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변함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해주셔서,
무어라고 감사 말씀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선 때 했던 약속,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습니다.

애틋한 추모의 마음이 많이 가실만큼 세월이 흘러도,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부릅니다. 
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국민들의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력, 
정상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특별한 일처럼 되었습니다. 
정상을 위한 노력이 특별한 일이 될만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심각하게 비정상이었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부터 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들의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의 좌절 이후 우리 사회, 
특히 우리의 정치는
더욱 비정상을 향해 거꾸로 흘러갔고,
국민의 희망과 갈수록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꾼 꿈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제 가슴에 묻고,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안보도, 경제도, 국정 전반에서 
훨씬 유능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줍시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가겠습니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못다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나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 

다시 한 번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꿋꿋하게 견뎌주신 권양숙 여사님과 유족들께도
위로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5월 23일
대통령 문재인

Posted by skidpara
,

오늘 5·18민주화운동 37주년을 맞아, 5·18묘역에 서니 감회가 매우 깊습니다.

37년 전 그날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월 광주가 남긴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채 오늘을 살고 계시는 유가족과 부상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께 각별한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슬 퍼런 독재의 어둠 속에서도 국민들은 광주의 불빛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5·18때 구속된 일이 있었지만 제가 겪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힘이 됐습니다.

마침내 오월 광주는 지난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분노와 정의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임을 확인하는 함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치열한 열정과 하나 된 마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입니다.

광주 영령들이 마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성숙한 민주주의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습니다.

전남도청 복원 문제는 광주시와 협의하고 협력하겠습니다.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오월의 피와 혼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그 자체입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희생자의 명예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은 그동안 상처받은 광주정신을 다시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습니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광주시민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주십시오.

이제 차별과 배제, 총칼의 상흔이 남긴 아픔을 딛고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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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 언론 최초로 공개하는 이 사진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 장철영씨가 사진 에세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의 부치지 못한 편지>(이상) 발간을 위해 추린 것들이다. 장씨는 앞서 2012년 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을 담은 사진 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오는 20일 그때 공개하지 않은 미공개 사진 등 50여장을 담은 사진 에세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를 낸다. 경향신문은 책 출간 전 장씨로부터 받은 사진 20장을 최초 공개한다.

주간지와 외신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장씨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속 사진사로 발탁됐다. 그는 발탁된 뒤 노 대통령에게 도발적인 제안을 했다. 대통령의 공식 일정 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모습도 사진도 촬영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진은 기록이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전 대통령 전속 사진사들은 대통령 공식 일정 사진만 촬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신참 전속 사진사의 전례 없는 파격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호실과 외교부에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렸다. 장씨가 노 대통령의 재임 기간 찍은 사진은 50만장이다. 장씨는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에 그간 대중에 공개된 적이 없는 사진들을 넣었다.

그가 기억하기에 노 전 대통령은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늘 “별걸 다 찍는다” “고만 좀 해라”라고 했지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훌륭한 모델이기도 했다. 등산 중 땅바닥에 주저앉아 등산화 속 돌멩이를 털어 내거나 손녀를 자전거에 태워 청와대 앞마당을 달리는 사진은 그렇게 촬영됐다.참모들과 회의하는 모습, 관저에서 이발을 하는 모습, 해외 순방 시 숙소에서 양치질 하는 모습 등도 담겼다.

장씨는 “노 대통령은 ‘맘껏 찍어라’ 하시곤 한번도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진솔한 모습이 담겼다”고 했다. 그는 “한번도 보여드려보지 못한 사진들을 이제라도 보여드리고 싶어 편지와 함께 공개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초 공개 사진 20장이다.

■ 청와대 직원 누구나 드나든 관저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9일 관저 소회의실에서 아침회의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9일 관저 소회의실에서 아침회의 ⓒ 장철영

관저 내 소회의실이다. 장씨에 따르면 관저 내에는 소회실·접견실·대식당이 있다. 대식당은 대회의실로도 쓰인다. 장관·수석들과 부부동반으로 종종 식사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회의실에서 아침 7~8시 사이 부속실 등으로부터 일일보고나 간이 브리핑을 받았다고 했다. 비서실장 주재 회의도 종종 이뤄졌다.

원래 청와대 출입증은 비서동·본관·관저 별로 색깔이 달랐다. 장씨는 “노 전 대통령이 색을 통일했다. 그래서 청와대 직원이라면 누구나 관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통령과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 청와대 소집무실 회의 풍경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 ⓒ 장철영

청와대 본관 소집무실이다. 회의 전 휴식을 취하거나 임시 회의를 하는 곳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전비서관과 연설기록비서관 등과 회의 도중 장씨를 바라보는 모습니다.

■ 담배 피우는 대통령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4년12월 3일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4년12월 3일 ⓒ 장철영

담배 피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

■ 기름종이로 얼굴 닦는 노무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 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하기 직전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 1월9일 집무실에서 회의하기 직전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 회의 직전 메이크업 뒤 기름종이로 얼굴을 닦아내고 있다.

■ 부시와 통화 준비…모든 대화 녹음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2월14일 부시대통령과 6자회담관련 전화통화를 하기 직전 모습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2월14일 부시대통령과 6자회담관련 전화통화를 하기 직전 모습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스페인의 한 호텔에서 6자회담과 관련해 미국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장씨는 “국가 수반 끼리의 통화는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녹음 장치를 통해 모든 대화를 녹음하며, 통역관이 대통령의 대화를 들은 뒤 문제될 부분이 없는 지 점검한 뒤 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고 전했다.

■ 화장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 9일 관저에서 얼굴화장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7년1월 9일 관저에서 얼굴화장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관저에서 메이크업 받는 노무현 전 대통령, 보통 행사가 있는 날 아침 7~8시 행사 직전 10분 간 간단히 받았다고 장씨는 전했다.

■ 기능직 공무원은 숨지 않았다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2월23일 녹지원 산책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2월23일 녹지원 산책 ⓒ 장철영

청와대 본관 앞 녹지원. 사진의 소로는 참여정부 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장씨는 “이전까지 기능직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나타나면 숨기에 바빴다”고 했다. 사진 왼쪽의 기능직 공무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 청와대 본관 잔디서 손녀와 과자먹기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앞 잔디밭에서 손녀에게 과자를 먹여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잔디밭은 원래 조경용이었다고 한다. 장씨는 “역대 대통령 중 들어가 앉은 분은 노 전 대통령이 최초”라고 했다.

■ 손녀를 목말 태우고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9월13일 청와대에서 손녀와함께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앞에서 손녀와 놀다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 역대 대통령 첫 청와대 경호실 방문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5월20일  관저내 경호실 방문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5월20일 관저내 경호실 방문 ⓒ 장철영

청와대 관저에 들어가기 전 관문인 ‘인수문’ 옆의 경호실. 관저로 들어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장씨는 “역대 대통령 중 경호실을 들여다 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일 것”이라며 “(경호원들이) 당시 안에서 귤을 까먹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장씨는 “이곳에서 관저 출입자와 출입 시간을 분단위로 기록한다”고 말했다.

■ 빈손 낚시에 실망한 노무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5년4월23일 낚시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2005년4월23일 낚시하는 노대통령 ⓒ 장철영

진해 앞바다에서 손낚시 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주위 권유에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했으나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실망했다고 장씨는 전했다.

■ 권양숙 여사 앞 “나 힘쎄요” 국궁 시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4월23일 충렬사 방문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4월23일 충렬사 방문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렬사 옆 활궁장에서 국궁 시위를 당기고 있다. 장씨는 “‘힘도 없으시면서’라는 권양숙 여사의 핀잔에 ‘나 힘 쎄요’라고 받아치셨다”고 전했다.

■ 순방국 숙소서 양치질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14일 필리핀 세부 숙소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1월14일 필리핀 세부 숙소에서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필리핀 세부 순방 당시 숙소에서 호텔 매니저 안내를 들으며 양치를 하고 있다. 장씨는 “양치하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자 노 전 대통령께서 ‘이런 것까지 찍어요? 나중에 퇴임 하면 경호원, 사진사, 수행비서 다 빼고 우리 둘(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만 다닙시다’라며 귀찮아하셨다”고 전했다.

■ 골프 스윙 연습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10월18일 골프연습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5년10월18일 골프연습 ⓒ 장철영

태릉의 골프 연습장. 장씨는 “노무현 대통령님은 골프를 좋아하셨지만 여론을 의식해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셨다. 자세는 좋으셨다”고 했다.

■ 장화 신고 시화호 비공개 현장 방문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10월29일 시화호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6년10월29일 시화호에서 ⓒ 장철영

시화호 현장을 비공개로 전격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화를 신고 갯벌을 걷고 있다. 장씨는 “노무현 대통령님께선 이슈 현장이나 사고 지역에 거의 즉각 달려가셨다. 현장에 가면 주민들이나 피해자도 만나지만 대민 지원을 나온 군 장병들의 처우도 반드시 챙기셨다”고 했다.

■ “다른 사람도 벗는데…” 신발 벗고 영남루 입장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7월14일  밀양 영남루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7년7월14일 밀양 영남루에서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밀양 영남루에서 신발을 벗고 있다. 장씨는 “당시 안내인들이 ‘대통령님은 신발을 신고 마루에 올라가셔도 된다’고 했지만 대통령님께선 이 말을 하며 신발을 벗으셨다. ‘다른 사람도 벗는데…’”라고 전했다.

■ 탄핵안 의결날 비행기 오르는 대통령 내외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4년3월12일 탄핵가결후 공항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4년3월12일 탄핵가결후 공항에서 ⓒ 장철영

2004년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날, 창원에서 공식 일정을 마친 후 비행기에 오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이다. 장씨는 “그날 ‘다시는 저 비행기를 못 타실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 퇴임 20여일 전 대통령 내외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8년 2월 3일 저도 도착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8년 2월 3일 저도 도착 ⓒ 장철영

임기 종료 20여일을 앞두고 저도의 대통령 휴양시설을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장씨는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어 초점을 제대로 맞출 새도 없이 촬영했다”고 한다.

■ 장례식날 아침, 봉하 사저 도는 盧의 영정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날 한 장면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가 영정을 들고 봉하마을 사저를 돌고 있는 모습이다. 장씨는 “눈물로 찍었다”고 했다.

■ 장례식날 마지막 지킨 ‘3인방’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2009년5월29일 노무현대통령 장례식날 아침 봉하마을 사저에서 ⓒ 장철영

장례식날. 노무현 전 대통령 마지막을 지켰던 ‘3인방’의 모습. 왼쪽부터 문용욱 부속실장·박은하 비서관·김경수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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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필·서성일 기자 phil@kyunghyang.com> 

출처:http://h2.khan.co.kr/20170112171800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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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그를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노빠'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놓고 완벽한 정권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그가 잘못한 일도 있으며, 그가 실패한 정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아생전 보여줬던 모습 중에는 분명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어 놓은 일들이 많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바뀐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봤습니다. 

'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 

참여정부 시절,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수쪽에서야 고졸 출신, 진보성향의 대통령이 싫었을 것이고, 진보 진영에서는 진보 대통령이라고 봤는데 일부 정책을 보면 진보가 아닌 보수와 똑같다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를 놓고, 고스톱 치다가 끗발 안 나오면 노무현 탓이요, 등산 갔다가 온 사람이 자기가 잘못해서 미끄러져도 노무현 때문에 재수가 없어 미끄러졌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대통령을 향해 직접 욕을 많이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이야 당연히 못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도 노무현 대통령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노무현 대통령 탓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며,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는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인지, 대통령을 향해 욕을 해도 잡혀가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그것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됐습니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은 경제,부동산,노동,국방 모든 분야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맹비난을 퍼부었고, 급기야는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도 벌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도 전부터 언론의 공격과 왜곡 보도에 시달렸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했어도 언론은 끊임없이 그를 공격했고, 급기야는 해외 언론의 기사를 반대로 해석하여 그를 '나쁜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언론과 여론의 비난을 노무현 대통령이 고스란히 받은 이유는 그가 언론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론만 장악했어도 그를 향한 욕과 비난이 훨씬 많이 줄었을 것입니다. 

언론권력의 피해자였지만, 결코 언론을 통제하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과 정책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도 언론과 일부 사람으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욕을 먹고 있기도 합니다. 

'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자, 보수세력과 새누리당은 '이것이 왜 대통령 책임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노무현 대통령 때문입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국민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며 NSC위기관리센터에 재난재해 업무의 컨트롤 타워를 맡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이며, 국민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도록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많이 와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며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은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통령의 의무로 인식됐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는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 국민 앞에 무릎 꿇은 대통령'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대통령을 풍자하는 일은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닌 국민과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는 그냥 장난기 많은 동네 아저씨입니다. 청와대에서 행사가 진행되는데도 아이 선글라스를 갖다가 자기가 쓰는 모습이나,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을 터는 모습을 보면서 누가 그를 대통령으로 볼 수 있었겠습니까? 

대통령이 퇴임 이후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짓는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누가 감히 전직 대통령에게 '빨리빨리 일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두환에게 가서 빨리 정원에 있는 낙엽 치우라고 하면, 그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아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못합니다.

▲맨위 왼쪽부터 1번:열매 2번:김치 3번:팝콘, 4번:아이스크림,5번:호두, 6번:곶감 7번:아이 사탕


보통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하면 기자단을 의식해서 나름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는 포즈와 행동을 취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카메라가 있거나 없거나,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대통령이 저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행사에 가서 호두를 그냥 이빨로 깨물어 먹기도 합니다. 청각장애를 체험하는 극장에 가서도 귀마개는 내내 끼고 있었지만, 팝콘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시장 음식 먹기 사진 촬영'이 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먹방 탓이지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은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보다 국민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감히 대한민국 주권을 가진 국민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고, 심지어 무릎을 꿇고 사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국민 앞에서는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 아이를 위해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다' 

요새 정치인들을 보면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눈높이를 맞춰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도 노무현 대통령 탓입니다. 

▲ 아래 가운데 사진은 아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깃털로 간지럽히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나 청와대에 있었을 때나 퇴임이후에나 사진 촬영을 할 때면, 항상 아이들의 키 높이에 맞춰 무릎을 구부리고 찍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만나고 놀다 보니, 아이들은 대통령이 그다지 무섭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연예인 사진 찍듯이 대통령을 향해 휴대폰을 들이댔습니다. 대통령 뒤를 쫓아다니면서 장난치거나 대통령 앞에 놓여 있는 음식을 그냥 손으로 집어 먹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손자, 손녀가 귀엽다고 너무 오냐오냐해서 아이들 버릇 나쁘게 하는 할아버지' 딱 그 모습입니다.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아이만 보면 무조건 좋다고 웃는 그를 보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린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 아이를 안고 찍었습니다. 


자기 손녀도 아닌데 무엇이 저리 좋은지 아이를 안고, 뽀뽀해달라고 졸라대기도 했습니다. 


이미지용으로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2000년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에서 또다시 출마했을 때 사진을 보면, 유세장에 아이들만 득실댑니다. 

부산에서만 세 번이나 낙선했으면 어떻게든 이길 생각을 했어야지, 투표권도 없는 아이들을 유세장에서 신 나게 놀도록 놔두는 그를 보면, 선거용 사진 촬영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 집에 저토록 많은 아이들이 놀러 간 일이 있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완벽한 대통령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가장 대통령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은 대통령이었고, 국민이 권력이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민의식을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고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봤습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대통령이었습니다. 


성공과 출세, 부와 권력을 위해 불의를 행하지 않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게 했던 대통령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사는 세상'이 되길 원했던 대통령
누구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대통령


지금 우리 곁에 그는 없지만,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게 다 노무현 대통령 때문입니다. 



출처 : http://impeter.tistory.com/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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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김정일, 4 시간 동안 각종 현안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이 공개됐다. 

<조선일보><중앙일보><국민일보> 등은 25일 인터넷판을 통해 새누리당에서 입수한 전문을 공개했다. 103쪽의 전문에는 2007년 10월3일 오전에 진행된 131분간 1차 정상회담과 오후에 진행된 115분간 2차 정상회담의 내용이 모두 기록돼 있었다.

발췌본이 아닌 전문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다음은 대화록 전문.

<목차>

1차 회의(131분)........1
10.3(木) 09:34~11:45

2차 회의(115분)........60
10.3(木) 14:30-16:25

<1차 회의>

일시 : 10.3(목) 09:34~11:45

장소 : 백화원 영빈관

배석자

- 南 :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기록)

- 北 :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정일 :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하늘길을 열었고, 노 대통령께서는 육로로 온 것이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수해 때문에 도로 정비가 잘 안되서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변 경관이 좋아서 편하게 왔습니다. 군사 분계선을 도보로 넘으면서 제 스스로 감동을 느꼈습니다. 평양 시민들께서 성대하게 맞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원장께서 직접 마중 나와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김정일 : 남쪽에서 대통령이 오시는데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상 녹음 청취 불가로 기록 내용을 정리)

대통령 :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정말 걱정을 많이 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매우 안타까웠는데, 이번에 오면서 보니까 그래도 흔적이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땀 흘려서 잘 복구하게 된 것을 매우...

김정일 : 내 어제 상임위원장 동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먼저 만나시게 되면 수해 피해 때 많이 위문해준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대통령 :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김정일 : 감사합니다. 많이 도움이 됐고, 혈육의 정을, 우리부터도 감사하게 됐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대통령 :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 우리도 기쁜 일입니다.

김정일 : 먼저 대통령께서 말씀하십시오.

대통령 : 예. 나로서는 5년 동안 기다렸던 만남이고요,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국민들이나 전문가, 나아가 국제 사회까지도 이런저런 주문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 그때 의제가 될 때마다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만 미리 준비를 해놓은 것이 있어서 준비된 것을 가지고 또박또박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김정일 :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듣겠습니다.

대통령 : 여러가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의 외교적 절차 아니냐 생각했는데...막상 와보니까 통역도 필요없고 잠자리도 서울의 잠자리와 너무 비슷하고 음식도 똑같고 해서 정말 마음 편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음식도 입에 맞게 잘해주어서 일행 모두가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아주 백화원 여기 뜰도 아주 아름답거니와 시설도 훌륭해서 모두가 마음이 편안하고 또 우리도 이런 것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런 부러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없습니다.

김정일 : 이 건물이? 그 이야기 들었습니다. 서울이 더 역사야...비슷하잖습니까? 건설이랑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 :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김양건 : 장군님께서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에...

김정일 : 일없어, 일없어. 진지하게. 오전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몰라도...

대통령 : 내가 상당히 긴장한 모양입니다. 내가 서류를 바꾸어 가지고...(웃음) 옛날에 우리 변호사가 다른 사건 서류를 가지고 나와서 변론을 하다가 실수를 하는 걸 봤는데 내가 오늘 바꿔 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동안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반목과 대결에서 벗어나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했습니다. 지난해 남북을 왕래한 인원이 10만2000명 정도 됩니다. 이 숫자는 2000년에 비해서 13배 정도 되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쌍방간 교역액을 보면 작년도가 13억5000만달러 정도인데 이것은 역시 2000년에 비해 3.1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획기적인 사건은 없었지만 큰 진전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7년의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성과는 남북 간에 신뢰가 많이 증진된 것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속도를 높여서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김 위원장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북측에서 볼 때는 많은 한계도 보였을 것입니다. 핵 문제가 불거졌고,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 구축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진전이 아주 미흡했습니다.

아울러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어서 새로운 진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지난 7년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한 남북 관계에 걸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단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간에 신뢰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전향적 조치들에 대해서 논의를 본격화하고 남북경협도 큰 틀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 진전은 역사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분단과 함께 시작된 통일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에 부여한 시대적 요청은 앞으로 어떠한 정세 변화에도 흔들림이 없도록 남북관계를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힘을 합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못하면 백년 전의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을 통해서 무엇을 합의하고 또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고 또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평화 정착, 두번째는 경제 협력의 확대, 세번째로는 통일과 화해하는 세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회담에서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남북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아주고 책임자들이 협의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는 큰 테두리를 그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필요한 협력방안들을 합의하고 이행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남북의 공동번영을 앞당기기 위해서 남북간 경협의 장애요인을 해소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주며, 남북간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서 큰 틀에 있어서 실무자들과 국민들에게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의 공동 번영, 남북의 화해와 통일 이 세가지 의제 문제를 놓고 차례대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일 이전에 한반도에 평화가 공고하게 정착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토대위에서 교류협력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다가 보면 통일은 점차적으로 저절로 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평화의 토대위에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며,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희생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주도하에 통일지향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여 이를 위해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한 냉전체제 종식과 핵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큰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핵문제는 관련 각 측의 노력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았으며, 이는 김 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55년간 지속되는 현 상황은 청산되어야 하며 이런 면에서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김 위원장께서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함께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협상 개시에 도움이 된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 분야의 협력도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여타 분야의 교류협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미진한 군사 분야의 협력에서도 좀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대부분 명시되어 있습니다. 11월 중 2차 국방 장관 회담을 개최해서 상호 합의 이행이 용이한 사안부터 실천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은 남북간에 공동번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남북간에 경제적 연계를 강화해나가는 것이 시급합니다. 특히 경제는 체제·제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협력이 가능한 영역으로 동북 아시아 새로운 질서의 중심도 경제가 될 것입니다.

남북 경협은 남북 모두가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장기적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그동안 남북 관계를 이끌어온 중심축입니다. 지난 7년간 3대 경협이 중심이 되어서 남북관계 진전을 견인해왔습니다. 

앞으로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철도·도로 개통, 금강산 관광 특구 확대 등을 우선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공단 이외의 지역은 통행, 통신 및 군사적 보장 등 여러 장애 요인으로 인해서 경협 확대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발판으로 남북이 함께하는 경제특구를 추가로 개발해나가는 것이 장애요인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안일 것입니다. 특히 해주 지역에 기계·중화학 공업 위주의 서해 남북 공동경제 특구를 설치하게 되면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세계적인 공단, 나아가서는 경제지역으로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아울러 서해의 평화적 이용과도 연결이 돼서 남북 공동번영과 평화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남북간에 이미 합의한 농업·임업 분야 협력과 보건의료분야 협력, 지하자원 개발협력을 추진해나가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을 체계적으로 추진해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함께 공동 번영을 위한 경제발전 구상을 협의하고 우선 가능한 사업부터 하나씩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남북 간에 이러한 제반 경제협력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상시적 협의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평화는 신뢰에 바탕한 화해에서 출발합니다. 그 첫 단계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미래를 언제까지나 과거의 굴레에 가두어둘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해결자체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최소한 생사확인과 서신교환만큼은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과거 전쟁시기와 그 이후에 소식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불행한 과거를 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해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원장의 결단을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이와 함께 남북간 화해를 제도화하기 위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적어도 연 1회 정도는 남북이 정상간에 만남을 만들어야 하며, 당국간 상설 협의기구도 기구로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상호개설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통일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통해서 정리가 잘 되었다고 봅니다. 서로의 통일 방안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우선 평화를 정착시키고 점진적·단계적으로 통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또한 그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한반도 평화,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남북화애의 세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고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다보면 결국 통일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몇가지 추가 의제로서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보다 높은 단계의 포괄적인 경제협력 강화 합의서를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경협이 확대되었을 때 국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남북 경협이 확대되면, 국제시장에서는 WTO 규정을 들어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거기에 대한 대비가 앞으로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것은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 될 문제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기로 관광협력의 확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우리측이 보기엔 큰 성공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는 개성과 백두산 등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경제시찰단을 상호교환하는 문제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경제시찰단의 상호교환이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정으로 중단되어 있는데, 이것은 경제협력을 위해서 준비단계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국 전쟁시 사망한 쌍방 군인들의 유해 발굴 송환 같은 것도 우리가 한번 대화를 시작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구요. 그 다음에 우리는 북측이 IMF라든지 그 밖에 세계은행 또는 ADB 이런 국제기구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여러가지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상회담과 정부 당국자간 회담도 매우 중요하지만, 앞으로 국회간의 회담, 여러가지 제도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국회 간에 교류와 회담이 있는 것이 남북간에 교류협력을 좀 장애가 되고 있는 법적·제도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북경 올림픽에 남북단일팀 참가를 성사하기 위해 정상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가지 큰 주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나머지 문제는 앞으로 추가적인 의제로 말씀을 드린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김정일: 감사합니다. 어제 회담에서 이야기 다...

김양건: 기본적으로 다 되었습니다. 어제 상임위원장 동지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또 그대로 보고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

김정일: 밤에 보고 받다보니까 잘...

김양건: 다 아시는 것이고, 다 우리 충분히 논의된 문제입니다.

김정일: 감사합니다. 대통령께서 많은 걸 생각하시고 당면하게 풀어야 할 문제와 전반적으로 이제 국제정세 흐름에 따라서 또 국내 정세에 따라서 약간은 단계가 설정될 수 있겠습니다만, 하여간 좋은 의견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다른 건 크게 없고... 내가 원래 생각하고 있던 문제를 메모했습니다. 반복을 피하기 위해 체계를 잡아가지고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최근에 와서 정상회담에 대해서 많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최근에 와서 그 무슨 다른 어떤 충격적인 계기가 있어서 이렇게 된것도 아니고 6.15선언 나올 당시부터 김대중 대통령께서 모처럼 찾아와주셔서 훌륭한 민족끼리라는 정신을 해서 6.15 선언이 아주 훌륭한 기치다운 선언이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 민족이란 건 북과 남이 100년 전에 보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비할 바 없이 강해져 있는데, 북과 남이 갈라져 있는것이 한 개 큰 약점으로 세계 면전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가 갈라져 있으면 민족에서 비극이지만, 주변에서는 갈라져 있는 것이 항상 슬퍼도 같이 슬퍼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갈라져 있는 걸로 해서 그 주변에서 어부지리를 추구해서... 우리는 민족이 손해를 보건 이득을 보든지간에 자기네가 국제정세 문제에 이해관계가 있는 것 많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상 어부지리를 얻어서 자기배를 불리우는 자기 잇속을 채우는...

이렇게 된다고 보고 주변정세 나라를 봐도 그렇고... 우리민족만이 손해를 보는데, 이걸 앞으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단계,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하나하나 착실히 해나가면 이제 주변 정세에도 어울릴뿐만 아니라 세계정세에도 어울리고... 또 우리민족 문제를 우리 자주적으로 우리 정상들끼리 조선민족끼리 해결한다고 하는 이런 좋은 모범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상징적인 첫단계가 북과 남이 힘을 합친다는 것 자체가 두 정상이 만나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의견 교환하고 여기서 선후차를 가리게 되고 정의와 부정에 대한 것은 똑똑히 판독해서 어느 것부터 먼저해야 우리민족이 부흥, 촉진시키겠는가 이런 문제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하신 부분들은 대부분 앞으로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지금 당장은 너무 크다고 그랬나? 조급하고. 말하자면 허황하지는 않지만, 실지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먼 빈 구호가 되지 않겠는가하는 이런 주변국들의 생각이나 주변의 어부지리를 챙기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 자체는 6.15공동선언 나온 이후에 정세의 흐름에 파동이 너무 심하니까 또 노대통령께서 오시게 되면 무슨 선언이 나오겠는가하는 주변의 말도 돌아가는데. 이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김대중 대통령께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자꾸 선언을 내자고 제기하길래. 7.4 공동선언 때 우리민족이 대단히 화해에 넘쳐나서 그걸 크게 기대를 걸었는데, 이런 저런 정권의 교체와 정세변화로 해서 빈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근데 대통령께서 제기하는 모든 문제 또 우리가 합의본 이 문제를 놓고 다시 문서화해서 내면 이게 또 빈종이짝이 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럴수 없다고 좋은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그래서 6.15 공동선언, 쌍방이 힘들게 완성을 시켜서, 난 6.15 공동선언이 아주 훌륭한 문건이라고 생각... 6.15공동선언 5년 동안의 역사 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그기간 많은 발전이 있는것만은 사실인데, 앞으로 모든 문제를 고찰해보면 내 솔직한 심정인데... 우리민족이 자주성 결여로 지금 대국들의 장단에 맞추는... 정치문제도 그렇고...

이 자주성 문제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그 기치 밑에서 앞으로 단계적으로 발전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제시됐다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선언은 난 개인 생각으로는 뭐 필요하겠는가. 그저 정부라고 하면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이 두 정권이 왔다갔다 한 것밖에 없는데 자꾸 문서화되고.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서면 그 다음에 또 새로운 선언이 나오자 하고…. 빈말이 될 바에는 어느것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그 기치를 들고 나가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오늘 노 대통령게서 찾아와 주셔서 전세계 만방에 민족적 자주성을 확립한다는 자체를 시위한 걸로 된다고 생각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해 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보여주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화보장 문제입니다. 평화보장 문제는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실현시키는 데 점차적으로 나서는 문제라고 보고 아주 대통령께서도 좋은 말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견해는 무엇보다도 북남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북남 간의 평화보장 문제에서는 기본, 그것도 빈 구호가 되지 말고 실천적인 문제에서 평화가 보장되자고 하면은, 군사적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남 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것은 신뢰조성하고 평화보장에 필수적인 선결조건으로 이렇게 딱 문제를 걸어놓고 문제를 봐야하는데….

지금 모든 문제, 이때까지 지나간 5년 동안 보면 군사적 문제와 정치, 군사를 떠난 정치는 있을 수가 없는데, 지금 많은 문제가 군사적으로 신뢰가 조성되지 않고서는 이게 해결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지만, 국방장관회의를 하자고 제기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안하자 한 것도 아니고. 정세의 흐름 속에서 지금 자주성들이 결여되다 보니까 지금 지체되면 지체되고 연기되면 연기됐지.

김양건: 저번에도 그래서 중단됐습니다. 제주도.

김정일: 그럼. 대통령께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한달 이내로도 총리급 회담과 동시에 국방장관 회담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역시 선언적인 이런 문건이 암만 좋은 거 나가건 안나가든지 간에 집행을 하자고 하면, 경협문제 같은 것도 총리급에서 논의돼야되지 정상수준에서 암만 합의봤다 해도 집행단계는 총리급에서 해야되기 때문에 총리급 회담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상급회담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 정세에 따라서 했다 말았다 하기 때문에 난 바로 그 문제 생각했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 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주성 있게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면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로 국한시켜서 하자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 조금 자주성보다도, 자주성이 없다고 하면 너무 인격모욕하는 것 같은데 좀 이렇게 눈치보는 데가 많지 않은가. 좋게 말하면 눈치 보는 데가 많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주겨낻로 말을 못하는가 이렇게 내가 생각했습니다.

얼마전에 부시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할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 말이 지금 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고 보면 어떻겠는가 나는 생각합니다.

조선전쟁에 관련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나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것도 나쁘지 않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그런 조건이 될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완전히 바꾸는게 어떻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보인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 놓을 수 있지 않는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의견은 앞으로 국방장관급에서 논의되겠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이 문제만 해도 많이 완화되고 또 적대관계를 종식시키자는 공동의 의사가 나타났다 하는걸 보여주는 것임.

그것 가지고 자꾸 쌈질하지 말고, 이걸 하자고 하는 조건에서 어떤 조건이 구비되야 되갔다. 우리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공동수역 안에서 공동어로 한다. 이걸 이번 국방장관회담때 내가 인민무력부장에게 바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고 성사시켜 보라. 그렇지 않고는 군사적 적대관계 해소한다 해서는 해결 안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제일 흔한 방법의 하난데 북방한계선까지 우리가 철수하라. 이건 앞으로, 경계선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어느 쪽의 기본 틀걸이에 맞추겠는가. 북방한계선이냐? 군사경계선이냐?

이 문제는 앞으로 해결한다 치고, 당장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수역내에, 그 수역의 범위를 넓히자 하니까 우리 북방 한계선까지 군대는 해군은 물러서고 그담에 그안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이렇게 평화수역을 하면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겠는가. 일단계. 그건 앞으로 흥미있건 없건 간에 의견으로서 안건으로 제기해봐라. 남쪽에다가. 이렇게 내가 결론했었는데, 토론해보라는 과업을 준 걸 오늘 노무현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야기 했던 겁니다.

지금은 생억지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에 종이장 그려논 지도와 같이 선도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 침범했다,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물위에 무슨 흔적이 남습니까. 그저 생억지, 앙탈질하는 게 체질화되다 보니까 50년 동안, 자기 주의·주장만 강조하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전번에 서해사건때도, 실제로 흔적남은에 뭐냐? 흔적남은게 뭐야? 흔적남은게 뭐 있는가? 대동강에 배 지나간 자리고, 한가에 배 지나간 자리밖에 없다. 배 지나간 자리도 일시 무사 일어나고 없다. 흔적이 없는데.

그래서 내가 자꾸 앙탈진다 생각하지 말고 공동수역 만들면 되지 않나, 앞으로 법하는데 가서는 이론적으로 서로 역사적인 고찰로부터 시작해서 법률적으로 앞으로 해결하자, 쌍방이, 전쟁의산물이니까 좌우간. 이건 앞으로 평화협정 체결할때도 문제가 안건이 서야 할 거고 앞으로 법률적으로 한계선을 통일의 견지에서 볼때는 한계선도 좁히던가 넓히던가 이렇게 돼야지 유물로 남겨놓을 순 없다. 내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면하게는 쌍방이 앞으로 해결한다는 전제하에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공동어로 한다. 분배 몫은 어떻게 되든지간에 공동어로, 군대가 그걸 보호해준다. 그럼 분쟁점이 하나 가셔지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가...

대통령 : 예, 아주 나도 관심이 많은...

김정일 : 그래서 그거로 가야지요. 그래서 내 생각은 경제일꾼이라던가 아마 부총리급에서 이야기되겠지만 장관급에서 이야기되겠지만 아마 분배 몫 가지고 또 이야기될 것 같단 말이지 

김양건 : 아무래도 잡아놓으면 분배 몫이 논의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 : 그건 경제일꾼들끼리 논의해야, 토론하라 하고 원칙적 선에서는 쌍방이 이해를 가지고...

대통령 : 말씀중이어서 중간에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문제가 많이 말씀이 되셔서, 사실 중국배가 잡아가는 것만 남북이 협력해서 잡으면 양쪽이 다 남습니다. 분배를 어떻게 해도 남습니다. 

김정일 : 그것도 중국사람들도... 우리가 배 지나간 자리라고 얘기하고... 흔적없는, 중국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게 니네 바다냐? 문제가 이렇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토론되야 되겠는데, 앞으로 이런걸 포함해서 문제들 토론하겠다. 이걸 공동의지를 천명하는 게 어떻겠는가? 내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국방장관급 회담은 2000년 9월에 제주도에서 한 이후엔 질질 끌고 왔는데, 이번엔 평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한다 해도 좋고, 앞으로 실무적 토론을 거쳐서, 군사당국자 회담에서 안건은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를 비롯해서 북남경제협력을 군사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6자회담에 대해서도 어제 밤에 보고받았습니다. 좋은 문건이 하나 채택된 걸로 내가 알고 있습니다. 원래 오늘 오후에 보고받게 돼있는데...

이번에 어떤 문건이 나왔는가 하는건 아마 남쪽에서도 흥미있게 생각할 수 있고, 또 우리도 우리 주장이 어떻게 관철됐는가 이런거 내가 흥미있어서 6자회담에 참가했던 우리 단장을 불러놨습니다. 그래서 흥미 계시면 어떤 문건이 됐는가 하는, 물론 귀측에서도 6자회담 대표단장에게 보고를 받았으리라 생각하는데 반대 없으시면 같이 들어보는게 어떤가 생각합니다. 어떤 문건이 나왔는가?

김양건:우리 참가했던 단장이 여기 대기하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다면 불러서 들어보시죠.

대통령: 예, 위원장 뜻대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정일:나도 아직 전문으로만 봤지. 그분이 어저께 왔어요. 계관동무 오라 그러라우.

대통령:이번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위원장께서 이번에 확실히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시고 많은 양보를 하신 것으로 그렇게 보고 받았고, 그렇게 이해가 됐습니다. 어서오십시오.

(김계관 입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 김계관입니다.

김정일:어제 왔던가?

김계관:어제 왔습니다.

대통령 : 아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김정일 : 좋은 문건이 나왔는데 문건 나온 걸 개괄적으로 설명해 드리라우. 

김계관 : 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김정일 : 앉아서 얘기하라우. 

김계관 : 말씀 올리겠습니다. 

김정일 : 어떤 문건이 좋은 거, 미국 사람들이랑 좋은 문건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서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걸…. 

김계관 : 예, 이번 회담은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진행됐습니다. 이 기간에 전체회의, 단장회의, 쌍무측 형식을 가지고. 이번 목표는 초기단계 임무가 수행된 상황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다음단계 목표, 각측의 의무사항, 이행순서를 합의하는 이게 기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위대한 수령님의 의지고 우리 과업의 최종목표인 만큼 그에 맞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자는 게 기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기간 BDA 문제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봉창하고 9·19 공동성명 이행을 좀더 빨리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자고, 이를 위해서 우리가 9월 초와 지난 8월 13일에 미국측하고 쌍무접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다 합의를 했습니다. 합의된 사항을 이번 전체회의에서 공동의 인식으로 하고 5자 공동 문건을 만들어 내는 걸로 했습니다. 중국측이 초안을 내놨는데 일부 균형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고, 특히 어느 문제에서 우리의 의무는 구체적이고 미국측 의무는 두루뭉술하고, 그래서 우리가 미국측하고 바로 회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것은 무엇인가? 2007년 12월 31일까지 연내에 신고와 무력화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기 할 건, 우리는 구체적으로 날짜 줄 용의 있다. 그렇게 12월 31일까지 다 하겠다. 그 대신에 미국도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문건 해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제도적인 법률적인 장치들을 해제하라.이걸 시한부는 같다. 그래서 둘이 붙어서 실갱이를 좀 하다가 말대 말도 못하갔다 하면 행동대 행동은 언제 하갔나. 이거야 말대 말인데 다 합의한 건데. 제네바에서 합의한 거 그거 이행하자고 손을 뗐지 않은가. 

이렇게 나오기 때문에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건 명백하고, 그래서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양해해 준다면 지난 기간에 너희가 이런 거 이런 거 하겠다고 한 거 상기하고 2·13 합의문이 있기 때문에 상기하면서 우리가 행동하는 데 병행하여 제네바에서 합의한 선에서 한다. 이렇게 우리가 조금 아량을 신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문건 조미가 합의해 가지고 합의한 거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해가지고 합의문을 만들었는데. 만들고서 조금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30일날 다 모여서 폐막회의를 하는데 다 문건에 의문이 있는가? 다 없다. 좋다. 통과시켰는데 힐이 워싱턴에 갔다와야 되겠다. 가서 라이스 국무장관하고 부시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승인을 받고 오겠다. 오지 못하면 연락을 하겠다. 미국대표단 남은 성원들을 인질로 여기 놓고 갔다 오갔다. 그래서 그렇게 하라 해줬습니다. 

가서 그날 밤에 전화가 왔는데 라이스 장관을 만났다. 그날이 일요일이니까 일요일 오후에 끝나서 월요일날 오전에 라이스를 만났고 저녁에 부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그것까지 만나야 최종이 나온다. 다시 연락이 왔는데 한 자만 고치자. 우리는 동의할 때 한 자도 고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서 동의했는데. 고칠라면은 수습 못한다. 그렇게 했는데. 한 자만 고치자. 뭔가 하면 우리 신고 관련된 부분에 시한부가 내용에 들어가 있고 겉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2007년 12월 31일까지 신고한다. 이렇게 고치자는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우자고 합니다. 그래서 내용적으로 볼 때 신고에서는 우리가 핵계획, 핵물질, 핵시설 다 신고합니다.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합니다. 왜? 미국하고 우리하고는 교전상황에 있기 때문에 적대상황에 있는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갔는가. 우리 안한다. 그 다음 핵계획과 관련해서는 모든 핵계획인데 농축 우라늄 문제가 해명되는 차제로 한다. 그래서 해명할 수 있는 걸 쌍방이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무력화는 이번에 우리가 미국하고 러시아, 중국, 핵무기 보유국들이 무력화 문제를 다루는 게 국제적으로 관계가 돼있기 때문에 미국이 주무가 되고, 팀장이 되고 거기에 러시아, 중국 전문가들 초청해서 영번에 가서 그뒤 요구된 오갔다는 거 다 보여주고, 사진 다 찍게 하고, 설계도면까지 다 보여줘서 연내 가능한 대상이 어딘가 범위가 어떻게 되겠는가를 다 논의하였고 그거에 따라서 합의를 하였습니다.

전문가들 모여서, 그리고 그걸 눌렀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방법은 못쓰게 만들지도 안하며, 해외 나가지도 않는다. 우리 땅에 보관하고 있겠다. 왜냐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신뢰가 아직도 거기까지 못갔다. 당신네 하겠다고 하다 안 하면, 다시 그걸 지렛대로 돌리며 배짱으로 쓰겠다. 그것도 동의했습니다.

전체 회의에서 다 확인하고. 단 하나 주목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는 여기 개입시키지 않는다. 국제원자력기구와 우리와의 관계는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적대적이라고 하면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갔다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부득불 성의조치로서 원자력기구 인원들을 초청해왔습니다. 빨리 들여와야겠는데 그거 논의할 때 한 달 걸릴지 두 달 걸릴지 모르니까. 그래서 데려다가. 하지만 무력화 단계는 안됩니다. 그래서 누가 하는가. 미국이 책임지고 하며, 돈도 미국이 낸다. 그렇게 하는 걸로 이번에 합의를 했는데. 오늘 내일 보도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김정일: 남쪽에서도 서울에 돌아갔다며?

김계관: 네, 천영우 단장선생하고도 협력을 잘했고, 이번에 어떻게나 결과물이 나오게 해서. 미국이 보도문제랑 자꾸 저러는 거는 첫째는 일본을 배려해라 하는 것입니다. 후꾸다가 올라 앉았는데... 그거 하나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대통령 각하 방문과도 조금 연결시켜서 지금 보도를 살살 늦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건 아주 허황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 6자가 합의하고 9월 30일부로 합의해있는데 발표가 늦어질 뿐이지. 내용이야 다 돼 있는데. 이젠 그대로 집행해나가면 돼있습니다.

김계관: 요행수 봐라. 미국 사람들 아직도 그러면서. 문건을 다 좋게 만들어놓고도. 노대통령이... 다른 요행수적으로 다른 변화의 징조를 보이겠는가.

대통령: 그건 아닐 겁니다. 기대할 수가 없는데.

김정일: 큰나라 사람들의 의심과 주관주의는 우리 작은나라 사람들보다 더하니깐.

김계관: 우린 지렛대를 명백히 물려논 거는 안 되면 원점으로 돌아간다.

대통령: 수고하셨습니다. 현명하게 하셨고, 잘하셨구요. 뭐 미국이 이 회담 바라고 그러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공개적으로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서로 협력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6자회담 바깥에서 핵문제가 풀릴 일은, 따로 다뤄질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남북간에 비핵화 합의 원칙만 한번 더 확인하고,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은 6자회담에서 같이 풀어나가자 이렇게 갈거니까요.

그런 원칙은 이미 다 얘기했으니까요. 한나라당은 뭐라뭐라 뭐 핵얘기를 좀 많이 쓰라고 그걸 가지고 인제 시비를 자꾸 걸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합의는 그대로 남북간 합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6자회담에서 풀어나가자 이거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시구요. 수고 많이 하셨구요.

김정일: 그렇게 그럼 저 이 회담하고 관계없어. 설명이 될란가 모르겠어. 대략 어떤 건가 하는 게.

김계관: 설명해 드린 김에 하나만 더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하고 미국과 차이점이 뭐가 하면.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에 생긴 거니까 적대시 정책을 바꿔라 이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서 아직도 행동은 안 하고 말로만 바꾼다. 바꾼다. 좋은 말 하다가 어떤 때 뒤집어서 거친 말 또 했다 말았다. 이게 첫째 문제점이고.

둘째는 우리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반부 비핵화, 우리한테서 핵무기 빼앗아 내면 비핵화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게 차이점입니다.

세번째는 우리는 평화적 핵활동은 해야되겠다는 거고 미국은 핵이라고 불은 건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이걸 조정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꺾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어떤 태도변화가 있는가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해나가고 있습니다.그래서 이 문제는 6자 틀걸이 내에서 풀며, 6자 틀걸이가 아주 좋다. 이런 데서는 점점 일맥상통하는 점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예, 잘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정일: 북남경제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총리급 회담이나 상급회담에서 실무적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돼서 성숙시켜서 해결하고 발전 단계로 나가자고 합니다. 북남경제협력이라는 건 민족공동의 이익 하고 번영을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된다는 데 대해서는 나도 동감합니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은 단순히 경제거래가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통일, 번영에 이바지하는 아주 숭고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해서 풀어나가야 하는데 나는 오늘 대통령께서 제안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하나 즉석에서 생각한 것은 새로운 공단들을 내오자고 하는 문제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중국땅이라던가 러시아 원동땅도 아니고 조그만 땅인데 거기서 다 뜯어 공단들만 하려고 하면 우리가 이때까지 이룩한 민족자주경제는 다 파괴되고, 시장경제에 말려들어가고, 주체공학이 없어지고 하는 이런 정신적인 재난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시기... 왜냐하면 개성공단에 대해서 초기 정몽헌 선생이 와서 제기해서 내가 동의해준 문젠데. 그때 정몽헌 선생이 나하고 단둘이서 담화하고 단둘이서 밥먹으면서 앞으로 민족으로서 상징이 될 수 있는, 그 몽헌 선생이 구상력이 대단한데, 그대로 안 됐구. 내가 보기엔 개성공단이 더 빠른 길로 나갈 수도 있는데. 또 남측에서 의지가 있었으면 더 빨리 나가는데, 거기 정치가 관여됐고, 주변 나라들이 관여됐고, 내 의견은 그게 번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는가. 솔직히 생활을 통해서 많이 느꼈습니다.

실례를 들어서 재봉집 하나도 개성공단에 들어올 게 따로 있고 허용되는 게 따로 있고, 일반 경제사회에 나갈 게 따로 있고. 그래서 지금 그런 희생물이 될 바에는 좀더 개성부터 완성시켜 두 측이 노력을 기울여서 완성을 시킨 다음에 하나의 모범을 창조한 다음에 해야지.

지금 빈손으로 나가면 선언에 보도문에 보도되면 우리 인민들은 아마 개성걸 크게 기대를 안 가지고 있었다고 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에게 땅만 빌려준 거 아니야 이런 말도 하고. 그저 정치적인 대화에 말빨감이나 만들어준 게 아니야 우리 인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활성화되지 못한 조건에서 새로운 공단만 세운다는 것은 허황된 소리고, 내 체면으로서도 더 요구한다고 말할 수... 공동으로는 안 되고 남측의 의향이면 의향이고, 남측에서 구상이라면 남측의 구상으로만 보도된다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공단하는 건 찬성할 수 없습니다. 개성이 뚜렷하게 만방에 시위했으면 모르겠는데. 난 좀...

김양건: 상품 자체도 아직 인정을 안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새로운 공단이라는 건 남조선 기업인들에게 새로운 일감과 새로운 시장을 넓혀주는 데 동둠이 되는 놀음을 하면 했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아직까지는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따이 서해 해주 또 하겠다 하는데. 내가 보건데. 앞으로 토론해보면, 총리급이나 상급에서 경제 다루는 분들이 또 생각해보십시오.

나는 아직도.... 개성 할 수 있다면야 신의주, 신의주도 내가 몽헌 선생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신의주 해보라. 원래 신의주야. 근데 뭐 몽헌 선생이 신의주 까다롭고 힘들다 그러고 그러면 당신 말 들어주겠는데 어디야, 짚으라, 그래서 두 번째 안 내가 꼽은 게 해주였습니다.

그 전기랑 뭐 곤란하고, 원자력발전소, 핵발전소 아니면 큰 중유발전소, 배가 와서 발전 일으키는 해상 발전소나 하나 가져와야지 그거 아보다 배꼽이 큰데 그거 힘들다. 몽헌 선생이 반대했습니다. 어디야. 당신네 어디가 좋은가. 개성.... 그래서 내가 세 번째로 승인한 게 개성이야. 근데 이제 와서 해주 소리가 나왔는데. 우리는 생각도 못해봤고, 내가 아는 건 신의주만 생각해봤는데.

