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이들이 박근혜를 더 지지하는가?

[이철희 칼럼] 민주당,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때 아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그의 석방운동에 참여했던 프랑스 문학가 로맹 롤랑이 썼다고 한다. 그람시가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롤랭의 이 말을 차용했다고 하는데, 영어 번역문은 이렇다. "나는 지성 때문에 비관주의자가 되고, 의지 때문에 낙관주의자가 된다."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이렇게 보면 뜻이 좀 더 명확해 진다. 우리는 지성으로 약점과 한계를 찾아내야 하고, 그걸 이겨낼 의지를 가질 때 그나마 낙관적 전망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넓은 개념으로 진보
진영은 그람시의 통찰과 거꾸로 가고 있다. 패배를 이해하는 데 의지를 사용하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데 지성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점에서 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단은 견강부회다. 누가 뭐래도 진 건 진 것이다. 여기에 굳이 어떤 변명을 덧붙이는 데에 지성을 쓰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패배를 조목조목 아프게 받아들이는 데 지성을 써야 새로운 반전의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해보라. 작년 10월의 재·보궐선거 후 당시 여당 대표가 말했다.

사실관계로 보면 그의 말이 과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빼놓고선 대부분의 선거에서 여권이 승리했다. 그럼에도 그의 말은 당시 한나라당의 안일한 판단과 둔감한 인식을 드러내주는 것으로 들렸다. 그 때 그들이 보였던 한심한 몽니를 이번에는 진보진영에서 보이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내친 걸음에 그람시의 지적을 하나 더 꺼내놓는다. "자만심을 강화하거나 구체적 사실보다 자만심을 더 좋아하는 자는 분명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없는 자이다."

이번 선거결과에서 패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데이터 중 하나가 20~40대의 야당 지지율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의하면, 20대는 2010년의 지방선거에서 56.7%, 2011년 10월의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69.3%의 야당 지지율을 보였다. 날로 지지강도가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이번의 총선에서는 47.9%로 내려앉았다. 30대는 64.2% → 75.8% → 53.5%의 궤적을 보였다. 40대는 54.2% → 66.8% → 46.1%의 흐름을 나타냈다.
여론조사를 숫자로 읽는 것은 잘못이다. 추세로 읽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20~40대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만큼은 틀림없다.

또 하나, 투표율이 던지는 메시지다. 이번의 투표율은 54.3%이다. 2년 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4.5%였다. 1998년 이후의 선거에서 지방선거 투표율에 비해 총선 투표율이 낮았던 경우는 한 번이다. 2008년에 있었던 18대 총선이다. 그 때 투표율이 46.1%였다. 그 이전의 2006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1.6%였다. 그 이전 시기, 즉 2002년 지방선거는 48.9%이고 2004년 총선은 60.6%였다. 1998년의 지방선거는 52.7%, 2000년의 총선은 57.2%였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번 총선에서의 투표율은 매우 낮은 것이다. 직전의 지방선거가 54.5%였다면, 이번에는 60%를 넘겼어야 했다. 이런 투표율은 곧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20~30대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우울한 대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리서치의 선거 후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압도적으로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새누리당 대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소득 100만 원 이하에선 76.2% 대 12.7%, 101~200만 원에서는 49.7% 대 28.1%, 201~300만 원에서는 48.6% 대 28.9%로 나타났다. 5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당연히 45.1% 대 34.8%로 새누리당이 우세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 쪽으로 움직였다고 하고 1%의 부자가 아니라 99%의 서민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정작 그들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부자 동네보다 서민 동네가 야권을 더 지지한 것에 비춰 볼 때, 저소득층의 지지를 견인하는 데 실패한 것은 정말 뼈아픈 대목이다. 이것은 민주통합당이 아직 중산층이나 화이트칼라의 지지를 동원하는 데에만 성공할 뿐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느 나라든 먹고 살기 힘든 계층이 저절로 깨달아서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보세력이나 정당이 프레임과 정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대안으로 인식될 때 비로소 계급투표가 가능해진다. 민주통합당이나 야권 연대는 이번 총선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4월 7~12일 자에서 지적한
평가는 적절해 보인다. "유권자들이 일자리복지고민하고 있고,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온 통합민주당이 불법사찰 문제에 매달린 것은 의외다." 비리와 부정부패 따위의 쟁점으로 유권자를 동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앞선 선거에서 이런 것에 대한 심판론이 여러 차례 작동했다면 심판의 대상을 경제적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무기력했다.

선거 패배의 요인은 간명하다. 민주통합당의 무능이다. 총선 직전인 지난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실시된 선거
학회 조사에서 야당으로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응답이 52.5%, 새누리당 재집권이 33.3%였다. 5:3의 구도면 얼마좋은 것인가. 그런데도 졌다. 앞서 언급한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총선 결과에 대해 기대했던 결과라는 응답은 42.7%에 불과하고, 기대와 다른 것이라는 응답은 50.9%였다. 이런 결과는 민주통합당의 실력이 모자랐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민주통합당은
지금까지 MB를 악마묘사했다.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했다. 이런 세팅은 여권의 주인이 MB일 때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MB 정부 출범 이후 야권이 여러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MB가 주변으로 밀려나고, 다른 사람이 여권의 얼굴로 등장하면 사정이 일변하게 된다. 게다가 그 인물이 여러 사안에서 MB와 맞섰던 사람이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은 박근혜까지 악마 내지 그 동조자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명박근혜'라는 말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박근혜의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51.2%,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39.7%로 나타나 이 전략이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전략에는 약점이 있다. 박근혜를 주 타깃으로 삼으면 본의 아니게 MB가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 내내 MB는 뒤에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민주통합당이 끌어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뉴시스


또 다른 문제점은 단순히 책임이 있다는 지적만으로는 야권 지지로 전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영업 중에서 박근혜 책임론에 공감하는 여론은 59.8%이고,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37.2%였다. 그런데 이들은 정당 투표에서 새누리당에게 51.3%, 민주통합당에게 28.3%의 지지를 보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응답자의 31.0%가 박근혜 책임론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에게 동반책임이 있다는 것과 이번 선거의 성격을 박근혜 심판으로 인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MB를 집중 공격하고, 반MB의 내용을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부자 대 서민의 틀로 몰아갔다면 박근혜 등장의 효과도 대폭 반감됐을 것이다. 이 프레임에서는 박근혜의 운신 폭도 훨씬 좁았을 것이다.

시험 못 본 학생이 할 일은 다음 시험에 대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특히 많이 틀린 과목이나 약점을 드러낸 부분을 메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운이 없었다면서 으레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통합당이 할 일은 참 많다. 패배를 통렬하게 아파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또 섣부르게 대선후보 경쟁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당을 바로 세우는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지금 당장 인물 프레임으로 가는 건 실익이 없다. 우선은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간에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재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통합당이 진보의 대표성, 반MB의 구심체, 복지한국의 견인차로서 자리 잡을 때 대선 승리의 전망이 가능해진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423092500&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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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천 칼럼] 1년 징역형을 선고한 2심 판결에 부쳐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서울시교육감 곽노현이 후보 매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따라서 아니 땐 굴뚝연기 나랴는 식으로 반응했었다.

내가 이 일의 진상이 보도되는 바와는 다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보도를 아무리 따라가도 곽노현이나 박명기 측의 해명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두 편의
칼럼을 썼다. (☞관련 기사 : 가식의 바람몰이가 또 시작하는가, 곽노현을 업고 사법 개혁으로 가자!)

그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무죄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단, 진상이 확인되기도 전에 검찰발 '
빨대'식 보도만 보고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사람들, 특히 소위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인사들을 겨냥한 글이었다. 그 뒤로 1심 재판이 있었다. 재판을 맡은 판사 김형두의 진지한 노력 덕택에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내가 이해한 진상을 이렇다.

첫째, 양재원, 이보훈, 최갑수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소위 "합의"라는 것은 합의의 명색만 갖추고자 했던 양재원의 시나리오에 이보훈과 최갑수가 별 생각 없이, 따라서 막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부정합적인 단어들을 무의미하게 연결한 데 불과하다. 둘째, 이런 무의미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조차 곽노현은 몇 달 후에 자체 조사를 통해서나 알게 되었다.

셋째, 한편 박명기는 양재원으로부터 "합의"가 있었다고 전해 들었고, 그래서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넷째, 진상을 파악하고 나서 곽노현은 강경선에게 부탁해서 박명기의 오해를 풀었다. 다섯째, 이 와중에 강경선은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어 곽노현에게 부조를 조언했고, 곽노현은 강경선의 신앙심에 감화되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음을 무릅쓰고 2억 원 가량을 건넸다.

ⓒ뉴시스

이와 같은 사실을 파악한 이후 나는 곽노현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었고, 지금도 확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실체적 진실을 이렇게 밝혀낸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리라고 기대했고,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와야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세속의 법정이 항상 진실에만 충실하지는 않는다는 점, 나아가 특히 현재 한국의 사법부는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모를 만큼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늘 항소심의 1년 징역형 선고에도, 영혼이 휘청거릴 만큼 충격은 받지만 놀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1심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내렸을 때에는 상당히 놀랐었다. 판사 김형두가 도합 200시간에 달하는 법정
심리를 통해 진상의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뒤져보고도, 그래서 위에 내가 요약한 진상을 샅샅이 밝혀내고도, 여전히 사후 매수라고 하는 뒤틀린 관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한국
사회 법조계와 정치계의 환경 그리고 일반적인 공론의 상태를 감안하면 그러한 판결도 있을 수 있겠다고 이해했다. 개인의 세밀한 진상을 조직의 목적이나 권력의 성향 그리고 중론의 풍향에 따라서 묵살해 버리는 풍조는 한 사람의 법관더러 막아내라고 요구하기가 비인간적일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심 재판부는 적어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까지 깊은 고뇌를 거쳤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게 대단히 중요한 도덕적
자산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무고한 피고인의 변호에 실패한 애티커스가 실망한 딸에게 하는 말, "그래도 이번에는 몇 시간이나 걸렸잖니. 이런 재판은 보통 몇 분 안에 결론이 났던 거야"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몇 주 전에 다시 쓴 글에서도 말했듯이(☞관련 기사 :
천안함과 곽노현을 다시 생각한다), 곽노현 재판은 한국 사회가 도덕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수난에 동참할 것이며, 그가 견지하는 진실과 신앙에 내 영혼의 순수가 허락하는 한 모든 응원을 보낸다.

진영으로 진보에 속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진영 논리에는 신물이 나지만 한국 사회가 좀 더 선량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진상을 파고들지도 않고 통념에 의존하는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다. 곽노현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고 말하지 말라. 진실을 무시하는 현실에 저항해야 하는 까닭은 현실이 녹록해서가 아니다.

곽노현을 개인적으로 믿지만 법은
전문가의 영역이니 어쩔 수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진실을 덮어 버리고서야 어떤 법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에 요약한 진실 가운데 어떤 내용도 검찰은 부인하지 못했다. 단지 "돈이 오갔으니 후보 직위를 매수한 것"이라는 억견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법과 정의와 진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질서다. 죄 없는 사람을 분위기에 따라 처벌하는 사회는 곧 죄 있는 사람이라도 그에게 돈과 권력만 있다면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세상이 깡패 판이었다고 해서, 그러니까 앞으로도 깡패 판이 계속되리라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부당하다. 이런 식의 통념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로 무슨 진보와 개선을 떠들든지
역사의 선한 발전을 미리 포기한 사람이다.

권력의 핍박 때문에 일상적으로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이 나라의 모든 양심에게 호소한다. 곽노현의 진실을 여러분이 알아주고 응원해준다고 해서
각자의 어려운 처지가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곽노현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사법 제도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검찰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도처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처럼 법원이 검찰의 비논리적인 압박에 양보하기 때문에 이 사회의 법과 정의와 진실이 묵살당하는 것이다.

모든 진실은 개인의 진실이고, 모든 개인은 사회에 비해 미약할 만큼 작다. 이에 비해 권력은 언제나 거창해 보이고, 이에 덧붙여 숭고하고 장엄하다는
포장까지 칠해져 있다. 개인들의 작은 진실과 양심이 연대하지 못하면 권력이 개인을 말살하는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권력을 차지한 악당들이 나머지 선량한 다수 시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상태이다.

다수 시민이 법의 조문과 적용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사법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법이 시민을 때려잡는 도구에서 벗어나 권력을 통제하는 공동체의 자산으로서 제자리를 찾는다. 이래야 국가 권력이 정상화되며, 그래야 의회의 입법을 통한 경제 민주화도 가능해진다.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이 목표를 가시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40석의 민주 진보 의석은 종전 90여 석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강된 것이다. 이제 8개월 후, 다시 한 번 역사 발전의 계기가 예정되어 있다. 사법 개혁을 통한 권력의 정상화로 의제를 모아야 한다.

현재 대법원의 상태를 볼 때, 곽노현은 아마도 실형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선거
운동 보전금 35억 원을 물어내고 나면 빚더미에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법 민주화를 통한 대한민국 국가의 정상화라고 하는 중차대한 역사적 계기가 조성되는 데 하나의 밀알이 될 수 있다면, 그의 수난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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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인종차별 관련한 MBC 뉴스를 봤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일단, 뉴스를 캡처한 사진을 올린다.


2012년 4월 24일 새벽 MBC News24


(이 자료화면은 9시 뉴스데스크에도 쓰였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048510_5780.html 참조










그래, 그럴싸 했다.


그런데, 나는 전날 이자스민 관련 논쟁에 대해서 상당히 밀도 깊은 조사(?)를 마친터라.. 이런 캡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도저히 그냥 "이자스민"으로 검색해서는 이자스민을 공격하는 글을 이렇게 한꺼번에 찾아내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위의 화면들은 모두 "이자스민"으로 검색한 글이다. 이자스민이 볼드처리 된 것만 봐도 알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위에서 아이디를 지우고, 이름을 지우고.. 제대로 내용을 알수 없게 만든 일련의 트윗을 다시 찾아서 재구성해봤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시라.





마치 이것만 얼핏 보면.. "이자스민에게 비난을 퍼붓는 몹쓸 사람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종 차별을 하지 말자는 대부분의 사람들... 기껏해야 윗쪽에 있는 계정은 팔로워 700대의 좀 의심이 가는 계정..







심지어 이렇게 "매매혼으로 팔려온 X" 라고 쓰인 트윗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고 꾸짖은 트윗이다. 이건 사기다.








여기도 대표적인 트위터리안이... "인종차별적인 공격은 안될일" 이라는 트윗이 대부분인데.. 마치 위의 방송화면에서보면.. 무슨 나쁜 짓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제일 처음 트윗은.. 나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ㅠㅠ






그리고,여기서부터 좀 이상하다. 이자스민에 대한 공격을 퍼붓는 제일 위의 사람은.. 사실은 조갑제, 정옥임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뭔가 좀 앞뒤가 안맞는 느낌이 든다. 이걸 멘붕이라고 한다. 여태 조선에서 깐 것은 "좌파가 이자스민을 욕한다"는 것이었는데...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3048510_5780.html

9시 뉴스데스트 캡처 + 편집

겨우 15명의 팔로워가 있는 글을 예제로 들고 있다. 이거야 원... 멘붕도 이런 멘붕이 있나...

이건 억지로 찾지 않으면 안되며, 이 경우 팔로워에게 글이 전달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랬다.


대부분 "인종차별을 해선 안된다"는 글.. 그것도 무지하게 유명한 파워 트위터리안의 글이었다.


진짜로, 몇몇 트윗은 이자스민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이었지만... 대부분 팔로워가 몇 안되는 사람의 의미없는 글이었다. 그 트윗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주장하려면, 트위터 시스템 자체를 다 엎어야 하니.. 제발 그러지는 말아주길..


심지어, 예로 든 비난 트윗을 쓴 마지막 사람은 열렬한 새누리당 지지자...(조갑제, 정옥임등등의 일련의 리트윗만 한 사람) 그러니, 이자스민에 대한 비난 글을 올렸다는 것은.. 조작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자스민에 대한 인종 차별적 공격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고, 영향력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걸 확대 시킨 것은... 보수 언론 혹은... 그 언론을 받아서 무조건 앵무새처럼 "자동트윗(twitterfeed.com사용)"을 한 사람들이었다. 증거 있냐고? 여기 보라.




미안... 이건 정말 극히 일부고.. 훨씬 많다. 캡처하다가 지친게 12페이지가 넘는다.


예전 조선 알바는 그래도, 조선일보로 유입시키기 위해서 링크라도 썼지... 이건 말야.. 그냥 정말 성의 없다.


특정 RSS가 지원되는 게시판에 글을 쓰면 자동으로 twitterfeed.com 에서 끌어다가 글을 올려주는 방식이다.


알바 중에서도 가장 수준낮고 질 낮은 알바질이다.


돈 안받고 했으니, 알바 아니라고 우기시든지.



어쨌든, 성급히... 결론짓겠다. 나도 바쁘니까.


1) 이자스민에 대한 인종 차별적 발언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영향력을 미칠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다수도 아니었다.


2) 그런데, 이걸 귀신같이 찾아낸 조중동이 열심히 보도하기 시작한다.


3) 그리고, 무슨 세력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열심히 퍼나르는 "자동 트윗"이 등장한다.


4) 결국, MBC를 비롯한 언론에서 방송한다. 그런데, 근거 트윗을 많이 찾지 못하자, 대충 흐린 화면 처리해서 사람들을 속인다. 이건.. 정말 범죄다.



제발... 우리 이러지 말자.


MBC는 국민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라. 그리고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 그런 보도를 했는지... 밝혀라.



그리고 이자스민씨는 "허위 학력 유포"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녀가 "의대나왔다"는 이유로 유명세를 탄 것은 사실이니까. 그 이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특히 인종차별적 비난하는 사람은.. 아니.. 그렇게 비난 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끝.


2012.4.17.

미디어 한글로.

http://media.hangulo.net/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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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MBC에 대해서는 지난 글 2012/04/17 - 이자스민 인종차별 글의 실체는? MBC뉴스를 고발한다. 에서 소개했다.


그리고.. 심심해서.. 다시 KBS를 찾아보니.. 여기도 마찬가지.


먼저 어이없는 "조작" 화면을 보자





http://news.kbs.co.kr/politics/2012/04/16/2463597.html 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위의 캡처는 "37초 부근"


자, 아무도 못찾을 것 같지만.. 위에서 캡처한 계정을 찾아보자.




이 계정은 그냥 척 보기만 해도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같은 동아일보 기사를 무려 10번이나 올리는" 계정이다. 뭐, 일반적으로 이런 계정은 정상적이진 않다. 아무리 그래도, 똑같은 트윗을 10번씩 올리는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분을 존중한다. 전혀 비난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KBS는 위의 두 트윗을 교묘하게 지운다. 그래서 마치.. 이 트윗이 "한국인 등골 빼먹는" 트윗처럼 변신시킨다.. 그뿐인가? 아랫쪽에는 원래 [김순덕 컬럼]이 나오는데... 이걸 지우고, 화면을 조작해서 "한국인 등골 빼먹는" 만 두각시켜서 나타낸다.


대표적인 화면 조작이다.


이건, 사기다.


한마디로 우파적인 분을 완전히 "이자스민을 몹쓸정도로 비난하는 사람"으로 둔갑시킨거다. 아무리 흐리게 처리해도, 트위터에서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만약, 저걸 캡처할 당시에는 저런 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랫부분은 교묘하게 지운 것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걸로 끝나진 않는다.





그리고 위의 뉴스에서 나온 글들을 모두 근거를 찾아 봤다. 대부분 팔로워가 100-200.. 심지어 12밖에 안되는 계정이었고, 그냥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 나온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리트윗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


(조작이었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팔로워를 가진 글은.. 정말 맘먹고 찾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없다. 기껏해야 같은 친구끼리나 서로 주고 받을 정도의 글이다.


그런데, KBS는 이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는 것인양 확대해서 보도했다.



솔직히, 트위터의 확산 시스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먹히는 소리다.


하지만, 저런 글들은 정말 "목표로 해서 찾지 않으면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트윗" 이다. 그런데, 저걸 악착같이 찾아서...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고.. 그리고 다시 방송에.. 약간의 조작과 함께 내놓으니...


정말... 불쌍해서 견딜 수 없다.


대체... KBS와 MBC가 왜 이러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충성 경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가카 만세!


이러지 말자.



* 이 글은 "조중동이나 KBS, MBC가 직접 가짜 트윗을 올렸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 근거는 전혀 없다. 단지, 이들이 이 이슈를 "침소봉대"를 했고, 그 과정에서 몇몇 의심스러운 정황 (앞서 MBC글에서 본 알바트위터들)이 보였으며, 정말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하는 MBC와 KBS의 태도가 있었다는 글이다.






미디어 한글로

2012.4.17.

http://media.hangulo.net/1108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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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은 정말로 패배했는가? (상)
[칼럼] 한국정치 구조적 이해 없이 ‘김용민 탓’ 안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


가슴 떨리게 기다리던 4.11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에는 최초로 야당이 야권연대로 후보단일화를 이루면서 양대 정파가 사생결단의 일전을 치렀다. 민간인 사찰 쟁점은 사라지고 여야당 모두가 심판을 받았다. 국민이 새누리에게 과반수의석을 만들어준 것 같지만 여야 간 절묘한 균형을 만들기도 했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는 야권연대가 승리한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새누리당이 압승한 결과이다.

많은 이들이 야권연대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실망이 크다. 그러나 이 결과를 통해 우리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면 12월 대선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과정에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잘 되었는지 앞으로 제대로 평가해나갈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정권 심판론에 대한 여론이 거세면서 야권연대가 과반의석을 확보할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올 초 민주통합당이 통합효과를 발휘하면서 새누리당을 지지도에서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결과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자 많은 이들은 야권연대가 패배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김용민후보의 발언을 지목하기도 한다.

