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위법행위’를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꼼곰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순수한 마음’과 달리 최씨 일가가 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국가와 기업의 돈을 자기 돈처럼 주무르고 공무원 인사를 좌우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이름 붙여진 일련의 사건들은 40년 전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부터 현재를 일지 형태로 정리했다.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경향신문] ‘최순실 게이트’ 기사 타임 라인
▶[경향신문][디지털스토리텔링] ‘최순실 게이트’ 관계도


■1912년 8월25일 최태민 출생

-최태민은 1912년 황해도 출신으로 일제시대 경찰업무를 하다 해방 이후 승려가 된 것으로 알려짐. 70년대 초 불교, 기독교, 천도교를 종합한 ‘영생교’를 세우고 교주가 됨. 부인 6명으로부터 3남6녀를 둠. 최순실은 5녀.

▶[한겨레]이름 7개, 부인 6명, 승려 목사 ‘최태민 미스터리’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75년 2월 최태민, 박근혜에 위로 편지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편지를 보냄.

-중앙정보부의 조사보고서도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 등 사이비 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년 2월말경 박근혜에게 3차에 걸쳐 꿈에 ‘육 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라고 나옴. 최태민은 편지는 보냈지만 “위로 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정도였다고 ‘현몽설’ 부인.

-최순실, 단국대 영어영문과 입학


■1975년 3월6일 박근혜, 최태민을 청와대로 부름

-편지를 계기로 청와대에서 박근혜와 만난 최태민은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말하며 외부 활동을 권함.


■1975년 4월29일 최태민 ‘대한구국선교단’ 설립…‘십자군’ 창설

-박근혜를 만난 뒤 최태민은 목사 안수를 받고 7번째이자 마지막 이름인 ‘태민’을 얻은 것으로 알려짐. 영생교 간판을 내린 뒤 4월29일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하고 총재가 됨. 그해 5월 ‘구국기도회’를 열고 6월에는 산하 조직인 ‘대한구국십자군’을 창군함. 박근혜는 두 행사에 참석함. 최태민의 즉석 제안으로 박근혜는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 됨. 이후 박근혜는 ‘구국선교단’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냄.


기독교 십자군 창설의 일환으로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대한구국선교단(단장 강신명 목사) 소속 목사들의 퇴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명예총재가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년 5월26일자 7면

기독교 십자군 창설의 일환으로 3일간 군사훈련을 받은 대한구국선교단(단장 강신명 목사) 소속 목사들의 퇴소식에 참석한 박근혜 명예총재가 참석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년 5월26일자 7면

1975년 6월21일 대한구국선교단 산하 ‘구국십자군’ 창군식이 열린 배제고등학교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 자격으로 참석해 신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년 6월23일자 7면 기사

1975년 6월21일 대한구국선교단 산하 ‘구국십자군’ 창군식이 열린 배제고등학교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 자격으로 참석해 신도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향신문 1975년 6월23일자 7면 기사

■1976년 4월 ‘구국여성봉사단’과 ‘새마음봉사단’ 출범

-박근혜가 총재를 맡은 ‘구국여성봉사단’ 등 유사 단체도 여럿 생김. 최태민은 구국선교단을 비롯해 여러 단체를 통합해 ‘새마음봉사단’을 만들고 박근혜를 총재로 추대. 박근혜 초창기 경력의 핵심은 ‘새마음갖기운동’을 펼친 ‘새마음봉사단’ 활동임. 박근혜와 최태민은 ‘새마음갖기운동’이라는 전국민 정신개조운동을 펼침.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1976년 박근혜(오른쪽)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가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단체결연 단합대회에 참석한 장면.

■1977년 1월21일 ‘새마음갖기운동본부’ 발족

-이날 경향신문은 5면 기사에서 “새마음갖기국민운동본부(본부장 최태민)가 19일 발족되었다. 국민의 도의심 앙양 등 정신개혁을 목표로 전개될 새마음갖기운동은 야간무료진료봉사 등 사회사업에 앞장서온 대한구국봉사단, 구국여성봉사단, 서울시의사회 등이 주관하고 서울시한의사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각 사회단체 등이 협찬한다. 새마음갖기운동의 제1차 사업으로 경로사상, 충효사상의 지변확대를 설정, 경로병원을 개설하고 시범경로마을을 설치한다….”고 소개함


■1977년 3월16일 ‘새마음갖기’ 범국민궐기대회

-이날 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는 “충효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새마음갖기운동이 어느 단체나 지방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전체의 국민철학으로 심어져 나갈 때 이 땅은 이상적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함. 이런 궐기대회는 전국 곳곳에서 열렸으며 수천, 수만 명의 학생, 시민들이 동원됐고 박근혜는 모든 행사에 직접 참석함.

-박근혜는 ‘충·효·예’를 강조하는 ‘새마음갖기운동’을 통해 국민들이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들었음. 새마음갖기운동 행사장에서 나이든 교장, 교수들이 박근혜에게 90도로 절을 했을 정도. 단순한 정신개조운동으로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기업별, 학교별, 지역별 조직을 촘촘하게 만들어 이런 조직들을 자신의 독자적 권력 기반으로 삼으려함 것으로 보임.

▶[오마이뉴스]새마음운동으로 유신독재의 주역이 된 박근혜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77년 9월 ‘최태민 게이트’ 친국한 박정희

-최태민은 박근혜와 친분을 쌓은 이후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지름. 여성과의 스캔들 의혹도 끊이지 않았음. 최태민에 대한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음. 당시 봉사단 관계자는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 함.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최태민씨가 영애(박근혜)의 힘을 업고 범법 행위를 저지른다”는 보고서를 제출. 박정희는 직접 최태민을 심문함. 대통령 서재에서 진행한 ‘친국’엔 중정의 김재규 부장과 백광현 국장이 동석. 박근혜도 참석해 “그런 일 없다”며 최태민을 옹호했다는 설도 있음. 박정희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검찰에 넘긴 뒤 검찰 판단에 따르겠다”고 했으나 최태민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는 박근혜)를 맡는 등 박근혜 옆을 지킴.


※2007년 7월20일 미국 외교전문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이날 미 외교전문에는 “작고한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성장기 시절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의 아이들은 그 결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루머가 무성하다”고 적혀 있음.

▶[위키리크스]미 외교전문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비선실세’ 최태민…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과 흡사

-최태민이 봉사단의 운영비를 조달한 과정은 최순실의 미르-K재단 설립 과정과 흡사하다. 중앙정보부 보고서를 보면 “78년 7월14 운영비 조달목적으로 ‘####(주)’ 회장 최모 등 10명의 실업인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운영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계속 증원해 이듬해 10월에는 국내 재벌급 실업인을 거의 망라한 60명 선에 육박, 1인당 입단 찬조비 2000~5000만원에다 매월 200만원씩 운영자금을 조달”했다고 나옴. 또한 장학기금과 운영기금 및 기타행사 지원비 등 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개별적으로 갹출했는데 운영위 멤버가 아닌 기업체에 대해서도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동일명목으로 수천만원씩 갹출”한 것으로 나옴.

▶[미디어오늘]최순실 게이트, 40년 전 최태민 수법 그대로


■1970년대 중후반

-박정희 대통령, ‘최태민 마크맨’으로 최필립(1928-2013,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박근혜를 수행토록 지시.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최필립을 추천한 것은 의전수석 최광수였는데, 최씨 몇이 몰리게 되면서 최태민과 최필립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979년 3월27일 박근혜 첫 저서 <새마음의 길> 출간 기념회

-한국일보 백상기념관에서 열린 출간기념회에는 학계, 언론계, 예술계 등에서 150여 명이 참석. 이 책은 구국여성단 총재를 맡았던 박근혜가 1977년 5월부터 1978년 11월까지 새마음갖기 도민궐기대회, 직장불교인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새마음 중고등학생연합발대식 등에 참석해 발표한 연설문 21편을 모아 정리한 것. ‘새마음의 길’의 영문판 <The New Spirit Movement>도 1979년 7월 발행. <새마음의 길>은 2월 출간된 이후 6개월만에 50만부나 보급.


■1979년 6월10일 “새마음 정신으로 사회정화”…최순실의 첫 언론 등장

-새마음봉사단 총재 박근혜는 이날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 주재로 한양대에서 열린 ‘새마음제전’에서 “협동단결하여 학교와 사회에 새마음의 정신을 심화시키고 그 뿌리를 깊이내릴 때 우리의 사회정화는 더욱 확실해질 것”이라고 강조함.

-약 155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의 개회선언은 당시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다니던 최순실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 함. 최순실의 이름이 처음으로 언론에 등장한 때이자 최순실과 박근혜가 처음 만난 때로 알려짐.


1979년 6월11일자 경향신문 7면. 박근혜의 오른팔 뒤로 보이는 이가 최순실이다

1979년 6월11일자 경향신문 7면. 박근혜의 오른팔 뒤로 보이는 이가 최순실이다

■1980년 1월 김재규의 항변 “10·26의 한 원인은 최태민과 박근혜의 전횡 때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보충서’에서 “박근혜가 명예총재로 있던 ‘구국여성봉사단’이 많은 부정을 저질렀고 이를 박 대통령에게 직보했지만 묵살당한 일이 10·26 사건의 중요한 동기였다”고 밝힘.


