혁(13년에서 12년으로의 초중등교육 기간 축소 등 )과 징병제 폐지의 결과로 상향된 


것이지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 입학할 당시만 해도 진학률은 40%에도 미치지 못


했었다. 
  
이 입학 인원도 모두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중도에 대학을 떠난다. 과거에


는 중도 포기율이 50%에 육박했었으나 최근들어 졸업생이 증가하는 추세고 예전보다는 


상황이 약간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재 같은 연령대의 독일국민


의 대학졸업율은 30%도 못되는 셈이다. 외국인을 제외한 순수한 독일인 대졸인구는 18%


라고 한다. 
  
독일국민은 무식하다. 그런데 무식하다고 함부로 말싸움 걸다가는 된통 당한다. 학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제대로 경험할 것이다. 나도 지식인과 학벌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독일와서 처음 알았다.^^ 
  
독일과 비교했을때 한국 대졸자의 취업률이 낮은 이유는 80%가 넘는 진학률과 높은 대졸


자 비율로인해 나타난 당연한 결과다. 


  
둘째, 여전히 독일은 아우스빌둥(직업교육)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분야에 대졸자가 포진해 있지 않다는 의미와 같다. 또 거꾸로 해석하면 대


학을 졸업한 사람이 전공 지식과 관계없는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 간호사, 유치원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 특별히 대졸 학


력이 필요한 전문 분야를 제외한 은행원,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대학졸업자는 소수고 대


부분 아우스빌둥 출신이다. 
  
당연히 기업이나 정부기관도 불필요한 학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학력보다는 그 사람이 


종사해야 할 분야가 무엇인가에 따라 인재를 채용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직업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독일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언론사 기자도 있다. 정보조사하고 취재해서 글로써 정리


하는 일이 반드시 대학을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기자의 경우 대


졸자가 많기는 하겠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 언론인을 양성하는 특수직업학교에서 교육받


고도 기자로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셋째, 한국 대졸자의 비율을 높이는데 한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대학, 독일에서는 


한국의 전문대학에서 취득하는 전문가 자격은 대부분 아우스빌둥 직종이다. 
  

한국 사람들은 독일의 파흐호흐슐레를 보통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하지만 파흐호흐슐레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식의 전문대학은 아니다. 
  
지금은 독일도 학사 제도가 생겨났지만 과거 대학졸업은 모두 석사였다. 대학을 입학하


고 졸업했다는 말은 석사자격증을 소지했다는 의미다. 그때 파흐호흐슐레는 석사까지 하


지 않고 3-4년 안에 단기로 대학을 졸업하는 취업을 위한 실무지식 위주의 대학과정, 즉 


한국식의 학사과정이었다.  
  
여하튼 한국의 전문대학졸업자의 수준은 정확히 독일과 비교하면 아우스빌둥(직업교육) 


3년을 마치고 1년 정도 현장경력을 쌓은 전문가 수준으로 보면 된다. 이 연령대가 대학 1


년차와 같다. 
  
그러나 직업현장에서의 전문성은 한국 전문대학 졸업자와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직장을 우선으로 하는 아우스빌둥 3년을 마치고 같은 계통에서 1년 동안 일했다는 것은 


이미 그 분야의 베테랑으로 인정받는다. 2년만 경력을 더 쌓으면 마이스터에 도전할 수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독일은 아우스빌둥이 확실한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진학률이 한


국처럼 높지 않을 수 있고, 대졸자 취업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http://pssyyt.tistory.com/612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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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정책을 알리고 전하기 위한 추모-기념사업을 주관하는 재단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2009년에 설립된 노무현재단은 전직대통령 기념재단치고는 활발하면서 많은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재단입니다. 

특히 노무현재단 홈페이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그의 가치와 정치 철학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봉하마을과 함께 온라인에서 노무현 대통령 관련 글과 동영상,사진뿐만 아니라 정치 관련 토론도 이루어지는 웹사이트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노무현재단 홈페이지가 공공기관에서 차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뉴스1은 8월 23일 기사를 통해 울산은 물론이고, 서울,부산,인천,대전,대구,광주 등 7대 광역시 구청이나 공공기관 컴퓨터에서 노무현재단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노무현재단 홈페이지가 문제라면 박정희기념사이트,어린이 회관도 막아야'

노무현재단 홈페이지를 공공기관에서 일부러 차단했다면,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향수를 막겠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의도적으로 노무현재단 홈페이지를 차단하는 것 자체가 선거의 중립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 대선 후보들과 지지자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은 야당의 정치적 활동을 정부가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나선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기념사업회 홈페이지


MB정부가 정말로 공무원의 중립을 운운하면서 노무현재단 홈페이지를 차단했다면,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홈페이지는 더욱더 차단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지금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박정희기념사업회 홈페이지는 공공기관에서 아예 접속시키면 안 됩니다. 


▲육영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회관 홈페이지

 
박정희기념관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어린이회관 홈페이지도 공공기관에서는 접속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린이회관을 운영하는 곳이 육영재단이고, 현재 육영재단 홈페이지에는 육영수 여사 사진전을 비롯해 박정희의 사진도 버젓이 올라와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와 노무현 대통령 모두가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재단의 홈페이지가 공공기관에서는 접속불가라는 사실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된 언론탄압'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온라인상에서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너무나 태연히 자행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게 있건만, MB정부는 온라인에 올리는 글과 특정 사이트에 대한 삭제와 폐쇄,접속 차단을 수천 건씩 해버렸습니다.


2008년 5월부터 12월까지 경찰청은 1,061건,국정원은 632건의 도합 1653건의 글을 삭제해달라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 방통위는 1653건의 시정요구를 지시했고, 포털 등의 사이트에 올라갔던 심의대상 게시글 전부가 삭제됐습니다.
 
알다시피 2008년 5월은 촛불시위가 처음 열리던 시점이었고, 당시 촛불집회에 관한 글은 포털 사이트에 매일 빠지지 않고 올라왔습니다. 여기에 MB정권은 취임 이후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는 식으로 그를 왜곡하고 촛불시위를 반정부집회로 규정하고 탄압했습니다.

MB정권은 온라인에 게시되는 글 중에서 MB정권을 반대하거나 노골적인 비판을 가하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사유로 마음대로 삭제해버렸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SNS까지도 사이트 폐쇄 와 접속 차단을 요청했습니다.

▲ 트위터에 올린 글을 삭제해달라는 경찰청의 공문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믿지 못해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합동조사단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통신으로, '1번 찍으면' 이라는 문구를 가지고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사이트 폐쇄 또는 접속을 차단해버렸습니다.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그 자체가 명예훼손이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치졸한 복수'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봉하로 내려갔을 때부터 MB정권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복수의 칼날을 들이댔습니다. 정치 검찰의 수사는 물론이고, 그가 죽은 뒤에는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공연을 부탁해 온 노무현 재단의 양정철 사무처장에게는 차마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를 연출하고 안장식 추모문화제 ' 잘가오 그대'를 거들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위협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그 구체적인 위협이 나뿐 아니라 내가 연출한 공연의 출연진에게 더욱 비열하게 자행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래, 나는 두려웠다. 