대통령: 예, 위원장께서 이번에 승낙하지 않으셔도 우리가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유라도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그런 대화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그건 우리 입장이 그렇습니다. 그건 난... 우리가...

대통령: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인제..

김정일: 그리고 군사적인 측면으로 오늘 대통령님께 솔직히 말하는데... 개성도 군사적으로 많이 양보한 거고.. 개성은 평화의 상징이라 해가지고 그건 많이 양보했는데 해주는 솔직히 내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말합니다. 해주는 군사력이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군사력이 집중된 데인데 그래서 제 얘기는 거걸 만약 하자고 하면 앞으로 개성에서 어떤 모범을 보이고 실제 그만한 걸 희생시키면서라도 공단 차려가지고 어떻게 민족 번영에 이바지하겠는가 하는 게 우리가 납득이 될 때 그땐 우리 개성 아니 해주 달라면 그땐 줘야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군대가 우선 반대할 테고... 지금 개성 당연히 무슨 내각에다가 경제 행위꾼들에게 아마 아직 개성에서 맛도 못본 주제에 무슨 뭐 때문에 해주를 또 내라고... 우리 그럼 자연히 군대는 다 물러 돌아서는 거나 같은 건데... 아마 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중요한 문제 말씀을 다 하신 것 같기 때문에 조금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서 내가 해명드릴 것 몇 가지... 해명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장하고 뭐 반론하고 토론할 생각은 없구요... 해명할 만한 것을 좀 말씀을 드리구요... 또 인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특구 이런 것이 또 못 받아들이겠다 하시면 그렇게 우리도 알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특구를 받는다 안 받는다는 그런 작은 문제를 넘어서서 크게 앞으로 남북경제를 공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상호 간에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 것이냐에 대해서 위원장 말씀도 좀 충분히 듣고 싶고 나도 또 우리 구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몽헌씨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우리 정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협의하면서 만든 구상보다 더 앞서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래서 내 희망은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을 것 같은데…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데 대해서 주요 쟁점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오후에 시간을 따로 좀 주시면 앞으로 우리가 이런저런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서로 어떤 구상이 필요한가 하는 데 대해서 구체적인 접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양건: 오후에는 참관이랑 있습니다. 식수가 있고…

대통령: 참관은 잠시 가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원장께서만 시간을 허락해주시면…

김정일: 이 회담을 그대로 연장하자는 겁니까?

대통령: 예?

김양건: 이 회담을 그대로 연장하는 것입니까?

대통령: 뭐 그렇게 하시던 위원장님 따로 만나도 좋습니다. 지금 내가 말씀을 드릴 것이고…. 아무래도 남은 시간이 더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서 오후 일정을 좀 잡아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김양건: 오후 일정은 식수 있고 그다음에 3대혁명 전시관 중공업관 참관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저녁에 집단체조하고…

대통령: 일단 그렇게 말씀드리고…

김정일: 3대혁명 전시관 참관은 특별수행원들이나 하는 거...대통령께서 3대혁명 뭐 보셔도 되고…(웃음)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 실무적인 문제에 우리가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고 실제 이렇다면 앞으로 상급회담이나 총리급 회담을 하나 새로 설정해가지고 거기서 모든 걸 토론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김양건: 경제문제라면 앞으로 총리회담이랑 어차피 한번 해야 되니까...

대통령: 거 뭐 무슨 의제의 문제라기 보다… 여기까지 와서 위원장하고 달랑 두 시간 만나 대화하고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까? (웃음) 충분히 잡담을 하더라도 위원장하고 시간을 더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배경이라든지 그동안에 우리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우리 나름대로 겪은 고충도 있고 또 미래에 대한 비전도 있고 하지 않겠습니까. 회담의 의제 딱딱한 의제로 다 소화할 수 없는 얘기들은 좀 나누고 싶습니다. 

김정일: 그래서 남쪽... 나 개인 생각은… 내 그저 짧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경제문제에 한해서는 앞으로 내가 총리보고도 이야기 했어요... 남쪽사람들한테 앞으로 문제가 토론되면 무슨 삼성이요 현대요 대우요... 이렇게 하지 마라... 재벌 단위로 하면 내가 알고 있는 대로는 그렇다…. 그것이 아버지가 그 창업자가 있을 때는 우리가 정몽헌 아니...정주영 선생하고 창업자로 내가 아주 많이 기대를 가지고 사업을 했는데…

창업자인 정주영 선생도 역시 실질적으로 자기가 모범을 보이고 한번 해보자고 했는데 역시… 내가 경제일꾼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남쪽은 경제체제가 우리하고 다르니까...어떻해든지 뭐든 의견을 내놔서 합의가 되면은 남쪽 정부가 나서서 하는 걸로 돼야지… 그 기업단위로 했다가는...이번 그 보세요 우리가 현대 하나 해보다가...창업자가 돌아가고 그다음에 그 창업자의 의도를 따르자고 하던 사람들이 또 돌아가고...지금 현정은 여사가 하나 있는데...그저 금강산 하나 경우 유지하는데...숱한 계획했던 게 다 무너지고..

그러니까 남조선의 재력을 다 모아서 남조선 당국적인 이런 투자가 되야지..투자면 투자..협력이면 협력..우리가 많이 쓴맛을 봤단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 다 기업단위로 하자고 하는데 기업단위로 하면 각명하게 그들에게 시간제공하고 그들에게 노력 제공하고..일감주는 것밖에 없고.. 실제 우리 크게 소득, 이득 본 게 없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기업 말하자면 현대가 일을 이렇게 맡아 하는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남측 정부도 그것이 타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렇게 합의를 하셨고 됐으니까 남쪽 정부는 뒷받침을 해줄 뿐이지 우리가 그런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시고요.. 여러 가지 그 말하자면 뭐가 되고 안되는지를 우리도 알아야 계획을 좀 세워볼 텐데 오늘...

김정일: 앞으로 그런 문제가 상정되면 총리급 회담을 하던가 해야지요. 우리가...난 경제는 그저 하자고 하는...활성시키자는 욕망 뿐이지...군대 칼은 쥐고 있지...경제 돈은 못 가지고 있어..그저 그렇게 알면 되겠어요...

대통령: 어쨌든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데 대해서 내가 몇 가지 답변을 좀 하고 싶습니다.

김정일: 예 말씀하세요.

대통령: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하시는데...영국의 토니 블레어의 말하자면 자문을 하는...그 양반 이름이 누구지..예, 기든스라는 사람의 책을 보니까 영국이 미국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좀 자주적으로 가라..그리고 유럽을 중시하라.. 이렇게 조언을 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은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사실...객관적 사실입니다. 그것이 해방될 때.. 그리고 분단정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 자주로 가자... 지금까지는 적어도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제로 자주란 말씀을 자주 하진 않으셨지마는 6.15 회담부터 자주적인 행보...일부입니다. 그 때...

김정일: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라는 구호가 나오지 않았소?

대통령: 그랬습니다. 그분 뭐 핵무기도 만들려고 하셨고...했는데...

김정일: 자조...자조지요 뭐..자조..

대통령: 근데 그것으로 말하자면 실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그래서 이제..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 용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다음에.. 균형외교라는 말을 우리 정부에서 와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공공연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공식 균형외교라는 말을 쓰고 있죠...

작전통수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 또 이런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건 후보 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 가 있냐.. 인계 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디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 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 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 달러가 들어도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냈지 않았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 그래서 자꾸 의제 너희들 뭐하냐.. 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 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 합의했지 않았습니까..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그렇게 없어지고.. 우리는 전쟁사실 자체를..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2년 되면 작전통제권을 우리가 단독으로 행사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어제 엊그제 국군의 날 행사 때 우리 국군의.. 우리 안보 개념은 대북 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내다본 안보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일관되게 여러가지 이야기 했습니다. 했고..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자가 되어야 한다...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뭐 내가 결의가 단호해서 그렇거나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것이 남쪽의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로서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이 가는 기운은 강력하게 굳혀 나가는 것..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 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첫 번째가 평화에 대한 어떤 의지 표현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것입니다. 난 그렇게 우선 자주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점진적 시간적 개념으로 보고...

그다음에 이제 내가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성공단을 조금 더 속도를 내자 아니면 조금 늦추자 뭐 이런 것이 하는 동안에 우리가 우리끼리 결단을 내고 속도를 빨리 내자.. 그것이 미국하고 사실은 조율을 어느 정도 합니다. 왜 그러냐.. 지금 공단에 반입하는 물건 하나하나에 대한 승인을 미국이 하고 있거든요.. 그럼 승인 안 받고 하면 어떻게 되는냐 소위 고급 컴퓨터 이런 것입니다.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승인 안 받고 하면 안되냐.. 했더니.. 그렇게 미국하고 감정을 많이 상해놓으면 승인이 어려워.. 승인을 안 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국제무대에서 소위 미국과 관계되는 모든 거래에 있어서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물건을 안 팔라고 한단 말이죠.. 지난번에 BDA때...BDA는 뭐.. 그건 미국의 실책입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 실책인데.. 그러나 어쨌든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느 은행도 안 받겠다 하는 것 아닙니까..

미측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힘이고 그 돈 받았다가 은행 거래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면 은행을 못 해먹을 판이 되니까 전부다 중국도.. 발빼고 다 발 빼고.. 심지어 미국을 거친 것조차도 미국 중앙은행을 거친 돈조차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 경제에서의 현실이거든요..

그래소 우리도 그런 점에서 자주하고 싶어도 자주하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원자로.. 경수로 그것 좀 중국에 하고 인도 뭐 이런데 좀 팔아먹을라고 하고 있는데 미국이 오케이하지 않으면 기술은 다 가지고 있는데 마지막 권리증을 그쪽이 가지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이제 권리증이 웨스팅하우스로 넘어와 가지고 이제 그쪽하고 협의를 해야 되는 것이죠.

이제 다른 종속이 아니고 기술종속에 의해서 기술의 격차에 의해서 도리없는 종속이 발생하는 것이죠.

지난번에 경수로 못한다 그 이종석씨 잘 아실 겁니다. 기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 몇 번 말로 하니까 안되다 그래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로 글로 써내라 분석보고서를 써내라.. 한번 올라왔는데 뭐 좀 자세하지 않아서 한 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보고서를 내보라 지적해서 다시 보고서를 받았는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들이 우리 소위 남측의 경제가 확 주름이 잡힌다든지 기업들이 곤란을 겪는 일들을 정부가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 되지도 않으면서 고립을 자초하는..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봐도 활발한 교역에 앞장선 국가들이 세계 패권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패권을 꿈꿀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가 7천만 경제권을 가지고, 그래서 동북아시아에 실제 중심을 잡는 이런 위치에 가자면 경제에 있어서 앞서가야 되고 경제를 유지하자면 교역권 활발하게 안 할 수 없는 이런 애로가 있다는 점을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만은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현식속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 안디디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그런 해명을 좀 말씀드리고요.. 그래서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시 대통령 종전선언 이 문제에 있어서 정말 한번 성사시켜 보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 좀 시간을 두고 위원장님하고 뭐 하나 말씀을 나누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무조건 가가지고 부시대통령한테 하자.. 이것은 아니니까 남북 간에 여기까지 갔으니까, 이제 또 이걸 부시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걸 디디고 와서 내가 위원장님께 우리 이런 거 한번 합시다 말씀드릴 수 있었듯이

김정일: 당면하게 이제 부시대통령도 시간없지요 뭐 이제

김양건: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 하여튼 뭐 이런 상징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면 더 좋고.. 아니라 할지라도 뭔가 진전할 수 있는 뭘 토대를 하나.. 디딤돌을 하나 또 위원장께서 이 기회에 만들어주시면 그 디딤돌 가지고 다음 단계로 또 나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해 군사분계선의 문제 있습니다. 이 문제는 위원장하고 나하고 관계에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해야 됩니다. 우리 남측 군인들 내보내놨더니요.. 갔다와서 그렇게 하지말고.. 지금은 아닙니다만.. 지금은 우리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NLL 타협해라 대선국면이 아니었거든요.. 그 당시는 대선 국면이 아니고..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될 것 아니냐..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 인민으로서도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혼동이라는 것을 풀어가면서 풀어야 되는 것인데...이 풀자는 의지를 군사회담 넣어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 풀자는 의지를...두 가지.. 의지가 부족하고 자기들 안보만 생각했지 풀자는 의지가 부족하고.. 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거 안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여러가지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버리면 좋겠는데..

이어 놓으면은 군사적으로 이거 뭐 안보 위협이 생기고.. 이렇게 내부에서 보고하는 사람들부터 이러니까... 이 문제는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만은 말하자면 최고위급에서 이 문제를 말하자면 가야된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뭐 한나라당이 저렇게 하지 않으면 지난 번 내 군사회담에다 이건 다루라고 했거든요.. 했는데 지금은 인제 내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있어서 그 얘기를 바로 꺼내긴 어렵지만은 ...그래서 이제 의제는 그렇습니다. 

그렇고 이걸 풀어나가는 데 좀더 현명한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거기 말하자면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해주 아이디어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정몽헌씨가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을 처음 들었는데.. 해주는 군사적으로 민감해서 잘 안 주실 것이라고 들었는데 오히려 나는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개성보다 더 해주가 민감한 것으로 들었는데...그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어떻든 해주 발상이라는 것은 그런 큰 틀 속에 들어있는 것인데.. 그냥 배경설명입니다. 그렇게만 들어주시면 좋겠구요... 그래서 공동어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것은 적어도 뭐 총리급 수준에서도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결정권을 가진 위원장과 내가 한번 얘기를 좀더 깊게 해봤으면 좋겠다... 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딱가서 NLL 말만 나오면 전부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게 아니냐...

그리고 국방회담이라든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말씀해주신데 대해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 판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또 그게 중요하다고 그래요...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인데...

그러나 문제는 6자회담에서 이미 풀려가고 있고 그 틀이 근본적인...문제해결이 가능한 틀이기 때문에 거기서 풀자.. 그런 것들을 내가 계속 주장해왔고..했습니다. 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핵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안그러면 가가지고 인제 뭐 내가 해명을 많이 해야되죠...한 줄 들어있으면은 가서 뭐 이렇게 간다...이렇게 될 것 같구요..

경제협력은 좋습니다. 위원장이 지금 때가 아니다라고 보시면 그렇게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다음에라도 뭔가 총리급에 하더라도 뭔가 위임과 지시가 없으면 앞으로 못나갑니다. 남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리에게 이런 방향으로 푸시오라고 방향을 주어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에 있어서 오늘 무슨 결론을 내고 선언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위원장하고 나하고 사이에 경제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가야 되는 지에 대해서 서로간의 의견을...위원장께서 갖고 있는 한계를 분명하게 모르고 우린 우리끼리 막 그림을 그야말로.. 허황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남측에서 볼 때 이 그림은 허황된 것이 아니고 정말 이게 돈되는 것인데..앞으로 우리가 일류국가로 가자면 이거 해야되는 것인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 이 설명을 충분히 한번 드리고.. 또 우리도 위원장의 한계가 뭐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져가면 또 그 아래서 우리가 계획을 다시 만들어서 또 제안을드리고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또 좀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나도 아프게 생각합니다. 남쪽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가지고 이것이 개방의 미끼인 것처럼 자연히 뭐 개성공단처럼 하면은 북측이 개방하고 개혁할 것이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나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뭐 여러가지 생각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견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경제확산, 기술확산 이거 해야되는 것인데...특구를 얘기하는 것은 공화국 전체의 법 체제를 한국기업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바꾼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신의주도 좋습니다. 신의주라도 그건 뭐...좋고 나진 선봉 다 좋습니다. 

문제는 이게 서로 거래방법, 기업운영방법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 특구가 아니고는 투자할 기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금 전체 투자 중에 92년...93년부터 투자가 시작됐고.. 94년부터 투자가 시작됐지만은 다 거의 실패하고요..성공한 것은 개성공단, 금강산 두 군데 뿐입니다. 지금 남측의 대북투자의 80%가 전부 특구 투자이고요...그 건수로는 80% 정도이고 금액으로는 88%가 특구입니다. 

지금 26개 시범사업 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제 1단계 분양이 돼서 230개 들어옵니다. 들어오는데 그동안 이걸 1년 정도는 내가 더 당길 수 있었는데 사실은 나도 그 결단을 혼자 할 수 없어서..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은 그런 이유로 좀 지체가 된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우리가 특구를 말씀드린 것이지 특구를 가지고 장난치자고 하는 생각은 절대 아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일단 드리고요...

그래서 이제 공부를 그동안에 보고서를 이 사람들한테 내가 이만큼 받아놨습니다.세세하게 위원장께서 좀 아셔야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지금 기업경영에 있어서 무엇이 애로에 걸려 어렵고... 이런 것들을 다 일일이 안하더라도 큰 틀에 있어서. 

김정일: 법률적인 제도적인 제한턱들은 너무 앞으로 더 어떻게 하든지 간에 앞으로 남조선 경제를 일임하는.. 돈받자고 해도..법률적인 제도적인 조정사업이 아마 있어야 된다고 본인은 생각을 합니다. 

김양건: 예, 그런 문제들은 제기됩니다. 일정한 문제들은 제기됩니다. 

대통령: 위원장께서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됩니다. 특구를 하시든 특구 이외의 것을 하시든요, 우리도 바라건데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개성공단이 2000년에 합의가 된 것인데요. 기업 입주한 것이 2004년 아닙니까, 이제 2007년에 와서 230개가 들어온 것입니다. 이게 되게 느린 것입니다. 

남측에서도 공단 하나 계획해서 시작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공단 하나 들어서는데 10년이 걸리는데요. 우리가 인천특구, 말하자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지금 만드는데 아직 황량한 벌판입니다. 2002년에 기획해 가지고 넘겨준 것인데 5년 동안 죽을 둥 살 둥 해도 아직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자유구역답게 되려면 앞으로 5년, 10년은 더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되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 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아까 김계관 부상이 그랬습니다. 적대시정책 철회하고, 비핵화는 전 조선반도에 한다. 이거 좋습니다. 이미 합의된 거니까. 지금은 6자회담 주제에 남북 문제가 안 들어있으니까 그렇지. 이것은 남북간에도 충분히 합의하고, 이미 합의가 있는 거니까 지켜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적 이용권,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안 줄려고 하면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신뢰를 확보해가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신뢰를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 국제사회에서 사실 그렇습니다. BDA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워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 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남측은 평화가 흔들린다고 하면 주가가 땅에 떨어집니다. 해외에서 빌려오는 돈의 이자가 올라갑니다. 우리는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때 악수 한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 조원, 수 십 조원 번 거 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 조원 벌었습니다. 뭐 장기적으로, 상징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6자회담 깨지면 안되니까, 미국 붙들고 같이 가야, 북측도 못나가게 해야, 그래서 6자회담 가면 아마 북측하고 가장 긴밀하게 얘기하는 쪽이 우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일 : 우리가 민족이긴 민족이죠, 한 민족이죠. 의사소통은 그래도 일본사람들 보다 낫습니다. 일본은 우리하고 상종하고 해도, 밤낮 싸우고, 그래도 속심있는 이야기는 다 북남하고 합니다. 

대통령 : 우리가 선진강국이 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하고 적대관계, 관계정상화 풀어야 되고요. 일본하고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김정일 :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 

대통령 : 말씀 드릴게 더 남았습니다. 아니면 위원장 말씀 그냥 한 시간 두 시간 듣는 것만이라도, 들어야 하니까요. 연일 줄여서 말씀하시니까...

김정일 : 양건 동무한테 얘기들었는데, 우리 상임위원장이 너무 오래 설명했다고 그러더군요. 

대통령 : 위원장 질문이나 말씀을 안 하시면, 내가 이것저것 질문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요. 오후 시간이나 잡아 주십시오. 

김정일 : 오후에 일정이 괜찮겠어요?

김만복 : 아리랑 공연과 만찬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을 하고, 그 이전 행사는 우리가 유연성을 가지겠습니다. 그래서 두 분 정상이 이렇게 좋은 얘기를 하고 계시는데 좀 더...

김정일 : 뭘 더 얘기하지요? 기본적 이야기는 다 되지 않았어요?

대통령 : 올라올 때 오전에 확대 정상회담, 단독 정상회담 그렇게 알고 올라 왔거든요. 아침에 얘기 다 했으니까, 오후에 보지 말고 가라 이러면요...

김정일 : 아직 보실 게 많잖아요. 아까도 말씀한 거...

대통령 : 오후에 만남이 없으면요...

김정일 : 정례회담이라고 하는 거, 내가 스쳐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얘기하는데, 양 국가가 아닌 이상에는 한 민족끼리니까 정례다, 정례 합시다, 이런 것은 내가 꼭 아버지 집에 설날, 음력 설에 찾아가는 거는 도덕이죠. 간다, 가야 된다, 딱 밝힐 필요 없죠. 

대통령 : 수시로 보자고만 해주십시오. 

김정일 : 수시로? 문제가 있으면 그저 상호 일이 있으면, 호상 방문 하는 거고...

대통령 : 일이 있으면...일 없으면 볼 일 없다 이렇게 느껴지니까. 그러지 마시고...

김정일 : 그 대신에 격식과 모든 것 다...

대통령 : 좋습니다.

김정일 : 그저 우리 중국 사람들 보고 얘기합니다. 당신네 하고 밤낮 외교하라 그러는데, 옆집에 국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친척집에 다니는 것처럼 하는 거지, 뭐하러 밤낮 외교 보자기를 씌워 가지고 사람이 할 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끔 만드는가. 딱딱하게 공식적인 말만 하게...그렇게 하지 말자. 내가 니네 집에 가는데 뭐 전보 하나면 되죠. 삼촌네 집에 갈 때도 급하게 가면...

대통령 : 예. 좋습니다. 동의하겠습니다. 격식과 형식과 절차에 구애 되지 아니하고 수시 만나 민족대사를 우리가 서로...

김정일 : 수시로 협의한다. 정례화라고 하면 우리사람 다 이해 안됩니다. 

대통령 : 그렇게 해 주시고요. 그러면 남측 방문은 언제 해 주실랍니까?

김정일 : 그건 원래 김대중 대통령하고 얘기했는데, 앞으로 가는 경우에는 김영남 위원장이 수반으로서 갈 수 있다. 군사적 문제가 이야기 될 때는 내가 갈 수도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돼 있습니다. 

대통령 : 아 그렇게, 우리는 전부 김정일 위원장께서 방문하시기로 약속한 것으로, 우리 국민들은 전부 그렇게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정일 : 미사일 문제요 핵문제요, 지금 가자고 해도 전 세계가 놀래서 와락와락 할 때 내가 뭐하러 가겠어요. 그래서...

대통령 : 그래서 재촉을 안했습니다. 

김정일 : 그래서 정세가 있고 분위기가 있고 또 남측도 정서가 있는 것인데 지금 한나라 사람들이랑 너무 그렇게 나오는데, 우리가 뭐하러...호박 쓰고 어디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

대통령 :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정일 : 앞으로 모든게 정상적으로 좋게 발전돼 나가면, 앞으로 못갈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또 정세와...

대통령 : 오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 남쪽 사람들의 정서도 보아야 합니다. 정서를 봐야 되겠고...

대통령 : 이번에 이 많은 공부를 해 왔는데, 위원장께서 그...

김정일 : 이번에 보니까 총 몇 시간 걸립니까? 서울서 분계선까지 오는데 몇 시간입니까?

백종천 : 평양까지 2시간 반 밖에 안 걸렸습니다.

이재정 : 개성에서 평양까지 2시간 반이고요. 서울에서 개성까지 한 50분 걸립니다.

김정일 : 50분. 비행기 이용하는 거 보다 낫습죠?

이재정 : 훨씬 좋습니다. 정말 위원장님께서 앞으로 철길도 열어주시고 땅 길도 열고, 하늘도 이젠 정기항로를 좀 만들어서 우리 시민들, 국민들이 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 그걸 위해서 우리가 일 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건 꼭 실현시켜야 됩니다.도로, 철길도 앞으로 2차 현대화 해야 돼요. 아직도 우리는 일본 잔재, 과거의 일본 잔재가 남이 있는 게 철길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신의주하고 저...경의선만 복선 지었고요 다른 데는 복선이란 게 원래 없습니다. 전쟁 이후에 파괴된 이후에는 우리가 복구도 안했고, 일본 사람들이 남긴 식민지 잔재가... 앞으로 개통한다 하면,김대중 대통령께서 철길 물동수송, 물류수송 하는데 크게 의미부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동참했습니다. 중량대로에 중량차들이 다녀야 하니까, 내가 상징적으로 연결만 했다. 내가 항상 일꾼들에게 얘기하는데, 실제 열자면 너네 할 일이 많지 않느냐. 부산에서부터 중국, 유럽으로 가는 거 속도 어떻게 보장하느냐...

이재정 : 위원장님, 우선 지금 개성까지만이라도 열면, 개성에서 생산하는 양이 한 달에 1500만불 정도인데, 만약에 이게 내년 말까지 가면 한 달에 1억불이 넘게 생산이 됩니다. 이것이 약 25%가 해외로 수출되고, 나머지 75%가 국내에서 내수로 쓰이고 있는데요. 이 물동량만 기차로 수용한다면 물류비용을 40% 줄일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하면서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나머지 철도의 현대화, 이건 또 별도의 투자방법으로 해서 해 나가면, 아마 앞으로 국민들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정일 : 그건 반대 없어요. 반대 없어. 아까 경협 문제 얘기했을 때 철도 현대화도 돼야지. 현재는 그냥 했다고 하는 상징적인 것이고, 정상 운영하자고 하면 문제가 복잡합니다. 앞으로 중량화 해야지, 두번째는 한 선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니까 경의선에 한해 복선 문제가 있고... 제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경원선 연장은 복선 못한다. 한 선으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 지형이 좀... 지도 봤죠? 어떻게 생겼는가. 남쪽이 좀 유리하지요. 평평하니까.

김양건 : 남쪽도 지금 연결은 못하고... 동해안 쪽으로는 연결이 안됐어요.

김정일 : 그러니까 그것도 지금 했다고만 돼 있지, 실제 운영하자고 달려들면... 앞으로 글쎄요. 올림픽 후에도... 베이징 올림픽도 남측에서 요구한다고 하는데, 그 기차선 이용해서... 시간이 비행기로 가는 것보다 늦지요?

이재정 : 그러나 의미로는 아마 대단히 큽니다.

김정일 : 의미는 무슨, 인기나 끌어서 뭐하게...

이재정 : 아닙니다. 남북이 함께 응원하기 위해서 같은 기차를 타고 간다는 데 대단히 큰 의미가 있고, 위원장님의 결단에 따라서는 세계의 평화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절대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 그것도 이번에 두 정상이 합의했다 하지요 뭐. 응원단은 그 기차를 한번 써 봐라 하지요.

이재정 :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대통령 : 예, 아주 좋습니다. 그것이 북측의 이미지가 아주 좋아집니다. 공동, 이거 하면 사람들이 북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투자라든지, 어쨌든 국제적인 모든 관계에서 응대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죠.

김정일 : 응원단은 가는 것만 상징적으로 한번 하고, 돌아갈 땐 비행기로 돌아오라 하지요. 그래야 되지 뭐...

김양건 : 예, 상징적으로 갈 때 그저...

이재정 : 위원장님,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까지는 한번 열어 주시면 개성공단 발전에도 대단한 기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현대화 작업도 우리 대통령님 재임 중에 한번 계획을 세워서 일단 착수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정일 : 개성공단까지라고 하면, 서울에서 개성공단까지 온다는 거지요?

이재정 : 그렇습니다.

대통령 : 앞으로 개성공단의 제일 큰 애로는 물류애로 발생입니다. 왜냐하면 원자재 들어가야죠, 제품 나가야죠, 물류 애로가 지금 곧 발생할 것이고요. 그 다음 애로가 사람이 모자랍니다.

김정일 : 개성이 공단 때문에 도로 닦지 않았습니까. 그것 갖고 안 되겠어요?

대통령 : 지금 현실이 쌀 40만톤 6월말까지 시작했는데, 11월 20일이 돼야 다 끝나갑니다. 배로 하니까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요, 우리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개성까지만이라도 물류를 할 수 있게 되고 현대화 작업을 한다면, 개성공단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요. 도로 문제도 만일 허락해 주신다면 한강하구에 공동개발을 하면 한강 하구에 있는 공동 모래의 부존량만 해도 10억 입방 미터가 넘습니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28억불이 됩니다.

김정일 : 골재 생산하는데 돈이 된다면 그건 하십시오.

이재정 : 그건 이번에 위원장님께서 확답을 해 주시면 남북에 굉장한 이득이 되고요. 그걸 통해서 개성-평양 간에 고속도로 사업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김정일 : (김양건에게) 좀 쉬고 이야기 할까?

대통령 : 북측이 골재 얘기가 나오고, 조금 전에 NLL 말씀하셨으니까...

김정일 : 한 15분 휴식하고 마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 지금 15분 쉬면 12신데...

이재정 : 오후에 시간 좀 주시죠.

대통령 :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두 번, 세 번, 네 번,만나고 오라고 나한테 짐을 지워 보냈는데, 한번 만나고 가면 노무현 쫓겨왔다 쓸텐데, 위원장께서 날 그렇게 할 겁니까?

김정일 : 요새 기자들은, 특히 남측 기자와 일본 기자들은 아주 영리스럽고, 시류에 민감하고 취재활동에서는 정말 만민을 쥐었다 놨다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제 기자가 아니고 작가입니다. 기자들이 모든 이야기를 다 꾸며내고, 저 사람들 보면 지금 기사야 작품이야 하고 내가 그러고 마는데요. 허위...

대통령 : 북측 기자들은 그런 기자들 없죠?

김정일:우린 사실대로 그저...좋으면 좋고, 나쁘다면 나쁘고. 거기서는 자꾸...돈 벌이 하느라고...

대통령:오후 시간 내주시는 게 그렇게 어려우시면 나도 내려갈랍니다.

김정일:그럼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했으니까, 자주 안건이 생기면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대통령:자주는 다음 일이고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요, 무슨 말씀입니까.그리고 실제로요, 서해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원장님 말씀도 듣고요.

김정일:‘서해문제도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양건:아무래도 군사분야는 군 사이에 많이 논의되어야 하니까

김정일:남측의 서해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는 무엇입니까?

대통령:남측의 요구라기보다는, 나는 그 부분이 우발적 충돌의 위험이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에 뭔가 문제를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고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그래서 해주특구라는 것은 그것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지 실제로 한국경제가 지금 더 바쁘게 중요한 것은 조선입니다. 이 조선 부분이 파급효과가 크거든요. 조선 하나 하려면 각종 부품공업이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그 부품공급이 해당공단에서도 만들어져야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몇 년 하고 나면 독자적으로 공단 안에서 밖에서 북측 인민들이 창업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작은 공장들 창업하고, 그렇게 해 나가면서 파급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우리도 지금 점차 중국에서 푸대접을 받기 시작하거든요, 조선 부품이라든지, 부분조립하는 소위 블럭공장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어서 우리도 중국 아닌 다른 쪽으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일부는 필리핀으로 가고, 다른 데로 가야 되는데, 한국 조선공업하는 사람들은 북측에서 이것만 열어주면 그야말로 북측 경제에 획기적인, 기술이전이라든지 효과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거 하자면 발전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조선단지를 위해서 발전소 하나 지으면 기왕이면 크게 짓고, 수리하고 키우고 해서 주변 문제, 전력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이지, 결코 특구 가지고 그것만 파먹고 도망가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개성에서 지금 우리가 10만㎾ 쓰고 있는데, 40만㎾까지 송전이 가능합니다. 해주까지 뻗어서 갈 수 있고, 개성의 인력문제가 앞으로, 지금 1차 완공되면 그 인력은 괜찮은데, 2차로 3백만평 들어가면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그 사람들 주택을 다 지어야 하는데, 주택지을 계획도 우리가 없고, 주택문제, 출퇴근 문제 등 북측 인민들이 개성으로 이사를 와야 되느냐, 아니면 상당부분 해주 같은데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느냐,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걱정입니다.

김정일:그거 오후에 하지요 뭐. 오후 1시간 정도. 1시간 반 정도 예견해서... 오침 계시지요?

대통령:아무 때도 좋습니다. 위원장께서 편리한 때에...

김정일:오침 하십니까?

대통령: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김정일:나는 40년 동안 오침이라는 법을 모릅니다.

이재정: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김정일:조금 잠들면 그것도 설치고, 많이 자면 골 아프고....

대통령:다른 날은 오침이 되도, 오늘은 안될 것 같습니다.

김정일:(김양건에게) 2시? 2시 반?

대통령:2시 반 좋습니다. 2시도 좋습니다.

김정일:2시 반 시작해서 4시 끝나면...(김양건 부장에게) 내 회의도 저녁시간으로 다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모여서 방향을 얘기하려는데... 노 대통령님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 2시 반에 하는 걸로...

대통령:얘기할 거리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김정일:그리고 보도진에다 얘기하십시오. 토의문제가 대단히 많고 심도있는 말들 많이...우리도 작가 노릇 해 봅시다. 그래서 오후에 더 한다. 그렇게 합시다.

대통령:감사합니다.

김정일:고맙습니다.

<2차 회의>

ㅇ일시: 10.3(木) 14:30-16:25(115분)

ㅇ장소:백화원 영빈관

ㅇ배석자

-南: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기록)

-北: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초반부 녹음 안됨)...

김정일:(청취불가)...내일 내가 떠나시기에 앞서 오찬을 하고자 하는데 이야기가 많아서...오늘 일정을 내일로 미루시고, 내일 오찬을 좀...일정을 좀 늦추는 걸로 제의합니다. 오늘 회의를 내일로 하시고...

대통령:아, 돌아가는 거요?

김정일:모레 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늘 오후 일정을...

김양건:예.(청취불가)...

김정일:대통령께서 결심 못하십니까?

대통령: 큰 것은 내가 결심을 하고, 일부 작은 것은 의전, 경호실과 상의해야 합니다.

김양건: (청취불가)

김정일: (청취불가)

대통령: (청취불가) 위원장 각별한 배려로 생각하고

김정일: 아니 뭐, 내가 아니고 우리 계획을 말씀드려 멋있게 모셔야죠.

김양건: 오후에 열뢰식 있고 그 다음에 그것은 안 하셔도 뭐

백종천: (김양건 부장에게) 김부장님, 실무자끼리 얘기하시죠.

김정일: 그럼 회담을 그저 오늘로 끝내고, 모든 일정을 끝내겠다고 하면 원래 계획대로 하셔도 되고

김양건: 내일 오전에 평화자동차하고 서해 갑문에 가십니다.

김정일: 보도대로

김만복: 오늘 비 때문에 아리랑공연이 어떻게 되시겠습니까?

김정일: 그것 때문에 그래요 안해도 뭐 일 없습니다. 안 보시겠다면

대통령: 충분히 말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 드릴까요,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해서 마음으로 못 마땅하게 생가하고 저항감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기회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미국이 군사력을 가지고 개입하고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가지고 정치적 원력을 행사한다. 말하자면 미운나라에 대해서는 경제제재를 한다든지 미국의 국내법만 가지고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는 과학기술의 일종인 기술적인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패권이라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나면 상호적인 관계로 변화를 형성하고

군사적인 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아서 아프리카라할지라도 타격이라든지 일시적인 침략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시대로 간다고 보기 때문에 과거 제국주의 시대 같은 그런 침략과 지배, 이것을 자위력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라크에서도 그런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고 경제·시장규제를 가지고 정치적원력을 행사하는 것도 과연 어느 시기까지 갈 수 있을까?앞으로 10년, 20년, 변화를 내다보면서 곧 한계에 봉착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그와같은 경제권력을 행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나 개별기업들이 아직까지 국내법을 가지고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황이 변해가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서 한민족이 슬기롭게 서로 단결하고 또 자주의 문제도 시간을 갖고 서서히 풀어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남측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제일 미운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중에 미국이 상당숫자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니댜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을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남측에서는 이 변화라는 것도 10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민족이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로서 그런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의논을 드리고 싶고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풀어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화의 문제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경제문제는 나는 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이 거의 공개적으로 100억달러로서 북·일 관계에 있어서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비추어서 많은 사람들이 북·일관계가 정상화되었을 때, 얼마 얼마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100억달러면 10조가 안되는 돈입니다.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1조 3천억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세수가 199조원입니다. 세수의 1%이면 199조원이니까 2조 정도 되는 돈입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금액으로만 따지면 일본이 얘기하는 100억불이라는 돈은 5년안이라고 마련할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는 쌍방이 협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에 대해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는 과정이 오늘 김 위원장과의 대화입니다. 그 다음에돈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김정일: 괜찮습니다.

대통령: 베트남과 중국에 우리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연간 약 20조 가까운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남측 경제를 위한 것입니다. 잘 살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남측 기업하는 사람들 중에서 중소기업하는 사람 모두가 아깝게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이것을 중국에 투자하는가, 베트남에 왜 투자해야하는가. 먼저 북측에 투자하고 그 다음에 남으면 중국, 베트남을 가야지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투자하고 베트남에 투자하는 10분의1만 가지고도 200억달러를 연간 투자할 수 있는데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공기업들이 남측에서 도로를 닦고 있는데 도로공사에서 도로를 닦습니다. 도로공사가 닦을 만큼 닦아서 해외로 나갑니다. 알제리, 아르바이잔에 나가고 토지공사도 마찬가지로 알제리, 아제르바이잔에 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사업을, 말하자면 모두 정부지원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기채를 합니다. 국내에서도 기채를 하고 국제시장에서도 기채를 합니다. 투자하고 투자한 수익으로 이제 갚아 나가는데

정부가 당장 국민의 세금으로 대북협력자금을 조성, 1년만에 못한다고 할지라도 공기업이 일을 하게하고 공기업이 부담하는 이자와 실제 생기는 이자 사이에 발생하는 차액같은 것을 정부가 뒷받침하면서 그렇게해서 투자를 민간투자를 땡겨가지고 정부가 주도해서 집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측에서 주택,임대주택 건설에 이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민자를 동원해서 집을 지어서, 임대를 놓고 그 임대료를 갚는데 그것이 금리장사보다는 못하니까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이렇게 해서 앞으로 10년간 들어갈 돈을 초기에 땡겨가지고 쓰고 10년 15년짜리도 있고 20년 짜리도 있습니다.

땡겨서 먼저 선투자하고 정부가 감당해나가는 이러한 방식으로도 하기 때문에, 그런 해외로 나가는 이 여력을 남북간의 경제에 투자를 하게됐을 때 북측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고 남북경제가 한꺼번에 성장하게 되고 이렇게해서 동북아시아에 말하자면 우리가 선진 강국을 남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남북이 열리면, 철도 그전에 말씀하셨습니다만, 대중국 물류사업을 할 수 있고, 러시아, 광궤라든가 있지만, 우선 나진, 선봉, 핫산 그쪽에서 항만건설하고 해서 물류 시작해서 이것을 경원선으로 또는 동해선은 실제로 물량이 없습니다. 그쪽에서는 물량이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러시아로 가는 이 철도를 하게 되었을 때 사업성이 있다고 봅니다.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기구 같은 것을 북측이 결심만 해서 공동사업을 하자고만 하면, 우리는 사할린쪽에 있는 에너지 파이프라인으로 파이프라인으로 저기 이르쿠츠크 중국으로 지난번에 우리가 파이프를 했는데, 이것을 중국으로 해서 서해바다로 해서 해저로 땡겨오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북측을 통과하면 훨씬 빠른 시일안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근데 인제 이게 되자면 또 북측경제가 함께 발전해 가야되는데, 농업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중요한데, 농업부분에 있어서는 기업적인 면보다는 민간에서 자발적, 한민족끼리 돕자는 자발적 기여와 정부가 주도해 나가는 농업부문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보건·의료 부문도 기업적 수익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남북 당국간에 협력을 해야 되고, 당국간 부담이 주로 농업이나 보건·의료쪽에 가고 그 다음에 인프라 구축이 있는네 철도,도로, 통신, 항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거 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시 이 부분은 우선 순위를 먼저 생각해서 지역을 집중적으로 먼저 발달시키고 점차 다른 곳으로 확산되어가는 속도에 맞춰서 그 인프라 구축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특구를 이야기하는 것이 북측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청취불가)으로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합자법과 합영법에 근거한 경제협력이 너무 어렵고 성공이 되질 않아서, 그래서 성공이 안되는데 반해 특구에서도 빠른 속도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성공단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고 있지만, 조금 가면 지금 인제 1단계 1차분 사업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업이 참여하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인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들어오면 어떤 기업이든 협력 업체가 생기고 납품 하청 이런 거래들이 생기고 여기서 지금 이미 개성공단의 26개 시범 사업 중에서도 공장장을 북측 사람이 맡아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기술력이 확보되면 곧 이사람들이 여기서 월급받고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개성시내에 가서 공단밖에서 공단안에서도 할 수도 있고 시내가서도 할 수 있고 곧 스스로의 기업들을 창업하게 되는 과정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같은 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고 또 거기에 납품하고 부속거래를 하는 이런 거래를 하는 기업들도 확신될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기술이전, 전수라는 것이죠. 연구소의 기술수준은 북측의 기술수준이 높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업적 시장에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연구소 수준을 생산현장에 적응시키는 기술은 저희가 높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근데 지금 개성공단의 일부 기업들은 이미 중국에서도 높은 수요를 내고 있습니다.노동자들의 생산력이 보다 높단 말이죠. 불량률도 훨씬 낮구요. 아주 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성공단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것이죠. 그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잖습니까?

단지 그 오늘 내 점심 먹으면서 남측 수행원들 보고 우리가 말을 조심하자, 우리식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 사실 불신을 야기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방해가 된다,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제의 성과를 생각하는 것이죠.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만나면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상대였습니다. 지금 남측의 어떤 사람도 중국의 체제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베트남 체제에 대해서 그 체제가 좋다 나쁘다 일체 말하는 사람이 없고 가서 남측 체제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구요.

이번에 중국에서 중국어 시험을 봤는데 미국의 마치 토플 토익시험 같은 시험을 봤는데, 16만명이 시험봤는데 11만명이 우리 남측 사람 체제에 대해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독일식의 급작스런 통일은 독일이 엄청난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능력도 없고 독일은 유럽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않고

때문에 거기에 따른 비용과 혼란을 감당할 수 없고 그럴리도, 있을 리도 없겠지만 어느 것이 이익이냐고 가정했을때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씀드리고 싶고 오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 돌파구를 열어 주셔야 됩니다.난 솔직히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측의 입장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남측의 이익만을 얘기를 하더라도 북측이 해로울 것이 없잖습니까. 지금 이제 우리가 자주문제와 눈치를 보는 문제 이런 문제도 조금만 참아주시고요.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 회담도 안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 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큰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어로협력 공동으로 하고 한강하구 공동개발하고, 또 자유로운 동산 특히 인제 대충 지역이 개발이 되면 해주를 비켜서라도 개성공단 연장선상에 계획이 서고 되면 그 길을 위한 통로, 통로를 좁게 만들게 아니라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그쪽이 서쪽은 공동어로구역을 만든다, 오른쪽에는 비무장지대에 있어서의 문제와 많은 제안을 해왔습니다만, 평화생태공원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중무기 있는 부문들이라도 우선 철수하고 점차적으로 GP도 철수하고, 그렇게 해서 자연자원도 보호하면서 남북이 협력하는 것이 큰 수입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힘을 모아 협력하는 것이 상징적인 시대를 만드는 그렇게 하는데 참 해주는 원체 완강하게 말씀하셔서 어렵습니다만

김정일: 해주문제는 내가 오늘 점심에 가서 정몽헌 선생하고 정주영 선생이 부탁해서 정몽헌 선생하고 토론할 때 이야기드렸습니다. 해주는 그 내가 이런 입장을 그때도 취했으니까. 정몽헌 선생이 뭘 제기했냐 하면 해주는 해주시를 다 하자는 것이 아니고 해주항만 이용권 달라. 이용권 달라면 자기가 항을 유지하면서 개성을 염두에 두고 연결시키는 안 하면 개성 아마 철길도 문제가 안 설테도 육로도로도 없을 때고 하니까 그 중앙분계선, 판문점 이외에는 일체 거래가 안되니까 그때 당시 요구가 1999년도(김양건, 연도 상기에 도움)에 제기해서 항만 갖고 어떻게 하려고 하냐 하니깐 항만 경영권 가지면 자기가 거기서 배로 들이대서 개성하고 군사분계선 아닌 새 통로를, 경제통로를 만들어서 개성에다 땅 만들면 자기가 하겠다.

대통령 : 지금도 해운통로는 필요합니다. 개성공단만 해두요. 지금도 해운통로는 필요한데..

김정일 : 그래서 오후에 가서 점심식사하고 군 장성들 좀 오라. 와서 해주 그때 99년도 그때 그 결심을 되살릴 때면 어떤 문제가 있겠냐 하니까, 답이 문제 없겠습니다.

그러면 노 대통령님하고 만나는데 항을 당장 개방하는 걸 내가 결심하라는가, 그건 문제 없겠습니다. 군에서 그렇게 나오고..해서 아직 내가 해주를 준다는 게 없고 그때 해주항을 해상으로서 물동량을 개성에다 지원하겠다 그렇게 합의를 보자고 하는데 정몽헌 선생이 2000년도 6월달에 와서는 그럴바엔 뭐.. 그분이 좀 막내가 됐는지 그 집안에서 떼를 많이 써요.

계속 앉아서 그렇게 선심쓸 바엔 그 좀 해주근방에 뭘 좀 줘야 되지, 그저 김만 쐬서 뭘 하겠는가. 약주 좀 들어가니까 그것도 떼를 쓰더구만요.

대통령 : 나도 막내입니다.

대통령/김정일 : (웃음)

김정일 : 그러면 해주. 그.. 개성을 확고히 하는 조건이면 해주항을 주겠다. 주는 것도 당시, 인제 와서.. 땅을 좀 내라 하니까 줄 수 있다. 해주 옆에 강령군이라고 있습니다. 강령군 땅을 앞으로 개성이 잘 되면 공업단지 해보라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 예 그래서 그...

김정일 : 그래서 그거는. 그런데 조건이 하나있는 거는, 군부에서 내가 결심하겠다하니까 결심하시는 그 근저에는 담보가 하나 있어야 한다. 뭐야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 시대 51년도에 북방한계선 있지 않습니까?

그때 원래 선 긋는 38선을 위주로 해가지구. 그거 역사적 그건데, 그걸다 양측이 포기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는 첫단계 기초단계로서는 서해를 남측에서 구상하는 또 우리가 동조하는 경우에는 제 일차적으로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담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시...

대통령 : 평화협력체제, 앞으로 평화협력지대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해야 합니다.

김정일 : 그거 해야 합니다.

대통령 : 그것이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라든지 질서를 우선하는 것으로 그렇게 한번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

김정일 : 해주문제 같은 것은 그런 원칙에서 앞으로 협상하기로 했다, 앞으로 그런 문제는 군사를 포함해서, 평화지대를...

대통령 : 군사문제 이 모든 것들을 군사적 질서, 그렇죠. 평화...

김정일 : 그래서 내가 다시 한번 지도를 봤는데 그때 그 양반이 생각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해주항에서 강령군 쪽으로 오게 되면 개성하고 연결되는 철교가 있습니다. 그 철길만 조금 손질하면 그저 개성에서부터도 해주로 기차로 오고, 해주항에서 기차로 개성으로 가고.

대통령 : 이것이 중요한 거이 평화문제와...

김정일 : 그 양반이 그걸 많이 생각했는데 그 때는 이런 법률적인 문제가 많이 구속받을 때니까, 그 때는 그저 자꾸 결심해 달라 결심하 달라 부탁을 했는데, 지금 서해문제가 복잡하게 제기되어 있는 이상에는 양측이 용단을 내려서 그 옛날 선들 다 포기한다.

