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에 대한 이해와 오해

2012. 3. 5. 월요일
히야신스님

작은 진중권은 작은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작은 진중권은 작은 트위터를 매우 사랑했답니다.

작은 세상 안에서 웃고 떠들며 놀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작은 나꼼수팬들이 날아와 작은 트위터 타임라인을 어지럽혀 버렸어요.

작은 진중권은 너무 슬펐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작은 진중권은 작은 산을 넘고…

작은… 계곡을 건너서…

작은 떡갈나무를 타고 올라가…

작은 나꼼수팬들의 작은 배때지에 하나하나 독설을 꽂았답니다.

씨발 누구든 작은 진중권을 건드리면 좆되는 거예요.

아주 좆되는 거야.

참조자료

진중권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요즘에는 나꼼수에 대한 비판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니편 내편 없이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아니 애초에 니편 내편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깔 거리야 가카 쪽에 더 많은 게 사실 아닌가?

나꼼수를 이다지도 열심히 까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그는 왜 이러는 걸까?

최근 트위터에서 크고 작은 전투들은 제외하더라도,

진중권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황우석, 심형래 사건이 있다.

그 유명한 황빠, 심빠 논쟁 외에도 진중권이 전투를 벌인 일은 큰 것만 봐도 이렇다.

서울시장 후보논쟁 : VS 강준만

진보정당 노선논쟁 : VS 김규항

곽노현 논쟁 : VS 시민단체 등

나꼼수 논쟁 : VS 나꼼수 출연진 등

부러진 화살 논쟁 : VS 영화팬 등

강준만 교수와는 안티조선운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김규항 씨와도 '아웃사이더'를 함께 만들었으니 동지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논쟁이 벌어지자 그런 그들에게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자기편 감싸도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중권의 소명의식

그가 최근에 입진보니, 관심병 종자니 하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다.

본지 UMC 인터뷰중에서(링크)

" 마 – 진중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얘기 했는데, 그 부분을 좀 더…(^m^)

U – 누가 얘기 했더라. “하루 종일 트위터만 하면서…”, 이런 얘기, 너무 공감되서 죽을 뻔 했어요. 다른 걸 좀 하지?

이거는 논리적인 추론은 아니구요. 사람 몇 만나 보니까, 인터넷에서 글 써가지고, 그것도 하루죙일 들여다 보면서 글 써가지고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얻어내려는 거. 이렇게 얘기하면 “난 그런 거 얻어내려 한 적 없는데?”라고 얘기하겠죠. 그런데 이게 리플, 모바일 이전 웹시대에 리플이라는 게 있고 사람들이 그걸 이용했던 제일 중요한 심리적인 기저가 그거거든요. 불특정 다수가 본다. 사람들에게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걸로 인해서 어떠한 respect (존중, 존경 – 필자 마사오 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근데 그럴려고, 하루죙일 애쓰는 사람 치고 저는, 음…실제 세상에서 쓸모 있는 새낄 본 적이 없어요. 한 명도. "

최근에는 트위터로 종일 입씨름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런 말을 들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편내편 없이,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비판하고야 만다.

그 정도레벨이라면, 트윗 한 줄, 댓글 하나까지 답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일일이 대응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그 결과 팬도 많지만, 그보다 많은 안티들이 있다.

그 주위에는 오랜 동지라고 할만 한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약간의 우울증도 생겼다고 밝힌 바 있고, 경비행기를 타면서 소일하는 것도 팬도 안티도 없는 하늘이라는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외롭고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투철한 소명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편에 구애 받지 않고, 잘못된 건 비판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소명이자 그의 역할이다.

우리사회가 이런 투철한 정신을 가진 지식인을 가진 것은 감사할 일이다.

입진보니 뭐니 하는 그에 대한 비판은 절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글쟁이는 글로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또 불과 몇 년 전 촛불 정국 때 안경 깨져가면서 거리를 누볐던 것도 잊지 말자.

그런데 최근의 행보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의 전체적인 판단은 일리가 있다.

