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5. 수요일
아하스

정답은 하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뿐이다. 여기에 어떤 타협도 없다.


이 합의가 빠지는 순간 연대는 주제없고 소재없고 의미없는 야오이가 된다. 정치를 한갖 정치욕에 빠진 야동 수준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당장 석패율제 합의를 철회해야 한다.


석패율제는 일단 족보가 없는 제도다. 일단 ‘석패’해서 아까우니 붙여준다는 취지를 실제 제도로 구현시켜 놓은 곳은 일본만이 유일하다. 그나마 그것도 일본이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꾸면서 생길 급격한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안다. 독일이 석패율제? 웃기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는 있겠지만 제도 자체가 그에 초점을 맞춰 도입된 것이 결코 아니다. 독일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아까운 낙선자가 아니라 의석 구성의 비례성이다.


선거제도의 핵심은 내가 알기로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대표성. 다른 하나는 비례성이다.


대표성은 뭐냐. 과연 당선된 저 놈이 우리 지역민들의 의사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다. 자연히 해당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득표를 했는가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여기서 중대선거구제가 걸리는데 대표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10% 미만의 지지로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될 수 있기에 이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비례성은?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집합이 국민 전체의 의사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다. 각 지역마다 당선되었다고 올라온 사람들을 모아봤더니 극단적으로는 1개정당이 전 지역을 석권한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결과를 그 나라 국민 전체가 여당을 100%지지한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간단히 줄여 대표성이란 선거구 개별단위의 대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비례성이란 선거구 전체국면의 대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가까이서 봐도 미인이고 멀리서 봐도 미인이어야 진짜 미인 아니겠나.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대의란 큰 뜻이란 의미가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할 때 그 대의다.


굳이 내가 설날연휴에 딴지에 접속해서 글을 싸게 만든 문제의 기사다.


‘문재인, 석패율 조건부 찬성 선회…야권 논쟁 재점화’


아주 귀찮게도 문재인 트위터까지 디벼야 했다. 기사만 가지고는 대체 무슨 뜻으로 석패율제 지지발언을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작 트위터까지 가 봤지만, 기사 내용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문재인이 석패율제 도입의 근거로써 제시했다 볼 수 있는 문장이라고는 “석패율제가 진보정당엔 혜택없다거나 양당의 기득권유지란 주장은 근거없습니다.과거선거에서 10% 이상 득표로 선전한 민노당 낙선자가 부산,광주,전남,대구,인천,경기등 전국각지에 많았습니다.선전만하고 늘 낙선하는 이분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뿐이다.


그런데 근거로써 제기된 위 가정은 말이 안된다. 과거 선거에 일찍이 석패율이 도입되어있었다 할지라도 10% 이상 득표한 민주노동당 후보자라 해서 부활하는 일은 없다. 당연하게도 민주노동당이 획득할 비례대표의석의 숫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 지역구 낙선자들이 비례대표로 돌아올 수는 있다. 다만 그 채워질 자리를 위해 강기갑이나 이정희 의원같은 다른 비례대표 의원들이 자리를 비워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낙선한 지역구 의원이 다시 당선된 것이 되면 지역구 활동에 도움이 되고,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틀린 생각이다. 부활하더라도 엄연히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이다.


이 조삼모사 같은 제도를 고장난 라디오마냥 일제히 이 시점에서 반복하고 있는 데에는 당연히 그 이유가 있을게다.

일단 내걸어 놓은 명분이라는 것이 그 놈의 ‘지역주의 완화’다.

나는 지역주의 완화라는 명분이 노무현이 무덤 속에 들어간지 3년이 지난 2012년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게 한심할 따름이다. 애초에 노무현 스스로 부산에서 헤딩하고 있을 때를 지역주의 타파의 기점으로 삼는다면 이게 대체 몇 년이냐. 십 년이 넘었다.


그래. 그건 인정하자. 지역주의 극복 중요하다. 근데 그 놈의 지역주의 완화라고 하는 목표는 도대체 언제 달성되는 거냐. 어떤 기준을 만족시켜야 우리나라가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그 지겨운 (지역주의로 재미를 가장 많이 본) 민주당 놈들 스스로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사골국물 끓여 먹듯 우려먹는 지역주의 장사를 언제까지 할 텐가 이 말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장관이 되었을 때? 이미 노무현이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미 노무현이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이미 친노가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정당이 여당이 되었을 때? 이미 열린우리당이 했다.

자,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지역주의 극복의 증거로서 시효를 다했다면 대체 어떤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에 기반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이 목표의 비현실성과는 별개로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민주당이 득템한 배지 수 사이에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한나라당이 100억 차떼기를 하거나 말거나, 전당대회에서 금품을 살포하거나 말거나, 선거만 되면 한나라당을 밀어줄 사람들이 전국 평균 20%~25%는 존재하며 그 중 상당수가 경상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런 사람들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의원 몇몇이 경상도에서 당선된다고 하여 생각을 바꾸기라고 한단 말인가?


아직도 그리고 이 시점에도 지역주의 극복 외치고 앉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이 중요한 줄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그런 식의 투표를 하지 않기에 의미가 없다고 봐야하고,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겐 어차피 소 귀에 경 읽기가 될테니 의미가 없다고 봐야한다. 가까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정권을 잃어버린게 지역주의 때문이었나. 노무현 정권의 실정 탓이었다. 그런 연고로 기껏 설정한 아젠다라고 하는게 또 다시 ‘지역주의 극복’이라면 이런 후안무치도 따로 없다는 게 내 생각의 골자다. 요게 반성한 것이고 고민한 것인가? 이래놓고 진보정당 스스로 아깝게 떨어지는 후보들에 대해 고민이 없냐고? 허허. 참자.