이제 겨우 자리잡아가는 알량한 연출가의 이력에 '친노'니 '좌빨'이니 진보니 하는 빨간 줄이 그어질까 두려웠다. 박원순이나, 진중권이나 아니 윤도현이나, 김제동조차 한 방에 날려 보내는 저들의 비열하지만 무시무시한 힘이 무서웠다. 

처음에는 뭐 그깟 공연 하나 연출한다고 그리 대단한 위협이 있을까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익명의 촛불집회 참석자들까지도 색출해내는 저 놀라운 수사력과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조차 틀어막으려는 노력, 이유 없이 취소되는 몇 건의 공연계약과 아예 대놓고 "이제 같이 일하시기 어렵겠네요" 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일들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버젓이 자행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연출가 탁현민교수)


노무현대통령님을 추모하기위해 시민들이 "노무현재단 후원의밤"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곳에서 정치색을 이유로 보이콧을 당했습니다 겨우 덕양종합복지관에서 오케이를 받아 초청가수도 섭외하고, 프로그램도 만들고, 홍보도하고, 야심차게 준비중이었는데.. 

어제 저녁 갑자기 대관이 안된다는 겁니다 고양시에서 압력이 들어와서 고양시로부터 지원을 받는 자기네는 어쩔수가 없다네요 .헐~~공연 딸랑 하루 앞두고..^^;;; 애들 장난합니까??  (노무현재단 자원봉사자)


이런 사례는 지난 몇 년간 부지기수로 나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하다는 이유로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콘서트가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시사] - 김제동 콘서트 취소, 문재인 죽이기의 시작?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사람들은 '바보 중의 바보'라고 놀려댔습니다. 대가나 특혜를 받지 않았지만 그는 2003년,2006년,2009년 세 번이나 검찰에 구속됐고,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과의 의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2009년 5월 강금원 회장은 뇌종양을 이유로 보석을 청구했지만, 검찰이 반대해 결국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지난 8월2일 노무현 대통령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 경찰에 짓밟힌 노무현 대통령 시민분향소 출처:오마이뉴스



지난 2009년 5월3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와 천막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분향소와 천막을 강제 철거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죽은 사람을 기리는 장소를 군화발로 짓밟지는 않습니다. 있다면 독재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나라에서나 이루어지는 사건일 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간 스스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 누군가를 좋아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그리워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MB정권을 보면, 과연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http://impeter.tistory.com/1947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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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명박 독도행차 완전분석

2012. 8. 13. 월요일
물뚝심송

 

칭송하라, 가카의 무한한 령도력을…

 

 

무엇보다도 먼저 반성한다. 우리가 그 동안 너무나 소홀했었다. 해방이후 건국 65년 이래, 아니 단군왕검이 신시에 나라를 세운지 5천년이래, 가카만큼 위대한 령도자가 또 어디에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끄러운 세상사의 홍진에 묻혀 가카에 대한 찬양을 잊고, 박씨성 가진 일개 공주의 일거수 일투족에 현혹되어 온 세월, 그 세월을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가카께옵서는 황송하옵게도, 과감하게 우리 민족의 본거지인 한반도의 동쪽 끝, 동경 백 삼십일 북위 삼십칠, 평균기온 십칠도 강수량은 천삼백인 독도에 친히 납시어 세계 만방에 독도의 존재를 알리고, 가카의 령도력을 과시하신 거시었다.

 

세상이 안팎으로 시끄럽고 우매한 무리들은 가카의 깊은 뜻을 몰라보고 사사건건 쪼잔하게 물고 늘어지기나 하는 이 마당에 가카의 큰 뜻은 그저 국내의 정국을 평안하게 이끄는데에 멈추지 않으신 거시었다. 좁디 좁은 우리의 사회를 벗어나 니뽕국 정세까지 두루 살피시는 가카의 은덕, 이 어찌 칭송하지 않을 손가.

 

이에 우리는 가카의 깊은 뜻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우리가 직면한 작금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경건한 시간을 갖기를 엄숙히 요구하는 바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빙자한 눈길 돌리기형 공짜유람 생쑈는 사실 무척이나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국내 거의 모든 메이저 언론사가 사설로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분석해낸 곳이 단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군소언론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이에 뽕빨 정신을 모토로 하는 국내유일의 민족정론지, 딴지일보가 이 문제를 뒤벼주지 않는다면, 과연 니들은 어디에다가 그 궁금증을 호소하겠냐는 말이다. 이에 푹푹찌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본지의 모든 취재력과 분석력을 총동원하여 연인원 육천구백육십구명의 전문 연구인력을 동원하는 척 하면서 본 정치부장 혼자 쎄빠지게 고생하면서 써내려간 분석을 게재하는 바이다. 가카를 칭송하기에 앞서 일단 딴지를 칭송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일제히 한번 외쳐보자. 졸라~

 

독도는 단순히 동해 울릉도 옆에 있는 바위섬 두 개가 아니다. 독도는 상징이며,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도를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그 역사적인 존재인 독도를 사이에 두고 한일 양국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서로 눈치를 봐가며 물밑에서 기싸움을 전개해 왔다. 이 양국의 치열한 물밑 투쟁은 바로 한일외교의 밑바탕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독도문제에 어느 한 쪽 나라의 정상이 모종의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것은 바로 그 외교전의 형상을 상징하는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독도는 한일외교의 상징적인 존재도 된다.

 

거기에 보통은 빠트리기 쉽지만 아주 중요한 “외교의 또 하나의 측면”이 숨어 있다. 외교는 타국과의 관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일체의 국제적인 교섭과정이라는 기본적인 해석의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면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집권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국내 정치의 어려움을 유발하는 일반 유권자들의 비판적인 시선을 민족감정이나 국가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면서 외부로 돌리는 “시선끌기” 목적의 교란행위가 외교 판에서는 흔히 벌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라는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도를 둘러싼 문제는 물론이려니와 양국의 내부 정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First things first. (오늘 영어 쫌 된다.)

 

제일 먼저 독도 그 자체에 관한 문제를 정리해 보자.

 

그 동안 우리가 접했던 모든 주장과 논리들은 우리 측의 입장이었고,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사태 파악이 힘들다. 따라서, 이번에는 우리의 입장보다 일본의 입장을 위주로 정리해 가면서 상황을 이해해보자.

 

독도가 역사적으로 조선의 영토였고, 조선의 뒤를 이은 대한제국의 영토였음은 일본측에서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1905년에 일본 시마네(시네마가 아니다. 이거 졸라 헷갈리지만 시마네가 맞다.)현에 편입되게 된다. 물론 이 편입과정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 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는 과정과는 별도로 다만 동해상에 있는 이름도 없고 주인도 없는 바위섬을 자신들의 행정구역에 편입시킨 정상적인 행위였다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국제법상으로도 이 편입조치에 대해 한국정부(물론 당시에는 대한제국 조정)가 항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의 조치가 정당했음을 강변하고 있다.