평화지대를 선포, 선언한다 그러고 해주까지 포함되고 서해까지 포함된 육지는 제외하고, 육지는 내놓고, 이렇게 하게되면 이건 우리 구상이고 어디까지나, 이걸 해당 관계부처들에서 연구하고 협상하기로 한다.

대통령 :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 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 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김정일 : 그건...

대통령 : NLL보다 더 강력한 것입니다.

김정일 : 이걸로 결정된 게 아니라 구상이라서 가까운 시일내 협의하기로 한다. 그러면 남쪽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습니까?

대통령 : 그건 뭐 그런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 지면 그 부분은 다 좋아할 것입니다.또 뭐 시끄러우면 우리가 설명해서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포괄적 해결을 일괄 타결하는 포괄적 해결 방식인데 얼마나 이게 좋은 것입니까?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비전이 있는데 큰 비전이 없으면 작은 시련을 못이겨 내지만 큰 비전을 가지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김정일 : 평화지대로 하는 건 반대 없습니다. 난 반대없고..

대통령 : 평화협력지대로...

김정일 : 협력지대로 평화협력지대로 하니까 서부지대인데 서부지대는 바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다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 예 좋습니다. 실제로 한강하구에 골재 채취문제도 다 포함된 것입니다. 이 양측의 골재량이 전체적으로 약 28억불 정도가 되는데, 이 골재를 치우면 임진강 수위가 1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수방효과로 굉장히 좋은 효과가 있고 또 뭐 운반선이 왔다 갔다 하고 이렇게 되면 이 일대가 그러면 나중에 인천서 개성공단으로, 남측에서는 해주얘기가 없을 때 인천서 개성공단으로 고속도로를 설치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또 해주가 열리면 새롭게 구상해 봐야겠습니다.

남측에서 해주쪽도 가깝고 개성쪽도 가까운 이런 큰 길을 내서 인천 국제공항을 잘 활용하고 남쪽에 비즈니스 지대하고 북측의 생산지대 이것을 엮어 놓으면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 베트남이 뭐 매년 7~8%의 성장을 계속해나가는데 북측의 노동자들이 자세만 딱 바꾸고 하면 그 사람들 보다 훨씬 우수하죠. 훨씬 우수한데, 뭐 더 뒤처져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그 신뢰를 가지고 가고, 인프라 문제인데요,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하는 데에는 보건 의료 이쪽이 중요하고 농업 중요하고요 궁극적으로는 경수로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면 해주가 되면은 전력문제 도로문제 항만문제 그 지역에 관한한 얘기가 되도록..

되면 주변지역으로, 또 우리가 인제 북측에 도로를 해결해야 되는데, 철도든 도로든. 그런데 산업도 없고 사람도 없고 왕래가 많이 않은데다가 투자한다고 하면 과연 국민들이 그 도로 투자해서 나중에 아무런 수익도 안 생기는데, 왜 투자하느냐 그런데 이제 예를 들면 조선특구가 만들어 졌다. 그러면 특구와 특구사이에 물류가 많이 생기는데 투자한 사람들이 거기에 남측기업들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중국기업들도 들어올 수 있고, 또 어디 다른 기업들도 들어올 수 있고, 유럽의 기업들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데 와서 물류가 막혀있는데 이거 해결해야 되지 않느냐.

우리도 지금 남측의 도로의 절반 정도가 유료도로입니다. 유료도로라는 것은 몇년뒤에 본전이 뽑히고 나면 국가로 기부채남하고 나면 무료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경제가 성장하기까지는 유료도로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데 대해서는 남측정부가 거기서 수익의 차이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참여해가지고 전적으로 그것을 하기는 어렵지만 할 수 있고, 그래서 남측에서 학자들이 도로 닦는데 90조가 들어가느니 하는데 다 헛소리라고 나는 보는 것입니다.

남측은 도로 닦는데 비용이 90%, 서울같은 데는 95% 이상이 보상이 필요한데, 북측은 국유 토지이기 때문에 보상이 안 들어가니까 남측에 건설하는 도로의 10분의 1정도면 건설할 수 있거든요. 이런 문제도 우리가 이제 연구를 하고 해나가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력문제도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단천에 광업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수력 개발을 위원장님께서 지시를 하셨습니다만, 수력 개발이 아무리 많이 해도 400만kWe를 넘어갈수 없는데 남측이 지금쓰고 있는게 6,000만kWe를 쓰고 있는데, 결국은 전력을 해야 합니다, 하는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우선은 답사를 해나가고 점차 점차 원전으로 바꾸어 나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전력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단천에서 우리가 광물을 공동개발해 나가게 되면 경공업 원자재들을, 우리가 이미 일부됐습니다만은 차관인데 나중에...

김정일 : 예.. 그게 8,000만불 정도

경제인들이 아마 어제 내가 조선소 주는 경우에 동해쪽으로 주는 경우에 군사적으로 피해보지 않는 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군대 국방위원회 동무들 의견은 그저 원산을 원래 꼽았는데 원산은 내가 그 반대하는 이유가 원산이 그 휴양지고 만이고, 원산만 만안에다가 과거 일제시대 그 건설했던게 있는데 배수니 차수니 있는데 그거 전후에 복구하자고 하니까 편하게 해먹자고 그자리에 했는데 

그 오물이 만안으로 자꾸 들어가니까 그 다른데서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 뭐야 뒤에는 마식령이 병풍처럼 있으니까 그 도무지 그 정제, 정화할 수 없으니까 그 잘못하면 모두 다 몽땅 바다에다 밀어넣기 때문에 그것은 안된다. 

송정호에 와서 자꾸 오염이 되고 그거 안된다. 그래서 앞으로 점차로 원산 시내에 있는 철도공장하고 조선소 다 처례해라. 앞으로 철폐할 계획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대통령 : 뭐 정해주신 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김정일 : 통천에 금강산 개발이다 뭐 다 통천에 있으니까. 그 수송량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 조선소 물동량들이 100% 해상으로 해야 된다는 소리인데 

대통령 : 바지선으로 끌고 갑니다. 바지선으로 다 끌고 갑니다. 

김정일 : 동쪽은 거기가 우리가 승인할 수 있고 서해라 한다면 그 남포조선소, 그건 저 경제인들이 타산돼야 하겠으니까. 

김만복 : 예 남포조선소도 필요한 것이 거기는 수리업을 그쪽에서 하는게 좋다고, 지금도 기히 좀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 지금 그 마산 앞바다 진해만이 이 청정지역인데요, 옥포 조선소 거제 옥포 조선소가 있는데 바다에 전혀 오염이 없습니다. 우선 조선은 오염이 안나오고, 인제 폐선 해체만 아니다면 신조선 한다면 오염이 없습니다. 

김정일 : 정주영씨가 그거 폐선업하면서 원산 와보고 거기다 우선 1차적으로 해보자, 한두번 해보다가 수지 안맞ㅂ으니까 그 다음에 통천으로 하겠다. 그곳은 자기 고향이니까 거기에다 한번 차려보겠다 했는데 그러다 말았습니다. 

김정일 : 정주영씨가 그거 폐선업하면서 원산 와보고 거기다 우선 1차적으로 해보자. 한 두번 해보다가 수지 않맞으니까 그 다음에 통천으로 하겠다 그곳은 자기 고향이니까 거기에댜 한번 차려보겠다 했느데 그러고 말았습니다. 

대통령 : 지금은 남측의 조선업이 전체적으로 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 치고 올라온다고 보니까요. 우리의 LNG탱크선 이라든지 이런 고급기술을 갖고 왕신있기 때문에 금액 쪽으로는 중국에서 따라올지 모르겠지만은 물량으ㅜ로서는 중국이 앞서 있지요. 우리가 이제 고급화해 가지고, 북측과 협력을 해가진다고, 한 블록을 중국에서 만들어가지고..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김정일: 그건 경제인들에게 앞으로 총리급회담에서라든가 상급회담에서...동의합니다. 조선업에 대한..

대통령: 조선단지.. 뭐.. 이런 정도로만.. 표현, 말씀해 주시면..나머지 문제는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이재정: 중국에 투자하는 섟만 해도 한 17억불이 넘거든요.. 그래서 같이 우리가 전세계 조선업계 10대 회사 가운데 7개가.. 그겄때문에 북의 기술·인력도 양성하고 조선업공에 들어가는 인력이 건설, 용접 다 들어갑니다. 기술인력을 중심으로 16~8 양성할 수 있는 협력사업이 돼서 확실 우리에게 아주 굉장히 좋은 미래가 열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조선업은 앞으로 기계공업이라든지.. 지금 우리 한국 조선업이 처해있는 또하나의 고민이 철강 부족. 철강 부족 때무에 중국 이 철강을 다 빨아가는 바람에..

내 생각에 그런 부분은 말씀드렸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북측에서 뭐.. 예를 들어 나진·선봉에 대해서도 할 일이 많아요...

김정일: 나진·선봉은.. 내가 모스크바에서 푸틴대통령하고 약속하기를 그 사람들이 그 나진 선봉항을 그 왜.. 과거 소련시기때부터, 소련 군대 현재 지금 러시아 군대, 그 다음에 러시아 정부, 원동정부를 비롯해서 그게 지금 울라지스토크(블라디보스톡)가 제일 유일한 자기네 물류 항구로써, 그게 지금 그쪽으로 달라 할라고 하는데, 그게 그사람들은 겨우내 항이 업니다. 나진 선봉은 얼지 않으니까. 

소련측에서는 소련 군대들이 태평양 함대들이 먼먼 바다에 나가 일하다가도 들어올 때는 울라지스토크 가기 전에 나진 선봉에서 다 배를 정비하고 그 다음에 자기 기지.. 울라지스토크 글어가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이 그 후예들이니까 그 후예들도 역시 미련을 가지고 아직 나진·선봉지구하고 울라지스토크와 자매항으로 해달라..

내가 모스크바 갔을 때도.. 그 사람들이 하자.. 당연히 하라.. 원유 가공시설 공장에 유일하게 나진·선봉지역에 있으니까. 지금 그 사람들이 노력헤서 가 시작되고 그 사람들이 철길 높이 쌓아가지고 원동과 나산까지 자기 특수.. 랩을 달아가지고 원유가공설비, 원유가공때문에 그 기차를 이용하고.. 앞으로 그 사람들 설계가, 부산서부터 서부철도 있지 않습니까? 서부 철도로 해서 동해선으로 넘어가는 것도 그사람이 구상하기 때문에 나선은 거의 다 러시아 사람들이 가지겠다. 나선문제도 지금 복잡합니다. 중국, 몽고 해상을 끼고 나갈라니까.. 흑룡강성 같은 거는 바다 끼고 나갈라니까. 

김양건: 길림성도 같습니다. 

김정일 : 지금 그건데, 러시아 사람들이 다.. 

대통령: 그게 동해 경제권이라고, 환동해 경제권이라는.. 우리 한반도가 환황해 경제권, 환동해 경제권이라고 그림을 그려놓고 생각해보면..나진, 원산, 부산,. 다 아주 중요한 거점이 되거든요.. 일본 사람들이 물류회사를 일본 자국내에 만들어놓지 안혹 부산으로 가지고 옵니다. 

자기들이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을 부산으로 갖다놓고 부산에서 다시 서쪽 영역으로 이렇게 중요한 물건들이 전부 거기 모여서 중국도 나가고 러시아도 가고 똑 그렇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앞으로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가 최대한

김정일: 그건 앞으로 해 가면서.. 남측 기업도 필요하고 필요할 경우 검토돼서 열수도 있고.

대통령: 신의주 같은 곳도 상의해주시면 어떤 방향으로 가시고자 하는지 그쪽에도 내가 설득을

김정일: 신의주는 지금 중국 사람들이 자꾸 한동안 나 몰랐는데 누구지?양빈이?

김양건: 예 양빈입니다.

김정일: 그 사람들 문제가 복잡해 가지고.

김양건:원래 하다가

김정일: 자꾸 한동안 알고 보니까 중국 사람들 자체가 자기의 뜻과 어긋난다고 그러는데

대통령: 중국의 이해도 반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로 좋은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지금 한국 저기 인천국제공항이 운영 시스템에 효율성 가지고 세계 1위를 2년 했고 올해도 아마 1위를 할 것입니다. 부동의 1위를 할 것인데 그건 뭐냐 하면 같은 시간에 손님과 물건을 가장 빠르게 가장 편하게 하는 운영하는 노하우거든요 그걸 맡아 있는 사람도 안목이 좋고 외국 기업에도 많이 근무하면서 안목이 좋고 해서 그런 사람이 와서 아이디어를 내 보라고 하면우리 정부에서 우리가 해온 우리 정부에서 소위 한반도 물류 사업에 대해서 전부 구상을 짜 가지고 내놓으라고 해서 전국 그래서 중국의 예를 들면 저희가 원전 진출이라든지.. 또 고속철도 진출이라는 것이라든지 쩡칭홍 부총리와 저와 협의를 해 가지고 전부 들어가도록 서로간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전기술을 가지고 오는데 미국한테 의존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캐나다, 프랑스, 한국이 네 번째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전적으로 찬성해 가지고 이미 작년에 발주한 것, 금년에 발주한 거에 주기기를 우리가 공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요번에 제가 3주전에 갔다왔는데 저쪽 얘기가 주기기 공급에 대해서 더 나가가지고 원전 운영까지 와서 해 줘야겠다. 우리한테 뭘 배우려고 그러느냐 하면은 빠른 시간 내에 전체에 설계기술 건설 기술 운영 기술을, 우리가 국산화를 했거든요. 그것을 배우겠다. 고속 철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한 거에 대해서 우리 것을 배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현재 협력이 굉장히 잘 됩니다. 그렇게 레벨을 올려주시면은.. 걸려 있는 거 다 해결해 나가면서 얼마든지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 좋습니다. 반대 없습니다. 앞으로 좌우간 이런문제, 집행문제 가지고 아마 총리급을 아마.. 상급회담을 너어서서 총리급을.. 시기적으로 어떻게 작전할 것인가 지니하게 전문가들끼리 토의해 나가고.. 노 대통령께서 제기한 대로 조선소를 건설하겠다. 투자하겠다.. 해주 공단으로 보나, 뭐라 그러겠습니까.

대통령 : 특구로 보십시다. 그래서 전체를 서해 평화협력지대로 선포를 하고, 그 안에 한강하고 개발. 해주공단.. 공단이라고 해도 좋고 특구라도 해도 좋고.. 다 좋습니다. 그 안에 공동어로구역 만들고, 북쪽에 생태평화공원까지 되면..

김정일 : 그건 아니.. 정전협정 문제가 우선.. 그게 풀어진 조건에서.. 평화협정을.. 중간에 시범적으로 하고.. 그렇게 되야지 지금은 아마.. 아직 그 전단계로서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 부장이 문서화 하십시오..

김만복 : 예, 알겠습니다.

김정일 :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대통령 : 없습니다.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되는 겁니다. 실제로.. 뭐가 달라졌나 하면은 이전하고 달라진 것이 이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북측에 대해서.. 반대에 앞장서 왔습니다. 이제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북측과 같이 손잡고 가야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일본·중국..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이건 뭐.. 혹시 오해될까 싶어 조심스러운데요.. 어쨌든 북측이 경제발전해 봐야 하니까. 인민의 생활도 중요하고, 경제교류나 협력사업이 중국쪽과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남측과는 불신 때문에 막혀있고.. 자꾸 일어나다 보면은 전 인민의 생활과 산업이나 경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 경제권이 되어 버릴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 걱정도 하거니와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속에 이야기 되는 것은 중국에 사는 조선상을 통해서도 많이 얘기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경제전략이 영토나..제도나... 경제분야에서는 동북3성이 아니라 북을 염두에 두고 동북 4성으로 생각합니다. 경제면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좋아합니다.

대통령 : 한민족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남측에서 가장 걱정하는 문젭니다.

김정일 : 경제적 측면에서 동북 4성이다. 중국사람들은 좋은 의미 말하면서 교통문제를 풀자면서 얘기되는데, 단동~평양, 자기네 식. 자기네 규격과 같은 고속도로를 1년 반 2년내 자기들이 만들고, 압록강 다리를 철교와 동시에 고속도로 다리를 놓겠다. 우리나라에게 부담이 안되게 자기네들이 하겠다. 좋은 의견입니다. 우리를 도와주고 하자는데 좋고...그러나 동북에 있는 조선사람들은 중국사람들에게 4성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 정치인들보다도 인민들이 더 신경이 더 예민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대통령 : 동북 5성으로 만들어 가지고 남측까지 포함해서, 그렇게 부르라고 하고 실질적으로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동북 3성과 연해주 이젠 뭐 연해주쪽에 있어서 남북협력도 장차로 구상해 볼 수 있어...

김정일 : (웃음) 좋은 일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럴싸하게 비치는 말들이 많고, 실제 이간시켜서 모든일이 잘 안되게끔 하자는 것도 있고 선의에 대해서 찬물 던지는 그런게 있습니다.

이재정 : 대통령께서 이제 서해안 경제협력·평화지대 이런 말씀을 쭉 해주셔서 좋은 제안으로 위원장께서도 받아주셨는데, 우리가 개성공단 해보니까요. 어려운 점이 딱 하나입니다. 중국의 심천지구가 특구로 성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행의 자유... 근데 여기 개성공단에는 실지로 통행의 자유가 없습니다. 거기 기업하는 사람들도 저녁 5시면 CIQ로 나와야 하고 들어가려면 3일전에 신청해야 되고, 그래서 제일 필요한 문제가 통행과 통신.. 이 두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개성공단이 경쟁력을 가지고 빨리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야... 여러가지에 대한 기업인들의 기대가 있으리라 생각이 돼서.. 위원장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꼭 해결해 주시면..

대통령 : 말씀을 한번 드릴려고 했는데요. 총리급 회담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그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 개성공단 할 바에는 똑똑히 해주어야... 국방위원회 원래 생각도 그렇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거기서도 역시 통신이라든가 모든 게 개성지구가.. 단말이 돼야 합니다. 이게 북반부와 연결이 안돼야.. 단말이 되는 것이 기술적으로 담보되면 개성지구 통행, 통신 개방시키고 활성화시켜 나가겠다. 저번에 시멘트도 부려 봤지요. 우리가 부려봤습니다. 거기까지 기차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합니다. 실무적으로 토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재정 : 개성 근로자들 통근을 위해서라면 개성역까지는 아마 이걸 해야 통근에 도움이 될겁니다. 사람이 많으니까요. 지금 버스로 실어 나르는데요. 이 버스가..

김양건 : 여기 열차다니는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화물이니까요. 화물은 봉동역...

김정일 : 여기에는 별도로 또 만들라 하지..

대통령 :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할라구 합니다.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되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군부라는 것은 항상... 북측에서도 우리가 얘기 듣기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정일 : 완고한 2급 보수라 할까요?(웃음)

대통령 : 사업에 적극 참여하셔서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하는 필요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군사적 보장... 합의가 되면 군사적 보장이 따라와 주어야 하는데..

김정일 : 그건 얘기를 하면 길어질까봐 다음 기회에 얘기를 할 수도 있고 기본, 서두에서도 얘기했지만, 미국과의 문제가 우선 기초적으로 안정이 되면 국내적으로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분계선은 앞으로 점차 전환되지 않겠는가. 전환되는 걸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군부가 아마 그래서 법석을 떠는 게 아닐까. 모든게 정황이 주변 정세가 안정이 되고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군부가 있을 자리가 없죠.

이재정 : 위원장님 제가 통일부 장관이라.. 관심가지고 있는 부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위원장님께서 늘 생각하시는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금강산 면회소가 거의 완공.. 금년 12월에 사무국에 지원을 받고 내년부터 상시 면회가 될 수 있도록 위원장님께서 해 주시고..

김정일 : 그야 모..

김양건 : 그것은 지금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김정일 : 지금 텔레비로 모 한다구만..

김양건 : 화상상봉도 하고 편지...

이재정 : 화상상봉 해보니까요. 이게 속만 타고.. 손도 못잡아보니까요. 사실은 더 안타깝더라고요.

김양건 : 그런거 있습니다. 다 연로하기 때문에.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늙은이들 한번 여기 데려오고..

대통령 : 화상상봉은 병행하고 면회소 상봉은 상시적으로 해주십시오. 욕심을 좀 더 부리면 생사확인이 중요합니다.

김양건 : 흩어진 가족들 확인하는 과정에 생사확인을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한번 하고자 하면 수백명씩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 우리쪽에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9만3천명입니다. 이분들이 일년에 3천-4천명이 연로해서 가시니 이 사업을 빨리 성과있게 해서.. 서둘러 주십시오.

김정일 : 실무적으로 생사확인이라는 것은..

김양건 : 명단을 보내오면 전국을 다 조사해서 확인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김만복 : 통일부 장관은 자기 소관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소관은 아닙니다만 두 가지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자연재해 공동방지를 위한 농업협력과 보건의료 협력도 다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 일반적으로 농업협력을 해야하고, 자연재해 공동방지 부분에서도...

김만복 : 지금 농림부장관이 와 있습니다.

김양건 : 그거 어차피 농업·보건은 내각에서 하는 일이니까 부총리급에서 이제 새로운 협상기구를 내놓으면 거기서 포괄적으로 하는 게 합리적인 걸로 봅니다.

대통령 : 한줄에다 이거 하나로 묶어서...

김정일 : 묶어서 한줄로...

이재정 : 대표단에 보건·농림부장관도 같이 이 문제를 위원장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셔서 총리·부총리급 회담에서 아주 성과있게 일을 진행할 수...

백종천 : 이산가족들 간단한 편지 왕래는 할 수 있도록 요청드립니다.

김정일 : 우리 이번에 총리급 회담이라는게 원래 제기된 게 없지?

김양건 : 예 없습니다.

김정일 : 한두번 총리급 회담 하는 척 하다가 흐지부지 해지는 게 북남 관계의 표준이 아닌가. 제 세계에 맞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 내야지 과거에 하던 제도가 미국 사람들한테도 그랬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 과거 50년 전쟁이 과거 조상들이 만들어낸 허물을 왜 현실의 인간들이 와서 변명하고 책임져야 하고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올브라이트도 공감했습니다...

북남관계도 그렇습니다. 과거 조상들 거를... 모든 게 시작과 맺음이 있어야 되는데... 계속 그렇게... 그게 내 그랬어. 봉건이 심한 조선에서만 이게 있을 수 있다. 

유산은 그저 계속 끌고나가는데 지금. 나쁠 땐 나쁜 것 어떻게 그 청산하면 되겠는데...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런 면에선 모든 망념에서 우리가 새롭게 갱신시킬 것은 갱신시키면서 내 도덕관에서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조상들이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라고 이렇게 하겠나? 이 시대는 이미 지났단 말입니다. 20세기는 20세기의 모든 일이 다 20세기에서 시작됐고 20세기에서 끝났고 20세기 중도에서 끝난 것도 있고... 새 세기 아닙니까? 새 세긴데... 세계 누구도 지금 20세기 것... 왜 19세기 것 소리를 하냔 말이야... 그 못된 일 한 것들만 자꾸 상기시켜 가지고 이렇게 하는가?

내가 저 미국사람들 보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올브라이트한테도. 그 사람들이 인정합니다. 왜 그 조상들... 지금의 정치인들이 50년 전쟁에 관여한 사람이 있나? 그 사람들이 다...

대통령: 위원장 뜻을 잘 알겠습니다.

김정일: 그리고 새로운 관리법, 관계법, 윤리법. 도덕법 만들어야죠. 확립하고, 새 세긴데... 기술 분야는 다 지금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다 넘어왔는데 지금... 아날로그를 찾으려고 해도 아날로그로 갈 수가 없는데 지금은 디지털이 막아놔서... 공연히 안된단 말입니다. 아날로그하고... 

그런데 이것 우리 역사들이 관해서는... 우리 지금 앞으로 셔먼호 사건부터 계산하거나 3.1운동사건부터 이런 것 계산하면 미국하고도 영원히 만날 수 없고... 3.1운동 보면 영원히 뭐 상대하고 상종 안 하게 돼 있고...

광주 사건도 그렇지 광주사건도 광주의 여인들이 민족적 그 수치와 모욕당한 것 가지고 광주사건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일본사람들하고 모두다 편안하죠? 그런데 이 무슨 문서 놀음하게 되면 서로... 깔아부술려고 하고...

대통령 : 참 일본 문제는 어떻게 하실랍니까?

김정일 : 일본은 아베 요 바로... 조 위치에 아베가 왔댔습니다. 고이즈미가 오고... 아베한테 당신네 조상들을 봐서... 조상들이 아주 그 자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 당신도 앞으로 우리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앞으로... 그런데... 부장관이지?

김양건 : 예

김정일 : 관방부장관이 돼서 왔었드랬습니다. 후꾸다가 거기(관방장관) 있었고... 그런데 집권하자마자 그냥 우리한테 뭐 악착스럽게 돌변해 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대통령 : 만나보니까 두 분이 아주 다릅디다. 후꾸다 수상하고 아베 수상하고 완전히 다르고요. 아베 수상은 뭐 납치문제를 가지고 정권을 잡은 사람이고 초강경이구요. 후꾸다 수상은 아베수상 되기 전부터 만나서 얘기 해봤는데... 그 양반 상당히 유연합니다. 다른 사람하고... 한국 그... 한반도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잘해가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쪽도 민심의 부담을 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긴 하지만 어떻든 좀 유연할 것입니다.

김정일 : 우리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금방 직위에 올라섰는데 그저... 아베꺼하고는 선을 갈라보고 똑똑히 지켜보라... 다르게 보고... 우리 내부에서는 그저 관망하는 단계입니다. 

대통령 :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길래... 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쟎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 이런 얘기만 하는 겁니다.

김정일 : 없습니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내가 없다고...

대통령 : 그렇기는 한데... 하여튼 미일관계는 풀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납치문제가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 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 알아듣겠고요.

이상하다 그것만... 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 내가 그런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간에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차제에 미일관계 다 풀어버리고 통상 세계에서 한번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새로운 전기를 한번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 주치의가 국제회의 갔다 와서 학술회의 하는데 다 오는데 북측 사람만 안 오는 회의가 많고.. 그 외에도 관세청장 회의, 국정원 정보기관 회의 있는데..... 얘네들이 뭐하냐 하면 서로들 정보교환하고 노하우들 교환하는 것인데....

이 교류의 장에서 같이 교류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고립이 되고 좋은 정보들을 다 활용을 못 하기 때문에...어쨌든 이번에는 어디에서 국제회의에서 남북의 지도자가 같이 나란히 앉아서 일본이 무슨 말할 때 말도 좀 같이 하고... 의논도 좀 하고 그러는 것이... 지도자급은 아니라도.... 지도자급은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라도 실무급이 나가서 교류하고

세계 통상질서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야 이제 말하자면 21세기 한반도가 선진국대열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남측사람들이 왜 특구 특구 하냐..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특구가 되면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깔아서 편리하고, 두 번째로 사람들이 마음대로 다녀갈 수 있는... 그외의 지역은 인프라가 불편하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고 오고 할 수 없고... 만나서 상시적으로 토론하고 이런 것이 안되니까.... 이러니 기업하는 사람들이 안 하려는 것이죠.

그래서 특구 말씀 드리고 위원장께서 폭넓게 수용해주시고 그랬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체적으로 이 부분을 좀... 사람들이 통행왕래는 확 열고... 특히 기업하는 사람들은 연수 이게 중요합니다. 계속 작업하고 연수하고 또 외부 프로들을 데려와서...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하고... 계속 연수하거든요. 학업 연수 이걸 계속하는데... 그런데 그게 자유롭지 않으니까... 지금 잘하고 있는 곳이 엘칸토가 잘하고 있고... 나머지는 그 점에 애로를 느끼고... 그 부분에 대해.... 국제사회하고의 관계는 이번에 완전히.... 6자회담 이제 털어버립시다..

김정일 : 예. 이번에 뭐 선언문이라고 보도하나?

김양건 : 원래는 선언문을 좀 토론했는데.... 합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공동보도문으로 각기 표기하고 보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 선언으로 해주십시오.

김만복 : 7천만 국민들이 다 기다리고 있고 두 분 정상분을 쳐다보고 계십니다.

김정일 : 6.15 선언과 대등한 선언이라는 뜻인지요?

대통령 : 그렇지 않습니다. 후속 선언이죠.

이재정 : 6.15 선언에 기초해서 발전되는...

대통령 : 선언 많이 합니다. 중소 간에도 선언했고 한중간에도 선언하고

이재정 : 두 분 정상께서 처음 만나셔 가지고 이렇게 많은 합의를 하셨는데 그것을 선언으로... 하셔서 6.15 선언의...

대통령 : 한걸음 앞서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무적인 회담은 아니니까요.

김정일 : 선언하는데... 그저 오늘 합의된 것... 그것 다 조항에 다 넣으시오.

김만복 : 예 그러겠습니다. 김(양건)부장하고 협의해서 넣겠습니다.

김양건 : 이번에 저희들이 선언을 기본 큰 선에서 선언문 제기했더랬는데...

김정일 : 조금 실무적인 문제들이 들어가겠구만.

김양건 : 이제 제기된 문제들... 합의한 문제들을...

김정일 : 합의한 문제를 무게있는 문장을 잘 만들어서 희망을 주고...

대통령 : 안되면 또 부속서를 만들어 가십시다. 

김정일 : 희망도 주고 신심도 주고... 그렇게 하려면... 이 방북길이...

대통령 : 어떻습니까? 위원장께서 나를 좀 더 보시겠다고 하면 뮈 하루도 좋고 이틀로 좋구요. 아니면 위원장께서 저희쪽에 하실 말씀이 계시면...

김정일 : 내일 내가 국방위원회 일정이... 내민 과업들 때문에 내일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대통령 내외분이 평양방문을 마감 장식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저 한번 대통령 하고 같이 식사를 같이 해야겠다. 그래서 일명 오찬에... 그랬는데 우리 서기진들에게서 “아니 그 오찬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가고 하겠는데 어떻게 1시간만에...” 아니 오후에 당장 떠나는데 뭐 한시간반도 좋으니까. 건배만 할 수 있는 시간만... 건배 한 5분이면 된다. 그러고 말았는데... 오늘 비는 멎었나?

김양건 :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5㎜정도 비가 계속 온다고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단체조 공연이 힘듭니다. 

김정일 : 날씨 어드래? 

전희정 : 지금 비가 계속 내립니다.(전희정이 중간에 들어와 답변후 퇴장)

김정일 : 지금 오오? 밤에 온다는 것이 아니고?

전희정 : 지금 계속 내립니다. 내일 오후에 비가 그치겠다고 합니다. 

김정일 : 대통령 일정을 침범하지는 말자 말이오. 일국의.. 그 기다리는 분들도 많을테고... 그러니까 일정대로 그냥 하는데, 오늘 비오면 집단체조 그만두고... 100% 하고 왔다는 것보다 오늘 선언만... 합의해서 선언만 좋은 것 내면 되지 뭐. 봤다고 하는 것 까지도... 어디까지나 계획이야...

대통령 : 위원장께 청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내가 이제 뭐 임기전에 또 올 일이 있으면 와야 겠습니다만. 이제 다음 대통령 곧 뽑힐 것이니까 제대로 못할 것 같고...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김정일 : 대통령께서 오시겠다고 하면 우리야 언제든지 문열고 놓고 있고... 언제든지 침구는 항상 준비해놓고 있겠습니다.

대통령 : 특별한 대접은 안받아도...

김정일 : 대통령께서 시간되시면 앞으로 금강산에도 아무때나 오시고... 그리고 평양에도 아무때나 오시고...

대통령 : 백두산도 안쪽으로 해서... 중국으로 돌아오는데...

김정일 : 현정은 여사 요번에 오셨나?

김양건 : 예 왔습니다

김정일 : 현정은 여사하고 요전에 약속한 것 정세때문에 길이 끊겼는데... 백두산 관광 자꾸 해달라고... 금강산처럼 해달라 해서... 정몽헌 선생이 있을 때 정몽헌 선생보고 당신이 한번 가보라. 그래서 그분이 가보고, 야 조선땅에도 이런 무공해 지대가... 이것 최곤데... 이것 자기 달라 그래서...

대통령 : 관광사업이든 무슨 사업이든 정부하고 합의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김정일 : 그런데 여사께서 자꾸 뭐 남편께서 받은 것을 하겠다고... 그렇게...

대통령 :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김정일 : 그렇게 하는데도 정부가 개입해야죠.

대통령 : 그런데, 관광공사가 들면 좀 훨씬 잘할 수 있습니다.

이재정 : 협력해서 하면...

대통령 : 어쨌든 어떤 쪽에서든 선택하시는 대로 협력하겠습니다만, 정부 단위로 하면 자꾸만 말이죠. 흔들기를...

김정일 : 내가 말하는 것은 중국이 지금 본격적으로 최근에 백두산에 남쪽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김양건 : 거기로 많이 옵니다.

대통령 : 해마다 10만명씩 가는데... 우선 나부터 좀...

김정일 : 그래서 비행장 문제가 섰죠. 비행장만 되면 남측 사람들이 뭐하러 평양에서 왔다 다시 또 평양에서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있는가? 서울에서 직항으로 백두산으로 가면 되지 않나? 그렇게 해야지 많은 돈을 왜 중국에다 갖다 뿌리야겠나? 비행기 타는 바람에...

이재정 : 위원장님 아주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김정일 : 서울서 오면 거기와서 그저 숙식비만 내면 되는데... 비싸게 중국갔다... 아마 서울항공이 중국에서 가 내리지 않고 백두산에는 못가죠?

이재정 : 못갑니다.

김정일 : 그것이 아마 중국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그렇게 안 줄겁니다. 

이재정 : 사실 매년 10만명이 엄청난 돈을 중국에다 뿌리고... 쓸데없이 자고... 그러고 하거든요. 인천에서 백두산까지 직항로로 해서 딱 가서 관광하고 돌아오게 하면 정말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정일 : 글쎄 그렇게 하자구요. 현정은 여사보고 정부당국하고도 토론해서 나중에 직항하라.

이재정 : 그렇게 확실하게 좀 해주시죠.

김정일 : 백두산 관광도 합의서에 넣으십시오.

김만복 : 예. 넣겠습니다.

김정일 : 그럼 중국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안하겠는데… (웃음) 자기들 거기다 기지 다 빼고 했는데….

김양건 : 지금 장백현에다 비행장 건설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 삼지연 비행장이 작년도 그래가지고. 그게 아마 비행장 건설 때문에 남측에서 피치랑 많이 받았죠?

이재정 : 저희가 지원했습니다.

김정일 : 항공사정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이재정 : 저희 생각으로는 앞으로 협력을 해가지고 백두산에 좋은 호텔도 좀 짓고요. 그래서 좀 더 활발하게 정말 좋은 지역에 우리 민족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김정일 : 제주도는 백두산보다 앞질러서 다 잘해놨다고…. 국제적으로 관광지를 만들어놨는데… 백두산은 그렇게 안해놨습니다.

이재정 : 그런 점에서 앞으로 좀…. 뒤에 만들면 더 잘 만들 수 있으니까요.

김정일 : 그래서 백두산 관광도 허용했다는 것을 한 줄 어떻게….

김만복 : 예.

김정일 : 그러면 노 대통령님께서 이번에 와서 그저….

김만복 : 한 보따리(웃음)

대통령 : 국민들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김정일 : 어떡하시겠습니까? 오늘 구애받지 마시고…. 전 내일 오찬에 초대하겠습니다.

대통령 : 나는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해서….

김만복 : 수표는 내일 점심때 하실 수 있도록 저희들이 준비를 좀…. 그 전에라도 가져가실 수 있게….

김정일 : 오찬 들어가기 전에 오찬 여기서 하자구. 불편하게 왔다갔다 하지 말고….

김양건 : 예 알겠습니다.

김정일 : 여기서 하는데…. 오찬 직전에 여기서 수표하고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요. 

김만복 : 예,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김정일 : 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대통령 :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김정일 :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 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 이번 노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 선언보다 선언도 중요하지만 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대통령 :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 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 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 놓자

김정일 :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오늘 만남이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나는 이렇게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 다음 여행권까지 따 놨으니까…(모두 웃음)

김정일 : 여행권인데 하나 보충하겠습니다. 무료 여행권입니다.(모두 웃음) 미리 약속합시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 그리고 참…. 내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 중에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김양건 : 예 저한테 주십시오.

이재정 : 위원장님 어떻게 좀 적당히 좋을 때 한 번 이산가족 고향방문 하도록 허락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산가족들이 참 아주 애달프게….

대통령 : 이제 다음에 합시다. 오늘은 보따리가 넘쳐서 안돼요.(모두 웃음)

김정일 : 오늘 아주 수고 많았습니다. 정열적으로 많이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임동원 선생 건강하지요?

김만복 : 예 건강합니다.

2008년 1월 3일 최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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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시바우 주미대사는 임기말 퇴임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전투적인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문서 가운데 한국 관련 문건을 공동 번역하는 ‘위키리크스 한국’이 22일 공개한 “노무현, 레임덕에 빠지지 않아”(2007년 11월 8일)란 제목의 정보보고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이것이 왜 대부분의 관측가들이 (퇴임후에) 전 대통령으로서 조용한 삶을 보내지 않을 거라 예상하는 이유”라며 이같이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는 “노무현은 한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대통령”이라며 “몹시 이념적으로 기득권층 – 재벌, 직업 관료, 엘리트 교육 제도, 전통 정치인-에 맞서왔다, 과거 남한 대통령들은 대개 정치 정상에 오르면 5년 동안 잘 머무르는데 만족했었다”고 분석했다.

임기말 레임덕과 관련 버시바우 대사는 “김영삼과 김대중은 막판 임기 한 달동안 아들이 연루된 스캔들과, 아시아 금융 위기 등으로 한 자리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휘청거렸다”며 “노 대통령 측에서도 최근 고위급 인사들의 스캔들이 몇 건 있었으나 김영삼을 괴롭힌 한보 스캔들이나 김대중 세 아들 모두가 연루된 뇌물 스캔들과 같은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캔들에서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대부분 오락가락하는 인기를 구가했지만 앞으로의 남은 임기동안 몇몇 정책 아젠다를 진행하면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노무현은 비교적으로 깨끗하게 대통력직을 수행해 왔으며, 이는 임기 마지막 해에도 정치적 아젠다를 계속 드라이브 걸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정치적 아젠다 지배, 역사적인 정상회담 개최, 한미 FTA 서명같은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효율적 국가 운영 실패라는 이유로 언론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있다”며 “그의 화법 처리 미숙은 FTA와 정상회담으로 얻은 지지도를 허비해버리는 일련의 실수들을 낳았다”고 보고했다.

“그를 지지하는 최측근들조차도 미 정치담당관에게 비공개적으로 말하길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정책들을 두고 한국민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데 실패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퇴임 이후 상황과 관련 버시바우 대사는 “많은 식자들은 그의 핵심 지지세력 ‘노사모’와 함께 이듬해에 창당을 할 것이라 예상한다”며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든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로서 역할을 계속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성취할 수 있는지에만 관련되어 있으며 선거를 진두지휘하는 데는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요 고문관인 정동영은 미 정치 참모관에게 이라크 자이툰 파병 연장 발표 시기는 우연이 아니라 한다”며 “이는 정동영에게 이명박을 견제할 이슈를 주기 위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노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정동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명박의 승리는 바라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청와대 접촉선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지미 카터와 앨 고어처럼 자신이 비추어지길 바라며 금후 다년간은 자원봉사주의(volunteerism)와 환경 이슈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면서 “이 약속들을 지키든, 많은 이들이 바라는 대로 정치 현장에 머물든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무너뜨릴 정치 조성을 위한 작업을 계속 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3178&PHPSESSID=fbc9f884b241077764157aff89c808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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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전 장관을 만나다 2

2011. 5. 30.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전편에 이어 김정길 전 장관에 대한 인터뷰는 계속 된다.

지난 인터뷰 보기 (클릭)

1부를 안 보신 독자분들은 반드시 위의 링크를 눌러 1부를 먼저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이제부터 또 다시, 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수십년이 넘게 같은 지역 부산에서 똑같이 지역주의 철폐를 위해 싸워온 동지이자 친구였던 정치인 김정길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인터뷰는 2011518,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전 청와대 비서관 출신 노혜경씨가 배석한 가운데 행해졌다.

딴지측에서는 본 우원과 자칭 지구 최강의 미남, 죽지 않는 돌고래 기자가 참여했다.

- 배신자 취급을 받다

: 그렇죠. 그런데 그 다음번 선거에서는 더 끔찍했어요. 우리 집사람 고향이 전남 고흥이에요. 근데 삼당합당이 있었잖아요.

삼당합당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야당하겠다고 약속했다가 김영삼이 따라서 약속을 뒤집고 여당노릇을 하던 국회의원 57명이 배신자가 아니고, 안 따라가고 남은 노무현과 김정길이 배신자가 된거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드디어 김정길의 역사에서 노무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59, 그러니까 지역구 46, 전국구 13석중에서 노무현과 김정길 단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57명은 김영삼과 노태우간에 벌어진 야합의 결과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대로 따라가서 여당의원노릇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저열한 배신행위가 어떻게 전통 야도이며 부마항쟁의 중심지였던 부산 시민들에게 받아들여 졌는가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현실은 꿋꿋이 버티며 남아있던 두 정치인, 즉 노무현과 김정길에 대한 가혹한 낙선의 연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정길은 이러한 가혹한 응징을 버티며 노무현과 함께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하게 된다.)

근데 거기다가 김영삼이 배신했다고 내가 먹어야 할 욕이 나한테 안 쏟아지고 우리 집사람에게 쏟아지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 집사람이 고향이 전남 고흥이니까, 김정길이는 여편네 잘못 만나서 신세 망쳤다 이거에요. 김영삼이 따라 갈건데, 김영삼하고 제가 거제도 같은 동네 출신이거든요. 김영삼이 따라 갈건데 여편네가 못가게 해서 김영삼이 버리고 김대중한테 갔다 이거에요. 이렇게 비방을 하는 거에요.

그렇게 욕 먹으면서 이십년 동안을 떨어지는 선거만 했어요. 나야 뭐 내가 내 소신대로 지역감정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싸우는 거니까 상관 없지만, 내 집사람이나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십년간을 그 고생을 같이 해야 하는 겁니까?

이건 무슨 선거가 한번 떨어지면 다음엔 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그 희망조차도 전혀 안보이는 거에요. 그런 지옥같은 경험을 우리 집사람은 이십년동안이나 해 온거에요. 국회의원 선거 다섯 번, 부산 시장 선거 한번, 여섯 번 낙방에 이십일년차입니다.

(이 부분에서 김정길 전 장관의 목소리는 톤이 높아지다 못해 고통과 분노에 떨리는 수준까지 올라갔었다. 사람이 겪는 고통은 자신이 겪을 때 가장 큰게 아니다. 특히나 자신의 소신으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본인은 오히려 고통이 영광의 상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주변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족들,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오히려 자신이 받는 고통보다 더 크고 무서운 상처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저 청문회에서 한번 반짝했던 스타로 사라질 수도 있던 노무현이 본격적인 정치가로 변신하게 되고 나아가 우리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정도의 훌륭한 정치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런 울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울분을 과거 노사모 시절에 함께 했던 모든 친구들은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고 표현을 했었다. 단순히 비교하기는 좀 무엇하지만, 김정길의 경우라면 울분이 소낙비 수준이 아니라 장마비 수준으로 이십일년간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그걸 맞으면서 버텨온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

- 다시 가족 얘기로

: 지금도 루머는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알아본 바로는, 김정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낙선을 계속하면서도 정치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처갓집이 상당한 재산이 있어서 그 힘으로 버티는 거다, 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실제로 부산에 계시는 분들에게 들은 얘기고요.

: 전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집사람의 집안은 정말 가난한 집안이고요. 저와 만날때에 집사람은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오빠들 뒷바라지 하고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 아까도 제가 여쭤 봤지만, 장인어른 직업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얘기거든요.

: 재산도 하나도 없고 아주 일찍 돌아가신 분이었어요. 빨치산 뭐 이런 거 하던 사람은 아니었고요. 가난하게 사셨던 분이죠.

: 그럼 만나시게 된 계기는 어떤가요?

: 서울에서 제가 조그만 중소기업을 했었어요. 국회의원 보좌관 하다가 중앙노트산업사라고 사업을 했었어요. 예전에 나왔다~ 만화노트~ 해가지고 꽤 유명했었어요. 신세계 백화점에서 제가 만든 노트만 팔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 그게 기억이 날것도 같은데요.

: 그 때 그거 해서 돈도 좀 벌었어요.

: 그럼 그 때 자본을 좀 축적 하신건가요?

: 첫 번 선거때 홀랑 날렸어요. 뭐 브로커에게 당하기도 했고. 그 때는 선거하면 돈 많이 들었습니다.

: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선거를 무슨 돈으로 하셨습니까?

: 나중엔 진짜 돈 안드는 선거를 한거지요. 돈도 안 가지고 맨입으로 했어요.

: 선거는 그렇다치고, 그 사이사이에는 어떻게 생활을 하신 겁니까?

: 선거 사이사이에는 진짜 힘들었어요. 쫄딱 망해서 친구 동생 단칸방에 얹혀 살기도 하고 제가 진짜 안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입니다. 배추장사까지 해 봤으니 말 다했죠. 이혼하고 재혼하기 전에 그런 겁니다. 큰누님 집에 얹혀 살기도 했고..

: 그러다가 사모님을 만나신건가요?

: 그 사업할 때 서울에서, 아는 지인이 소개해 줘서 만난 거에요. 젊고 예쁘고 해서 살살 꼬셨더니 살살 넘어오더라고. (일동 폭소)

(이것은 매우 좋지 않다. 이미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맨날 정치권 언저리에서 낙방만 전문으로 하는 남자가 젊고 예쁘고 생활력까지 뛰어난 여성을 얻게 되다니..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반면에 지금 힘든 상태에 있는 모든 솔로부대원들에게는 희망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다들 힘내서 살살 노력해보시라.

근데 살살 꼬시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그것까지는 자세히 물어보지를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자세히 물어볼 것을 약속드리는 바이다.

)

: 사모님 얘기는 그 정도로 하고, 자녀분들은 어떠십니까?

: 집사람 포함해서 우리 가족 전원은 아빠가 정치 안하는 것을 바라죠. 이제는 그만 좀 편케 살았으면 좋겠다, 이겁니다. 이번에도 사실 부산시장 선거 나오는데, 집사람은 이혼서류에 도장찍어 놓고 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쫓겨나서 보름만에 겨우 집에 들어갔어요.

: 이거 꼭 쓸 겁니다. (전체 웃음)

(이 얘기는 인터뷰 과정에서는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인터뷰 끝난 뒤에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자세한 얘기가 나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얘기지만 간략히 정리해 보자면 이런 스토리였다.

부산 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결심하고, 이 내용이 언론에 알려진 뒤에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 것을 언론 측에서 어기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가족들에게 출마 결심을 얘기하기도 전에 신문에 출마 사실이 발표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걸 집에서 먼저 보게 되고..

격분한 사모님께서는 실제로 가방에 옷까지 싸서 말 그대로 "쫓아낸" 것이다.

결국 그 자리를 피해 옷 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온 뒤에 며칠 뒤에 슬그머니 집에 가본 결과 현관 자물쇠 비밀번호까지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아들에게 전화해서 번호를 물어봐도 안 가르쳐 주고...

결국 가족들을 설득해서 선거를 치루기는 했지만, 이런 일화는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선거라는 것이 당사자야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것이지만 가족들에게 감당키 힘든 고통을 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그 자녀들이 겪은 고통은 타인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하물며 비명에 스러진 남편과 아버지를 보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인 김정길의 앞에는 이러한 과정이 또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여태껏 겪었던 규모와는 비교하기 힘든 규모로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가능성이 많다.