보다 본질적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 지역주의의 극복에 있어서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을 지닌 유권자가 사라지는 것을 지역주의 극복의 기준을 삼겠다면 그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미안하지만 그 사람들이 뜻을 바꾸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걸 기다리는 게 더욱 효과적인 자세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예측을 떠나서 한 번 다르게 보자. 그런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욕을 해주건 간에 그들은 그들 스스로 참정권을 지닌 국민의 한사람으로 생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투표 취지가 특정한 선거제도에 의하여 무위로 돌아가거나 그 뜻이 축소되어 대의된다면 그 제도 또한 잘못된 것이고 위헌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등장한 가스통 할배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면, 그 생각이 그르다하는 비판과는 별개로 그 요구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무마시켜버릴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제도라면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촛불시위를 해도 막혀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나는 그런 것을 꿈꾸지 않는다. 고로 그런 한계는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에서 결정되는 한계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그 자체의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새로운 진단기준은, 지역주의 투표가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에 대항하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투표 하나하나가 지역주의 몰표에 묻히지 않고 사표가 되지 않고 제 몫의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상태가 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봐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비례성의 원칙을 말함이고 이걸 실현하는 것은 다시 말하는 것이 아주 졸라 귀찮지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쉽게쉽게 얘기하는 몇 마디에 이런 장문의 글을 쓰느라 정말 귀찮지만,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다. 왜 정치인들 중 일부가 부득불 석패율제를 하려고 하는가. 나 같은 놈도 금방 생각하면 조삼모사 밖에 안된다는 걸 아는데 지역주의 완화에 공감이니 어쩌니 하며 이걸 어떻게든 이쁘게 포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가.


글 처음에 대표성이니 비례성이니 했던 얘기를 다시 상기해주었으면 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결코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소선구제에 의하여 특정정당의 대표력이 과대평가 되는 곳이다. 그 특정정당이야 뻔하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다. 본래 그들 스스로 대의할 수 있는 권력 이상을 가져가고 있다. 여기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써 개혁을 얘기하면 그 양 집단이 가진 권력이 축소된야만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게 뭐가 힘들겠는가. 그런 건 양당이 합의만 하면 통과되는 거다. 가령 박근혜와 문재인이 결심하는데 그걸 소속 정당의 누가 거부할 수 있는가. 거부해도 어차피 공천은 없다.

그런데 석패율제는 어떠한가. 누가 주도해서 이 합의를 이끌어나가고 있는가. 그 누구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에 합의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만 나오고 있을 뿐. 문재인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석패율제가 중진 구제용이란 주장은 좀 웃깁니다.생판 안되는 지역에 무슨 중진있나요? 늘 떨어진 중진 있다면 구제해줄만하죠. 전여옥,나경원 구제 주장은 황당합니다.”


당연히 누구라고 특정할 수가 없다. 특별히 총대 맨 사람도 없다. 그저 암묵적으로 묵묵히 조용하게 진행될 뿐이다. 이게 바로 기득권 안에서 침묵의 카르텔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저런 변명에 중진의원 이름 아무개를 콕 찝(을 수도 없겠지만)어서 얘기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못해 현재 양당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석패율제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라도 들어본 사람? 석패율제는 실체도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아깝게 패한 것을 구제한다는데 도대체 그 ‘아깝게 패했다’는 것의 판단기준이 대체 뭔가. 있어도 그게 어떻게 원칙이 될 수 있나. 내가 떨어지면 무조건 아깝고 남들이 1%차이건 0.1%차이건 별로 안 아깝겠지. 일단 진보정당들 맹목적이니 무책임하다느니 딱지 씌워서 밀어붙여서 석패율제 도입하고 나면? 이번 총선에서 2등으로 대거 탈락하실 분들은 수도권 한나라당 후보들이 8할이다.


그들이 일제히 경상도로 내려가 아깝게 탈락했다고 징징거리며 선동하고 다니면 어떨까? 억울한 놈이 한나라당에만 있는 것도 아닐테니, 훈훈하게 낙선의 아픔을 서로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중대선거구제로 방향이 틀어질게다. 아니면 슬그머니 비례대표수만 늘리거나. 원래 가고자 했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빠이빠이. 그 때도 한나라당과 합의니 현실이니 핑계대면서 민주당은 빠질테고 말야.


그래서 이 정치포르노를 까발리고 마음껏 비웃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민주당 너희들이 무슨 정치개혁을 하고 싶겠니. 한나라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천년만년 해먹으세요. 민주화 운동 훈장달고 권력놀음으로 만회하면서 행복하시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올해에 연이은 총선과 대선은 다시 없을 기회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바꾸는 데 있어서 정말 절호의 기회다. 민주당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지고 야권의 다른 정당들과 성실하게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이 다시오기 쉽겠는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말… 이명박 다음에 삼무현 오고 그 다음 다시 삼명박이 오고 나서… 말하기도 싫다.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려면 총선과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대선은 박근혜 지지율에 1%만 초과하면 된다. 하지만 총선은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할수록 좋다. 과반이 필요하면 과반이 되야 하고, 개헌선이 필요하면 개헌선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왠 석패율제? 석패율제 도입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윈윈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왜 필요한가? 민주당이 여유가 넘치다못해 오지랖이 넓기도 넓은 것 아닌가? 비단 인간미가 넘치는 것은 정연주의 무죄판결을 축하한 최시중 만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무척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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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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