 

거기에 이어,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주도로 작성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아주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 외무성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페이지를 보자. 놀랍게도 한국어로 된 페이지도 존재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다케시마 문제의 개요" 보러가기]

 

제 6항에 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작성과정에 대해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일본이 독도가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가장 중심적인 이유가 되는 부분이다.

 

이 과정을 좀더 쉽게 설명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일제의 강점기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해 종료되면서, 일본이 강제로 점령해오던 영토들을 반환하는 내용이 연합국들이 모여 작성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포함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 와중에 울릉도, 거문도, 제주도 이런 곳들은 모두 명시되어 반환하기로 확정되었지만, 독도는 거기서 빠졌다는 것이다. 왜? 빼앗은 땅이 아니라 원래 일본의 영토였으니까.

 

그러나 그 과정을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 역시 단순하지가 않다. 조약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1-5차 초안까지는 분명히 독도가 반환해야 할 조선의 영토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6차에서는 독도가 빠진다. 7차에서는 또 들어가고, 8,9차에서는 다시 빠진다. 그 때 이미 독도는 연합국들 사이에서도 혼란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영국이 다시 초안을 작성하게 되고, 이 영국의 초안에는 독도가 또 명시된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영미합동 초안이 작성되고 이 초안으로 확정되게 되는데, 거기에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청구권을 포기한다" 라고 결정된 것이다. 독도는 문구에서 빠져버렸다.

 

호사카 유지 교수

 

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계 한국인이자 세종대학교 교수인 호사카 유지의 <대한민국 독도> 라는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조약 최종안에 독도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연합국의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도가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고 누락된 이유로 호사카 교수는 당시 미국의 일본정치 고문관이었던 "윌리엄 제이 시볼드"를 지목한다. 일본을 사랑하던 이 친구가 사이에서 장난을 치는 바람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시볼스러운 고문관 같으니라구.

 

물론 그렇게 독도의 반환이 명시되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게 된 우리 정부가 독도를 다시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결정적으로 당시 주미한국대사관은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일본명 다케시마가 독도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우리가 전쟁중이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교부…. 넘어가자.

 

결국 미국은 "러스크 서한" 이라는 것을 보내게 되는데, 미 국무부 극동지역 보좌관 딘 러스크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문구에 독도를 명시해 달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에 대해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담아 보낸 편지가 된다.

 

이 편지의 내용(번역본이다.)은 여기를 참조하시라.

 

[위키피디아 : 러스크 서한 보러가기]

 

이 편지 역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내용과 더불어, 미국 측에서 독도가 일본에 귀속되어 있는 섬이라고 "인정"을 했다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전후 반환해야 할 영토 목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독도를, 미국도 일본의 시마네 현의 일부로 인정한 독도라는 섬을, 한국 정부가 임의대로 불법 점거하고, 일본 순찰선에 총격을 가하고 (1953년 이승만 정부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 내무부가 독도에 경비 병력을 파견하고, 현재까지 각종 시설을 구축하며 장악하고 있으며, 이런 불법행위가 벌어질 때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 이런 한국정부의 행동이 불법적인 것임을 다각도로 호소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럴싸 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택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논리적 전개과정에는 이미 곳곳에 헛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메이지 정부가 1877년 발표한 "태정관 지령문"에서 이미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 문서는 일본정부가 지금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태정관 지령문

 

이 태정관 지령문의 존재는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1905년의 “주인 없는 섬이어서 시마네 현에 편입했다”는 조치 자체를 완전 구라로 밝혀주면서 그 자체가 침략행위였다는 규정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미 주인이 있을뿐더러 그 주인이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을 자기들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거든.

 

또 대한제국의 조정, 고종이 이 시마네 현 편입조치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이 시점, 그러니까 편입이 벌어진 1905년에서 겨우 2년이 지난 1907년 고종은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으며 침략 과정에서 체결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포한 것이다. 목숨 걸고 항의했다니까. 그 덕분에 고종은 일제에 의해 쫓겨나고 순종이 즉위하기까지 했잖은가 말이다.

 

물론 해방 직후 전쟁 와중의 혼란한 과정에 주미한국대사가 멍청해서 독도가 어디 있는 섬인지도 몰랐다는 거 미안하고 쪽팔린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개 대사관의 서기관이 무식하다 해서 영토권을 빼앗겨야 할 이유는 없다.

 

이 모든 독도에 관한 사건들이 상황을 애매하게 만들면서 일본이 독도가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게 되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일본의 주장 하나하나에 우리가 코멘트를 달면서 반박을 하게 될 경우, 일본의 주장은 정합성을 잃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되었거나 독도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지 않은가 말이다. 이게 사실이잖아.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독도 문제로 아직도 골치를 앓고 있게 된거다.

 

현실로 돌아와서 보자면, 독도문제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침묵의 전략"파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 논리는 이런 것이다. 내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그게 내 돈이라고 자꾸 사람들에게 떠들면 오히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3.1절 기념식장에서 "내 옆에 있는 여자가 내 부인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는데, 굳이 사람들에게 이 여자가 내 부인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표현으로 이런 취지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표현하자면, 독도를 사실상 실효지배 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독도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은 별로 유리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나하나 대응을 하다보면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선포되고, 결국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게 되면 일본의 국력이 우리보다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심지어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사들 중에도 일본인이 있는 상황에서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주장이 된다.

 

이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정답이 아니무니다"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맞다. 이 사실은 독도 문제를 대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우리는 독도에 경찰 병력을 상시 주둔시키고 있으며, 독도에 호적을 두고 있는 사람도 훨씬 더 많다. 우리측은 1,000여명이 독도에 호적을 두고 있으며, 일본은 26명만이 독도에 호적을 두고 있다. 실제로 독도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김성도, 김신열 부부 2명이 독도에 주소를 두고 있다.

 

이런 현실 자체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매우 강력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끄럽게 굴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 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사실상 일본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수 없으며, 그 사실을 우리보다 일본이 더 잘 알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때문이다. 그 때 이미 일본 내에서는 이 한일기본조약으로 인해 독도에 관련된 영토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는 분석이 아사히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조약 내용에 양국간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양국간의 외교노력 또는 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문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파기해야 한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전직 국제사법재판소의 판사출신인 오다 시게루에 의해서 제기되기도 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규정상,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를 제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국제사법재판소의 "의무적 관할"을 수락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이 필요한 독자는 아래의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국이 합의하지 않으면 독도문제 국제 재판 불가능하다" 문서 보러가기]

 

두 경우 모두 명확한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독자적으로 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걱정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침묵의 전략을 가져가는 이유가, 일본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우려 때문이라는 부분은 잊어 버리자.

 

그러면 왜 일본은 툭하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설치는 걸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제소 얘기는 또 나왔다. 그거, 국제사법재판소로 가고 싶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계속 자신들의 주장을 지속함으로써,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불법 지배라고 항의하는 기록을 남기게 되기도 하는 거고.