부당한 권력과, 그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위해 이런 과정들을 교활하게 겪어 내는 경우 말고,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이룩하기 위해 이런 과정에 뛰어드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부디 그런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진정한 정치인의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하는 기원을 해 본다.)

- 부산 시장 선거, 그리고 왕바보 김정길

: 그래가 마지막에는 가족들하고 가까운 친지들이 이젠 뭐 신문에도 나고 그래서 무를 수가 없으니까, 진짜 이혼할 수도 없고, 정 그렇게 부산시장 하고 싶으면 민주당으로 하지 말고 무소속으로 하라고 그럽디다. 민주당으로 하면 떨어질거고, 무소속으로 하면 될 수도 있다 이거에요.

전에 국회의원할 때에도 그런 소리 많이 나왔어요. 무소속 하면 될 수 있다.

1야당 원내총무 할 때, 공천심사위원장을 했었어요. 김원기의원하고 같이 공동으로 했는데, 그 때 이철, 노무현, 유인태 이런 분들이 같이 했었어요. 공천심사위원장은 공천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도 노무현하고 나는 지역감정하고 싸워야 된다고 부산에다가 공천주고 그랬었어요. 우리 스스로. 우리는 떨어지는 곳에다가 공천하고.

생각해 보세요. 김대중 대통령 입장에서야 우리가 김영삼 안 따라가고 남아 준거만 해도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디를 보내 달라고 한 들 안 보내주겠어요? 서울에 제일 좋은 곳으로 호남 출신 유권자들 많고 언제나 민주당이 이기는 곳, 그런데 가면 우리도 좋죠. 비례대표 달라 그러면 1,2번 안 주겠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역주의하고 싸운다고 맨날 떨어질 곳으로 찾아다니니 이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도 나오고..

요번에 부산시장 떨어지고 나니까, 부산 사람들이 나보고 그럽디다. 노무현 보다 더 바보라고, 왕 바보 김정길이라고.

: 그 정도로 자녀분들이 반대를 하시고 그러는데, 부산시장하고 비교도 안되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 난 사실은 부산서 국회의원 다섯 번 떨어지고 나서 정치를 그만두려고 그런거에요.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한거죠. 내가 된건 아니지만, 나와 함께 3당 야합에도 반대를 했었고, 계속 친구이자 동지 사이로 함께 가시밭길을 걸어온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고, 그건 내 가슴에 맺힌 한이 반넘게 풀리는 것 같았어요. 부산 시민들이야 안 알아주지만 국민들이 알아주는구나 하는 거였죠.

그래서 내 정치 인생을 마감하려고 한거에요. 김대중 정부에서 행자부 장관도 하고 청와대 정무수석도 하고 했기 때문에, 또 실제로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한 살이 많습니다. 제가 45년생이고, 노 전 대통령이 46년생이시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친구이자 동지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내가 또 굳이 행정부에 들어갈 일은 없다는 생각도 든거에요. 장관을 하겠습니까, 뭘 하겠습니까. 그래서 임명직은 안하겠다 하고 물러 나온거에요. 그러고 자청해서 대한체육회장을 한 거에요. 그건 임명직이 아니고 선출직이니까. 거기선 선거해서 이겼어요.

그래 갔다가 체육회장 그만두고 중국 북경에 북경대 동북아 연구소에 가서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러다가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놀라서 봉하에 갔다가 다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 노무현이 김정길에게 진 빚 세가지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좀더 자세히 듣기로 하고요. 그렇게까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시는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지역감정하고 싸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 내가, 김영삼 따라 갔으면 벌써 7선의원입니다. 안 그래도 국회의원 한번 더 하려고 생각했다면, 부산서 출마 안하고 서울로 옮겼으면 더 했겠죠.

사실, 노대통령이 부산 국회의원 한번, 부산 시장 한번 떨어지고 나서 저한테 상의를 했었습니다. 김의원, 내 도저히 부산에서는 안될 거 같아서 서울로 옮겼으면 하는데, 명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습니다, 하시더라구.

그 때 그 분 선거구가 중동구였고, 내가 영도였는데 사하 보궐선거에 내가 떨어진 다음에 중동으로 가느냐 영도로 가느냐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한 것이 노 대통령 선거구였던 중동구를 내가 맡아줄테니, 서울로 올라가시라고 권한 겁니다. 그렇게 명분을 만들어 드렸던 거에요. 그 명분으로 서울로 올라가신 거에요.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사실 노 전 대통령은 저한테 빚이 세 가지나 있다고 평소에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 중에 한 개도 안 갚고 저래 서운하게 떠나버린 겁니다.

: 그 세가지가 뭔가요?

: 노 전 대통령이 부산 시장 출마를 할 때, 조직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 제가 이기택 계 2인자였습니다. 제가 부산시장 출마하려고 그랬거든요. 그 때, 노의원이 저한테 얘길 하신겁니다. 제가 부산시장 나가고 싶은데, 김최고위원, 그 땐 제가 최고위원 할 때였거든요. 김최고위원이 하실거면 제가 못하고, 혹시 생각이 없으시면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하시더라구요.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이 하고 싶다고 하는데, 제가 하겠다고 말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제가 저는 생각이 없으니 한번 해 보세요, 해서 노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 나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이기택 쪽에서 황백현이라고 무명의 후보를 낸 겁니다. 경선에서 당시 노의원이 겨우겨우 이긴 겁니다. 한 사오십표 차이로 이긴거 같은데, 그 때 돌아가신 손태인의원이라고 있었는데, 손태인 의원하고 저하고 말이 좀 통하던 사이였던 겁니다. 그 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황백현이라는 사람을 공천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손태인의원한테 얘기해서 무조건 노무현을 밀자, 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제 지역구하고 손의원 지역구하고 모두 노무현을 지지함으로써 겨우겨우 부산시장 후보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게 하나 큰 빚이죠.

그 다음이 방금 전에 얘기했던 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로 가면서 제가 지역구 맡아 준 게 또 하나의 빚이고요.

세 번째는 노 전 대통령의 책, "여보 날 좀 도와줘"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92년 최고위원 선거 하는데, 저는 92년 대선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모시고 전국 캠페인을 했어요. 이걸로 동교동계나 호남에서 저한테 무척 고마워 했었다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요. 그러니 그 쪽의 지지를 아주 많이 받았던 시점이죠.

거기다가 이기택 계에서는 제가 2인자에요. 결국 당시 언론에서도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 하게 되면 전부다 김정길이가 일등을 할 거라고 예측을 했었죠. 동교동 호남계에서도 밀고, 이기택 계에서도 밀고, 이러니 당연히 일등이죠. 모든 최고위원 후보들이 전부다 나랑 손잡길 원했었어요.

최고위원 선거는 네표 찍기입니다. 그 때 노 전 대통령이 저한테 와서 또 상의를 한 겁니다. 김 최고위원님, 제가 최고위원을 한번 해 봐야 겠으니 좀 도와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을 하고 같이 나간 겁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각 시도를 다니면서 합동 연설회를 하는데, 제가 뭐라고 연설을 하고 다녔냐면, 이랬어요.

여러분, 첫 번 한 표는 동교동계인 권노갑 의원을 찍어 주시고, 두 번째 표는 저와 같이 영남에서 고생하는 노무현 의원을 찍어 주십시오. 그리고 세 번째 표는 저한테 주십시오, 뭐 이러면서 아주 낭만적으로 선거운동을 한거죠. 아무리 네표 찍기라고 해도 세 번째로는 부탁을 해 둬야 나도 찍어 주지, 네 번째로 부탁하면 여차하면 밀리잖아요.

: 다른 분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대신 해 주신 거네요.

: 그런 셈이죠. 그러는 중에 노 전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어떻게 했냐면, 광주 호남쪽에 가서, 그 쪽에 아무래도 김정길 표가 많으니까, 김정길 의원은 어떻게 해도 당선이 될테니, 저를 좀 찍어 주세요 하고 연설을 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동교동계에서도 그렇고 호남도 그렇고 이기택 계도 그렇고, 맞다, 어차피 김정길이야 우리가 안 찍어도 당선이 될거니까 고생하던 노무현을 찍어 줘야 된다, 뭐 이런 분위기가 생긴 겁니다.

결과를 까보니 예상밖으로 저는 떨어지고 그 분은 당선이 된거에요. 그래서 그 책에도 보면, 나는 김정길 의원의 낙선을 딛고 최고위원에 당선이 되었다, 라는 식으로 적히게 된 겁니다. 이거 저한테 빚진 거 맞죠.

: 그 빚은 이제 평생 못 받으시겠군요.

: 그렇겠죠.

그 때, 부산에서 두 번 떨어지고 종로로 갈 때, 저라고 왜 서울로 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 생각이 들었어요. 3당 야합 할 때, 딱 둘만 남아서 싸우기로 했는데, 선거 한 두번 하고 둘다 서울로 도망가 버리면, 이건 정말로 좀 창피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 하나라도 좀 남아서 싸움을 계속 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양보는 양보대로 하고, 저는 남아서 계속 바보 같은 싸움을 계속 한 겁니다. 아마 만약에 제가 서울로 갔다면 노 전 대통령이 남아서 제가 해왔던 싸움을 계속 했을 수도 있겠죠.

어찌 했던 간에 요즘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역구도 옮기고 심지어 정당도 옮기고 이리저리 이익을 좇아 너무나 가볍게 처신을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 한 두명은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결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의 칭호를 받게 된거고, 이십일년 동안 국회의원 선거 다섯 번 낙방도 모잘라서 부산시장 선거까지 나가 또 떨어진 저는 왕바보 소리를 듣게 된 겁니다. 후회는 없어요.

- 3당 야합을 반대한 이유

: 얘기를 좀더 진전시켜서 꼭 묻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3당 합당을 반대하면서 남으신 건데요, 이런 일은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피해를 보게 되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자신의 내부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주시죠.

: 그렇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만 해도 군정종식을 약속한 거고, 59명의 국회의원 모두가 야당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국민들에 의해 당선된 거 아닙니까? 한 정당의 국회의원들 모두가, 몽땅, 야당을 버리고 여당으로 가겠다고 하는 거, 이것은 치욕의 역사입니다.

또한 어느 시대고 그 시대의 양심을 지키는 소수는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소수일 수 밖에 없어요.

조선시대를 봐도, 생육신 사육신 같은 분들은 왜 그랬겠습니까? 세조를 임금으로 인정만 하면 누구보다도 더 영화를 누렸을 사람들이 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자손들까지도 다 죽임을 당하고 왜 그랬겠어요? 그들에게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당시 시대의 양심이 있었고 그 양심을 지킨 겁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그들을 위인으로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일제 때도 마찬가지죠. 천황폐하 만세만 부르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을 거부한 소수가 있었기에 시대의 양심이 지켜진 겁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양심을 지킨 겁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에요.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겁니다. 그 양심은 민주주의였죠.

3당 합당 당시에, 그렇게 몰려가는 59명 중에 그래도 한 두명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 역사를 남겨야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 한 두번 더 하는게 옳은 일이냐, 국회의원 한번 못하게 되더라도 그 시대의 양심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것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한 겁니다.

저는 고향 선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 해도, 대통령 김영삼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 보다는 김영삼의 이름 석자가 훌륭한 이름으로 기록되는 게 더 중요한 거라고 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마르코스가 대통령을 했지만 역사가 그 이름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비록 대통령은 못했지만 김구 선생의 이름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한 거에요.

그래서 난 반대를 한 것이고,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지금이야 자식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손자, 그 아래의 후손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을 할 것인지, 국회의원도 좀 하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시대의 양심을 지켰던 사람이다, 라고 기억을 해 주는 게 더욱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 때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국회의원 하려고 따라다닌 걸로 기억이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한 덕분에 국회의원도 못하게 되고 피해를 본다 할 지라도 그게 훨씬 더 소중한 일이라는 거죠. 후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이고요.

거기다가 저는 부산시민들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언젠가는 알아 줄 것이라고 믿어서 이십년간 싸워 오다가 이십년 동안 안 알아 주길래, 그러면서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제 대리만족이라도 했으니 이제 마무리 해도 되겠다고 맘을 먹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정말로 가족들에게 소홀히 한거 사과하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책도 쓰고 농사도 좀 짓고 한다고 약속했고, 밀양에 텃밭도 마련하고 집 설계까지 다 해놨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거에요.

그 냥반이 그렇게 되시는 바람에 이제 또 다시 시작된 겁니다. 저도 아주 힘들어 죽겠어요.

이 과정에서 문재인 비서실장하고 얘기도 많이 했어요. 정치 좀 안하려고, 문재인 실장한테 부산시장 출마하시라고, 그러면 내가 선거대책본부장도 다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설득을 했더니, 오히려 저보고 이럽니다. 장관님 무슨 소리시냐고, 장관님은 노무현 대통령하고 똑같이 정치를 해 왔고, 지역주의하고 이십년이 넘게 싸워 왔고, 그걸 부산시민들이 다 아는데, 저는 정치를 안 해온 사람 아니냐고, 그러면서 오히려 저보고 하라는 거에요. 그렇게 저는 문실장한테 하시라고 그러고, 문실장은 저한테 하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결국 그렇게 임박해서 결정이 되어 가지고 제가 부산 시장 선거에 참여한 겁니다. 공식 선거운동을 23일밖에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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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비서실장

: 이 부분은 진짜 여쭤보기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솔직히 여쭤 봅니다. 문재인 비서실장님하고 대선 문제로 진지하게 얘기해 보셨지 않습니까? 어떻게 되는 건가요?

: 실제로 여러차례 얘기를 했어요. 저나 문실장님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다 같이 삼십년 넘게 함께 활동해온 아주 오래된 친구들입니다. 서로 쳐다만 봐도 다 속내를 이해할 정도에요. 제가 보기에는, 문재인 비서실장님은 정치를 안하실 겁니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바뀌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 현재로는 안하실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건강도 문제가 된다고 하시더군요.

: 그래도 문실장님에 대해서 너무 강하게 기대를 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요.

: 부산시장 선거 끝나고도 많이 얘기를 했어요. 워낙에 본인이 자기 소신이 뚜렷하신 분이고 정치에 직접 참여는 안 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고 얘길 해야겠죠.

-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섭렵하다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김정길 전 장관님의 전문적인 경험분야에 대한 얘기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인터뷰 전에 살펴 봤더니, 놀랄 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셨더라구요. 일단 국회의원 두 번, 그러니까 의회 경험이 있으시고요, 거기에 장관, 그것도 제일 중요한 행자부 초대 장관을 하셨습니다. 또한, 행정 전 분야를 조망할 수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도 역임하셨고, 대한 체육회장하고 KOC(대한민국 올림픽 위원회)도 하셨고, 그런 거 하시면서 외교적 역할도 수행하셨더군요. 대북 외교 차원에서도 김정일 위원장하고 맞대면 하셨던 소위 "김정길의 굴욕" 사건도 있었고..

사법부 빼고는 거의 모든 분야의 행정 경험을 가지신 건데, 이런 경험을 하신 분은 진짜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것 뿐이 아니고, 중소 기업도 하고 장사도 많이 했습니다. 이것도 꽤 큰 경험이었어요. 중소기업 하면서 매번 돌아오는 어음 막으려고 밤잠 못자고 노심초사도 해보고, 장사한다고 시장통에 나가서 배추 사다가 트럭에 싣고 큰 식당 찾아 다니면서 납품도 해보고, 이런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 흔하겠어요? 별로 없을 겁니다.

사실, 모 월간지에서 저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월간조선 김민배 기자의 글이다.) 이달의 인물 뭐 이런 코너에 실린 기사였는데, 김정길 장관이 행자부 장관을 하면서 두가지 일화를 남겼다 라는 거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행정 주무 장관으로 공무원을 질타하는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 라는 책을 썼다는 거였습니다. 그 책이 11주 연속 베스트셀러로 올라가서 오만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장관 재직기간 중에 제 동생을 구속시킨 적이 있습니다. 제 동생이 작은 공장을 하다가 부도를 냈어요. 일억 얼마 정도 부도였는데 경제사범인거죠. 그래서 도망을 다니고 수배가 되었다가 불심검문에 걸린거에요. 경찰이 불심검문으로 잡고 보니까, 장관 동생인거에요. 모르고 잡은 거죠.

그 때 정기국회 와서 있었던 상황인데 비서가 들어와서 얘길 하는거에요. 장관님 큰일 났습니다. 하면서 동생분이 어딘가에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겁니다. 이걸 어째야 할까요? 하고 물어보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색을 하고 나무랐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법대로 하는 거지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고 한겁니다.

그게 보도도 안되다가 며칠 후에 보도가 좀 되었었죠. 장관 동생이 구속되다.. 이런걸로. 아마 꽤 보기 드문 일이었을 겁니다. 현역 장관의 동생이니까요.

그게 집안에선 저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몹쓸 짓을 한 셈이 되는 겁니다. 무척 미안했지만 제 입장에선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지요.

(제대로 된 공직 생활을 한다면, 거의 대부분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게는 나쁜 짓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조금씩 망가져 가기 마련이다.

한 국가의 최고 장관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동생이 돈 일억을 못 막아 부도가 나는 상황에 빠졌음에도 아무런 도움도 못 줄뿐더러 수배 중에 구속당하는 상황에서조차 외면을 하게 된 것이다.

그냥 쉽게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란다. 만약 지금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각 개인의 친형이 정권의 실세인데 내가 돈 일억을 못 막아 범죄자가 되는 상황에서 매정하게 외면을 했다고 생각해 보시라. 아마 십중팔구 형제의 의를 끊겠다고 하게 될 것이다.

공직이라는 것, 공공에 봉사한다는 것, 그만큼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그렇게 무섭고 힘든 일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IMF 시절입니다. 그 때에 제가 장관이었는데 구조조정 하면서 공무원들 무수히 짤라 냈습니다. 제 손에 피 묻히면서 다 잘라낸 겁니다.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에요. 그래서 해직 공무원들이 우리 집 앞에 와서 항의 농성하고 막 그랬습니다. 그 분들 한분 한분은 모두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 아닙니까, 그런 일들이 참 힘들었어요. 그래도 은행도 감원하고 기업도 감원하고 다 그랬던 시절이니까요. 공무원이라고 다를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시절에 외국에 출장갈 일이 있었습니다. 앨 고어 부통령 초청으로 워싱턴에 정부 핵심포럼에 가게 되었던 거에요.

장관은 의전이 있잖아요. 그 의전에 따르면 비즈니스석을 타게 되어 있는 겁니다. 호텔은 오성급 호텔 스위트룸을 쓰게 되어 있고. 그런데 제가 생각해보니, IMF로 전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고 내 손으로 공무원들을 그렇게 잘라내 놓고, 내가 장관이라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던 거에요. 거기다가 일행 중에 교수분 들도 있고 한데, 그 분들은 삼등석에 타고 가고, 나 혼자 비즈니스석에 타고 가는 건 맘도 편치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삼등석으로 예약을 지시 한거에요. 이코노미 클래스인거죠.

그랬더니 대한항공 측에서 소동이 벌어진 겁니다. 일찍이 이런 일이 없었다는 거죠. 장관이 삼등석을 예약하다니. 그래도 저는 그냥 삼등석 타고 다녔습니다. 해외에서도 그랬고, 호텔도 가급적이면 사성급, 삼성급으로 한단계씩 낮춰서 이용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절약을 했더니 한번 출장에 여비가 천팔백만원 정도가 절감이 되더군요. 그래서 그걸 반납을 하게 된거죠.

체육회장 할 때에도 핸드폰 사용요금 같은 것도 내가 사적으로 쓴 건 내가 냈습니다. 한번은 평창 유치 건으로 큐바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또 동생이 무슨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영 맘이 편치 않아서 국제 전화를 좀 했더니 요금이 백만원이 넘게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쓴거니까 내 돈으로 계산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체육회장을 임기를 못 채우고 사표를 냈잖습니까? 그 때 감사원 감사를 한다고 와서 한 일주일을 뒤졌습니다. 뭐라도 한건 걸리면 언론에 흘려서 망신을 주고 창피주고 모욕을 하려고. 아무리 뒤져도 하나도 안 나오니까, 결국 그냥 가더군요. 만약 그런 사소한 핸드폰 통신 요금 같은 것도 이 때 흠결로 걸릴 수도 있었을 거 아닙니까? 저는 최소한 공직자 윤리는 철저하게 지켜 왔다고 자부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와서 벌였던 많은 짓거리들, 그 중에서도 치졸하기 짝이 없던 전임자 모욕해서 쫓아내기 수법의 하나에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나름대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인 듯 하다. )

- 김정길의 굴욕 사건

: 그 체육회장 시절에, "김정길의 굴욕" 사건이 있잖습니까?

: 굴욕 혹은 과욕! (웃음)

이른바 김정길 굴욕 사건 당시의 화면

: 김정일 위원장하고 직접 대면하면서 뭐라고 막 얘기하신 거, 그게 미리 준비를 하신건가요? 즉흥적으로 벌어진 일인가요?

: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 저는 그 때 북경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만드는 게 최대의 과제였어요. 그 자리는 뭐였냐면, 그게 환송 오찬 하는 자리였어요. 환송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하고 김정일 위원장하고 서서 와인 한잔씩 손에 들고 전부 인사하고 그러는 자리였어요.

그런데 남북 합의문에 보면, 단일팀 얘기는 없고 공동 응원단 얘기만 있어요. 공동 응원단이라면 단일팀을 전제로 공동 응원단이 있는 거지, 단일팀 없이 공동 응원단이라는 건 말이 안되는 거에요. 제 생각에요. 그래서 실무회담을 계속했는데 결론이 안 나왔고, 합의문에는 공동 응원단 얘기만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먼저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었어요. 김정일 위원장 바로 옆에 있으니까 들으라고 한 겁니다. 제가, 아니 합의문에 보니까 단일팀 얘기는 없고, 공동 응원단 얘기만 있어요,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물어본 거에요. 그랬더니 대통령께서 어? 그거 난 단일팀을 전제로 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합의서 쓰는데 단일팀을 전제로 쓴 걸로 알고 있어요, 하고 받아 주시더군요. 김정일 위원장 들으라고 한 소리 같습디다. 그래서 바로 옆에 김정일 위원장에게 갔지요.

자연스럽게 옆에서 귀를 쫑긋 하고 듣고 있던 위원장에게 간 겁니다. 그러면서 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위원장님, 저는 위원장님과 이름이 한자 밖에 안 다릅니다. 이러면서 농담을 던졌죠. 위원장님은 김정일이고 저는 김정길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합의문에 보니까 단일팀 얘기는 없고 공동 응원단 얘기만 있는데, 이게 단일팀을 전제로 한 겁니까? 아니면 공동 응원단만 하는 겁니까? 라고 물어 보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옆에서 거들어 주시더군요. , 나는 그거 단일팀을 전제로 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위원장님, 요구사항 다 들어 드릴테니까 우리 단일팀 한번 만듭시다, 이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하는 말이, 남한은 올림픽도 한번 하고 기량 차이가 너무 나서 단일팀은 안된다고 합디다,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한번 더 재촉을 한 거에요. 이번에 북경 아니면 또 못하니까, 두 번 세 번 재촉을 했어요. 그러니까 약간 짜증을 내는거 같아요. 그래도 그냥 북한 스타일로, 위원장님만 결심하시면 됩니다, 결심을 좀 해 주세요. 뭐 이러고 조른 거죠.

: 그게 실무회담에서 완전히 결렬된 상황이었나요? 아니면 뭔가 정보 전달이 잘못 되었던 건가요?

: 사실 그걸 정확하게 확인을 하려는 거였어요. 사실 깨진 것도 아니고, 유보상태로 있다고 저는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합의문이 그렇게 나오니까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얘기를 꺼낸겁니다. 이게 만약 무슨 실무자들 보고가 잘못 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이렇게 하면 다시 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위원장의 의지를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 결국 위원장이 의지로 하기 싫었다는 걸로..

: 사실 그것은 모르겠어요. 뭐 현실은 결국 단일팀도 안되고, 공동 응원단도 실패하고 그렇게 되긴 했었죠. 참 아쉬운 일입니다.

: 올림픽 위원장 하실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 많죠.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가급적이면 큰 그림에서 이익이라면 제가 손해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스토리가 참 많아요.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 할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저 혼자 IOC 위원 자격을 갖추고 있었어요. 이건희 위원이 IOC위원이었고요. 우리가 스포츠 십대 강국인데, 일본도 IOC 위원 자리를 두 개로 가지고 있고, 우리만 하나에요. 그래서 전에 김운용 위원도 있었고 한 자리를 더 가져올 수가 있었는데, 그 한자리에 들어갈 자격이 되는 사람은 저 하나였던 거죠. 그게 좀 힘듭니다. IOC 위원 추천도 있어야 되고 집행부에서 경력도 심사하고 그래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제가 IOC 위원을 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우리 쪽에서, 정부도 그렇고 다들 평창 유치 건 때문에 신경을 무척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IOC 위원 자리를 가져오는 것 하고 평창 유치하는 거하고 다 우리나라가 뭔가를 가져오는 거 아닙니까? 그걸 두가지 다 하기는 힘들다고 본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해보니까, 제가 IOC 위원이 되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명예고, 평창 올림픽 유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 아닙니까? 저는 그럴 때 제 개인적인 것 보다는 국가적인 이익이 중요하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제가 IOC 위원 되는 것을 포기하고 평창 유치를 위해 노력을 하게 된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제가 손해를 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성격인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IOC 위원도 안되고, 평창 유치도 실패하고 그렇게 되긴 했었죠.

: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익이 우선이다?

: 부산대 총학생회장 때도 그랬고, 중학교 3학년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웃음)...

: 언론을 뒤져보다 보니까 태권도 협회 문제도 자주 거론되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무슨 일은 아니고, 태권도 협회가 파벌이 참 심하고 그래요. 제가 열린우리당 상임집행위원하던 때였는데, 김운용 회장이 태권도 협회 회장 하다가 구속되어서 그만두고, 구천서 회장이 되었는데 또 무슨 사건으로 구석되고 그러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권도가 전직 회장이 둘이나 구속되어서 그만두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워 진거죠. 그래서 협회 사람들이 우리에게 온 겁니다. 여당의 실세를 모시겠다는 의미에서 나하고 김원기 국회의장, 이강철, 원혜영 이렇게 네 사람 중에서 한명을 회장으로 데려가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좀 정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태권도계가 또 영남하고 호남하고 갈려 있는 겁니다. 지역구도 였던거죠. 이 때, 거기에 사무총장 하던 양준방 사무총장이라고 있었고, 용인대학교 태권도 교수였죠. 삼성 에스원 감독하던 사람하고 몇이 와서, 전체 태권도 인들하고 얘기를 해보니까 저에 대한 선호도가 제일 높더라는 거에요. 저는 영남하고 호남에서 다 반대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영남이 좋아하면 호남이 싫어하고 호남이 좋아하면 영남이 싫어한다는 거였지요. 그러니까 내보고 와서 좀 혼란을 정리해 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출마해주면, 태권도인 중에서 출마한 충남 태권도 협회장 출신인 이종승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분으로는 안정시키기 어려우니까 나오라는 거였습니다. 제가 출마하면 그 분은 사퇴할 거라는 얘기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출마를 하니까 사퇴를 안해요. 결국 선거까지 가서 일차투표에서 12:12로 동표, 2차 투표로 가서도 또 동표, 이렇게 되는 바람에 회의를 거듭하다가 결국 그 분이 사퇴하고 저를 지지한 뒤에 상근 부회장이나 수석 부회장을 하시는 걸로 결정이 된 겁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니까, 태권도 협회 내부에서도 정권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를 싫어하기 시작하더라는 거죠. 안 그래도 대한 체육회장도 사퇴하는 마당이라 사퇴하려고 생각 했던 건데 시간이 좀 걸린 이유는 그거였습니다.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퇴출될 위기에 있었고, 또 체육회 내부에서 제가 자정운동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체육회 쪽이 파벌도 있고, 비리도 있고, 특히 입시 관련해서 비리가 많았고, 폭력 문제도 많았고, 그래서 추진하던 자정 운동이 있었고 그게 진행중 이었던 겁니다.

결국 반대편에서 자꾸 뭐라 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걸 다 정리하고, 체육회장을 사퇴하면서 동시에 태권도 협회장도 사퇴하게 된 겁니다.

: 거기서도 뭔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을 하셨군요.

: 아마 체육계에서 체육회와 태권도 협회가 생기고 나서 자체적인 자정운동으로는 최초였을 겁니다. 그 때 어느 정도 였냐면, 제 손으로 직접 태권도 협회 전무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었습니다.

- 부산 시장 선거

: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셨군요. 그러다가 광역 단체장 선거까지 진출하게 되시는데, 부산 시장 선거때 일을 좀 얘기해 주시죠.

: 그건 저 냥반이 원흉이에요. (웃음)..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노혜경씨가 김정길 전 장관과 대학 선후배 사이이면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정길 전 장관을 설득해서 부산 시장 선거에 출마시키고 캠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꽤 많이 알려진 얘기이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건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잖습니까? 그렇게 높은 득표율을 보인 것도 매우 특이하고, 그렇게 많이 득표하고서도 또 떨어진 이유. 이런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주위에서는 제가 만약 김두관 지사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면 당선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시골보다 도시가 오히려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더 강하거든요.

사실은요, 제가 이십년이 넘게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알았는데요, 집사람이 이번 선거때 성당에서 어떤 여성분을 한분 만났었다는 겁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사모님, 저는 김장관님 너무너무 존경하고 꼭 찍어 드리고 싶은데 투표장에만 들어가면 민주당 이름만 보면 찍을 수가 없어서 못 찍었어요, 하면서 이번에는 꼭 약속을 드리겠는데, 절대 당 이름을 안보고, 아예 손으로 가리고 김장관에게 투표하겠습니다, 하면서 약속을 하더라는 거에요.

세상에, 별 여자가 다 있다 싶었는데, 선거가 끝나고 더 충격을 받았어요. 두 세달 전의 일인데, 해운대에서 고등학교 한해 선배에요. 부산에서 사업하는 선배인데, 동아고 총동문회 회장도 제 바로 앞에 한번 했고, 제가 그걸 이어서 회장을 했었고, 사석에서는 아주 친해서 형 동생하는 사이입니다. 고등학교 선후배고.

그런 분이 해운대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얘길 하는데, 어이, 김장관, 내가 이번에 부산 시장 선거 하면서 투표용지 받아들고 일분이상 고민을 했다 라는 거에요. 나랑 그렇게 친한 사람도 투표소 들어가서 나를 찍는데, 일분이상 고민을 해야 된다는 얘기에요. 오로지 민주당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러니 보통의 부산 시민들은 어떻겠어요. 민주당은 김대중당, 민주당은 전라도당, 왜 부산에 전라도 사람이 와서 시장을 하고 국회의원을 해야 하느냐, 이런 사고방식이 아예 각인이 되어 있는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44.6%의 득표를 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시장선거에 출마했을 때, 36.7% 를 득표했다.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에서조차 부산에서의 득표율은 29.9%에 그쳤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저 수치는 참으로 암담한 수치일 수도 있다. 그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이 사람은 무려 44.6%의 득표를 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감정, 지역주의가 수그러들고 있다는 증거일까? 김 전장관의 해석은 좀 다르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절대 아니에요. 이명박 대통령이 도와준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과 허남식 부산 시장에 대한 거부감, 이게 반사 이익으로 저한테 돌아온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야권단일화였습니다. 야권 단일화 없이는 도저히 저런 득표율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이유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덕택을 본 겁니다. 아무리 부산 사람들이라 해도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거든요.

이 세가지 원인이 모두 작용하면서 저런 득표율이 나온거죠. 사실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40% 이상의 득표를 한다, 이런 것은 완전히 무슨 마의 벽 같은 걸로 인식이 되고 있었어요. 그게 처음으로 깨진 겁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는데, 부산 사람들이 노무현과 저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다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 극빈층, 노동자, 이런 계층에서 지지도가 높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좀 지식인 계층, 중산층, 이런 쪽에서 좀 지지율이 높아요.

그러니까 노 전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36.7%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모두 다 오고, 거기에 저만이 가지고 있던 지지율이 더해지고, 뭐 이렇게 되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제가 진짜 궁금한 것은 아주 작은 양이라 해도, 부산 시민들의 심리가 민주당 이름만 봐도 손이 다른 데로 가 버리는 그런 각인, 이런 현상이 조금씩이라도 줄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확실히 줄고 있죠. 물론 그게 큰 폭으로 줄진 않았습니다. 또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기 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어요. 워낙에 엉망으로 망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선거 끝난 뒤에 만났던 많은 부산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택시를 타도 그렇고, 만나게 된 많은 분들이 이런 얘길 합니다. 확실히 제가 이렇게 높은 득표를 한 것에 대해 부산 시민들 스스로가 놀라고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많은 분들이 아이고, 장관님, 표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럽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난 안될 줄 알고 기권 했는데, 가서 찍을 걸 그랬다, 이러기도 하고, 또 안될 줄 알고 그냥 한나라당 찍었는데 이렇게 표가 많이 나올 줄 알았으면 찍어 드렸어야 되는 건데, 뭐 이런 얘기를 무수히 들었습니다.

결국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거부감은 아주 높은데, 그걸 효과적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이거 진짜 쪽팔린 얘깁니다. 우리가 잘해서 이득을 보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못해서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거, 이거 하루 속히 바뀌어야 될 문제입니다.

(실제로 나이 육십을 훌쩍 넘긴 노련한 정치인의 입에서 쪽팔린다는 어휘가 튀어 나왔다. 이거 정말 쪽팔린다는 뜻이다. )

- 병역문제와 전과 기록

: 이제 좀 부담스러운 얘기를 할 차례입니다. 최초에 총학생회장 때에 구속되었던 사건은 구속적부심에서 그냥 풀려나시는 걸로 마무리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진 범죄 전과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군대문제부터 얘기해 주시죠. 면제를 받으신 걸로 되어 있는데, 군대를 왜 안가셨습니까?

: 안간게 아니라 못 간거에요. 66년도인가 68년도인가 그 때쯤에 군대를 가려고 신검을 받았죠. 그 때 갑종 판정을 받고 창원에 있는 39사단에 입소를 했었어요. 근데 제가 거제도 출신이라 수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귀에 물이 들어가 염증이 생긴걸 모르고 그걸 또 막 쑤셨다고요. 그러다 보니 이게 만성 중이염으로 발전해서 고생을 한거죠.

창원 훈련소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게 문제가 된 겁니다. 결국 귀가조치를 받았죠. 그런 상태에서 다시 신검을 받게 되었는데, 병종이 나온거죠. 이러면 면제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은 학생운동 하다가 잡히면, 무조건 군대 보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학생회장 하다가 잡혀서 또 끌려가서 신검을 다시 받았어요. 무조건 학생운동 하던 놈들은 잡아다가 최전방 보내서 고생 시키고 그러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수갑차고 가서 신검을 또 다시 받은 거에요. 검사실에 수갑차고 수의입고 가서 부산대 이비인후과 의사를 불러다가 다시 검사를 받은거죠. 그랬는데 의사가 보더니 만성 중이염으로 고막이 파열 되었다가 재생된 흔적이 있다, 하는 거에요. 검사가 막 혹시 면제 대상이 안되는데 면제된거 아니냐고 윽박 지르고 그랬음에도 병종으로 다시 확인된거죠. 그 검사 아직도 기억합니다. 최근에 동두천 어디에 있다고 그러던데..

아직도 귀가 좀 안좋습니다. 코도 알러지가 좀 있고, 다 연관된 거겠죠. 장관 시절에 또 귀가 도졌습니다. 중이염이 또 생긴거죠. 그 때 세브란스에서 한달 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한테 물어봤습니다. 혹시 과거에 만성 중이염이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는가 하고 말이죠. 그런데 별 관련은 없다 하더군요. 어찌 되었거나 지금도 귀가 좀 안좋긴 해요.

: 그럼 청력에도 지장이 좀 있으십니까?

: 그 정도는 아니고, 말소리 같은 걸 가끔 잘 못알아 듣는 정도지, 생활에 불편하거나 한 점은 없어요.

: 그러니까 만성 중이염으로 인해 군대는 면제를 받으신 거군요.

: 그렇죠. 신검을 세 번씩이나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검사 앞에서 수갑차고 받아서 확인 받은 겁니다.

: 2000년도에는 선거법 위반 사실이 있으시군요.

: 선거법 위반은 이거 참 말도 안되는 일인데, 이 때 변론을 담당하신 분이 또 문재인 비서실장이었어요. 질긴 인연이죠. 이 선거법 위반 내용이 뭐냐면, 선거 홍보물에 내 홍보내용이 많다는 거였어요. 이게 선관위 유권 해석이 후보에 대한 홍보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너무 많다는 거에요. 이 너무 많다는 기준이 없어요.

또 웃기는 건, 이걸 가지고 1심에서 80만원 벌금을 받았어요. 선관위 유권해석에서도 무죄였는데. 문재인 변호사도 무죄를 주장했었고요. 그런데 2심에서는 오히려 벌금액수가 늘어났습니다. 원래 12심 올라가면서 형량은 같거나 줄어드는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2심에서는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겁니다. 사실 이게 액수 차이는 작지만 굉장히 큰 차이잖아요.

제 생각에는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가, 소위 말하는 향토판사, 부산에서만 판사를 계속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지역감정이 좀 심한 경우였거나, 혹은 상대쪽하고 관련이 있거나, 아니라면 뭔가 괘씸죄가 약간 적용이 된게 아닌가 싶어요. 전에 장관도 했고 그래서 그런건 아니지만 판사를 찾아 뵙지도 않고 좀 소극적으로 대응을 한거죠. 문재인 변호사도 1심에 80만원 선고가 나오니까 피선거권 박탈하고 관계가 없으니 2심 때에는 별 신경도 안 쓴거죠. 그러니 다분히 감정적인 판결이었다는 겁니다. 제 추측이에요.

결국 2심선고를 받아 들이고 그에 따른 피해를 보는 걸로 마무리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걸로 인해 피선거권 제한이 되어 버렸어요. 정치인에게는 사형선고지 뭡니까. 그게 전과 한 개 생기게 된 배경입니다.

다음으로 정치자금법 위반문제는 이런 겁니다.

제가 피선거권도 박탈되고 공식적으로는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2002년 대선은 다가오고, 그래서 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돕고 다니던 때였어요.

그 때, 부산에 가니까 문재인 실장이 선거대책위원장인가 하고 있고, 최도술이라고 청와대 총무 비서관 하던 사람인데, 경리 책임자로 있더라는 겁니다. 제가 내려가니까 이 사람이 하는 얘기가, 장관님, 선거가 시작되었는데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장관님이 부산에 기업인들도 많이 아시고 하니 좀 도와 주셔야 되겠습니다, 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마나 필요하나? 하니까, 미니멈 2-3억은 있어야 되겠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해 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실제로 캠프에 돈이 하나도 없어요. 중앙에서 내려오는 돈이라고 해봐야 조족지혈이야.

그래서 전에 장관 하고 국회의원 할 때 만나고 알고 그랬으니까, 부산 모 기업의 회장을 찾아 갔어요. 그런데 안 만나주고 피하는거야. 그 때야 다들 이회창 후보가 되는 걸로 당연하게 알고 있던 시절이고 노무현 후보는 당연히 떨어지는 걸로 되어 있던 거에요. 거기다가 이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 돕다가 저 쪽에서 협박도 받고 막 그랬나 봐요.

그렇게 피하다가 제가 자꾸 연락을 하니까, 결국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조용히 만났어요. 만나서 부탁을 했죠. 캠프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그러는데, 좀 도와 달라고. 그랬더니 막 죽는 소릴 해요. 전에 김대중 대통령 돕다가 저 쪽에서 막 험한 소리도 하고 괴롭혀서 난처하다 이거죠. 그래도 내가 자꾸 부탁을 하니까, 준단 얘기는 안하고 뭐 알아 보겠다, 의논을 해 보겠다 이런 식으로 자꾸 피해요. 그러더니 소식이 없어.

일주일이 지나고 연락이 없어서 할 수없이 제 친구들을 찾아 갔어요. 사업을 크게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또 노무현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들이에요. 나랑 친한 줄 알면서도..

그래서 결국 그 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부탁을 했죠. 기업의 정치 후원금이 한도가 일억이니까, 일억씩만 좀 해 달라고. 공식 후원금으로 영수증도 다 끊어준다 이런거죠. 그랬더니 처음에 딱 거절하더라구요. 자기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출마한 거라 생각하고 좀 도와달라, 내를 보고 좀 해달라, 이런거에요. 왜 그렇게 무리하게 부탁을 했냐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돈이라도 좀 내야 표도 좀 도와줄 거 같은 거에요. 제 느낌이.. 돈을 안주면 표도 안 줄거라 말입니다. 최소한 이 사람들을 우리편으로 끌어 들이려면 돈이라도 좀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거에요.

그렇게 졸라서 결국 급한 불은 좀 끈거에요. 받아 낸거죠. 그러고 났는데 한 일주일 지나서 상공회의소 회장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기는 무슨 중국에를 가는데, 누구를 만나면 아마 돈을 줄거다 그러더라구요. 가봤더니 이억을 주는게 아니라 한 칠천만원을 주더라구요. 그러고 나선 뭐 이천만원, 삼천만원 이렇게 찔끔 찔끔 주는 거에요.

그러더니 막판에 이제 막 여론이 바뀌어서 노무현이 당선될지도 모른다 하는 분위기가 되니까, 외국에서 돌아왔다면서 와가지고서는 마지막 몇천만원을 주면서 명함만한 쪽지를 주면서 거기 보니까 누가 얼마, 누가 얼마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기 적힌 내용대로 영수증을 어떻게 끊어달라 그럴지 모르겠는데 각자 원하는 대로 끊어줘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이 돈을 다 최도술씨에게 가져다 줬으니까 이 명단을 최도술에게 가져다 줄거고, 영수증은 최도술에게 얘기하면 원하는대로 끊어 줄거다, 이렇게 얘기를 한거죠. 그러고 나서 선거 때문에 바빠서 서울로 또 올라가고 그러는 와중에 내가 이 명단을 최도술에게 가져다 주질 않은 겁니다. 호주머니에 그대로 들어 있더라고.

서울와서 보니까 선거는 끝났는데 이게 그대로 있는거야. 그래서 바로 다시 내려가서 최도술에게 이 명단을 주면서 연락 왔더냐고 물어 봤더니 아직 연락이 안 왔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행이다 싶어서 회장한테 연락오면 이대로 영수증을 끊어주라고 그런거죠.

근데 막상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그 돈 꼴랑 이억가지고 영수증 끊어달라 뭐해라 하기가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그래서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안한거에요.

: 그래서 영수증이 발급이 안된거군요.

: 그렇죠. 그러다가 그 뒤로 이제 한나라당 차떼기 뭐 이런거 조사하면서, 구색을 맞추려고 여당 쪽에 거물급 정치인을 하나 걸려고 그랬던거 같습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최도술을 조사하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겁니다.

그래서 이 쪽에서는 영수증을 끊어 달라 그랬더니 그런 얘기 못 들었다고 그러고, 최도술 쪽에서는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다고 그러고.

이건 좀 확실하지는 않지만, 검찰의 의도가 보이는 거죠. 결국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줄 알았는데, 끝까지 못 들었다고 주장을 하더군요. 결국 삼천만원 벌금을 내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전과가 한 개 더 늘었죠.

나중에 노 대통령이 초청해서, 부부 같이 청와대로 만찬을 하러 들어갔더니, 허허~ 웃으시면서 벌금 낼 돈은 있습니까? 하시더군요. 그래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된거에요.

결국 그 돈 이억 받아서 한푼도 안쓰고 다 가져다 줬는데, 최도술씨가 오히려 그랬다니까요. 장관님도 돈좀 쓰셔야 되지 않습니까, 해서 내 걱정은 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따로 각 지구당 돌면서 도와주고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더군요.

: 참 고생도 많이 하셨군요. 이제 살아오신 얘기는 어느정도는 들은 것 같습니다.

- 정치인 김정길

: 이제 좀더 정치적인 얘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최초 정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하신거고, 그러다가 3당합당을 기점으로 정치적 운명이 확 바뀐 건데 그 과정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주시죠.

: 그러니까 저는 3김을 모두 함께 가까이서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보기드문 사람이에요.

: 아니, 김종필씨도 같이하셨다는 겁니까?

: 내가 장관 시절에 대통령 의전담당 주무장관 아뇨?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이었지만 총리가 김종필씨 아닙니까? 행자부에서 대통령 의전 하면서 총리 의전도 같이 하니까.

: , 그 시절에 그렇게 된거 였군요.

: 3김씨를 가까이서 보면 다 인간적인 면모들은 있어요. 김종필씨도 가까이서 보면 장점도 있고 따뜻한 정도 있는 사람입니다. 유머감각도 있고. 그런 분입니다.

김영삼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민주화 관련 큰 기여가 있잖아요. 3당 합당하면서 갈라지게 된건데, 같은 고향 아닙니까? 인간적으로는 고향 선배고, 저한테 정치적으로 중요한 심부름도 많이 시켜주고 저를 챙겨줬습니다.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 고향이 얼마나 떨어져 있었습니까?

: 오리 사이였어요. 거제도 장목면 이죠. 김영삼 대통령 아버님하고 저희 아버님하고 친한 사이였습니다. 친한 친구사이고, 김영삼 대통령 아버님이 어디 갔다 오실 때에는 우리집에 들러서 소주 한잔 하고 가시고 그러던 사이에요. 저도 김영삼 대통령 아버님한테 아버님 아버님 하던 사이고요.

김영삼 대통령은 외동이에요. 사촌도 있었는데, 그 사람도 외동이라 둘이 형제처럼 지냈죠. 지금은 돌아가신 분인데.. 제가 처음 국회의원 될 때, 이 사람이 제 사실상 사무장이었습니다. 그럴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국회의원 된 건 김영삼 전 대통령 덕분은 아닙니다. 신민당 공천을 못 받아서 민한당으로 나갔었으니까요. 그 때 저한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역구 나가지 말고 비례대표 하라는 걸 제가 거절하고 지역구 나간 거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내려와서 박찬종씨 선거운동 하고, 그 사촌은 제 선거운동하고 그랬던 겁니다.

더구나 제가 나온 장목초등학교에서 유일한 정치인 선후배였습니다. 딱 국회의원 둘이 있었는데 한분은 김영삼, 또 한 사람이 김정길이었던 거죠. 그런데 내가 그런 김영삼을 안 따라간거에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책에도 쓴 겁니다. 자기는 재야운동 했었고 변호사 자격증도 있고 먹고 살 수는 있는데, 김정길은 국회의원 안하면 진짜 실업자 되는 건데 안 따라간 건 진짜 존경 할만 하고 좋아한다라고 쓰신 거에요.

: 그런 상황에서 또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김정길 전 장관이 "최후의 동교동계"라고 평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그렇게 볼 수도 있지요. 굳이 분류하자면,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장관을 하고 정무수석을 했으니까 그렇게 분류해도 틀린 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도 앞장을 섰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김대중의 사람일 수 있지요. 동교동계일 수도 있고.

또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저는 "노무현의 사람"은 아니에요. 친노는 맞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지이지만, 참여정부에서는 임명을 받아 뭔가를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노무현의 사람으로 분류될 수는 없지요. 문재인이나 이광재나 안희정이나 김두관은 모두 노무현의 사람이 맞지만 저는 그렇게 분류되지는 않겠죠.

사실 또 노무현 대통령 선거에서 첨부터 돕지를 못했습니다. 당시 피선거권도 박탈 당해서 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솔직히 말해서는 "되겠나?"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웃음)..

(이 대목은 읽기에 따라 매우 묘한 뉘앙스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인 듯 하다.

김정길 전 장관은 분명히 김영삼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3당 야합 이후로 김영삼과 결별하게 되고, 그 이후에는 김대중의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부분은 스스로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며 누가 봐도 명백한 국민의 정부 시절 각료 출신임으로 입증이 된다.