※김재규 항소이유보충서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民情首席) 박승규 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읍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읍니다. 중정본부의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김재규 "10.26 동기 중 하나는 박근혜-최태민 때문"


■1980년 11월 ‘새마음봉사단’ 강제 해산

-신군부는 최태민을 수사함. 전두환의 지시로 수사를 맡았던 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신동아>(2007년 6월호) 인터뷰에서 “(최태민을) 강원도로 보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조용하게 자숙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에 그리 오래 두지는 않았다. 구체적 비리 혐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그가 기업체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확인된 게 얼마나 되는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근혜의 연루 의혹은 없었다”고 말함.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강제해산 당함.

-한편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사후 청와대에서 나온 박근혜는 1979년 당시 보안사령관 신분이었던 전두환에게서 청와대 금고에 들어있던 10억원 중 6억원을 받음. 18대 대선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지적에 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 약속은 지켜지지 않음.


■1981년 이후

-정윤회, 대한항공서 보안승무원으로 취직해 근무했다는 설이 일부 보도에서 제기

▶[머니투데이] "정윤회씨 대한항공 근무 맞다" 보안승무원 역할은?


■1983년 1월 박 대통령, 육영재단 이사장 취임…‘최순실 게이트’의 맹아

-박근혜는 1983년 1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최태민이 육영재단 업무에 관여함.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의 전횡이 입길에 오름. <여성중앙> 1987년 10월호를 보면,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를 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며, 최태민의 5번째 딸 최순실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됐음.


■1983년 이후 최순실 일가, 수백억대 부동산 매입

-<월간조선> 2007년 7월호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은 27살 때인 1983년 서울 역삼동의 대지 149.1㎡(45평)을 샀다고 전함. 또 최태민의 여섯째 딸도 29살 때 남편 서아무개씨 등 3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581㎡(176평)을 사들여 지분 4분의 1을 소유했다고 보도. 이들 부부가 1991년 9월 이곳에 지은 지하 4층, 지상 9층 규모의 건물은 당시 최소 150억원대라고 함.

-최순실은 32살 때인 1988년 7월 2명과 공동명의로 신사동에 661㎡(2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임. 1988년 12월과 1996년 7월에는 공동지분을 차례로 사들여 단독소유주가 됨. 2003년 7월엔 이 땅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건물(ㅁ빌딩)을 지어 지금까지 보유. 주변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이 건물 시가가 160억~200억원대라고 말함(2012년 시점)

▶[한겨레]최태민 딸 순실씨, 강남에 시가 160억~200억대 부동산


■1987년 9월2일 육영재단 직원 농성, 분규 시작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직원 150여명, 회관 앞마당에서 “외부세력이 재단 운영에 개입해 재단 활동이 설립목적에 어긋나게 사기업화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농성. 최태민 목사가 어린이회관을 좌지우지하는 점, 당시 한국아동교육문제연구소와 유치원 등을 운영하던 최순실이 어린이회관이 펴내는 잡지 ‘어깨동무’ 등에 간여한 것에 대한 불만 폭발.

▶[경향신문]박근혜·근령·지만, 그들만의 ‘흑역사’


■1990년 8월14일 박근령·박지만, 청와대에 최씨 비판 진정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박근령 자매의 분쟁이 발생한 것은 “박근혜가 최태민과 지나치게 밀착했기 때문이다”는 주장이 제기됨. 박지만과 박근령은 1990년 8월1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최씨에 대한 진정서를 내며 압력을 넣기도 한 것으로 알려짐. 당시 박근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태민의 전횡 의혹을 일축함.

▶[경향신문]박지만,박근령 1990년 “누나(언니)를 최태민에서 구해주세요” 노태우에 탄원서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90년 11월15일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 사퇴

-박근혜가 영남대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재단 사유화와 부정입학 논란이 겹치면서 국정감사를 받게 됨. 결국 박근혜는 최씨 부녀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시위와 국감으로 드러난 재단 사유화 논란으로 1990년 11월15일 동생 박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고 물러남.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재단에 복귀함.


■1993년 3월

-정윤회,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됨

▶[주간경향]정윤회·최순실 실세설…아니 땐 굴뚝의 연기?


■1994년 5월1일 최태민 사망

-최태민은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경향신문은 부고 기사에서 최씨가 “3공 시절 새마음봉사단의 전신인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로 취임한 이래 근혜씨의 신임을 바탕으로 실권을 휘둘러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함.

-<중앙일보>에 실린 두 문장짜리 부음 기사엔 “최씨는 최근까지 근혜씨의 생활비를 대주며 재산관리인 행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대목이 있음. 최태민이 박근혜의 재산관리인이라면, 그가 생전에 굴렸던 자산은 박근혜의 재산인 셈.


■1994년 8월12일 박근혜 “최태민은 악선전으로 부정 축재자로 몰려”

-박근혜는 이날 5년만에 방송에 출연해 새마음봉사단 최태민 총재와의 관계에 대해 입을 염. 그는 “청와대 시절부터 알았으며 자신의 사회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으나 사회활동단체가 조직되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반대 세력의 악선전때문에 부정 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고 말함. 사회 봉사와 관계된 ‘문화사업’을 하겠다고 밝힘.


[정리뉴스][특집]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1995년 8월 정윤회의 등장

-정윤회, 고 최태민 목사 5녀 최순실씨와 결혼

-정윤회는 1955년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출생 (서울서 출생했다는 설도 있음)

-정윤회는 1974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보인상고(현 송파구 보인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짐

▶[한겨레]성품좋고 과묵한 정윤회…모사꾼 기질 없다지만 용의주도
▶[경향신문]‘비선 실세 논란’ 정윤회, 전 부인에 재산 분할 소송
▶[경향신문][단독인터뷰] 정윤회씨 아버지 “아들은 최순실 말을 듣고 박 대통령이 자신을 멀리한다고 본다”


■1995년 11월13일 최순실의 ‘논문 발표’

-최순실은 육영재단 분규 이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초이유치원을 개설함.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유치원 부설로 ‘민’ 국제영재교육연구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원장을 지내면서 <자녀의 영재성과 영재교육에 관한 부모의 인식 및 실태조사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함.

-같은 해 최순실은 정윤회와 공동으로 서울 역삼동의 대지 354.1㎡(107평)을 사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용 단독주택(19세대)을 지어 2002년 1월 매각.


■1996년 10월30일 정유라 출생

-정윤회와 최순실 사이에 정유라(정유연) 태어남.(국제승마연맹 선수 프로필에 나온 출생일 기준)


■1998년

-정윤회, 15대 국회의원 대구 달성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 입법보조원 활동

▶[경향신문]정윤회 관련 2007년 박 대통령 발언 “98년 선거 때 순수하게 도와줘”


■2002년 5월17일 미래연합 창당

박근혜, 한나라당 탈당 뒤 한국미래연합 창당. 박근혜 총재 비서실장에 정윤회. 정윤회는 ‘문고리 3인방’으로 통하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짐

▶[경향신문][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2) 도덕성과 과거를 묻는다


지난 2002년 방북 후 판문점으로 귀국하는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 대표를 마중 나온 정윤회 당시 비서실장.  출처 : YTN화면 캡처

지난 2002년 방북 후 판문점으로 귀국하는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 대표를 마중 나온 정윤회 당시 비서실장. 출처 : YTN화면 캡처

■2004년~2005년

-정윤회, 강원도 평창 등지에서 땅 매입해 ‘말 목장’ 사업 추진

▶[에너지 경제][단독]이슈 현장 : 정윤회 게이트 진원지, 평창 말 목장을 가다


■2006년 5월20일 박근혜, 신촌 유세현장에서 피습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기 위해 서울 신촌 유세현장을 찾았다가 지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다침. 신촌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입원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최순실이 박근혜 대표를 간호하는 모습을 목격.

▶[한겨레]‘권력의 냄새’ 스멀...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


■2007년 6월17일 “박근혜는 최태민과 딸의 꼭두각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정윤회를 비롯한 최태민 일가가 직권을 남용할지 모른다’는 의혹 제기

-한나라당 당원으로 1997년,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전 총재를 지원한 ‘부국팀’ 자문위원 김해호는 6월17일 “최태민의 로열패밀리는 육영재단을 재산증식의 장으로 이용했고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면서 “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고 주장.

▶[뉴시스]김영주 “MB, 朴집권시 최태민 일족 국정농단 우려했다”
▶[프레시안]박근혜, ‘최태민 파문’에 20억 손해배상 청구
▶[뉴시스]“박근혜는 최태민과 딸의 꼭두각시”...의혹제기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정윤회가 박근혜 후보 비선조직 ‘삼성동팀’ 운영했다는 의혹 제기

-박근혜 후보 “제가 아는 한도에서는 특별히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최태민 관련 의혹은) 실체가 없지 않으냐, 저는 그렇게 알고 있다”, “최순실씨나 최 목사가 결코 육영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

▶[경향신문][정윤회 ‘국정농단’ 논란]정윤회와 ‘문고리 3인’은 누구… 박 대통령 정계 입문 때부터 함께 지근거리 보좌
▶[오마이뉴스]‘박근혜 청문회’냐, ‘최태민 청문회’냐?


■2007년 8월16일 이재오 “검찰, 최순실 재산 밝혀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 좌장격인 이재오 전 의원은 검찰에 최순실의 재산을 밝히라고 주장. 이재오는 “박근혜 후보와 관련된 인물인 최태민 목사의 딸 영생교주 최순실씨 부부의 수백억대 재산이 누구의 차명재산인지 의혹을 밝히라”고 말함.