‘야권연대 패배’와 ‘김용민 탓’은 잘못된 분석

나는 이러한 가정이나 예측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거결과는 몇 개월 전의 여론조사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2004년 총선 전에도 당시 열린우리당 전략통이었던 김한길씨와 필자를 제외한 모든 전문가는 한나라당이 1당이 될 것이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120여석에 그치자 그나마 박근혜 대표가 당을 살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야권연대의 과반의석 확보를 예측했던 여론조사결과와 논객들의 주장이 얼마나 신뢰할만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선거결과는 예측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결과를 가지고 승패를 논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살아있는 것이고 정치구조, 정당의 구도와 쟁점, 캠페인, 후보에 의해 선거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진보진영이 패했다는 진단은 틀렸다. 18대 총선에서는 100석도 안되는 의석을 차지했던 진보진영이 이번에 139석을 차지했으니 그렇게 나쁜 성적이 아니다. IMF직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의석은 100여석에 그쳤다.

정당득표율을 보아도 새누리당 42.8%, 민주통합당 36.5%, 통합진보당 10.3%, 자유선진당 3.2%로 진보적인 투표가 전체 46.8%로 보수적인 투표가 46%로 팽팽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2004년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거였던 매우 예외적인 17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진보진영으로서는 역사상 총선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셈이다. 따라서 야권연대가 어느 정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이 득표율에선 새누리당을 앞섰으면서 의석수에선 많이 뒤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정치구조 자체가 진보진영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소선거구라는 선거제도와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진보진영,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 극복 못했다

실제로 부산영남에서 새누리당표가 뭉치기 시작한 건 김용민 발언이 아니라 민간인사찰이 터지면서부터였다. 언론이 민간인사찰이 역풍이 불거라고 예측하면서 위협을 느낀 영남유권자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에도 열린우리당의 창당 때와는 달리 탄핵역풍이 불면서 영남유권자는 한나라당 지지로 결집했다.

따라서 선거 몇 개월 전 신당창당에 의한 바람이 분다고 당시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한 예측은 믿을 게 못된다. 탄핵 직후 열린우리당이 170석을 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결과를 나는 믿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영남유권자는 열린우리당을 찍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유권자 태도행태를 연구한 사람이 이론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겨우 과반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정동영의 발언으로 과반 밖에 못한 것이 아니다.

또한 여당심판론이 먹히면 야당이 압승할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6.2지방선거에서도 여당심판론이 먹혔고 많은 이들은 야당이 선전 했다고 기억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먹히면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거의 전국에서 전멸했다.

하지만 2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절대로 참패하지 않았다. 광역단체장만을 본다면 한나라 6명, 민주당 6명, 자유선진 1명, 무소속(김두관) 1명으로 진보와 보수는 팽팽했다. 수도권에서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시도의원의 수가 한나라당보다 많기 때문에 아주 미약하게 우세할 뿐이었지 야권연대가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결코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않았다. 구시군의원의 경우는 오히려 한나라당이 많이 앞섰다.


그나마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천안함 북풍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선전했던 이유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기억과 이를 보상할 수 있는 친노 후보의 전진배치 덕분이었다. 보수적인 강원도와 충청남도에서 이광재, 안희정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의 분열이 안희정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지금도 여소야대 지방의회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지방선거와 비교할 때 여야당의 세력분포, 투표율은 거의 흡사하게 닮았다. 두 세력이 명운을 걸고 일전을 벌인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 탄핵과 같이 중도층이 도와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 선거는 인물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언론의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지역구 내의 인물이 국소적으로 중요하다면 전체적으로는 정당간의 구도가 더 중요하다. 역대 총선에서 정당은 항상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었다. 정당 간 대결이 이루어지면 지역주의와 언론의 역할이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땅에서 진보는 보수를 이기기 어려운 정치 및 언론구조에 놓여있다. 수구언론의 아젠다 세팅 능력과 정권에 장악당한 방송을 고려한다면 진보진영이 승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구조상 진보진영이 이기는 건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 특출한 후보가 있을 때 대통령 선거에서 뿐이다. 그것도 제 실력대로 집권한 게 아니고 보수후보와 단일화를 통해서였다.

선거 몇 개월 전 야권이 압승할 것이란 예측은 수구언론이 새누리당을 구하기 위한 엄살이었을 뿐이다. 이런 프레임에 말려 진보진영은 늘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막상 이기는 선거를 하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지도부를 흔들고 책임론을 제기하며 내부 분열한다. 한국정치의 구조적 조건에 대한 이해 없이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진보진영 전체가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이 실패는 반복될 것이라 단언한다.

‘언론전략 부재’와 ‘내부 분열’도 진보진영의 부족함

한국정치의 구조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가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을 방법은 없었을까?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탄핵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중간층의 투표율을 더 높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족해 이런 결과를 얻게 되었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언론전략 부재와 진보진영 분열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고 본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87년 체제의 유산이라고 본다. 87년 체제의 결과, 우리사회는 보수, 진보 엘리트를 구성한다. 좌 우, 양진영만 존재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언론, 지식인, 진보정당 정치인은 구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때로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민주적 절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노무현대통령에게 ‘국민 다수가 원치 않는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 복지를 더 많이 하지 못했다’고 비난만 퍼부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영호남 지역주의구도도 87년 체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참여정부에 대한 질시와 불만은 참여정부와 노무현대통령을 국민들에게 무능해 보이도록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노 대통령은 ‘진보진영은 1997년에도 약자였고 2002년에도 지리멸렬했다’며 2007년 보수 압승의 원인으로 노 대통령 자신을 지목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노대통령 서거 후 다수의 국민이 조중동 프레임에서 깨어나 참여정부의 경제성과가 나쁘지 않았고 참으로 훌륭한 대통령임을 인정했지만 진보진영 내 언론인이나 지식인 등 엘리트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들은 실용적으로 접근했던 노대통령을 비판하며 민주통합당을 더 좌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그나마 노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고 지금도 인정을 받는 이유는 제3의 길을 갔기 때문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을 택함으로써 구좌파와 차별화를 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중도 유권자를 진보진영 지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구좌파와 심한 경쟁, 갈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노대통령의 지지도하락이 진보진영의 분열에 있다고 보았기에 2006년 펴낸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 필자는 2007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좀 더 좌클릭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정도로 너무 많이 좌클릭했다. 진보엘리트와 네티즌의 영향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을 쟁점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장악과 민주주의 문제를 쟁점화했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공약으로 갔다.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야권연대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좌절시킨 이유는 그것이 복지쟁점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과 관련된 가치쟁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쟁점이 선거승리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친노의 부활과 MB심판이 더 설득력을 발휘했다.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는 서민층보다 중산층에서 더 높았다.

나는 한 민주당 지도부에게 경제적 이슈는 내부단일화용으로 쓰고 선거는 민주주의 쟁점으로 끌고 가라고 조언한 바 있다. 선거운동 첫날 지도부가 총출동해 방송사 파업현장을 찾아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을 알리고 “힘이 없어 MB의 폭정을 막지 못했으니 힘을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어야 했다.

그런데 거대야당을 막아달라며 새누리당이 읍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야권연대가 너무 좌로 끌려가서 시너지를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층의 위협감을 자극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진보진영은 정말로 패배했는가? (하)
[칼럼]트위터, 축복이자 불운…盧자산 적극 살려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강원, 충청, 경남에서 야권이 선전하지 못한 이유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보수층의 표를 뺏어올 도지사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와 비교해서 뚜렷하게 투표율이 하락한 충청과 강원지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서울에서 약간의 투표율 상승과 함께 부산과 대구의 투표율이 많이 오르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표 2> 지역별 투표율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비교

민주통합당이 공천과정과 연대 과정에서 지지도를 까먹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 또한 진보언론, SNS,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힘겨루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지도부였던 친노가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나 복지를 화끈하게 하기 싫어서 안한 것이 아니다. 힘이 부치니까 실용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여론이기 때문에 경제적 진보보다는 상식과 원칙을 택했던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힘도 바로 상식적인 중도층에 있다. 합리적 중도층은 정치적 민주화는 적극 지지하지만 경제적 민주화에 대해서는 선별적이다. 합리적 중도층을 잡지 않고 대선을 꿈꾸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구언론 ‘친노부활’ 프레임..진보언론·SNS도 친노 공격 나서

내용적으로 민주통합당의 공천이 한나라당에 비해 그리 나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당선될 가능성도 없는 영남을 중심으로 친노를 다수 공천한 걸 가지고 수구언론은 친노부활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영남을 제외하면 전국 통틀어 친노 공천은 10명 남짓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와 진보언론이 친노 공격의 전면에 섰다. 친노가 실제로 몇 명 안되자 민주당 의원을 마음대로 친노로 분류하기도 했고 친노와 486을 엮어서 50%의 공천을 받았다고 뻥튀기 하기도 했다.

친노인 한명숙, 문성근이 통합민주당의 지도부가 된 것이 바로 민심이다. 여론은 친노의 부활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천심사위원회는 통합의 정신을 살린다며 공천에서 친노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곤 했다. 수구언론이 만든 프레임에 진보언론, 진보네티즌, 구민주계까지 동조하고 공심위는 주눅이 들어 심각한 자기검열을 했던 것이다.

실제로 언론이 분류하는 친노는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과 분당을 제외하곤 모두 살아왔다. 친이나 친박의 생존율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경쟁력을 가졌다. 수도권에서 더 많은 친노를 공천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친노공격과 경선을 더 많이 하라는 트위터리안의 요구에 민주당은 준비 안된 경선을 치르면서 조직 동원 경선을 허용하고 말았다. 개혁 이미지보다는 조직동원력이 좋아 당선된 후보들은 수도권에서도 대부분 패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예견하고 2006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진보진영은 향후 20년 이상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파해왔다. 노대통령 서거 이후라고 해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가장 먼저 반성문을 쓰며 진보진영 모두 성찰하자고 외쳤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친노만 공격을 당하고 반성을 했지 진보진영 누구도 성찰하지 않았다. 지난 해에는 나꼼수에 이런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라며 이를 대비해 진보진영 내 학습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진보진영 내에서 언론에 대한 전략과 소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보수와 지속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야권연대 지도부, ‘MB심판’ 외에 구호도 감동도 없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와 전략 외에도 민주통합당이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지도부의 전술적인 실책도 존재한다.

첫째, 구도와 쟁점에서 야권연대는 MB심판 외에는 별로 보여준 것이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성근이 주장했듯이 이번 총선은 MB심판으로 치르기 어려웠다. 박근혜가 MB와 차별화를 해왔고 12월 대선의 전초전으로 치러지는 선거였기에 과거회기보다는 미래전망적인 투표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야권연대는 기억에 남는 정당의 구호 하나 없다.

둘째, 야권연대가 감동을 주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야 최초의 연대였기에 감동을 주었고 또 광역단체장 외에는 후보의 중요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후보의 인물이 중요한 국회의원 선거는 다를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민주당이 양보한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는 통합진보당의 후보가 경쟁력이 없어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통합진보당이 무리한 연대를 강요했다는 인상을 줬다. 특히 이정희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경기동부연합 시비는 수도권의 자유주의적인 젊은 유권자의 정치불신을 부추기는 데에도 기여했다.

김용민 후보의 발언논란도 농촌의 장년층 유권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만일 김용민이 사퇴를 했다면 야당이 승리했을까. 아마도 또 다른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아 수구언론은 끊임없이 쟁점을 흐리는 일을 했을 것이며 수도권의 접전지역이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그 후보들의 개인적 잘못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지도부의 결단력 부족과 진보진영의 언론 전략 부재라고 보아야 한다.

셋째, 민주통합당이 일사분란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패한 건 참아도 무능은 못참는다”는 수구언론의 프레임이 2007년 대선에 먹혔고 이번에도 먹혔다고 생각한다. 우리국민은 아직도 민주적인 정당보다는 일사불란한 정당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프레임을 강화하는 건 수구언론만이 아니다. 진보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막상 친노가 다해먹는다고 공격하면서도 민주적으로 하다 잡음이 나면 무능과 전략부재를 탓하니 말이다. 만일 한명숙 대표가 박근혜 위원장처럼 독선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민주당이 대승을 했을까? 무지개 정파를 모아놓은 통합정당에서 한 대표였기에 모든 사람을 달래고 안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넷째, 트위터는 진보진영의 축복이자 불운이다. 트위터와 나꼼수는 수도권에서 조중동의 공격을 넘어 승리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그 결과 민주통합당은 너무 좌클릭하게 되었고 정체성과 신뢰성을 공격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충청과 강원에서 승리의 일등공신인 이광재와 안희정, 김진표를 감싼 이해찬이 진보적이지 못하다며 SNS에서 무차별적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의 낙선을 가져오고 충청과 강원에서 의석을 내준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은 진보진영이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정당이 경제적 진보와 보수로 재편되는 과정이 세대균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선은 투표율이 상승할 것이므로 총선과는 다른 전략을 택해야 한다.

다섯째, 수구언론과 방송의 선거전략은 네거티브를 통해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정치불신을 부추겨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 결과 정책대결을 기대했던 젊은이들의 투표참여를 막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부실한 정책집 하나 달랑 들고 준비되지 않은 새누리당은 오랫동안 준비한 통합민주당의 정책선거 밥상을 언론의 도움으로 걷어찬 것이다. 어차피 민주통합당이 이 진흙탕 싸움을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평상시에도 끊임없이 방송을 감시하고 부당한 폄훼나 잘못된 기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론과 전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언론 모니터나 대응을 제대로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신당이고 시스템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이고 일 잘하는 정당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야권연대가 정권탈환 위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전체적 구도에 대한 이해, 전략, 전술 진단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이러한 진단에 기초해 향후 정권탈환을 위해 야권연대가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다. 진보진영의 역량을 과대평가해서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미루면 실패를 반복할 뿐이다. 객관적 조건과 역량에 대한 과학적 진단이 필요하다. 진보진영 학자 치고 과학적 연구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여론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하지 않고 옳은 정책만 내놓으면 유권자가 지지할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둘째, 노무현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 살려야 할 자산이다. 진보진영 연대를 위해 정책에서는 약간 좌클릭 하더라도 국민의 정서를 가장 잘 이해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과 상식의 정신, 그리고 실용적인 정책 대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자세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안철수 바람에 대한 체계적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은 운동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진보를 원한다.

셋째, 언론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진보진영의 연대를 위해 소통구조를 만들고 체계적으로 유권자에게 언론의 문제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언론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말고 왜곡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진보진영은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매번 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다 결국엔 지지자로부터 등돌림을 당할 것이다. 유권자는 진보진영이 도덕적이길 원하는 게 아니라 유능하길 원한다.

넷째, 진보진영 내 신사협정을 맺어야 한다. 클린턴 재선 시, 흑인들이 침묵함으로써 민주당이 흑인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공화당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줬다. 통합진보당도 민주통합당을 지나치게 좌클릭 시키는 걸 목적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정권을 잡아야 경제적 민주화도 실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다섯째, 민주당의 현재와 같은 집단지도체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권한은 대표가 최고위원과 함께 나누고 심지어는 당원까지도 감놔라 배놔라 하는 상황에서 책임은 당대표 혼자 져야 하는 모순은 빨리 극복되어야 한다. 권한을 갖는 자가 책임도 질 수 있도록 민주적 거버넌스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대다수 민주당 의원과 진보언론은 아마도 나의 이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친노교수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가 친노가 된 건 노무현의 원칙과 상식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그가 나의 전략적 조언을 따라 승리했기 때문이지 내가 노무현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건 아니다. 진보진영이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진단에 실패한다면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사족 : 안철수 교수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 한 마디 덧붙인다면 안 교수가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힘을 실어줄 수는 있어도 후보로 나와서는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우리 정치는 좌우로 양분되어 있다. 보수쪽이 압도적 힘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제3의 길을 걸었던 노무현을 진보진영도 감싸주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는 보수의 후보도 진보의 후보도 되기 어려울 것이다. 된다고 해도 대통령으로 성공할 수 없다. 진보 쪽에 정치적 기반이 있었던 노무현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국 정치가 87년 체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게 극복되려면 최소 30년이 걸린다. 2017년에야 안 교수에게 나은 환경이 올 수 있다고 본다. 요즘엔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한국정치는 좌우의 균형이 맞춰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정당득표율이 그걸 말해준다. 안철수의 제3의 길 실험은 좌우가 팽팽하게 세 대결을 거쳐 진보가 승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현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측을 하는 이론적 배경은 필자의 <한국과 국제정치> 게재 논문 <정당재편성론으로 분석한 2007 대선>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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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5.16은 저에게 혁명도 군사정변도 아닌 군인에 의해 일어난 쿠데타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혁명이나 군사정변이나 경제 부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는 오늘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 왜 5.16이 혁명도 아니고,단순한 군인들의 자기 권력 쟁취를 위한 군사쿠데타인지 말하고자 합니다.

정수 장학회를 아십니까?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에 의해 설립된 장학회입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는 아주 좋다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학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수장학회의 모태가 되었던 부일장학회

부산일보와 삼화고무를 운영하던 언론인이자 기업가,그리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김지태는 1958년 자신의 재산과 토지 10만 평을 토대로 부일장학회를 설립합니다. 그는 최초의 민간상업방송이자 지금의 MBC 전신인 부산문화방송과 서울문화방송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1962년 중앙정보부는 김지태를 부정축재처리법위반,해외재산도피법 위반으로 부인 송혜영은 밀수혐의로 체포했습니다. 특히 부인 송혜영의 밀수혐의는 카메라와 반지인데, 정당하게 세관 통관이 되었다고 당시 세관원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김지태와 송혜영은 모두 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뒤에 그들은 군검찰의 공소취하로 풀려나는데 그 대가로 김지태가 박정희에게 헌납한 재산은 부산일보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00%, 서울문화방송 주식 100%, 부일 장학회 자산으로 만들었던 토지 10만 평이었습니다.

이 모든 재산은 5.16장학회로 넘어갔고,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의 모든 재산은 부일장학회 김지태가 박정희에게 말이 헌납이지,강탈당한 장물이었습니다.

정수장학회는 어떤 장학회인가?

정수장학회를 이야기하면서 5.16장학회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5.16장학회의 명칭이 1982년 정수장학회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여의도 광장의 명칭도 5.16광장이었습니다.


5.16 장학회라는 명칭은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자를 합쳐서 정수장학회로 1982년 개명이 되었습니다. 5.16광장이 여의도 광장으로 5.16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개명된 이유는,5.16이라는 단어가 독재자의 유산이라는 어감으로 더는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수장학회의 재산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재산을 보면 부일장학회의 재산이 그대로 넘어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방송 주식도 100% 넘어갔는데 왜 현재 문화방송 주식은 30%만 남았을까요? 그 이유는 전두환이 70%를 다시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30%의 주식을 보유한 정수장학회는 MBC의 최대 주주 또는 사실상 소유자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수장학회의 실제 소유주와 다름없는 사람은 바로 박근혜입니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동서 조태호와 박근혜,이후락 정보부장,진혜숙 청와대 총무비서등 대부분 박정희의 친인척으로 이사장이 임명되어 왔습니다.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지자 이사장직을 사임했는데,실제 퇴임 이후 이사장은 박정희 의전공보관을 지낸 최필립이 맡고 있습니다. 최필립은 박근혜 사조직 미래연합 운영위원이었습니다.


정수장학회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정수장학회를 장물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잡아다 놓고 강제로 재산을 강탈한 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모든 재산이 국가가 아닌 박정희를 위한 재산으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하자가 있어도 국가 기관에 재산이 압류되었다면 나중에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부일장학회의 재산이 국가 기관에 강제로 헌납되었다고 진실을 말해도 정수장학회에 넘어간 재산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정수장학회가 장물로 이루어진 조직이자 가장 큰 문제입니다.


2011년 올해 MBC 뉴스입니다. MBC가 정수장학회에 장학금을 21억 원을 전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정수장학회가 한 해 장학금을 지급하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요?


정수장학회는 평균 매년 25-3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MBC가 매년 20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합니다.그뿐만 아니라 부산일보도 매년 8억원 가량을 지급합니다.결국, 정수장학회는 자신의 재산은 그대로 놔두고 MBC와 부산일보에서 받는 장학금으로 생색을 내는 것입니다.

21억 원(MBC) + 8억 원(부산일보)= 29억 원(정수장학회 평균 장학금 25억 원 내외)

장학재단이 남의 장학금을 받아서 그대로 주는 일을 하고도 장학재단입니까?


장학금을 받아 장학금 지급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IMF 이후 재정난이 계속되자 2000년 박근혜는 장학국을 폐지합니다. 장학국은 장학생 선발을 심사하는 기관입니다. 장학 재단이 돈 없다고 장학생 선발하는 기구를 폐지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돈이 없어서 직원 상여금도 1,100%에서 600%로 감축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사장 연봉은 상근직으로 돌려서 더 많이 가져갔습니다. 박근혜가 상근직이 되었다고 매일 출근했을까요?



MBC 지분 70%는 방송문화진흥회가 30%는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만약 MBC가 사영화된다면 70% 지분을 기업들이 소유해야 하는데 수십조 원이 넘는 지분을 한 기업에서 구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쪼개서 지분을 인수하는 방법이 남는데,그럴 경우 최대 주주는 30%를 보유한 정수장학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수장학회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자 박근혜는 이사장직을 그만두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현 이사장을 비롯한 조직 전체가 박근혜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수장학생 출신인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 현경대 전 의원,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주선회 전 헌법재판관, 신승남 전 검찰총장ⓒ 오마이뉴스 권우성·이종호·남소연

정수장학회의 인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재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는 재학생의 모임 청오회와 졸업을 하고 사회 각계에서 일하는 상청회로 움직이는 인맥은 수만 명이 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박근혜의 싱크탱크와 대선 후보 당시 인물,친박계열 의원 중에서 정수장학회 출신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정수장학회가 공명정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재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합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박정희가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입니다. 음수사원이라고 물을 마신 사람은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는데, 장물로 장학금을 받았으면 장물을 생각해야 합니까? 아니면 장물이라도 돈을 주었으니 박정희와 그 일가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합니까?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박정희가 진짜 악덕 재벌에게 돈을 빼앗아 그 돈으로 장학금을 주었다면 그나마 비판을 받지 않았겠지만, 김지태라는 인물은 사기꾼도 아니고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열심히 사업해서, 지금의 정수장학회보다 더 많은 장학금을 지급했던 장학회였습니다.


