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호선 지하철의 모든 진실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간간히 터져 나오는 진실에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서울시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노비문서와 같은 데다 떡하니 서명을 했을까요?
아니면 시민의 이익은 안중에 없었고, 다른 데에 정신이 몽땅 팔려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저녁 KBS 9시 뉴스는 9호선 지하철 민자사업계약의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왜 서울시가 사업자측에 당시의 평균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최소수입보장을 약속했느냐입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그 당시 다른 민자사업들은 최소수입보장률이 대체로 4-5% 수준이었답니다.
그러나 9호선의 경우에는 15년 동안 8.9%라는 파격적인 최소수입보장률을 약속했답니다.

과연 무슨 이유에서 그런 파격적으로 높은 수익을 약속해야만 했을까요?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데, 혹시 알고 계신 분 있습니까?

두 번째 의문은 그 사업과 관련되어 턱없이 높은 금융이자율이 적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선순위채권에는 7.2%, 후순위채권에 15%를 지급하도록 계약되어 있다네요.

KBS의 보도에 따르면, 그 당시 지방채의 이자율은 4% 수준이었답니다.
왜 9호선 사업자에게만 그렇게 예외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는지 도통 모를 일입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로 인해 수많은 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고작 5% 정도의 이자율에 끌려 저축은행에 예금했다가 일생 동안 저축한 걸 모두 날려 버린 게 아닙니까?
민자사업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 받아가는 7.2%나 15%의 이자율이 어디 동네 개 이름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서울시가 무슨 돈을 떼어먹는다고 15%라는 어마어마한 후순위채권 이자율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굴욕적인 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민의 혈세를 퍼줘 사업자의 배를 불려야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바에야 어떻게 그런 불리한 계약에 서명을 했을까요?

나에게 8.9%의 수익률을 보장해 준다면 지금까지 저축한 돈을 몽땅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서울시가 15%라는 어마어마한 이자를 지급하는 후순위채권 사라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왕창 사고 싶구요.
나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 생각일 게 분명하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최근 신문 보도를 읽고 아시겠지만, 9호선이 주장하는 손실이 대부분 지급이자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닙니까?
사업자들은 앉아서 이자 챙기고 있는 과정에서 사업 손실 나니까 요금 올려달라는 말이 나오는 거죠.

KBS 보도에 따르면, 이 계약은 (30년 후인) 종료시점까지 변경되지 않는다는 규정까지 달려 있답니다.
노비계약도 이런 굴욕적인 노비계약이 따로 없습니다.

차제에 재협상을 해서 계약 내용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이거 쉬운 일 같지 않습니다.
자선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계약서에 보장된 이득을 순순히 포기하려 하겠습니까?
소송을 걸고 난리를 치겠지요.
(소송을 하면 사업자가 쉽게 이길 거라고 봅니다.)

이번에 요금 올렸다고 사업자를 욕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 욕할 필요 없습니다.
사업 하는 사람이란 당연히 더 많은 이윤을 올리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민들의 이익을 헌신짝 내던지듯 팔아먹은 서울시 친구들을 욕해야 하지요.

오늘 뉴스를 들으며 가장 황당했던 부분은 9호선 전체 건설비 3조4천5백억원 중 민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1/6 수준인 5천6백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고작 5천6백만원의 민간투자 유치하면서 그 높은 최소수익을 보장해 주고, 그 높은 이자를 지급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의 지방채 이자율이 4% 수준이었다면 5천6백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서울시 주관으로) 그 사업을 했더라면 연간 224억원의 이자만 지급하면 되었을 텐데요.
도대체 무얼 아끼려고 민자를 유치해 그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거지요?
일이 터진 김에 당시의 계약체결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이런 의문들을 말끔히 씻어줘야 합니다.

나는 최소수입을 보장해 주는 민자사업 전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최소수입 보장해 준다면 아예 정부가 직접적인 사업 주체가 되는 것에 비해 민자사업이 과연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적자 나도 정부가 다 메워 준다는 것 아닌가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우리 사회를 한 차례 휩쓸고 간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을 겁니다.
정부는 무조건 틀렸고 시장은 무조건 옳다는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의 병폐를 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시장이 옳다 하더라도 최소수입이 보장된 민자사업은 정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효율성의 수준밖에 달성할 수 없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최소수익이 보장된 민간업체가 최대한의 효율성을 발휘할 유인이 있는지를요.

그런 유인이 전혀 없습니다.
비효율적인 운영으로 생긴 손실은 전액 세금으로 보상이 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노력해 효율적인 운영을 할 필요가 있나요?
효율적 운영을 하면 정부에서 받는 돈만 줄어듭니다.
그러니 민간업체가 운영한다 해도 사회적 관점에서 하등의 이득이 생길 리 없는 것입니다.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레임덕 정부가 알지 못할 이유로 KTX 민영화를 서두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걱정을 금치 못합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

http://jkl123.com/sub5_1.htm?table=board1&st=view&id=13525&fpage=&spage=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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