그리고 참여정부에서는 행정부의 수장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임명직도 받지 않는다. 실제로 대한 체육회 등 정치권 외곽으로 돌면서 참여정부에 대한 외곽지원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정치인 김정길의 앞날에는 노무현의 후광이라는 무기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자신과 노무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과장을 섞어 서라도 절친한 사이임을 강조하거나, 자신 역시 친노 그룹의 핵심이라는 식의 미화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길은 오히려 자신은 "노무현의 사람"은 아니라고 단정지어 얘기를 하고 있다. 친노이면서 노무현과 친구이자 동지일 수 있지만, 노무현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일까.

단지 비록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자신보다 정치에 늦게 입문한 후배였던 노무현에 대한 자신만의 자존심일까? 아니라면, 노무현의 못다한 과업을 이어서 완수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무현의 후광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가오일까?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은 정치인 노무현과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어려울 때 서로 돕던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무엇인가 확실하게 다른, 정치인 김정길 고유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차이점이 과연 정치인 김정길에게 득이 될까, 해가 될까? )

- 민주당과 김정길의 총선 전략

: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의 위치는 어떠십니까?

: 저는 민주당 내부에 아무런 큰 비중이 없어요. 정말로 난 민주당한테 아무런 대접도 못 받으면서 지키고 있는 겁니다. 현재 당 고문인데...

이십년을 지역주의에 맞서서 매번 떨어지면서, 서울에 공천을 못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공천심사위원장을 해 가면서까지 부산에서 매번 떨어지고, 이번에 부산 시장 선거에 나가는 과정에서도 정세균 대표까지 내려와서 나갈 사람이 없다고 설득을 해서 된거고.

사실 저는 내년에 총선에서 가만히 있어도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을 수가 있어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하는 얘기가 아예 당규에, 어려운 지역에서 광역자치단체장에 나가 의미있는 득표를 하고 떨어지면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주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민주당 당규를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제시될 만한 조건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만큼 영남지역에서의 민주당의 위상은 어렵기 그지없다.)

그래서 제가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그 규정에 딱 하나 저만 해당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년에 전국구 안하고 지역구로 또 나갈 겁니다. 내 혼자만이 아니라 나 한석 건지고, 부산 경남에서 제가 좀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가능한 인물들을 만나 좋은 후보 내고 열심히 뛰어서 부산에서 한 오육석 만들고, 경남 지역에서도 한 삼사석 해서, 합해서 한 열석 되지 않겠습니까? 민주당이 이렇게 부산 경남에서 한 열석 정도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은 그거라고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차기 총선에서의 민주당의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감한 부분이다. 단순히 한나라당의 몰락에 대한 반사이익의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이 전국 정당으로 다시 발돋움 할 수 있는가 하는 역사적인 문제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라는 얘기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미 당차원에서 차기 총선에서 영남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전략이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그 당 차원의 전략은 김정길의 전략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자리잡고 있는 정치인이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규합해서 대거 의석을 차지하게 될 경우는 결국 당권에 대한 얘기가 따라나오게 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다음 총선은 바로 같은 해에 있는 대선까지 겹쳐 당내의 권력투쟁에도 민감하게 영향을 받게 된다. 지금 김정길 전 장관은 이런 부분을 모두 고려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의 예정된 행보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견제부터 걸림돌로 작용할테니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제가 대접 받을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접도 못 받으면서 민주당을 위해 뛰고 있는 겁니다. 그 이유는 민주당이 좋아서 그런게 아닙니다. 지금 현실에서 민주당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민주당을 위해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거에요.

난 지금 민주당이 하고 있는거 보면 굉장히 불만스러워요. 민주당이 제대로만 하고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저렇게 죽을 쑤고, 한나라당이 저렇게 죽을 쑤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율이 현저하게 올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지 못하고 있잖아요.

겨우 반사이익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조금 앞서기 시작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겁니다.

: 지금 얘기하신 것이 바로 차기 총선에서 계획하고 계시는 내용이군요.

: 그렇죠. 내년에 제가 직접 출마하고, 부산 경남을 위해 함께 뛰고, 그래서 십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영남에서의 민주당의 교두보를 확보해야 된다는 거죠.

: 굉장히 어려운 목표입니다.

: 어렵죠.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이번에 가능성이 보였잖아요.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또 떨어지면 다시 하면 됩니다. 아니 이번에는 될거에요. (웃음)~

: 그렇게 대접도 못 받으면서 민주당 입장에서는 완전한 불모의 땅인 부산에서 이십년이 넘게 고생을 하고 계시는 건데, 그래서 그런 걸까요? 호남 쪽에 많은 지지세력을 가지고 계신다고 그러더군요.

: , 호남 쪽에서 많은 분들이 저한테, 내년에 대선에 나와 줄 것을 요청하고 계시죠.

: 그 분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 주로 현재 지자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있고, 당 간부들, 당원들, 일반 시민들.. 이런 분들이죠. 제가 영남 사람이면서도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전국을 돌았고, 국민의 정부에서 장관도 하고, 수석도 하고, 이런 것들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거기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하고 함께 오랜 시간동안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 온것을 알아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거기다가 제 처가가 전남 고흥 아닙니까? 그 쪽에서도 지지를 좀 해주고 계시고..

거기다가 제가 또 광주 일곡동에서 살았던 적도 있어요. 2003년 때입니다. 우리 늦동이가 거기서 초등학교 4학년을 다녔어요. 아토피도 심했었는데..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명예 경제학 박사학위도 받았고 해서 광주 전남하고는 남다른 인연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광주 분들이 저를 많이 좋아들 하십니다.

그런데 광주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2002년 대선 당시에 30% 이상의 지지율을 받던 이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선 후보로써는 1-2% 지지밖에 없었던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 낸 곳이 또 광주 아닙니까?

저는 우리나라 정치 일번지가 종로가 아니고 전남 광주라고 생각을 해요. 광주 분들의 정치의식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이 분들은 정치적 판단을 하십니다. 그런 분들이 저한테 대선에 나오라고 요구를 한다는 것은 지금 드러나 있는 후보들로는 다음번 대선에서 정권 교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어떤 기대를 좀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친구이자 동지인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임명직을 모두 거절하고, 정치권을 떠나 있었지 않습니까? 사실 이게 무척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 안 그래도 그런 질문을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인지도 부족이라는 것은 상당히 힘든 문제인데요.

: 예를 들자면 김근태 의원만 해도 겨우 한텀 쉰 건데,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잊혀지고 있잖습니까? 저는 무려 8, 임기로 두 타임 쉰 겁니다. 정치라는 게 그래요. 잠시만 떠나 있으면 무척 빠른 속도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강원도고 제주도고 어디서나 정치를 오랫동안 관심있게 보시고, 정당 생활 하시고 이런 분들은 저를 다 기억하고 지지해 주시곤 합니다. 그런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활동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저를 전혀 모르시는 요즘 젊은 분들이나 여성분들이라 해도, 실제로 제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게 되신다면! 저를 지지해 주실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저야말로 요즘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천연기념물" 아닌가요? (웃음)

(도대체 이런 무모하고도 근거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가 누군지를 알기만 하면 모두가 다 나를 지지해 줄 것이라는 확신, 사실 이런 것은 확신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자기최면일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반복하면서 스스로도 그것을 믿어버리는 현상 말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긴 시간동안 한길을 걸어왔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긴 시간동안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싸워왔던 투쟁의 경험이 이런 자신감의 근원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쉽다. 지금 당장 내가 멋진 말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지지도를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걸어온 인생의 역정, 이런 것은 한 순간에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가치이다. 인생은 한번 뿐이거든.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누적되어온 사실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그렇게 알려짐을 통해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김정길은 여전히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치가에 불과하다는 게 현실이고, 그는 이 장벽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고비에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지도 부족은 정치인으로써 넘어서기 정말 힘든 최대의 약점이다.)

- 노무현과 김정길이 추구하는 가치

: 이제 사이사이 나왔던 얘기들 보다는 훨씬 더 심도있게 정치인 김정길과 정치인 노무현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할 순간이 다가 왔습니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나는 노무현의 사람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추구해온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의견부터 여쭤 보도록 하겠습니다.

: 저는 대통령 김대중이 추구해왔던 길과 대통령 노무현이 추구해왔던 길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 점은 누구나 동의를 하고 있겠죠.

: 남북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남북이 우선 화해협력 관계로 가야 됩니다. 그걸 먼저 얘기해 보자면 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친미, 친일을 한다고 비판을 받는데 그건 전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친미나 친일을 한다고 비판해야 하는게 아니라, 왜 친러 친중 친북을 안하냐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친미도 해야 하고 친일도 해야 합니다. 물론 자긍심을 가지고 원칙을 가지고 해야 겠지요. 그것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아니 동북아 모든 나라, 저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 구석에 있는 어느 나라 하고도 친해야 되는게 기본입니다.

왜 이걸 안하냐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우리가 외교도 확장하고 자원도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그건 필수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통입니다. 북한하고도 친해지기 위해서는 소통을 하면 됩니다. 가장 문제는 소통을 안하는 겁니다.

국내에서만 소통을 안하는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소통을 안해요. 소통을 안하고 단절을 하잖아요. 국민하고도 소통을 안하고, 북한하고도 소통을 안하고.

- 남북문제와 소통의 중요성

: 소통을 안하니까 문제다?

: 그렇지. 소통을 안하고 단절을 하니까 문제인거죠.

: 이익이 충돌할 때에는 어떻습니까? 소통만 가지고 해결이 될까요?

: 이익이 충돌할 수록 더욱 더 소통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소통을 해야 서로 타협이 가능합니다. 타협해서 해결하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에요. 제가 원내총무 할 때에도 협상의 명수 뭐 이런 소릴 들었는데, 저는 실제로 협상을 무척 잘 해왔습니다. 줄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이렇게 해 왔습니다. 그런 정치를 해 왔고 그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한나라당도 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내편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를 한다는 겁니다. 적을 내 편으로 만드는 정치를 해야지 가뜩이나 없는 내 편을 적으로 만들어서 뭘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그러면 영원히 야당밖에 못해요.

한나라당 지지자라도 우리편으로 끌어와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집권을 하죠. 이게 진짜 정치인 겁니다.

단적으로 지금 한나라당 내부를 보세요.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에서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편들끼리 말입니다.

우리와 북한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북한하고 친해야 됩니다. 소통해야 되고, 서로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소통해서 해결해야 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고 같은 민족인데 우리가 왜 싸워야 되나요?

거기다가 북한의 문제라면 우리가 맏형의 역할 아닙니까? 망나니 동생이 하나 있다면 그걸 때려 잡아야 겠나요? 아니면 잘 다독거려서 사람 만들어서 써야 되나요? 아주 단순한 문제인 겁니다.

: 이익이 충돌 할수록, 소통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동감이 됩니다.

다음에는 정당개혁에 대한 얘기를 여쭤 보겠는데요. 참여정부 때에는 이 문제가 꽤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대연정 얘기까지 나오고, 지지자들에게도 받아들여 지지않고 문제가 크게 되었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정당개혁과 선거제도

: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지역주의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가 도입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 명부제나 석패율 제도 같은거 말입니다.

소선거구제는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표율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으니 여러 가지로 보완을 해야겠죠. 석패율 같은게 좋은 도움이 될 겁니다.

: 대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 사실 대연정은 좀 말이 안되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을 상대로 그 제안이 나왔다는게 더 말이 안되는 얘기죠.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최종적으로 한나라당은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민주당이 보수를 담당하고, 민노당이 진보를 담당하면서 양당제의 축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는 생각이죠. 이런 정권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 그 쪽에서 들으면 적대감이 좀 생기겠는데요.

: 그래도 할 수 없죠. 내 소신으로 하는 얘기니까요.

- 복지와 양극화

: 경제적인 문제를 좀 여쭤 보겠습니다. 누가봐도 가장 심각한 문제가 양극화 문제인데요. 양극화 문제의 해결 방안을 놓고 진보와 보수가 충돌하고 있는 거겠죠. 이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결국 이 문제는 분배의 정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꾸 부자 감세라거나 정책의 우선순위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겁니다. 내년 선거에서는 아마 이 양극화 문제와 복지 문제가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사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드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제가 행자부 장관을 하면서 보니까 낭비되는 예산이 굉장히 많습니다. 매번 얘기가 나오면서도 잘 안 고쳐지는 문제인데 이 낭비되는 예산만 절감할 수 있어도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기초 자금은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다가 복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금을 걷게 되더라도 징벌적 조세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세 뭐 이런거 하게 되면 돈 많은 사람들은 꼭 정부에게 돈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조세를 회피하게 되죠. 자꾸 꼭꼭 숨기게 되고.

그래서 제가 하는 얘기가, "부자에게는 명예를, 빈자에게는 존엄을"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빈자와 부자가 공존할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지, 부자에게 고통을 줘서도 안된다는 겁니다. 물론 빈자에게도 고통을 줘서는 안되는 거죠.

: 그 구호는 어디서 쓰신 건가요? 인용하신 건지..

: 그건 그냥 내가 쓰는 얘기에요.

: 어디 책에라도 쓰신 문장인가요? 참 멋진 문장이군요. 부자에게는 명예를, 빈자에게는 존엄을....

: 그냥 평소에 생각하던 얘기일 뿐입니다. 그렇게 부자들에게는 명예를 줘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존엄을 지켜줘야 하는 겁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들에게 행복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대로 가진 자에게만 좋은 집이 되어가고 있잖습니까? 이게 문제라는 거에요.

그렇게 방향을 설정하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복지국가를 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차기 정권은 복지국가로 향해 가는 레일을 까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점진적인 발전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무료 급식을 하자고 그랬더니, 한나라당 쪽에서 이건희 손자에게도 왜 공밥을 주자는 얘기냐, 하면서 나올 때 왜 민주당이 받아치지를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공밥을 주자는 얘기냐 하면, 그렇다, 공밥을 주자는 얘기다 라고 받아쳐야 된다는 겁니다. 당연히 주자는 얘기가 맞아요.

이건희 손자 손녀라고 해도 다른 밥 먹어야 되는건 아니에요. 걔들도 학교 와서 다 같이 좋은 밥 먹고, 대신 이건희 회장 같은 분들은 좀더 많은 아이들이 몇천명 몇만명 밥을 더 좋게 먹을 수 있도록 많은 세금을 내고 그 대신 명예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그런걸 왜 우물우물하면서 받아 치지를 못해...

4대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거 당에서 반대하고 있는데, 생태계가 어떻고 뭐 이렇게 반대하면 복잡해서 일반 국민들께서는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국민들은 아주 단순명료하게 얘기를 해 줘야 됩니다. 그걸 아주 잘하는 분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어요. 단순 명료한 어휘로 국민들을 설득해 내거든요.

이건 이런 문제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겁니다. 국민들이 이걸 이해해서 분노할 수 있게 해 줘야 된다는 겁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죠. 만약 한달에 삼백만원 버는 가정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일 우선순위가 뭐죠? 일단 의식주가 중요하잖아요. 다음에 아이들 학자금, 그리고 의료비. 사고를 대비해서 보험도 들고 저축도 하고. 그러고도 여유가 되면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러고도 남으면 십년된 티비도 바꾸고 오래된 차도 바꾸고. 이렇게 우선순위가 있는 겁니다.

국가 예산도 그래야 합니다.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을 걷어 집행을 하는 것인데, 제일 급한게 뭡니까? 국민들 중에 돈 없어서 밥 굶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게 최우선이에요. 이건 국가의 의무에요. 그리고 국민들 중에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치료받게 해 줘야 되고. 이게 제일 급한 일이지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리고 아이들 가르쳐야 되고. 이렇게 우선순위에 입각해서 일을 해야 되는 거에요.

: 배고프면 밥 멕이고, 아프면 치료해 주고.

: 그렇지. 그거 말고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어디 있어요? 거기다가 아기를 낳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맞벌이 하느라 아이를 못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낳기만 해라, 국가가 기르는 것은 책임져 준다, 이렇게 해야 되는 겁니다. 보육 문제죠. 이게 국가의 의무이자, 보편적 복지라는 겁니다.

그걸 만들고 나서 4대강을 하든지 5대강을 하든지 뭘 하든지 해야 되는거죠. 이명박 정부가 그런 서민들에게 갈 예산을 다 끌어다가 4대강부터 하겠다는 얘기는, 마치 집에 의식주 할 돈까지 다 끌어다가 차부터 바꾸자는 얘기나 마찬가지에요. 거꾸로 가는 거죠.

이렇게 서민들에게 당신들에게 갈 돈을 끌어다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알아듣게 설명을 해 줘야죠.

그나마 그넘의 자동차는 이제 다 고장나고 망가져서 아무 짝에 쓸모 없게 된 거 아닙니까.

: 완전 사기 당했어~

: (웃음).. 그러게 말입니다.

: 보통 그런 얘기에는 이런 반론이 나옵니다. 4대강을 하는 것은 그걸 함으로써 돈을 더 벌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봐야 한다..

: 그건 아니고요. 23조가 넘는다고 하죠. 실제로는 더 들어가는데, 같은 돈이라면 그 돈을 첨단 기업이나 문화적 기업, 그리고 사회적 기업등에 투자하면, 그건 일자리도 몇배 더 생기고, 미래지향적인 산업이 되는 거에요. 몇배나 더 효율적인 거죠. 왜 토목에 투자를 해요.

- FTA와 파병

: 알겠습니다. FTA에 대한 입장은 어떠신가요?

: 우리가 요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데, 그 자체가 나쁜거냐 하는 생각도 좀 해 봅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FTA의 경우는 또 달라요. 이 문제의 핵심은 도대체 FTA를 누가 원해서 하는거냐 라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원해서 하는게 아니고 강대국이 원해서 하는 겁니다. 미국은 미국이 원해서 하자고 그러는 거고, 유럽도 마찬가지로 그 쪽의 강대국들이 원해서 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 국가의 지도자들은 저 쪽이 원해서 하는 일을 우리가 안달이 나서 빨리 할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우리가 할 만해지면 하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갖춰 지면 그 때 하면 되는거에요.

안 갖춰지면 안하면 되는거죠. 우리가 손해 볼 거 같으면 안하면 되고. 그거 안하면 죽습니까? 안해도 되는 거에요. 그런데 뭐가 급해서 그렇게 준비도 안되고 하냐는 겁니다.

: 그런 관점이라면, 참여정부 때 무척 빠른 속도로 FTA가 추진되었다는 현실과는 좀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 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고 친구이지만, 같은 건 같고 다른 건 다른 겁니다. 똑같을 수야 없죠. 저는 결국 이 한미 FTA를 참여정부에서 그렇게 서둘러서 했어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파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파병도 우리가 정말로 미국이 원해서 굴욕적으로 파병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파병이 꼭 필요하다면, 비전투요원에 한해서는 가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호적인 우방의 경우 의료나 공병 이런 거는 파병이 가능하겠죠. 그것도 명분을 생각해서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어요. 미국이 원해서 하는 거라면, 안달나게 만들어야죠. 미국이 서두르면 그 때서야 마지못해 생색 내면서 해야지 서두를 일이 아니죠. 이게 바로 협상입니다.

지금 북한사람들이 세계에서 협상을 제일 잘하잖아요. 그 강대국인 미국도 끌고 다니지 않습니까? 안달나게 만들어서..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냐는 겁니다.

- 개헌과 행정구역 개편

: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문제가 다 포함되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참여정부에서도 꾸준히 나왔던 얘기지만 개헌 문제입니다.

: 개헌은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87년도에 전두환 정권에서 5년 단임제 개헌을 할 때 말입니다. 사실 그 때 개헌 특위에 제가 초선의원 중에서 유일하게 들어갔었습니다. 5년 단임이 사실 우리가 원해서 한거였어요. 저쪽에서는 4년 중임을 얘기했었거든요. 양김씨 때문에 5년 단임으로 간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양김씨가 5년씩 늦게 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 놓고, 양 김씨가 합의해서 5년씩 했으면 노태우 정권은 아예 출범하지도 못하게 막을 수 있었는데, 결국 두 김씨가 반목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겁니다. 그렇게 된 내막이 있는 거고, 이제 와서는 저는 대통령 중심제에 4년 중임제가 더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고, 헌법에 독소 조항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런거 조금씩 다 손을 봐야 되고, 국민의 기본권 신장 같은 부분은 시대에 맞게 고쳐야 됩니다.

필요없는 조항들도 있어요. 평통(평화통일 자문위원회) 같은거 말입니다. 이거 아주 불필요한 헌법기관입니다. 개헌을 해서라도 없앨 필요가 있죠. 그거 지역에서 보면 완전히 보수세력들 잔치하는 기관입니다. 불필요한 조직이에요. 근데 사실 그게 헌법기관이긴 하지만 안해도 됩니다. (웃음)..

: 그렇다면, 김장관님께서는 사실상 87년 체제를 만드는 데 참여하셨던 거군요. 그러나 그 87년 체제가 이제와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거고, 상당 부분 고칠 부분이 있다, 그래서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시고,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고 부분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라는 거군요.

: 맞습니다. 거기다가 21세기에 맞춰서 정보통신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들이 적용되어야 하고, 기본권 신장 부분에 있어 보완이 필요하고, 또 삼권분립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산 편성권이 행정부에 모두 있는 것을 상당부분 국회로 옮겨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국회에도 문제가 있어요. 전부가 다 자기 지역구에 예산을 가져가는 데에만 신경을 쓰니까 막상 예산 편성권을 또 넘겨 줘 버리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거 역시 아주 심각한 문제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되겠죠.

: 개헌에 대한 의견은 제가 참 공감이 많이 가는군요.

: 그런데 막상 개헌을 또 하려면, 이게 아주 맘먹고 해야 됩니다. 대통령 후보가 아예 공약으로 못 박아두고, 당선 되자마자 착수해서 개헌을 해야 될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추진을 할 수가 없어요.

: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 행정구역 개편은 워낙 복잡한 문제라서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해야 합니다. 사실 효율을 생각하자면 작은거 좀 합치고 일제때부터 내려오던 세단계를 두단계로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겁니다.

- 노무현과 김정길, 정서적 유대관계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슬슬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정서적인 유대관계에 대한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에 언제 만나신 거죠?

: 재야 변호사 하실 때부터 알았습니다. 80년대 초였을 겁니다. 부림사건 뭐 그 때였던 거 같아요. 근데 노무현 대통령은 저를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10대 국회의원 출마했을 때 78, 그 다음에 81년도에 출마해서 강도 높은 연설을 하고 그럴 때, 김정길 연설 대단하다 그래서 자기도 들으러 오고 그랬었답니다. 저는 몰랐죠.

처음 만난 것은 대우 조선 사건 전후해서 직접 만났습니다.

: 만나셨을 때 처음 느낌은 어떠셨습니까?

: , 촌놈 같이 생겼지 뭐. (웃음).. 털털하고.. 그런데 고집은 되게 세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인상이 참 좋더라고요.

그런데 내 선거구는 중구, 동구, 영도구 이렇게 했었는데, 내가 영도로 가고 중구를 김광일의원이 하고 동구를 노무현 의원이 하게 된 겁니다. 그 때 친해졌어요.

국회의원 된 후에도 우리가 먼저 서울에 올라왔다고, 권여사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의논하고 같이 다녀 주시고 그랬었습니다. 그 때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밀가루 알러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그 때 권여사가 우리 집사람하고 같이 노무현 의원이 국회의원 선거 한다고 몸 약해졌다고 보약을 지은거에요. 근데 돈이 없으니까, 한의사에게 못 짓고 경동시장 가서 약재를 사다가 약을 지어 먹은거에요. 근데 이 약을 먹을 때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고 그랬는데 노 대통령이 그냥 워낙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니까, 약 먹으면서 밀가루 음식을 막 먹어 버린거야. 그래서 밀가루 알러지가 생겼다고 얘길 한 거에요. 가렵고 그런거죠.

그 얘길 청와대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면서, 기자들한테 김정길 장관 사모님이 소개를 해줘서 지은 한약을 먹고 알러지가 생겼다고 얘길 해버린거야. 그 내용을 우리 집사람이 신문에서 보더니 그렇게 미안해 하더라고요.

아니, 한약 먹으면서 먹지 말라는 밀가루 음식을 먹은건 노무현 그 사람인데 왜 우리 집사람이 그걸 미안해 하나. (웃음).. 그런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 때 많이 어울려 다녔었죠.

민주연구모임 같은 것도 같이 일주일에 한번씩 하고..

그러다가 결정적인 것은 3당 야합할 때 다 따라가고 둘이서만 남아서 완전 왕따가 된거죠. 그래서 둘이서 부산에서 포장마차 가서 술도 많이 먹고.. 우리가 실업자 신세가 된건데..

: 그 얘기좀 자세하게 해 주시죠.

: 뭐 자세하게 할 것도 없어요.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가지고 백수되고, 오갈데 없어진거죠. 그러니 둘이서 만나 서로 위로하고, 맨날 신세타령 하고. (웃음)..

(별거 없었다고 손사래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 속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슬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란히 국회에 입성해서 같이 활동하던 두 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들이 단지 한가지 이유, 3당 야합이라는 거대한 협잡에 반대해서 양심을 지켰다는 그 이유만으로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에 버림받고 싸구려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그 모습.

솔직히 말해서 그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울분이 있었고, 비뚤어진 이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열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 자리에 내가 함께 했더라면~ 하는 부러움이 샘솟아났다.

그러나 이제 그 두 젊은 정치인중의 하나는 이미 이 거대한 국가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자신을 둘러싼 불의를 감당하지 못해 우리 곁을 떠나 버렸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먼저 간 친구가 완수하지 못한 과업을 다시금 완수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다못해 희망의 작은 불씨라도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 3당 야합에 대해 노 전 대통령하고 공유했던 생각을 좀더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3당 야합이라는 것은 비호남의 정치세력이 하나로 뭉쳐서 호남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왕따 시키고자 하는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호남은 맨날 야당이나 하고 다른 지역이 마르고 닳도록 해 먹자는 얘기잖아요. 그리고 3당야합은 김영삼이 비호남 야당의 씨앗을 완전히 말려 버린 것입니다. 정통 야도 부산에서 야당 세력이 사라진 이유가 뭡니까?

거기에 맞서 비호남 지역에 야당의 씨앗을 뿌리자, 라는게 노무현과 나의 공통된 열망이었던 겁니다.

- 꼬마 민주당

: 그 중에 특히 영남?

: 아니, 영남 뿐 아니라 강원 충청 다 마찬가지에요. 비호남 모든 지역에 새로운 야당의 맥을 이어갈려고 노력을 한 거에요. 그래서 꼬마 민주당이 만들어집니다. 사실 민주당이죠. 언론에서만 꼬마 민주당이라고 그런거죠. 무소속으로 있던 박찬종, 이철, 국회의원 떨어져 있던 조순형, 홍사덕, 3당 합당 따라갔던 이기택도 꼬셔가지고 꼬마 민주당을 만듭니다. 그 때 노 대통령하고 나하고 꼬마 민주당을 만들던 의도는 제2야당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평민당하고 합당을 하려고 처음부터 작정을 했던 겁니다. 그런 전제하에 당을 건설했어요. 지구당 창당을 하는데에도 그렇기 때문에 평민당 지역구 의원이 없는 곳에만 창당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꽤 성과를 보였었습니다. 초기에는. 인기가 좋아서 의원 여덟 아홉명이 있었어요. 인기가 좋았어요. 허탁 의원 같은 경우에는 보궐선거 당선도 되고, 대구에 백승홍 의원 같은 경우는 정호용씨하고 붙어서 거의 근접한 득표를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결국 당이 의견이 모이질 않고 88색이 되었다가 결국 몰락하게 된거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노무현을 겪은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보고 다 노무현하고 친구라고 얘길 하지만, 저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이 잘 나갈 때에는 저는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그런 때에는 보통 말하는 노무현의 사람들이 함께 한거죠. 문재인 김두관 유시민 뭐 이런 사람들이요. 오히려 저는 밖에서 도우려고 일부러 거리를 둔 측면도 있죠. 도와줄 때 제대로 돕지도 못한 측면도 있고..

그런데 지금 와서 제가 아직도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눈시울 뜨거워 지는게...

정치인으로 가장 극단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했던 사림인거에요. 친구였고 동지였어요.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실제로 모든 것을 저와 상의했던 사람이에요. 부산 시장 나갈때도 그랬고, 내가 원내총무 하면 자기는 대변인하고, 공천심사위원장 할 때 심사위원하고 장관도 나란히 이어서 하고, 제가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장관 천거도 했었어요.

그 때 국회의원 떨어지고 부산서 오갈데 없어서 둘이 만나게 되면, 동병상련인거죠.

(요부분 즈음해서 김 전장관은 조금 잦은 빈도로 코를 훌쩍이곤 했다. 단순히 알러지 문제로 인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 사람이 원래 잘나갈 때 겪은 거는 가짜고, 어려울 때 만난 사람들이 진실되게 만나는 거 아닙니까.

: 우리 쪽에 정당 행사 있으면 노무현이 와서 참석해 주고, 또 그 쪽에 뭐 있으면 내가 가서 구라도 좀 쳐주고, 뭐 이런거지. 내는 영도에서 다 당선되도록 준비해 놨는데, 여기서도 노무현 당선시켜 줍니까! 뭐 이런것도 외쳐보고. 그래 놓고는 둘다 떨어지고. 이러고 다닌 겁니다.

그러면서 포장마차 가서 소주한잔 따라 놓고 노무현은 담배 피니까 담배도 한가치 피고,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버텨낸 겁니다. 노래방도 많이 갔어요. 노래방 가서 하루 죙일 부산 갈매기도 부르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 노래방도 같이 가셨어요?

: 그 때 많이 생겼었어요. 노무현이 참 부산 갈매기 잘 불렀는데, 서울에 올라와서도 김원기 선배하고 셋이서 노래방 가서 부산 갈매기 부르고 밤새 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노무현이 부산 광복동 와서 대통령 후보 되어 가지고 그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데 그걸 들으니까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훌찌럭. (웃음)

(눈시울은 붉어 지고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쓸쓸하게 웃고 만다.)

그 참 어려울 때 친구였고 동지였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추도사를 썼었죠. 거기다가 제가 못다한 얘기를 다 썼습니다.



(이 추도사는 이 기사의 말미에 전재해 놓았다.)

언젠가 아마 해수부 장관 하기 전에 같은데, 한번은 저를 찾아 왔어요. 마포에 대교라고 하는 식당이 있는데, 장관님, 밥이나 한번 같이 드십시다 해서 거기가서 밥을 같이 먹었죠. 그 때는 제가 피선거권 박탈 당하고 억울하고 기분이 굉장히 나빴었죠. 정치에 아주 정내미가 떨어진 상태였어요. 전 원래 선거에서 한번 떨어지면 당분간 정치권 근처에 안가요.

왜냐면 선배들을 봐 왔으니까, 선거 떨어지고 정당 주변에서 얼쩡 거리면 무척 초라해 보이고 싫더라고. 그래서 난 내가 떨어지면 정치권에 얼씬거리지도 않았어요. 그냥 중소기업 하고 돈 벌고, 일종의 결벽증 같은 건데 그냥 그렇게 되더라고요. 정치권 밖에 사람들이나 만나러 다니고 그랬었죠. 그럴 때 였는데, 찾아와서 점심 먹고 나서 그러더라구요.

장관님, 이번에 내가 민주당 대선 후보 나갈려고 그러는데 좀 도와주소,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첫마디로 뭐라 했냐면 나도 참... "보소, 우리가 국회의원도 떨어진 주제에 누가 대통령 시켜 주겠소." 한거에요. 부산에서 국회의원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국회의원도 못 되면서 대통령을 어떻게 하냐는 거지. 거기다가 당시에는 이인제가 되는 걸로 다들 알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이러는 거에요.

김 장관님이 도와주면 전 됩니다. 이러는 거에요. (웃음)

(이런 터무니 없는 기개, 노무현 다운 발언이다. 비록 허풍스럽게 들리지만, 그 사람은 이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낸 남자였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남자.)

그래서 말을 더 못하고, 제가 도와 드려서 된다면 제가 도와드려야죠~ 이러고 말았습니다. 속으로는 이 사람 참 웃긴다~ 이러면서 말이에요. (웃음)

그러면서 부산에서 후원회를 하는데 와서 축사를 좀 해달라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전에도 김원기 의장이 63빌딩에서 행사를 하는데에도 안 갔어요. 일체의 정치행사에를 안갔었으니까. 그러면서 다른 사람 행사에 아무데도 안 가면서 여기만 갈 수가 있나. 거기다가 그 때 쯤에는 난 정치 안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래서 결국 거길 안 갔는데, 그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서운할 수도 있었겠다 싶어서 참 마음이 아파요.

그러고 나서 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되고 나니 안 도와줄 수가 있나, 그래서 돕기 시작한거죠. 더더구나 저는 당시에 정치권 표면에서 활동을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가서 당원들 고생하니까 밥이라도 좀 사주고, 후원회 같은데에서는 참석할 수가 있었죠. 그 때 낙동강 오리알 얘기도 하고 그런거에요.

그렇게 관계가 이어지는데, 지금도 노무현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 지는게, 진짜 어려웠을 때 함께한 동지라는 거 때문이에요. 오히려 대통령 된 후에는 내가 아무것도 신세를 안 졌지.

: 그렇게 해서 2002년도에 기적적으로 승리를 했고, 참여정부가 있었고,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때, 그 때 얘기를 좀 해주시죠.

: 그 때, 북경에서 한국에 들어와서 서울에 중소기업 하면서 가지고 있던 사무실이 있어요. 그걸 세를 놓으려고 안에 인테리어를 하러 간 거죠. 집사람하고 같이 아침 일찍 나오는 바람에 뉴스를 못 봤어요. 그렇게 그 사무실에 가 있는데, 지인이 전화를 했더라구요. 첫마디가 노무현 대통령 소식 들었습니까? 하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불길하게 들리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하고 물어보니까, 아마 돌아가신 거 같습니다. 하더라고. 그래서 놀라서 물어 보니까 아마 투신하신 것 같습니다. 하더라구요.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어요. 집사람한테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네, 라고 얘길 하니 집사람도 놀랐죠. 그렇게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한참을 집사람하고 붙들고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려서 바로 봉하로 내려간거죠.

그렇게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흥분하고 울면서 매달리며 "김장관님, 노대통령님 원수 좀 갚아 주세요, 원한 좀 풀어주세요." 하면서 부산 시장에 나가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냥 왜 문상 온 사람한테 그런 얘기 하냐고, 난 정치 안한다고 그러고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 그 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 에이, 그걸 말로 표현을 못하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49재인가 하러 봉하에 갔었는데, 보니까 부엉이 바위하고 사자 바위가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충동이 막 드는거야. 나도 저기에 올라 뛰어 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진짜 억지로 참았어요.

그 정도에요.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는 거에요.

: 잠깐 전에 나온 얘긴데, 제가 그런 얘길 읽었습니다. 복수해달라는 분들에게 복수는 아니고 한을 풀자, 라고 하셨다고..

(이 얘기는 노혜경씨가 쓴 글에 등장하는 것이다. 충격으로 쓰러져 입원한 노혜경씨가 위문차 방문한 김정길 전 장관에게 울면서 복수해 달라고 애원하는 얘기이다. 그 때 김 전장관의 답변이 복수는 아니고, 한을 풀자 였다는 거다. 이 글은 이곳에서 볼 수가 있다.)

: 아 그 얘기는 저 사람 뿐 아니라 많이 했어요. 한을 풀어준다면 그가 못 다한 정치적 꿈을 이루어 준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복수라는 건 안되는 거죠. 보복은 해서는 안되는 일인 겁니다.

결국은 지역주의에요.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이 지역주의를 철폐하는 거죠.

그 지역주의도 영남의 지역주의와 호남의 지역주의는 전혀 다른 겁니다. 영남의 지역주의는 우월적 지역주의에요. 지들이 더 잘났고, 지들이 좋은 건 다 가져야 하고, 자기들이 집권 해야 되고 이런 거에요. 대단히 이기적인 겁니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다르죠. 호남의 지역주의는 저항적 지역주의인거에요. 자기들이 왜 차별 받아야 하는가, 정당한 대우를 받겠다, 이런 거에요. 호남의 지역주의는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어요. 영남의 지역주의는 내가 영남 사람이지만 정당성이 없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거야. 어떻게 광주에서 그런 짓을 해 놓고 학살을 저지른 정당이 호남에서 당선되길 바랄 수가 있나. 그건 말이 안되요.

(이 인터뷰가 있던 날이 바로 518일이었다. 그리고 김 전장관은 광주에서 5.18 기념식에 참여한 뒤 부랴부랴 상경해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남에서 호남 사람, 민주당 사람을 떨어트리는 것도 역시 말이 안되는거야. 그럴 자격이 없는 거에요. 물론 민주당도 문제가 있죠. 민주당 내에 호남 사람들 비율이 너무 높은 거야. 지역 정당을 탈피해야 되는거죠. 그래서 비호남 지역이 좀더 많이 참여를 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아직 안되니까 그런거죠.

: 얘기가 결국 지역문제에서 시작해서 다시 지역문제로 돌아오게되는군요.

: 아 그렇습니까? (웃음)

저는 뭐 다음 정부는 영남도 호남도 다 가까워 질 수 있고, 남북도 가까워 질 수 있고, 해외에서도 다양한 국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적인 비중도 그렇죠. 수출도 그렇고. 미국보다 중국이 우위로 올라갔지요. 이익도 그렇고. 그런데 우리가 미국만 바라보고 중국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무서운 결과가 올 수도 있어요. 안그래도 요즘 중국에서 자꾸 한국을 길들이자 뭐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이거 골치 아픕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하게 남북화해 협력이 가능해 진다면 우리가 정말로 동북아 중심국가가 될 수가 있어요. 이거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정치만 잘하면 되는 거에요. 좋은 정권만 만나면 가능 합니다. 나는 정말로 브라질의 룰라 처럼 당선 될 때보다 떠날 때 더 지지율이 높은 그런 대통령을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부자한테도 박수 받고, 빈자에게도 박수를 받는 그런 꿈을 꾸고 있어요.

: 굉장히 어려운 꿈을 꾸시는군요.

: 참 어려운 꿈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밖에 안나온 룰라도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하겠습니까?

: 맞는 말씀입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끝으로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께 동영상 편지 한마디 띄워 주시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근데 오늘 차타고 장거리 이동하고 해서 영 사진빨이 안 받을 거 같은데 걱정입니다.

김정길 전 장관의 영상편지

- 인터뷰 후기

인터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약 두시간 사십분 정도. 그러나 김장관은 한정된 시간내에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털어놓고 싶었는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고, 아이폰 두 대로 녹음한 파일은 그다지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녹취된 텍스트의 양은 실로 서너시간 분량을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애시당초, 이 인터뷰를 하려고 맘을 먹게된 계기는 답답해서라고나 할까.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거듭된 실정에도 불구하고 이쪽 진영의 지지율은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저들은 자기들만의 축제를 준비하며 자기들끼리 당권 대권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 쪽은 이렇다 할 아젠다 설정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간만 죽이고 있는 이 더럽고 끈적거리는 교착상태가 정말로 싫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2의 노무현은 없다. 마찬가지로 제2의 노무현을 찾는 시도는 모두 무위로 돌아갈 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의 노무현이 아니라 포스트 노무현인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을 닮은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노무현이 필요한 것이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를 단순히 계승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는 계속 그런 것들을 요구하고 있으면서도 심지어 이 기사를 작성하는 중에도 내 마음은 계속 노무현의 발자취만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기를 서너차례.

분명히 노무현도 잘못 한 것이 있고, 실패한 일도 있다. 노무현의 뒤를 이을 그 누군가는 그 잘못과 실패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여 고쳐 나가야 할 임무까지 떠 안게 되는 것이다.

과연 정치인 김정길에게는 그 정도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을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노무현을 그리워 하며, 노무현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노무현과 최악의 상황에서 같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슬픔을 나누던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그가 포스트 노무현의 과업을 맡아 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할 생각이다.

단지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단 한가지는,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고, 우리는 그 작은 희망의 불씨를 찾아내어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고, 그 불길을 우리 다음 세대에 전달해 줘야 하는 임무가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김정길이 그 작은 희망의 불씨들 중의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노무현이 우리곁을 떠난지 2년이 넘어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편안히 쉬고 계실 그 분께 단 한마디만 보내 드리고 싶다.

편안히 쉬세요. 이제 남은 일은 우리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잘 해볼께요. 잘 될거에요.

터무니없이 긴 글을 여기까지 모두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마친다. 끝으로 김정길 전 장관이 2009529일에 부산일보에 기고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 바치는 추도사를 전재한다.

[추도사]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김정길/전 대한체육회장 (클릭)

통분과 눈물로 한 주일을 보내고 보니 이제 당신을 영영 하늘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왔소. 내 늦둥이 놈을 위해 당신이 써 준 "기범아! 꿈이 힘이다."라는 글이 아직도 아들놈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 정녕 당신의 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부엉이 바위 밖에 없더란 말이오.

미안하고 원통하오. 당신이 힘들어 할 때, 당신과 여사님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보고자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다시 쓰곤 했었다오. 멀리서나마 두 분을 믿고 후원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차마 그 편지를 부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무릎이 풀려 집사람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오.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당신이 꿈꾸던 세상

사람들 가슴 속에 피어나

친구여,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오. 3당합당을 거부하고 김영삼 총재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향 부산에서 우리 얼마나 많은 멸시와 야유를 받았는지 기억하오? 지역주의를 넘어보겠다고 했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깨지고 또 깨지면서도, 같은 꿈을 꾸는 동지, 같이 행동하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는데, 아직 그 꿈을 완전히 이루지도 못한 채 이렇게 먼저 떠나가 버리다니, 당신은 참으로 야속하고도 나쁜 친구요.

친구여, 당신은 참 멋진 남자요. 당신은 같은 남자인 내가 보더라도 부러울 만큼 결단력이 있고 용맹스러우며 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소. 청문회장에서의 그 포효, 3당합당이 야합이라 외치며 반칙이 허용되는 사회를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고 끝내 정치적 타협을 불허하고 싸우던 기개를 영원히 잊지 못하오. 3당합당 거부 후 쓰린 마음을 소주잔으로 달래며 "나는 국회의원 떨어져도 변호사라도 해서 먹고살 수 있지만 당신은 뭘 믿고 안 따라 갔소?"하며 나와 나의 가족을 걱정해 주던 그 따뜻한 마음, 지친 어깨를 기대고 함께 이야기하며 울던 그 시간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오. 나는 당신이 겉으론 강한 것 같지만 속으론 여린 사람인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오.

친구여, 당신은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오. 누군가 말하기를 "세상에 올 때는 홀로 울고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는데, 당신을 위해 울어주는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당신이 참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거듭된 실패를 통해 가장 큰 성공을 이루었던 비주류였던 당신,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늘 가장 낮은 곳으로 눈높이를 맞추었던 친구 같은 대통령이었던 당신. 당신이 꿈꾸었던 그 꿈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환한 웃음과 함께, 촛불과 함께 피어나는 것을 요 며칠 사이 나는 지켜보았소. 그래서 비로소 나도 내 오랜 친구를 편히 보내주기로 마음먹게 되었소.

편히 가시오, 내 친구여. 이제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훌훌 털고 떠나소서, 내 평생의 동지여.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 원칙이 반칙보다 우선하는 세상,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당신의 오랜 친구들, 그리고 이제 막 당신의 새로운 친구가 되기 시작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일 터이니.

노무현! 당신이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였소.

http://www.ddanzi.com/news/66143.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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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전 장관을 만나다

2011. 5. 23.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mb의 터무니없는 실정과 가속화 되는 양극화의 결과로 민심이 이탈하여 다음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과반점유 실패가 당연하게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선에 대한 전망은 아직도 암울하기만하다.

여전히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와 언제 부상할지 모르는 친이계 대표주자간의 차기 대선 후보자격 쟁탈전을 망연자실해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드러나 있는 야권의 대선주자라 해 봐야,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결정적인 흠결을 지닌 손학규와 열광적인 지지자 그룹 못지 않은 강력한 안티세력이 존재한다는 약점을 지닌 유시민 뿐이다. 정동영, 정세균은? 또 민노당 이정희나 노회찬, 심상정은? 잠시 먼산을 바라본 뒤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 한숨 한번 쉬어 주고...

물론 광범위한 친노 세력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부산의 문재인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인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중의 하나인 권력의지가 결여되었다는 차원에서도 그렇고, 이렇다 할 정치적 경력이 없는 문재인이 지지도만 가지고 대선 레이스에 참여할 경우 예상되는 다양한 부작용도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행정 부문의 최고 수준인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장관이나 광역단체장급의 실무 경험은 필수적인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대통령도 기업인 출신의 문국현 후보에 대해 언급하면서 직접적으로 지적한 적도 있다.

이에 근본적으로 판을 재조명해 볼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땅에서,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야권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갖춰야 할 정치적 조건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이켜 보는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 야당사에 우뚝 서 있는 김대중이라는 거인 말고는 야당출신으로 대권을 움켜쥔 유일한 인물은 노무현 뿐이다. 과연 노무현은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이 그를 청와대로 보내준 것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노무현 본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수많은 중도계층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객관적인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무현 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정치적 상품성을 지닌 캐릭터는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가능하다.

바로 일관성이다.

수십년간 어떤 길을 올곧게 걸어온 사람이 풍기는 아우라는 수십년의 공력을 바탕으로 깔고서야 만들어 지는 희귀한 것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차기 대선후보의 첫째 덕목은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한길을 걸어 왔는가를 살펴봐야 된다는 얘기이다. 물론 그 일관성이 악으로 점철된 일관성이라면 우리는 또 한명의 가카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는 있다.

스스로 말 해놓고도 잠시 섬뜩했다. 또 한명의 가카라니... 젠장..

그 다음으로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그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 하는 것을 같이 살펴봐야 한다. 수십년간 일관되게 주장해온 가치가 있다면, 그 가치가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가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무게감 있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치있는 주장을 실현하기 위하여 긴 시간을 외길 인생으로 걸어왔다면, 그 후보의 도덕성은 어느정도 검증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 다음으로는 보다 냉정한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선거 공학적 가치이다. 이 선거 공학적 가치는 바로 당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당선되지 않는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라도 지지그룹이 없으면 당선될 수가 없다. 똑같은 얘기로, 아무리 지지율이 높아도 강력한 안티그룹이 존재한다면 당선은 불가능해진다. 심지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거인이었던 김대중조차 이 안티세력의 존재가 매번 걸림돌로 작용을 해왔고, 결국 당선을 위해서는 DJP연합이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정치적 술수를 구사하고서야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는 역사를 상기해보자.

전국적 규모로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초 요건은 수도권에서의 과반 득표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물론 수도권은 최상류층부터 최하층민이 뒤섞여 있고, 영남출신과 호남출신이 뒤섞여 있으며 극단적인 진보와 옹고집쟁이 보수가 혼재한 용광로 같은 곳이다. 따라서 수도권을 제외한 곳에서의 지지도 흐름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역에서의 지지는 어떨까?

최우선 과제는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이다. 이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는 야권출신 대통령으로써는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고지가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만으로는 절대 전국규모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한다면, 당장에 영패주의네 뭐네 하는 얘기가 나올 수가 있겠지만 현실은 이렇다. 영남의 비토가 존재한다면 대선에서의 승리는 물 건너 간다. 그게 현실의 무서움이다. DJDJP 연합으로 영남의 비토를 잠재웠던 것이고, 노무현은 스스로 부산 출신이어서 영남의 비토를 무마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자기 지역의 맹주였던 한화갑을 버리고 부산출신인 노무현을 선택했던 광주의 유권자들이야 말로 이런 괴로운 현실의 문제를 꿰뚫어 볼 능력이 있었던 선도적 그룹이라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차고 넘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자면, 호남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도 영남에서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덕목이 된다. 이 덕목을 보유한 후보가 있다면 당연한 귀결로 수도권에서의 승리도 보장되기 때문에 이 덕목은 더욱 중요해진다.