▶[MBC]이재오 “검찰, 최순실 재산 밝혀야”


■2011년 넥슨, 우병우 처가 부동산 1326억원에 매입

-조선일보는 2016년 7월18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진경준 전 검사장의 주선으로 2011년 경 넥슨에 1326억원에 처가 부동산을 매각시켰다는 의혹을 보도함.


■2012년 12월28일 박근혜·MB 독대 시나리오, 최순실에게 전달

-박근혜 당선인,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만나 오후 3시 비공개 단독회담. 최순실은 회담 시작 전인 오전 10시58분 박근혜·,MB 독대 시나리오를 미리 받아봄. 해당 자료에는 한국 정부가 북한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 접촉했다는 민감한 사안 등이 포함.

▶[JTBC]최순실이 받은 ‘MB 독대 시나리오’…대북 기밀도 포함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최순실, 박대통령 취임식 행사 관련 청와대 문서 등을 사전에 받아봄. 행사 진행 기획사, 인수위 엠블럼, 박근혜 우표 시안까지 사전에 받아보면서 취임 행사 등에 관여한 정황.

▶[JTBC] 인수위 문양에 취임식 우표까지…곳곳 최순실 흔적

▶[JTBC] 취임식 한 달 전, 최순실 파일에 ‘오방낭’ 등장


■2013년 2월 ‘문고리 3인방’ 국정 개입 의혹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정윤회의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정기접촉설 등 국정 개입 의혹 제기됨.

▶[시사저널]박근혜 움직이는 ‘비선 라인’ 찾아라!


■2013년 2월 정윤회 (주)얀슨 대표이사 취임

▶[한겨레]비선조직·재산형성 등 의혹 잇따라


■2013년 5월 문체부, 승마협회 조사 착수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전국승마대회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유연)가 다른 승마유망주에 이어 2위 기록. 정유라측, 심판 판정과 관련해 민원 제기. 상주경찰서에서 심판위원장을 소환하는 등 대대적인 조사나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이 문체부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에게 전화해 “전 승마협회 전무(최순실 측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지시.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은 양측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를 올려 박 대통령의 분노를 산 것으로 알려짐.


■2013년 7월30일 박대통령 저도 휴가

-최순실, 박대통령의 저도 여행 사진을 미리 받아봄. 청와대는 경호상의 이유로 대통령의 저도 휴가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음. 저도 휴가는 박대통령 페이스북에 사진 5장이 올라가면서 대중에 공개. 하지만 최순실씨는 페이스북 업로드 시점인 오후 5시보다 이른 시각에 총 13장의 저도 사진을 미리 받아봄

▶[JTBC] 공개 안 된 박 대통령 ‘저도 휴가’ 사진도 등장



JTBC 뉴스 캡쳐

JTBC 뉴스 캡쳐

■2013년 8월 박 대통령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박 대통령,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부름.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과장을 직접 거론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경질을 지시. 노 국장 좌천. 과장 교체. 체육업무를 관장하는 2차관에 한양대 김종 교수 임명. 김종 2차관은 최씨가 재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

▶[경향신문][단독]2013년 정유라 판정 시비 계기…말 안 듣는 “나쁜 사람” 숙청


■2014년 2월 최순실, 최서원으로 개명…조응천, 최순실 내사

-최순실은 최서원으로 개명했으나 개명 이유는 알려지지 않음. 조응천 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이 정윤회·최순실 관련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짐.


■2014년 3월

-정윤회,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회장 미행했다는 의혹 보도. 정윤회 “실체가 없는 의혹”

▶[시사저널][단독]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2014년 4월8일

-시사저널, 정윤회가 2013년 열린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딸(정유라)을 국가대표로 뽑히도록 승마협회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제기.

▶[시사저널]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한다”


■2014년 4월15일 조응천, ‘강제 퇴직’

-조응천 전 비서관은 총선 전에 팟캐스트 등에 나와서 이날 저녁 청와대의 누군가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통보를 받고 집에서 늦잠을 자다가 세월호사고보도를 접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함.

-최순실은 대통령 자료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을 통하여 직접 받는 식으로 변경함.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7시간 동안 정윤회, 역술인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정윤회가 세월호 침몰 당일 만난 사람은 역술인 이아무개씨로 조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정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16일 오전 이씨의 서울 평창동 사무실에서 그를 4시간여 동안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힘.

-역술인 이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와 만났고, 세월호 구조작업에 대한 우려나 한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짐.

▶[한겨레]‘세월호 의혹의 7시간’에 정윤회, 역술인 만나


■2014년 6월 이후 최순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 관여 정황

-최순실 측근들, ‘민정수석실 추천인 및 조직도’ 문서 자료 받아봄.

▶[TV조선] 최순실, 민정수석실 인사에도 개입했나


■2014년 6월25일

-박지원, ‘만만회’가 정권 실세라는 의혹을 제기, ‘만만회’는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 대통령 동생 박지만씨, 정윤회를 합쳐서 만든 조어

▶[경향신문]야당 “檢 ‘만민회’ 기소, 왜 박관용은 않고 박지원만?”···형평성 문제 제기


■2014년 7월18일

-조선일보, 칼럼서 정윤회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제기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 관련 조선일보 칼럼 전문


■2014년 7월 정윤회·최순실 이혼

▶[경향신문]박근혜의 남자 정윤회, 최근 부인과 이혼


■2014년 8월 끊이지 않는 ‘7시간 의혹’

-가코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행방불명 7시간’ 동안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 보도

▶[이투데이] [종합] '대통령 명예훼손' 가토 다쓰야 1심 무죄 선고


■2014년 9월20일 정유라,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서 금메달

-정유라,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마장마술 종합 단체전) 경기에서 금메달. 한국팀 금메달에 가장 기여를 한 75점 만점에 74.342점을 받은 에이스 황영식 선수와 71.237점을 받은 김동선 선수. 정유라의 성적은 참가자 32명 중 5위인 69.658점.

▶[한겨레]승마선수 정유라의 국제대회 성적을 알려드립니다



■2014년 10월18일 정유라, 이화여대 특례 입학

-2014년 9월에 실시된 2015학년도 수시 전형에서 체육특기자로 지원해 서류전형 통과. 하지만 당시 수시모집 요강에는 ‘원서 접수 마감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 종목 3위 이내 입상자’에게만 지원 자격을 줬음. 정씨는 원서접수 마감일(9월 16일) 4일 뒤인 20일에 금메달을 획득한 데다 종목이 ‘단체전’인데도 이화여대가 서류평가에 반영한 것.

-10월18일에 진행된 면접에선 이화여대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옴.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해당 발언을 부인했지만, 실제로 면접장에서 정유라만 금메달과 선수복을 지참한 것으로 밝혀짐.


■2014년 11월 최순실 대통령 의상 결정

-최순실, 대통령의 일정표를 보면서 대통령 의상 결정. 청와대 2부속실 윤전추·이영선 행정관은 최순실의 지시를 받으며 최씨를 수행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박 대통령, 순방 때마다 최순실이 골라준 옷 입어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문건을 단독 입수해 ‘문고리 권력 3인방’ 정기접촉설,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 유포 등 ‘국정 개입 의혹’ 사실이었다는 내용 보도, 정윤회는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

▶[세계일보] [단독]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


■2014년 12월3일 정유라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

-정유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경향신문][최순실 딸 특혜 의혹]이대 입학 ‘뒷말’에…정유라 “돈도 실력, 니네 부모를 원망해”


■2014년 12월 삼성 승마협회 지원

-2010년 이후 승마 선수단을 해체한 삼성, 4년 뒤 다시 승마 지원 시작. 2015년 3월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삼성 계열사 중에서도 자금조달이 용이한 삼성전자가 승마협회 담당. 승마계 인사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다고 생각”.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 내 정유라 프로필에는 ‘아버지가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했다’ ‘한국 삼성팀 소속’ 명시

▶[경향신문][단독]“권력가진 사람이 (승마협회 맡으라고) 시키는데 삼성이 어떡하냐”
▶[경향신문]정유라, 국제승마연맹 프로필 “아버지 정윤회는 박근혜 대통령 보좌, 삼성팀 소속”



■2014년 12월(추정)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 박관천 경정 “최고 실세는 최씨”

-서울중앙지검은 정윤회 문건 작성자로 알려진 박관천 경정과 박 경정의 직속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 등을 조사하기로 함.

-‘정윤회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관천 경정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검사와 수사관에게 “우리나라의 권력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며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주장. 당시에는 ‘황당한 권력서열론’으로 평가됨.

▶[경향신문]검찰, ‘십상시’ 실체보다 유출 수사에 무게
▶[경향신문]청 “문건 배후 전 공직기강비서관 조응천” 조 “참 나쁜 분들”
▶[경향신문][사설]‘문건 유출’ 영장 기각, 검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동아일보][단독]박관천의 황당한 ‘권력서열’ 강의
▶[경향신문]정윤회·최순실 실세설…아니 땐 굴뚝의 연기?(2014년12월6일)▶[허핑턴포스트코리아]최순실 덕분에 다시 회자되는 박관천의 ‘권력서열’ 강의


■2014년 12월13일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 최모 경위 숨져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아온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이날 숨진 채 발견. 차 안에 번개탄이 피워져 있었으며 최 경위의 손목에는 자해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음. 최 경위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같은달 9일 체포됐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음.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숨진 최 경위와 한모 경위 등에 대해 박관천 경정이 2014년 2월 청와대에서 경찰로 복귀하면서 서울청 정보1분실로 옮겨놓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복사·유출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었음.