 

그래봤자 우리 입장은 언제나 “그러거나 말거나” 면 충분했다. 하지만 가카의 청와대는 또 이번에는 거창하게 “거부”했다. 거부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을 거창하게 “거부”했다는 뜻이다. 가카가 하는 일이 매번 그렇듯이 쇼에 불과한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한가지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이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거기에 실효지배는 우리가 하고 있다. 급한 건 일본 측이다. 지속적으로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해도 실효지배기간이 50년 넘어 백년으로 이백년으로 지속되게 되면 사실상 일본은 갈수록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왜냐면 우리는 앞으로도 독도를 둘러싼 영해문제나 경제수역 문제로 끊임없이 일본과 협상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독도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 말이다. 단순히 물고기 좀 잡는 수준이 아니라 독도 근해에서 해저자원이라도 발견되는 순간 이 문제는 다시 국제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독도는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한일 양국 간의 밥줄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독도 주변의 해저에는 다량의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있는 것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

 

그래서 일본이 그렇게 여론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직접 독도가 자기네 영토인 이유를, 그것도 심지어 한글로까지 정리해서 게재해 놓고 여러 선진국에서 물밑으로 강력한 홍보전을 전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독도가 쓸모없는 바위섬 두개라면 이럴 이유가 없잖은가.

 

결국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생겨 버린다. 바로 여론전이다. 독도에 관련된 일본 측의 주장을 하나하나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을 담은 문건이라도 만들어서 전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크라는 단체도 활동중이고, 김장훈 같은 사람도 있고 말이다. 부족하긴 해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여론전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한참 밀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다수의 지식인들은 이미 "역사적으로는 독도가 한국의 땅이겠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일본의 것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정도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걸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이 직접 나서서 독도를 방문하는 것은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이 더 강하다. 단순하게 독도만을 놓고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쉽게 표현해서 돌려막기와 유사한 "땡겨쓰기" 라고 볼 수 있다. 독도가 분쟁지역이라고 해도 우리 입장에서는 직접 현직 국가원수가 나서서 독도에 발을 딛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교기법이기 때문이다.

 

정상급의 독도 방문은 아주 큰 카드이다. 일본이 독도에 관해 매우 중대한 도발을 감행 했을 때 그에 대한 상징적인 대응으로 할 수 있는 중요한 비장의 카드가 된다. 이 카드는 일본은 쓸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일본의 의원 몇이서 독도에 상륙하겠다고 설치다가 우리가 가볍게 눌러준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측의 잇점이다. 이 카드를 꺼낼 경우라면, 일본의 중대한 도발이 있어야 하고, 향후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외교적 맥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맥락이 전혀 없이 (물론 맥락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뒷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추정 가능한 다른 맥락에 관한 내용이 나올 예정이다.) 느닷없는 기습 방문이 벌어진 것이다. 이 건은 이걸로 묻힐 공산이 크다. 일본에서야 대사를 소환하고 난리를 치는 척 하겠지만, 국제적으로 일본이 할 대처방법도 없고, 뭔가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해야 하는 협상도 없고, 아무런 타겟이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명박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혀 필요한 때도 아닌 시점에 뜬금없이 매우 중요한 카드 한장을, 그것도 나중에 진짜 중요한 순간에 써야 할 카드를 땡겨서 써 버린 셈이 된다. 차후에 진짜 국가 원수의 독도 방문이라는 상징성이 필요한 시점이 오게 될 때, 그 때 대통령이 독도를 간다 해도 충격효과가 없어져 버린다. 그거 전에도 아무 일도 없이 이명박이 한번 왔었잖아. 그게 뭐? 이런 반응만이 오게 될 것이다.

 

뭐 이게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이미 역시나 아무 맥락도 없이 총리를 독도에 보낸 적도 있다. 마구 땡겨 쓰는 거지 뭐.

 

그렇다면 도대체 이 맥락없는 우리의 대통령은 왜 지금 독도에 간 것일까? 뭐가 급해서 차기 정권에서 중요하게 쓰게 될 지도 모르는 외교적 카드를 막 땡겨서 쓰고 있는 것일까?

 

일본외무성

 

이유가 있다. 독도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기나긴 독도의 역사를 읽어 오시느라 무척 고생하셨겠지만,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힘들 내시라.

 

바로 우리가 흔히 잘 모르고 있는 일본의 국내 사정이다.

 

일본은 망해가고 있다. 정말이다.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일본경제는 수십년에 걸친 장기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으며 만성적인 적자재정은 일본의 부채비율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밀어 올리고 있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외채가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일본은 모라토리엄 선언이라도 했어야 할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레임덕에 몰렸다고 말들이 많지만 일본의 현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레임덕 수준이 아니라 멱살을 잡혀 끌려 내려올 분위기에 몰려 있다.

 

OECD 자료에 의하면 2010년 기준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이 200%에 달하고 있으면 2012년 말 240%에 육박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도 뭐 가카 덕분에 만만치는 않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이미 사실상 국가부도 상황에 빠져 유로존을 탈퇴하네 마네 하고 있는 그리스도 190%가 안되는 수준이다. 제아무리 일본인들이 엄청난 규모의 외환 보유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 매년 해외교포의 국내 송금액 수준이 장난이 아닌 국가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일본도 확실히 안전하지 않은 수준이다.

 

일본의 올해 예산이 90조엔을 넘어가는데, 이중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비율은 절반도 안된다. 나머지는 모두 국채 찍어서 메꾸고 있다. 거기다가 그 찬란했던 무역의 왕, 산업기술의 제왕, 수출의 강국 일본이 엄청난 규모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작년 한해 2조 5647억엔의 무역적자를 봤고, 올 상반기만 해도 2조 9158억엔의 무역적자를 봤다. 우리나라 돈으로 43조원이다. 이 추세로 나가면 일본은 올 한해만 6조엔이 넘는 무역적자를 보게 된다. 이런 무역적자가 지속된다면, 가뜩이나 높은 국가부채 비율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해일로 인한 원전의 붕괴 및 방사능 오염, 만성적인 전기부족, 이 모든 문제들이 일본 사회의 미래에 두꺼운 먹구름을 씌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증세뿐이다. 최소한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 부도는 막아야 되지 않는가 말이다. 일본은 무한 달러찍기 신공을 가진 미국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이유로 파격적인 증세 법안이 참의원을 최근에 통과했다. 그 결과로 2014년, 2015년 연속으로 소비세가 파격적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현행 5%에서 2014년에 8%, 2015년에 10%로 인상되게 된다.) 그러나 이 불가피한 증세는 바로 집권층에 대한 지지율 격감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국가 부도를 막기위한 불가피한 일이라 해도, 유권자는 그런 사정 봐주지 않는다. 1997년 소비세를 3%에서 5%로 겨우 2% 인상시킨 호소카와 내각은 8개월을 못가고 붕괴되고 말았었다.