투표소 변경 - 선관위 디도스 조작 - 디도스 공격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벌이는 위험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투표의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이 석연치 않은 해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점점 의혹은 커져가고 있다.

무조건 음모론적인 접근은 피해야 겠지만, 이 나라는 농협의 해킹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버젓이 공식발표한 나라가 아닌가?

조금의 의혹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파헤쳐 보는 것이 당연하다.

진사마는 이와 관련한 트위터상의 토론과정에서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무지한 면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명백히 보고서를 오독하기도 했다.

(참고 : 트위터에서 본지 필진 '춘심애비' 님의 진중권에 대한 반박)

선관위 서버 디도스 공격 조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으므로, 그럴 리가 없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는 가장 큰 적은 언제나 선입견과 오만이다.

적어도 기술적인 문제의 분석에 있어서는 좀더 겸손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에 조지아 공대 교수의 트윗을 블록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가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의 말대로 어떤 시스템이든지, 내부에 오류를 수정할 피드백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오류보고를 선입견이 중간에서 차단하고, 용케 보고가 돼도 무시해버리니, 자동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걸 비판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나꼼수에 대해서는 약간 균형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선입견과 오만에 사로잡혀 조그마한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왜 균형을 잃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걸 나꼼수에 대한 질투 때문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외로운 길 묵묵히 가고 있는 그의 행보를 볼때, 질투를 느낄 이유가 없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나꼼수로 대변되는 흐름과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

내가 진사마의 머리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아래의 글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이글의 목적은 진중권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쓸데없는 오해는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본격 진중권 쉴드 쳐주는 글이다. (까는 것 처럼 보인다면, 오해입니다. 오해예요.)

진중권의 글쓰기

진중권과 생각을 같이하는 몇몇 논객들이 최근 팀블로그를 하나 꾸렸다.

리트머스 : http://blog.ohmynews.com/litmus/

그들의 글쓰는 방식도 나꼼수로 대변되는 흐름과 큰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세계관 자체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는 대중의 언어로, 쉽게 얘기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진중권은 어렵게 얘기하는 것이 목표처럼 보일때가 있다.

그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을 쓰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촘스키는 진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의자위에 있는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참~ 쉽죠잉?

즉,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는 말이다.

글이 복잡하고 어렵다면, 글쓴이가 자기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진실되지 못한 글이라는 증거이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에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표적인 진중권 키드인 한윤형의 글을 보면서였다.

처음에는 그 글을 보고 글을 못 쓴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좋은 글이란,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쉽게 전달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윤형의 글은 내 기준으로 보면, 별로 좋은 글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 참 글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심하게 글을 잘 풀어갔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2

댓글란을 한 번 읽어보자.

가끔 글이 어렵다는 지적은 진중권, 한윤형 뿐만 아니라, 이택광 등의 블로그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진중권과 패밀리라고 일부러 어렵게 쓰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이것은 세계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쉽게 쓰면 좋겠지만 이건 부차적인 문제이고, 최대한 정확하게 쓰는 것이 그들의 우선적인 목표이다.

사실, 쉽고 간결하게 쓴다는 것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결하다는 건 정보를 선택한다는 것이고, 버려지거나 생략된 정보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다.

반면 정확하고 상세한 전달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다소 장황해지는 면이 있다.

진실된 글을 쓰면 그만이라지만, 현실세계의 진실이란 때로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가?

그러다 보니, 간단하게 보이는 얘기도 온갖 외국이론과 학자가 등장하고 아주 난리가 날 때가 있다.

그릴 그림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외국이론 소개하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 식으로 끝날 때도 많다.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표현하려는 겉멋인가?

이건 단순히 겉멋이라기보다는,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로 이해한다.

진중권과 엘리트주의

흔히 진중권을 엘리트주의로 몰기도 한다.

반면 트위터에서 맨날 진흙탕 싸움이나 하는 그가 엘리트주의라니 당치 않다는 반박도 있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면 그런 경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지적인 엘리트와 대중을 철저히 구분해 생각하고, 대중을 비이성적이고 단순하다고 바라보는 듯하다.