세 번째로는 행정 조직과 관련된 전문적인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은 바로 유능함으로 이어지며, 무능한 진보 보다 부패하더라도 유능한 보수가 낫다는 개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덕목이 된다.

지난 대선에서 유한양행이라는 기업의 리더였던 문국현 후보의 등장은 나름 돌풍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비정한 무법천지, 맹수들이 드글거리는 정글같은 한국 기업계에서 유일하게 기업다운 기업이라는 찬사를 받는 유한양행(설립자 조차 유일한박사이다. 진짜 유일한 기업인가 보다.)을 이끌던 문국현은 이러다가는 진짜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이끌 CEO로 선택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막상 결과는 터무니없이 저조한 지지율에 그치면서, 이명박이라는 회사도 말아먹고 나라도 말아먹은(아직 안 말아먹었다고 주장하지 말자. 거의 다 말아먹어 가고 있지 않은가?) 엉터리 CEO출신에게 참패를 하고 말았다.

첫 번째 이유는 대한민국은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정치적 행정적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는 판단이 가장 객관적인것 아닐까?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유권자라 할 지라도 문국현 후보의 경험부족에 대해 우려섞인 판단을 한 것이라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정치라는 것에 대한 아무런 교육훈련을 받지 못한 시장판의 장삼이사들 조차도, 어떤 그룹의 리더라는 자리가 얼마나 많은 경험이 필요한 자리인지는 모두가 안다. 그것도 전국적인 규모의 행정조직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책무를 맡게 되는 대통령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방대한 조직의 인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임명한 각 담당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부의 조직간 갈등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은 배워서 될 일들이 아니다. 실제로 부딪히고 비난과 찬사 속에 파묻혀 보기도 하고 실패와 성공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시간의 힘으로 누적되어야 하는 덕목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것도 돈이라는 단일 가치로 모여 있는 기업과는 달리 도덕성과 가치가 겸비되어야 하고 입 달린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마디씩 거드는 정치조직, 권력조직 이라면 더 말할 이유도 없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대단히 단순화 되었지만 우리는 이렇게 세 가지 필터를 가지게 되었다.

1. 도덕성 : 일관되게 추구해온 가치가 있으며, 그 가치가 훌륭한 것인가?

2. 당선 가능성 : 호남의 지지가 있고, 영남의 비토를 무마할 수 있는가?

3. 능력 : 정치행정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이 있는가?

차기 대선에 대한 전망이 암울하고 뚜렷하게 이 사람이다 싶은 후보가 없는 혼미한 상황에서 이 세 가지 필터를 들고 바닥에서부터 탈탈 털어본 결과 우리는 뜻밖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발견된 것이 이 이름 하나는 아니다. 단지 가장 처음 등장한 이름이라서, 제일 처음 얘기가 시작된 것이다.

김정길..


약력

- 부산대 총학생회장

- 12대 국회의원

- 13대 국회의원

- 민주당 원내 수석부총무

- 민주당 원내총무

- 민주당 최고위원

- 민주당 부총재

-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 경희대 행정대 객원교수

- 대한체육회 회장

-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 5회 지방선거 부산시장 범야권 단일후보

위키백과에서 긁어온 이 경력을 대략 훑어 보기만 해도 상당히 화려한 이력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력에는 정치인 김정길의 고난의 행군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부산에서만 총 8번의 낙선. 그 중에서 여섯 번은 김영삼의 3당 야합에 합류하지 않고 반대한 죄목으로 이십년이 넘도록 진행되어온 보복성 낙선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도시 부산에서 차가운 냉대를 받아 왔던 것일까.

이름이 떠오르고 그에 대한 질문까지 마련이 되자,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김정길 전 장관을 만나러 갔다.

인터뷰는 여의도에 있는 길벗 산악회 사무실에서 있었다. 길벗 산악회는 일종의 정치인 김정길에 대한 지자자 그룹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김영삼도 그렇고 정치인들은 웬 산악회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굳이 정치인 지지자 그룹이 노사모처럼 무슨무슨 사모 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약간 구태스럽다는 느낌은 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자칭 딴지스 최고의 미남(실제로는 아무리 봐도 내가 조금 더 낫다.) 죽지않는 돌고래 기자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 문앞의 복도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는 김 전 장관을 만날 수 있었다.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딴지에서 오셨어요? 하고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우연하게도 인터뷰가 행해진 그 날은 518일이었고, 광주에서는 5.18 기념식 행사가 있던 날이다. 김 전 장관은 그 행사에 참여하고 인터뷰 시간에 맞춰 서둘러 올라오는 길이었다.

60을 한참 넘어가는 젊지 않은 정치인 김정길은 노타이 차림에 콤비 자켓, 그리고 청바지 차림이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회의실로 자리를 잡은 뒤, 바로 인터뷰에 돌입했다. 부산 시장 선거에서부터 김정길 전 장관 최측근으로 활동해온 전 청와대 비서관 노혜경씨가 배석한 상태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 힘든 대통령을 왜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한마디로 짧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누가 한다고 합디까? (웃음) 내가 직접적으로 한다고 한 적은 없어요. 대안이 없으면 나도 고민해 보겠다 이런 정도로 했었죠.

<오리발을 내미는 모습에 장난끼가 그득하다.>

: 저희는 그런 정치적인 답변은 취급안합니다. 그냥 답변해 주시죠. (웃음)

: 지금 대통령 하는거 보니까 저런사람에게 맡겨 놔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우리쪽에도 보니까 지금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 맡겨 놓으면 우리가 바라는 정치는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거에요.

: 할만한 사람이 없는 거 같다?

: 내 눈에 잘 안들어오네요. (웃음)

(인터뷰의 시작은 이런 질문으로 했다. 아주 단도직입적이고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답변하기 힘든 질문일 수도 있었으나 별 어려움없이 너털 웃음 섞인 답변이 돌아왔다.)

- 딴지일보 인터뷰의 관습헌법에 따른 질문들

: 딴지와 인터뷰를 하시면 보통 저희가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질문들을 몇 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딴지일보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있습니다.

: 어떤 기사가 기억나시나요?

: 근래에는 별로 본 적이 없고..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인터뷰 기사 같은거..

: 내용이 보시기에 어떠셨나요?

: 딴지 답더군요.

: 이번 인터뷰도 그런 분위기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김정길 전 장관님만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 그런데 안티 딴지도 있나요?

: 몇 개 있었는데 뭐 별로 보잘것이 없지요.

돌고래 : 다 망했어요.

: 망했나요?

: 딴지도 망할지경인데요 뭐. (웃음)

: 안티딴지들이 먼저 망한거구만.

: 다음 질문입니다. 지난번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분들을 모아 놓고 했던 질문이 한 개 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질문이었는데, 저도 해 보겠습니다. 지금 지갑을 꺼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 내 지갑을?

: . 보여주세요.

<주섬주섬 꺼내서 펼쳐 보이는 지갑에는 2불짜리 지폐 두장,

그리고 꽤 많은 카드들이 들어 있었다. >

: 이거는.. 2불짜리 지폐인데..

: 2불짜리 지폐가 행운을 가져온다는 얘기는 저도 들어 봤습니다만, 특이하게 두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사실은 더 많아요. 한 장은 셋째 딸아이가 준거고, 누가 또 한 장을 주더라구요. 사실은 더 많은데, 그냥 가지고 있는 거 뿐입니다.

: 지폐는 그거 밖에 없네요?

: 지폐는 또 있어요. 그건 다른 지갑에..

: 지폐용 지갑을 따로 쓰시는군요. 얼마 들었는지 궁금하긴 한데.. 다른 카드들은 다 무슨 카드인가요?

: 평소에 쓰는 것도 있고, 이건 백화점 카드입니다. 사실 쓰는건 한두개 밖에 없어요. 이거는.. 제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극장 카드입니다. 이건 코레일 카드고, 자주 돌아다니니까.. 그 다음에는.. , 이건 집 열쇠입니다.

: 집열쇠를 가지고 다니시는군요.

: 요즘엔 이거 없으면 아파트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 또 다른건 없으신가요?

: 내도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습니다.

: 별로 특이한건 안 가지고 계시는군요.

(지갑의 내용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좋아한다~ 라는 것 정도였다. C*V 카드를 직접 가지고 다닐 정도면 정기적으로 영화를 본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 듯. 영화를 즐겨 보는 정치인이라.. )

: , 담배는 어느 정도 하십니까?

: 원래 아버님이 술을 잘 못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 먹는데, 자꾸 먹다보니 좀 늘더라구요. 요즘은 맥주 한 세병정도? 양주 1/3 병 정도는 먹습니다. 많이 먹으면 반병 정도는 먹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먹으면 필름이 끊길 수도..

: 담배는..

: 담배는 못 배웠어요. 대학 때 그러니까 6-70년대인데, 옛날에 영화를 보면 담배 피는게 무지 멋있게 나오잖아요. 그래서 한번 피워 봤더니 기침만 나오고 머리 아프고 이거 폼만 좋지 별로 안 좋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못 배웠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행운이냐면, 제가 미시건 대학에 객원교수로 있었고 샌디에고 있었고 그러는데 보니까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엄청 괄시 받더라고. 그거 보면서 이거 참 안 배우길 천만 다행이다 싶었어요.

: 운동은 얼마나 하십니까?

: 헬스크럽에 아침에 가서 런닝머신 같은거 좀 타고.. 수영도 좀 하고..

: 수영은 잘 하십니까?

: 내가 거제도 섬사람이잖아요. 딱 그 정도 합니다.

: 이제 다른 질문입니다. 딴지일보에 보면 아주 유명한 필진이신 파토라는 분이 쓴 외계인에 대한 연재물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했죠. 외계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외계인이야 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 다른 사람이야 그렇고,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건 좀 애매한데, 글쎄..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사실 우리가 생각할 때 태양이 참 크지만 더 넓은 우주에 보면 저런게 수도 없이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외계인이 있을 수도 있고.. 이건 하느님이 있느냐 하는 질문과도 비슷한 거 같아요. 있다고 보면 있는 거고, 없다고 보면 없는 거고..

: 그러면 아틀란티스 대륙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건 전설이잖아요. 전설은 전설이지 그걸 가지고 뭐 있으면 어떻게 되나,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 전설은 전설일 뿐이죠.

(이 밖에도 무당이 작두 타는 얘기, 삼각팬티냐 사각 팬티냐 이런 것도 다 물어 보려고 했는데, 이런 추세라면 다 똑같은 답변이 나올 것 같아서 통과.)

: 이제 시사적인 아주 중요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이돌 그룹 중에 카라 라고 있는데, 다른 언론 같으면 이런 아이돌 그룹을 아십니까~ 뭐 이런 질문을 드리겠지만 저희는 좀 다릅니다. 카라가 직면해 있는 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글쎄요, 그 문제는 카라와 자기들이 속한 기획사간의 문제겠죠. 그게 사실은 체육계에서도 있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유명하기 전에 장기계약을 했던 것이 나중에 뜬 뒤에도 원래 계약서 내용대로 끌고 가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건데, 처음에 계약을 했을 때와 나중에 유명해 진 다음에는 상황이 다르니까 계약서 내용을 바꾸는게 옳겠죠.

물론 기획사 입장에서는 초기에 계약한대로 법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문제겠죠. 결국 이 문제는 흔히 말하는 소통의 문제입니다. 처음에 예상한대로 가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명하게 된다거나 하면 변화된 상황에 대해 서로 소통을 해서 타협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어느 한쪽도 자기주장만 해서는 곤란하겠죠.

: 예상밖으로 너무 심도있는 답변을 해 주셔서 당황했습니다. 그냥 카라 멤버 이름을 전부 아시는가, 뭐 이런 질문을 할 걸 그랬습니다.

: , 멤버 이름은 몰라요. (웃음) 그냥 카라가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다, 라는 정도만 아는 거에요.

(대한 체육회장 출신이라는 경력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대형 기획사와 아이돌 그룹간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등에 대해 어지간히 윤곽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괜히 물어봤다. )

: 딴지일보와 관련해서 남로당이라는 거 아십니까?

: 그게 무슨 성 해방 이런 거랑 관련 있는 거 아닌가요? 난 그게 무슨 남조선 노동당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 아시는군요. 딴지의 남로당은 남녀불꽃 노동당입니다. 딴지에 꽤 유명했던 서비스였죠.

: 아 근데, 그거 좀 물어봅시다. 그거 왜 없어졌어요?

: 돈을 못 벌어서 그런가보죠. (남로당이 왜 없어졌는지는 오히려 내가 모른다. 어쩌라구..)

: 그거 고객이 있으면 돈이 되는 건데 왜 그랬을까요?

: 웹 비즈니스에서 꼭 고객이 있다고 해서 돈이 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질문은 다음 질문을 위한 준비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자녀분께서 동성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동성이란 박씨끼리 결혼하거나 이런게 아니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을 한다는 뜻입니다.

: 천만다행인게 아직 우리 애들은 그러지는 않고 있고요. 나는 가톨릭신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성은 하느님이 준대로 해야지, 인간의 임의대로 성을 바꾸고 하는 건 좋진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서로 좋아서 동성애를 한다거나 하는 걸 금기시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거야 뭐 서로 좋으면 하는 거지만, 그걸 굳이 내가 권장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기존의 틀을 깨거나 하는 파격적인 입장을 발견하길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의 의지에 따라 행하는 일에 대해 각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정도만 되어도 현대 사회에 필요한 정도로는 충분한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최소한도의 개방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

: 다음은 요즘 아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나가수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 뭐요?

: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 말입니다.

: 아 그거, MBC에서 하는 프로그램 말하는 거죠? 일요일 저녁에 하는 거 간혹 봤습니다.

: 거기 등장한 임재범이라는 가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임재범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아십니까?

: 이름은 들어 봤어요. 내 그 양반 노래 부르는 것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가창력이 뛰어나다고들 하고 롹 가수였다가 트로트(남진의 빈잔)를 불러서 떴다 그러던데 뭐를 물어보는 거죠?

: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사건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가를 여쭤 본 것입니다.

: , 관심이 좀 있죠. 다음 주에 출연을 해야 되는데 맹장염이 걸려서 문제다 뭐 이런 얘기까지 들었어요. 빨리 나아서 출연을 했으면 좋겠네요.

: 맹장염 걸린 거 까지도 알고 계시는군요. (웃음) 이제 이런 종류의 질문은 대략 마무리 하고, 살아오신 얘기를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정길 전 장관의 개인사

: 시간 순으로 아주 어렸을 때 얘기는 넘어가기로 하고 바로 대학시절로 가겠습니다. 부산 대학교에서 총학생회장을 하셨잖습니까?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런 소문이 있더군요. 부산대에서 총학생회장을 하고 싶어서 일년을 꿇었다~ 이거 사실입니까?

: 그건 사실입니다. 사실인데, 어떻게 된 얘기냐면, 제가 대학을 가는데 일지망을 의예과를 했었어요. 그런데 이지망으로 생물학과에 들어간 겁니다. 그 때 부산대는 지방대라서, 시국 사건에 대해서는 늘 앞장서지 못하고 다들 파장이 되면 뒤늦게 뛰어들어 뭐라 하고 그런 실정이었고 그게 난 아주, 이 촌놈들이 불만이었어요. 그래서 3학년때, 총학생회장 선거에 도전했는데 떨어진거죠. 떨어진 다음에 다음해에 내 친한 친구를 학생회장을 시켰어요. 그리고 나서 졸업을 한겁니다.

그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성적도 최고로 좋은 수준이었고, 그냥 대학원에 가서 생물학 공부를 계속 할까, 그랬다면 지금 내가 실험 가운 입고 연구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또 한쪽으로는 시국사안에 대한 관심도 많았어요.

그래서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에 학사 편입을 하게 된 겁니다. 꼭 학생회장이 하고 싶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시국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 또 학문적인 관심도 겹치면서 정외과에 학사편입을 하게 된거에요. 정외과 3학년으로 학사편입이 되니까, 다시 총학생회장 출마 자격이 생긴거죠. 그래서 기왕에 정외과에 온 김에 또 한번 도전을 한거죠.

당시에는 학생회장 선거가 요즘보다는 훨씬 더 치열했고, 주로 고등학교 동문간의 대결의 성격이 강했어요.

: 그럼 동아고 정도 되면 꽤 우월한 지위 아니었나요?

(김 전 장관은 부산 동아고 출신이다.)

: 부산고나 경남고가 있잖아요. 동아고야 그 다음이었던거죠. 거기다가 단과대도 문제가 되는거에요. 문리대나 상대가 인원이 많잖아요. 정외과는 법대 소속인데 숫자가 무척 적죠. 거기다가 문제가 또 생긴게, 내가 학사편입을 한 정외과에서 또 한명의 후보가 출마를 했어요. 같은 단과대에 같은 정외과에, 거기다가 같은 동아고 출신의 후배였어요. 이렇게 되면 선거 하기 무척 힘들어지죠. 거의 불가능한 선거가 되어 버린 거에요.

그래서 요새말로 단일화 과정이 있었죠. 서로 승복하기로 약속하고 단일화를 시도한거에요. 당시 정외과 학생수가 한 스무명 되었는데 휴학하고 군대가고 뭐하고 해서 열댓명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앞 막걸리집에 몰려 가서 두사람이 합의해서 승복하기로 얘길 한거죠. 그래서 열두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 그 후배가 3표를 얻고 내가 9표를 얻은거에요. 내가 이긴거죠.

근데 이 친구가 자기는 3년이나 같이 생활을 했고, 저 사람은 겨우 이제 학사편입해서 몇 개월 같이 다녔는데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러면서 기분이 상해가지고 술잔을 집어 던지고 나가 버리더라구요. 따라가서 설득을 해도 설득이 안돼. 결국 같은 단과대에서 둘이 나가게 된거죠.

: 단일화에서 이기셨는데 상대가 불복한거네요.

: 이겼는데 결국 둘이 나가게 된거죠. 부산고 출신 상대에서 단일후보가 나오고 문리대에서도 단일후보가 나오고, 굉장히 어려운 선거를 한거죠. 우리는 같은 단과대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 둘이나 나온거에요.

(예나 지금이나 단일화는 어렵다. 조낸 어렵다. 같은 얘기로, 단일화에 패배하고 흔쾌히 승복하는 후보를 발견하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인간들이 다 그런거지 뭐. )

그런데 999시에 투표를 해 가지고, 9표 차이로 이긴 겁니다. 나인 포카입니다. (웃음) 겨우 신승을 한거죠. 그래서 71년도에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하게 된겁니다. 거기서 나온게 무슨 칠일동지회(71년도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의 모임) 같은 것도 하게 되고..

: 정말 어렵게 당선되셨군요. 그런데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당선된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공약이 좋았나요?

: 그 때, 부산대가 하도 시국사건에 대해 뒷북이나 치고 그랬으니까, 내가 그 얘길 했어요. 지금 시국 사건들에 관련된 현안이 무척 많은데, 난 졸업장이 하나 있지 않냐, 그러니까 난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좀더 소신대로 싸울 수 있잖냐, 이런 얘기가 먹힌 거 같습니다.

거기다가 상대후보가 저를 공격하기를, 아까 그 얘기같이 김정길이 저 놈은 학생회장 해 먹으려고 졸업까지 해 놓고 또 편입해서 들어온 놈이다, 욕심쟁이다, 뭐 이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단과대학별 합동 연설회를 하는데 그 얘길 한겁니다.

내 보고 학생회장 한번 떨어진 넘이 또 해 먹으려고 욕심부린다고 하는데, 당시가 박정희가 3선 해 먹던 시절 아닙니까, 어떤 놈은 대통령 두 번 당선시켜줘도 헌법까지 바꿔가며 대통령을 또 해먹겠다고 하는 지독한 욕심쟁이도 있는데 내가 무슨 욕심을 부렸다고 그러느냐, 하면서 사람들이 다 웃고 난리가 났었어요.

그렇게 박정희 욕한번 하고 학생회장에 당선된 거죠.

- 지역주의 철폐를 위한 싸움의 시작

: 그 때 선거공약으로 지역주의 철폐를 주장 하셨었다는데, 당시는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이용해 먹던 거의 초창기 아니었나요?

: 맞아요. 사실 그 전에는 지역감정 같은 게 거의 없었어요. 뭐 말로는 옛날에 고려시대 훈요십조 같은 얘기까지 하고 그러는데 그건 의미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 때만 해도 호남 사람이 영남 와서 국회의원도 되고, 반대로도 하고 그러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박정희-김대중 선거도 하고 그러면서 영남표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 공화당에서 지역감정을 조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 때 당시 국회의장 하던 이효상씨가 하와이론, 신라 대통령론 뭐 이런 소리 하면서 지역감정이 시작된 걸로 봐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남북도 갈린 마당에 동서까지 분열되는 지역주의는 안된다 하면서 언론에 인터뷰도 하고, 지방 5개 국립대학을 다 초청해서 친선 체육대회도 하고, 지방 대학들 막 돌아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지역감정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로 한 달 여를 호남 지방을 혼자서 여행도 다녀 봤어요. 택시도 타보고, 여관방에 가서 일하는 분들하고 얘기도 해보고, 그렇게 알아 봤더니 실제로 지역감정 같은 건 별로 없더라구요. 정치권이 이용을 해 먹은 거 뿐이죠.

: 실질적인 지역주의는 없었다?

: 그렇죠. 하지만 그 때부터 이 지역주의에 불이 붙은 겁니다. 그래서 대학들이 하계 봉사를 가는 것도, 자기 지역에 가는 관례가 있었는데, 부산대 하계 봉사를 가면서 전남 광양으로 갔습니다. 80명 정도 해서 의료봉사까지 해서 도계를 넘어 전남 광양 골약면(현 골약동)으로 간 겁니다.

한 열흘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길도 쓸어주고, 우물에 덮는 것도 없어서 우물 지붕도 만들어주고, 의료봉사도 하고 그랬더니 한 열흘 만에 정이 들어서 나중에 배타고 돌아 오는데 주민들도 울면서 환송해주고, 우리도 막 울고 그랬었어요.

, 이렇게 서로 소통하고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건데, 괜히 정치권에서 이런 걸 이렇게 악용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절감하게 된 겁니다. 사실 그 때부터 저는 지역주의와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3당 합당 때부터 안 따라가고 지역주의와 싸운 걸로 알고 계시는데, 저는 이 때부터 지역주의와의 싸움을시작한 겁니다. 이 손바닥 만한 땅덩어리에서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갈리고..

- 최초의 구속과 제적

: 그래서 그 때부터 지역주의와 싸움을 시작하신 거군요. 근데 그러다가 결국 유신정권에 의해 구속까지 당하게 되시는 거군요.

: 유신 전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유신 직전에 준비하는 단계에서 벌어진 일이죠.

그게 또 어떻게 된거냐면, 제가 부산대 총학생회장 하는 동안 모든 시국 사건에서 부산대가 선두였어요. 그 때 지방국립대학 육성법 뭐 이런 문제로 부산대에서 데모도 하고, 대구 경북대에 총학생회장을 만나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경북대 학생처장이 저한테 하는 얘기가, 예년에는 주로 북풍이 몰아쳤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남풍이 세냐고.. 이런 재미있는 얘길 한 적도 있죠.

그 때 서울에서 71년도 가을에 전국체전이 있었죠. 그래서 제가 그 때에 맞춰서 전국 총학생회장들에게 개인적으로도 친분도 있으니까, 다들 서울에서 한번 모이자고 제안을 했었죠. 임기도 한참 되었고, 다들 모여서 얼굴도 보고 막걸리도 한잔씩 먹고 그러자는 모임이었어요. 별거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였는데, 그 때 이 사람들은 유신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에요. 우린 전혀 몰랐죠. 우린 그런거 모르고 전에 불타 버렸던 세종문화회관 앞에 커피숍에서 모여 있었는데, 불시에 종로 경찰서에서 거기를 덮친 겁니다. 정보과 형사들이 총 출동해서 거기 모였던 전국 총학생회장들이 몽땅 잡혀갔어요. 몸수색 다 당하고 하룻밤 동안 잡혀 있었죠.

: 사실 그 모임은 정치적인 모임은 아니었던 거죠?

: 전혀 아니었죠. 아마 그냥 총학생회장들이 다 모인다니까 예방 차원에서 그랬던 거 같아요. 사실 내가 그 모임을 주도했다는 것 정도는 알았겠죠. 그래서 우리가 막 항의를 한거에요. 뒤져봐야 아무것도 안나오고 그러니까.. 그래서 항의한 끝에 담날 새벽에 풀려나서 고속버스 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그 때 위수령이 떨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대에 군이 진주하고 뭐 5개 대학에 군대가 들어간거죠.

결국 다른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 소리도 못했는데, 제가 내려가면서 생각을 해 보니까 이 쉐끼들 참 웃기는 놈들이다 싶어서 박정희 대통령, 그러니까 대통령이 내린 위수령에 대해 항의성명을 준비하게 된겁니다. 위수령 반대 이런거죠.

그래서 성명서를 준비해서 월요일 아침에 발표하려고 전날 밤 열시쯤에 부산 광복동에 왕다방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서 학생회 간부들하고 모여서 의논을 하려고 했던 거에요. 근데 전국적으로 위수령 떨어지고 그러니까 간부들도 무서워서 안 나오는거에요. 두명인가 나왔어요. 아마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웠겠죠.

그렇게 모여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요. 내가 거기 있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전화가 온거죠. 카운터에서 전화를 받아서 여보세요, 하니까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씨냐고 확인을 하더라구요. 맞다고 하니까 바로 전화를 탁 끊어요.

: 있는가 확인한 거네요.

: 그렇죠. 끊자마자 바로 사복형사들이 달려 들어서 양팔을 딱 붙잡아요. 그러더니 신분증 보여주면서 형사라고, 바로 옆에 창천 파출소로 가자는 거에요.

근데 내가 그 때 성명서하고 자퇴서를 가지고 있었어요. 어차피 성명서 내면 짜르겠다고 할 거니까, 내 먼저 스스로 자퇴하겠다 이런 심정이었죠. 그래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 성명서가 문제가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없애야 겠다 싶어진거죠.

그래서 시간을 끌면서 실랑이를 한거죠. 난 못간다, 뭐 이러면서 시간을 끌다 보니 주변에 손님들이 다 가버리고 우리만 남았죠. 그래서 내가 이 성명서를 없애려고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하니까 보내 주더라구요.

화장실 가서 이 성명서를 갈기갈기 찢어서 변기에 버리려고 보니까, 그 예전에 쓰던 쪼그리고 앉는 변기 있잖아요. 근데 또 줄을 잡아 당겨도 물이 안나와. 고장인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갈기갈기 찢어서 손으로 변기 구멍속으로 쑤셔 넣고 나왔죠. 그리고는 나와서 날 데려가려면 내 발로는 못 가니까 구속영장을 가져오거나, 강제로 끌고 가려면 내가 힘이 딸리면 끌려 가겠지, 뭐 이런거죠. 그러고 강제로 끌려 갔어요. 창천 파출소로 갔더니 몸수색을 하더라고요.

<공익광고 : 변기에 이물질을 넣지 맙시다. 막히면 치울 것도 아니면서..>

: 그 시점이 그러니까 일요일 밤인거죠?

: 그렇죠. 그렇게 끌려 갔다가 다시 지프차가 오더니 싣고 가요. 가보니까 동래경찰서더라고요. 잡힌 곳은 중부경찰서인데, 부산대가 동래경찰서 관할이니까 거기로 데려간거겠죠. 가서 또 몸수색을 해요. 근데 뭐 나오는게 있어야지. 자퇴서 밖에 없는데. 그래서 내가 뭐 때문에 잡아왔냐, 죄명을 대라, 뭐 이렇게 항의를 한 겁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또 난감하죠. 뭐 증거가 없으니까.

그렇게 잡혀 있었는데 새벽 두시쯤 되니까 형사가 이만한 몽뎅이를 가지고 들어와요. 오자마자 바로 이 새끼 하면서 막 후려치는거에요. 나도 뭐 맞아 죽으나 이래 죽으나 하면서 이 새끼 왜 때려~ 하면서 막 붙었죠. 그렇게 막 싸움을 하면서 나를 죽이라~ 하면서 덤벼 드니까, 형사가 이거 네가 썼지! 하면서 뭘 들이대는데 보니까 화장실에 버린 그 성명서를 하나하나 다 모아서 테이프로 붙여서 가지고 온거에요. 그걸 또 볼펜으로 쓰는 바람에 하나도 안 번지고..

: 그게 물이 안내려가서.. (웃음)

: 그런거죠. 그래도 그게 내가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아니고 그냥 써서 가지고 있던 걸로는 죄가 성립이 안되죠. 그런데 이걸 가지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거에요. 그 때는 대통령의 권위가 대단하니까, 대통령에게 도전했다 뭐 이런거죠. 그러면서도 이걸로는 죄가 안되니까 한 오월달에 데모한걸 가지고 집시법,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뭐 이런걸로 영장을 청구한거에요. 한 육개월 지나서.

그러려면 잡혀갈 사람이 한둘이 아니죠. 근데 아무도 안 잡혀가고, 전국에서 위수령 관련으로 제가 딱 혼자 구속이 된 겁니다. 그 때 부산일보 사회면 탑 기사 부산대 총학생회장 전국에서 첫 구속 뭐 이렇게 나오고 동아일보에도 3단으로 부산대 총학생회장 김정길 전국에서 첫 구속. 뭐 이렇게 나오고 그런 겁니다.

: 그 시점이 71년인가요?

: 71년이죠. 711015일인가 17일인가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때 각 대학별로 또 제적학생 명단이 통보가 됩니다. 부산대에서는 70여명 정도 명단이 왔을 겁니다. 여기서 또 노혜경 교수하고 내 인연이 나오는데, 그 때 노교수 아버님이 부산대 학생처에 교수로 보직학생과장이셨지요. 그 때 제적학생 명단이 내려와서 학생처장하고 그 학생과장님이 고민을 하시더라구요. 그 때는 문교부에서 학교로 명단을 내려 보내면 제적을 시켜야 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담판을 한 겁니다.

부산대가 내가 총학생회장 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대학 아니었냐, 내가 학생회장 하면서 시끄러워진건데, 문교부하고 타협을 해서 내만 짜르십쇼, 김정길이 이넘만 아니면 부산대 학생들은 다 얌전한거 아니냐, 그러니까 김정길만 자르기로 하고 나머지는 살려주시라 이거죠.

실제로도 그 때 명단에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내 따라서 학생회 일하던 간부들이었고 그러니까요. 주동자는 나였고 그런거죠.

결국 그래서 문교부와 타협을 해서 나 혼자만 짤리고 말았어요.

: 그러면 요즘말로 자원해서 독박을 쓰신거네요.

: 그런거죠. 하여간 그렇게 되어서 다른 대학은 여러명씩 제적당했는데, 부산대는 나 혼자만 제적당하게 되는거죠. 제적 당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구속도 당하고..

: 그 상황에서 교수님들도 좀 난감하셨겠습니다. 학생이 나서서 스스로를 자르라고 그러고..

: 그렇게 안하면 70여명이 제적될 판이니까.

: 그래도 교수님들은 학생을 보호해야 되는 입장이었을 텐데..

: 할수 없었던 거죠. 안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우르르 짤릴 판이니까.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거죠.

: 그 때만 해도 제적 당한 다는 것은 매우 큰 불이익이었죠.

: 그렇죠. 한번 찍히면 취직도 안되고, 반대로 또 그 때도 어용 학생회장 하면 저 쪽에서 알아서 취직도 막 시켜주고 그랬어요. (웃음)

- 결혼생활

: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학생회 시절 얘기는 이걸로 넘어가기로 하고, 결혼과 가족 문제를 좀 여쭤보겠습니다. 사모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 좋은 사람이죠. (웃음)

: 정치인들의 경우 장인어른 직업이 참 중요하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그랬고.

: 우리 장인어른 장모님은 결혼 전에 돌아가셔서 얼굴도 못 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게 정치인 입장에서는 핸디캡이라면 핸디캡인데, 저는 재혼입니다. 국회의원도 되기 전에, 한참 힘들 때, 그 때 한번 결혼에 실패하고 그리고 나서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죠.

첫 결혼한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결혼해서 3년 정도 되었나 해서, 여러 가지로 성격도 안 맞고 잘 안맞더라고요. 선거 두 번 떨어지고 사글세 방도 없는 시절이었는데 어려웠죠. 그 사람은 부산에서 집이 좀 살기가 괜찮은 부유한 집 출신이었는데, 시골 집에 애들 셋 데려다 주고 가버리더군요. 딸이 연년생으로 셋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도 못하고 셋방도 없고 혹은 셋이나 딸리고 그런 남자한테 처녀의 몸으로 시집을 온 거에요. 참 대단한 결단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결혼해서 아들이 둘이 생겼죠. 원래 아들 하나 낳고, 나중에 하나는.. 그게 좀 챙피하기도 한 얘긴데, 원내총무 하던 시절에 나이가 48이나 되어가지고 늦동이를 하나 낳은 거에요.

: 48세에 늦동이라니, 그런 것도 유행의 첨단을 달리시는 건가요?

: 그런 것도 첨단인지는 모르겠는데, 하긴 그 때 또 늦동이가 유행하기도 했었죠. 유행따라 한건 아니고. 집사람은 나랑 열살 차이가 나서 서른 여덟이었죠. 하루는 집에 왔는데...

노혜경 : 그런 건 너무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웃음)

: .. 이런 건 기사로 쓰지 마시고 그냥 참고로 얘기해 드릴께요. 하루는 집에 왔는데, 집사람이 몸이 좀 이상하다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몸이 이상하면 병원에 가야지 하니까 그게 아니라 임신인 거 같다는 거에요.

, 십이년 동안에, 그 위에 형하고 열두살 차이거든. 피임도 안해도 임신도 안되고 그러니까 우린 다 끝난줄 알았지.

(우린 이런 얘기는 또 악날하게 쓴다. 우리네 인생에서 이런 얘기가 안 중요하다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독자 제위께서는 항상 조심하시라. 우리들 중 누구에게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 그러면 재혼하신게 언제쯤이신거죠?

: 그러니까 85년에 내가 처음 국회의원 된거니까.. 83년에 결혼한 겁니다.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죠. 어려웠는데 동생한테 돈도 좀 빌리고, 그래도 국회의원도 출마하고 그러니까 신용금고, 저축은행 같은데서 신용으로 대출도 좀 해주고 해서 조그마난 수퍼마켓 같은 걸 했어요. 그래서 살았던 건데..

하여간 그래서 이렇게 아이가 생기니까 솔직히 고민을 좀 했어요. 지금이야 가톨릭이지만, 당시에는 개신교였는데 내가 장로고 집사람이 집사였어요. 기독교에서는 낙태를 금지하잖아요. 그래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데 하면서 조금 챙피하긴 하지만 그대로 낳았어요. 그 다음에 14대 국회의원 선거 나가서 떨어지잖아요. 1야당 원내총무면서도..

, 하느님이 떨어질 거 미리 알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 하면서 주신 선물 같아. 그런데 처음에는 좀 창피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낳고 나니까 막상 시간이 많이 나서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보니까, 전에는 애를 낳아도 막상 들여다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애를 보게 되니까 그렇게 예쁠수가 없어.

: 5남매 중에서 막내만 사랑을 듬뿍 주셨군요.

: 아 듬뿍 받았지. 그런데 이 넘이 머슴앤데 완전히 나를 똑 닮았어. 완전히 카본 카피야. (전체 웃음)

, 이런건 좀 구체적으로 쓰진 마시오. 그냥 여담으로 재미있으라고 한 얘기니까..

(전체 인터뷰 중에서 이 부분에서 제일 목소리가 밝고 톤이 높아진 거 같다. 정치인이고 대통령이고, 이 땅의 아부지들은 다 똑같은 거. 이거 부인할 도리가 있겠나 싶다. 이 부분, 너무 구체적으로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 부탁은 죄송하지만 못 들어드리게 되었다. 오히려 김정길 전 장관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측면일 것 같아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었다. )

: 정치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사모님들한테 많이 미안해하지 않으십니까?

: 많이 미안하죠.

: 그런 표현은 어떻게 하십니까?

: 여보 미안해.. 이 말 밖에 없지.

: 많이 듣던 표현이군요.

: 사실 집사람이.. 이런 거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말라 그러는데 자꾸 구체적으로 나오네. 재혼 해가지고 첫 선거를 치르는데, 지역구에서 다들 재혼한 거 알잖아요. 그 때는 진짜 어려워가지고 공탁금도 마련하기가 어려웠어요.

두 번 째 선거니까 81년이에요. 광주가 80년이고..

(이 인터뷰가 있던 시점이 공교롭게도 바로 518일이었다. )

- 낙선의 경험

: 그 때야 뭐 정치하던 사람은 다 규제로 묶이고, 아무도 없었죠. 그래도 저는 무소속으로 했었기에 안 묶였어요. 그래서 출마를 했는데, 야당 후보들이 유세랍시고 하는 게 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이러면서 하더라구요.

: 야당 국회의원들이요?

: 그 때야 뭐 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하던 사람들이 그냥 출마하고, 민한당이라고 가짜 야당이 있었고, 안기부에서 오더 공천 뭐 이런거 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난 그런 정당에 공천을 받을 수 없다하면서 무소속으로 또 출마한거죠.

그 때 연설하러 올라가서, 합동유세 하면서 모이기도 많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광주사태의 원흉이 누구냐~ 전두환씨~ 막 이러면서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악용하는 자는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뭐 이런 연설을 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연설을 듣는 사람들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하데요.

: 그렇겠네요. 당시가 어떤 시절인데..

: 다들 전두환 대통령 각하 찾는데 전두환씨 라고 하고.. 제가 직접적으로 전두환이 광주의 원흉이라고 한건 아니지만 듣는 사람들은 다 전두환 얘기라고 알아듣게 연설을 한거죠. 그렇게 연설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없어요. 내가 연설 마치고 나면 다들 나를 따라 나와서 그런 거에요.

그러고 났더니 바로 보안사에서 전화가 와요. 만나자고. 그래서 사무실 옆에 커피숍에서 만났더니 바로 당신, 쓰는 용어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 오늘, 청학국민학교에서 합동 연설회 하면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광주사태의 원흉이라고 그랬지? 하고 정색하고 묻는 거에요.

근데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광주사태의 원흉은 전두환이라고 안했다고. 듣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듣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서 정색하고 답을 했죠. 여보, 당신 진짜 큰일 날 사람이네. 내가 언제 그런 얘길 했지? 녹음 다 했으니까 가서 들어보자. 이런거에요. 그러니까 말문이 딱 막혀서 말을 못해. 그러더니 다음날부터 언론에 김정길이 구속~ 뭐 이런 얘기가 막 나오기 시작하더라구요.

전국에서 내 연설이 발언 수위가 가장 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 험한 시절에..

그렇게 계속 선거 과정에서 구속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면서도 막상 구속은 안시키더군요. ? 구속 시키면 옥중당선 된다고. 낙선하고 나니까 선거법 위반으로 딱 걸더군요.

개표과정에서는 새벽두시까지는 내가 당선권에 있었어요. 둘 뽑는데 3등으로 떨어졌는데 8천표 차이로 떨어졌었죠. 근데 문제는 그 때는 투개표소에 참관인도 없어요. 그러니까 뭐 내 표 98장에 양쪽 겉에만 민정당 표 붙이면 민정당 표 백표, 민한당 표 붙이면 민한당 표 백표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놈은 절대 당선시켜서는 안될 놈이다 해서 떨구려고 참관인도 없으니까 맘대로 하는 거에요.

그렇게 떨어졌습니다.

(근데 집사람 얘기하다가 옆으로 새도 한참 새 버렸다. 어찌 되었거나 우리에게는 저런 시절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얘기라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

사실 이게 제가 재혼한 얘기 하다가 나온 건데, 그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있던 얘깁니다.

집사람이 몸뻬 입고 버스 타고 다니면서 명함 돌리던 얘기입니다. 그 때야 뭐 할 수 있는게 명함 돌리는 거 밖에 없었으니까. 자갈치 시장 어딘가에 있는 횟집에서 그랬다는 거에요. 들어가서 저 김정길 후보 안사람입니다. 한표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명함을 주고 나오는데, 횟집 여주인이 손님들하고 얘기하면서 저거 김정길이 세찌다, 세찌. 이러더라는 거에요.

둘째도 아니고 셋째라는 거지.

그래서 집사람이 그냥 나오려다가 그대로 가면 표가 안될 거 같아서 다시 들어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횟집 여주인 손을 꼭 잡고, 어머니, 저 김정길이 셋째가 아니고 둘째입니다. 했다는 거에요.

그랬더니 굉장히 미안하지. 여주인이 얼굴이 빨개져서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손을 잡고 아이고, 미안하다고. 손님들도 그걸 다 보고.

그렇게 그냥 나왔으면 표가 안 되는데, 그걸 다시 들어가서 손 잡고 셋째가 아니고 둘째라고 하면서 제 남편에게 떤질 돌이 있으면 제게 떤져 주시고, 한표 꼭 부탁하겠습니다, 하니까 표가 되는거죠.

이런 얘길 듣는데 눈물이 나는 거죠. 제가 집사람에게 얼마나 못할 짓을 하는거냐 이겁니다.

: 정말 가슴아픈 일이군요.

: 그것만 있으면 다행인데요. 또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영도 산복 도로에 무슨 구멍가게를 인사하러 들어갔더라는 겁니다. 우리 집사람이 신분은 안 밝히고 가게에는 비가 오니까 나이든 분들이 몇사람이 앉아서 소주를 먹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명함을 주면서 김정길 후보에게 한표 부탁드린다고 얘길 하니까, 그 분들이 묻더라는 겁니다.

아줌마, 김정길이한테 일당 얼마받고 운동합니까~ 해서 김정길후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일당을 주겠어요, 그냥 자원봉사합니다 하니까, 그러더랍니다.

아줌마, 쏙지 마세요, 김정길이가 본마누라하고 이혼하고 아주 돈많은 과부하고 결혼해서 돈 억쑤로 많으니까, 쏙지말고 일당 받으세요. 이러더라는 거죠.

그래서 집사람이 신분을 안 밝힐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똑같은 말로 제가 김정길 후보 안사람인데요, 남편에게 던질 돌이 있으시면 제게 던지시고 꼭 한표 부탁드립니다, 한거죠. 그러니까 그 분들이 얼마나 머쓱하고 미안하겠어요. 그런 상황을 참고 그렇게 하니까 표가 되는 거겠죠. 이런 것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정치라는거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특히나 주변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족과 배우자에게 정말 인간적으로 못할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선거에 돌입하면 그 고통은 현실적인 피해, 인간적인 모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이 김정길이라는 사람은 최근에 치러진 부산시장 선거까지 열번을 겪어 낸다. 그 중에서 이긴 것은 겨우 두 번.

그런 과정을 겪어낸 당사자도 놀라운 인내력의 보유자이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진짜 존경의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 뜻에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경험담을 계속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 봤다.)

- 당선의 경험

: 제가 처음에 국회의원이 된 게 2.12 총선에서 였습니다. 그 때 주변에서 전부다 저에게 또 3등 한다고 했었어요. 두 명 뽑는데. 그 때 제 나이가 38세였습니다.

네 사람이 나왔었는데, 박찬종 의원. 인기가 하늘을 찔렀었죠. 또 하나가 민정당 실세라던 윤석순 의원. 전두환씨 친사돈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국회의원 만들려고 전두환이 선거기간 중에 부산에 두 번이나 왔었습니다. 와서 시청에다가 부산 지역 유지들을 다 모아놓고 윤석순이 국회의원 되면 부산에 예산 많이 내려 보내준다 뭐 이러고 다닌 거죠.

그 선거에서 제가 일등을 했습니다. 이 선거에서도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 때는 기호도 정당순이 아니라 제비뽑기 했어요. 근데 기호가 4번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죽을 사짜라고 다 싫어하는데 나야 뭐 사랑사짜 사번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이러고 웃곤 했죠. 그 때 마지막 합동유세를 동구 성남초등학교에서 하는데, 연설 순서도 제비뽑기를 했는데 4번이 나온거야.

그 때 유세장에 이만명이 넘었어요. 우리 지역구 뿐 아니라 다른 지역구에서도 연설 들으러 온 거에요. 박찬종 의원이 인기가 좋으니까 박찬종 연설 들으러 오고, 김정길이가 연설 잘한다 그러니까 김정길이 연설 들으러 오고.

네 사람이 연설을 하는데, 당시 현역 국회의원 윤석순의원, 박찬종 의원은 서구였는데 서석재한테 밀려서 여기로 온거죠. 이만섭 의원이 하던 당에서 현역 국회의원이던 노차태라는 사람하고 나하고 있었죠.

: 윤석순 의원하고 박찬종 의원이 된다고 봤겠군요.

: 그렇지, 다들 그렇게 본거죠. 당시에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던 시점이고 인기가 좋았으니까. 그런데 난 신민당 공천을 신청했는데 안돼가지고 공탁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서 민한당 공천으로 나왔었어요. 무소속으로 나오면 공탁금이 더 비싸니까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그 땐 민한당도 좀 바뀌어서 공천도 좀 제대로 하고 했어요.

노차태 후보가 먼저 얘길 하는데, 성남초등학교가 동구였거든요. 노차태 후보도 동구 사람이었고. 근데 연설의 내용이 뭐였냐면 나를 뽑아주면 예산을 많이 받아와서 동구를 발전시키겠다.. 이게 연설의 요지였어요.

두 번째 윤석순의원이 올라가서는 나를 뽑아주면 돈을 많이 받아와서 부산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세 번째로 박찬종 후보가 나와서는 연설을 뭐라 하냐면, 자기를 압도적으로 뽑아 달라고, 그래야 중앙에 올라가서 큰 정치의 거목이 된다, 뭐 이런 내용이었죠.

그러고 내가 할 차례가 되었는데 청중이 아무도 안가고 다 있는거야. 내가 연설을 좀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내 연설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올라가서 즉흥적인 연설을 했어요. 뭐라 했냐면, 여러분, 우리가 앞에 세 후보의 연설을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투표 할 때 세 후보들 한사람도 서운하지 않게 투표를 합시다~ 한거죠.

첫 번째, 동구 발전시키자는 노후보, 우리 동구청장 시킵시다. 동구 발전시키려면 동구청장을 해야지.

두 번째 윤석순 후보는 부산을 발전시키자고 하시니까 부산시장을 시켜줍시다. 맞잖아요. 부산 발전시키려면 부산 시장을 해야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웃으면서 박수를 쳐요.

세 번째로 박찬종 선배가 자기를 키워주려면 몰표를 줘야 된다고 하시는데, 박후보에게 여러분이 몰표를 주시면 이 김정길이 떨어집니다. 이번 선거는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선거니까 야당 후보를 뽑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박찬종 후보에게 몰표를 주시면 제가 떨어지니까 안되고 표를 나눠 찍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표 찍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아빠는 무조건 박찬종을 찍으십쇼, 엄마는 무조건 김정길을 찍으시면 됩니다. 라고 한거에요.

그렇게 했더니 전 언론에 가십란에 그 말이 다 나왔어요. 아빠는 박찬종, 엄마는 김정길, 이 말이 유행어가 된거죠.

: 새로운 유행어를 하나 만드셨군요.

: 그런 셈이죠. 그 결과 선거 개표 결과를 보니까, 제가 2위였던 박찬종 선배보다 만육천표나 더 얻어서 일등을 한 겁니다. 2등으로 당선된 박찬종 선배는 윤석순 후보를 가까스로 이겼었어요. 결국 박찬종 후보는 당선사례를 다니면서 여러분, 제가 까딱하면 떨어질 뻔 했습니다~ 하고 다니게 된거죠. (전체 웃음)

(당시 돌풍의 주역이었던 신민당의 후보인 박찬종을 상대로 과거 전두환 밑에서 가짜 야당(업계 전문용어로 사쿠라 야당이라고도 한다.) 노릇 하던 민한당의 후보인 김정길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당시 신민당에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영향력이 거의 균일하게 작용하고 있었으니 신민당을 김대중과 연결시켜 부산에서 거부감이 있었다는 해석은 옳지 않을 것 같다.