부일장학회는 1958년 설립되고 박정희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총 1만2364명에게 17억 7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지금 정수장학회가 평균 700여명 30억 원의 장학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수십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일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은 일을 가지고 부일장학회 김지태를 친일파로 몰고,노무현 대통령이 친일장학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박정희와 박근혜 지지자들의 말도 안 되는 논란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위해서 혈서를 쓰고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며, 항일 유격대를 토벌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김지태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입사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친일파 운운하는데,그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입사할 당시 나이가 20세였고,땅을 불하받았던 1932년은 그가 입사하고 10년이 넘었던 시점에 토지도 10년 분할상환이었습니다.

친일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일개 사원의 친일까지 비난하지 않습니다.먹고 살기 위한 친일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살았던 친일은 분명히 비판의 기준과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김지태를 친일파로 노무현 대통령을 친일파의 자금으로 공부했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어떻게 박정희의 혈서와 친일 행각은 절대로 말하지 않고 있습니까?

[韓國/정치] - 독도 폭파를 제시한 친일파 박정희의 딸.

이승만은 부산에서 재선을 위해 김지태에게 정치자금 3억 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부산 방적을 인수하기로 한 김지태와 임직원을 구속 연행합니다. 김지태는 부산일보 사장실에서 마이크를 설치하고 3.15부정 선거 총격 사건을 보도합니다.

박정희가 부일장학회와 김지태의 재산을 뺏은 이유는 그가 가진 언론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막고, 언론 장악을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MBC의 전신인 부산문화방송과 서울문화방송을 왜 김지태가 세웠을까요?

올바른 언론인과 숭고한 뜻을 가진 인물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좋은 인재를 길러 냅니다.


박근혜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고 타인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아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준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은 사람입니다.그런 그녀가 내년 대선에 나오려고 합니다.

박정희의 말도 안 되는 경제 성과를 가지고 박근혜는 독재와 군사쿠데타의 원흉인 자신의 아버지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마실 물이 없는 사람에게 썩은 물이라도 감지덕지하게 마시라는 뜻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http://impeter.tistory.com/1475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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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용민

토론/사설 2012. 4. 10. 09:42

그냥 김용민

2012. 04. 09. 월요일
기획취재부팀장 죽지 않는 돌고래

1.

4월 8일 일요일 오후 3시 31분, 정신을 차려보니 시청광장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 사옥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탓에 용접공 부사수로 일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 최근 몇 시간의 내 기억을 잃게 만들었고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리라, 우발적으로 추측할 뿐이다.

나는 기억을 잃게 만든 우발적인 사건의 근원을 찾기로 했다. 찾지 않으면 영영 스스로를 잃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2.

사람들이 시청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취재로 나왔다면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미리 시청광장 주변의 거점을 파악하고 차가 대일 가능성이 있는 곳을 전부 체크했겠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기억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무시했다.

오후 3시 39분, 기억을 찾기 위해 시청광장을 한 바퀴 도는 중, 흔하디 흔한 지프 한 대가 눈에 띈다.

총수의 차다. 서울 시내에서 길을 걷다가 총수가 탄 차를 보는 건 흔해빠진 일이라 놀라울 것이 없다. 다만 총수라면 내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대한문부터 미행했다.

차는 시청광장을 끼고 좌회전을 한 후, 프라자 호텔을 지나 다시 우회전, 그리고 프라자 호텔 뒤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물론 졸라 뛰었다. 그는 왜 여기 온 것일까.

전화를 한 후, 물었다.

‘총수님. 어디서 나타나요?’

왜 다짜고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발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도 우발적으로 대답했다.

‘몰라, 나도’

헛웃음이 나왔다. 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한 것일까.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우발적 질문이니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총수가 미웠다.

뭐랄까,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옛 기억이 떠올랐다. 현장 기자들이 가장 힘들 때는 취재를 하러 갔는데 피사체가 어디서 나타날 지 모를 때다. 사람이 꽉 차 발 디딜 틈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설사 어디서 나타날 지 감으로 맞춘다 해도 거기까지 뚫고 가기가 또 고역이다.

게다가 나는 광장을 커버할 렌즈도 없거니와 혼자 다니는지라 그럴 때는 짜증이 난다. 그런 우발적인 취재 현장에 있을 때의 막막한 기분, 그냥 그런 우발적인 상황이 떠올라 요즘은 월급을 제때 줘서 오히려 충격을 주고 있는 총수가 미워졌는지 모르겠다.

취재를 하러 온 건 아니지만 개버릇 남 못준다고 기자들이 개떼처럼 모여있는 무대 위로 갔다. 여기 있다 보면 우발적 단기기억상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발적인 기대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우발적으로 같이 뛰었다.

탁현민이다. 이미 사람들이 둘러 싼 상황이라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취재였다면 여기서 포기했겠지만 그가 선 위치에서는 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발적인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억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에 꽂혀 교통경찰과 스탭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미안했지만 나로선 내 기억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탁현민의 바로 뒤에 서니 압도적인 인파가 피부로 와 닿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용접하는 소리에 귀가 좀 나간 탓인지 뒤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섞여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차 앞으로 뛰어 내려갔다 .

그가 원하는 건 ‘조’였다. 광장을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도로변까지 미어터진 사람들을 향해 왜 하필 ‘조’를 만들자고 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광장 크기만한 ‘조’를 만드는 데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다만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정말로 몇몇 거점을 연결하기 시작하더니 신기하게 ‘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군사문화의 부활인 걸까.

<'조'의 한 획에 해당하는 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다. ‘조’로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호텔의 한 객실에서는 그 거대한 ‘조’를 사진으로 찍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그런 걸 찍어서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를 찍고 있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때, 도로변 오른 쪽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인파를 비집고 나와 도로변으로 뛰었다.

총수다. 도대체 그는 왜 여기 나타난 걸까. 또 자기 차는 어디다 놔두고 대형 선루프가 달린 차를 타고 나타난 걸까. 미스테리한 일이 반복된다. 머리가 아프다.

총수가 잠시 들어가더니 또 누군가가 올라온다.

주진우다. 그는 또 왜 여기 온 것일까. 둘다 정봉주의 판넬을 들고 온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정봉주 구명운동으로 추측하는 것이 가장 우발적이지 않은 추측일 것이다.

개구쟁이같은 표정으로 총수가 폴짝 등장한다. 요즘 월급 잘줘서 구엽게 찍었다.

둘은 차 위에 서서 사람들의 환호성에 보답한다. 총수의 꽉 찬 풀바디에 눈을 뺏긴 그때, 주진우의 발 아래에서 어떤 처절한 움직임이 보인다.

김용민이다.

그를 보는 순간, 잊어버린 무언가가 떠오른다. 이름하여 ‘쌍두노출 더 레전드’. 지난 3월 13일, 박근혜는 부산에서 미리 사람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움직이는 차 안에서 손수조와 함께 약 500미터 가량을 움직이며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여기까지였다면 흔한 ‘쌍두노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쌍두노출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선거법 91조, 101조, 103조를 위반했음에도 부산 선관위에서는 그 카퍼레이드를 계획성, 목적성, 능동성 뿌롸스 득표를 위한 행위가 전혀 없는 우발적인 행위라 진단해 선거법 위반 행위라 볼 수 없다는 명쾌한 해석을 내린 후, 그것은 ‘쌍두노출 더 레전드’가 되었다.

제주도를 강간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YS와 함께 내 고향 부산의 큰 자랑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전설을 뛰어넘는 삼두노출을 보았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쌍두노출 더 레전드'가 깨질 지 누가 알았겠는가.

고향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서울애들이랑 싸우지 말라고 했던. 우리는 말은 험하게 해도 싸울 땐 살살 때리지만 서울 애들은 말하는 건 앵앵대면서 막상 싸우면 엄청 씨게 때리는, 겉과 속이 다른 넘들이라고.

과격하게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서울이 고향도 아닌 세 사람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서울 아리수를 많이 먹어서 사람을 다 베려놓은 것 같다고 우발적으로 추측할 뿐이다.

<사진은 우발적으로 흑백이 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그들은 하나 둘 내려갔고

이렇게 사라졌다.

그들은 왜 온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고 부산의 큰 자랑인 ‘쌍두노출 더 레전드’를 불과 달도 넘지 않은 시점에서 ‘삼두노출’이라는 신화적인 기록으로 쳐발랐을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도로변에 서 있는 미모의 20대 여성을 붙잡았다. 처음엔 굉장히 쌀쌀맞은 태도였는데 딴지일보 기자라고 한 후, 이름을 밝혔더니 ‘어, 돌고래?’라고 알아주어 마음이 편해졌다. 그 김에 물었다.

‘근데 여기 왜 온 거죠?’

‘우발적으로요.’

나는 우발적으로 온 20대 미모의 여성을 찍어 증거로 남겨두고 싶었다. 어디까지나 내 우발적 단기기억상실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내게 돌진하더니 자신의 카드지갑과 휴대폰을 내 손에 쥐어주곤, 내 카메라를 가져갔다. 처음엔 들고 튈까 하다가 순간적으로 가격대 효율비가 맞지 않은 걸 깨닫고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이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모두 지웠다.

이건 써도 된단다. 우발적으로 찍었으니 우발적으로 지운 것일까. 모르겠다. 그녀도 내 기억을 되찾아 줄 순 없었다.

나는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도대체 이들이 왜 여기 온 것인지, 이들과 내 우발적인 단기기억상실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계속 단서를 찾았다. 그때,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인파 속으로 뚫고갈 자신이 없어 무대 앞쪽으로 튀어 나간 후, 호텔 반대 쪽으로 한 바퀴를 뺑 돌아 그곳으로 향했다.

이미 사람들이 몰려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뚫었다. 월급받고 하는 취재였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발적인 단기기억 상실을 앓으며 평생을 살 바에야 뭔가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용민은 가끔 웃긴 했지만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주위의 모두가 그를 환호한다. 악수하기 위해 너도 나도 손을 뻗었고 그를 담기 위해 사진기를 들었으며 연신 김용민을 외쳐댔다.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한다.

김용민은 사람들의 환호가 거세질 수록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김용민을 뺀 모두가 열광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소리지르고 환호했다. 다만 사람들이 김용민을 응원할 수록 김용민의 표정은 굳어간다.

그는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자신에게 사람들이 왜 이러는 지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아니 왜 이러냐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고마운, 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아니 표현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속사정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우발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주진우가 웃겨도 김어준이 웃겨도 그의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다.

한 할머니가 김용민과 악수를 하기 위해 계속 손을 뻗었고 김용민은 그 손을 잡는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지만, 아침의 용접 일 때문에 간 귀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지금은 생각만 해도 우스운 일 투성이지만 어릴 때의 나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질러 혼자 불안해하거나 풀이 죽어있을 때, 할머니가 ‘괜찮아, 다 괜찮아’라며 꼭 안아주면 그 품 안에서 엉엉 울다가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냥, 우발적으로 떠오른 개인적인 추억이다. 무시해도 좋다.

사람들의 환호가 커지면 커질 수록 김용민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주진우가 장난을 쳐도 김어준이 장난을 쳐도 김용민은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조현오 성대모사가 나와야 되는데, 개구쟁이 표정을 지어야 되는데, 그럴 기분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월드컵 경기장에 온 것마냥 열광하는 사람들 속에서, 서로 밀리고 밀려드는 그 인파의 해일 속에서, 김용민에 집중했다.

눈을 보고 싶었다.

이 혼란 속에서, 이 환호성 속에서, 김용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자신을 위해 환호하는 1만 명이 넘는 사람 앞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총수는, 시종일관 장난을 쳤지만, 때때로 김용민이 보는 무언가를 함께 보는 것처럼 보였다.

유난히 인생에 굴곡이 많은 총수는, 물론 그 특유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 굴곡 속에서 앞에서 추켜세우고 뒤에서 무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면서 항상 아홉 살 아이처럼 애써 웃는 그는, 도대체 왜 한참 웃다가 드문드문 그런 표정을 지은 건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주제에 안 그런 척 하는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따라준 동생 김용민과, 이제는 정치인이 되어가는 김용민 사이에서,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의 환호와 열광 속에서, 나로선 알 수 없는 둘만의 무언가를 같이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월급을 잘 줘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랬다.

평소 같으면 총수의 장난을 맞받아 치던 김용민은 끝내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총수도 그걸 알면서 계속 웃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

총수는 유난떠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성격이니까 살갑게 위로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거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탁현민이 간간이 김용민을 웃음짓게 만들 때마다 나는 그의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멀리서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그의 표정을 당겨서 찍고 사진을 확인한 나는,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것처럼 보였다.

김용민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거법 때문이 아니었어도 오늘의 그는 말이 없었을 것 같다.

그냥 인사하고

또 인사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으로 뒤돌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다. 그 뒷모습은 기호 2번 김용민이 아니라 노란색 죄수복을 입은 수감번호 2번처럼 보인다.

주진우가 등을 두드린다. 팡팡.

김어준이 등을 두드린다. 팡팡.

김용민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웃기고 놀리고 소리지르고 환호해도 고개를 숙인 채, 뒤돌아 보지 않는다.

김용민은 등을 돌리고 뭘 닦는 것 같았다. 총수보다 더욱 유쾌하던 주진우도 일순 눈이 반짝했는데 카메라 플래쉬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김용민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돌아서서도 한참동안 그냥 서 있었다.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3.

이 이후로 1시간 동안 현장은 이어진다. 나는 오늘 총 1503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약 2시간에 걸친 당시의 상황을 녹음했다.

사람들은 많이 웃고 많이 즐거워했다. 총수와 주진우의 입담은 광장에 모인 1만 명이 넘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었다.

사진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많이 찍었기에, 누구보다 현장을 잘 전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언론에서 잘 할 것이다.

다만 현장에서, 오늘의 김용민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치인 김용민도 아니고, 김어준의 동생 김용민도 아니고, 방송에서 오버하는 김용민도 아니고, 에어콘에 지는 김용민도 아니고, 돼지라 놀림받는 김용민도 아닌, 그냥 김용민이 가진 본래의 성품을 살짝 본 것 같은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총수와 주진우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동안 한쪽 구석에서 정봉주의 사진을 꼭 안고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보다, 때때로 자기 이야기가 나오면 빙긋이 웃던 김용민.

나는 그가 정치를 잘할 수 있을 지, 정말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한 번쯤은,

기회 정도는 줘봐도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발적으로.

이상이다.

추신 : 마지막으로 도대체 이 행사는 무엇이었으며 나는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나는 길을 가던 미녀 2명을 붙잡아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당신들은 어떻게 여기 온 겁니까?'

'우발적으로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참으로 우발적인 세상이다.

http://www.ddanzi.com/blog/archives/78908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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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재구성] 천안함과 이스라엘 잠수함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은 미국 메릴랜드 체임버스 화장장에서 화장됐다

(서프라이즈 / 철이21 / 2011-02-17)


필자가 쓴 천안함 관련 글은 개인의 추정으로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 글 또한 마찬가지다. 이 글에서는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어떻게 인양했고 어디로 이송했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추적했다.

필자는 전에 쓴 글들에서 UDT 동지회 전 회원이 한주호 준위와 함께 백령도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서 수색한 대형구조물이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에 비밀리에 참가했다가 좌초된 이스라엘 잠수함으로 판단했다. 2010년 3월 26일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이 한국 장보고함과 함께 북한 잠수함 역할을 맡고, 미국 이지스급 구축함인 라센함, 커티스 윌버함과 콜럼비아 잠수함이 한국 이지스급 세종대왕함과 최영함, 윤영하함, 2함대 함정들과 함께 아군이 되어 대잠수함 훈련을 했다. 서해 격렬비열도 부근에서의 훈련은 백령도 NLL 근처까지 확대됐다. 3월 26일 9시께 이스라엘 잠수함은 백령도 남쪽 장촌 포구 앞을 지나다가 연봉바위 근처 암초지대에서 좌초돼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이스라엘 잠수함 좌초 사고를 나타낸 해군 작전지도와 해경 상황도

3월 26일 밤 백령도 해역의 해군 작전지도와 해경 상황도는 이스라엘 잠수함 좌초 사고를 나타낸 것이다. KBS가 3월 28일 9시 뉴스에서 보도한 화면 아래의 '해경 천안함 침몰 상황도' 자막은 사건 직후 이스라엘 잠수함 좌초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KBS 기자가 잘못 해석했다. 해군 작전지도의 최초좌초는 천안함의 9시 22분 좌초에 앞선 이스라엘 잠수함의 9시 좌초를 뜻한다. 이스라엘 잠수함은 해경 상황도의 아래 빨간점의 침몰위치에서 좌초돼 구조 신호를 보냈고, 위 빨간점 반파위치에서 KNTDS 상에서 신호가 끊겼다. 해경 또한 사고 직후 잠수함이 좌초됐다고는 판단하지 못하고 수상함으로 생각해 구조신호를 받은 곳을 침몰위치라 하고 신호가 중단된 곳을 반파위치라고 표시했다. 해경의 반파위치와 해군 작전지도의 빨간점이 같고, 해군 작전지도 왼쪽 하단에 37 54 16, 124 40 41이라고 빨간점의 좌표도 표시했다. 이스라엘 잠수함의 신호가 끊긴 위치다.

해군은 위 해군 작전지도가 "사고 다음날인 3월27일 2함대 22전대장(대령 이원보)이 실종자 가족을 대상으로 해군의 수색작전을 설명하기 위해 가져간 작전상황도를 실종자(故 김태석 원사)의 친척인 이용기가 빼앗아 임의로 '좌초위치, 조석, 평균수면'등을 기입하여 설명중인 장면을 언론사 기자가 촬영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백령도 남쪽 빨간점 주위에 고속정 5척(235고속정편대(3척)과 233고속정편대(2척))과 해경 함정 2척(해경 501함, 1002함), 관공선 1척 등 총 8척이 있고, 빨간점의 좌표를 왼쪽 하단에 '37 54 16, 124 40 41'라고 표시했는데 ,이는 해군이 표시한 것이다. '최초좌초, 조석, 평균 수면'도 천안함 사고를 설명한 게 아니라 해군이 이스라엘 잠수함이 백령도 남쪽(해경 상황도의 침몰위치)에서의 좌초됐을 때 상황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주변 글씨보다 조금 진한, 최초좌초 옆의 별표 표시만 실종자 가족이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해군 작전지도와 해경 상황도가 일치한다.

해군 작전지도와 해경 상황도의 백령도 남쪽 빨간점 부근으로 천안함은 오지 않았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천안함 항적에 따르면, 천안함은 9시 5분 백령도 남서쪽에서 유턴해 9시 9분에 백령도 서남해안으로 북서진했다. 따라서 해군 작전지도와 해경 상황도의 백령도 남쪽 빨간점은 UDT 동지회 회원이 백령도 용트림 바위 앞바다 제3부표에서 수색한 대형구조물의 정체인 이스라엘 잠수함의 좌초 사고를 나타낸 것이다.


천안함보다 이스라엘 잠수함을 먼저 수습하라

필자는 '[천안함]미군의 주 임무는 이스라엘 잠수함 수습이었다 (☞ 바로가기)'에서 천안함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미군이 실제로는 이스라엘 잠수함 수습 작전을 수행했음을 밝혔다. 하퍼스 페리함이 지휘함이 됐고, 용트림 바위 앞바다 제3부표 옆에 정박한 살보함에서 수습작전을 수행했다.

이스라엘 잠수함과 천안함이 함께 좌초되자 한국과 미국 지도부는 고심했다. 천안함이 좌초된 것도 큰 사건인데, 이스라엘 잠수함이 NLL 근처에서 좌초됐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엄청난 곤경에 빠지게 된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밀리게 되고, 한국 사회에서는 반미 감정이 분출할 것이다. 세계적 위상도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 가라앉은 이스라엘 잠수함을 몰래 수습해야 했다.

이스라엘 잠수함을 인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스라엘 잠수함을 인양하려면 해상크래인과 바지선 등 민간업체가 작업해야 한다. 천안함 함수를 인양하려고 쇠사슬 4개를 연결하는 데 며칠이 소요되었다. 4월 24일 오전 8시 함수 인양작업을 시작해 배수작업을 하고 바지선에 탑재하는 데 4시간 45분이 걸렸다. 여기에 수색대원들이 함수 안으로 들어가 실종자를 수색하고, 해상크레인을 분리하고, 모두 마치고 백령도를 떠나기까지 오전 8시 인양 시작에서 11시간이 지나서야 완료됐다. 함미는 37시간이나 걸렸다. 이스라엘 잠수함은 길이가 57m로 천안함 함수(47.6m)보다 조금 길고 수중 배수량이 1900t으로 천안함보다 무겁다.

백령도 용트림 바위는 관광지고 제3부표지점은 장촌 포구와 가까와 관광객과 백령도 주민 몰래 인양할 수 없다.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 승조원(35명 승무원 + 10명의 특수부대 요원) 시신과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에 있는 핵무기가 장착된 크루즈 미사일 등 무기만 인양해야 했다. 그러나 시신과 무기 인양도 쉽지 않았다.

한국군이 천안함을 수습하기 전에 이스라엘 잠수함을 수습해야 했다. 천안함 수습을 끝내고 한국군이 백령도에서 철수하면 미군이 백령도에 남아서 작전할 수 없다. 특히 천안함을 인양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천안함을 인양하기 전에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40여명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어려운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래서 함미 침몰 위치를 알면서도 어민이 천안함 함미를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천안함의 폐쇄되지 않은 환풍기를 통해 격실로 물이 유입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천안함 실종자 69시간 생존설을 유포한 것인가?

