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30.화요일
메리메리
1.
곽노현이 단일화 상대였던 박교수에게 돈을 줬다. 돈의 성격 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으나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야겠다.
진보, 좀 더 자존심 세울 필요 있다.
2.
우리측 사람이, 그것도 서울시장 선거를 촉발시킨 주민투표에서 시장의 반대편에서 무상급식의 수호자 역할을 떠맡았던 사람이 단일화 과정에서 돈을 주고받았다는 것, 범죄성 유무와 상관없이 단일화를 함께한 범진보영역에 이미지 타격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헌데 고작 이미지 좀 깎았다고 상대방의 말에 입맞추면서 펄펄 뛰고 상대가 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게 자신과 연대하던 사람을 질타하는 일, 가볍다.
그래, 이것은 내 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함부로 인생 굴리면서, 누구들처럼 사리 사욕 채우려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는 내 편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에 때문에 치는 쉴드다.
어렵게, 함께 고비넘고 연대해왔던 사람을 향해 정적의 비난이 쏟아졌을 때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것이 진짜 비난할 거리인지, 그것부터 분명히 판단해야하지 않겠는가.
마뜩치 않다면 최소한 지금 그를 비난하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인지, 제 이득을 위해서라도 따져봐야하지 않나.
내 편 꼬리 끊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정말 너무 많지 않느냐는 말이다.
3.
진보영역 사람들, 돈에 결벽 있다. 밥은 밥대로 지도 다 챙겨 먹으면서 똥싸고 방구끼는 일을 혐오하는 나이 어린 아가씨같은 구석, 있다.
하지만 진보의 정치를 하는데도 돈, 거래, 필요하다. 서로 득 될 거 교환도 하고 돈 요구하고 꾸고 얻고 타내는 일, 당연히 해야하고,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돈거래를 하는 사람들이란 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돈을 어떻게 거래하는 사람들이냐 하는 점이다.
4.
상대편이 우리를 시정잡배라고 손가락질하고 나섰다. 내용의 핵심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a였다가 b였다가 중구난방이다. 근거라는 것은 말 뿐이고 실체가 없다.
그나마도 있다 했다가 없다 했다가 수시로 말이 바뀐다.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도 없는 시점에 소위 그 놈의 진보들은 상대를 향해 근거없는 소리는 똥통에나 갖다 처박으라고 말 할 배짱과 자존심도 없나.
우리의 자존심은 상대의 공격에 재빠르고 격렬하게 수긍하면서 그래, 돈거래 한 쟤가 병신이야, 라고나 혼자 깨끗한 척 발 빼는 걸로 지켜지는 것이냐고.
밝혀진 것 없는 것을 두고 미리부터 수쓰지 말라고, 이런 이런 면에서 너희 말을 어불성설이라고, 닥치고 수사 내용을 기다려야 한다고 왜 말을 못하나.
최소한 상대방이 해줬으면 하는 바로 그 말을 원고지 읽듯이 고대로 읽으면서 사태 터지자마자 자기 꼬리부터 자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하잖아.
남이 썩었다고 하자마자 내 눈으로 살피고 확인하기 전에 칼부터 꺼내 내 살 도려내는 거, 대체 어느 나라 바보가 하는 웃기는 짓이란 말인가.
누가 누구를 위해 하는 짓이냐고.
그게 그대의 진보로서의 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은 그렇게 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그런 돈 거래를, 그렇게 노골적인 방법으로 할 바보들도 아니고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아니라고 눈 바락뜨고 악 써주는 것, 우리들이 가졌던 돈거래를 감히 너희들이 했던 짓과 비슷한 내용이라 치부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하는 것.
그게 진보의 자존심이다.
5.
지금 곽노현을 향해 쏟아지는 야당 연합, 그 지지자들의 비난이 제일 우려되는 것은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 어렵게, 치열하게 해나가야 할 연대의 대의명분에 제 손으로 구정물을 끼얹는 짓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성격과 원인에 대해 토론하고 입장 세우기도 전에 저 혼자 살겠다고 어제의 동제를 순식간에 잘라내고 적과 힘 합해 발길질 해서야 어떤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새 연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검찰과 정권에 꼼수가 있던 말던, 동전소리 짤랑도 안 나야 진보라는 것인가.