부산 시민들이 서슬이 시퍼렇던 81년도에 무소속후보로 나와 거침없이 전두환을 비판하던 젊은 투사 김정길을 기억해 준 것일까? 아니면 유행어의 영향과 함께, 바로 이어서 나오는 김정길 본인의 선거유세가 좀더 호소력이 있었던 것일까? )

: 그렇게 당선된 뒤로, 여러분 성원에 감사합니다~ 하면서 다니는데, 동구 수정동에 산복도로에 트럭 타고 연설을 하면서 지나가는데, 육십대 중반을 넘은 어머니가 젊은 딸아이하고 지나가다가 아는체를 합니다. 트럭에서 하루 죙일 연설을 하면 다리가 아프잖아요. 그런데 꼭 내려와서 인사를 하라고 합니다. 다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트럭에서 내려서 인사를 했죠.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고 인사를 하니까,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내가 당신보고 여기 내려와서 인사를 하라는 이유가 있다 이거에요. 그 성남초등학교 합동 연설을 듣기 전에 가족회의를 했다는 겁니다. 가족회의 결과는 박찬종이하고 김정길이를 반씩 나눠서 찍어주자 라는 거였답니다. 그렇게 맘을 먹고서는 마지막 유세라 해서 그 연설을 들어 본 겁니다. 들어 봤더니, 전부 다 올라가 자기를 찍어달라고만 하는데, 이 김정길이만 표를 나눠 찍으라고 하더라 이겁니다.

그걸 보고 나니까, 저래 욕심이 없는 정치인이 있나 했더라는 겁니다. 그걸 보고 나서 다시 가족회의를 하는데, 전부다 김정길이를 찍어 주자는 쪽으로 바뀌었더라는 거에요. 가족 표가 모두 다섯장인데, 그렇게 해서 전부 저에게 표를 몰아 줬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트럭에서 내려와서 인사를 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솔직히 그런 얘길 들으니까 눈물이 핑 돌더군요.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많았었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요?

: 그런 거겠죠. 사실 집사람 얘기하다가 선거 얘기가 길어졌는데, 하여간에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일등하면서 당선되게 된 겁니다. 결국 이혼한 건 정치인에게는 약점이잖아요. 그걸 집사람이 그렇게 수모를 참아가면서 잘 대응을 해서 이긴거겠죠.

그러다가 두 번째 당선을 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을 또 겪게 됩니다. 그 때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영도에 가서 출마를 하게 되는데, 그 때 소선거구제로 바뀐거죠.

예춘호 의원이 한겨레민주당을 만들어서 영도에 출마했던거죠. 당 대표였습니다. 영도에서는 국회의원도 여러번 했던 분이고 아주 유명한 분이었어요. 저는 현역국회의원 이었고, 민정당에서도 한명 나왔고, 노차태라는 사람도 나왔고. 또 네명이 나온거죠.

그 와중에 제가 현역이니까 모든 공격이 저에게 집중되고 있던 겁니다.

: 집중 타겟이 되셨군요.

: 선거를 한 일주일 남겨놓고 영도 전역에 하얗게 삐라가 깔린 겁니다. 아예 도배를 해 놓은거죠. 나에 대한 비방이 담긴 거였어요. 열가지 항목으로 비방을 하는데, 첫째가 선거 한번 이혼 한번.. 내가 재혼한 거 빗대가지고 선거 한번 할 때 마다 마누라를 갈아 치웠다 이거죠. 두 번째는 김정길이가 돈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국회의원 한번 해서 돈을 벌어가지고 집이 일곱채다, 뭐 이런 거였습니다.

참모들도 그렇고 집사람도 그렇고 완전히 낙담을 했었죠. 다 끝난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건 뭐 변명을 하기도 그렇고 안하기도 그렇고 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아요.

: 변명을 하면 더 악화되기 십상이죠.

: 그래도 제가 그 땐 젊어서 재치가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즉흥적으로 받아치기도 하고 했으니 말이에요. 미리 준비한 연설이 아니었거든요. 어떤 거였냐면, 합동 연설회 하는 무슨 초등학교에 가기전에 집사람한테, 내가 오늘 연설하다가 찾을 지도 모르니까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으라고 한거에요.

그래서 연단에 올라가면서 그 삐라를 한 장 들고 올라갔어요. 여러분 이런거 보셨습니까? 하니까 다들 예~ 하는 거에요. 그래서 처음 항목을 읽었죠. 선거 한번 이혼 한번.. 그리고 나선 집사람보고 나오라고 한 다음에 청중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지난번 선거할 때와 지금이랑 우리 집사람이 바뀌었습니까? 하니까 사람들이 아니오~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일단 아주 간단하게 해명이 된거죠. 청중들이 지난 선거때 우리 집사람을 다 봤으니까.

그런데 두 번째것은 진짜 까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난감하더라구요. 그래서 또 읽었어요. 김정길이가 돈이 없다는데 국회의원 한번 하면서 집이 일곱채라고 한다, 이걸 읽고 나서 한마디 했죠. 여러분, 아주 좋은 돈벌이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든지 제 집으로 되어 있는거 찾아 오시면 제가 그 집을 드리겠습니다. 그게 내 이름으로 되어 있거나 내 친구나 내 친척 이름으로 되어 있거나 무조건 드리겠습니다. 거기다가 그 집이 어디 있는지 찾는 방법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삐라를 쓴 사람은 그 집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거 아닙니까? 그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시면 됩니다. 여러분, 이 돈벌이 괜찮죠? 하니까 사람들이 예~ 하면서 웃고 박수를 치고.. 이렇게 깨끗이 설명을 해 버린 결과..

그렇게 해서 그 선거에서 제가 따블로 이겼어요.

: 두 번째 승리에 대한 얘기군요.

인터뷰는 세시간 좀 안되게 진행이 되었지만, 김 전장관은 그 짧은 시간내에 모든 것을 담아 내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덕분에 도저히 한 편의 기사로는 그가 쏟아낸 자신의 얘기들을 담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졸라 지치잖아.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여기서 1부를 마감하고, 나머지는 2부로 넘기고자 한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의 끈기에 찬사를 보내며 1부를 자른다.

- 다음 편에 계속 -

http://www.ddanzi.com/news/65529.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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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못먹게 하는 법,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오늘의 일을 당신은 어찌 그리도 다 알고 계셨습니까...

"여러분!

이번 여러분의 파업은 법률상 위법입니다.

그러데 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저 산동네의 철거민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도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따뜻하게

등 눕힐 수 있는 구들장이 필요하고

그 사람 자식들도 밥먹던 상이나마 행주로 닦아

책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법에 위반되었다고 무허가라고

집을 뜯어버립니다.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나와 있는 노점상들을

도로교통법을 걸어 목판을 차버립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

다섯 식구가 몽땅 타버렸는데

피해액이 백만 원도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목판 하나는 전 재산입니다.

밥 못먹게 하는 법,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여러분!

헌법에는 노동3권을 명시해놓고

방위산업체는 안된다고 합니다.

입만 열면 안보, 전쟁위협을 하면서 비행기로

3분 거리에 있는 서울에 왜 63빌딩을 짓습니까?

방위산업체 쟁의는 안된다고 하는 말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을 콱 밟아버려라 이 뜻입니다.

그러므로 법은 정당할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말아야합니다.

또 말로만 하지 말고 악법은

국민의 손으로 철폐시켜야 합니다.

노동자가 멈추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얻어

자빠져버리면 우리사회는 그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때 여러분이 만드는 것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는 사회가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입니다.

그런사회를 위해 우리 다함께 노력합시다!!!"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명명된 현대중공업 크레인 고공농성장 연설문 -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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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2년째가 되는 날이다. 2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순간 우리 사회엔 많은 분노와 함께 의심을 남겼다. 현 정부와 검찰, 무차별적인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에 국민들은 성토했다. 이후 범죄를 처단하는 수사기관의 ‘추상같은’ 엄정함과 공정성은 건건이 의심을 받고 있다. 또 한편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종결됐고, 그 수사기록은 검찰 말대로 ‘영구적으로 봉인’돼버렸다. 노 전 대통령이 왜 죽음의 길을 택했는지 드러내줄 자료가 묻힌 셈이다.

이런 와중에 2년 여 전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직접 취재했던 KBS의 김정은 기자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기록물을 최근 내놓았다. 김 기자는 문재인 변호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전해철 변호사, 김선수 참여정부 사개추위 추진단장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과 전원책 변호사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이들을 1년 여에 걸쳐 심층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을 깊숙하고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그가 이런 저작에 나선 배경은 지난 2009년 12월 방송된 MBC <100분토론>에서 철학자 탁석산씨가 “소수파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비극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이것에 관한 논픽션이 열 개, 스무 개 나와야 할 것”이라는 발언한 것을 듣고서였다. 이를 보고 그는 “갑자기 온몸이 전율했다”며 저술을 행동에 옮기게 됐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재단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취재 보도 과정에 대한 자기 반성을 드러냈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5월 23일 새벽이 느닷없이 들이닥친 후에야, 신문과 방송의 그 많은 취재 인력들은 자신들이 왜 대검찰청에 마련된 비좁은 브리핑룸 안에만 꽁꽁 묶여 있어야 했는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기관과 피의자가 된 전직 대통령을 취재함에 있어 보도의 균형감을 놓친 것은 매우 아쉽다.”

이어 그는 당시 언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그는 “왜 언론은 그처럼 자신감있게 전직 대통령의 유죄를 추정하고 나섰을까. 수사 과정에 있는 피의사실들을 왜 그렇게 서로 다투기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공개했을까. 어떻게 모든 언론이 그처럼 한결같이 전직 대통령은 유죄라는 검찰 수사관들의 확고한 판단을 열렬히 지지할 수 있었을까”라며 “이런 의문에 대해 우리는 아직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자문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가 표적수사였는지, 이른바 ‘나쁜 빨대’로 표현된 피의사실 공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금품수수 혐의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 6인의 인터뷰를 통해 재조명했다.

표적수사 여부와 관련해 그는 박연차 게이트의 시작인 국세청의 태광실업세무조사에 주목했다. 당시 세무조사는 2009년 초 도미했다가 최근 귀국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작품이다. 김 기자는 한 전 청장의 의혹에 대해 “2008년 초 새 정부 출범 후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청장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 이를 위해선 현 정부 신임이 필요했다”면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MB 정부에서 가능한한 기업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시기에 대대적으로 추진됐던 몇몇 세무조사들이 정치적 의혹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태광실업 세무조사였다는 것. 그는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한겨레 등의 기사를 인용하면서 당시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부산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국세청 조사4국에 의해 이뤄졌고, 한 전 청장이 조사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 직보했다는 보도내용을 제시했다.

그는 “2008년 하반기부터 노 전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던 검찰 수사가 사실상 국세청의 조력하에 눈부시게 확장된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의혹은 간단하지 않다”며 “박연차, 정화삼, 노건평 등의 구속을 가져온 ‘세종증권 매각 비리’ 수사,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 모두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발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들. 김원정 기자

이를 두고 노 전 대통령측 인사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표적수사 의혹이 짙다고 역설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김 기자와 인터뷰에서 “MB 정권 4개월 만에 시작된 촛불 시위로 106일 동안 시위를 당했던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선…‘안 되겠구나, 발본색원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며 “(그런데) 왜 전직 대통령이었을까. ‘민주주의 2.0’ 하면서 봉하마을이 인터넷 홈페이지도 한다고 하지, 사람들 모여들지, 이러니까 전직 대통령의 문제에 대한 공격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흐름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요”라고 말했다.

뒷조사 내지 수사대상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도 제시됐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기업인들 조사도 강금원, 박연차 등 온 국민이 다 아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이자 후원 기업이었다. 그런 사람들부터 마구 쑤시고 털어낸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명숙 총리, 이해찬 총리, 이병완 실장 등 모든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졌다. 의도적인 표적 수사”라고 강조했다.

특히 검찰수사망에 엮여들어간 일부 인사의 경우 초기엔 정치자금 제공이 문제됐지만 기소단계에선 횡령 등 기업회계 문제로 끝났다는 점은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끌어내기 위한 별건수사의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 이사장은 “강금원 회장 건이 문제됐던 것은 정치자금 혐의였으나 조사 끝에 그 부분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며 “결국 회계에 대한 부분을 뒤져서 횡령, 탈세 그렇게 됐다. 박연차 회장 건도 국세청 세무조사 끝에 검찰에 고발된 것은 탈세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국세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가 표적조사였다는 의혹에 대해 문 이사장은 “정상적으로라면 태광실업은 세무조사를 받을 이유가 없는 기업이었다. 한창 베트남 진출도 활발했다. 조사를 하더라도 지방청에서 할 일이지 국세청 차원에서 조사할 이유가 없다”며 “한 전 청장이 이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방식부터 이례적. 여기부터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문 이사장은 이어 ‘정권이 바뀌자 검찰이 칼을 뽑아 퇴임한 대통령 겨눴느냐’는 김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굉장히 허망하다”며 “참여정부 때 대선자금 수사를 하면서 검찰 위상이 크게 올라갔으나 정권 바뀌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안희정 지사도 “전임 정권을 목표로 해서 공격하겠다는 작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에 반해 검찰 입장을 정당화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김 기자는 소개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박연차 사건을 수사하다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의 범죄 혐의가 포착됐다…100만불, 500만불이나 되는 거액의 돈이 제공됐다는 혐의라면 ‘덮는 것’이 정의에 반하는 것”이라며 “다만 우리 검찰이 권력의 치부는 잘 수사하지 못했다거나 권력에 흔들렸다는 기억 때문에 표적 수사라는 의심을 받은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전 변호사는 정권이 바뀐 뒤 검찰이 퇴임 대통령을 겨눴느냐는 질문에 “이런 식의 질문은 현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적인 질문을 넘어 검찰권 전체를 모독하는 질문일 수 있다”며 “모든 비리는 수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표적수사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추측할 뿐”이라며 “확실하게 뇌물죄라든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의 행위가 있었다고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을 검증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를 두고 안희정 지사는 “국세청이 해당 기업에 대해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세무조사를 결정했는가를 보면 된다”며 △부산에 있는 기업을 서울청에서 내려가서 조사해야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었는지 △부산 기업인이고 충북에 있는 골프장을 가진 강금원 회장을 왜 대전지검에서 수사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경험을 들어 당시 박연차 수사의 부당함을 성토하기도 했다.

“2008년 10월부터 검찰과 국세청은 무슨 근거로 개인 계좌를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이 열어보나. 특별한 범죄 수사라고 하는 공익적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나의 경우 제가 이제까지 살았던 모든 전셋집 주인 계좌를 다 뒤졌다. 그게 누구한테 받은 면허이냐. 그런 권리 없다”.

그렇다면 ‘영구 봉인’됐다는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측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형(노건평)의 사위인 연철호씨가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았다는 500만 불(50억 원)과의 관련성 △정상문 비서관을 통해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는 100만 불과의 관련성 △시가 1억 원에 달한다는 피아제 시계 선물 △정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 등에 대해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었다.

문재인 이사장은 “대가나 특혜받은 것 없이 순수하게 도운 것이라면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500만 불의 경우 퇴임 때 시기도 퇴임 시기에 연철호 씨 쪽에 투자했다는 것 아니냐. 퇴임 이후 무슨 혜택을 주느냐. 그런 것 하나하나를 전부 다 대가성 있는 뇌물처럼 검찰이 몰아갔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연철호씨와 박연차 회장은 잘 아는 사이였고…연씨가 여러 차례 사업계획서를 브리핑하고 계획서를 수정 보완하면서 투자를 받았다.…이런 사실을 언론은 찾아보려고 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 부분도 연씨 개인이 아닌, 연씨가 설립투자회사가 (500만 달러을) 받아서 해외투자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밝혀준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의 요청이 있었냐 없었냐가 관건이나 끝내 확인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500만 달러중) 200몇십만 달러 정도가 실제로 양자의 협의하에 투자가 이뤄졌고, 한 200만 달러 정도는 여전히 그대로 연씨가 설립한 투자회사 계좌에 그냥 예치가 된 상태였다”며 “(이는) 검찰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끝끝내 박 회장이 노 대통령을 보고 종자돈으로 준 것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박연차 회장의 투자라고 본다면 상식을 벗어난 답이 되지 않느냐”며 “500만 달러를 노 전 대통령이 전혀 몰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권양숙 여사가 정상문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사실과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에 대해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걸었다’, ‘500만달러도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 받은 돈일 가능성이 크다’라는 언론보도는 객관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며 어떤 식으로든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이 통화한 사실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 자체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그래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어떻게든 만들어 내려고 한 것…하지만 100만 달러가 범죄라는 사실 자체를 밝히질 못했다”고 주장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에 대해 “기업인이 대통령측에 100만 달러를 줬다는 것은 조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상문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 횡령 사실에 대해 문 이사장은 “우리도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정 비서관의 성격이나 충성심 때문에 퇴임 후의 살림살이를 걱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가 첫 보도했던 1억 원짜리 피아제 시계 선물 의혹에 대해 문 이사장은 “선물받은 경위는 박연차 회장이 시계를 노건평씨에 줬고, 노씨가 한참 후에 권 여사에 전달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은 언론보도를 보고야 알았다. 이는 검찰이 원래 문제삼았던 100만 불, 500만 불 의혹이 뚜렷하게 범죄로 증명되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이 강하게 부인하니 이런 이야기를 흘려서 모욕하고 압박한 것으로 질이 아주 나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말 소환조사받기 전에 이 대통령에게 수사팀 교체를 요구하는 청원 편지를 보내려한 것에 대해 문 이사장은 “우리는 일단 검찰의 기소까지는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구속은 못할 것이고, 불구속기소돼도 무죄는 문제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말씀드렸는데 노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 청원해 수사팀을 교체하고 새로운 수사팀이 허심탄회한 관점으로 검토해주기만 하면…검찰이 기소도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우리 반대로 보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에 대해 문 이사장은 “검찰이 자신있는 부분은 공식브리핑으로, 다른 부분은 수사관계자로, 또다른 어떤 부분은 익명의 검찰관계자로 내보”냈다며 “또한 검찰이 줄곧 피의사실 공표를 해왔지만 수사기획관이라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매일 오전 오후 브리핑한 예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국민의 알 권리가 그만큼 컸다…피의사실 공표가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고, 조갑제 전 대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자 보고 확정된 사실만 보도하라고 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김정은 기자는 이 같은 노 전 대통령 수사과정의 문제점과 쟁점에 대한 인터뷰를 마치고 자신의 판단을 내놓았다. 그는 “모질었던 검찰 수사와, 검찰이 ‘알 권리’를 이유로 벌인 수사 브리핑이 그가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 해도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불명예와 모욕을 줬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검찰만 탓할 것은 아니다. 언론과 우리 사회 모두가 공범이었을 것”이라고 자성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그 사회가 사실과 혐의를 구분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 그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예의는 갖추고 있는지,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다”며 “과연 우리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조현호 기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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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2011. 5. 23. 수요일

시월

정신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면 사실 눈물은 잘 나오지 않는다. 눈물도 한숨도 내 안에 갇힌 채 그저 멍해진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는 시쳇말이 되살아나던 그 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날이다.

평화로운 오월 어느 토요일 아침, 그렇게 찾아온 날벼락 앞에 넋을 놓고 있을 무렵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특집방송이 잡혔으니 당장 출근하라는 국장의 음성.

각 언론사는 유명인사들의 서거를 대비해 미리 연보나 자료화면을 만들어둔다. 기자들은 그날도 그렇게 자료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방송을 어떻게 마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앵커가 묻는 데 답하고,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알리고,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에야 회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릇처럼 라디오 뉴스를 틀었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소식은 단 하나. 그가 떠났다.’

그제야 실감이 난다. 내 안에 갇혀 있던 멍은 뒤늦게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기자는 어느 누구보다 빨리 사건을 접하지만 부끄럽게도 가장 늦게 사건을 느낀다.

그 뒤로 얼마 동안 더 울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그날 이후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방문을 꼭 잠그고 잠이 들 때까지 울었다는 것.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을까. 어느 날 흐르던 눈물은 멈췄고 나는 기자를 그만 두었다.


신문 얘기를 꺼내려고 한다. 갑자기 좀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날은 각 신문의 일면으로 각인돼 있다. 그분이 마지막 길을 가시는 그날까지도 몇몇 신문은 천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 마치 자신은 아니라는 듯.

먼저 신문에 대한 간단한 상식 얘기를 몇 자 적어본다. 신문을 두고 흔히 편집의 미학이라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종이신문을 보는 독자들의 수는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신문이 가진 편집 권한은 아직 유효하다. 방송도 마찬가지. 어떤 기사를 톱으로 올리고 어떤 기사를 단신으로 처리하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칠 때마다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바로 기사의 배치. 그 편집의 미학 속에는 신문의 큰 뜻이 담겨 있다. 물론 신문사에 따라 큰 뜻이 없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뜻을 불어넣는 경우도 있다.

특별한 기사가 없는 경우 신문마다 일면 톱기사는 다르다. 이때 신문사들은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를 톱으로 올리는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전국을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특별한 기사가 있는 경우, 신문사는 그 자유를 잃는다. 최근에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뉴스가 모든 신문에 톱기사로 오른 적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분이 국민장을 치르고 한 줌의 재로 떠나간 그 다음 날. 모든 신문의 톱기사는 예상대로 그분의 국민장이었다. 신문들은 저마다 서울시청 앞에 모인 수많은 인파와 그 속의 운구행렬을 담은 사진을 톱기사와 함께 내보냈다. 그 동안 아무리 그분을 모욕했다 해도 그날만큼은 어떤 신문사도 그 기사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날의 기사는 신문사마다 큰 차이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같은 기사를 내보내지만, 편집을 다르게 해 부여하는 의미를 달리 한 것.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년을 맞아 그날의 신문을 다시 펼쳐봤다.

먼저 동아일보.

가장 염치없이 편집한 경우다. 말짱해 보이지만 톱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얼마나 염치 없는지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그날 시청앞에 모인 인파의 극히 일부만을 담고 있다. 톱기사의 제목은 다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부제목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서울광장 노제 18만명<경찰 추산> 애도이 사진에 보이는 사람의 수만 센 게 분명하다.

세컨기사는 , ICBM 발사 준비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북한 관련 기사. 더구나 제목을 오른쪽 위에 둬 오히려 톱기사의 제목보다 눈에 띄게 편집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일단 보기에 동아일보보다는 톱기사 제목이 눈에 띄게 편집돼 있다. 편히 쉬시기를 대통령 국민장. 눈에 띄는 편집과는 달리 어울리지 않는 건조한 제목. 마치 오늘은 사실만은 전달하겠다는 듯 참으로 사실만 담은 제목을 뽑았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크기는 동아일보보다 크지만 담은 내용은 참 부실하다. 동아일보의 사진보다 심지어 인파가 더 적어보인다. 역시 빠지지 않는 북한 기사는 써드로 실었다.

다음은 중앙일보.

한 면의 삼분의 일 정도를 털어 인파가 몰린 시청 앞의 풍경사진을 담았다. 하지만 제목은 아주 작게, 기사도 톱기사치고는 너무 짧게 실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원망 받는 게 두려웠던 건 아닐까.

이와 달리 세컨기사의 제목은 굵은 고딕체. 한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역시 북한 관련 기사.

같은 기사라도 신문사별로 자세히 살펴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타고난 품성은 못 버리는 건가.

한동안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그 분을 힐난하던 한겨레와 경향으로 가보자. 그 분의 서거 이후, 이들은 비로소 조금 정신을 차린다.

먼저 한겨레.

이만하면 서거 특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면의 절반을 털어 그날의 풍경사진을 담았다. 끝없는 인파가 느껴지는 사진. 그리고 제목은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렵니다뭔가 당찬 포부가 엿보이는 미래지향적인 문구.

세컨기사는 삼성에버랜드 CB헐값배정 무죄 판결 기사. 북한 기사는 일면에서 찾아볼 수 없다. 광고면에는 그분을 추모하는 시민광고가 배치돼 있다.

마지막으로 경향신문을 보자.

다른 신문을 보면서는 끄덕 없었는데, 경향의 첫 페이지를 보고는 그만 왈칵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경향은 일면을 사진 한 장으로 처리했다. 색을 빼 추모의 의미를 담고 한 면을 털어 비장함을 드러냈다. 제목은 이 추모의 민심은 무엇인가너무 날을 세운 제목이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이 열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걸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과감한 편집이었다. 그 사진 아래 광고에는 그가 환히 웃고 있다.

예리한 눈을 가진 독자라면 아마 앞의 조중동이 일면에 어떤 광고를 내보냈는지 기억할 것이다. “서종면 수능리 토지매각셋은 나란히 같은 광고를 일면에 내보냈다. 한겨레와 경향은 시민들의 추모광고를 내보냈고.

신문에 실린 광고는 기사와 같다. 반대로 기사 또한 광고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신문 광고 중에는 기사와 같은 포맷으로 된 것들이 있다. 마치 사실을 전달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곤 한다.

그날의 신문 광고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중동은 참 성의없고 영혼없는 편집을 했다는 것. 시민들의 추모광고는 한겨레.경향에만 실렸다는 것. 광고는 신문 편집의 마침표와 같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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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의 그날은 경향의 일면으로 기억돼 있다. 기자질 한다며 그날 그 곳에 직접 가지 못한 게 한이 됐기 때문일까. 기사 마감하고 그나마 달려간 곳은 덕수궁 앞 시민 분향소가 전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기자질 그만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뒤에야 봉하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밥벌이는 때로 사람 된 도리마저 가로 막는다.

다시 오월이다. 두 번째 오월이다.

1주기였던 작년보다 추모열기가 덜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시리다. 그래도 함께 눈물 흘리던 그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깨어있는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잘 지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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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가수는 교도소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가져온 고 장자연 씨 편지라고 주장한 필적이 가짜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죽음을 보며 연예인의 삶을 떠나 한 인간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유린을 당했는지 죽음로 모든 것을 보여 주었는데 그의죽음은 죽음으로끝이 나고 말았다.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녀가 그냥 죽었다는 말을 믿어야 이 사회는 편하고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좋은 일이 되고만다.

그는 왜 죽었을까. 왜 아무 일도일어나지 않았은데 죽었을까. 그녀가 죽음으로 보여준 편지나 글들은 거짓이란 말인가. 거짓으로 모함하기 위해 심심해서죽을 때 그런 글을 남겼을까.

고장자연 씨가 그렇게 독한 사람인가. 자신에게 그어떤 해로움을 주지 않았는데 피디며, 기업인이며, 신문사며 기획사 사장을 걸고 넘어졌을까.

목숨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걸로 장난을 쳤을까. 참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고 장자연 씨 한테 뭐를 잘 못 보여 글에직업군들이 등장하고 연예 기획사 사장이 등장했을까.

오래 전 강기훈 씨 유서 대필 사건이 떠오른다. 그 유서가 대필이 되었다고 조작했다 세월이 흘러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진실은 밝혀 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도 유서대필을 했다고 그를 구속하고 탄압했다. 국가수는 유서가 친필이 아니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일본인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죽은 김기설 씨의 필체라고 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났는데 유서를 대필했다는 강기훈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늘 국가수에서 장자연 씨의 친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국가수가 친필이 아니라고 하니까 할 말은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 기관에서 친필 아니라는데 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믿을 수밖에 없다.

고 장자연 씨의 사건은 우리 사회의도덕적해이에 대해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사건이 될 것이다. 오늘 다시 고 장자연 씨의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애통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본다.

2011년 3월 16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52394&hisBbsId=total&pageIndex=3&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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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신이 무척 그립습니다

오래 전이군요. 저는 80년대에 군대생활을 미군부대에서 했습니다.
그 때 갓 해외유학이 자유화되던 시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미군부대 PX 물품이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시기이었습니다. 인플레 시대의 잊혀진 추억입니다.
잘 사는 울누나집에서 수입 바나나를 얻어 먹었던 70년대 그 때 그 시절엔 달러를 암시장에서 거래했었습니다.

다시 제 군대생활를 회상해 봅니다. 미군부대 장성에게 접근하고자 하는 한국군 영관급(대령/중령) 군인들의 행태를 보왔습니다. 내가 여기서 그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그시절 어떻게 군바리들이 어떻게 하면 출세하였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테고,

또 지나간 그때그시절의 그런것들은 다 관행이었다고 변명하면 장관되는데도 지장 없는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잖아요. 이제 와서 뒤돌아보면 부끄럽기 한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나마 양심에 털은 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암튼 잘 생긴 미모의 영화배우들도 미군부대에서 외제 화장품을 사달라고 저한테 부탁했던 그시절이었습니다.

Anyway,

조선시대 고려시대 신라시대 때 부터 한국사람들은 강대국에 붙어야만 한 목숨 잘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사대주의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죠.

조선놈들은 짱깨에게 붙어야 했고 일정시대에는 쪽바리에게 붙어야 했고 미군정때는 양키에게 붙어야 했습니다.

남의 나라 종으로 살아야 자기 목숨 하나 연명하고 또 떵떵거리며 한 밑천 챙긴 그런 종의 삶이었고

식민지 노예의 삶이었습니다.

힘 있고 가진 남의 나라 침략자에게는 비굴하게 처신하고
힘없는 내동포에게는 거만하게 구는 것이 식민지 조선 노예들의 삶의 공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살게 된 지금, 우리가 얼마나 변했을까요?

나는 잘 모릅니다.


80년대 미군부대 생활할때 초콜릿 달라고 미군들을 따라오던 코흘리개 소년들.

파주 문산 의정부 평택 용산 각처마다 양공주들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네요.

그 때까지만 해도 김포공항 근처에 가면 시골 밭에서 나오는 똥냄세가 코를 지배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인천공항이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올라서서 똥냄세 자체라는 것을 알지를 못할테지요.

그러나 80년대만 해도 김포공항 근처에 가면 똥냄세가 나왔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비린내가 나듯이 말이죠.



"36.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37.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 사람들에게로 나와서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38. 유월절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그러니 유대 사람들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39. 그들은 다시 큰 소리로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하고 외쳤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요한복음 18장 [새번역]


예로부터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들은 핍박받았다. 예수를 가둔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진리가 무엇이오?” "What is truth?"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겠는가?

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요사이 세상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런 질문을 하며 살아 왔다고 자부한다. 뭐 내가 세상하고 거꾸로 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튼 내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그리고 나도 동의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핍박받아 왔다는 사실을.

진리를 전한 예수도 이 세상사람들로 부터 핍박 받고 죄없이 감옥에 갇혔다. 죄인심문을 해보고 진실을 안 빌라도가 말하길 예수는 죄없다고 하며 풀어주니까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나? 오히려 흉악범 강도를 풀어주고 대신 진리를 전한 예수를 가두었다.

누가 예수를 죽였나? 빌라도가 아니다.식민지 나라의 세상 사람들이었지 않았나?!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이 올바르던가? No. 아니다. 이들은 힘있는 자에게는 머리 숙이고 고개 조아리다 힘없는 사람에게는 거만 떨고 못살게군다. 오늘 한 말이 내일 아침이면 다른 말로 바뀐다. 조삼모사. 조변석개하는 세상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믿을 것이 못된다.

남의 혀에서 나오는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
오늘은 이말 하고 내일은 저말 하는 사람들이다. 이사람 앞에서는 이말하고 저사람앞에서는 저말하는 사람들이다.

한 입으로 뜨겁게 손을 비비다가, 같은 한 입으로 호호 식은 바람을 불어넣는 요술을 부리는 사람들의 입이다.

사람 입만큼 더러운 것도 없다. 온갖 세균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입으로 밥을 먹는다. 그 입으로 섹스를 한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짐승은 검은머리 두발달린 짐승 뿐이다.
검은머리 두발 달린 짐승은 누구인가?

스핑크스의 질문인지, 스핑크스의 저주에 답을 할 수 있는 당신인가?


진실을 말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짐승들이 바로 세상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의인을 죽이고 대신 강도를 살려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이 그렇다고해서, 예수가 세상사람들을 원망하였던가?

오히려 “저들의 무지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렇게 홀로 외치면서
그는 외롭게 죽어 갔다.

진리의 사람 진실의 사람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갔다.


Anyway, 노무현대통령의 죽음을 봐라.


노무현대통령의 대통령선거 유세 연설 장면을 기억하는가?


의인은 항상 고독한 법이다.


노무현, 당신이 무척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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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2002년 대선 후보 연설 중에서

“조선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꾸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한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마음 편하게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로져도
어떤 불의가 옆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발을 뻗고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역사
제 어머니가 제가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의 600년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뤄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떳떳이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19261&hisBbsId=total&pageIndex=1&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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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일동 웃음 및 박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로 보면 정부는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민주주의가 점차 발전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막상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 보니까.

아, 이게 좀 끔찍해요. (웃음, 일동박수)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생길까,

한나라당이 무슨 일을 할까 이것을 예측하자면 한나라당의 전략을 보아야 되는데 한나라당의 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웃음)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는 일은 거의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과 행동,

말과 행동이 다른 주장이 너무 많아서 종잡을 수 없고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동안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흔들지 않는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반대한 정책도 거의 없습니다.

정부 정책이 나오면 온갖 이유를 들고 나와서 반대하고 흔들고 하다가

막상 정책을 심의하고 표결할 때는 슬그머니 물러서서 찬성표를 던집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 흔들기 위한 반대를 한 것이지요.

그 결과 대부분의 정책들은 참여정부의 정책대로 가고 있습니다. (일동 박수)

결국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게 하고 정책의 효과만 죽여 버린 것이지요.

참으로 무책임의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략)

한나라당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제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 사학법 등의 개정과 공수처의 설치, 과거사 정리 등을

반대하는 거 보면은 어쩐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 같이 보입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참여정부더러 무능하다, 무능하다 얘기를 자꾸 하고 있습니다만,

그 말이 나오기 이전에 그 사람들이 했던 얘기를 가만 생각해 보십시오.

민주 세력 무능론 했습니다.

지금 참여정부 무능론이라는 것은 민주 세력을 싸잡아서 비하하기 위한 전술이지요. 책략입니다.

그러면서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느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어떻든 한나라당은 우리 민주주의가 너무 많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중략)

일부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있습니다.

어제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노 정권이 언론과 싸움을 벌여서 친노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이것은 며칠 전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 그대로입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저의 논평은 ‘참 가관이다.’ (일동 웃음 및 박수)

반대로 한나라당이 한 마디 하면 그대로 신문 제목이 되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일부 언론의 일입니다.

후보들이 화끈하게 언론의 역성을 들고 나왔습니다.

참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공약을 이처럼 화끈하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까 제가 뭐가 그랬지요? 모르면 용기가 있다고 했던가?

예? 아, 무식한 사람은 용감하다, 무식한 사람은 용감하다.

정말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우리 언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눈을 감으면 항상 눈에 선한데, 저는 이것은 눈을 감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일동 웃음 및 박수)

기자실이 살아나고, 돈 봉투가 살아나고, 청탁이 살아나고, 띄워주기, 덮어주기, 권언유착이 되살아나고, 가판이 되살아나고, 공직 사회는 다시 언론의 밥이 되고, 공무원의 접대 업무도 되살아나고, 자전거일보, 비데일보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론 자유가 신장되고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니까.

권언유착이 부활하니까 민주주의는 후퇴합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국민이 됩니다. (일동 박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287088&hisBbsId=total&pageIndex=1&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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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평도 폭격. 또 적중한노무현의 예언.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공을 가장 많이 들였던 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였다.

NLL문제는 경제협력과 군사적 보장 문제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NLL은 그 지위에 대한 남북의 주장이 서로 달라 충돌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실제로 충돌이 일어났고 희생도 있었다.

그대로 두면 앞으로도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목숨을 걸고 지켰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정착시킬 대안을 내야 했다.

NLL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분쟁 발생을 막는 대책은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문제는 뒤로 미루고 먼저 평화 정착과 경제협력 방안을 다루었다.


NLL에 관계없이 필요한 협력을 하면서 이곳을 평화지대로 만들면 분쟁을 예방하고 양측모두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미리 논리를 세우고 사업 계획을 만들었다.


통일부, 산자부, 건교부, 해양수산부 등 모든 관련 부처를 동원해 여러 차례 합동회의를 열었다.

일일이 보고를 받으면서 사업제안을 만들었고, 북측을 설득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오전에 이 문제가 풀리지 않자, 우리측에서 오후 회담을 강력히 요청했고 결국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남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되는 이 합의를 없었던 것으로 되돌린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중에서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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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타진 이너뷰 제 3탄 - 노무현

2001.4.9.월요일
딴지총수

뽕빨스피릿으로 무장하고, 작은 손 동작 하나에서 순식간에 스쳐갔던 느낌까지 최대한 정밀하게 다시 복원하여 독자제위께 딜리버리하는, 그 유명한 거의 대선후보 일망타진 이너뷰, 오늘은 그 세 번째 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이다.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인제 위원과의 직접적인 비교를 위해 이인제 위원에게 했던 질문들 중 많은 질문을 그대로 다시 필요가 있었기에 이인제 위원의 인터뷰가 본지를 통해 공개 되기 전인, 2001년 2월 22일 목요일 오후 4시,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12층 해양수산부 장관실에서 보좌관 2명의 배석 하에 인터뷰가 이뤄졌다.

 

노고문은 사석에서 김중권 당대표를 기회주의자라 언급한 일과 언론의 조폭성에 대한 발언이 불러온 일련의 상황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본지와 인터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이 본지와의 인터뷰 내용 자체를 취재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했다며 인터뷰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 3.26개각에서 장관에서 물러나기 전이므로 인터뷰 중 호칭은 장관 )

노: 대강대강 합시다마.. (웃음)
김: 안됩니다. (웃음)
노: 딴지의 취재 상황이 또 다시 다른 매체의 취재 소재가 되는, 그런 상황이 됐으니 내가 얼마나 말을 조심하겠어요.
김: (웃음)
노: 이제 우리 그, 인터넷 매체라는 속닥함이 있잖아요? 그쵸? 이제, 마음도 편안하게 얘기하고..
김: 볼 사람만 보고..
노: 그쵸. 볼 사람만 보고. 거기에, 그 매체의 독자는 좀 특수하잖아요. 그쵸?(웃음) 그러니까 거기에 맞게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데 지금, 이거 보고 타 매체에 쓰겠다고 하니까.. 우리 밋밋하게 좀 합시다.(웃음)

김: 저희가 이.. 제목이 뭐냐면 일망타진 대선후보 인터뷰입니다.
노: 대선후보 일망타진해버리면, 대선에선 누가 하나.. (웃음)
김: 대선후보와 일망타진 사이에 궁금증이라고 조그맣게 쓰여 있습니다.(웃음) 가능하면 여러 가지 형식의 인터뷰를 해서 모든 궁금증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건데... 사실 딴지일보는 편파적입니다. (둘 다 크게 웃음) 그러나, 딴지일보가 어떤 편파적인 견해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는 최대한 객관적입니다.

노: (고개를 끄덕이며) 음, 좋습니다.
김: 그러니 노장관님도 다 털어놓으시죠. (웃음)
노 : 알겠습니다. (웃음)

김: 혹시 생선 반찬 좋아하십니까? (웃음)
노: 글쎄.. 이제 생선도 좋아하고.. 생선을 좋아하는 건 맞는데, 생선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김: (웃음) 이 질문을 드린 이유는, 전임 장관이 어느 TV 프로에 나와서, 해양수산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했더니, 답변이 나는 생선 반찬을 좋아하기 때문에 해양수산에도 관심이 많다 라고 해서, (웃음) 웃음거리가 됐었는데... 노 장관님에게도 해양수산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가 돼 있다고 지적을 할 수 있는데..

노: 전장관 그 얘기는 위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장관 업무에 관해서 전문성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있으면 좋지만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 장관직이라는 게, 한 전문 분야에 국한된 것만 다루는 것이 아니고, 그 영역 전반에서 많은 일들을 종합해서 균형 있게 조정해 나가고, 또 그 업무를 국정 전체에서 조화롭게 맞추어나가는 것이거든요.

전체 국정의 일부로서 업무를 조화시켜야 하고, 또 이 소관 업무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전문 분야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합해서 조정 운영해나가는 그런 업무입니다. 균형 감각이 아주 중요하지요. 그래서 전문적 분석력보다는 일반적 종합력이라든지 균형 감각, 이런 것이 중요합니다.

김: 행정적 운영력 자체가 더 중요하다..
노: 그렇습니다, 예.

어느 분야나 장()의 위치는 전문적 분석력보다는 종합적 균형감각을 더 요구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최소 일정 수준에 이른 후에야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거다. 전문성이 전혀 없으면서 그리 말하는 건, 구차하다.

김: 최근 노장관님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은 대부분 외교적인 수사를 사용하는데, 노장관님의 경우엔 에둘러 가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하시는 데… 예를 들면 김중권은 기회주의자 어쩌구 하신다거나... (웃음)
노: (웃음)

김: 죄송합니다, 어쩌구라고 해서. (웃음) 하여튼, 이런 발언들이 물의를 일으키고 그러면 보통은 사과를 하거나 수습, 축소하려고 하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월간중앙에서 인터뷰한 걸 봤더니, 뭐 별로 안 물러서신 것 같더라구요. 솔직하고 허심탄회하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정치적 쇼맨십이다, 정치적 기반이 없으니까 주목 받기 위해 오바를 하고 있다 라고도 할 수 있는데..

노: 그 저기, 이런 거라고 봐야 됩니다. 예식 할 때, 예를 들면, 예식이나 행사를 할 때 입는 옷이 다르고, 작업할 때 작업복이 다르고, 놀이할 때 놀이옷이 다르고 등산복이 다르듯이, 우리 얘기도 공식적 업무와 관련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얘기와, 또는 편한 자리에서 술 마시며 하는 얘기와 또는 집에서 가족들이 하는 얘기는 내용과 품위를 다르게 하게 돼 있거든요.

저는 이제 기자들과 그 공식성 없이 편안하게 서로 대담도 하고 논쟁도 하는 자리에서 한 어떤, 그런 얘기였거든요. 그런 얘기기 때문에 소위 그, 품위와 격식을 갖추지 않고 그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표현이 다듬어져 있질 않았지요. 그런 그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그 자극적인 문구만, 대화 전체의 흐름보다는 자극적 문구 중심으로 전달되다 보니까 좀 우습게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편안한 자리라고 해서 전혀 근거 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니니까. 그걸 또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죠..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다 보니 아주 좀…(웃음) 그렇게 됐습니다, 예.

김: 다시 고쳐 질문을 드리자면, 그러니까 그게 정치적 계산이 있었던 발언은 아닌가 하는 겁니다.
노: 내가 만약에 의도적으로 했다면 좀더 세련된 표현을 썼을 겁니다. 좀더 조심스럽게, 좀더 세련된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 김중권대표의 급부상, 이인제의원의 움직임 등 여러 요인 때문에 초조해서, 그랬다 라고도 하는데..

노: 제가 비교적, 제가 비교적 멀리 보는 사람입니다. 제 정치 행적을 보아도 아시겠지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좀 더 멀리 내다보면서 정치를 해온 사람인데, 뭘, 그거 급급해서 그렇게 무리한 짓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그것이 저한테 이익이 될 건지 손해가 될 건진 나중에 봐야 알겠지만, 누가 봐서라도 그것이 이득이 될 거라고 판단하진 않았을 겁니다. (첫 번째 담배에 불을 붙임)

김: 그럼 김중권 당 대표는 결국 기회주의적인가요.(웃음)

노: 논리로 설명할 일은 아니지요.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제가 그 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평가의 일단입니다. 일단이고, 뭐, 그분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 고려해야 될 전부는 아니지만, 그러나 일단인 것은 틀림없고. 그걸 또 뭐 설명을 하는 것은 너무 복잡한 일이예요.

김: 뭐 별로 복잡한 거 같진 않은데.. 설명해주시진 않을 것 같군요..(웃음)
노: (웃음)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 또 실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역감정 해소의 최적격자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어보기로 했다. 가장 자신 있어 할 부분을 확 깨물면, 어찌 반응할지..

김: 호남에서 얼마나 득표할지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만약에 출마하신다면.

노: 그것은 제가 뭐라고 대답하더라도, 정확할 수가 없지요. 별 의미도 없고, 다만 적어도 저는 인간적으로, 상당히 신뢰를 받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진심을 이해하실 거라 보고, 또 신뢰성에 있어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말씀하신대로 호남지역에서 신뢰를 가질 행보를 해오셨고, 상당한 득표를 하지 않을까 저희는 예상합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한편으로는 이것이 또 다른 형태의 역설적인 지역감정이 아닌가 하거든요. 소위, 호남이 지지하는 사람이 이제는 영남출신으로 바뀌는 것일 뿐, 특정 지역이 특정 후보를 비상식적으로,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는 지역감정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영남 지역감정의 구실 중 하나가 호남의 몰표인데... 봐라 호남 뭉치는 거, 그러니 우리도 뭉쳐야 한다... 이런 식의.

그런데.. 만약 노장관님이 출마해 호남의 민심이 뭉친다면 뭉쳐있는 구심점이 영남출신 인사일 뿐 본질은 바뀌지 않아서, 노의원의 강점 중의 하나인 지역감정의 돌파구가 될 거라는 기대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 결국 노장관님으로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게 아니냐, 해결책이 아닌 거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노: 네, 그런 점 있다는 거 동의합니다.

" 네, 그런 점 동의합니다..." 라는 발언은 상당히 의외였다. 자신이 십여 년에 걸쳐 힘들게 획득한, 중요한 정치적 상징성에 대한 의문제기에 이렇게 쉽게 수긍한다는 건, 정치적으로 너무 순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맘 먹고 던지는 정면공격에 대해 이렇게 맥 빠질 정도로 손쉽게 고개를 끄덕여버리는 경우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게 도대체 정치인으로 좋은 건가 나쁜 건가..

이제.. 제가 십 년간 지역감정과 부대끼면서 얻은 결론은, 지역정서는 논리적 설득으로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치적 구도와 계기에 따라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계기와 구도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지 합리적 설득만으로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봅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제도를 바꾸는 것도 쌍방이 호응할 때 제도가 바뀌는 거니까 의식이 먼저다.. 의식과 정서가 문젠데, 영남에서도 정서적으로 호감이 있고, 호남에서도 정서적으로 호감이 있고, 영남에서도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고 호남에서도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있는 집단이나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든지, 이렇게 됐을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은 해소될 것이다.

정치에 있어 편가르기가, 편가르기의 기준이 지역도 있고, 정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책에 의한 경계선이 지역 정서 때문에 무력화되어 있거든요. 근데 만약에 어떤 계기로, 어떤 정치 집단이 영남에서도 정치적 거부감이 없고, 호남에서도 정치적 거부감이 없거나 덜하고 신뢰성도 어느 정도 확보가 된다면, 그때는 이제 정책에 의해서 편가르기가 되는 그런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것을 우린 전선이 바뀐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방향입니다.

김: 그렇다면, 스스로가 그런 여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노: 처음에는, 처음에는 말하자면 이치로서 그리고 정당성으로서 싸워서 설득을 하려고 시도를 했었는데 그걸 실패했고... 그런데, 그 결과로 제가 지금 현재 선 위치가 그런 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위치와 가장 가깝지 않느냐... 말하자면 저는 현재 어떤 의미에선 지역감정을 역이용해서 지역감정을 해소할 계기를 만들어낼 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김: 조금 더 설명해 주십시요. 지역감정을 역이용할 수 있다는 말…

노: 예를 들면 그렇죠, 그건 이제 말하자면 역지역감정을.. 영남에선 제가 영남 사람이기 떄문에 그래도 호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신뢰를 가지고 있거든요. 호남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그 동안에 호남당을 열심히 했으니까. (웃음)
김: (웃음)

노: 그리고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하다 희생도 치렀으니까. 호남도 신뢰를 갖고 있거든요. 그것이 말하자면 호남에서 저를 지지하는 것이 지역감정이 아니냐고 지적하셨는데 그것이 지역감정이라면, 영남의 지역감정과 호남의 지역감정을 하나로 뭉쳐버리는, 지역적 차별성을 좀더 희석시킬 수 있는 위치에 제가 있지 않으냐..