이스라엘 잠수함 수색은 사고 다음 날이 3월 28일부터 시작됐다. 하와이 진주만에서 급파된 미국 제1잠수구조원기동단(MDSU-1) 소속 잠수병력 16명은 잠수 안전수칙에 따라 침몰 1주일 동안 한 차례의 수중작업도 실시하지 못했으므로 한국 잠수요원들이 잠수함을 수색했다. 그러다가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또 한국군에 의해 주도되다 보니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해 이송하는 과정에서 노출돼, 3월 31일에는 OBS가 시신 4구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4월 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주호 준위의 순직을 위로하고 미군이 이스라엘 잠수함 수습을 주도하게 된다. 7함대 상륙군 사령관인 리처드 랜돌트 소장이 제5폭발물처리기동단(EODMU-5) 산하 제501소대 소속 기술병력 6명과 함께 4월 1일 밤 하퍼스 페리함을 타고 일본 사세보 해군기지를 떠나 4월 2일에 천안함 사고현장에 도착해 이스라엘 잠수함 수색을 지휘한다.


수심이 25m인 곳에서 100m까지 작업한다는 표면공급식 잠수 연습

YELLOW SEA (April 9, 2010) Navy Diver 2nd Class Brett Lorenz, assigned to Mobile Diving and Salvage Unit ONE, and Republic of Korea (ROK) Sea Salvage and Rescue Unit diver Koo Bang Hung are lowered from the Military Sealift Command rescue and salvage ship USNS Salvor (T-ARS 52) during a joint dive training exercise.

http://www.c7f.navy.mil/imagery/galleries/monthly/2010/04-April/slides/100409-N-9123L-008.htm


위 사진은 4월 9일 살보함에서 표면공급식 잠수(Surface Supplied Diving System: 잠수사의 헬멧에 육상에서 압축 공기를 공급하는 잠수법)방식으로 잠수하는 모습이다. 필자는 전 글에서 천안함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미군이 천안함 침몰 뒤 1주일 동안은 '미군 구조 매뉴얼 기준과 맞지 않는다'며 한 차례의 수중작업도 하지 않다가 제3부표에 가라앉은 대형구조물 옆에서 한 잠수는 연습훈련이 아니라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살보함에서의 잠수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인양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표면 공급식 잠수라는 잠수 방식이 또 증명한다.

<3월 30일 KBS 뉴스9>에서 '심해 잠수장비 조속 투입 절실'의 제목으로 '심해에 박혀있는 함미 부분의 수색과 구조작업을 위해서는 심해 잠수 장비가 꼭 필요하다'며 표면공급식 잠수에 대해서 설명했다.

백 미터가 넘는 심해에 가라앉은 함정의 구조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이 쓰는 장비가 바로 SSDS, 심해 잠수장비입니다. 군 당국이 SSDS를 투입하려는 이유는 기존의 잠수 장비로는 잠수요원들의 심해 작업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산소탱크 등 일반적인 스쿠버 장비를 갖춘 잠수부가 들어갈 수 있는 한계 깊이는 해저 40미터 지점. 침몰한 함미는 이보다 5미터 낮은 해저 45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어 일반 장비로는 무리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잠수 요원들은 1회 평균 20여 분씩을 심해에 머물러 안전 기준 13분을 훌쩍 초과하며 무리한 수색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특수 헬멧과 복장을 장착한 ssds 장비가 투입되면 잠수요원들은 깊은 바닷 속까지 진입하게 됩니다. 해상과 연결돼 있는 호스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고 실시간으로 통신도 벌일 수 있어 수중 용접 등 장시간 작업도 가능합니다.

수색 작업이 완료된 후 선체 인양 작업에서도 SSDS 잠수요원들의 활약이 필수적입니다. 침몰한 배의 하단부에 공기를 주입해 선체를 바로 세우고, 인양선과의 로프 연결 등 구체적인 작업이 이들의 몫입니다. 함미 부분 진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천안함 구조와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ssds 장비의 조속한 투입이 절실한 상태입니다.


천안함 함미에 있는 실종자를 구조할 때 송무진(해난구조장교) 중령은 "심해잠수 장비를 하면 잠수자들에게는 안전이 보장이 되겠지만 지금 시급을 요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잠수자들이 스쿠버로 40미터 이상 다이빙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라고 주장했다. 산소탱크 등 일반적인 스쿠버 장비를 갖춘 잠수부가 들어갈 수 있는 한계 깊이가 해저 40m인데도, 45m에 가라앉은 함미를 수색하면서 스쿠버 잠수를 하면서, 천안함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미군이 한국 SSU 대원과 수심이 25m 되는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 가라앉은 대형구조물 옆에서 100m 심해에서 안전하게 장시간 작업할 수 있는 표면공급식 잠수를 연습하고 있다. 표면공급식 잠수 연습을 하려면 수심이 25m되는 곳이 아니라 100m 되는 곳에서 잠수해야 한다.


통로가 좁고 복잡한 잠수함 수색은 표면공급식 잠수가 적합하다

UDT 동지회 회원은 5m 이상 내려가 해치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했다. 5m 이상 내려가 작업하는 데 100m 정도에서 작업할 수 있는 표면공급식 잠수 연습을 하는 이유는 잠수함의 통로가 좁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2010년 11월 13일 <연합뉴스>의 '미해군 핵잠수함 하와이호 직접 탑승해 보니' 제목의 기사에 잠수함 내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좁은 사다리로 이뤄진 잠수함 입구부터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았고 잠수함 내부에 들어서자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폭 1m, 높이 1.8m의 좁은 통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발판 폭이 좁은 사다리로 각층이 연결돼 있는데 스티브 맥 하와이호 함장의 설명 없이는 미로와 같은 잠수함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웠다.

한 잠수함 승조원은 "잠수함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는데 한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잠수함 내부 수색은 2인1조로 투입됐다. 두 명의 잠수사 가운데 한 사람은 출입구 바깥에서 잠수함 내부의 수색에 필요한 안전 보조업무를 맡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잠수함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게 된다. 잠수함의 통로가 좁아 비상 상황을 위한 산소통을 입구에 두고 공기 공급 호스만 갖추고 내부로 들어간다. 헬멧에 색깔이 다른, 막대 모양의 두 개가 달렸는데, 전등과 카메라다. 전등을 비추고, 카메라로 잠수함 내부가 촬영돼 살보함으로 전송된다. 살보함에서는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 설계도와 카메라로 촬영된 잠수함 내부 화면을 보며 잠수요원에게 지시한다.


살보함 → 상륙정 →하퍼스 페리함 →미군 헬기(MH-60S) → 오산 공군기지

낮에는 시신 인양을 쉽게 정지작업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살보함으로 승조원 시신을 인양했다. 하퍼스 페리함에 적재, 수송돼 함미 게이트로 나온 1651호 상륙정(Utility Landing Craft (LCU) 1651)이 인양된 시신을 대청도 서남방에 있는 하퍼스 페리함으로 옮기면,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HSC-25) 제6파견대 MH-60S 미군 헬기가 하퍼스 페리함에서 미 7공군 사령부가 있는 오산 공군기지로 옮겼을 것이다.

<6월 7일 미 7함대 사이트>에는 제25해상전투헬기대대(HSC-25) 제6파견대가 하퍼스 페리함에 탑재돼 천안함 구조작전을 도왔다는 기사가 있다. 100%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자랑하고 칭찬하고 있다.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을 하퍼스 페리함에서 오산 공군기지로 옮겼고, 돌핀급 잠수함에 실려 있는, 핵탄두가 장착된 크루즈 미사일은 잠수함 위에서 직접 인양해 인근 해상에 있는 이지스급 순양함 샤일로함 같은 미군 군함으로 공수해서 일본에 있는 미 해군 7함대기지로 옮겼을 것이다.

Utility Landing Craft (LCU) 1651

YELLOW SEA (Apr. 4, 2010) An MH-60 assigned to Helicopter Sea Combat Squadron (HSC) 25 prepares to land on the USS Harpers Ferry (LSD 49) after making passenger transfers in support of Republic of Korea Navy salvage efforts in the wake of the sinking of a ROKN ship. (US Navy photo by Lt. Cmdr. Denver Applehans)

> http://www.c7f.navy.mil/imagery/galleries/monthly/2010/04-April/slides/100404-N-7843A-375.htm

YELLOW SEA (April 7, 2010) - An MH-60S "Sea Knight" helicopter rests on the deck of USS Harpers Ferry

> http://www.c7f.navy.mil/imagery/galleries/monthly/2010/04-April/slides/100407-N-7843A-020.htm

YELLOW SEA (Apr. 11, 2010) USS Harpers Ferry (LSD 49) steams in the Yellow Sea April 11 after launching a Utility Landing Craft (LCU) in the Yellow Sea.

http://www.c7f.navy.mil/imagery/galleries/monthly/2010/04-April/slides/100411-N-7843A-035.htm

YELLOW SEA (April 14, 2010) - A U.S. Army UH-60A helicopter practices landing on USS Harpers Ferry (LSD 49) of the coast of Baengnyeong Island, Republic of Korea.

http://www.c7f.navy.mil/imagery/galleries/monthly/2010/04-April/slides/100414-N-7843A-074.htm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인양작업은 천안함 함미를 인양한 4월 15일 전인 4월 14일에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미 7함대 홈페이지에도 4월 14일까지 천안함 사고 현장 사진이 있다. 정작 천안함 함미를 인양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없다. 4월 17일 미군 현장 사령관인 리처드 랜돌트 소장이 사고 현장 지휘권을 구마타오타오 주한 미 해군사령관에 넘기고 철수하며 한국에서의 이스라엘 잠수한 수습작전은 완료됐다. 그러면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화장장 차고에서 발견된 40여구의 시체 더미

美 화장장 차고에서 40여구 시체자루 더미 발견


(워싱턴 AFP=연합뉴스) 의과대학에서 연구용으로 사용된 시신을 포함해 40여구 이상의 주검이 든 시체 운반용 자루 더미가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의 한 장례식장 차고에서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메릴랜드주 당국은 지난달 하순 '더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에 대한 불시조사에서 화장을 기다리는 주검이 든 자루 40개 이상이 차고 안에 널브러진 채 가로 세로 3.5m 크기의 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 5일 이곳에 대해 영업정치 처분을 내렸다.

주검 부대들에선 "진액이 흘러나온 흔적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나고" 있었고, 자루에서 떨어져 나온 신원 인식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고 영업정지 명령서는 밝혔다.

정확히 주검이 몇구인지는 관련 서류마다 다르지만, 이 장례화장장 주인인 윌리엄 체임버스는 조사관에게 60구라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3262309


2010년 5월 6일 <연합뉴스>에 나온 미국 메릴랜드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에서 발견된 40여구의 시체 더미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이 아닐까?

인터넷에서 천안함 사건에서 메릴랜드라는 지역이 두 번 등장한다. <4월 5일 YTN>에 따르면 우리 군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는데,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미 해군 수상전 분석센터와 미 육군 물자체계연구소 소속 전문가들이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고 나온다. 또 <4월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군당국은 천안함 절단면 사진을 미국 버지니아주의 노퍽(Norfolk)과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등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해군 전문분석시설로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고 나온다.

이 외에도 미 해군의 주요 시설이 메릴랜드주에 있다. 국립 해군 의료 센터(National Naval Medical Center)가 메릴랜드주에 있고, 주도(州都)인 아나폴리스에는 해군 사관학교가 있다.


이스라엘 승조원 시신이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국으로 이송됐다면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옮겨졌을 것이다. 워싱턴 D.C.에서 13km 동쪽에 있는 앤드루스 공군기지는 미국 대통령 등 미국 고위 인사들이 해외 순방할 때 이용한다. 앤드루스 공군기지 홈페이지는 Joint Air Base라고 되어 있고, 위키피디아에도 Joint Base Andrews Naval Air Facility라고 되어 있다. 1948년 6월 24일부터 Andrews Air Force Base로 불렸지만, 2009년 10월 1일부터 Joint Base Andrews Naval Air Facility Washington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군 비행장이기도 하다. 이 앤드루스 공군기지가 메릴랜드에 있다.


체임버스 장례화장장 영업정지 명령서

메릴랜드 화장장에서 발견된 40여구 시체 더미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메릴랜드 주정부 홈페이지 장의사 위원회( Board of Morticians and Funeral Directors) Public Oder(장례위원회 명령)에서 '체임버스 장례화장장 영업정지 명령서'를 찾았다. 메릴랜드 당국 조사관이 시체 더미를 발견해 조사한 부분은 발췌했다.


10. 2010년 4월 26일 점검에서 조사관이 화장장 차고로 접근하자 직원이 차고에 있는 시체에 당황하지 말라고 말했다.

11. 조사관이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은 문을 통해 차고로 들어가자마자 화장을 지켜보는 곳에서 시신이 들어 있는 시체 운반용 부대 하나를 발견했다.

12. 조사관이 차고로 들어갔을 때 장례화장장의 트럭 앞에, 차고의 바닥에 가로 세로 약 3.7m의 시체 운반용 부대 더미를 발견했다.

13. 주검 부대들에선 흘러나온 진액과 함께 지독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14, 15. 일부 시체 인식표들이 찢어지거나 진액에 젖어서 시체 자루에서 떨어져 있거나 읽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일부 시체 운반용 부대에 있는 시신들의 신원을 즉시 판단할 수 없었다.

16. 윌리엄 체임버스(체임버스 장례화장장 소유자)는 시체 더미가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이 서비스하는 의료 시설 A에서 계약에 따라 옮겨와 화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17. 윌리엄 체임버스는 의료 시설 A의 이름이 인쇄된 용지에 "2010년 화장 청구서"라고 제목이 붙여진 서류를 제공했는데, 거기에는 46명의 시체의 이름이 있었다. 그 서류에는 의료시설 A로 되돌아가 가족으로 보내지는 화장된 유골과 워싱턴 D.C.에 있는 Mt. Olivet 공동묘지에 매장되는 화장된 유골을 나타내고 있었다.

18. 조사관의 요구에 따라 윌리엄 체임버스는 "4월 22일 목요일에 운반된 시체들이 2010년 5월 10일까지 화장될 것이다."라고 청구서의 맨 위에 썼다.

19. 윌리엄 체임버스는 유골이 매장될 시체의 이름이 기록된 또 다른 의료시설 A의 서류를 제공했다.

20. 윌리엄 체임버스는 "3월 26일 2010년 [sic] 44구의 시체와 인체 조직이 들어 있는 가방 6개를 화장하기 위해 옮겼다."라고 나와 있는 의료 시설 A의 세 번째 서류를 또 제공했다.

21.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체가 차고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의료시설 A의 서류에는 44구의 시체와 6개 가방의 인체 조직이라고 한 반면에 청구서에는 46구라고 되어 있고, 윌리엄 체임버스는 60구라고 말하기도 했다.

22. 윌리엄 체임버스는 시체의 이동과 화장에 관해서 의료시설 A의 요구가 자세히 기록된, 2010년 3월 2일이라고 기입된 의료시설의 문서를 또 제공했다. 그 서류에는 "당신이 시체에 익숙해서, 우리는 시체의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체 운반 부근에 있을 교수와 학생, 직원들뿐 아니라 시체도 정중한 방법으로 운반돼야 함을 반복하여 말했다"고 나와 있었다. 또 그 서류에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시체은 2010년 5월 4일 월요일까지 의료시설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sic]

23. 또 윌리엄 체임버스는 특히 "정중하고 조직된 방법"으로 시체를 운반하고 시체 1구에 230달러, 운반용 부대 하나에 115 달러에 화장한다는 데 동의한 계약서를 제공했다.

26. (4월 27일 재조사)윌리엄 체임버스는 모든 시체들를 화장할 예정인데, 18구의 시체가 혼합될 것 같아 능률적인 목적으로 한번에 2구씩 화장했다고 설명했다. 토마스 체임버스와 윌리엄 체임버스는 18구의 유골은 Mt. Olivet 공동묘지의 한 묘지에 매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또 다른 시체들은 한번에 1구씩 화장돼 그 유골은 의료 시설 A를 통해 가족들에게 되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체임버스 장례화장장(Chambers Funeral Home and Crematorium)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의 화장시설이 있는 건물


체임버스 장례화장장(Chambers Funeral Home and Crematorium)은 미국 메릴랜드에 있고 토마스 체임버스와 윌리엄 체임버스가 공동 소유자다. 4월 26일 메릴랜드 당국의 점검에서 40여구의 시체 더미가 발견돼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의료 시설에서 40여구를 운반했다고 나오는데, <5월 4일 폭스뉴스>에 따르면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수업에 사용된 시신들이다.

5월 4일 폭스뉴스: Funeral Home Ordered Closed After 40 Bodies Found

체임버스 화장장의 40여구의 시체 더미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들인 이유

이 40여구의 시체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첫째, 위 메릴랜드 장의사 위원회의 명령서를 보면, 시체가 44구, 46구, 60구가 나오지만 의료시설 A(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의 서류에는 44구와 46구가 나오므로 60구는 차고에 쌓인 시체의 수가 아니다. 17, 18번에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이 인쇄된 서류의 화장 청구서에는 4월 22일 46구를 운반했다고 나오고, 20번에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의 서류에는 3월 26일 44구를 옮겼다고 나온다.

점검한 날인 4월 26일에 시체 더미가 차고에서 발견됐고, <5월 4일 폭스뉴스>에는 "시체들이 5일 또는 6일 동안 차고에 있었다.(The bodies had been there for five or six days.)"라고 나오므로 3월 26일이 아니라 4월 22일 시체를 운반했다는 기록이 맞다. 20번에 3월 26일 옆에 [sic]라고 적혀 있다. 'sic'는 사전에 '원문대로(의심나는 또는 명백히 그릇된 원문을 인용할 때 뒤에 sic라고 표기함)'이라고 나와 있다. 3월 26일은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3월 26일은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조지타운대학교 서류에 3월 26일이 기재돼 있다면, 3월 26일은 40여구의 시체가 사망한 날을 기록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3월 26일 사망한 시신 44구(또는46구)를 화장하기 위해 4월 22일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으로 운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백령도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서의 이스라엘 승조원 수습 작전은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인양하기 전날인 4월 14일에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미 7함대 홈페이지에는 4월 14일(의무 헬기가 하퍼스 페리함에 착륙하는 사진을 찍은 날)을 끝으로 천안함 사고 현장의 사진이 없다. 천안함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미군이 정작 천안함을 인양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없다. 4월 17일 현장 사령관이 7함대 상륙군 사령관인 리처드 랜돌트에서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인 구마타오타오로 바뀐 것으로 보아, 4월 14일에서 17일 사이 마지막으로 인양된 잠수함 승조원 시신이 오산 공군기지에서 미국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운반되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국립 해군 의료 센터(National Naval Medical Center)로 이송됐다. 국립 해군 의료 센터에서 모든 시신들의 신원확인과 사체검안을 하고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돼 해부학 수업에 사용됐다면, 4월 22일 체임버스 화장장으로 운반된 시체들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들일 수 있다.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된 40여구의 시신이 일반인이 기증한 시신일까? 의대에서 실습용으로 쓰이는 시신은 생전에 본인이 장기 또는 시신기증을 약속했거나 사후에 친권자가 시신 또는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희망자 사망 시 유족이 반대하면 시신기증은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은 시신기증이 활발하므로 일반인의 시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검의 진액이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는 시신 40여구를 한꺼번에 한 화장장에서 화장하는 게 일반적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2번에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 서류에 '시체의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 large quantity of cadavers)'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고 뉴스에도 보도됐겠지.

셋째, 44구(또는46구)의 시신 수는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 승무원 35명 + 특수요원 10명과 공교롭게도 비슷하다. 필자는 전 글에서 해군 작전지도의 빨간 점 옆의 38 숫자가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수로 짐작했으나 사고 직후 우리 해군도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수를 정확히 몰라서 추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38구에 일반인이 기증된 시신이 더해져 44구(또는 46구)이거나 승무원 수를 나타낸 게 아닐수도 있겠지만.

5월 3일 메릴랜드 장의사 위원회의 명령서를 근거로 추론하면, 3월 26일 사망한 44구(또는 46구)의 시신들이 4월 22일 메릴랜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체임버스 장례화장장으로 운반되고 화장돼서 18구는 워싱턴의 Mt. Olivet 공동묘지의 한 묘지에 매장됐고, 다른 26구(또는 28구)의 시체들은 조지타운대학교를 통해 가족에게 돌아갔다.


결론

백령도 용트림 바위 앞바다의 이스라엘 잠수함 승조원 시신의 이동 경로. 살보함 → 상륙정 → 하퍼스 페리함 → 미군 헬기 → 오산 공군기지 → 앤드루스 공군기지 → 국립 해군 의료 센터 →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 → 체임버스 장례화장장.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국립 해군 의료 센터까지의 거리는 김포공항에서 올림픽 공원까지의 거리(28.5km)와 거의 같다.

천안함 구조를 도우러 왔다는 미군은 천안함 침몰 뒤 1주일 동안은 '미군 구조 매뉴얼 기준과 맞지 않는다'며 한 차례의 수중작업도 하지 않다가 천안함 함수와 함미 침몰 위치도 아닌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서 잠수를 했다. UDT 동지회 회원이 5m 이상 내려가 수색한 대형구조물이 있는 곳이다. 함미 수색에 필요한 표면공급식 잠수는 준비에 3~4일 걸린다며 스쿠버 잠수를 고집했으면서 수심이 25m 되는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서 살보함을 고정시키고 수심 100m 정도에서 작업할 수 있는 표면공급식 잠수를 했다. 미군 헬기는 4월 6일 살보함 옆에서 바닷속에서 인양하는 예행연습을 했다. 그 대형구조물이 잠수함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형구조물의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 한미연합사령부는 2월 28일부터 키 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 훈련을 실시하며 독수리 훈련의 일부는 4월 30일까지 계속된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번 훈련은 2년 만에 미국 항공모함도 참가하며, 해외주둔 미군과 주한 미군 1만 2800명과 한국군은 동원 예비군을 포함해 20여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한다고 알려졌다. 북한 급변사태 대비 군사훈련은 공세적으로 대북 봉쇄와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무력 충돌을 넘어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물쭈물하다간 정말 큰일 난다.