 

노다 총리는 결국 야권의 압박에 밀려 조기총선실시까지 약속하고 말았다. 조기총선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민주당 내각은 붕괴하고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는 이미 차기 수상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가 박근혜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민당이라고 해 봐야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일본이 처한 상황은 정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거기다가 민주당의 소비세 인상안은 이미 오래전에 다니가키가 주장하던 내용이었다는 점도 있다. 거기나 여기나 정치인들의 딴소리 신공은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다니가키의 주장은 민주당은 원래 소비세 인상안을 반대했으니 그런 정책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면 괜찮고?

 

하여간 우리가 가카의 시대를 겪어내며 인내심의 극한을 경험하는 동안 일본의 유권자들은 이미 멘붕을 넘어 거의 해탈의 경지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점이 쉽게 예측된다. 축구도 깨지고…. 좀 불쌍하기 까지 하다.

 

자, 이 상황에서 당신이 일본의 수상이라면 어떤 방법을 쓰겠는가?

 

그렇다. 바로 시선 돌리기 수법이다. 지금 세금 몇푼 올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우리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쓰기 제일 좋은 수법은 바로 총풍이다. 북괴의 위협이 코앞에 있고, 심지어 휴전선에서 총까지 쏘고 지랄인데, 지금 선거에 누굴 뽑아야 되는거냐는 질문… 이거 효과 직빵이잖은가.

 

그런데 일본에는 북한이 없다. 대신에 바로 옆에 남한이 있다. 그 남한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우리 일본의 땅임에 틀림없는 독도에 사상 처음으로 직접 방문해서, 바위에 새겨진 “한국령(韓國領)”이라는 글자를 쓰다듬고 있단 말이다.

 

사진 : 한겨레신문

 

이 사건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시선끌기의 소재가 된다.

 

표면적으로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을 듣자 마자 항의를 하고 하지 말라고 말리고, 대응 조치로 대사를 소환하고 난리를 치겠지만, 내심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일이 된다.

 

물론 이 이명박의 독도 방문 사건을 일본 정국 내에서 향후 어떻게 키워서 우려먹을지는 일본의 집권팀이 하기 나름이다. 군국주의의 열풍을 불러 일으켜서 군수산업을 키우거나, 아니면 그저 반한감정으로 대동단결을 외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잠깐의 모면책으로 활용하고 버리거나… 알아서 하라 그러지 뭐.

 

이게 일본의 참담한 속사정이다.

 


 

그러면 우리의 속사정은 어떨까?

 

가장 큰 테두리에서는 가카의 레임덕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카의 국정지지율은 급감하고 있으며, 이제는 무슨 일을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총선 과정에서도 친박진영에서 청와대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언론을 피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리가 흘러 나올 정도로 가카의 입장은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향후 4-5개월 남은 시간, 가카가 숨이라도 쉬고 살려면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긴 했던 시점이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면 너무나 게으른 분석이겠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이슈는 바로 지난 총선과정에서 있었던 친박 진영의 공천뇌물 파동이다. 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름도 헷갈려 죽겠는 이 사건, 처음 나오자 마자 정가에는 친이계가 친박계를 치기 위해 푼 떡밥이라는 루머가 쫙 퍼졌었다.

 

그러면, 친이계가 친박계를 치기 위해 큰 사건을 하나 터트렸는데 그 시점에 느닷없이 친이계의 수장이 독도를 방문해서 물타기를 한다? 이건 앞뒤가 안 맞는다. 거기에 사건의 파급효가 자체가 꽤 커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정도로 묻히기 힘들다는 평가를 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독도 방문 사건 이후로도 공천뇌물 사건은 별로 묻히지 않고 언론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독도 방문 이벤트는 공천뇌물 사건을 덮기 위해 급조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뭘까?

 

기본적으로 올림픽을 통해 애국심 열풍이 불고 있고, 거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 열기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도로 읽어 줄 수도 있다. 거기에 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권에 진입한 한국 국대 축구가 일본과 동메달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시점이었다.

 

이기거나 지거나, 일본이 화두로 떠오를 시점이었다. 거기에 대통령이 직접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르며 독도를 방문해서 외로운 독도 경비병과 악수도 하고, 거창하게 해군 호위함도 동원하고 헬기타고 오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후를 생각지 않는 급조된 이벤트는 국가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삼만 팔천 광년 정도 앞에 두고 살아가는 가카의 스타일에도 아주 잘 맞는다.

 

어찌되었거나, 가카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한번 시도해 볼만한 이벤트였다는 점은 충분히 추정가능하다.

 


 

결국 그런 것이었다.

 

독도문제만을 생각한다면, 이명박의 독도 방문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에도 미국은 이런 이명박의 행동에 대해 간접적인 불쾌감을 표현하고 있다.

 

[교도통신 "美, “독도는 우리 땅”…韓 주장 지지 안해" 보러가기]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은 독도 문제에 한해서는 엄정한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하지도 않지만, 한국의 영토라고 확인해 줄 수도 없다는 태도이다. 거기에 추가하자면, 한일 양국이 돌출행동을 통해 이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이 독도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미국은 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울릉도, 거문도, 제주도 옆에 독도라고 한 단어만 더 써놨어도 이런 골치 아픈 문제는 안 생기는 일이었다는 거다.

 

그러니 미국은 무조건 이 문제가 물위로 떠오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다. 그러니 이번 이벤트로 인해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줄 일은 없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독도 문제에서 우리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장기적인 손실은 가카는 전혀 신경 안 쓴다.

 

거기에 앞에서도 나온, 미래에 어느 시점에 써먹어야 할 카드를 땡겨 써 버린 측면이 있다. 분명한 결론은 독도에 관련된 국익의 문제에서는 이번 가카의 이벤트가 절대적으로 손해가 나는 일이지 결코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가카에게는 이런 문제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자기 임기 끝나면 독도는 자기하고 아무 관계없는 일이거든.

 

중요한 것은 두가지 문제다.

 

일단 일본이 원하고 있다. 일본 전체가 아니라, 현재 일본의 집권층인 민주당 정권이 원하고 있다. 여기서 감히,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청와대와 일본의 노다 총리 사이에 직접적인 이해 조율이 있었다는 소설은 쓰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애타게 원하던 꺼리를 만들어 준 것임에는 틀림없다. 사전에 교감이 있었건 없었건 이 이벤트가 일본의 국익에는 별 관계가 없지만, 일본의 현 집권층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역시나 일본의 언론들은 이 문제로 발칵 뒤집어 지고 있다.

 

거기에 우리 국내의 정국, 특히 그 중에서도 가카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국가 이익말고 아주 일부의 사람들 말이다. 레임덕도 약간 완화시켜 줄 수 있고, 애국열풍도 강화할 수 있다.

 

이 두가지 잇점만 해도 챙길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거기에 아주 중요한 특별부록이 하나 더 숨어 있는 것이다.

 

너무 많아서 독자들이 기억도 잘 못하겠지만, 큰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청와대 1제1부속실장 김희중. 대통령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직책을 맡고 있다던 김희중 말이다. 저축은행 관련 비리로 잡혀 들어가면서도 국가와 국민에 사죄를 하기는커녕, 자신이 모시던 주군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개수작을 떨고 끌려 들어갔던 김희중 말이다.