▶[경향신문]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 최모 경위 숨져
▶[경향신문]“청와대 회유 받았다” 문건 유출 혐의 한 경위 “자백 제안 거부 다음날 긴급체포”


■2015년 1월5일 검찰 “비선 의혹은 소설”

-서울중앙지검은 중간수사결과발표에서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증권사 정보지에 근거한 허위이며, 문건 유출에 관계된 박관천은 구속기소, 조응천과 유출에 참여한 한 경위는 불구속기소한다고 발표, 검찰은 박지만 미행설 역시 박관천이 꾸며내 박지만에게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

▶[경향신문][비선 의혹 수사결과]검찰, 청 입장대로 “비선 의혹은 조응천·박관천이 쓴 소설”


■2015년 1월9일 검찰, 최순실 소환 검토…유야무야

-검찰은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최순실을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검찰 관계자는 “최씨가 ‘승마협회 사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명백한 전횡 등이 나오지 않으면 처벌은 어렵다”고 말함.

▶[경향신문]검찰, 정윤회 전 부인 최순실씨 소환 검토


■2015년 7월17일 최순실, 독일에 ‘비덱 스포츠’ 설립

-최순실은 미르·K스포츠재단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자금을 세탁하기 독일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 비덱은 독일 슈미텐에서 최씨와 딸 정유라가 함께 설립허가를 받음. 올해 6월 비덱은 현지에 3성급 호텔인 ‘하트슈타인 하우스’를 인수해 ‘비덱타우누스 호텔’로 이름을 바꾸고 운영. 현재까지 최씨가 만든 비밀회사는 10여개가 넘음.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최순실, 비덱 자회사 14개 더 설립했다”



■2015년 10월27일 미르재단 설립

-미르재단은 “한류 확산을 통한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목표로 출범.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한류를 넘어 음식, 화장품, 라이프스타일에서의 한국의 가치를 ‘용솟음’치게 하겠다는 의미로 재단 이름을 용의 순 우리말인 ‘미르’로 지음.

-당시 재단 출범을 알리는 자료는 486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기금 모금을 두고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을 기치로 내건 것에 대한 재계의 화답으로 보인다고 밝힘. 기금을 낸 대기업들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주요 16개 그룹. 재단 설립 당시 문체부 공무원이 출장까지 가면서 재단 설립을 도왔다는 보도도 나옴. 이후 언론 보도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전경련에 지시해 기업들로부터 돈을 모았다는 사실이 드러남.

▶[TV조선][단독] 청와대 안종범 수석, ‘문화재단 미르’ 500억 모금 지원
▶[경향신문]중앙부처·재벌도 쩔쩔…‘갑 위의 갑’ 미르


■2016년 1월12일 최순실, 비밀회사 ‘더 블루K’ 설립

-최씨는 국내에 스포츠 컨설팅 전문기업 ‘더블루K’를 세우고 2월29일 독일에 현지 법인 ‘더블루K’ 설립. 독일 ‘더블루K’는 비덱의 쌍둥이 회사로 여겨짐.

▶[경향신문][단독]‘최순실 비밀회사’ 국내에도 있었다
▶[경향신문][단독]대기업 돈 긁어 재단 만들고…‘비밀회사’ 설립 돈 뺀 정황


■2016년 1월13일 K스포츠재단 설립

-K스포츠재단은 “창조 문화와 경제에 기여하는 스포츠 문화의 토대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설립. 미르재단 설립과 같은 방식으로 380억원을 6일만에 모음. 재단의 첫 사업은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태권도 시범을 연 것. 자체 기획이 아니라 대학 태권도팀을 섭외해 데려와 수백억 기금을 모은 재단의 첫 행사로는 ‘소소했다’는 지적.

▶[경향신문][정국 흔드는 ‘최순실 게이트’]측근이 이사장으로…하루 만에 설립 허가…최순실, K스포츠재단 설립·운영 개입 정황
▶[TV조선][단독]미르·케이스포츠 행사마다 등장하는 박 대통령


■2016년 1월29일 국회 ‘굿판’ 논란

-이날 국회에서 한국역술인협회가 새누리당 이이재 종교위원장에 건의해 굿이 열렸다는 주장이 제기됨. 한시간 가까이 진행된 ‘제2회 병신년 합동 국운 발표회’라는 이름의 굿은 4월 총선에서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기원하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얼어붙은 남북관계 개선을 빈다는 취지. 행사에는 김주호 새누리당 종교위원회 부위원장 이외에 역술인과 도인, 무속인 등 200여명이 참석.

-행사 주최측은 경향신문에 “굿판을 벌였다는 것은 사실무근의 왜곡보도이다. 국회 내부 규정상 음식물 반입이 금지돼 있어 굿 자체를 취소했다”고 밝힘. 이이재 의원은 “지인의 요청을 받고 장소만 제공했을 뿐 구체적인 행사 내용은 몰랐다”고 해명.

▶[경향신문]국회에서 굿(?) 논란, 새누리당 종교위원장 주선



■2016년 2월29일 K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 “최순실 지시로 SK에 80억 요구

-정현식 케이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은 안종범 수석과 최순실의 ‘지시’를 받아 K스포츠재단이 이날 에스케이(SK)를 찾아 80억원을 요구했다고 증언. 최순실은 이 자금을 독일에 있는 최씨 모녀 회사 ‘비덱’이 주관하는 사업에 투자하라고 지시. SK는 비덱이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해외 페이퍼컴퍼니가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급조됐다고 보고 거부.

▶[경향신문][단독][최순실 게이트]‘수백억 모금’ K스포츠재단, 설립 후에도 한 대기업에 “80억 더 내라”
▶[한겨레][단독] “최순실 지시로 SK에 80억 요구…안종범은 확인전화”
▶[경향신문][단독]K스포츠 ‘대기업 80억’ 요구 사업, 독일의 ‘최순실 모녀회사’가 주도


■2016년 3월24일 박 대통령 “에콜 페랑디 안에 한식 과정…의미 큰 일”

-박근혜는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에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학교인 ‘에콜 페랑디’가 한식과의 창조적인 융합을 통해 같이 세계에 진출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국에 요리학교를 세우고, 또 프랑스의 에콜 페랑디 안에 한식 과정을 만든 것은 참 의미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함.


■2016년 3~4월 박 대통령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

-프랑스 장식미술전 개최 문제로 청와대가 관련 보고를 받다가 ‘노태강’이라는 이름을 보고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짐. 당시 노 전 국장은 승마대회 부정 조사 문제로 문체부 체육국장에서 물러나 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노 국장, 진 과장 명예퇴직.

▶[경향신문]대통령 한마디에…문체부 공무원 ‘강제 퇴직’ 의혹


■2016년 4월 지도교수, 정유라에 제적 경고했다가 최순실로부터 ‘폭언’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함모 교수, 결석이 잦고 과제를 내지 않은 정유라에 제적 경고. 최유라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며 지도교수에 폭언. 이후 함 교수는 “물러나라”는 학장의 전화를 받았고 지도교수 자리를 내놓았음. 이후 함 교수는 미국행.


■2016년 4월22일 미르재단, 에콜 페랑디와 ‘양해 각서’ 체결

-최순실의 자금 모금 창구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은 ‘에콜 페랑디’와 ‘한식문화 세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관련 사업을 추진. 한국 전통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의 집’(서울시 중구 퇴계로) 취선관 안에 ‘미르’가 운영하는 프랑스 요리학교와 식당이 들어서고 에콜 페랑디에 한식 교육 과정을 개설하자는 것이 합의의 골자.

-프랑스식 식당이 들어서는 것은 ‘한국의 집’ 정체성과 맞지 않고 미르재단이 취선관 사용료에서도 특혜를 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됨.

▶[경향신문]박 대통령 ‘비선 실세’ 개입 미르재단, ‘한국의집’에 프랑스식당 설립 “이상한 발상”


미르재단의 김형수 전 이사장과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의 관계자가 4월22일 한·불 양국의 음식문화 교류 사업을 위한 MOA(합의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에콜 페랑디

미르재단의 김형수 전 이사장과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의 관계자가 4월22일 한·불 양국의 음식문화 교류 사업을 위한 MOA(합의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에콜 페랑디

■2016년 3~6월 정유라 1학기 과제물 엉망

정유라 수업 참석 대신 제출한 리포트 엉망. 1학기 코칭론 과제물에는 오타와 비문 등이 수두룩. 이경옥 체육과학부 교수는 정씨가 e메일로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네, 잘 하셨네요”,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의 친절한 답장을 하기도.

▶[경향신문]이화여대 교수, 엉망진창 리포트 작성한 최순실 딸에게 “감사합니다”


■2016년 7월 이석수 특별감찰관, 안종범 수석 내사

-대통령 직속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안종범 수석이 전경련과 기업체들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비위 첩보를 입수하고 안 수석에 대해 내사를 벌임. 특별감찰관법에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의 ‘비위행위’(제2조)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 이 내사는 나중에 고발로 이어진 박근령씨의 사기 의혹이나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관련 감찰에 앞서 이뤄진 것.