철이21

※추신: 영어 실력이 모자라고 국어 실력도 부족해서 무척 힘들게 번역했습니다. 번역이 잘못됐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truth_pcc772&uid=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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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문학] 천안함 사건, 이것이 팩트다


2012. 4. 4. 수요일

아외로워


봄도 되고 했으니 외롭고 쓸쓸할 뿐 아니라 왠지 모를 설레임과 싱숭생숭함도 내 마음을 찾아온다. 감수성이 폭발하는 이 계절에 소설을 한 편 써 보았다. 봄을 맞이하는 내 마음이여. 문학으로 승화되어라.


(이 소설은 각종 언론 보도 및 제보, 이미 존재하는 소설들을 짜깁기 한 것이다. 표절시비가 일까 봐 미리 알린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군함이 침몰한다.

배의 이름은 INS돌핀.


이 배는 이스라엘 해군이 보유한 돌핀급 잠수함의 1번함이다. 배를 분류할 때 'XX급'이라고 하는데 이 XX는 해당 분류에 속하는 함정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배의 이름이다. 즉 돌핀급 잠수함 중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배가 돌핀이라는 말이다.

만리타국의 바다에서 침몰한 이 배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1999년에 취역한 이 잠수함은 다른 나라의 동급 잠수함과 비교되는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25.5인치(650mm)어뢰관이다.

러시아나 구 공산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미국 및 동맹국 잠수함의 어뢰관은 그 규격이 대체로 통일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서방세계 잠수함의 어뢰관은 모두 533mm. 우리나라가 독자개발한 백상어 어뢰나 천룡 미사일도 모두 533mm어뢰관에서 발사된다.

이스라엘은 잠수함 설계국인 독일에 650mm의 어뢰관을 포함시키도록 강력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209급 디젤 잠수함(우리나라도 독일의 209급 잠수함을 쓰고 있으며, 장보고급 이라고 부른다)을 대충 주려고 했던 독일은 209급의 설계를 대대적으로 변경, 거의 새로운 함종인 돌핀급 잠수함을 만들어준다.


팝아이 순항미사일

이스라엘은 이 커다란 어뢰관이 특수부대를 수중 침투시키는 통로로 사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어뢰 대신 사람이 들어가서 수중침투 임무를 수행할 거라는 말이다. 이 어뢰관을 그렇게 쓰지 말라는 법도 없긴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이 어뢰관의 용도에 대해 강력한 의혹을 품었다. 이 어뢰관으로 이스라엘이 보유한 팝아이 순항미사일(AGM-142 Have Nap)을 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안보연구소의 애브너 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핵탄두 300여개를 보유하고 있으며(물론 이스라엘 정부는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팝아이 순항미사일은 200킬로톤 급 핵탄두를 1500Km 이내에 투하할 수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해군은 인도양 스리랑카 인근에서 돌핀급 잠수함을 이용한 순항미사일 발사 실험까지 한 바 있다.

즉, 돌핀급 잠수함과 일반 209급 잠수함이 가진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핵미사일을 탑재 했느냐 아니냐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사진(=예루살렘 포스트)

자, 이제 다시 3월 26일 백령도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의 영해이며, 국제적인 분쟁지역인 이 바다에 머나먼 나라 이스라엘의 잠수함은 무슨 까닭에 와 있었던 것일까.

당시 서해안에서는 한-미 연합 키리졸브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해안에서 벌어지는 한-미 연합군의 해상 훈련 말이다. 이스라엘로서는 꼭 참가하고 싶은 훈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해군의 유사시 주요 작전지역 중 하나는 중동, 특히 이란 인근의 얕고 탁한 바다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해군에게 있어서 서해는 가장 훌륭한 훈련지였을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혈맹인 미국은 이스라엘의 훈련 참가를 승인했을 것이다. 승인해 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굳이 서해가 아니어도 이스라엘과의 합동 작전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문제 아닌가. 미리 훈련해둬서 나쁠 게 없다.

이스라엘이 키리졸브 훈련에 참가했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정기열 교수는 이스라엘 돌핀함의 키리졸브 훈련 참가 및 침몰 사실이 비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나온 것은 2010년 6월이었고 당시로서는 민간인들이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2011년 말, 드디어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돌핀함은 API(공기불연소추진장치)장착 및 항속거리 확장 등 성능 개선을 위한 대대적인 개보수를 지난 “2010년”부터 “극비리에” 진행하고 있었다. 취역한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잠수함을 2년 간 개보수하는 것이 과연 일반적인 일일까?

사진(=Strategy Page)

즉 이스라엘의 돌핀함이 침몰했다는 주장이 나온 바로 그 시점부터 돌핀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차라리 잠수함 한 척을 더 사는 것이 나을 정도의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침몰한 돌핀함을 예인한 뒤,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수리하고, 수리한 김에 개보수까지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심지어 돌핀함 침몰로 사망한 이스라엘 해군 50여 명의 시신이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화장되었다는 보도가 이스라엘 현지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이스라엘 잠수함이 당시 훈련에 참가했었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PCC-772 천안

그렇다면 그 날 그 바다에서 침몰한 또 하나의 군함, 천안함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날 처음으로 서해안에서 작전을 수행한 INS돌핀이 표류한다. 표류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망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고, 얕은 바다에서 어리버리하다가 좌초됐을 수도 있다. 어쩌면 표류까지는 하지 않고 그냥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어리버리하는 외국배를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해군의 함정 3척이 출동한다.

그 세 척의 배는 각각 속초함, 강릉함 그리고 천안함이었다.

그리고 사고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천안함은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사고선박인 INS돌핀과 충돌한다. 합조단의 조사 보고서를 결론만 빼고 살펴보면 천안함은 충돌 이전에 좌초했던 것 같다. 돌핀함을 구하러 간 천안함이 구조를 시도하다 오히려 좌초하고, 어리버리하던 돌핀함이 들이받았을 수도 있다. 뭐 그건 모르겠다.

나는꼼수다 봉주 10회에서 ‘삐-’처리된 부분, 천안함의 손상부위를 살펴보면 미국 잠수함과 충돌했다기엔 너무 작고, 여기에 딱 들어맞는 배는 ‘삐- 잠수함’ 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삐-’는 ‘이스라엘’ 이며,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INS돌핀’ 이다.

어쩌면 돌핀함은 그 때 까지는 단순히 표류만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안함과의 충돌로 같이 침몰해 버렸을 것이다.

한-미 연합군으로서는 난리가 난 거다. 천안함도 천안함이지만 비밀리에 훈련에 참가한 동맹국의 잠수함이 침몰해 버린 것이다.

이게 왜 큰일인지 살펴보자. 이스라엘은 모두가 알다시피 중동의 모든 국가들과 사이가 나쁘다. 그중 이집트, 이란 등과 사이가 특히 나쁘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중동지역에 지정학적 지렛대로 사용하는 나라다. 미국은 중동 국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항상 쓰리쿠션으로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그런 미국이 이스라엘의 잠수함, 그것도 핵탄두를 보유한 잠수함을 ‘서해안’에 불러들여 훈련을 하다가 뽀록난다? 이거 심각한 거다. 중국이 이걸 계기로 이란과 손잡을 수도 있다. 베이징이 이스라엘 핵무기의 사정권에 들어갔다는 것, 이거 엄청난 문제다. 중국-북한-이란 등으로 이어지는 반미연합 결성에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오만 국제 축구대회에서 이란이 중국을 2-0으로 이겼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핵탄두를 보유한 잠수함이 침몰했다! 그것도 악의 축 부카니스탄이 지척인 위험천만한 해역에서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생존자 수색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밀려서는 안 되지만 밀린다.

이제 한-미 연합군의 목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이스라엘 잠수함의 존재를 은폐한다. 둘째, 핵탄두를 신속하게 회수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스라엘 잠수함이 침몰한 것은 불행이었지만, 천안함이 같이 침몰한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천안함 침몰을 핑계로 신속하고 대대적인 한-미 연합 수색작업을 전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은 잠수함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밀폐격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해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군은 이 사실을 숨기고 마치 천안함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무척 높은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다. 생존자가 있다고 해야 당시의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대중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겠지만 사실은 핵탄두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천안함 수색작업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한 UDT대원, 이 대원이 투입된 지점은 천안함이 실제로 침몰한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당시 해군은 천안함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침몰 지점도 파악하지 못했으면서 엉뚱한 해역에 최정예 요원을 투입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는 아마도 핵탄두 인양작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준위의 사망 지점과 제3 부표의 위치가 겹친다

그리고 제3부표. 우리나라 해군은 천안함의 선수와 선미가 침몰한 곳에 붉은 부표를 띄워놓았다. 그러나 전혀 상관없는 지점에도 똑같은 모양의 부표를 띄워놓았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제3부표다. KBS보도에 따르면 여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철제 구조물이 있으며 그 구조물에는 해치 등이 존재한다고 했다.

MBC의 보도에 따르면 제3부표 인근에서 미군 헬기가 막대기 모양의 물건을 인양한 뒤, 인양한 다른 물건들을 실어 놓는 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남쪽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고 2달 여가 지난 2010년 6월 8일에는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이례적으로 방문했다. 국빈 방문으로 할 지 실무 방문으로 할 지 제대로 정하지도 않고 일단 방문해서 우리 가카와 이야기를 한 뒤 돌아간다. 아주 이례적으로 조용하게 말이다.


자, 정리해보자. 2010년 서해에서 있었던 한-미 연합 키리졸브 훈련에 이스라엘 해군의 잠수함 INS 돌핀이 꼽사리로 참가한다. 참가 목적은 미국과 연합작전 능력 배양 및 얕고 탁한 바다에서의 작전능력 향상.

그러나 INS 돌핀은 불행히도 좌초하게 되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대한민국 해군의 천안함과 충돌, 탑재하고 있던 핵무기와 함께 침몰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훈련 참가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미군은 한국과 함께 이 사건을 덮기 위해 노력한다. 사건 당사자인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침몰한 배는 천안함 한 척만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문제는 INS 돌핀에 실려있던 핵탄두였다. 빠르게 수색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 만약에 천안함을 초기에 쉽게 발견해 버리면 천안함 침몰지점 이외의 지역을 수색할 수 없다. 이스라엘 잠수함의 존재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천안함을 발견하기 어려운 척 했다. 일반인들에게 삽질로 보였던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수색작업은 실은 핵무기 인양작업을 감추기 위한 연막이었다. UDT대원이 순국할 정도로 무리하게 진행되는 작업에 대해서는 ‘천안함 승조원들이 생존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라고 둘러댔다.


천안함 격실에 공기를 주입해서 생존자들을 살리겠다는 계획

이스라엘 대통령은 사수 수습을 위해 사건 2달 뒤에 한국에 급히 방한한다. 그리고 물 속에 있던 사망한 돌핀함의 승조원들을 미국 메릴랜드로 이송해서 화장한다.

바다에 잠긴 돌핀은 어떻게 됐을까? 이스라엘이 딱 3척 보유한 돌핀급 잠수함, 그것도 돌핀급의 1번함이 사라질 수는 없다. 아마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동으로 수중으로 예인 했을 것이다. 이 배가 실종됐다 수리해서 나타나는 기간에 대한 핑계는 대대적인 개보수였다.

돌핀함은 어떻게든 덮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핑계를 만들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에 의한 테러사건으로 위장한다. 우리 정부로서는 선거에서 북풍으로 활용 할 수 있으니 좋았고 미국으로서는 INS 돌핀의 침몰을 은폐할 수 있어서 좋았다.

1번 어뢰, 인간어뢰, 친환경녹색어뢰는 모두 이스라엘의 잠수함과 핵탄두를 은폐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다.


어떤가. 역시 봄은 문학의 계절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 너무 진지하게 읽진 말도록 하자.


http://www.ddanzi.com/blog/archives/7787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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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 정동영을 만나다

2012. 4. 2.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한참 전 어느 날.

박지원 전 장관의 인터뷰를 마친 시점에서, 딴지 수뇌부에서는 모종의 비밀 회합이 열린 적이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 사이에서 한참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이 타이밍에 국내 유일의 민족정론지 딴지일보의 임무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중차대한 주제를 가지고 딴지 사옥 지하 27층 비밀 회의실에 관계기관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것이다. 모인 사람들의 명단은 말할 수 없음이 당연하고, 만약 내가 말을 하게 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모두는 죽어줘야 되는 거다. 영화 보면 항상 그렇잖은가.

결국, 여러 가지 불비한 여건상 딴지 정신에 걸맞는 궁극의 뽕빨이너뷰까지는 못하더라도, 유권자들의 보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정보들을 최대한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음은 당연지사.

정치부장이라는 삼엄하기 짝이 없는 유령직책을 맡고 있던 본 기자, 분위기의 중압감에 눌려 나도 모르게 “질 수 밖에 없는 적의 진영에 뛰어든 후보자들”을 싸그리 훑어, 장대한 시리즈 인터뷰 기사를 쓰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 버리게 된다. 너불 편짱의 치명적인 협박에 굴복해서 한 얘기는 결코 아니었다… 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나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선이라는 전국적인 싸움판을 지켜보다 보면, 적진에 뛰어든 후보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도저히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에 따르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이유에 의해, 또 다른 미래에 대한 계산에 의해, 또는 오기로, 또는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심지어는 본인이 걸린 정치중독증에 따른 주화입마의 결과로 인해 그러기도 한다.

그 중 대부분은 예상대로 참패를 하기 마련이다. 물론 극히 일부는 예상을 뒤엎고 승전보와 함께 개선하여 정치적 입지가 확 넓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거야 로또 맞는 거랑 비슷한 일이고..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한쪽 구석에는 개인적인 궁금증도 있었다. 시리즈의 컨셉이 그렇게 정해지자, 남은 일은 과연 누구를 만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 편짱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이거였다.

정동영.

시리즈 컨셉에는 잘 맞는다. 논의 당시 정동영은 부산이 되었든 강남이 되었든 민주당이 이기기 어려운 곳에 가서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상태였고, 그 두 곳 모두 민주통합당의 깃발을 들고 가서는 낙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상식적일 수 밖에 없는 “적지”였다.

하지만,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난 조건반사적으로 “정동영 인터뷰는 내가 못한다”라고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정동영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나의 인식은, 아니 나의 감정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한, 아니 그냥 얘기하자. 매우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야 제쳐놓더라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입장을 바꿔 다시 그 인터뷰를 내가 진행하겠다고 말을 해 버리게 된다. 그런 나의 변덕의 원인은 바로 정동영 본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그 당시에 이미 말만 앞세우고 구태 정치를 일삼으며 지난 대선을 망쳐먹은 장본인에서, 거의 모든 집회 현장에 나타나고 끊임없이 행동하는 정치인으로 “정동영은 변했다”라는 의견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는 고집을 피우면서 “변한 게 아니라 변한 척 하는 거다”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기도 하다. 거기에 더해 “비록 변했다 하더라도, 정동영은 언젠가는 또 사고를 칠 것이다”라고 악담까지 늘어놓던 중이었기도 하다.

그러나 다음의 사진 한 장은 그런 내 입장에서도 뭔가 아니다 싶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위중인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던, 업계 전문용어로 “아시바”라고 불리우는 건설용 비계에서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내려오는 정치인 정동영의 모습.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책 한권의 말보다도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도 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난 이건 뭔가 다르다는 놀라움에 빠져 버렸고, 과연 이 혼란 속에서 진실의 무게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정동영과의 인터뷰가 준비되기 시작했더니 이번에는 또 정동영 측에서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부산 출마를 포기하고, 강남으로 방향을 튼 정동영 측은 강남을 지역구를 타겟으로 선정했고, 오랜 시간동안 강남을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해오던 전현희 비례대표 의원 측과 마찰이 빚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지역구는 경선을 치르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고, 그 경선에서 정동영이 승리하면서 야권 단일후보로까지 선정되게 되었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가하게 인터뷰를 할 짬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거의 모든 종류의 장외집회에 참여하던 정동영이 제주 해군기지 건과 관련해서 강정까지 날아가기도 했고.

결국 일정은 예상보다 훨씬 지연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 난관에 굴복한다면 딴지스가 아니지. 뒤늦게라도 인터뷰는 성사되었고, 나는 19대 총선 서울 강남을 지역구 공식 야권단일후보 정동영 후보를 만나고 왔다.

인터뷰의 핵심은 이거다.

과연 정동영은 변했는가? 그리고 그는 적지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가?


인터뷰는 지하철 대치역 7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대한민국 자식연합이 디자인해준 정동영 후보의 캠프에서 있었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오픈 카페 개념의 캠프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덕분에,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같이 녹음되고, 후보자와 인사하려는 손님들 덕분에 인터뷰는 수시로 중단되었으며, 공식 일정의 압박으로 인해 시간에 쫓기며 어렵사리 진행되었다. 캠프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사진은 죽지않는 돌고래 기자가 노련하게 찍어줬고, 정말 힘들었던 녹취는 이동현 필진이 담당해주었다. 쉽지 않은 일에 수고해준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인터뷰가 개시되기 직전, 캠프 사무실 앞에서 뜻하지 않았던 꽃미남(죽지않는 돌고래 말고) 둘을 만나게 된다.


바로 정동영 후보의 장남과 차남. 어느새 훌쩍 자라 부친의 선거를 돕겠다고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던 두 청년을 만나 잠깐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사설이 길었다. 바로 들어간다.

(이하, 물뚝심송=물, 정동영 후보= 정)


물: 후보님께서는 기존에 워낙에 질곡을 많이 겪어 오신 분이라서, 최근 후보님의 긍정적인 행보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신뢰와 갈채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안좋은 모습을 기억하면서 불신을 가진 분들 역시 많이 있다는 거지요. 그런 불확실한 부분을 털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시간 배분을 과거의 일 절반 정도, 총선에 대한 이야기 반 정도 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정: 과거 이야기가 너무 많네. 하하하하

물: 최선을 다 해서 솔직하게 털고 가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솔직하고 마음 편하게 얘기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 예. 마음 편하게 하겠습니다.

물: 워낙 많이 알려지신 분이라서 뭐 과거 얘기를 많이 물어보진 않을 거고요. 정식으로 이번 19대 총선에 강남을 지역구에 출마하신 정동영 후보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

물: 대학 시절에 운동권 경력은 별로 없으시죠?

정: 대개 그렇게 알아요.

물: 알려져 있지 않다는 건가요?

정: 저는 유신학번이었거든요.

정동영 후보는 72학번이다. 방송인 출신이라 그런지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되면 놀라기도 한다.

물: 그렇죠.

정: 유신학번이었고, 그 유신에 저항한 첫 시위의 맨 앞자리에, 앞줄에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물: 그럼 알려진 바와 다르게 (학생 운동을) 하셨던 거네요?

정: 저는 그런 걸 대단하게 자랑한 적은 별로 없는데요. 73년 10월 2일, 유신철폐, 박정희 타도를 외친 서울 문리대 10월 2일 첫 시위로 해서 구류 한 달을 살았어요.

물: 구류까지 사셨던 건가요?

정: 한 달 살았죠. 무기정학을 맞았는데, 그리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죠. 74년 4.3. 민청학련이라는 그 이름은 그 날에야 알았어요. 데모다운 데모도 못 해보고 전부 다 잡혀갔어요. 그때는 제가 동대문 경찰서하고 서대문 구치소에서 3개월 구속됐었죠.

물: 그런데 그런 기록들이 왜 알려져 있지 않은 거죠? 자랑을 안 하셔서 그런 건가요?

정: 제가 자랑하지 않아서 그렇죠. 자랑거리는 아니죠. 그 시대에 누구나 다 고민하고 그 대열에 함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출소해서 서대문 구치소에서 나와서 바로 강제 집행영장을 받고 강제 징집돼서 삼 년 군생활을 했죠.

그런데 강제 징집 돼있을 때, 보안사에 가서 고문받은 게 나한테는 제일 힘들었었어요. 친구들 문제 때문에. 조작된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게 다 조작사건이었거든요. 거기에 연루되어서 제가 보안사 안가에 지하실에 가서 고문을 당했던 것이 제일 힘들었던 기억이에요.

물: 그런 경력은 좀 알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정: 얘기할 기회에 가끔 했죠. 우리 동기들이 다 알죠. 서울 문리대 72학번 구속자가 한 70~80명 돼요. 우리 동기들이.

물: 많습니다.

정: 그래서 모임이 있죠. 마당모임이라고. 몇 년 전에 우리가 모인지 삼십 년 됐을 때 책도 하나 냈죠. “마로니에 아래서” 라고…

정확한 제목은 <새벽을 엿본 마로니에 나무> 였다.

정 : 그거 뭐, 우리 때는 자랑이 아니에요. 감옥을 갔건 안 갔건 그 시대를 같이 살았으니까.

정동영의 학생 운동권 기록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너무 오래된 일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본인의 말대로 스스로 자랑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불우했던 시대의 피해자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최소한 시대가 부여하는 사명에 대해 등 돌리고 외면했던 비겁자는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 줄 필요가 있다.

방송인 정동영

물: 그런 경험을 다 겪으셨고, 졸업 후에는 방송일을 하신 거죠?

정: 저는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죠.(웃음) 제대했는데 제 학적이 유지되고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물: 제적됐는데.

정: 구속됐다가 바로 군대로 끌려갔기 때문에, 당시에 학적이 살아있어서 복학해서 취직을 할 수 있었지요. 70년대 말, 80년대에, 우리 운동했던 친구들 중에 취직한 사람이 몇 안 돼요. 그래서 늘 부채의식이 있었죠.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그런…

물: 어떤 건지 알겠습니다.

정: 그리고 또 광주 취재를 갔었거든요. 5.18 광주에. 그때 막 신입기자 때인데 광주 취재에 대한 부담. 한 줄도 보도하지 못했잖아요.

물: 취재만 했을 뿐.