잘난척하면서 혼자 결벽 떨다가 그들에게 다시 정권을 쥐여주어도 우리는 결백을 굳이 증명할 필요 없는 곳에서마저 엄정했으니 역사에 책임을 다 했다고 여길 것인가.
목적있는, 근거 빠지는 공격을 당하는 연대의 동지를 자기 결벽을 증명하는 도구로 이용하지 마시라. 언젠가 당신이 또 다른 누군가의 도구가 될 것이다.
6.
진보는 돈문제에 분명, 청렴해야 한다.
진보의 당위성, 명분 지키려면 보수세력보다 엄정한 기준, 분명히 가져야 한다. 말하는 것은 곽노현에 대한 소위 진보의 반응이 비열하고 좁다는 것이다.
용기없고 후지단 말이다. 청렴이 아닌 결벽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렴은 건강을 지키지만 결벽은 사람을 약하게 한다. 제 손으로 제 약점을 만들어 제 이마에 붙이는 짓이 정치적, 도덕적 결벽을 떠는 일이다.
쉽게 다칠 약점을 이렇듯 제 손으로 만들고 광고해서야 상대방에게 바로 이 부분을 앞으로도 계속 공격해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꼴밖에 안 되지 않겠나.
그들의 계속될, 아주 똑같은 패턴의 공격에 아무 대비도 할 수 없도록 내 손을 내가 묶는 일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봐 줄 수도 있는 것인데 뭘, 하는 서운함이 아니다. 공격을 위한 공격의 여지가 다분한 상대의 목소리에 너무나 쉽게, 적극적으로 편입해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아주 손쉽게 상대방의 수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일, 말자는 거다.
의미 뻔한 공격에 반박할 근거가 충분히 있는 마당에 사용하지 않고 내 편을 버리기부터 하는 짓. 모두에게, 우선 자신에게 상처다.
7.
앞으로 연대의 과정이 많이 남아 있는데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대처할까에 관해서도 바로 지금 아주 많이 서로 말해야 한다.
이제까지 단일화 과정에서 물러난 후보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서로 말하고 듣고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지원, 대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모두를 위해 한 일에서 그들이 일방적으로 피해입는 일을, 적어도 줄이기 위해 함께 애써야 한다. 그래서 돈은 없어도 값있는 사람들이 용기있게 선거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좋은 사람들을 뽑을 귀한 기회를 우리 손으로 찾아 가져야 한다. 단일화에 나섰다가 그런 곤란한 지경에 처한 사람들이 생긴다는 걸 많이 알게 됐으니 지금보다 해결에 힘 쓸 좋은 기회가 또 어딨을까.
할 고민 많고 바빠 죽겠는데 한나라당이 이미 착수해 성심을 다하고 있는 곽노현 죽이기에 굳이 동참해 힘 보태시는 분들. 곽노현이 잘못을 했건 말건 지금보다 더욱 더 엄해야 한다고 목소리 돋우시는 분들.
그대들에겐 왜 그것이 그리도 바쁜 일이신가.
8.
위의 내용은 곽노현을 비난하는 일을 대신해 할 수 있는 2000가지 일 중 하나다. 곽노현을 비난하며 결벽을 떠는 일보다 일면에선 더 순진하다. 하지만 연대와 통합의 과정에서 내 심장을 뛰게 했던 것은 보다 결백한 사람을 찾아 객관적인 순수를 획득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을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을 끝까지 믿고 꼭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순간들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해나가야 하는 연대다. 인간적이고 순수하고 뜨겁고, 그런 서로를 믿으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나아가는 것. 바로 그런 모습의 연대가 사람들의, 대한민국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곽노현 사태가 그 맞잡은 손의 온기를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작은 상처가 돼야 한다. 나아가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왜 다른지 증명할 사건으로 남아야 한다. 득 될 듯이 보이는 사람들끼리 뭉치고 안 될 사람 버리는 분위기 만들어서 분열과 불신을 확대하는, 그런 기회만은 결코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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