-이 특감이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과 관련해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보도되자 청와대는 ‘국기문란’이라고 표현하며 사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경질하고 내사는 중단. 특검 관계자는 “단순히 통화한 사실 자체나 우병우 수석을 감찰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라고 본다. 특감이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두 재단을 내사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극도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함.

▶[한겨레][단독] 이석수 특감, ‘K·미르 출연금 종용’ 안종범 수석 내사했다


■2016년 7월18일 진경준 검사장 구속

-‘최순실 게이트’의 뇌관 ‘우병우 게이트’가 폭발한 계기는 진경준 전 검사장이 100억원대의 넥슨 ‘공짜주식’을 받은 대가로 뇌물수수로 구속된 사건이 시발점. 조선일보는 진 검사장이 처가와 넥슨과의 부동산 거래를 주선해준 대가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사장 인사 검증에서 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보유를 눈감아줬다고 보도. 청와대는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을 언급하며 조선일보를 겨냥.

▶[조선일보][단독]우병우 민정수석의 妻家 부동산… 넥슨, 5년전 1326억원에 사줬다
▶[경향신문]청와대 “최순실씨와 인연으로 우병우 수석 임명 등 의혹 사실 아니다”



■2016년 8월3일 이화여대 의류학과, 중국 패션쇼

정유라는 이화여대 의류학과의 계절학기 수업을 신청. 수업과 관련해 중국에서 패션쇼가 진행됐는데, 정유라는 다른 교수들과 함께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도 패션쇼가 열린 시기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이화여대 학생들이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여 최 총장 대신 박선기 이화여대 기획처장이 중국행. 정유라는 중국에 간 후 ‘쓰러질 정도로 아프다’는 이유로 패션쇼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담당 교수인 이인성 교수에게 B학점을 받음

▶[경향신문][단독]최순실 딸 중국 방문 시기에 최경희 총장도 중국 가려 했다
▶[경향신문][단독][최순실 딸 특혜 의혹]해외 동행하고도 패션쇼에 빠진 이유 묻자…이인성 교수 “거의 쓰러질 정도라고 해서…”
▶[경향신문][단독]이화여대, “정유라씨는 교수님이 따로 공지” 특별대우


■2016년 10월19일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사임

정유라에게 입시 및 학사 특혜 제공 의혹 받았던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사임. 사임했지만 특혜에 대해서는 부인. 최 총장 “최근 체육특기자와 관련하여 입시와 학사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경향신문][속보]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사임 “정유라씨 관련 특혜는 없었다


■2016년 10월21일

-정윤회 “최순실 사건, 나와 상관없다… 잘못 있으면 고쳐야”

▶[머니S]정윤회 "최순실 사건, 나와 상관없다… 잘못 있으면 고쳐야"


■2016년 10월24일 JTBC, ‘최순실 파일’ 특종보도

-JTBC, 최순실이 떠난 사무실 건물에 남아있던 태블릿PC에서 박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자료, 회의자료, 취임식 행사자료 등 파일 200개를 입수. ‘최순실 파일’ 특종보도 첫날인 이날은 연설문을 먼저 받아본 내용만 우선 보도. 연설문의 경우 박 대통령의 실제 연설보다 최장 사흘 앞선 경우도 있었음. 연설문 곳곳에선 수정된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글씨가 발견.

▶[경향신문][최순실 게이트]‘박 대통령의 모든 것’ 최순실은 책상서 다 받아보고 있었다


■2016년 10월25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사과, ‘최순실 파일’ 인정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하지만 청와대 비서진 인사 내용 등이 최씨에게 미리 전달됐다는 의혹이나 미르재단 등의 사유화 논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물증 나오자 등 떠밀려 ‘녹화 사과’…‘연설문 유출’만 시인
▶[경향신문]靑 이원종 비서실장 “거취 고심 중···이번 사과문 대통령이 직접 작성”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해 대 국민 사과를 한 후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연설문 유출 의혹’에 대해 대 국민 사과를 한 후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10월26일 “박근혜 하야!”

-대학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짐. 60여개 시민사회단체도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자격을 잃었다”며 대통령 퇴진 촉구. 내각 총사퇴와 각계각층을 아우른 비상시국회의 결성 제안.

-새누리당은 긴급 의원총회에서 야당들이 요구한 ‘최순실 특별검사’ 도입 수용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대학가 ‘시국선언’ 시민단체 “박근혜 하야”…들불처럼 번진다
▶[경향신문]“대국민 사기극” 시민사회단체들 ‘박근혜 퇴진’ 촉구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이원종 “국민 못잖게 피해 입고 마음 아픈 분은 대통령”



학생들은 시국선언 이화여대 학생들이 26일 서울 서대문구 캠퍼스 정문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학생들은 시국선언 이화여대 학생들이 26일 서울 서대문구 캠퍼스 정문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2016년 10월27일 증거인멸 나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확대?

-독일 거처에서 열흘 넘게 자취를 감춘 최순실 모녀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에도 국내외,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의혹의 증거를 지우고 있음.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도주 행각에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특검은 최순실과 일파를 조사함과 동시에 대통령도 조사해야 한다”며 “이번 사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주장.

-최순실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설문 수정은 “신의로 한 일”이며 “국가 기밀인줄 몰랐다”고 주장.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관저에 재벌 회장을 불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면서 ‘협조해달라.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는 생생한 증언이 있다”고 주장.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상대편인 박근혜 후보의 검증을 담당했던 정두언 전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최씨 아버지인) 최태민이 무슨 말만 하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반응을 보였고, 최순실이 그 후계자니까…”라며 “이건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내서가 아니라 그냥 매직이다”고 말함. 터져나오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100% (팩트)라고 본다”고 주장.

▶[경향신문]‘박근혜 검증 ’정두언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고 했잖아”
▶[경향신문][최순실 국정농단]10일 넘긴 최씨 도피 행각…국내외서 ‘증거인멸 작업’ 분주
▶[경향신문]새누리 김용태 “이번 사건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특검서 대통령도 조사해야”
▶[세계일보][최순실 단독 인터뷰] “연설문 수정, 신의로 한 일인데…국가 기밀인줄 몰랐다”
▶[경향신문]국민의당 박지원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 재벌 회장 불러 미르·K스포츠 협조 요청”


전경련 압수수색 검찰 수사관들이 26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전경련 압수수색 검찰 수사관들이 26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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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재·이재덕·박용필 기자 jyj@kyunghyang.com> 

출처:http://h2.khan.co.kr/20161027162800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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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령,지만 남매가 노태우에게 보낸 13장의 탄원서
▲ 1990년 11월 30일 동아일보 실제 기사   ⓒ 동아일보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선데이저널(박근혜 의혹 검증<2> 박근령- 지만 남매가 청와대에 ...)과 동아일보([잊혀진 특보] 박근혜가 남자에게 빠져 정신을 못차리니 구해달라! )보도를 인용하면 박정희의 둘째 딸 박근령(현 육영재단 이사장)과 장남 박지만(현 EG 대표)은 1990년 8월 14일 한 통의 긴 편지를 썼다. 일종의 ‘탄원서’로 수신인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다. 

이 편지에는 고 최태민 목사의 전횡·비위를 주장하는 내용과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십시오”라고 노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편지의 분량은 A4용지 12장에 이른다.

이 편지는 박근령 현 육영재단 이사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전문 필적감정소에 의뢰한 결과, 지난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에서 보도한 박 이사장의 친필편지와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편지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태민 옹호하는 언니 말 듣지 마세요”

특히 편지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서술하는 부분은 눈길을 끈다. 둘의 관계를 박근혜 동생 박근령의 주장대로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언니 박근혜는 최 목사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으니 빨리 구출해 달라”

박 이사장은 편지에서 “(최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박 이사장은 “우리의 소중한 언니를 잃고 싶지 않지만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다”며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각하 내외분 뿐”이라고 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 이사장은 노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한 가지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최 목사에 대한 언니 박근혜의 우호적인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다. 

“최씨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최태민씨를 옹호하는 부탁 말씀)을 단호히 거절해 주시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다고 사료되며 우리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 박 이사장은 “각하 내외분께서 언니인 박근혜를 만나 주신다면, 이 점을 최씨가 교묘히 이용해 우리 언니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 막강한 힘을 오히려 저희 유족 탄압에 역이용 할 것”이라며 “언니의 말 한마디면 최씨는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최태민 목사, 언니의 비호아래 치부”

이어 박 이사장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될 일이 눈앞에 닥쳤다”며 최 목사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했다. 그 분량이 A4용지 5장에 이른다.

박 이사장이 편지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최 목사의 비위와 전횡은 자세하고 다양하다. 박 이사장은 크게 ▲금전 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 훼손으로 나눠 총 18개 항목으로 최 목사의 잘못을 노 대통령에게 고발했다. 

특히 최 목사의 금전 편취는 언니 박근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박 이사장은 적고 있다. 박 이사장은 “최씨는 아버님(박정희)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다”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최 목사는) 유족이 핵심이 된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며 “지금은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오마이뉴스> 등의 취재 결과, 최 목사의 막내 딸 최순실 씨와 여섯 번째 딸은 현재 강남에 수백억 원대의 빌딩을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는 박 후보의 입법 보조원을 지내기도 했다. 