 

이 김희중이 검찰에 의해 8월 10일자로 구속기소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앞서 얘기한 일본 민주당 내각의 증세 법안이 참의원을 통과한 날이 바로 2012년 8월 10일이다. 같은 날, 가카의 문고리를 잡고 있다던 부속실장이 부패혐의로 구속되어 기소되었다. 역시 2012년 8월 10일.

 

가카가 예고도 없이 독도를 방문한 날이 또 2012년 8월 10일. 왜 광복절도 아니고 어정쩡한 8월 10일이겠는가? 김희중이 구속기소된 날이 8월10일이고, 일본에서 증세법안이 통과된 날이 8월 10일이라는 점과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

 

더욱 재미있는 것은 가카께옵서는 독도를 다녀오면서 그냥 다녀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 왔다감~” 이라는 흔적까지 남기고 돌아오셨다. 너무나 촌스러워서 읽다가 손꾸락이 오그라들뻔한 “이천십이년 여름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문구까지 음각으로 새겨서 만든 독도 표지석을 만들어 광복절날 가져다 세우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구도 문구지만, 보통 저런 비석을 세우면 날짜까지 새겨 넣는게 일반적인 일일텐데 그냥 “이천십이년 여름”이란다. 왜 그랬을까? 거기다가 그냥 가는 김에 자기 갈 때 표지석도 세우고 사진도 한 장 그럴듯하게 박고 오면 좋을 터인데 왜 며칠이 어긋났을까? 왜 비석에는 정확한 날짜가 아니라 그냥 “여름”이라고만 새겨졌을까?

 

날짜를 맞춘 거라고 밖에는 볼 수 없잖아. 안그런가?

 

언론 플레이의 효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날짜맞춤은 필수다. 아마도 일본 참의원의 증세법안 통과 일시는 맘대로 조정할 수가 없으니, 일본의 일정에 모든 것을 다 가져다 맞춘 것 같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일시를 조절하다 보니 미리 제작의뢰를 해야 되는 표지석에는 정확한 날짜를 쓸 수가 없었던 거다.

 

그렇게 맞춰놓고, 국내 언론사에는 강력한 엠바고를 걸어서 8월 10일 오후에 발표하라고 해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인데, 그게 또 재수없는 SNS 때문에 또 어긋나 버렸다. 누군가 이 소식을 일본 언론에 흘렸고, 일본에서 먼저, 그러니까 8월 9일 밤중에 소식을 터트려 버린 거다. 그게 국내로 다시 들어와 트위터를 통해 쫙 퍼져 버리고, 결국 8월 10일 오후에 보도하기로 되어 있던 것이 오전 10시로 당겨져서 전 언론에 깔려 버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이번 이벤트를 주도한 청와대 정무라인과 반대하던 외교라인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연한 것이 이런 깜짝쇼를 외교부 쪽에서 찬성할 리가 없잖은가. 내부에서야 최고위층끼리 무슨 합의를 했을지 모르지만, 실무 라인에서는 일본 측의 엄청난 항의를 유발할 만한 사건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 엠바고 걸린 뉴스를 일본 측에 흘린 구멍이 혹시 외교부 라인에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 모양이다.

 

이 꼴이 도대체 뭔가.

 

전형적인 좃선일보의 라면 사설 기법을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

 

이 모든 추정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은 정말로 역사에 기록될 만큼 추악한 정권이 된다. 사실이 아니면 말고~

 

그래도 쪽팔린 건 순간일 뿐이고, 이런 저런 효과는 봤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8월 10일에 청와대 부속실장 김희중이 구속기소 되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거의 모든 언론이 남한 대통령 이명박의 독도방문을 다루느라 증세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간만의 국대 축구 한일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멋진 승리를 올려주는 바람에, 두 MB(홍명보와 이명박)가 동시에 일본에 물을 먹였다고 좋아하는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벤트 효과는 충분히 본 거다.

 

가카는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제 아무리 국익에 도움이 되더라도 절대 안한다. 아니 반대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국가에 어떤 손실을 끼치더라도 눈 깜빡 안하고 해치운다. 그런 사람이 역사의 상징이며 한일 외교의 상징인 독도를 깜짝 방문했다. 아무 맥락이 없어 보이지만, 이런 맥락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카는 느닷없이 독도에 간 것이다.

 


 

감히 무엄하게도 가카께옵서 행하신 일에 대해 이다지도 긴 토를 단다는 말인가.

 

일제히 입 다물고 그저 경배만 하면 된다.

 

돌 한 개를 던져서 다섯 마리의 새를 동시에 잡아버리는 것처럼, 간단하게 내 돈 한푼 안 들이고 전용기 타고 강릉까지 갔다가 최고급 헬기타고 독도까지 슝~ 하고 날아갔다 오심으로써 일본 정권의 이익, 우리 정권의 이익, 최측근 비리 관련 보도 차단, 올림픽에 넋이 빠진 민초들의 애국심 고취, 군소언론사들의 기사거리 제공까지 한칼에 해치우신 가카의 위용을 보고도 칭송하지 않는 자,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 오글오글 오그라질지어다.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친애하는 위원장, 아니 대통령 동지이신 가카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따지는 놈들은 다 공산당이다. 그저 입 닫고 칭송만 하면 된다.

 

그게 진정으로 가카를 위하는 길이며 나아가 우리 민족과 국가의 무궁한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물론 니들 인생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긴 하다.

 

어허! 아직도 칭송을 안하고 있단 말인가? 어서 칭송하라~ 칭송~

 

씨바……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http://www.ddanzi.com/blog/archives/9963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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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박정희 시절의 경제
(서프라이즈 / 놀랍네 / 2012-08-11)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업적을 제대로 논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GDP와 국민 1인당 GDP를 세계 순위로 따져야 한다.

1960년 
국가 GDP 순위는 세계 29위이고 
1인당 GDP는 47위였으나,

1980년 
국가 GDP 순위는 28위이고 
1인당 GDP 순위는 48위였다.