"김어준의 말은 ‘너희들은 경쟁력이 없다’는 시장의 자신감에 흠뻑 젖어 있다.

문제는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문장은 대중과 공유하는 그 코드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

그의 말대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순간, 대중은 다시 민주당/한나라당의 이진코드에 갇힐 것이다.

‘이성이 감정을 이긴 적이 없다’는 노골적인 반지성주의는 그러잖아도 이성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한국의 대중을 영원히 피/아, 호/오의 이진코드에 가둘 것이다.

피아나 호오의 이진법이 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간단하다. 그 복잡한 세상을 단 1bit의 용량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닥치고 정치’, ‘쫄지마 씨바’의 단순한 세계에서는 김연아와 인순이까지 ‘적’으로 분류한다."

- [진중권의 아이콘] 언어의 착취 중-
http://goo.gl/hlcSy

그는 나꼼수 열풍을 단순한 사고에 빠진 대중과 이를 간파한 김어준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엘리트와 대중을 철저히 구분해서 바라보고, 대중의 판단력을 철저히 불신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엘리트 주의가 아닐까?

트윗에서 진흙탕 싸움을 매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정도 되는 논객이라면 굳이 트윗 한 줄, 댓글 하나하나까지 답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찌질한 트윗 하나라도 일일이 대응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은 엘리트로서의 소명의식 때문이다.

죽비로 후려치듯이 대중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주려는 것이 아닐까.

이것도 엘리트주의와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엘리트주의가 꼭 나쁘다기보다는, 근본적인 접근방식 자체가 나꼼수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꼼수는 스스로 잡놈이라고 부르면서,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차렷자세로 어려운 용어를 풀어놓곤 하는 진보진영의 대화방식에 대한 문제의식도 엿보인다.

반면 진사마에게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음모론

진중권이 나꼼수의 많은 주장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도 어쩌면 세계관의 차이가 아닐까.

그는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는 편이다. 학자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디도스 공격은 확인된 사실이고, 한나라당 의원이 헌법기관을 테러했다.

이것에만 집중을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10.26 부정선거라는 틀로 전선을 확대했다가, 입증에 실패하면 어쩔건가?

이것이 그의 입장인 듯하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span style="font-size:16px;">

" 쉽게 말하면 1억짜리현찰을 내다버리고,

부도업체에서 발행한 10억짜리 어음을 선택한 거에요.

미련한 짓이죠. 거기들 낚여서 지금 뭔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퍼득퍼득… "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석연치 않은 정황과 해명들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므로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확인된 최소한의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또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개연성이 있는 또다른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진사마는 정론과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나꼼수가 전선을 확대해서 오히려 포커스를 흐릴 수 있다는 전술적인 판단과 충고를 할수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나꼼수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집중하는데, 이것도 우리사회에서 누군가는 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진사마 입장에서 이게 못마땅할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음모론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유연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균형 감각과 유연성을 잃은 이유는 질투 등 개인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세계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연대의 가능성

나꼼수팬들은

나꼼수 까지 마라.

니들은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말하고 있고

진중권 팬들은

가카만 까면 그만이냐, 그 이후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

라고 반론하고 있다.

일단,

가카와 가카 같은 놈들을 끌어내리고 보자. 다음 문제는 그 이후에 고민하자 vs 가카 끌어내리고 나면, 좋은 세상 오는가? 어떤 게 좋은 세상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답은 없고, 각자의 세계관 차이라고 말할 수밖에.

1920년대 독일의회의 제1당과 제2당은 사회민주당과 독립사회민주당이 차지했다.

6대 의회만 빼고는, 두 개의 사회민주당의 의석수가 나치당에 미치지 못했던 때는 없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나치의 암흑시대를 막는 데 실패했다.

이런 불행한 일이 한국에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MB 진영(이라고 치고…) 내에서의 세계관과 시각차이를 넘어선,

지속가능한 녹색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나꼼수를 까거나, 또는 나꼼수를 빨거나

진중권을 까거나, 또는 진중권을 빨거나

다 좋지만, 이를 넘어서는 연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히야신스님

http://www.ddanzi.com/blog/archives/71257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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