또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욕을 서술한 부분도 눈에 띈다. 박 이사장은 “(최 목사는) 경비원을 언니에게 붙여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서로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들을 수 없으며 전화 대화마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부모님 명예 훼손과 관련 “최씨는 부모님의 유덕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이름만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이고 실제 내용은 최태민 기념사업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며 “언니 박근혜가 대표 이사권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 그 배후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이와 같이 최 목사의 비위·전횡을 주장하며 “금전 편취나 비리 관한 사항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면 되지만, 부모님의 명예 훼손은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최 목사 의혹의 실체 없다”

최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로 가득한 이 편지 마지막에는 ‘박근영·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박지만씨는 1990년 12월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큰 누나(박근혜)와 최 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편지가 실제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90년 12월 당시 <주부생활>을 비롯한 몇몇 여성지는 “박근령씨가 고위층에게 수십 통의 탄원서를 보냈다”고 보도하고 있어 청와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육영재단에 깊이 개입했던 한 인사도 “당시 박근영씨가 직접 탄원를 썼으며, 박근영씨를 돕던 분이 이 글을 다시 정서해서 청와대에 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는 육영재단 운영권 문제로 박근혜 당시 이사장과 동생 박근령씨가 논란을 벌이던 때다. 당시 최 목사는 육영재단 고문을 맡고 있었다. 박근령씨와 숭모회라는 단체는 “최 목사가 박근혜 이사장을 배후에서 조정한다”며 최 목사의 퇴진을 주장했다.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을 동생 박근령 씨에게 넘겼다. 박 후보는 세상에 동생과의 불화설이 나도는 것을 우려해 “건강이 악화돼 심신이 피곤해 물러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박 후보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며 “최 목사는 청와대 시절 새마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1988년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왔을 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과거사’는 최대 취약점 중의 하나다. 최 목사에 대한 의혹은 오랫동안 박 후보를 괴롭혀 왔다. 박 후보는 세상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때마다 최 목사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자료참조:79년 중앙정보부 보고서 '최태민 비리 자료' 최초 공개

박 후보는 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 국민검증청문회에서도 “내가 아는 한도에서 지금까지 최 목사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없다”며 “만약 최 목사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탄원서와 관련 육영재단 쪽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했다. <오마이뉴스>는 수 차례 박 이사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박근령 이사장 비서관을 맡고 있는 문상철씨를 통해 간접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문 비서관은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탄원서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기회가 되면 그때 가서 말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문 비서관은 “박 이사장은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에 무슨 말을 해도 언니 박근혜 후보와 연결되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http://www.amn.kr/sub_read.html?uid=6543&section=sc1&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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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박근혜 ②] 새마음운동 전국조직화...만약 10.26이 없었다면?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죽음. 그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던 1974년 9월부터 10.26 직전까지, 박근혜 대선 후보의 퍼스트레이디 활동 기간은 현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박 후보의 당시 행적은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대한 평가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과거 청와대 안주인에서 미래 청와대 새 주인을 꿈꾸는 최초의 대선 후보,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기간 모습을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  재벌들마저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앞에서 '새마음'을 다짐하던 그 때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사진은 YH 투쟁 당시 마포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다가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끌려 나오는 여공의 모습
ⓒ 1993 <한국현대사 119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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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운동'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학생 조직이다. 젊은 퍼스트 레이디의 '시행착오' 혹은 '잠깐의 일탈'로 보기에는 어려운, 이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그 의도와 치밀함이 학생 조직 구성 과정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새마음운동 학생 조직의 탄생은 1977년 11월 26일 열린 '대통령 영애컵 쟁탈 새마음갖기 전국 남녀학생 웅변대회'가 그 시발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시상식에는 박근혜와 당시 내무부장관 또 문교부차관도 배석하는데, 문교부 역할이 단순히 '자리 보전'이 아니었음이 그 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1978년 3월, 구국여성봉사단이 간행한 '충효례' 책자 16만5000부, 다시 8월에는 '새마음의 결의 실천'이란 책자 19만6300부가 문교부를 통해 전국 학교에 배포된다. '새마음갖기운동의 횃불'이란 박근혜의 친필 휘호가 실린 월간지 <새마음> 창간호도 그해 7월 첫 선을 보인다.

'충효예'라며... 박근혜에게 90도 인사 '연습'

▲  박근혜 후보의 친필, 새마음갖기운동의 횃불
ⓒ 2007년 박근혜 후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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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학생단위 조직이 본격 건설되기 시작한다. 

1978년 6월 시장, 시교육감, 중고등학교 교장, 교사,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및 중·고교생 새마음연합회 합동발대식'이 열린다. 이어 서울, 경기, 강원, 경북, 충북, 전남, 충남, 경남, 전북 등 순으로 학생 단위 조직이 차례차례 만들어진다. 박근혜의 '등판' 역시 꾸준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8년 11월 26일 '전국 새마음 중·고·대학생 총연합회 발대식'을 통해 '새마음 전국구' 학생 조직이 탄생한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목숨을 지키려는 애착만큼이나" 또는 "충효예를 실천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은 풍토" 등 표현으로 새마음운동에 매진할 것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풍토가 실제 어떠했는지는 2011년 6월 8일자 <한겨레>에 잘 나타난다. 1978년 광주 북성중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정해숙(전 전교조 위원장)씨는 기고문에서 교육청에서 참가 교사를 지명했으며, 이를 정식 공문 형태로 하달했을 뿐만 아니라 예행 연습까지 있었다며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행연습에 갔던 직원이 언제 경례를 하고, 언제 자리에 앉는지 등등 예행연습한 내용도 알려줬다. 충효예를 내세운 행사에서 27살(박근혜 후보는 1952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의 젊은 총재가 퇴장할 때 환갑을 바라보거나 넘은 교장·교감·교사·교수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서서 90도로 절을 하도록 예행연습했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대학생 새마음 요원 "중고등학교에서 형님 누이처럼 지도하라"

▲  새마음운동은 '새마음요원' 양성 등 학생 단위 조직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1979년 8월 21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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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해 불가' 상황은 1979년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새마음갖기운동본부'가 출범하고, 또 그해는 '새마음갖기운동 학생의 해'로 규정된다. 이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마음운동은 선도사업이나 장학사업, 그리고 문화행사로까지 확대된다. 대표적인 예가 그해 6월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이다.

"상오 10시 30분 예고 없이 박 총재가 식장에 들어서자 젊은 학생들은 "새마음"이란 힘찬 구호를 외쳤으며 박 총재는 손을 흔들어 이들의 환호에 답했다... (중략) ... 찌푸린 날씨에도 1천5백여명의 새마음봉사단원,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원, 연예인봉사대원 등이 참석, 젊음과 패기로 온통 새마음으로 물결 쳤다." (1979년 6월 11일자 <경향신문>)

또한 당시 <경향신문>은 서울 시내 33개 대학교 새마음봉사단원 750여 명이 참석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학교마다 20여 명 이상의 '박근혜 단원'이 존재했던 셈이다. 실제 박근혜는 대학생 조직에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달 후 나타나는 '새마음요원'들이 그 단적인 예다.

1979년 8월 21일자 <경향신문>은 "전국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제10기 새마음요원 수료식이 거행됐다"면서 "새마음요원 양성은 새마음갖기운동을 더욱 심화하고 이들 요원들로 하여금 새마음정신을 각 시도에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그 목적까지 자세히 전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 개조'가 상당히 치밀하게 시도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당시 수료식에서 박근혜는 "교육원에서 교육받은 대학생 중 뛰어난 학생들이 각 중·고등학교에 나가 형님이나 누이처럼 중고등학생들에게 새마음 지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일종의 활용 방안까지 제시한다.

박근혜의 새마음... 쌍용, 두산, 현대도 '떨었다'

▲  1979년은 재벌들의 새마음운동 러시가 이뤄진 해이기도 했다.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 대회 및 직장봉사대 발대식'이란 이름의 행사에 그룹 임직원들은 대규모로 참가해 '새마음'을 다짐해야 했다. 현대그룹 대회에서 그룹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박근혜(위 왼쪽), 동아그룹 대회 후 그룹 간부들과의 간담회 모습(위 오른쪽), 두산그룹 행사에서 새마음갖기에 앞장설 것을 다짐받는 박근혜(아래 왼쪽), 쌍용그룹 대회에서 '우수 대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박근혜(아래 오른쪽)
ⓒ <경향신문>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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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978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마음운동 조직 건설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다. 전국 각 지역은 물론 중·고·대학생, 교사, 불교계, 직능단체 등 부문별로 방대한 규모의 조직이 구축된 것이다. 이제 '마지막' 조직 구축 대상은 재벌, 그들의 충성도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새마음을 다짐한 곳은 태평양그룹이었다. 1978년 11월 태평양은 새마음 결의 실천대회를 열고 직장봉사대를 출범시킨다. 그 다음은 현대그룹. 1979년 2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회에는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 14개 기업체 임직원 6100여 명이 참가했다고 전한다. 상공부 장관, 건설부 장관, 동자부 장관도 참석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의미심장한 축사를 한다. "사회의 잘못된 점, 불편한 점, 어두운 면들을 불평하고 한탄하기에 앞서 그 어두움을 환하게 하는데 한 몫의 책임을 진 내 마음의 불은 잘 들어오고 있는지 살펴보는 자세가 새마음갖기의 첫 걸음"이라고 한 것이다.

