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저물어 가던 2007년 11월27일,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대동강변의 송전각에 도착한 김장수 국방장관 일행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첫날 북쪽은 서해에서 불가침경계선(북방한계선) 재설정 문제를 들고나와 우리를 압박했다. 이튿날에는 우리가 북한의 핵개발 등 남쪽에 대한 위협을 거론하며 맞불을 놓았다. 북쪽은 “해상불가침경계선 획정 문제가 우선 논의되지 않으면 다른 의제는 논의하기 어렵다”며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한달여 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김장수 장관은 “회담이고 뭐고 오늘 서울로 돌아가서 사퇴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다”며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그날 밤 우리 쪽이 주최한 만찬에서 김장수 장관은 김일철 부장에게 “무력부장 선생도 합의가 안 돼서 골치 아프겠지만 나도 골치가 아파 죽겠다. 나는 돌아가서 사퇴하면 그만이니 내 후임 장관하고 잘해보라”고 배수진을 쳤다. 이에 무력부장은 “장수 장관, 그러지 마시오. 우리 잘해봅시다” 하며 4번이나 사퇴를 만류했다. 이어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내일 중으로 다 하도록 지침을 주셨다”며 합의의 전제조건인 해상경계선 재설정 주장을 철회했다. 이튿날 마무리 전체회의에서는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사협력을 담은 7개조 21항의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대동강변에서 남북 군부가 가파르게 대립하면서도 합의를 이뤄낸 2박3일은 또 하나의 역사가 탄생하는 새 시대의 여명이었다. 비록 남북공동어로구역 문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높은 수준의 남북군사협력을 이뤄냈다. 10월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열린 11월의 장관회담은 서북해역 방어를 책임지는 군의 의견을 노무현 대통령이 전부 수용하고, 북방한계선에 대한 전권을 국방부에 위임한 결과이기도 했다. 회담 중에 청와대는 단 한번도 지침이나 훈령을 보내지 않았고 회담에 간섭하지도 않았다.

김장수 장관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뢰는 회담 이전이나 이후에나 변함이 없었다. 간혹 청와대에서 ‘꼿꼿 장수’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며 장관 경질을 주장하는 젊은 행정관들이 있었으나, 이들을 제압하며 경질설을 일축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윤병세 외교안보수석은 김장수 장관과 함께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외교안보 두뇌가 되었다. 김장수 장관을 보좌하며 정상회담 이전부터 청와대와 북방한계선 문제를 조율한 당시 김관진 합참의장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장관이 되었다.

남북관계의 기나긴 여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고 좌절하다가 이정표를 세울 때마다 우리는 환호하고 감격하기도 했다. 그 역동적인 시기를 회고하면 우리는 원칙과 신념을 지켜야 하는 준엄한 역사의 교훈을 자각하고 전율하게 된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있지도 않은 ‘단독회담 비밀회의록’에 이어 “노무현이 북방한계선을 부정했다”는 식의 거짓선동에 휘말리지 않는다. 이것이 김장수, 윤병세, 김관진이 정부·여당에 몸담았지만 새누리당의 북풍몰이에 협력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이 빠진 대신 역사관·통일관·안보관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삼류들의 역사왜곡은 스탈린, 마오쩌둥(모택동), 히틀러를 다 합친 것보다 위험하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관을 기대하지 않지만 그 무지몽매함까지 방치하기엔 사태가 너무 엄중한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안보를 외치는 동안 정작 지상의 철책선과 해상의 경계선이 모두 뚫린 정권은 노무현이 아니라 이명박 아니었나. 말하려거든 그 사실을 말하라.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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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은 내년부터 1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공중급유기 4대 도입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내년 예산에 550억원의 착수금을 요구하였으나 기획재정부는 이를 360억원으로 조정한 뒤 청와대와 협의하였다. 그런데 8월30일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청와대 외교안보실은 기재부 예산실장에게 이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고 지시했다. “공중급유기는 일본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도 덧붙여졌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 체공시간을 늘려 작전반경을 확대하도록 하는 게 바로 공중급유기다. 독도에서 한국군 방어훈련으로 심기가 불편한 일본에 청와대가 파격적 배려를 한 셈이다.

올해 추진되는 차기전투기사업과 함께 공중급유기는 공군 전력 증강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희한한 정치논리로 성사 직전의 사업이 날아갔으니 공군은 거의 멘탈이 붕괴된 상황이다. 죽은 사업을 다시 살리려고 공군 참모총장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상황은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그날 열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는 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9월7일로 예정된 독도 방어훈련에서 해병대의 입도 훈련을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상륙기동헬기와 상륙공격헬기를 도입하여 항공력으로 상륙전을 모색하는 해병대는 독도에서도 그 위용을 과시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독도 방어훈련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예고된 훈련이었기 때문에 일본 눈치 보느라고 훈련을 취소한 데 대한 분노는 더 컸다.

더 심각한 결정도 내려졌다. 국방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뒤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점을 고려해 양국 군사협력 문제를 재검토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9월말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욱일승천기를 게양한 일본 함정이 들어와 우리 함정과 기동하면서 양국의 군 관계자가 악수하고 환담하는 것을 수용해야 할 것인지, 국방부는 연기하거나 재검토할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결정했고, 이 때문에 국방부와 해군은 내키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하고 원치 않는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국방부에 국민의 질타가 쏟아질 터이니 이 역시 멘탈이 붕괴될 일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육군도 예외일 리가 없다. 앞으로 5년간 2조5000억원을 투입하여 유도탄 전력을 증강하고 무인공격기까지 보유하려는 육군은 지대지미사일 사정거리 연장이 최대 숙원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에서 일본이 한국과 독도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에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연장해주지 말라”고 로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미사일 사정거리가 연장되면 일본열도가 그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절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이 흔들리고 있으니 육군의 멘탈이 붕괴될 일 아닌가?

일본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한국군 전력 증강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적극적 억제전략’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본다면 지난 3년간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안보정책은 저절로 붕괴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 보수안보세력의 국가주의가 일본의 국가주의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뼛속까지 친일이고 친미”라고 스스로 말하는 그들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고도 북한에 대해 무슨 원칙 있는 접근을 할 것이며, 적극적 억제를 한단 말인가? 청와대 안보수석의 황당한 궤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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