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30.화요일
아외로워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있었던 지난 24일, FA컵 4강전이 열렸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수원의 경기에서, 홈팀인 수원이 명승부 끝에 3:2로 역전승했다. 울산은 설기현이 두 골이나 먼저 넣으며 앞서갔지만 고슬기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급격히 무너졌다. 울산의 김호곤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고슬기를 퇴장시킨 심판의 판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심판이 수원 서포터들의 눈치를 보고나서 뒤늦게 퇴장을 줬다는 것이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축구경기에서 흔한 일이다. 매우 공정하고 정확한 심판도 오프사이드 하나 잘 못 봐서 특정 팀과 원수를 질 수 있다. 반면 이건 좀 아니다 싶은 판정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황은 대체로 토너먼트에서 벌어진다.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하고 열성적인 관중을 몰고 다니는 팀은 관중도 적고 스타도 없는 팀보다 유리한 판정을 받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토너먼트 다음 라운드에서 더 많은 관중을 모으고 싶은 축구협회 수뇌부의 소망이 심판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일 것이다.
판정시비는 축구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곽노현 교육감을 둘러싼 논란도 일종의 판정시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심판은 검찰과 언론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민주FC' 의 곽노현 선수는 하프라인에서 '한나라축구단' 오세훈 선수의 공을 빼았아 홀로 드리블을 한 끝에 그림 같은 골을 넣었다. 심판은 골 뒤풀이가 다 끝나고 오세훈 선수가 교체되어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휘슬을 분다. 곽노현 선수가 골 넣기 전, 공을 뺐는 과정에서 팔꿈치를 썼다는 것이다. 전광판에는 곽노현 선수의 반칙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반복해서 나오고 관중들은 야유를 보낸다. 골이 취소되고 냉혹한 레드카드가 나온다. 곽노현 선수는 격렬하게 항의한다. 이 심판은 예전부터 '한나라축구단'에 유리한 판정을 하기로 유명했다.
딴지FC 김어준 선수.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딴지일보]
곽노현 교육감이 돈 문제에 연루됐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다른 후보인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냈다는 것이다. 박명기 교수는 후보 단일화 이전까지 선거운동 자금으로 7억 원 정도의 돈을 지출했고, 곽노현 후보에게 선거비용 보전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건냈다고 인정한 돈이 2억원이다. 결국 7억원과 2억원의 간극이 이번 사건을 키운 것이다. 검찰은 공교롭게도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후에 이런 일을 터뜨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건낸 2억원의 대가성이 입증된다면 곽 교육감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교육감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당을 비롯한 각계에서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퇴진 하는 것이 옳은 것일 수 있다. 게임이 법칙이 그렇다.
불법을 자행한 사람을 조사하고 기소하고 보도하는 것은 검찰이나 언론과 같은 심판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이 고유권한이 고깝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심판들이 편파판정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심판 역할을 해야 할 검찰과 언론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 우호적이다. 그들은 공정하지 않다. 검찰은 상대진영의 약점을 잡고 당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죽을때까지' 괴롭힌다. 한나라당과 그 커넥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혹한 판정을 받아왔다. 보수 계급에 위협이 된다면 가혹함은 배가된다. 보수언론은 검찰이 흘린 정보를 매일 빵빵 터뜨리며 검찰을 지원사격한다.
우리 사회의 심판들이 받고 있는 편파판정 의혹이 혹시 오해는 아닐까? 아니다. 곽노현의 2억이 이렇게 문제가 된다면 섹검과 떡검은 해임되고 감옥에 갔어야 한다. 노무현의 '의혹' 이 죽을죄라면 이명박은 BBK로 합법적인 사형선고를 받았어야 한다. 일반 시민 열 명이 야권 단일화 공작을 펼친 '의혹'이 이적행위라면 제2 롯데월드를 승인하고 국방예산 수십조 원을 삭감한 MB정권은 사상 최악의 빨갱이들이로 기소됐어야 한다.
개인의 축재를 위해 지위를 남용했던 공정택 전 교육감과 비교하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처사는 더욱 불공평해 보인다(클릭해서 언론의 곽노현 사랑 확인하기).
예전에 '이제는 막가자는 거지요' 라는 말을 듣고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선견지명이 빛나는 말이었다. 그 때부터 검찰은 막가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 참 잘 막나가고 있다. 이제는 편파판정이 후폭풍 따위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검찰을 견제 할 수 없다.
'내가 제일 막나가'
막가기로는 검찰과 콤비를 이룬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재벌, 검찰, 언론이 뒤엉킨 카르텔은 이제 견제세력 없는 폭주기관차가 됐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명백한 편향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권한에 일말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다. 심판이 노골적으로 한 쪽 편을 들지만 누구도 심판을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곽노현의 돈 문제가 터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곽노현 교육감이 깨지는 꼴을 관람하는 것뿐이다. 검찰이 가카와 조선일보 방씨 일가에게 했던 것처럼 '유죄를 확정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와 정황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면서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대신 곽 교육감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린치를 가할 것이다. 보수언론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인신공격성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심판이 이렇게 적대적인데도 초보적인 허점을 보인 곽노현 교육감은 영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박명기 교수를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검찰에 빌미를 제공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죄가 있다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의 당선은 진보진영 후보단일화의 모범사례였던 만큼 보수진영은 본보기 삼아 더욱 악독하게 물어뜯을 것이다. 덕분에 이후 선거에서의 후보단일화도 훨씬 더 까다롭고 조심스러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언론과 검찰은 '진보 공동 선거자금' 어쩌고 하면서 사건의 범위를 키우려 하고 있다. 야권의 정치 연대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후보단일화를 미리 흠집 내 놓을 것이다. 그들은 차후에 정권을 잃는다면 그들 자신이 '공정한' 법 집행의 피해자가 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심판의 판정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심판이 내린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하느니 그냥 받아들이는 게 이익이라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리한 판정을 얻기 위해 심판을 매수하거나 협박하는 것까지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아니다. 심판은 게임의 제반시설과 같다. 심판은 원칙적으로 지독하게 공정해야 한다. 한 쪽 편의 골대가 다른 편보다 두 배나 넓다면 누가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불공정한 심판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심판의 중립성은 게임의 변수가 아니라 게임이 성립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 심판들의 편파판정은 기정사실이다. 심판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정권은 심판들의 편향성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것을 돌이킬 수 있는 세력은 미약한 실정이다. 애초에 게임이 성립하면 안되는 상황이지만 안타깝게도 경기는 이미 진행중이다.
지금 심판에게 항의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들의 권력 카르텔에 복종하지 않으면 빨갱이 취급 받으며 당장 밥줄을 걱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억울하다고 외쳐봐야 속만 끓는다.
결국 남은 것은 상식에 기대는 것 뿐이다. 상식을 따르며 심판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 불리하지만 극복해야 한다. '야권연대'는 스타도, 관중도 없는 비인기팀이다. 억울하면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오면, 유착과 비리에 대한 아주 공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검찰과 보수언론이 그들의 적에게 했던 것과 같은 아주 공정한 심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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