1978년 3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얻어맞으며 공장 밖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72명의 여성 노동자가 연행됐으며, 그 과정에서 50여 명이 졸도했다. 현대그룹이 새마음을 '다짐'한 6개월 후에는 YH 투쟁이 일어난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사실상 '불평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박근혜의 '새마음'을 재벌들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새마음 러시'가 이어졌다. 1979년 5월 동아그룹이 현대그룹의 길을 따랐고, 1주일 후에는 역시 두산그룹이 새마음직장봉사대를 띄운다. 10.26 사건 직전에는 대농그룹과 쌍용그룹이 각각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를 연다. 그야말로 새마음으로 '정경유착'이었던 셈이다.

새마음운동, 만약 10.26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  1977년 육사에 재학중이던 박지만 생도를 박 대통령 가족이 면회하던 날 기념사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정승화 장군(오른쪽),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장군(왼쪽에서 세 번째), 차지철 경호실장(박 대통령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 1992년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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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박근혜의 새마음운동은 매우 거대한 규모로, 동시에 아주 치밀하게 이뤄졌다. 1977년부터 전국에 지역 단위 조직이 만들어졌고, 새마음대회가 열릴 때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연도에서 박근혜를 맞았다. 다음해인 1978년에는 학생 단위 조직이 구축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새마음요원'이란 '중책'을 맡겼다.

불교계도 발벗고 나섰으며, 노동자들도 '새마음봉사대'로 귀속시켰다. 구로공단, 간호원, 버스 안내원 등이 '새마음 대열'에 합류했으며, 이에 재벌들도 수천 명의 임직원을 한 자리에 모아 '화답'했다. 그 대부분 출범 과정에 박근혜는 직접 참석했으며, 그로 인해 장관이나 도지사 등 지자체장의 '개근'도 따라붙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됐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새마음운동을 '유신 공주'가 벌인 '이미지 정치' 혹은 아버지를 조력하기 위한 새마을운동의 '2단계' 정도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를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비록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10.26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새마음운동은 새마을운동에 비견될 정도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박근혜의 정치력 또한 커졌을 것은 자명하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0.26 사건의 동기 중 하나로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 영애의 문제'를 지목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정치적 핵심 자산이 의료보험 도입?

▲  2007년 7월 16일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출판기념회 당시 박근혜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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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운동이 퍼스트 레이디 시절 박근혜 후보의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음은 분명하다. 동시에 당시 구축된 조직이 박 후보의 정치적 재기에 중요한 발판이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9년 10월 27일자 <한겨레>는 "지난 5월 박씨가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재조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며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근화봉사단은 현재 회원이 20여만명이라고 밝히면서 연말까지 50만명을 목표로 조직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시도는 물론 일부 군단위까지 지부가 설치돼 있는데 서울에만도 22개가 있다. 매달 발행하고 있는 기관지 <근화보> 발행 부수는 10여만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새마음운동은 박 후보의 과거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럼에도 그는 2007년 자서전에서 자신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을 '관통'하는 새마음운동에 매우 박한 모습이다. 장학금 지급이나 무료 진료 등 긍정적으로 볼 만한 새마음운동 사례도 직접적인 '연결'만은 피하고 있다.

오히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의료보험 도입 과정을 소개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 있는 동안 내가 공을 들이고 열과 성을 다한 일이었으므로 내게도 큰 보람이었다"고 적고 있다. 새마음운동 대신 의료보험 도입을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운 셈이다. 

하지만 역시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에 실렸던 보도를 모두 살펴봐도 의료보험과 관련한 특기할 만한 행보를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유신 정권의 '주구' 역할을 했던 <경향신문>에서조차 '큰 영애'의 의료보험 도입과 관련한 뚜렷한 '족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약속"이란 그의 친필

▲  1977년 1월 1일, 신문 1면에 등장한 박근혜 후보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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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가 퍼스트 레이디로 보낸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유신 정권 18년이란 시간 탓에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지만, 현직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뤄진 가장 핵심적인 활동인 새마음운동이 '그의 과거'에서 거의 지워져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 출신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남긴 "이 책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약속"이란 뚜렷한 친필이 오히려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은 1975년부터 1979년 10.26 사건 전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이 박근혜 후보가 직접 참석한 것으로 보도한 최태민 목사 또는 새마음운동 관련 행보를 정리한 것이다. 청색 글씨는 청와대 일정.

1975년

05월 11일 기독교 초교파 구국기도대회 - 임진각
05월 24일 구국선교단 군사훈련 퇴소식 - 5019부대
06월 01일 구국선교단 구국연합기도대회 - 대구 제2교회
06월 21일 구국십자군 창군식 - 배재고등학교
06월 22일 나라의 영원한 보호와 발전을 기원하는 기도회 - 대전고교
09월 02일 구국선교단·서울의사회 자매결연식 - 야간진료센터

1976년

01월 27일 구국선교단 헌혈행사 - 헌혈운동본부
03월 24일 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 개원식
04월 29일 구국여성봉사단 발단식 - 유관순 기념관
06월 17일 구국선교단 불우노인 경로대잔치 - 유관순 기념관
09월 16일 구국여성봉사단 천안지부 창단식 - 천안 한일극장
09월 21일 구국단체결연단합대회 - 유관순 기념관
09월 22일 구국여성봉사단 수원·화성지부 창단식 - 수원시민회관
12월 10일 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 기념식
12월 12일 TBC 특별기자회견
12월 17일 KBS 송년특집대담

1977년

01월 03일 MBC 신년대담 
01월 10일 일본 오사카 야마모토 병원장 접견
02월 25일 구국여성봉사단 양부모 결연식 - 유관순 기념관
03월 16일 구국봉사단 경로병원 개원식
03월 16일 새마음갖기 범국민 궐기대회 - 시민회관 별관
03월 25일 경기·인천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4월 12일 경남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마산
04월 20일 충남·대전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대전 충무체육관
04월 28일 전북·전주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전주 실내체육관
05월 26일 전남·광주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광주 실내체육관
06월 03일 부산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부산 구덕체육관
07월 06일 새마음갖기 캠페인 유공자 접견
10월 18일 강원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춘천 강원체육관
10월 28일 충북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청주 실내체육관
11월 26일 새마음갖기 전국 남녀학생 웅변대회 - 서울문화회관 별관
12월 29일 방송 3사 '영애 박근혜양과의 대화'

1978년

02월 22일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 전국대회 - 문화회관 별관
04월 21일 새마음학생회 발단식 - 경기여고
04월 25일 새마음갖기운동 솔선수범 낙도 노인 접견
04월 27일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불교본부 접견
06월 01일 공단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 - 구로공단 운동장
06월 09일 일본 오사카 야마모토 병원장 접견
06월 14일 전국 노인지도자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세종문화회관 별관
06월 19일 부산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부산 구덕체육관
06월 22일 서울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잠실 학생체육관
06월 23일 제주도민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제주시민회관
09월 01일 경기도민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9월 06일 새마음갖기국민운동 부산경남 대법회 - 부산 구덕체육관
09월 11일 경기 초·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9월 21일 강원 새마음갖기 노인지도자 대회 - 춘천 강원체육관
09월 22일 한국간호원보조협회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어린이회관
10월 06일 경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경북체육관
10월 23일 충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충북 실내체육관
10월 27일 전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광주 실내체육관
10월 28일 구국여성봉사단 주관 자연보호운동 - 관음사 계곡
10월 31일 충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대전 충무체육관
11월 02일 경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진주 공설운동장
11월 10일 전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전주 실내체육관
11월 20일 자동차노조(버스 안내양) 새마음 직장봉사대 발대식 - 유관순 기념관
11월 26일 전국 새마음 중·고·대학생 연합 발대식 -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1979년

01월 09일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 접견
01월 11일 구국여성봉사단 전국 시도단장 접견
02월 09일 새마음갖기범국민운동본부 주최 물가 안정 범국민대회 - 서울 문화체육관
02월 27일 현대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장충체육관
04월 06일 새마음장학결연대회 - 서울 문화체육관
05월 22일 새마음학교 수료식 - 새마음본부 강당
05월 25일 새마음갖기운동 자문위원 위촉식
05월 29일 동아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장충체육관
06월 05일 두산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세종문화회관
06월 10일 제1회 새마음제전 - 한양대 운동장
08월 20일 새마음대학생 수료식 - 새마음교육원
08월 23일 새마음종합병원 개원식
08월 24일 새마음갖기운동 자문위원 위촉식
08월 28일 서울시약사 새마음갖기 촉진대회 - 세종문화회관
09월 20일 새마음봉사단 임원반 제1기 수료식 - 새마음교육원
09월 21일 제1회 새마음봉사단 박근혜 총재컵 전국탁구대회 개회식 - 문화체육관
10월 18일 쌍용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세종문화회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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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이 안철수 원장의 최태원 SK회장 구명 운동에 대한 생각을 묻자 ' 그런 것을 우리가 고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철수 원장이 최태원 회장의 구명 운동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시인했다고, 과거가 씻기는 것은 아닙니다.  안철수 원장의 SK 구명운동 관련 내용이 사실 박근혜 캠프에서 안철수 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나오는 이야기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연 박근혜 의원 자신의 과거가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냐에는 저는 의문을 갖습니다. 그것은 박근혜 의원이 지나왔던 과거를 안철수 원장과 같은 잣대로 본다면 그리 떳떳하여질게 없기 때문입니다.