박정희 집권 19년 동안 우리나라의 GDP 순위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고, 
국민 1인당 GDP의 경우 상승은커녕 오히려 1단계 하락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독재정권하에서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5년 사이 우리나라 GDP는 세계 36위에서 11위로 수직 상승하였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중문화가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한류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발전된 대중문화는 국가 브랜드를 상승시켜 기업의 해외 수출에 지대한 공헌과 IT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숫자로 본 박정희시절의 경제*

1961 박정희 공화당 : -2억8천 달러 적자
1962 박정희 공화당 : -3억7천 달러 적자
1963 박정희 공화당 : -4억7천 달러 적자
1964 박정희 공화당 : -2억9천 달러 적자
1965 박정희 공화당 : -2억9천 달러 적자
1966 박정희 공화당 : -4억7천 달러 적자
1967 박정희 공화당 : -6억8천 달러 적자
1968 박정희 공화당 : -10억 달러 적자
1969 박정희 공화당 : -12억 달러 적자
1970 박정희 공화당 : -11억 달러 적자
1971 박정희 공화당 : -13억 달러 적자
1972 박정희 공화당 : -9억 달러 적자
1973 박정희 공화당 : -10억 달러 적자
1974 박정희 공화당 : -24억 달러 적자
1975 박정희 공화당 : -22억 달러 적자
1976 박정희 공화당 : -11억 달러 적자
1977 박정희 공화당 : -7억6천만 달러 적자
1978 박정희 공화당 : -23억 달러 적자
1979 박정희 공화당 : -53억 달러 적자
합계 : -250억 달러 적자

1980 전두환 정부 : -48억 달러 적자
1981 전두환 정부 : -49억 달러 적자
1982 전두환 정부 : -24억 달러 적자
1983 전두환 정부 : -18억 달러 적자
1984 전두환 정부 : -14억 달러 적자
1985 전두환 정부 : -8억5 달러 적자
1986 전두환 정부 : 31억천 달러 흑자
1987 전두환 정부 : 63억 달러 흑자
합계 : -59억 달러 적자

1988 노태우 정부 : 89억 달러 흑자
1989 노태우 정부 : 9억 달러 흑자
1990 노태우 정부 : -48억 달러 적자
1991 노태우 정부 : -97 달러 적자
1992 노태우 정부 : -51 달러 적자
합계 : -98억 달러 적자

1993 김영삼 정부 : -16 달러 적자
1994 김영삼 정부 : -63억 달러 적자
1995 김영삼 정부 : -100억 달러 적자
1996 김영삼 정부 : -210 달러 적자
1997 김영삼 정부 : -85 달러 적자
합계 : -374억 달러 적자

1998 김대중 정부 : 390억 달러 흑자
1999 김재중 정부 : 239억 달러 흑자
2000 김대중 정부 : 118억 달러 흑자
2001 김대중 정부 : 93억 달러 흑자
2002 김대중 정부 : 103억 달러 흑자
합계 : 943억 달러 흑자

2003 노무현 정부 : 150억 달러 흑자
2004 노무현 정부 : 294억 달러 흑자
2005 노무현 정부 : 232억 달러 흑자
2006 노무현 정부 : 158억 달러 흑자
2007 노무현 정부 : 146억 달러 흑자
합계 : 980억 달러 흑자

2008 이명박정부 : -53억 달러 적자

<박정희시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cpi)> 
박정희시절의 소비자 물가는 
평균 년 16.5%의 상승률을 보였고 
1974년 24.3%, 
1975년 25.7%, 
마지막 해인 1979년에는 18.3%였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이었다. 
노무현. 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은행대출금리>
60년대 은행대출 금리가 년17.5%-26% 였다. 
1965년도에는 금리가 년 30% 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도 찬양의 대상인가? 
노무현. 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수출현황>
박정희는 날이면 날마다 수출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결과는 박정희 18년간 수출 638억불에, 수입 871억불, 무역적자 233억불 
박정희시절; 233억불의 무역적자 
-전두환시절; 8억불 무역흑자 (전두환은 8억 흑자를 자랑으로 여긴다) 
-노태우시절; 132억불의 무역적자, 
-김영삼시절; 366억불의 무역적자, 
-김대중시절; 846억불의 무역흑자,

이게 바로 박정희가 자랑하는 수출의 모습이다.

박정희가 노무현. 김대중의 수출실적과 수출흑자를 보면 깜짝깜짝 놀라야 한다. 
(박정희정권은 언론과 합작으로 수출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나 엄청난 적자의 이야기는 속 빠진 체였다)

<박정권시절, 농민들 농촌을 떠나다>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농촌이 잘사는 나라 운운해도 사실은 그 반대다. 
박정희시절은 년간 약 50만 명씩 이농을 했다. 
박정희정권 전 기간에 걸쳐 농촌인구의 거의 절반이 도시로 떠났다. 
농촌이 잘 사면 왜 이농을 하는가?

1960년 농업인구가 58.3%였는데 박정희의 저곡가. 공업화정책과 미국에서 들여온 엄청난 잉여농산물로 살기가 어려워 그리고 농촌부채로 이농을 함으로 1975년에는 37.5%까지 줄었다. 1967-1976 년 사이에 670만명의 농촌인구가 도시를 떠났는데, 이는 한국전쟁동안의 인구이동보다 더 심대한 것이었다.

박정희시절은 수출을 위해선 저임금이 필요했고,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곡가 정책이 강행했다. 저곡가정책으로 농촌은 몰락해갔다.

충남대 박진도 교수의 말

(박정희시절은) 저임금으로 수출을 했다. 저임금으로 수출을 하자면 농촌에서 사람을 뽑아 내야 합니다. 그렇게 노동력을 충당했다. 그런 면에서 농촌을 잘 살게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박정희시절의 부동산>
63년 기준으로 하여 7년 후 강남의 부동산은 학동이 20배, 
압구정동이 25배, 신사동이 50배로 올랐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같은 기간 서울의 중구 신당동은 10배, 용산구 후암동은 7.5배 상승했다.

이래도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하면 도대체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김대중.노무현 같으면 몇 번이나 쫓겨났을 것이다!

<도시빈민. 판자촌. 광주폭동>
박정희시절에 살기 어려워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도시빈민층을 형성했다. 
그들은 산동네에 판자촌을 이루어 살았는데 서울의 경우 박정희 정권은 그들을 강제로 철거, 광주(성남)으로 이주를 시켰다.

도로도 없고,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 지역에 사람만 추방을 했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는데 무엇보다 일자리가 없어 굶주리다 못해 대대적으로 저항에 나선 거였다. 20만 명의 철거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게 소위 광주폭동이라는 거다.

1970년대 중반 서울인구의 1/3-1/5에 해당하는 100만-300만 명이 판자촌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

<서민들의 삶>
1.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1.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1. 피고용인 가운데 1976년 74.9%, 1978년 76.7%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였다. 
(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1. 근로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쫓겨 나든가 OOO로 몰리기도 했다.

<박정희시대의 경제성장률>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김대중은 또한 경제성장에서 세계 최고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단 5년만에 대한민국을 IT강국, 전자제품강국, 생명공학의 강국으로 올려 놓았고, 수출 최대 그리고 흑자,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고 세계 4위로 올렸고, 한국의 영화산업을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 올렸고, 한류의 꽃을 피웠다.

<박정희가 한국경제의 기반을 닦았다??>
이 말은 박정희 이후에 이루어진 엄청난 경제적인 성장은 다 박정희가 밑바탕을 잘 닦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것 또한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박정희경제는 처음 5년간은 부정부패이외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고, 6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베트남으로부터 돈이 들어오면서 좋아졌다. 
말기에는 또 완전히 망할 정도로 몰락해 가고 있었다

수치로 표현하면 박정희말기에 박정희경제는 거의 몰락상태에 있었다. 
그 이후의 정권들이 잘했기 때문에 박정희 경제의 후유증인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했다고 해야 말이 맞다.