정: 그렇죠. 역시 또 살아남은 자로서, 죽은 자에 대한 부끄러움… 이런 게 제 젊은 시절의 그늘이죠. 그늘. ‘내 청춘 돌리도’ 그런 심정이 가끔 들어요. 20대 10년의 기억은 온통 그렇게 어둠의 터널 속에 있는 기억입니다.

물: 알겠습니다. 그렇게 방송계 일을 쭉 하시다가 정치를 처음 시작하시게 됐는데, 정치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를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정: MBC 노조운동이에요. 제가 MBC 노조를 창립한 사람 중의 하나에요.

물: 노조 창립 멤버로서?

정: 87년 12월 13일인가 그런데. 방송사 노조로는 대한민국 최초, 언론사 전체 노조로는 한국일보에 이어서 MBC 노조가 두 번째로 창립됐고. 그때 마흔 세 명 기자들이 모여서 MBC 노조를 만들었는데, 밤 12시에 지하식당에 스며들어서. 그때 제가 10년차 됐던 최고참 기자였고. 이른바 운동권 출신 기자로서, 그런 시대를 겪고 나서 생업으로서 80년대 전두환 정권 밑에서 기자를 한 거란 말이죠. 그런 부끄러움이 있었죠.

물: 하지만 그건 본인의 선택은 아니잖습니까?

정: 그 시대에 의해 강제된 거지만, 시대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늘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녔어요. 내가 다닐 직장은 아니다. 그런데 노조를 만들면서, 그래, 세상을 바꿔보자.

물: 이것이 할 일이다?

정: 그랬는데, 역시 언론 노조운동만으로는 기자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했죠. MBC 노조가 사장을 두 명, 세 명 몰아내기도 했고,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고, 저는 투쟁의 선봉에 서지는 못했습니다만, 늘 노조의 배후로 몰리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수평적 정권교체 없이 언론의 자유 없다’라는 생각이, 김대중 총재가 정계복귀 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 만들었을 때 참여 제안을 받았던 것이 정계 입문의 배경이지요.

물: 잘 알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서 굉장히 다양한 투쟁 경험을 갖고 계시는 걸로 보입니다.

정: 제 나름대로는 철들고부터, 그러니까 20대 청년시절부터, 늘 저항해 왔죠. 그런데 그 저항이 투사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고, 늘 적극적 저항이든 소극적 저항이든…

물: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저항은 다 해봤다?

정: 내가 스스로에게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서 걸어왔고, 그 다음에 벽에 부딪히거나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내가 서 있을지언정 등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시대를 배신하지는 않았다, 하는 자존심을 갖고 있죠.

물: 잘 알겠습니다.

유신 반대 투쟁으로 구치소 생활도 하고, 강제 징집되어 고문까지 당하던 운동권 학생 정동영은 방송계에 들어와 방송인의 꽃이라는 앵커까지 하게 되면서도, 언제나 저항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다들 잘 아는 정동영의 역사는 바로 MBC의 앵커로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최초로 방송사 노조를 설립한 저항하는 정동영이 있었다.

또한 뉴스를 진행하던 잘생긴 얼굴의 방송인 정동영. 이 정동영을 정치로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김대중이다. 한국 정치사의 거인 김대중, 그의 그늘은 이렇게도 넓고 크다.

열린우리당 초대 당의장

물: 정계활동을 쭉 하시다가 하나의 전기가 됐던 게, 최초로 노무현을 선택하셨었죠?

정: 그거는 천정배 의원이었고. 경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 중에는 제가 끝까지 도왔죠.

물: 그때 어떤 관점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시게 된 건가요?

정: 그건 당연한 거죠. 같이 경쟁했는데, 우선 경쟁 과정에서 다들 도중하차해서 경선이 무산될 뻔 했잖아요?

물: 예.

정: 그런데 이 경선이라는 게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그때가 한국 정당사에서 최초였거든요.

물: 모험이었죠.

정: 그래서 국민경선을 완성해야 한다. 기록으로도 완성해야만 한다는 책무감, 왜냐면 제가 국민경선을 제안했던 사람이니까, 국민경선의 제안자로서, 어쨌든 경선을 제안했던 사람으로서 이것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경선지킴이 역할을 했던 것이고, 졌으니까 당연히 돕는 거고요. 당연한 것입니다.

미세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아주 중요한 정동영의 주장이 담겨 있다.

정동영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이라는 신화가 쓰여지는 과정에서 노무현의 바로 옆에 서 있던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노무현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던 사람이다. 이 인터뷰에서도 그 얘기는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노무현을 만들어냈던 노사모 역시,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동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정동영을 미워하는 사람들로 나뉘기까지 한다.

경선과정에서부터 (천정배 의원에 이어) 노무현과 함께했던 정동영이면서도, 왜 그랬냐는 질문에 “경선이라는 최초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기 위해”라는 답변을 “자신이 일찌감치 노무현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보다 앞세워 대답을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정동영 후보가 섣부르게 노무현의 가치를 칭송하는 발언을 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일찌감치부터 알아본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친노세력들을 의식해서 하는 정치적 수사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동영은 그 이전에 경선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답변을 한다.

일관된 면이 있다.

정 : 그리고 그 다음에 경선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이른바 쇄신정풍운동이 있는 겁니다.

물: 그렇죠. 그게 시작됐기 때문에 나온 것이죠.

정: 2000년에. 우리가 97년 말에 집권했는데, 집권하면 정말 새로운 세상이 올 걸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잖아요?

물: 누구나 기대했죠.

정: 그런데 새로운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대한 낙심과 실망이 있었죠. 그래서 정권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각종 게이트와 부패와 이른바 수구세력에 포위되어서, 그 속에서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쇄신과 정풍이었고, 그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거였어요. 2000년 12월 2일인데, 청와대 최고회의에서 동교동계 퇴진을 요구하고, 당과 정부의 일대 쇄신과 정풍을 요구했지요.

물: 당시에는 동교동계 쇄신을 요구하는 작업이 누구나 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못 하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얘기를 꺼내신 거네요?

정: 고양이 목에 방울 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때는 사실 제가 정치를 안 해도 좋다는 배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정치를 한 목적이, 정권을 바꾸는 것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했고, 실제로 정권이 바뀌었잖아요. 참여하자마자 2년 만에 바뀌었으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셨을 때 정치참여의 제 1차 목표는 달성됐다 이거죠. 그 다음은 이제 내 정치인데, 내 개인적인 정치적 계획은 그때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정말 원도 한도 없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으면 좋겠다, 하는 열망으로 이 정권을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는데, 이 기대가 실망으로 절망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이거를 내가 막지 않으면, 내가 일어서서 외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밤새 기도하고 행동했습니다.

물: 종교는?

정: 천주교, 카톨릭.


밤새 기도했다는 말에 신경이 쓰여 물어본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소망교회 같은 대형교회의 신도는 아니었다.

기억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긴 하지만, 사실 김대중 정권 말기의 민주당은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지속된 수구언론의 공격속에서 대통령 가족들의 문제가 연일 전국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당에서는 또 동교동계 가신그룹의 전횡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던 시점이다. 이 상황에서, 뒤늦게 영입된 방송인 출신 정동영이 동교동계에 맞서 당의 쇄신을 요구하면서 정풍운동을 주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린 돌출행동이 된다. 만약 2002년 대선을 앞둔 경선과정에서 동교동계 후보가 다시 대권에 도전하게 되고, 당권이 동교동계의 손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더라면, 즉 정풍운동이 실패하게 되었다면 정동영의 정치생명, 이 정풍운동을 주도한 쇄신파들의 정치생명은 모두 다 끝장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광주는 영남출신 노무현의 손을 들어줬고, 그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이회창을 누르며 대권을 장악하게 된다. 민주당에서는 쇄신파와 구민주계의 충돌이 벌어지면서 머리끄뎅이 사건, 난닝구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쇄신파들은 탈당해서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쇄신파의 선두 정동영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고, 그는 열린우리당의 초대 당의장을 역임하게 된다.

물: 알겠습니다. 결국 넘어가서 열린우리당이 창당되고 미약하게 시작했다가 2004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는 거겠죠?

정: 열린우리당도 46명 의원…

물: 처음엔 그랬죠.

정: 46명 의원이 탈당해서 만들었는데, 감히 말씀드리면, 정동영이가 탈당을 안 했으면 아무도 탈당 안 합니다. 10명의 결사대가 있었어요. 마지막에 정치개혁을 위한 신당으로 가자는 사람들이 10명이었어요. 천정배, 신기남을 포함해서.

물: 그때 천신정이라고 했죠.

정: 그 10명이 지금은 결국, 여기서 정치 그만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몸을 던졌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는데, 몇 달이 되도록 (지지율) 한 자리 수를 헤맸다고요.

물: 지지부진했죠.

정: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새 당을 간선제로 운영하려고 했어요. 대표를 추대해서 뽑는 식으로.

물: 너무 작으니까 그랬겠죠?

정: 저는 그걸 거부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하고 등을 지게 됩니다. 이거는 직선으로 가야 된다, 경선으로 탄생한 정권이고, 노무현 대통령이고, 새로운 정치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나온 새 당인데, 새 당이 경선을, 직선을 회피하는 것은 원칙과 상식에 반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초대 직선 당의장이 됩니다. 아마 그때 정치적으로 많이 적이 생겼을 거예요.

물: 그 상황에서?

정: 그 상황에서. 자기의 입신영달을 위해서 뭐…

물: 쉽게 얘기해서 자기가 당의장 해먹으려고 그런 거 아닌가?

정: 그런 거죠. 그런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뭐 당대표에 목을 맬 이유는 없었죠.

물: 정풍에서부터 우리당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정치를 그만해도 된다는 각오로 했으니까…

정: 제 나름대로는 대한민국의 정치혁신을 위해서 내가 선봉에 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겁니다. 어찌 됐건, 파란도 많고 곡절은 있었지만, 5.16 쿠데타 이후에 몇 년이야… 40여 년 만에 민주세력, 개혁세력이 과반수를 이룬 게 열린우리당이지 않습니까?

물: 처음이죠.

정: 거기까지는 성공이었죠.

노인 폄하 발언

물: 그 과정에서 나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때 노인 폄훼 발언이 있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당당하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귀도 못 알아먹는가, 뭐 이런 식으로 조중동과 정면으로 붙었어야 했는데, 그냥 내 책임이다 하고 덮어쓰고 내가 모든 공직, 당직을 다 사퇴하고 의원배지를 뗐죠. 의원직 사퇴. 사실 최근 정치에서 어떤 문제와 관련해서 의원직을 던진 사람은 없습니다.

물: 말만 하죠. 다들. 말만 하고 실제 행동은 안 하죠.

정: 제가 비례대표 당선됐었거든요.

물: 예. 사실 그때도 레토릭이 원래 원문을 보면 그렇게 나쁜 뜻이 아닌데. 정확하게 얘기하면 다른 의미였던…

정: 그게 대구에서 대학생 기자들하고 만나서 인터뷰하면서, ‘청년들이여 투표하라’는 게 메시지였어요. 왜 대학생들이 투표하지 않는가? 어른들 봐라, 어르신들은 다 투표하지 않느냐, 어른들은 투표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들이 투표해라. 그 말이 어떻게 둔갑하냐면 몇 살 이상은 투표하지 말라는…

물: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라는 이런 식으로 왜곡되면서…

정: 예. 마타도어와 정략에 휘말린 거죠. 대중은 선거 시기에는 선동에 휩싸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그걸 타개하기 위해서 제가 모든 걸 던진 거고.

며칠 전에 김종훈 후보가 또 그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래서 그건 젊은이들 투표하라는 말이지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거두절미하면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십 년 동안 울궈 먹었으면 됐다, 그만 해라. 그만 해. (웃음)

물: 알겠습니다.

정: 요즘은 그래서 그런지 알 만한 사람들은 그런 말 안 해요.

이 부분은 원래 기사에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계획했던 부분이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또 총선 정국에서 불필요한 공격꺼리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의 해명은 매우 적절했고, 독자들에게 그 해명을 들려주고 싶었다.

원래 정동영의 발언은 그다지 문제의 소지가 없는 내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4년 총선 정국의 막바지에 이 발언은 왜곡되어 조중동 군소언론들의 정치적 공세에 매우 유효하게 이용되었으며, 해명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없었다.

원론적으로 정동영의 잘못은 없었지만, “정치적인 실수”라는 지적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걸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너무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는 충분히 책임을 졌고, 이제 와서 이 문제를 다시 공격의 소재로 삼는 것은 비열한 행동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얘기해 두자.

참여정부의 통일부장관

물: 참여정부 시절에 장관도 하시고 여러 가지 하셨는데 그때를 짧게 소회하신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정: 복지부 장관을 노 대통령이 제안했어요. 입각을 제의했을 때 노 대통령이 복지부 장관을 권한 이유는 양극화의 폐해 속에 복지예산을 뭉텅 잘라서 복지를 대폭 추진해가려면 힘 있는 장관이 필요하다. 아마 노 대통령은 저에게 부채… 빚을 졌다, 많이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측근들한테 얘기한 거 들으면 결국 이 다음 후보는 정동영 밖에 없지 않냐는 그런 말씀도 하고. 저를 복지부 장관에 갖다 놓고 힘 있는 복지정책을 밀고 싶어 했는데, 아쉽게도 그 당시에 저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물: 그렇군요.

정: 저는 남북문제에 대해서 열정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집을 했죠.

물: 복지부 업무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안 돼있다고 스스로를 판단하신 거네요?

정: 시대정신을 잘못 읽은 거예요. 사실은 복지였어요. 남북문제도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물: 굉장히 중요하죠.

정: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보면 당장 내가 먹고 사는 문제, 나의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선거로 보면, 즉 정권 재창출의 관점에서 보면, 복지였죠. 남북문제가 아니라.

물: 그렇군요.

정 : 당시 관심의 과녁이 남북문제에 있었고, 이걸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 그랬어요. 뭐 여한은 없어요. 왜냐면 통일부 장관 일 년 반, 제가 2004년 7월 1일에 취임하고, 2005년 12월 31일에 그만뒀는데, 그 기간 동안에 노무현 대통령이 100% 뒷받침해줬어요. 외교, 안보, 남북문제에 관해서. NSC위원장으로서 거기서 결정된 사안을 100% 뒷받침해줬어요. NSC는 사실상 저의 리더십으로 운영했습니다. 국정원,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총리실, 저 국무조정실, 외교안보수석으로 구성이 되는데, 그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확실히 밀어준 거죠. 노 대통령의 철학과 제 철학이 일치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또…

물: 남북문제에 관해서 일치했다?

정: 일치했어요. 그래서 소신을 갖고 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개성공단과 9.19 공동성명으로 나타난 거죠. 지난 시기, 어쨌든 지금, 오늘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큰 두 개의 발자국, 뭐랄까요…

물: 성취?

정: 깃대, 깃발이 있다면, 오늘 현재 두 개의 깃발이 있다면 하나는 개성공단이고 다른 하나는 9.19입니다. 개성공단은 지금 하나를 열 개 스무 개로 확장을 해 나가야 하는 거고, 9.19는 실천해야 하는 과제, 이 두 개를 제가 장관을 하면서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책도 한 권 있죠.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라는 당시의 일을 정리한 책을 하나 냈는데…

이 부분에서 정동영 후보는 박자 맞추듯이 책상을 두드려 가며 자신감에 넘치는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특히나, 개성공단 문제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한 9.19 공동성명에 관한 얘기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물론 남북 문제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마련된 것들이다. 참여정부의 남북 정책은 앞선 정부의 남북 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므로 그 성과의 폭이 김대중 정부의 그것을 넘어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인 관점에서, 또 실무적인 차원에서 그 구체성을 증가시킨 공로가 있는 것이고, 그 주역이 정동영이었다는 점은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직책은 통일부장관이었지만 그는 장관을 넘어선 NSC위원장으로서, 남북문제를 총괄 지휘했던 것이다. 이 점은 확실한 정동영의 공로로 기억해 두자.

거기에 덧붙여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중요한 부분이 한가지 더 있다. 정동영이 담당했던 참여정부의 공식 임무는 결코 일개 장관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실무적으로도 그렇고, 정동영은 한 때, 정권의 2인자 위치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전국에 무려 246개나 깔려 있는 지역구지만, 정동영은 그저 원 오브 뎀에 불과한 지역구 출마자로 간주하기에는 정치적 비중이 너무 큰 사람이다. 또한 그만큼 그에게 요구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는 정치의 기대수준이 높아 지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서 지켜봐 주기를 권하고 싶다.

정: 우리가 이번에 민주진보정부로 바꾸면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로부터 풀어가야 합니다. 개성공단으로부터 풀어가야 되고 9.19로부터 풀어가야 돼요. 9.19로부터 풀어가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고, 개성공단으로부터 풀어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입니다.

물: 그렇죠.

정: 평화통일로 가는 전 단계는 개성공단을 열 개, 스무 개로 확장해서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거고, 경제공동체와 동시에 국가연합단계가 되는 거고, 국가연합단계 그 다음이 바로 평화통일인 거고. 이정표가 있는 거니까요. 9.19라는 건 우선 북한의 핵 포기, 비핵화와 4대국의 교차승인이 이루어지는 거죠. 미국은 아직도 북한을 승인하지 않았잖아요.

물: 예.

정: 그리고 비핵화와 교차승인에 이어서 동북아의 집단안전보장체제.

물: 그렇죠. 9.19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그거죠.

정: 그러니까 12월에 정권 바꿔서 뭘 해야 하냐? 개성공단의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9.19의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그거를 2005년에 해냈다는 것.

물: 이미 그때 했다?

정: 노무현 대통령의 100% 지지를 받고, 지원을 받고, 내가 앞장서서 그걸 해냈다는 것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거죠. 미래비전이 유효하다는 점이 내가 통일부장관을 잘 했다, 그때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복지를 선택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있지 않으신가요?

정: 음… 정봉주 의원 말로 ‘깔때기’에 속하는 얘기지만, (웃음) 저는 뭔가 잡으면 뭔가는 해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고를 치죠. 제가 복지부장관을 했으면 뭔가는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 양극화를 막기 위한?

정: 예.

물: 역사에는 가정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으니까.

만약 정동영이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수락했더라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참여정부의 가장 큰 실패라고 할 수 있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 좀 더 가혹하게 말하자면 양극화를 가속시켰던 그 실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을까?

돌아가신 김근태님이나 유시민이 맡았던 보건복지부를 정동영이 맡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역사적 가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바로 앞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해 놓고서 또 딴소리다.) 지금의 내 판단으로는 “당시의 정동영”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지금의 정동영“이라면 어땠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계속 알아보자. 당시의 정동영과 지금의 정동영은 과연 다른 지부터 말이다.

정서적인 문제

물: 약간 정서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결과적으로 참여정부가 끝나가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감성적으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분들의 지지나 사랑을 받지 못하셨어요.

정: 예.

물: 그분들의 미움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런 정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정: 하나는 열린우리당을 민주당과 합친 겁니다.

물: 그렇죠.

정: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진 것도 제가 앞장서지 않았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정: 예. 또 하나 제가 민주당과 합치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면 합쳐지지 않았을 거예요.

물: 그렇게 보시는군요.

정: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저를 열린우리당에 머무르도록 요구하고 설득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섭섭하고, 그런 거죠. 열린우리당 문제 하나가 있고.

백 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던 열린우리당,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개최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몽골기병 같은 개혁을 이루어 내겠다고 외치면서 당의장에 당선된 바로 그 정동영은 몇 년 뒤 열린우리당을 포기하고 다시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을 주도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동영에 대한 실망을 넘어 증오를 표출하던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 또 하나는 5년 간 참여정부에 대한, 제가 성과, 저… 뭐죠,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 성과와 한계, 둘 다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섭섭했던 겁니다. 한계, 실수, 그림자, 어떤 정권이나 빛만 있고 성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지지자들에게 섭섭하게 느껴졌을 텐데…

물: 제가 보기에 그것은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얘기들이고, 그 지지자들의 심리는 논리적인 입장보다는 사랑하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그런 심리가 크거든요.

정: 그렇죠.

물: 그런 걸 이해를 정확히 해주셔야 풀리지 않겠느냐, 감성이 껴 있기 때문에 풀기 진짜 힘든 문제인데, 이런 의도로 질문을 드렸던 겁니다.

정: 참여정부 5년 노선을 계승하는 것에는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걸 넘어서야 된다고 봤기 때문에.

물: 그렇죠. 그건 정치적으로 옳은 말씀이시고요.

정: 당시 노무현 대통령 주변 참모들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참여정부의 계승을 요구하는 것이지, 참여정부를 딛고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물: 그런 부분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배신으로 비쳐졌다는 거죠.

정: 아주 미묘한 차이인데요. 거기다가 이제 정권까지 빼앗겼으니까 거기에 대한 미움과 이런 게 있겠죠.

물: 그런 걸로 인해 감정이 중첩되면서 증폭된 거겠죠. 그런 감성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화해를 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방법을 생각하시는 건가요?

정: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이죠. 행동과 실천이죠. 노 대통령 지지하는 친노가 저에 대해서 지지를 보였던 것은 노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제가 보여드린 말이 아닌 행동에 대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렇죠.

정말로 어려운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직후, 또 열린우리당 창당 초기의 시점에서 정동영은 거의 모든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정동영을 따라 정계에 유입되면서 정동영의 지지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일부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갈라지게 된 것이 그간의 과정이 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많고, 정동영 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모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이견이나, 노사모의 해체 논란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동영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나 높아졌고, 정동영은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상당수의 친노들에게 미움을 사기 시작했으며, 그 미움의 파도는 대선의 실패에서 최고점을 찍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정동영이 택한 정치적 선택은 그다지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없다. 2007년 대선은 시대적 흐름상 역부족인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정동영은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가 실패한 것뿐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지지자였어야 할 사람들 다수가 쏟아내는 미움과 증오인 것이다.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질문한 대로, 이런 미움과 증오는 다분히 배신당한 연인의 증오와 유사한 점이 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비유하자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와 그 결별 이후 돌아가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이 떠나간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런 감성적인 문제에 대해 정동영은 앞으로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해결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척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꽤 오랜 시간동안 옳은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그가 노무현을 “계승”하는 것만이 아니라 “넘어서야” 한다고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행동 자체는 노무현이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던 “진보의 미래”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는 그 미움과 증오를 털어버리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제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물: 대선에서 패배하신 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여쭤볼 수 있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후보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지 중에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후보님을 돕고 있는 스탭들의 구태적인 정치기법, 대선 과정에서 박스떼기 같은 걸로 나타났던, 정치적으로 약간 안 좋은 기법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걸 후보님의 스탭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딱지 붙이기입니다. 왜냐면요 구태정치의 핵심은 돈이거든요.