1978년 11월 30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는 동아그룹산하 각기업체 임직원 및 가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마음갖기 결의실천대회및 직장봉사대 발대식'이 열렸습니다. 

새마음이란 말 그대로 새마을운동과 비슷하게 근검,절약,저축 등을 내세우며 하는 사회운동과 비슷합니다. 동아그룹처럼 거대 그룹 임직원과 산하기업체 직원,가족이 체육관을 빌릴 정도로 이런 운동에 적극 찬성했을까요? 이날 행사에는 '구국봉사단' 박근혜 총채가 참석해 격려사를 했는데, 1년 뒤에 무슨 일이 생길까요? 


1979년 5월 29일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는 동아그룹 직장새마음 전진대회에 참석해 장충체육관에 모인 동아그룹 임직원과 가족들을 향해 연설합니다. 

새마음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그룹에서 봉사단이나, 전진대회,결의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룹에서 돈도 안 되는 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한 까닭은 새마음봉사단 명예총재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그것도 탱크를 앞세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서슬이 퍼런 유신정권의 수장이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인데, 대한민국 그룹들이 감히 그분(?)과 그분의 따님이 하는 일에 어찌 적극적으로 돕지 않겠습니까? 그룹차원에서 인력,자금,조직을 총동원했던 이런 모습은 그 당시에는 그리 낯선 일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누가 주도했느냐며, 과연 깨끗한 사회운동의 일환이었을까라는 점입니다. 새마음봉사단이 어떤 조직인가를 알아보려면 최태민이라는 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박근혜양의 그림자로 불렸던 최태민 목사는 '구국선교단','대한구국봉사단','새마음봉사단'을 함께 조직하고 관리했던 인물입니다. 

최태민은 70년대초 불교,기독교,천주교,천도교의 교리를 합쳤다는 '영세교' 교주를 하던 중 '꿈에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근혜가 국모감이나 잘 도와주라고 지시하셨다'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보내면서 박근혜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최태민은 일약 박근혜양의 그림자로 등극했고, 각종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면서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최태민에 관한 수사자료에서 밝혀진 비리혐의만 무려 44건이었습니다. 횡령14건에 2억2135만600원이고(당시 2억원이면 지금의 몇 백억원에 해당) 사기,변호사법 위반,권력형 비리,이권개입,융자 개입 등 권력형 비리라는 비리는 모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중앙정보부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고, 박정희는 직접 박근혜와 최태민을 청와대에 불러 심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최태민을 적극 옹호했고, 박정희는 오히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를 묵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중요하게 봐야 하는 몇 가지 증거들이 있습니다. 

○ 박근혜의 구국여성 봉사대가 과대한 자금을 모금으로 말썽이 나자 박근혜를 불러 '봉사단 활동을 그만하고 시집을 가라'고 했으나 박근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박정희는 최태민을 불러 '문초'를 하면서 봉사단 활동을 접고 청와대 출입을 금지 시켰으나 얼마 뒤 최태민은 다시 청와대에 들락날락했음( 1990년 10월26일 김계원 비서실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 박정희 대통령에게 재혼을 권유하자 '근혜가 시집을 안 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새장가를 갈 수 있느냐'고 했으며, 재혼할 뜻은 있었으나 박근혜 때문에 재혼하지 못하고, 외롭고 울적한 심사를 술로 달래곤 했다.(1990년 10월26일 김계원 비서실장의 동아일보 인터뷰)

○ 김재규 부장은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점'과 관련한 사안이 '10.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었다'고 밝힘 (1980년 1월 박정희 사망관련 항소 이유 보충서 중)

박정희 대통령 측근들은 박정희가 재혼하면서 박근혜를 자연스럽게 청와대에서 내보내려고 했으나 박근혜가 새마음봉사단 등을 통한 활동을 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계속했고,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외로운 삶을 술과 여자로 풀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박정희가 재혼했다면 궁정동 사건은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박근혜를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운의 죽음으로 사망한 감수성이 풍부한 여린 소녀처럼 포장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야심이 있던 여인이었고, 그런 그녀의 야심은 최태민이라는 사람과 합쳐 각종 봉사단 활동과 조직을 통해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는 청와대 금고에서 나온 6억1천만원을 가져간 사람입니다. 그 돈이 재벌에게 나온 정치자금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치자금, 그것도 국민 아무도 모르게 돈이 오고 갔다는 사실은 재벌과 정치가 서로 유착관계를 통해 돈과 이권을 서로 나누고 살았던 삶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안철수 원장은 최태원 SK회장 구명운동을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는 해명과 함께 '이 일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안철수 원장을 향해 박근혜 캠프 김종인 공동선거 대책위원장은 "지금은 세상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으니 '성인(군자)'처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정직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안철수 원장의 재벌 회장 구명운동은 잘못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박근혜 캠프에서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는 가만히 앉아서 유신정권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재벌의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재벌의 도움을 받아 각종 봉사단 활동을 적극 했으며, 이 과정에서 숱한 비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안철수는 재벌을 구제하려고 서명했다고 정직성에 대한 비난을 받고 이를 사과했습니다. 박근혜는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위해 재벌을 동원하고 그들이 바친 돈을 가지고 청와대를 나왔지만, 아직도 떳떳하고, 당당하며 추앙까지 받습니다. 박근혜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공주처럼 자면서 정의와 불의의 잣대를 맘대로 해석하며 사는가 봅니다.


http://impeter.tistory.com/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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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어머니인 육영수가 서거한 다음 해인 1975년에 위로 격려편지와 전화를 준 최태민이라는 목사를 알게 된다,

한국의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와 최태민이 만난 시점은 1975년 3월 6일 이라고 한다

이후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서 기업인을 자신이 운영하던 구국봉사단의 운영위원으로 위촉하고 이들로부터

1인당 2천만~5천만원의 입단 찬조비나 월 200만원의 운영비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박정희가 대통령이었을 당시 공보비서관을 지낸 선우영은 2005년 11월 월간조선의 인터뷰를 통하여

1977년 9월 12일 밤 박정희가 물의를 일으킨 최태민을 거세하고'최태민과 관련된 구국봉사단도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자신의 비망록을 공개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는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판결을 받았고,김재규의 변호인은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항소이유서' 외 '항소이유 보충서' 를 군법회의 측에 제출하였다, 이 두 서류에 992자 분량으로 최태민 관련 내용이 작성되어 있다,

김재규 측은 10.26 사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로 최태민을 거론하였고, 김재규 변호인 항소이유서의 밝힌 최태민 관련 전문은 아래와 같아

피고인 (김재규 본인)은 1975년 5월 구국봉사단 총재로 있는 최태민이라는 자가 사이비 목사이며 자칭 태자마마라고 하고 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이 있는데다 여자들과의 추문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이런 일을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더니

박 대통령은 '정보부의 태도를 보고 놀랐으며, 대통령은 큰딸인 박근혜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나 근혜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여

대통령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사 후에 최태민이란 자를 총재직에서 물러나게는 했으나 그후 알고보니 근혜가 총재가 되고

그 배후에서 연전히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하게 해야 합니다, 란 건의를 받아드리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재규 변호인은 '항소이유 보충서' 에서 아래와 같이 최태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구국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데,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대상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대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 박승규본인은 백관현 당시 안정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하게 한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헤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김재규 측에 이러한 증언과 관련하여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되어 최태민을 수사를 하였던 박광현은 김재규가 10.26의 명분으로 주장한

최태민 사건은 김재규가 억지로 10.26의 명분으로 주장하였을 뿐이라고 증언하였다,

이후 최태민은 활동이 문제 삼아져서 1980년 초 신군부에 의하여 활동을 못하도록 잠시 강원도로 보내졌다,

1982년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 사장에 취임하였고, 최태민도 육영재단에 합류하였다,이후 박근혜와 최태민은 함께 1989년 육영수를 추모하는

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하였고, 박정희와 육영수를 추모하는 월간 신문인 근화보도 발행하였다,

박근혜와 여동생인 박서영과의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박정희, 육영수 숭모회에 따르면 다툼의 원인은 최태민이 박근혜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한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당시 육영재단의 간부는 1987년 9월 2일 어린이회관 노조원들이

외부세력 물러가라며 1주일 동안 농성하였던 것은 최태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또 '특별한 직책도 없으면서 육영재단 운영을 좌우해온

최태민을 싫어하면서도 '박근혜와 막연한 관계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를 펴지 못하여다'고 한다,

이에 박근혜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 퇴진 기자회견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최 목사는 1988년 박정희 기념사업화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이 때 박근혜의 여동생과 남동생인 박서영과 박지만은 최태민이 언니인 박근혜를 속이고 있으니 구해달라며,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최태민은 1994년 사망하였으며,

이후 박근헤는 언론에서 최태민에 대하여 '저에게는 고마운 분' 이라며 두둔하였다,

한편 박근혜 관련 의혹을 파헤친 '안철수등의 한판 승부-박근혜 벗기기'

(이상윤 저, 높은새 출판사 ISBN 978-89-93989-04-5)의 박근혜 남자문제편에 따르면,2011년12월 현재 당시 박근혜와 최태민 관련을 조사했던

중앙정보부 백광현검사와 신모 수사관은 살아있다고 한다.

박정희 박근혜 최태민



독재를 암살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독재자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 차지철 암살하는 재연 김재규



마지막 모습 집행직전 김재규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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