김: 그러니까 호남이 지역감정으로 지지하는 사람과 영남이 지역감정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자가당착적 모순을 만들어, 유권자들을 순간 혼돈스럽게 만들어 그 어지러운 사이 당선돼 버리는 작전입니까…(웃음)

노: (웃음)
김: (웃음) 글쎄, 그게 말로는 되는 것 같습니다만..
노: 그럴 수 있다고, 그래서 나중에 정책으로 전선이 갈라질 수 있다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지난 총선에 출마하실 때 비장하셨고, 당선되었을 상황들에 대해 청사진을 그렸겠지만, 결국 낙선되었고 그래서 큰 정치적 타격이다, 대권 도전에 적신호다... 하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근데 실제 지나고 보니, " 정형근 의원은 당선이 되고 노무현이 떨어졌다 이건 좀 심했다.." 하는 정서가 영남에서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고, 그러니까 영남민심에 일종의 부채 의식을 안겼고, 그래서 오히려 심정적인 반대급부로 인해 차기대선에서 과거보다 유리해지는 것이 아니냐.. " 이번에는 노무혀이 함 밀어주자 " 하는 영남식 의리론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이 저희 나름대로의 분석입니다만, 그런 상황 생각을 해보셨는지..

노: 저는… 희망사항이기도 하고, 그럴 거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김: 그럼 그동안 부산에서 고의로 떨어지신거군요. (웃음)
노: (웃음)

최소한 지역감정에 관한한, 국내 정치인 어느 누구보다도 그는 떳떳할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김: 정치인 노무현의 옆엔 사람이 없다고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노무현 옆에서는 떡고물도 없고 깨끗한 정치를 한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또 한 편으론 정치적 리더쉽의 부재 아니냐, 혼자서 현실정치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거 아닌데... 이건 집권 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확대할 수도 있는데..

노: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이제, 표면적으로 그렇습니다. 그, 표면적으로 어떤 뭐, 드러내놓고 계보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게 가능성이 있을 때 지지의사를 표명할 심정적 동조자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실제로 그 정치 계보로써 그렇게 뭉쳐있는 것이 당내에서 이런저런 경쟁을 하는 데에는 다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가적 지도력을 창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적 지도력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되고, 그리고 공정, 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몇몇 사람들을, 이해관계로 똘똘 뭉치게 하는 능력.. 그게 성공한 지도자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김: 지금까지는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이인제 최고위원 쪽이 가능성은 더 높은 것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면서도 이회창 총재를 상대 축으로 했을 때 가상 대결을 보면 오히려 노장관님이 득표를 더 많이 하기도 하고... 그런데, 어쨌든 결국 이인제 위원이 됐다. 이럴 경우에 승복하실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게다가 하필이면 이인제 위원일 경우. (웃음)

그의 이인제 무시는 뿌리가 깊다. 삼당합당에 동참한 이인제위원의 정통성 결여와 철학 부재를 탓하며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가 출마하면 나도 나가겠다고 했던 노무현이었다. 궁금했다. 지면 어쩔지.

노: 답변하기 전에, 아까 내가 좀 미흡했던 답변. 그 계보가 많다는 것이 그것이 곧바로 지도력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제가 그 내놓고 계보처럼 뭉친, 이해 관계나 연고로 뭉쳐있는 사람은 없지만,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힘을 합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항상 위로, 선배를 모시고 정치를 해왔어요. 존경하는 선배를 모시고 정치를 해왔고. 그 점에 있어선 모자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 다음에 이제, 다음 꺼 말씀을 드리면, 아무튼, 요 부분에 대해선 어떻든 제가 그 게임을 하는 이상, 게임의 결과에 대해선 승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임을 할 땐 게임 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저로서는 역사성과 정통성 같은 것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치인인데,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고민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가정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긴 참 어렵다 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 간단히 말해, 이인제 위원에게 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 질 수도 있습니다.

" 질 수 있다. "
이런 답변을 그냥 망설임없이 해버리는 데, 묻는 사람이 놀란다.

노: (담배에 두 번째 불을 붙임)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게임의 결과에는 승복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모시고 선거운동에 뛰어들어, 말하자면 우리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할 것이냐.. 라는 것에 관해서는 정확한 예측을 하기 어렵고, 또 제 마음이 그때 어떻게 될지는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김: 승복하신단 말씀은, 어쨌든……

노: 막 뛰쳐나와서 출마를 한다든지, 이런 일은 없다는 거죠. 불복하고 뛰쳐나와서 출마를 하고 이런 일은 없지만, 그 다음의 문제... 진심으로 그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서 당원으로서 의무를 다 할 것이냐, 아니면, 뭐.. 이제, 정치는 (왼팔을 들어 내저으며) 여러분들끼리 잘 해라…
김: (웃음)

노: 정치는 여러분들끼리 잘 하고, 내가, 나는 마, 당을 떠나겠다... 해야될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결론이 없습니다.
김: 똑같은…
노: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미리 정해놓은 게 없습니다.

김: 똑같은 질문을 이인제 위원에게 했더니, 최우선은 국민의 지지가 아니냐, 이렇게 답변을 하던데. 그래서 어.. 이 쪽은 안되면 또 나가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웃음)

노: 당원에 대한 위협이지요. 전략상의, 전술상의 위협일 수도 있지요. 저 역시 그 전략상의 위협, 전술상의 발언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유혹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전술상의 발언을.. 그런데, 뛰쳐나간다.. 라고 했을 때 당원들로서는 굉장히 당황스런 상황에 빠집니다. 그런데, 난 그런 행동은 국민들에, 당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알겠습니다. 대중적으로는 청문회 스타, 그 한 이미지로 지금까지 먹고 살았다 할 수 있는데..

노: 맞습니다.

또 맞단다. 나름대로 아프라고 찔렀는데 이렇게 그냥 인정해버리니.. 속으로 아 씨바.. 했다. 반박하고 재반박하면서 그 와중에 허점도 드러나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다..

김: 이제는 청문회를 못 본 소위 인터넷 세대가 유권자로 등장했는데, 혹시 인터넷 세대에게 어필할 나름의 전략이 있으십니까.

노: (왼손으로 무릎을 쓰다듬으며) 딴지일보가 많이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둘 웃음)

김: 저희가 좀 늙었습니다. (웃음) 386세대들입니다.

노: 사이버 스페이스에선 여러 가지 활동을 좀 늘려나가려고 합니다.

김: 그럼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인터넷 세대에게도 계속해서 지키고 싶은 이미지 같은 거 있으십니까? 이회창의 대쪽처럼..

노: 음... 선거에서 표는, 단순한 이미지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그러나 정치인의 자세는 그런 것하곤 좀 달라야 합니다. 소위 체계적으로 잘 짜여진 철학과 소신이라든지, 그런 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인은, 아니 누구나 적어도 지도자가 되려면, 젊은 세대의 정서에 감성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 말고, 자기가 지켜나가야 할, 갖고 나가려고 하는 확실한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과 가치라는 것이 좀 더 깊은 사고와 판단을 거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저는 삼십대, 사십대의 판단에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정치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 이십대가 들으면, 무시하는 거냐? 하겠는데요.

노: 실제 자기 생활의 구체적인 이해관계, 삶의 경험으로부터 요구하고 있는 정치적 조건들이 있거든요. 직장과 가정에서 사회 생활을 책임 있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자기 책임으로 가정을 거느리고 경제 구성원으로 역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적, 삶의 고민들에 맞추는 것이 원칙이죠, 원칙이고... 이십대들에 대해선 그 정서에 맞게, 꿈을 제시하는 그런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것에 맞춰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20대에 맞춰 정치하면 안된다 " 이렇게 답하는 거, 그만의 스타일이다. 보통은 " 젊은이에게 꿈을 주어야죠.." 여기까지만 말하는 게 모법답안이다. 이건 정치인으로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겠다.

 

노무현 언론관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언론을 조폭적이라 했다가 워낙 공격 당하는 중이라,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아 변죽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김: 혹시 최진실씨가 임신 못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노: 예?
김: 최진실씨가 임신을 못 한다는.
노: 처음 듣는 얘긴데요.
김: 며칠 전에 그 스포츠 서울 제목이었습니다. 왜 그러냐면, 너무 바빠서. (웃음)
노: (웃음)
김: 제목은 최진실 임신 못한다 였는데, 내용을 보면 너무 바쁘다. (웃음) 아시다시피, 이건 우리나라 언론들이 아주 잘 하는 짓인데 전후맥락은 다 빼고 특정 문구만 뽑아 선정적이고 의도적으로 오바하는.. 이 분야에서 전통의 최강자는 조선일보이고(웃음)... 그런데, 안티조선 운동 있지 않습니까.
노: 예.

김: 그게 뭐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려는 운동도 아니고, 무슨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어서 실제적인 힘이란 관점에서 아쉬운 점도 있는데, 혹시 이런 안티조선 운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노: 우리 사회에, 다양한 경향, 그 다양한 경향이랄지 다양한 방향의 운동들에 대해서 다 의미있게 보고 찬성합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 모두를, 그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파괴적인 어떤 균열을 일으키지 않고 좀 더 통합돼 나가게 하는 그런 일들을 해야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설사 내심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김: (웃음)이런 소심한...

노: (웃음) 그런 거 모두를 함께 인정하면서 자유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러면서 그 어떤 통합된, 균형 잡힌 관점들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 정답만 말씀하시니까 재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웃음)
노: (웃음)

김: 언론들이 특정 정치인을 딱 찝어서 일부러 험하게 다루어서 언론의 힘이 이 정도이니까 알아서 조아려라, 뭐 그런 길들이기를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노: 예.
김: 또, 당파적이면서, 물론 당파적인 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척..
노: 저는 언론이 당파적 견해를 가진 것에 대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아닌 척 하는 게 문제..

노: 오히려, 그렇습니다. 아닌 척 하는데 문제가 있고, 그 다음에 아무리 당파적이라 하더라도 사실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하고, 그 위에 팩트를 토대로 해서 자기의 의견과 평가를 실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의견과 사실은 분리해줘야 하는데, 그런데 이게 의견이 다르면 사실까지 뒤집어엎어 버려요. 이런 것이 문제가 있죠. 그런 것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비신사적인 행위다...

김: 근데, 궁금한 게, 왜 그렇게 조선일보는 노무현 장관님을 물고 늘어질까요? 지치지도 않고. (웃음)
노: 그거는 제가 답변을 다른 방향으로 할께요. 저, 많은 사람들이 좀 잘 지내보라고 합니다. (웃음)
김: 노장관님은 직업이 정치인인데 잘 좀 지내시지.. (웃음)

노: 저도 개인적으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그분들도, 공정하게도(웃음), 개인적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비호하고, 관철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들이 양보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정치인이라고 해도. 거기에 도전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이익은, 짧게 말해서 수구적 이익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렇습니다, 그런 이익에 대해서 애착과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주류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위 주류적 이익, 한국 사회에 주류적 집단이라고 스스로 자처해온 수구 기득권 세력. 멀리 올라가면 친일파의 맥이 나오고, 가까이 오면 독재정권과 항상 결탁해오고. 항상 강자와 결탁하면서 특권을 누려왔던, 부당한 이익을 누려왔던 집단이지요.

소위 한국의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기초가 거기 있습니다. 전쟁 나면 아들 군대 안 보내고, 법 위에 군림해왔던 사람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

그것이 소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수 수구 언론이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이고 이익이고, 바로 그들이 그 세력이고 그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양보하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대통령이 거기에 도전해서 성공했고, 겁도 없이 노무현이 초선 의원이 돼가지고 거기에 도전한 것이지요.

역시 그만의 스타일이다.
중도의 정치인, 아닌 것이다.

김: 그, 말씀 중에 연상되는 내용인데요, 서정주씨가 사실. 순수 예술인으로 친일했던 경력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예술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게 청산되거나 또는 지적되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황석영 선생이 동인문학상을 조선일보에서 주는 걸 거부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예술을 너무 정치적으로 다루는 거 아니냐고도 하고, 예술은 예술이라며 황석영 선생을 비판하는데. 예술과 정치를 따로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노: 그, 옛날에 그때 그걸 뭐라고 하지? 경향문학이라고 하던가. 순수 예술과 그 당시.. 참여예술. 순수 예술과 참여 예술,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그것은 각기다, 예, 각기 다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느 편을 들지는 않습니다. 않고, 에.. 또.. 저는 개인적으로, 과거에 친일을 한 사람이라도, 과거에 친일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이 땅에 살 자격도 없고 또 그 사람들이 기여하고 있는 만큼의 대우를 받을 자격도 없다, 이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 친일의 행적에 대해서 사과한 일도 없고 반성하지도 않고 공개화되지 못한 체 여전히 자기가 사회 지도층입네 하고 군림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또 어떤 국민 정서의 상징적 존재로서 남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잘못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함께 포용하고 함께 가야하지만, 그러나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지도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의 어떤 본보기가 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를 반성함도 없이 그대로 계속해서 군림해오려는 그런 자세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 우리가 우리 역사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런 그 반성의 과정 없이 그들이 그냥 주류로서 한국 사회에서 계속 군림해왔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반성이 없었던 역사의 맥락에서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경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메시지를 황석영씨가 내놓은 게 아니냐. 그런 점에서 황석영씨의 얘기는 우리가 귀담아들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얘기하자면, 언론과 제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언론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언론에 대해서도, 과거의 것을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렇다고 신문사 없어지라는 것도 아니고, 신문사 그냥 하란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올바른 평가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새롭게, 그야말로 좀 더 대중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그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에 동참하자는 말입니다. 왜 자꾸 과거에, 과거의 향수에 젖어가지고 시대의 흐름을 자꾸 저지하려고 하느냐. 왜 역행... 심지어 역행까지 하려고 하느냐.

그런데 그런 힘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그 위력을 두려워하고 있었잖느냐. 그러니까 맞서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그, 전쟁이란 말도 나오고 (웃음), 나온 거지요. 저는 그들이 말살, 말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없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제 자리로 돌아가란 말이다. 언론은 언론대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권력은 권력대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시민도 제 자리에 똑바로 서자. 왜 눈치보고, 권력 눈치보고 언론 눈치보고 이렇게 살아야 하냐. 주눅들어 살지 말고 제자리로 가자. 그것이 지금 아직까지 정위치가 안돼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황석영씨 얘기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정위치로 가지 않고, 제자리로 각자의 위치가 제자리로 복원되지 않은데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언론관이다.

 

김: 영화를 보면 가끔, 하트가 둥둥 떠 돌아다닙니다.
노: (고개를 들어 무슨 뜻이냐는 표정)
김: 뭐냐하면은 그.. 치모가 노출되거나 성기가 노출되거나 하면 장면상 짜를 수는 없고..
노: (입을 벌려 알았다는 표정)
김 : 그렇게 하트를 넣어서 가리는 건데,
노: 참, 봤으면 좋겠네요 (웃음)

김: (웃음) 그런데, 우리 국민들 문화 수준으로 볼 때, 이제 치모가 보인다든지, 또는 성기가 자연스럽게 노출될 부분이 있어 노출된다고 해서, 과연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해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혹 그런 걸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실 때 어떤 결정을 내리실 겁니까.

노: 전 그런 위치에 아마 갈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웃음)
김: 이런 무책임한...(웃음)

노: 우리 사회에서 어느 자리가 그 자리일까, 난 그런 자리가 없는 것 같거든요. 김: 영상물 등급위..

노: 그러니까.. 그 판단이 참 어려운 것입니다. 에.. 분명 음란물이 있고, 또 음란물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분이 대단히 어렵고, 구분을 법의 잣대로 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부당한 게 아니냐. (담배에 불을 붙임. 세 번째)

김: 음란물의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유명 영화가 극장에서 그런 모양새로 걸리는 경우도 있단 말입니다. 단지 성기 노출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노: 아이들하고, 딸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그런 장면에 부닥쳤을 때 참 난감하더라구요. 그러나 그냥 모른 척 하고 (웃음) 보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아이들이 음란물을 보는지 안 보는지에 대해서 감시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못 보게 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대해서 잠시 호기심을 느끼더라도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서,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건전한 상식으로 정서로 극복해나갈 수 있는, 뭐랄까요, 건전한 판단력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것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그렇습니다. 건전한 판단력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기 노출을 할 수 있게 할까요, 막을까요.(웃음)

노: (웃음) 저는 그렇습니다, 보기 흉하고, 막을 수 있는 건 막으면 좋겠지만, 막으려고 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합니다.

성 문제에 있어 그는 그 어떤 사안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와중에 "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 "는 발언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이다.

김: 알겠습니다. 최근 국내 교육 문제 때문에 삼,사십대 층이 이민을 많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교육문제 때문에 이민들을 가는데, 그런 이민에 대해서 한편에서는 그래도 나라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냐.. 배신이다, 이렇게 말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에 더 희망이 있냐, 가야지, 이렇게도 얘기를 하고..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노: 저는 교육 때문에 이민 간다거나, 한국에 희망이 없어서 이민 간다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이유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육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한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다만,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민을 많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왜 그렇습니까.

노: 그, (담배를 끄면서 기침) 국경의 의미라든지, 국경을 기준으로 한 애국심이라든지, 이런 것은 이제 점점 문화적 적대감으로 발전하는 위험이 있고, 심하게 말하면 국가 지상주의의 시대에서 세계주의의 시대로 세상이 변화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살고 활동하는 범위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확대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한국만 국수적 애국주의 같은 것을 주장하고 하는 사고는 한국의 발전도 가로막는다. 뻗어나가는 것은 좋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뜬금 없는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혹시 사람이 작두를 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 작두?
김: 네. 왜 무당들 보면 작두 타지 않습니까.
노: 예.
김: 진짜로 사람이 작두를 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눈속임이거나 고도의 훈련에 의한 것일까요?
노: 저는 고도의 훈련 아닐까 싶은데.
김: 초자연적인 상황이 아니라?

노: 저는 이제, 신비적 현상에 관해서, 저게 그 사기다, 그렇게 단정하진 않습니다. 우리가 해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는 거기에 의존해서 어떤 신비적인 현상을 제 행동의 기초로 삼지는 않습니다, 예... 진짜 뜬금 없었어요.(웃음)
김: (웃음)
노: (웃음) 있을 순 있다.

김: 알겠습니다. 최근에 이스라엘에서,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샤론 총리가 당선됐습니다. 미국 일부 언론에선 그런 빌미를 제공한 팔레스타인쪽이 오히려 잘못했다.. 식으로 풀기도 하는데, 저희는 이스라엘 문제와 같은 국제적 이슈에 대해 우리 정치인이 나름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견해를 펴는 것을 본 적 없습니다. 한국의 정치인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 그 견해가 궁금합니다.

노: 저는, 제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면, 국가적 이익이라든지 국제적 관계 때문에 말을 조심하겠지만, 그냥 한 인간으로서 생각을 얘기하라 한다면 그 시오니즘이 국수주의다. 인류의 공존에 방해가 되는 사고다, 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전체를 통털어, 옳고 그르고를 떠나, 가장 파격적인 답변이었다.이스라엘의 민족주의가 인류 공존에 방해가 된다는 시각..

김: 거기서 출발해 이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
노: 예, 그렇습니다.

김: 달라이 라마 방한이 무산됐습니다. 연장 선상에서 질문인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실 건지.

노: 그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이 중요하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개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철학대로만 행동할 수 없는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 제약 또한 현실적인 것이므로 그것은 때로는 그 제약을 받아들일 땐 받아들여야 되고, 때론 제약을 깨기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 그 현실적 과정 속에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에 대해서 선택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과 함께 판단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죠. 지도자 철학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있고, 때론 상황에 따라서는 방한을 허용하지 않는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고 생각합니다.
김: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

노: 그렇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노예 제도 옹호론자들이 볼 때는 급진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으면서 굉장히 많이 시달렸습니다.

시달렸는데, 이 링컨이 죽고 난 뒤에, 11년 뒤, 그 목사 (보좌관쪽을 보며) 이름이 뭐지. 그 당시 흑인 지도자, 잭슨 목사 아닌가 싶은데. (다시 고개를 김 쪽으로 돌리며) 하여튼 흑인 지도자 목사가 링컨의 조그만 초상을 만들어서 링컨의 영전에 봉헌하면서 그 얘길 합니다.

그는, 그는 정말 우리 흑인들에게 섭섭하게 했다. 왜냐면 흑인들의 요구를 너무 더디게 들어줬고, 때로는 남부 주를 해방시킨 북부 사령관이 노예해방 조치를 했을 때 그것을 다시 취소하기까지 했다. 노예 해방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여러 가지 조치가 있었다. 그런데 대한 섭섭함을 다 얘기하면서. 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이 죽고 난 시점에서 보니까 그가 결국엔 많은 노예를 해방시켜 놓았더라.. 흑인들이 푸른 군복을 입고 군대도 가고, 행진할 수도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게 이야길 하면서 링컨의 노예 해방자로서의 공을 아주 높이 기리는 그런 연설을 합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링컨은 노예 해방론자이지만 그는 그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결국 아주 합리적인 속도, 속도 조절을 한 것이거든요. 노예 해방의 속도를 아주 정교하게, 뭐라고 할까요, 아주 현명하게 디자인해냈단 말이에요. 그것이 정치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자로서, 과연 나름의 정치적 아젠다가 있느냐 그리고 통일시대를 열어야 할 지도자로서의 대북관은 어떠한가, 당연히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는 항목이다. 또한 인터뷰의 후반부에서는 라이벌 이인제 위원과의 직접 비교를 위해 많은 질문을 노무현 고문에게도 거의 똑같이 던졌다.

반드시 지난 이인제 인터뷰와 비교해 볼 일이다.

김: 링컨이 그런 속도조절을 통해 이룩한 가장 큰 과업 중 하나가 노예해방이라면, 노장관님은 스스로 속도조절하며 이룩해야 할 과업 첫번째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노: 동서 통합이 우선 순위 1번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엔, 철학과 노선에 있어서 지금 이 정부의 노선을 계승해나갈 겁니다. 계승하고 보다 더 완성시켜 나가도록 노력하겠다.. 그러나 정치의 풍토와 행태에 관해서는 지금 이 시대의 정치 풍토를 극복해 나가야 된다..

김: 우선 순위는 동서 통합.
노: 예.
김: 현정권 경우는 남북통일에 더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노: 그렇습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 시대주의적 관점에 있어서 제일 첫 번째는 남북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이야기 먼저 합시다. 남북 관계, 화해와 교류와 협력을 위한 평화의 정착, 그죠? (단어를 헤아려보듯 중얼거리며) 화해, 교류, 협력, 평화… 그런 것의 정착을 위한 포용 정책. 그 다음에 신뢰 구축 정책.

그걸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시대적으로는 가장 중요하고, 또한 그 남북 질서와 더불어서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구축해가는 것, 이건 남북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사의 흐름, 시대의 조류라는 측면에서 클린턴이 주창했던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 이런 것들을 새로운 세계의 질서로 상정하고 나가는 그런 관점이 유지되야 한다.. 또한 대통령께서 취임사에서 민족경제의 시대에서 세계경제의 시대라고 경제영역에서의 세계화를 말씀하셨고, 몇 년 전 민족주의의 시대에서 이제는 보편적 세계주의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 관점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 이런저런 비판에 시달렸지만, 결국 복지제도의 기틀, 생산적 복지제도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복지제도의 기틀을 마련해 놨는데 이걸 계승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실업 문제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과감한 대책이나 사회 안전망, 보험 제도 정비.. 이런 것들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중산층과 서민의 당이라는 정당의 노선을 정책으로 현실화시켜낸 것입니다. 물론 아직 기초단계이고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이것을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게 제가 보는 과업입니다.

김: 아까, 이인제 최고위원이 되면 그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 지 모르겠다 하셨는데, 이인제 위원 외에 지도자로서 인정하기 싫은, 기회주의자 같은 후보가 누굴까요.(웃음)
노: (웃음)
김: 그런 사람이라면… (웃음)
노: (웃음)
김: 웃지만 마시고.. (웃음)

노: 저는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만큼 경제 발전을 하고도 자신감, 미래에 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정통성 없는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합니다. 정통성 없는 역사. 강자에게만, 양지쪽에만 볕이 들고, 항상 강자에게 줄을 서고 양지쪽을 찾아가는 사람들...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 너무 오랫동안 계속된, 이 바뀌지 않고 계속돼 온 역사 속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결여...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서 우리가 이만큼 경제 성장을 이루어 놓고도 미래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승복하는 그런 그 원칙이 확립돼 있지 않은 사회다.. 우리 사회가 정통성, 역사성과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

김: (웃음) 음.. 또 돌아 가시는군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누굽니까. (웃음)
노: 에.. 그거요.. 또 다른 언론에 인용되면 일파만파… (웃음)

김: 그럼 민주당은 그렇다고 치고,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 한 가지만 말씀해주십쇼.
노: 두 가지 합시다.
김: 알겠습니다. (웃음)

노: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지금의 이와 같은 정치 구도 하에서 영남에 가서 지역감정 부추기는 것 해선 안 됩니다. 설사 앞으로 호남에서 단 한 표를 얻지 못하더라도 지도자가 되고 나서는 호남을 함께 끌어 안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자기를 찍지 않은 사람까지 함께 묶어서 한 국민으로 통합해서 나가야 되는데, 그러므로 한 표가 없는 집단이라도 그 집단을 포기하거나 적대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근데 지역 출신의 몇 몇 정치인이 아닌, 전부를, 말하자면 호남인 전체를 상대로 적대하게 한단 말이죠. 말하자면, 한 지역을 포기하는 지도자는 이미 전국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그것은 민을 굉장히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최근에 나온 얘기, 주류가, 정확한 워딩을 모르겠는데, 메인 스트림이 나라를 계속해서 운영해나가야 된다 하고 말을 했는데, 그 주류가 누구인가.. 그 동안에 역사에 있어서 잘못된 길을 걸어온, 설명을 다 하려니까 기네요, 말하자면 부정한 권력과 항상 결탁해 부당한 특권을 누려왔던 그 집단이 아니더냐…… 그렇게 생각되거든요. 그게 또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또 시비가 될 사안이니까 온갖 변명을 다 갖다 붙히는데, 그게 그러면 안 된단 것이죠.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그들은 이 나라를 떠나야 될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이라고 죽어야 될 사람이 아니지만, 망해야 될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이 나라의 지도적 권력을 독점해야겠다는 사고는 대단히 위험하다,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다.. 라고 봅니다.

일반 국민들이 당신이 주류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도대체 누가 내가 주류라고 얘기합니까.

김: 그렇다면, 이인제 위원이 되지 말아야 될 이유는.
노: 같은 당 하는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나요.. 건, 에.. 하여튼, 에…… (고개를 돌리며) 아이 마, 쯧, 이거 말하면 타이틀로 나오겠다, 타이틀로 뽑히겠어요. (웃음)
노: (웃음)

김: 타이틀로 안 뽑겠습니다, 하나만… (웃음)
노: 아니 말고, 다른 데서 보고 타이틀로 뽑을 것 같애. (네 번째 담배에 불 붙임)
김: 한 번 더 해야겠는데요, 인터뷰… 잠잠해지면.(웃음)

노: 그에 대답은.. 음.. 나는, 나와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은 우리 당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그렇군요..
노: 이인제씨를 언급한 건 없습니다.
김: (웃음)

보: 시간이…
김: 시간이 없습니까?
노: 하세요… 예, (웃음)
보: 저, 한 십분 정도 시간이 더 있으십니다.
노: (고개를 끄덕이며) 음.
김: 아직 반도 안 했는데… (웃음)
노: (웃음)

김: 김정일이 정치적 파트너라 할 수 있습니까. 그, 북괴의 수괴가. (웃음)
노: 북괴의 수괴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정치 파트너로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김: 정치인으로써 김정일을 평가하신다면. 노출된 지가 오래되진 않았습니다만.
노: 건 그…
김: 직업으로 따지면 같지 않습니까 사실은. (웃음)
노: 사실은 아까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이건 정말 함부로 말할 수가 없지요. 조심스럽고,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는 정치적 파트너입니다. 그건 존중해야 합니다.
김: 자질 얘기까지.
노: 자질에 대한 평가는 그건 조심해야죠.

김: 국가적 레드컴플랙스때문에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십니까. 아니면, 평가가 이르다는 말씀이신가요.

노: 이리로 가면 김정일이 불쾌하게 생각하고, 또 반대로 가면 국내에서 이상한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고. 그러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하기 어렵지만, 판단도 어렵습니다. 북한이란 그런 특수한 조건을 놓고 판단하라 했을 때 하고, 세계 일반의 보편적 기준 위에 그를 세웠을 때 그 평가는 굉장히 달라질 수가 있는 거니까.

김: 노장관님 나름의 평가..

노: 아니 그거는, 내가 평가하더라도, 그 전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북한이란 특수 상황에서 그가 유능한 지도자이냐 라고 보면 그건 유능한 지도자이죠. 그만큼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해나가고. 유능한 정치인이죠. 그러나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서, 남한의 보편적 기준에서 보면 지도자가 아니라 폭군이죠. 그 전제를 빼고는 평가가 불가능하겠습니다.
김: 알겠습니다.

노: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와 더불어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또 신뢰 관계를 구축시켜 나가야 되는 정치적 상대자인 거는, 분명히 인정을 해야 합니다.
김: 그럼, 북한은 주적입니까?
노: 글쎄, 여러 나라가 주적개념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적 개념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가. 주적 개념을, 좀 다르게 바꾸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의 이너뷰 대상 중 가장 허심탄회하게 답변하던 노무현 고문도 레드컴플렉스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답변들은 망설임 끝에 나왔고, 그리고 수위는 조절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말 후지다...

 

 

김: 냅스터가 패소했습니다.

보: 지금 다섯시 삼십분에 약속이 되어 있으십니다.

두 번째 타임 부저. 이번 부저는 10분 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약속시간이 되어버렸고, 밖에선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제 그만 나가라는 부저였다. 이때부터 단 한 가지라도 더 묻기 위해, 만족할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후속 질의 없이, 질문들을 전방위로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노: (보좌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음… (김을 보며) 누가 패소를 했어요.
김: 냅스터…
노: 이거 망신하겠네. (보좌관쪽으로 상체를 내밀며 웃음) 야, 냅스터가 누구냐?
김: (웃음) 냅스터, 프로그램 이름입니다.
노: 음..
김: MP3라는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노: 예, 예. MP3를 받는.

김: 그런데 패소했습니다, 냅스터가. 인터넷상에서 저작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음반 협회와 냅스터간에. A라는 음악파일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B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각자 교환해버리면 음반 판매가 안된다.. 라며 인터넷 상에서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인 냅스터를 고소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십니까.
노: 그 부분은… 판단이 어렵네요.
김: 잘 모르시겠습니까.
노: 예.

김: 인터넷 시대엔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데..
노: 제 생각은, 지도자가 너무 많이 알 건 없고..
김: (웃음)
노: 그건 판사들한테 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알면 좋지만, 몰라도 그건 판사들한테 맡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면 판사들한테 맡기고… 알아도 판사들한테 맡겨야 되고, 몰라도 판사들한테 맡겨야 되고..

답변으로 옹색했다. 인터넷시대엔 이런 이슈들이 국가적 이익과 바로 결부될 수도 있는 사안이 될 것이다. 이제 지도자로서 최소한으로 인터넷을 이해하고자 하는 자세는, 결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김: (시계를 봄)
노: 계속, 하세요.
김: (웃음) 골프 치십니까, 혹시?

노: 예, 배웠습니다. 한 반년쯤 됐습니다.
김: 골프가 아직 대중적이지 않고 서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부분도 있는데.

노: 음, 골프 대중화라는 말이 좀 유행을 하던데, 그리고 상당히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골프에 접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돈이 많이 듭디다, 해보니까. 아직은 돈이 좀 많이 들어서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엔 이른 것 같다 라는 생각합니다.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의 논리겠지요. 제가 골프를 치는 이유는, 아주 현실적인 건데 골프 치는 사람하고도 좀 교류가 있어야 되겠다, 그, 교류 좀 해야 될 필요가 있겠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부산 가서 일요일날 만나려고 하면 약속이 되질 않습니다. 골프장에 가버려서. 그래서 할 수 없이 (웃음) 가서 만나려고..

김: (웃음)
노: 아주 현실적인 정치적 필요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가 없어요, 일요일날. 그래서, 골프장에 따라가서 만나야겠다. (웃음) 그렇게 가서 만납니다. (웃음)

김: 시간이 너무 부족하군요. 차후 인터뷰 더 해주십쇼.
노: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김: 호주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유명무실한 제도입니다. 폐지해야죠.

김: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그건 뭐… 그 운동은, 잘 하는 거라고 생각하구요. 결국 그것을 법제화하는 데는 얼마만큼 많은 국민들이 그 필요를 느끼고 요구하느냐 하는 문제이지, 그 이전에 어떤 그 절대적 원칙이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것은 많은 국민들이 그로 인해서 불편을 느끼고 이걸 열어달라고 하면 그럼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판단 기준입니다.

그 이외에 무슨 선험적이고 개인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법제화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다.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성을 같이 쓰는 것도 좋지만, 선택하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아버지의 성이나 어머니의 성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김: 여호와의 증인이 징집 거부하며, 사회 봉사 활동으로 대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봉사 활동이 실제 군 복무 기간보다 훨씬 기간이 길고 힘들더라도 그걸 하겠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예, 좋습니다. 병력을 충족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가 필요한 병력을 충족할 수 없을 정도로, 병력공급에 큰 지장이 생긴다면 그것을 다 받아들일 순 없겠지만, 지금 어차피 공익근무도 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제도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존중해 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그걸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로 볼 순 없을까요.

노: 지금, 뭐, 하잖습니까. 병역 특례로 제도도 있고, 또 공익근무도 있고, 다른 많은 옵션들이 있지 않습니까. 기초 훈련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보좌관을 보며) 병역특례할 땐 기초 훈련 안 받지? 산업체 병역 특례할 때 기초 훈련 없죠? 그렇기 때문에, 크게 형평을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그것을 대통령이 정할 문제는 아니라 봅니다. 이런 질문엔 앞으로 개인적 소신이라고 전제하고 답해야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대통령이 다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느낄 우려가 있군요.

김: 저희는 한 개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가 궁금한 겁니다.
노: 예, 아..

김: 우리나라 어떤 여배우가 일본에 가서 포르노를 찍고 왔습니다. 이 여배우가 우리나라 극영화에도 출연을 했고, 네티즌 사이에선 상당히 유행했는데, 이걸 두고 말들이 있습니다. 일본이어서 안 된다. 하필 일본에서.
노: (웃음)

김: 이게 포르노라서 안 된다, 또는 괜찮다, 직업에 귀천이 어딨냐.. 등등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뭐 전 포르노에 대해선 불안하게 생각하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포르노가 안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김: 포르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가 아니라, 이 여배우가 포르노 출연을 직업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노: (탁자 위의 물을 집어 마심)
또, 그 대상이 하필 일본인이고.

노: 그런 직업에 대해서 전 마음이 관대하지 않습니다.
김: 개인적으로.
노: 예. (물을 마심)

김: 성기구 판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저도 무슨 성인 사이트를 한 번 들어가 볼까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웃음)

김: 호스트바는 단속을 심하게 하는데, 호스티스 나오는 룸싸롱은 묵인을 합니다. 남자들한텐 당연한 것이 여자들에겐 당연하지 않는 것이 많은데..

노: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사회의 문화적, 문화적 정서가... 어후, 참(한숨).. 불공평하다, 인정합니다.

김: 그걸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 : 그, 참, 그렇다면 호스트바를 봐주란 얘긴데...
김: (웃음)
노: 그것보다는 호스티스바를 단속하는 쪽이…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 만일, 가정입니다. 아드님이 동성애자입니다. 그런데 노장관님은 정치인이고. 현재의 사회적 편견 속에서 아드님이 동성애자일 때 커밍아웃을 권하실 수 있겠습니까.

노: 개인적으로 말리고 설득은 해 보겠지만, 그러나 그게 잘 말려질 일인지는… 자신이…
김: 동성애자들은 그러니까 성정체성을 개인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났는데, 문제는 그걸 숨기느냐 드러내느냐 인데...

노: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은, 경험하지 않은 일이라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고, 또 대단히 사회생활에 불편과 고통이 있을 수 있을 것인데, 내 아이라면 개인적으론 말려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려질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선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호주제 문제를 딱 잘라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부모성 같이 쓰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서, 성문제에 대해선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었고, 동성애에 대한 이해도 거의 전무했다. 개인의 성적취향을 묻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건 뭔가 언밸런스다..

김: 만약에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능을 상실하셨어요(웃음). 보형물을 삽입하시겠습니까?
노: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

김: 성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궁금한데, 그걸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그래서 보형물 삽입하시겠습니까. (웃음)

노: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는 그야말로 소중한 것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 그런 문제를 놓고, 그,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김: (웃음)

노: 말하는 것은, 좀, 그... 다 말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심스럽게 해야 된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적 욕구란 것은 존중해야 합니다. 그 욕구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훌륭한 사람 훌륭하지 않은 사람, 그런 구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차별도 있을 수가 없고. 그러나,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좀 (웃음) 민망스러운 문제이기 때문에..

김: 성인 비디오를 보십니까.
노: 옛날에, 요즘처럼 흔하지 않을 때, 옛날에 비디오를 봤죠. 요즘은..

김: 혹시, 사창가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노: 비밀입니다.
김: (웃음)
노: (웃음)

혹시.. 하며 다른 각도에서 몇 차례 더 성문제를 스쳐가듯 찝적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김: (웃음) 남자들을 보면, 이십대가 넘어가면 삼각팬티를 입거나, 또는 사각팬티를 입거나, 둘 중 하나만 입습니다. 희한하게도.
노: (고갤 끄덕임)
김: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어떠신지. 저희가 사회적으로 삼각파와 사각파를 좀 나눠볼려고 합니다.
노: 저는 사각입니다. (웃음)
김: 왜, 사각을 입으십니까. (웃음)
노: (양손으로 바지 앞에 삼각 팬티를 만들어보이며) 불편해요.
김: 그쵸? 통풍이라든가.
노: 하여튼, 불편해요. 삼각은. 쫄립니다. (웃음)

전국의 사각파들이여, 커뮤니티에 한 명 추가해라.
노무현도 사각파란다..

김: UFO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 모르겠어요.
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까.
노: 예.
김: 안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아니고
노: 예.
김: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아니고.
노: 예.
김: 비겁한 답변이었습니다, 그거는. (웃음)

노: (웃음) 정말 그.. 제가 대단히 실리적인, 그런 면에 있어서는 실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아직은 저하고 별 관계가 없는 일 아니냐, 그리고 뭐, 인류의 운명에도 별 관계가 없는 일 아닌가…

김: 글쎄의 인류의 운명과는 관련 있을 수도.. 지구 방위 사령부가 존재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국민들 납세부담도 생기게 되고...(웃음)
노: 글쎄, 그것이 위협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조금 더 현실화됐을 때 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이 맞겠죠.

김: 장기 자랑을 하라고 하면 뭘 하십니까. 차력이라든가.. (웃음)
노: 그게 없어요. 장기가 좀 없어요.

김: 삼국지 중에 가장, 스스로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다른 거로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노: 생각을 안 해봤어요.

김: 버스비하고, 지하철비를 합한 다음에, 영화비까지 합치면 얼마가 될까요.
노: 모르겠는데, 한 만이천원쯤 하나…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네.
김: 국회에 가려면 지하철을 몇 호선을 타야 되는지 아십니까.
노: 5호선이죠. 5호선인데 한참 걸어가야 돼요.

김: 거의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랜디 존슨, 캐빈 브라운, 마르티네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노: (고개를 흔들며) 모르겠는데요.
김: 투수. 스포츠에 관심이 있으신지 궁금했습니다.

김: 하나만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입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노: 음?
김: 입양.
노: 입양. 참, 그, 정말, 꼭 필요한 거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
김: 그 이유는? 그, 국내 입양 말고 해외 입양을 말하는 겁니다.

노: 아까 제가 그 이야길 했습니다. 국제적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그러나 입양에 관한 한은 국내에서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나올 때마다, 그 말을 주저하게 되는 것은, 제가 아직 실천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김: 해외 입양은 어떤가요.
노: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어떤 사람은 편견 심한 우리나라보다 편견없는 외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받는 것이 그 개인에겐 더 기회가 되고 좋은 게 아닌가, 그렇게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노: 솔직히 말해서, 듣고 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그런 부분이 있네요…

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언제 또……
노: 뭐 실컷 해 놓고.
김: 이걸루는 어림도 없습니다..(웃음)

여기서 인터뷰는 끝이 나고, 이미 한 참을 기다린 다음 손님에게 후다닥 장관실을 넘기고는 빠져 나왔다..

 

노무현... 그 역시 몸을 사리는 답변도 했고, 그 역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려는 부분이 있었으며, 그 역시 레드컴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인터뷰 대상들과 분명히 달랐던 점 한가지는, 한 쪽을 적으로 돌려세울 지언정 대부분의 사안에 호오가 분명한 자기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더란 것이다.

20대를 기준으로 정치 안 한다는 발언은 정치인으로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자기 철학이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만큼 적을 만들어 내는 정치인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회처럼 "보수우익"의 뿌리가 깊은 곳에서 과연 대통령 해먹을 수 있을까.. 물론 계속해서 "개인의 견해"와 "지도자로서의 처신"의 분리를 얘기하고는 있긴 했지만 말이다..

다음 인터뷰때는 좀 더 들들 볶아봐야 겠다...

 

자, 오늘도 본 이너뷰의 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자. 목표는 뽕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섹스, 통일... 실제 인간이 일상을 살아가며 부딪히는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로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 질문은 어떻게 해서든 답변을 받아내려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

또한, 이 한 번의 이너뷰로 부족한 독자제위는 2차 이너뷰를 기대하시라. 그리고,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을 게시판에 와장창 남겨들 주시라. 본지가 반드시 그 의문을 풀어 낱낱이 보고하리라.

풀어낼 궁금증이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그때까지, 이 이너뷰는 끝나지 않는다.

 

우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더 이상 뽑지 않는다. 졸라!

 

- 일망타진 연쇄이너뷰 추진위원장
딴지총수 ( chongsu@ddanzi.com )

http://www.ddanzi.com/news/2463.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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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됨은 변하지 않는 법

고맙습니다.

당신의 국민이라서 행복했습니다.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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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말기 항간에는 ‘효자동의 개가 짖어도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있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수구기득권의 집요한 물어뜯기에서 비롯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친서민’을 표방했던 참여정부가 집권한 후에도 서민들의 삶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도 일조했다.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최근 “서민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집권 후반기에 낮은 평가를 받아 허망했다”는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친서민’을 표방한 참여정부의 위기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서민들로부터 왜 인색한 평가를 받았을까?

이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한국은행 수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운영을 깊숙하게 지켜본 박승 전 총재(74)가 내놓은 진단이 눈길을 끈다. 그는 얼마 전 출간한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를 통해 이른바 ‘노무현의 역설론’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추구했지만,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던 외부환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회고록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도 소개했다.

박 전 총재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89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했으며, 1999년 한국경제학회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역임하고, 2002년부터 4년간 한국은행 총재로 재직했다. 그는 6공화국부터 김영삼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두루 요직을 거친 인사로, 특히 일산·분당 신도시 건설 추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참여정부 초기 그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를 존중하는 쪽을 택했다.

참여정부 출신의 한 인사는 “참여정부는 한국은행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인사 불개입이 원칙이었다”며 “박 전 총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저회의와 대통령의 진면모

박 전 총재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편에 있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2003년 카드채 문제로 청와대 관저에서 정부, 청와대,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모인 대책회의가 있었다. 앞서 몇 년간 신용카드 회사들이 연리 20% 안팎의 고리대금을 하다가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돈을 못 갚게 되자 카드회사들이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시 카드회사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이 100조원에 이르렀다.

이때 모든 참석자들은 어떻게 하면 금융기관 부실화를 막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리대금을 못 갚은 신용불량자들과 가계부채 문제라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우선 세우도록 주문했다. 노 대통령의 주문으로 카드대출 금리인하, 신용불량자 대책, 신용회복위원회 발족, 가계부채 대책 등 ‘친서민 대책’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또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관저회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주요 경제현안 회의를 주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박 전 총재는 “이런저런 공직을 겪으면서 많은 청와대 회의를 경험했지만 대통령 관저에서 회의는 처음이었으며, 또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해보기도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회의는 상의를 벗고(때에 따라서는 넥타이도 풀고) 식사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으며 진행됐다. 그때 노 대통령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고 박승 전 총재는 기억했다.

외부효과로 인한 ‘노무현의 역설’

박 전 총재는 임기 4년 중 3년은 노 대통령과 일을 했다며, 수없이 정책관련 회의를 했는데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친서민 정서가 몸에 배어 있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모든 정책이 친서민 위주였고 서민들을 무척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혜택을 본 사람들은 부유층과 대기업이었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는 것이다.

박승 전 총재는 이것을 ‘노무현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즉, 노 대통령은 배를 동쪽으로 열심히 저었는데 역풍을 맞아서 결국 배가 서쪽으로 간 경우에 비유했다. 그는 이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박 전 총재는 이러한 ‘역설’의 원인으로 집값과 양극화 현상을 꼽았다. 집값은 집권기간 내내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여 참여정부를 시종 괴롭힌 문제였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상승을 반도덕, 반형평의 사회적 죄악이라고 말할 만큼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냈다고 했다. 특히 서민생활을 더 어렵게 한 ‘역설’의 원인으로, 경쟁우위의 대기업과 경쟁열위인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의 양극화 현상을 꼽았다.



대통령의 노심초사, 그리고 역사의 평가

박 전 총재는 집값 상승과 관련한 수많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노 대통령은 늘 최강도 대책을 주문했고, 그 대표적인 성과가 부부 합산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고율로 누진과세하는 ‘종합부동산세’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양도소득세 중과, 주택담보비율 인하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동시에 시행했다. 그러나 정책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어서 노 대통령 임기 중 그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집값 안정 효과는 후임 정권이 누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전 총재는 특히 양극화 문제가 노 대통령이 가장 노심초사한 현안이었다며, 청와대에서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묘안이 없었다고 고백했다(노 대통령은 2006년 2월 총리관저 모임에서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에게 비정규직 비율에 대해 파악해오라고 했더니 무려 1년이 걸리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양극화의 원인으로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계화 개방질서, 저임금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부문의 몰락을 꼽으며, 이 문제는 세계경제 질서와 관련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서 정책적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역설’은 여전히 진행형 과제이며, 만일 현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면 민생고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박 전 총재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노심초사했던 이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떠나신 노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박승 전 총재는 지난해 5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방명록에 "시민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수 노무현, 역사는 길이 기억할 것이다"라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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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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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사람사는세상 2010. 12. 6. 16:36
Posted by skidpara
,

* 10.4남북공동선언문(요약)


1. 6.15 공동선언의 고수 및 적극 구현

2. 상호 존중과 신뢰의 남북관계 전환

-통일지향적 관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정비

-국가보안법 개폐

3.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

-NLL, 서해상 충돌 방지를 위한 공동어로 수역 지정

-국방장관화담 11월 중 개최

4. 현 정전체제 종식과 정전 선언과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등 (2.13, 9.19)합의 이행 노력

5.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 번영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개성신의주 개성 평양간 공동 이용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 운영

6.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분야 교류 협력

-백두산 관광과 직항로 설치 **각각 독립적으로

-경의선 열차를 이용한 남북 올림픽응원단 운영

7.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상가족 상봉 확대

8.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 확보 협력

부칙 1. 남북총리회담 개최 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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