물: 그렇죠. 돈 문제입니다.

정 : 최근에도 돈봉투 사건이 여야 가리지 않고 있었지만, 정동영 정치의 핵심은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물: 자신하십니까?

정: 그렇습니다. 재벌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정동영은 그동안 크고 작은 선거를 열 번 이상 했지만, 돈과 관련해서는 가장 가난한 후보였습니다. 어떻게 돈이 빠진 구태정치가 가능합니까? 돈이 없는 구태정치가 가능해요? 딱지 붙이기에요. 딱지를 붙인 그 사람들이 저보다 열 배는 더 썼습니다. 열 배는 부자였거든요.

물: 상대 후보들이요?

정: 어떤 후보든 간에. 열 배나 백 배쯤 돈을 더 썼을 거예요.

물: 그러면 관점을 달리해서, 후보님의 주변에는 진짜 후보님을 지지하고 열성적으로 따라다니는, 모시고 있는,

정: 지지하는.

물: 예, 지지하는 스탭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분들이 돈하고 관계없이 열정이 과도해서 반칙을 시도하거나 실행한 적은 없다고 보십니까?

정: 글쎄요. … 여기 본인들이 있지만, 이상호나 장형철 전 청와대 행정관도 있지만, 열정으로 한 거지 그게 어떻게 구태입니까? 제가 차비를 한 번 줬어요, 밥을 샀어요? 십 년 넘게 형제고 동지니까 하는 것이지.

미묘한 부분이긴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둔 경선과정에서 정동영측 캠프에서는 문제적 행동이 많이 벌어진 것이 사실이다. 박스떼기 등으로 돌출된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정동영 지지자 그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대해 정동영 본인이 직접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그런 문제를 인식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후보자 본인의 조직 장악력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또한 반대의 측면에서, 정동영에 대한 실망감이나 배신감이 그의 지지자그룹에 전이되어 정상보다 훨씬 더 가혹한 수준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가져봄직 하다. 양측 모두의 겸허한 성찰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정: 그리고 또 하나 저한테는 호남의 지지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호남을 구태라고 보는 시각, 저는 그거를…

물: 그런 시각이 있습니다.

정: 그거는 옳지 않아요.

물: 옳지 않죠.


정: 호남이 없이, 이 나라의 민족주의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 나라의 민권과 인권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그건 존경하고 존중받아야지, 상처받으면 안 돼요. 그걸 상처 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인터뷰어로서 실수를 저질렀다. 자연스럽게 당의 명령을 거부하고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 당선된 뒤 별다른 처벌 없이 복귀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 질문을 했어야 하고, 하려고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나 촉박했고, 주변 환경은 너무나 혼잡했다. 태블릿 피씨 화면에 질문 목록이 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그 질문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하게 된 독자분들에게도 사과를 드리고, 답변할 수 있던 기회를 놓쳐 버린 정동영 후보측에게도 사과를 드리는 바이다.

무엇보다도 딴지일보의 뽕빨 정신을 지키지 못하게 된 점이 가장 아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물: 과거 얘기는 이제 마무리 하기로 하죠. 제가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들의 정서적인 서운함을 풀어주시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 여기다 한 가지 덧붙이면, 그런 정서적 서운함, 배신감을 이해합니다.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치유할 수밖에 없는 거고, 또 하나는 어쨌든 그분들이 그러한 배신감을 갖게 된 데 대해서 저의 부족함이죠. 저의 덕이 부족한 거죠. 덕스러움이 부족한 거죠.

물: 이(理)나 지(知)가 아니라 덕(德)이 부족한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SNS공간의 스타

물: 최근 들어 SNS 공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셨고 가장 인정받는 정치인이 되셨습니다.

정: 고맙습니다. 하하.

물: 그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나 선언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행동으로 보여주신 거거든요. 행동이라는 게 사실, 말은 쉽죠, 모든 집회 현장에 다 출석을 하고, 모든 험한 곳에 다 나타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다 쫓아가고, 왜 이렇게 하신 겁니까?

정: 글쎄요… 뭐…

물: 용산이 원인이었습니까?

이번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 자식연합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선거용 인터뷰에서는 용산이 그 시작이었다는 얘기가 포함되어 있다.

정: 기본적으로 제 생각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0년 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나, 20대 청년시절에 옳다고 생각했던 거나,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같습니다. 하지만 전에는 발이 현실에서 떠있었던 거고, 생각은 그렇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았던 건데, 이제 그 발을 땅에 디딘 겁니다. 발을 땅에 디딘 것은 좋은 참모들이 있었죠. 좋은 보좌관들이라든지.

물: 땅을 딛자?

정: 바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이 진정성을 획득하는 거지. 그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변신했다고 하지만, 제가 저를 알지요. 제 생각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물: 생각은 그대로다?

정: 전에는 현실 따로, 정동영 따로가 있었다면, 지금은 현실 속에 정동영이 있는 것이지요.

물: 막상 해보니까 굉장히 힘드시죠?

정: 힘들기도 하지만 거기서 배우죠. 내가 그냥 머리로 생각한 거와 피부로 느끼는 거와 발을 땅에 딛고 온몸, 뼈와 살로 느끼는 게, 현장에서 배우고 또 현장에 답이 있고. 아, 이걸 몰랐구나.

물: 그렇게 현장에서 배우신 것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어떤 걸 배우신 겁니까?

정: 이대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죠. 이대로 가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고, 진로를 틀어야 된다는 확신을 갖는 거죠.

물: 사회 전반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정: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물: 추상적인 게 아니라.

정: 발을 딛고 보니까, 예를 들어 쌍용이든 용산이든 한진이든, 거기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망가지고, 부서지고, 춥고, 절망하고, 우울증에 걸려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물: 그렇죠.

정: 그것과 상관없는 국가, 그것과 상관없는 정치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물: 발을 땅에 딛고 내려가고 있다 보니까 그게 정확하게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하신 거네요.

정: 배우고, 답을 얻고, 그리고 신념으로 굳어지고.

물: 발을 땅에 디뎌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경험이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확대된 거다.

정: 그렇죠. 현장에 가면 갈수록,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전에 안 보였던 게 보이게 되고, 또 그러면 그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고, 그런 거죠.

스스로 변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청년 정동영이나 10년 전의 정동영이 생각했던 것과 지금의 정동영이 다르지 않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다르다. 누가 봐도 다르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정치인 중에서 정동영만큼 현장에서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정도일까.

아무리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표현대로 땅에 발을 딛지 않은 생각과, 땅에 발을 딛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과 고통을 나누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새롭게 다져지는 생각들은 기존에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른 강한 생각이며 옳은 생각이 된다. 정동영은 그 강하고 옳은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결코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그런 행동을 지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본 기자,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정동영의 내부에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변화가 분명히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마

물: 그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총선에 임하시게 됐는데, 경선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 지난 건데요 뭘. 과정은 차치하고, 옆으로 비껴두고. 그 바람에 강남과 정동영이 주목받게 된 효과도 있어요.

물: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정: 네.

물: 경선과정에서 오히려 전국적인 인지도가 올라가는 측면이 있었다는 거군요.

정: 인지도라기보다. 사실 전주 포기, 부산 거기도 뭐 선회, 강남 경선 오케이 그것도 수용, 요구하는 것은 다 받아들인 거죠.

이 대목에서 전현희 의원측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기자의 질문이 있었고, 바로 그 부분이 상당히 아쉬웠다는 답변이 있었다.

사실 이 경선의 과정에서 전현희 의원은 지나치게 많은 비난을 받은 측면이 분명히 있었고, 전후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전현희 의원측과도 인터뷰를 수행했었다는 점을 밝혀야 겠다.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그 인터뷰 내용도 기사화 할 기회가 있게 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전현희 의원이라는 한 정치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분께서도 좌절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은 꼭 남기고 싶다.

물: 한 가지 질문이 있다면, 그런 관점에서 전주도 포기하고 부산도 포기하고 했을 때 강남 을에 전현희 씨가 있다면 강남 갑을 택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은 어떻게 답을 하시겠습니까?

정: 강남이 무슨 좋은 선거구라고 서로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포기했던 지역에서 뭔가 제가 강남에서 얘기했던 게 그거죠, 30년 만에 이거를 깨뜨려야겠는데, 얼음덩어리가 망치로는 깨도 안 된다. 바늘로 찔러야 깨지는데, 바늘로 찌르는 데가 강남 을이다. 전현희 후보를 대단히 높게 생각하지만, 전현희 후보로 조각이 나겠는가?

물: 그걸로는 부족하다. 좀 더 튼튼한 바늘로 찔러야 한다?

정: 아… 어쨌든 강남에 어떤 균열이 생겨야, 강남 을이 균열점이라고 본 거죠. 강남의 중심이고 여기서 균열이 생겨야 이른바 강남 3구에 작은 조각이 떨어질 게 큰 조각으로.

물: 지금 그 말씀은, 일반적으로 부산을 선택하고 강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정동영이라는 한 정치인이 현실에 발을 딛고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한다. 쉽게 얘기해서 죽으러 간다, 부산이나 강남에,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건 결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강남을 바꾸기 위해서 온 거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정: 그러니까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거지요. 당선에 집착하는 건 아닌데…

물: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죠.

정: 어쨌든 부산 전선, 낙동강 전선을 통해서 부산을 그 아성을 깨뜨려 보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 그렇죠.

정: 강남전선을 통해서 강남을 깨뜨려 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산은 저와 연고가 없는데 영도라는, 한진이라는 고리가 있었고. 강남은, 제 표현이 아니라 우석훈 교수나 여러 지식인들이 강남 을이 균열이 생겨야 강남전선이 무너진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 그렇죠.

정: 그리고 어디나 후보가 있어요. 강남 갑도 후보가 있어요. 유명이든 무명이든 간에. 그러면 비어 있는 곳을 찾으면 아무 데도 가면 안 되죠. 강남 을에 누가 있으면 다른 데로, 그쪽엔 사람 없나요?

물: 알겠습니다.

지역구 현황

물: 현재 지역구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 해 볼만 해요. 여기도 세대 전쟁이에요.

물: 세대라는 건 연령대 별로?

정: 2,3,40대의 투표율이 좌우하지요. 지난번에 2008년에 46%인가 총선 투표율이?

물: 예.

정: 강남도 비슷했겠죠. 탄핵 2004년 열린우리당 과반수 할 때 60%인가 그랬을 거예요. 60% 투표율이 되면 아마 강남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겁니다.

물: 관건은 투표율이다?

정: 투표율.

역시 문제는 투표율이다.

물: 그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어떤 전략을 채택하고 계신가요?

정: 그렇죠. 주로 SNS를 통해서, 오늘 강금실 장관도 와서 지원해 주지만, 그동안 함세웅 신부님, 명진 스님, 내일 또 조정래 선생님, 이외수 작가가 후원회장, 조국 교수, 공지영 작가, 또 정지영 감독, 그 다음에 우석훈, 선대인, 이해영, 한홍구, 서해성, 유종일, 이동걸 등등 이 시대의 양심과 지식인 이런 분들이 와서 계속해서 ‘강남을 뒤집어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주시고 있어요.

저는 또 고맙게도 전선을 딱 만들어줬잖아요. 김종훈이라는. 가령 다른 후보였으면 이런 전선은 안 생기죠. (웃음) 원래는 저 사람들이 뉴라이트 이 모 후보를 세웠잖아요. 이것도 아주 재미있는 구도가 될 뻔 했죠. 그런데 이거 폐기하고 김종훈 후보를 갖고 FTA전선을 만들었는데, 이게 단순히 FTA전선이 아니라 가치의 전선 아니에요? 가치전선.

물: 그렇죠. 가치에 대한 싸움이죠.

정: 그런데 생각보다는 외교관 출신인데 김종훈 후보가 굉장히 수구에요. 그러니까 맥이 같아, 이영조인가 하는 그 사람하고 맥락이 같은 사람.

물: 전문 관료이면서도 정치적 스탠스가 그런가요?

정: 관료적으로는… 어떻게 노무현 정부에서 이렇게 출세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운. 음? 본인이 계속 얘기하는 게 종북좌빨, 좌파 빨갱이, 이거 가지고 선거운동 하거든요. 뉴라이트쪽 사람 같으면 그거 하려고 왔겠지. 그런데 이 사람은 외교관 아닙니까? 외교관의 기본은 균형 잡힌 사고거든요. 외교의 기본 철칙 일번은 신중함이거든요. Prudence(신중함, 사려깊음). 신중하려면 말이 중립적이고 균형감이 있고 그래서, 가령 애도표시 할 때도 안타깝다, 애석하다, 애도의 뜻을, 이게 단계별로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이건 무슨 선동가도 아닌데, 종북이다 좌파다 반미다, 완전히 데마고그(Demagogue, 변설로 대중을 기만하는 선동가)에요. 데마고그..

그래서 역으로 강남의 20대 40대가 선뜻 투표하기가 힘든 후보다. 그러니까 강남 수준에 안 맞는 거예요. 외교관의 장점은 뭐에요? 세련됨, 말의 절제, 균형감 이런 것일 텐데, 이분은 FTA 하나 달랑 들고 와서 이거 반대하는 사람은 다 반미다 좌파다 종북이다.

물: 어떻게 보면 오히려 선거가 쉬워지고 있네요. (웃음)

정: SNS에서 보면 대한민국 낙선후보 1위 김종훈 후보 같은데. 사실 대한민국 낙선후보 1위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면 무슨 창피한 일이겠어요?(웃음)

물: 강남이니까 문제죠. (웃음)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정: 지하철 인사 같은 경우에 며칠 전에는 ‘당신은 안 돼’, ‘빨갱이 같으니라고’ ‘여기가 어딘데’ 그게 그 말 한 마디에 다 들어있는 거거든요. 그런가 하면, 선거 시작하면서 지하철에서 서너 명 중에 하나씩은, 특히 젊은 사람들이, ‘꼭 이겨야 됩니다’ 라고 손을 굳게 잡아요. 저는 선거 여러 번 해봤지만 이런 반응을 느낀 게 처음이에요. 오히려 저보다도 더 간절합니다. ‘꼭 이겨주세요’, ‘꼭 이겨야 합니다’

그게 나는 바람의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불씨가 불이 붙어서 타면, 주민들한테 이렇게 말하죠. 밭을 갈지 않고 두면 딱딱하게 되고 묵정밭이 됩니다. 밭은 갈아 엎어야합니다.

물: 그렇죠. 매년 갈아줘야.

정: 밭은 갈아야 옥토가 된다. 강남을 정치 1번지 옥토로 만들려면 갈아주십시오.

물: 캠프 분위기가 좋아 보입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정: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와요. 여기저기서. 자원봉사자분들께, 어떤 역할을 드리는가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어려워요.

물: 자원봉사자 배치가 잘 안 된다?

정: 그래서 우리가 뭘 시키기보다 뭘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했더니, 예를 들면 대모산에서 인사하는 걸 우리가 해드리겠습니다. 대모산 담당. 그리고 목욕탕, 아침에 두 명, 오후에 두 명, 저녁에 두 명 해서, 목욕탕에 앉아서 계속 해주겠다, 목욕탕 담당 팀, 선거 비밀인데 알려드립니다.

물: (웃음)

이 때쯤 되어서 보좌관들의 재촉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캠페인을 돕기 위해 와서 기다리던 강금실 전 장관의 일정도 있었고, 야권연대에 참여한 통합진보당의 후보도 선거를 돕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다.

캠프의 분위기는 활발했으며, 최소한 지려고 마음 먹은 캠프는 아니었다. 상황은 어렵지만, 이들은 이기는 싸움을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래

물: 선거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보고요. 앞으로의 정치 인생의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질적인 면에서, 그러니까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 이런 게 아니라, 추상적인 가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여쭙고 싶은데요.

정: 제가 태어난 게 휴전협정일에 태어났어요.

물: 예.

정: 그래서 제가 정치를 하는 동안에 통일되는 걸 좀 봤으면 좋겠어요.

물: 아까와 같은 선택이신데, 아까도 남북문제와 복지에서 통일문제, 북한문제를 선택하셨잖아요. 당면과제로는 복지가 더 급할 수도 있잖아요.

정: 그렇죠. 그래서 바깥으로는 평화체제를 통한 통일이고, 안으로는 복지국가를 통한 인간화입니다.

물: 그걸 만들어가는 방법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 방법론이 노선이지요. 노선이라는 게 방법론이고. 그 점에서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통합당을 진보 쪽으로 노선을 바꿔놨다, 감히 정동영이가 바꿔놨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당을 이렇게 바꿨다 라고 할 정도의 사람이 달리 없는 것 같아요.

물: 당 전체의 포지션을 진보 쪽으로 가지고 왔다는 말씀이시죠?

정: 우리 당은 그동안 중도 개혁주의 노선이었어요. 지금은 진보적인 민주당의 길을 택했잖아요. 그 과정에 역할을 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방법론을 물어보니까 노선, 노선은 강령에 담겨 있잖아요?

물: 그렇죠.

정: 강령 1조가 경제민주화, 2조가 사람중심 경제, 3조가 노동의 가치, 4조가 보편적 복지국가 실현, 5조가 평화체제인데, 1, 2, 3, 4, 5조가 제가 꿈꾸는 나라의 비전과 일치하는 것이고, 그것을 당의 강령 1조, 2조, 3조, 4조, 5조에 넣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봐요. 당의 보수적 흐름, 의원 전체로 보면 3분의 2가 중도거나 보수거나 하는 흐름 속에서도 당을 견인하고 했던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물: 그것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작업은…

정: 그래서 정권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권획득 이후의 성공이 목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진단이었고, 저는 그걸 거침없이 말해왔어요. 그래서 진보정당과의 통합을 얘기한 것이고, 공동정부 노선으로 가야한다.

물: 공동정부 노선으로 간다?

정: 민주-진보 공동정부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지, 민주통합당만으로 집권해서는 노선의 불충분성, 신념의 체화가 덜 됐어요. 예를 들면 원전의 전면 재검토가 강령에 18조에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당내 구성원은 압도적 다수가 ‘원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단 말예요.

원전에 관한 사항은 18조가 아니라, 17조에 들어있는 것으로 이동현님에 의해 확인이 되었다. 단순한 실수인 듯.

실제로 민주당의 구성원들 중 다수는 정동영 후보의 행보나 정치적 입장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의 강령에 담겨있는 당의 정체성에 비해서도 구성원들은 보수적이다.

이 괴리를 정확하게 잘 알고 있으며, 그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물: 그렇죠. 괴리가 있는 거죠.

정: 강령은 지나치게 진보적으로 가 있는 거예요.

물: 강령은 이만큼 가 있는데 사람들이 못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정: 강령은 가 있는데 강령을 만드는데 정동영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 잘 알겠습니다. 진짜 마지막 질문입니다.

후보님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를 많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아왔고 저희 딴지 내부의 필진들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변했다, 아니 안 변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얘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없다면 우리의 인생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 페니레인(필진)”

이 짧은 말을 잊지 말아 주시라는 부탁을 드리면서, 마지막으로 딴지일보 독자들에게 짧게 한 말씀 부탁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정: 딴지일보 독자들은 다른 어떤 분들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딴지일보 독자분들의 그 에너지로 세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물: 바쁘신 와중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간을 많이 빼앗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정: 시간 활용한 거에 10배, 100배 표를 좀 주십시오.

물: (웃음) 노력하겠습니다.

정: (죽지않는 돌고래 기자를 향하여) 사진이.. 너무 인상 쓰지 않았나요?

돌고래: 잘 나왔습니다. (웃음)

http://www.ddanzi.com/blog/archives/77445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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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는 KBS새노조가 파업하는 가운데, 4월1일 '탑뉴스'를 통해 민간인 사찰이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루어졌다는 청와대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분명히 4월1일 오후에 전날 발표된 청와대 주장에 관한 반박이 있었는데도, 그 사실은 아예 보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 나오지 않았던 문재인 이사장이 밝힌 'MB정권의 무서운 거짓말'을 지금부터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 노무현 정부는 청와대에서 민간인 사찰을 했는가?

MB 정부는 청와대,페이스북,트위터,기자 회견을 통해 KBS 새노조가 보도한 민간인 사찰 문건 80%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작성한 문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청와대 주장의 핵심은 문건인데, 그 문건의 작성 주최가 누구인지, 문건의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밝혀진 문건의 출처는 김기현 경장의 USB입니다. 김기현 경장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와 조사심의관실에서 근무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여정부 경찰청 본청에 근무했던 인물로, 경찰청 내 정보 수집 업무차원의 정보를 보관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밝혀진 김기현 경장 USB에 있던 자료들은 경찰 정보 수집 업무와, 비리 경찰,경찰 공직기강에 관한 감찰관실에 관한 자료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정보수집 업무는 어느 정부나 있었던 일상적인 업무였고, 노조관련 정보 또한 당시 경찰 정보과의 동향 파악이 전부였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현재의 공직윤리지원관실과 비슷한 기구가 바로 '조사심의관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자료는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 활동자료가 아니었습니다. 일선 경찰의 정보보고를 취합한 자료였고, 인사관련 부분에서는 공직기강 차원에서 비리 경찰관과 공직자 비리에 관한 보고서였습니다.