(다음은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에서)

박정희의 마지막 해인 1979년 GNP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는 사상최악인 41억5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기름재고는 7일분 밖에 남지 않았고, 소비자 물가상승도 18.3%나 뛰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을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이 등장하고 일본에서 40억 달러를 빌려 수습을 합니다. MBC의 <5공화국>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둘째 박정희정권이 들어서고 초기에 박정희가 초능력을 발휘하여 단숨에 뭔가를 이루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전혀 아니다. (경제가 그런 것이 아니기도 하다) 초기 박정희 정권 5년간은 4대의혹사건 등 부정부패를 제외하고는 경제가 특별히 달라진 없었다. 1960~1654년의 연평균 GNP성장률은 5.5%로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은 7.5-10%, 베트남도 7% 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의 경제가 좋아진 것은 60년대 후반기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이 들어오고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로 10억달라 이상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다른 대통령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없어도, 그리고 월남특수가 없어도 박정희이상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이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5만 명이 5년간 받은 수당은 1억3,000만 달라였다. 
당시(60년대) 외화보유고는 3억 달라에도 미달 했으므로 한국외환 보유고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숫자였고, 또한 한국 총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거였다.

(다음의 경제학자 최용식의 글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이미 1950년대 후반부터 시동을 걸었다. 
성장률이 57년에 7.6%, 58년 5.5%, 59년 3.9% 등을 기록하여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매년 50% 안팎으로 오르던 물가도 57년부터는 한 자리수로 안정되었다.

이승만정권이 붕괴되던 60년에는 성장률이 1.2%에 그쳤지만, 4ㆍ19혁명으로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군사정권이 선전했던 61년에는 다시 5.9%로 뛰어올랐다. 또한 물가 역시 안정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완벽하게 은폐되고 말았다.

“가시적인 실적 위주의 박정희 개발독재야말로 시장 경제를 병들게 한 암세포였다. 나아가 그것은 IMF 금융위기의 뿌리였다” -고려대교수 이필상

<동아시아 : 1965년 ~ 1980년 연평균 경제 성장률>
1. 일본 : 10.5%
2. 싱가포르 : 10.1%
3. 대만 : 9.8%
4. 한국 : 9.4%
5. 홍콩 : 8.6%

북한 : 57년 ~ 69년 연평균 21% 성장했다..

그후 
70년대 중반까지 연평균 10% 가량 되던 경제성장은 80년대 이후 완전 몰락 원인은 박정희와 같은 독재경제의 종말이였다.

동아시아 경제 성장률인데요.
한국만이 특별히 성장한 것이 아니란 것,
오히려 박정희 시대 한국의 성장은 동아시아 선발 개도국과 비교해서 미흡했고…
민주화 되면서 더 탄탄해 졌다는 것.

대부분의 독재국가는 망했고 망하게 되어 있는데 독재자를 찬양하는 이유가 뭘까요?

한국 국민들이 깨어 있어서 일하면서 독재자에 저항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이다.
독재자 덕이 아니다.

독재자는 쿠테타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을뿐.
그 당시 그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60-70년대는 말뚝박는 시대였다.

 

놀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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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칼럼] 독도 밀약, 이제는 말해야 한다

군사독재 정권이나 보수정권이 가장 거론을 기피했던 문제는 희한하게도 독도였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면 일쑤 들고나와, 반일감정을 자극해 국면을 전환시키곤 했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무관심이었다. 이걸 모르고, 정치적 퍼포먼스에 말렸다가 선의의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이다.

역사적으로 독도를 지킨 건 국가가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조선조 울릉도와 독도에서 왜구를 내쫓은 건 민간인 안용복이었다. 해방 후 독도를 지킨 건 예비역 특무상사 홍순칠과 33인의 민간인이었다. 홍씨는 전쟁을 틈타 독도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일본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의용수비대를 조직했다. 정부 지원도 없어, 가산을 처분하고 의연금을 모아 기관총·박격포 등을 구입하고 의용대도 모집했다. 수비대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함정의 침범을 두 차례나 격퇴하고, 가짜 해안포를 설치해 일본 함정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기지도 발휘했다.

문제는 그 열정이었다. 수비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1969년, 1972년 독도개발계획서를 경상남도에 제출하는 등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도록 재촉했다. 박정희 정권은 부담스러웠다. 홍 대장은 1974년 12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사흘 동안 고문을 당했다. 중정의 요구는 더 이상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도록 그의 오른손을 부러뜨리기도 했다고 부인 박영희씨는 전했다. 학교 조례 때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떠들도록 한 정권이 왜 그러는지 홍 대장은 알 수 없었다.

전두환의 신군부에서도 똑같았다. 신군부는 1980년대 초 그가 독도 지킴이로 북한 방송에 소개되자, 그를 즉각 체포해 극렬한 고문을 가하여 간첩 조작을 하려 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홍 대장은 1986년 숨졌다. 전두환 정권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막았고, 심지어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독도

1965년 1월11일 서울 성북동 박건석 범양상선 회장의 홈바에서 정일권 국무총리와 일본 자민당의 실력자 우노 소스케 의원이 하나의 메모에 사인을 했다. ‘미해결의 해결’이란 원칙에 따라 성안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독도밀약이었다. 첫째, 독도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반박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둘째, 어업구역을 설정할 경우 양국 모두 독도를 기점으로 획정하되, 중복되는 부분은 공동수역으로 한다. 셋째, 현재 대한민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경비원을 증강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증축은 하지 않는다.(노 다니엘 저 <독도밀약>) 결국 미해결 상태를 해결로 간주하고, 독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주일 뒤 1년 넘게 교착됐던 정상회담 예비회담은 재가동됐고, 6월22일 한-일 협정이 체결됐다. 함께 발표된 한-일 어업협정은 독도 주변 해역을 공동규제수역으로 규정했다. 밀약 내용 그대로였다. 공동규제수역 혹은 중간수역 규정은 지금까지 지켜진다. 임기 말에 돌연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일전불사를 외쳤던 김영삼 정부도 독도 인근 해역을 잠정적 조치수역(중간수역)으로 수용했다.

밀약도 밀약이지만,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일본 정부와 민간에게서 막대한 정치성 자금을 받아 썼다. 박정희는 청구권 자금 이외에 1965년까지 5년 동안 6개 민간기업으로부터 660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받았고, 전두환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일본 나카소네 정부로부터 40억달러의 차관을 받았다. 그러니 독도를 물고 늘어지는 홍 대장을 가만두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일왕까지 거론했다. 물론 뒷감당도 못하면서 쏘아대는 말대포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 박종우 선수는 그 피해자였다. 그러니 진정성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독도밀약의 진상과 파기 여부를 말이다. 그래야 ‘독도 쇼’니 정치 선동이니 하는 소모적 논란을 막고 홍순칠, 박종우 같은 어이없는 희생도 막는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7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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