결국, MB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정보수집 업무를 자신들의 민간인 사찰 비리를 덮기 위해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MB 정부의 논리라면 지금 일선 경찰서의 정보 수집 업무과 국정원 활동, 감찰 내용들도 모두 민간인 사찰과 마찬가지로 취급해야 합니다.

비교할 대상이 아닌 교묘한 언론 장난으로 자신의 비리를 덮으려는 추악하고, 비열한 작태입니다.

■ 'MB정부의 민간인 사찰, 무엇이 문제인가?'

청와대와 MB정부는 '이번 문건이 새로울 것이 없었다. 지난 검찰 수사에서 모두 밝혀졌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건으로 밝혀진 가장 큰 문제는 참여정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선 그 대상을 보면 참여정부는 공직자,경찰 등이 대상이었지만, MB정부는 VIP(대통령)를 비판한 민간인과 촛불집회에 참석한 단체, 참여정부 시절 인사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MB를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국가 본연의 정보 수집 업무가 아닌 언론 장악용 사찰을 단행했고, 이런 사실은 KBS,YTN,PD수첩,한겨레 편집부를 사찰했다는 문건에서 밝혀졌습니다. 이들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아예 막아버리겠다는, 독재국가에서 흔히 보는 언론 통제와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은폐,삭제, 조작, 입막음 등의 불법적인 행동을 왜 했느냐 차원입니다. 현재 밝혀진 문건의 주인은 김기현 경장이 보관했던 자료로, 참여정부 시절 경찰 정보 수집 업무도 자료로 남아있는데, 어떻게 MB정부 문건들은 사라지고,컴퓨터가 파기될 수 있었을까요?

국정원,경찰서 정보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무조건 폐쇄되어야 할 기관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중요합니다.

언론사 임원진을 교체하고 언론사 제작진을 사찰하고, 자신을 향해 비판했던 사람들을 사찰했다는 것은 오로지 독재국가에서 자신의 정적을 죽이기 위해 했던 정보공작 업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공직 기강업무와 전혀 다르게, 정권을 지키기 위한 사찰과 더 나아가서 그것을 이용한 정적제거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만행이자, 탄핵받아 마땅한 크나큰 사건입니다.


행여나 자꾸 참여정부의 공직 기강업무와 MB정부 민간인 사찰을 동일시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여정부 시절 어디에서 김제동씨와 같은 연예인에 대한 사찰을 했습니까? 경향신문은 4월1일자 기사를 통해 경찰이 작성한 ‘연예인 기획사 관련 비리수사 전담팀’ 발족, ○○○는 민정수석실 요청으로 수사팀 파견”이라는 문건을 보도했습니다.

연예인 수사에 왜 민정수석실이 나서고, 그 보고를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합니까? 좌파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은 또 누가 만든 것입니까?

상식적으로 공무원의 비리를 감시하는 것을 누가 무어라 합니까? 왜 죄 없는 민간인과 정권을 비판하는 연예인까지 MB정부가 사찰했는지 생각하면, 무엇이 다른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새누리당과 MB정부는 왜 특검을 요구하는가?

현재 MB정부와 새누리당은 특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엄청난 꼼수가 담겨있습니다. 우선 특검을 하기 위해서는 인선하는 데만 두 달이 소요됩니다. 그러면 총선이 끝나버립니다. 4.11 총선에서 가장 큰 쟁점은 MB정권 심판인데, 그 심판을 아예 못 하게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특검 조직이 바로 검찰인데, 민간인 사찰 시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을 했던 사람이 법무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정상적이면서 제대로 수사가 되겠습니까?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은 자신도 사찰받았다고 주장하면서, MB정부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MB 정권은 한 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번 문건에 나온 박근혜 위원장 관련 문건은 박근혜 의원 피습 관련 보고와 경력배치, 그리고 차후 경호 관련 업무 내용뿐이었습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사찰파문을 참여정부로의 물타기와 MB와 선 긋기를 통해 4.11총선에서 절대 영향받지 않으려는 전략입니다.

또 중요한 문제는 이번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민간인 불법사찰을 이명박 대통령이 알고 있었느냐의 문제인데, 문건 곳곳에서 B.H 하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청와대의 지시로 이루어진 사찰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합니다. 정운찬 총리는 2010년 총리직을 물러나면서 "(민간인 사찰했던) 지원관실을 대통령께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잘 고처보라'고 (그래서) 따라야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도 이 조직이 무엇을 했고, 어떤 사찰을 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번 청와대의 민간인사찰 관련 기자회견과 대응을 통해 청와대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민간인 사찰 정보를 활용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던 정황으로 오히려 더 큰 덫에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 조사심의관실에서도 불법적인 사찰'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온 그들은 스스로 불법사찰을 인정한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구조는 1팀 5명씩 5개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밝혀진 김기현 경장 자료를 대략 2,500건으로 계산하면 전체 공직윤리지원관실 정보만 무려 62,500건에 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자료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참여정부 시절에 넘어왔다고 자꾸 주장한다면,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수사를 확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MB정부가 단순 정보동향 보고서와 공직자 비리 문건을 자신들의 사찰 대상으로 확대시켜 불법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까지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특별수사본부는 빠른 시일 내에 구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이들이 방송을 장악해서 숨기려고 했던 진실은 저같은 정치블로거의 힘으로라도 자꾸 밝혀져, 주류 언론은 아니더라고 SNS와 블로그를 통해 전파될 것입니다.

2009년 교수신문 선정 올해의 사자성어는 '방기곡경(旁岐曲逕)'이었습니다. 일을 바른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MB 정부의 민간인 사찰이 본래 공직기강 관련 복무 감찰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뛰어넘는 파렴치한 짓을 벌인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승자박 [自繩自縛]은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자신이 구속되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입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을 참여정부가 대부분 했다는 말로 물타기를 시도하려는 MB정권의 '무서운 거짓말'은 스스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사유의 시작이자 '하야'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http://impeter.tistory.com/1808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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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서신 ==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없는 마당이니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끝에 답으로 말이 아닙니다.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
우리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모시겠다
.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
내가 오해한 같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같습니다
.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
적절한 서비스가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서비스가 것인지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 7 16
16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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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명진 답신 ==

노무현 전 대통령님!

뒤늦게나마 가져가신 서류를 돌려 주기기로 결심하신 것은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궁색하게 토를 다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한 국가를 운영했던 큰 지도자께서 재직 때 기록이 뭐가 그리 아쉽습니까?
재임시절 기록 중에 혹시나 부담스러운 내용이 있는가요, 아니면 그 기록이 쫓기듯 퇴임한 노전대통령님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발판이 된단 말입니까?

그래서 법을 위반해가며 슬쩍하셨나요?

전직 대통령 예우, 해드려야지요. 그렇다고 국가기록을 슬쩍하신 범법행위까지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요.

장물을 돌려달라고 하는 행위를 정치게임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참 궁색합니다.

경제위기 맞습니다.

이 위기의 씨앗이 언제 품어졌나 따져봅시다.

노 전대통령께서는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 오늘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준비하셨나요?

그렇지 않으셨다는 것 본인께서 더욱 잘 아실겁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기록물이나 가져가지 마시고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무더위에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2008. 7. 16

한 나 라 당 대 변 인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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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log.naver.com/hyksj001/10135482758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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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6. 화요일

김기창

작년 10월26일 재보궐 선거날 아침에 발생한 선관위 홈페이지 접속장애 사건에 대하여 진교수께서 적으신 트윗을 일별하였습니다. 선관위 접속장애는 디도스 공격으로 인한 것이고, 일부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선관위의 입장이고, 경찰, 검찰의 견해일 뿐 아니라, 검경의 수사발표를 믿는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라는 점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디도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디도스 방어기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세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디도스로 선관위 접속장애가 생겼고,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범인도 잡혔다”는 간단명료한 스토리는 더 이상 그 내막을 파고들 이유나 흥미조차 잃게 만들 정도로 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공개된 기술보고서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 개의 회선(KT 2회선, LG 1회선)으로 트래픽을 받던 선관위가 회선 두 개를 스스로 다운시켜 선관위로 오는 트래픽을 남은 회선 하나로 몰아넣는 일을 했다는 사실은 검경의 수사 발표에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선관위로 오는 트래픽을 다른 곳으로 “우회”시키는 조치를 6:58에 취한 것처럼 들리도록 검찰은 수사발표를 했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음이 이제 드러났습니다.

기술보고서가 공개된 후, 선관위의 추가해명은 의혹을 더욱 증폭하는 불행한 것이었습니다. “LG 가입자는 LG회선으로 선관위에 접속하고, KT나 SK 등 여타의 망사업자를 이용하는 가입자들은 KT회선으로 선관위에 접속한다”는 선관위의 설명은 일반인이 듣기에는 당연한 것 같지만(그래서 KT망을 다운시킨 선관위의 행위가 LG망 이용자들만이라도 서비스를 받게 하려는 조치처럼 들리겠지만), 실은 기술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가입자가 무슨 ISP를 사용하건, 선관위로 오는 마지막 단계에서는 거의 대부분 KT망으로 트래픽이 들어오고, KT회선을 선관위가 다운시키면 그 트래픽이 모두 LG회선으로 몰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KT회선 두 개를 다운시킨 선관위의 행위가 선관위 디도스 대응 메뉴얼에 의거한 행위였다는 선관위의 주장 역시 근거가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선관위는 “차단”, “접속 차단”, “공격IP 차단” 등의 개념을 “회선 차단”과 혼동되도록 구사하여 일반인을 속이는 해명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였고, 진교수님도 선관위의 해명자료에 쉽게 넘어간 사람 중 하나입니다.

실은, 선관위의 대응 메뉴얼은 디도스 공격이 들어오면, (1)회선 대역폭을 증설하라, (2) 평소 준비해둔 사이버 대피소로 신속히 이동하라, (3) 공격IP에서 오는 트래픽을 차단하도록 망사업자들에게 요청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선관위는 공격이 들어오자

■(1)회선 대역폭을 1/3로 축소하고,

■(2)공격이 끝날때까지 사이버 대피소로 이동하지 않고 있다가, 공격이 끝난 후에 이동하고,

■(3)KT에게만 공격IP를 알려주고 공격트래픽을 차단해 달라는 쇼를 한 뒤(6:25), 실제로 유입트래픽이 줄어들기 시작하자(6:50) KT회선을 모두 다운시키고 LG회선으로만 트래픽이 들어오도록 하는(6:58) 괴상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응 메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긴 행위입니다. [상세 설명]

선관위가 긴급상황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덮기 위해 거짓 해명 자료를 뿌리고 있다? 그럼 선관위와는 상관도 없는 KT의 보안총책임자(Chief Information Security Officer) 이상용 상무가 작년 11월 16일에 한 행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10월 26일 아침에 발생한 선관위 접속장애 원인에 대하여 모두들 궁금해 할때, 선관위의 회선 용량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KT퍼브넷 “유입”트래픽 그래프를 언론에 슬쩍 흘림으로써 기술을 모르는 기자들이 디도스 공격트래픽 규모가 “2기가”라는 스토리를 쏟아내도록 한 행위는 ‘실수’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사건발생 후 20일이 지난 11월 16일은 긴급한 상황도 아니었고, 망사업자인 KT의 보안총책임자가 디도스와 관련된 트래픽의 “유입”과 “송출”도 분간하지 못해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더욱 중요한 사실은 또 있습니다. 디도스 방어기제는 웹사이트(선관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KT, LG, SK 등 망사업자들은 개별 웹사이트보다 훨씬 고도화된 디도스방어 솔루션을 구축,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회선으로 지나다니는 패킷을 검사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자동으로 차단하는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을 국내 모든 망사업자들이 2009년부터 도입하여 가동하고 있습니다. KT 이상용 상무가 보궐선거날 하루 종일 KT퍼브넷으로 “유입”되는 트래픽 추이만 슬쩍 흘린 다음(이 트래픽은 KT퍼브넷에 연결된 여러 공공 기관들에게로 오고가는 트래픽을 모두 합한 분량이 표시됩니다), 정작 그날 아침 시간에 KT퍼브넷이 선관위로 “송출”한 트래픽의 규모에 대하여는 지금껏 함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디도스 방어 기제가 KT퍼브넷으로 유입된 트래픽 중 얼마 만큼의 공격트래픽을 걸러내고 나머지를 선관위로 송출했는지 밝히기 거북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LG가 선관위로 송출한 트래픽의 규모는 이제 공개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드러나는 사실은, 선관위가 KT 2회선(수용 용량 310메가)을 모두 다운시킨 시점(6:58)에 KT퍼브넷이 선관위로 “송출”하던 트래픽은 1기가도, 2기가도, 11기가도 아니라 고작 110메가(Mbps)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는 선관위에 디도스방어 장비가 있었다는 사실도 숨겼을 뿐 아니라, 망사업자인 KT와 LG 또한 네트워크 디도스 보안 솔루션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숨겼습니다.

오픈웹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관위, 경찰, 검찰과 KT가 이런식으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오픈웹은 무슨 고차원적인 심리 분석이나 정치적 판세 읽기에 골몰하는 곳이 아닙니다. 싸구려 디도스 공격프로그램으로 좀비 200대 남짓 동원해서 국가기관 웹사이트를, 그것도 디도스 방어장비가 구축된 웹사이트를 2시간 반 넘게 다운시킨다는 “판타지 소설”을 국민에게 팔아대고 있는 검찰의 뻔뻔스러움을 지적할 뿐입니다.

하찮은 소매치기 잡범들도 범행을 저지를 때는 자신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짓을 하는 것입니다. 선관위 사건은 우발적인 치정 살인 사건이 아닙니다. 냉정하게 계획된 범행이고, 설사 그 복잡한 기술적 내막이 나중에 드러나더라도 간단 명료한 “디도스 스토리”를 몇 달 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나면, 그 스토리를 뒤집기는 엄청나게 어려울 것이라는 교활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온 국민에게 BGP Multihoming technique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만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진교수님께서는 선관위 사건과 관련하여 “나는 꼼수다”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기술적 자문을 제공한 자들의 신상을 밝히도록 요구하셨습니다.

제 이름은 김기창이고, 고려대에 근무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픈웹을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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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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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논개 이정희

2012. 3. 22. 목요일
산하

스포츠의 세계, 그것도 총력을 기울인 건곤일척의 승부라면 치열하기 그지없다. 반칙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프리킥을 허용하거나, 짐승 같은 백태클도 감행된다. 그 결과로 옐로 카드도 받을 수 있고 심하게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이는 그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룰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주먹을 날리거나 이단 옆차기를 감행한 사람보다, 관중이 야유한다고 열받는다고 방망이 집어던진 선수보다 더 큰 죄로 다스리는 일이 있다. 승부조작이다.

비록 그 가담이 경미하고 그로 인해 얻은 이익이 적다 하더라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경기장이 아니라 해당 종목의 선수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것은 해당 종목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조작에 가담한 선수만이 아니라 전혀 무관한 모든 선수들의 유니폼에 검정 먹물을 들일 수 있는 일이며, 그들에 대한 신뢰를 바닥에서부터 와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룰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룰을 죽이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거라는 이름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많은 민의를 수렴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선거 방식, 선출 방식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등장했다. 비단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 자치제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밀실에서 결정되던 정당의 후보 선출에도 국민 경선, 모바일 투표, 여론 조사 등 다양한 경로가 트이고 열렸다. 큰 의미로 볼 때 이것들 또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선거다. 공평한 경기장 안에서 엄정한 규칙 속에 선의의 경쟁을 펼친 끝에 승리하는 자가 선거를 통해 결정되는 권력을 쥐는 것이다.

어떤 경쟁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통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전체 유권자집단(모집단) 중에서 무작위적(모집단 구성원들이 표본에 뽑힐 확률이 동일해야한다는 것을 의미)으로 표본을 추출하고, 그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그렇다면 경선에 나선 이들에게는 몇 가지 의무가 생겨난다. 표본 추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그 정보를 요구하지 않을 의무, 그리고 표본 선정 작업에 개입하거나 여론 조사의 중립성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 이것은 사소한 룰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제다. 이 표본추출에 개입하는 것은 이미 사소한 반칙 행위가 아니라 원천적인 '승부조작'에 해당한다. 즉 선거운동 과정에서 누구한테 밥 먹이다 걸린 것이 아니라, 투표함에 사전 투표를 잔뜩 해 놓고 시작하는 ‘부정선거’인 셈이다. 관악을구 이정희 후보 보좌관 혼자서 '과잉 의욕으로' 그 일을 불행히도 자행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소회 하나만 덧붙이겠다. 까지 마라.)

이 의욕 하나는 헤라클레스같은 이 보좌관은 거의 실시간으로 여론조사의 향방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연신 문자를 날리며 여론조사의 향배를 ‘중계’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조사를 끌어내기 위한 행동 지침까지도 전달했다. 심지어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응답을 하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집니다. 다른 나이로 답변해야 함” “4,5,60대는 종료. 남은 연령대는 2,30대.” “

여론조사 방법을 채택한 것은 국민여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를 후보선정 기준으로 삼자는 뜻이다. 그러자면 전체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추출되어야 하는데 이 보좌관이 속한 조직은 그 운동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응답자표본의 대표성 대신 특정여론을 과대 대표하게 하려는 인위적 시도로서,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는 시도이다. 특히 응답자 세대의 거짓응답까지 시도했다는 점.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가정(무작위적 확률표본추출, 진실 응답)을 부정하려고 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실제 얼마나 여론이 왜곡되었는가의 문제를 떠나 자신들이 합의한 제도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고, 더구나 거짓응답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사결과를 왜곡하려했다는 점에서 여론 조사 자체의 정당성을 뿌리에서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승부조작에 개입한 것이다.

한때 한국의 마라도나라고 불린 최성국은 승부조작에 가담함으로써, 그리고 그에 가담한 선수들의 축구 생활을 FIFA가 규제함으로써 선수 생명이 마감됐다. 그가 얼마를 받았는지,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했고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여론 조사의 승부조작을 강행했다는 증거를 자신의 문자 메시지로 남긴, 이 의욕 만땅의 보좌관은 그 이름도 찬란한 '진보' 정당 대표의 보좌관이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참으로 능력도 대단하고 간도 크거니와, 이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 진보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진보 이전에 민주주의다. 그리고 민주주의 이전에 양심의 문제다.

우선 양심의 문제다. 여론 조사를 결정 방법으로 선택한 측에서 여론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어이 우리편! 앞으로는 이렇게 전화받어!"라고 지시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내놓고 하는 도둑질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연 사흘 굶은 도둑인지 아니면 원래 시커먼 도둑인지는 모르겠지만. 밝혀야 할 일은 많다. 관악을구 여론조사를 맡은 기관이 어디인지 밝히고, 그 기관의 고백을 들을 일이다. 도대체 왜, 어떤 경로로 유출했으며, 그 책임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연락 끊겼다는 보좌관부터 찾아내 사연을 들을 일이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다. 신새벽에 남몰래 그 이름을 쓰면서, 자유여 민주여 내 생명이여를 부르짖으면서 우리가 쟁취하고자 외쳤던 민주주의는 권력의 억압과 돈의 위력과 지역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 부단히 투쟁하며 성장해 왔다. 이제는 최소한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정부 조직이 투표소를 정전시키고 투표함 바꿔치기하는 건 전설에서나 나오리라 여기는 판에,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다고 자부하는 한 나라의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기 위하여 서로 합의한 여론조사가 '민의의 왜곡'으로 점철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고 진보고 나발이고 사발이고,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석고대죄에 아홉번 머리를 찧을 일이다. 이건 우리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퍽치기가 아닌가.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이래 무수하게 진행됐던 여론조사들 모두에 대한 의심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운데 그 결과인 우리 정치의 핏줄마저 의심스럽게 만드는 음란함이 아닌가. 적어도 나이를 속여 대답하라는 끔찍한 문자는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민주주의가 없애야 할 기생충이었고 민주주의 목에 드리운 칼이었다.

자 이제 진보의 문제다. 결론을 말하자. 그 짓을 진보가 했다. "의욕과잉의 보좌관에 책임을 미루는" 최구식스러움을 젖혀 놓고 말하자. 그 짓을 자칭 진보가 했다. 진보정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나이 속이고 대답하라고 떠들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진보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왜 진보하는가? 왜 이정희를 좋아하는가? 대관절 이정희를 국회로 보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성을 보다 폭넓고 깊게 구현하려는 의도이며, 이정희로 대변되는 진보를 지지하고 그를 활용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확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른바 진보가 지극히 그 적과 같은 방법으로 ,즉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이들의 방식을 수용하여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긴다면 이 진보는 대체 어디에 의지하여 그 이름을 지탱할 수 있겠는가. 이미 양심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느 결엔가 흘려 버린 진보가 진보일 수 있는가. 이래 놓고 승리하면 진보의 승리라 부를 만세에 염치가 남아나겠는가.

어제 오후부터 쑤셔진 벌집 주변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이정희 대표 본인이었다. 그녀 주위를 둘러싼 집단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꼴통들인지는 잘 아는 바이지만, 그녀만큼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킬 줄로 알았다. 종북좌파 플래카드 따위 흑색선전에 비할 바가 아닌, 여론조사 자체를 무력화하는 '승부조작'이 자신의 휘하에서 자행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보의 대표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 처절하게 슬퍼하며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대답은 '원하면 재경선'이었다. 거기에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정희 응원이 그 기막힘을 더했다. 보좌관이 했지 이정희가 했냐는 어디서 많이 본 논리부터 이정희를 믿습니다는 신앙고백에다가 이정희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는 힐난까지. 오늘은 또 김희철도 했고 새누리당도 한 짓인데 왜 이정희만 가지고 그러냐는 전두환식 항변도 등장한다. "허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른바 진보가 태동한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그리고 지금도 벗어나기 힘겨워하는 일은 "그놈이 그놈이지." 하는 힐난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놈들과 우리는 다르다고 차별화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이정희의 보좌관 하나로 완벽한 수포로 돌아간다. 명예훼손도 아니고 금품살포나 허위 이력 정도가 아닌 선거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수완까지 우리의 진보가 발휘한 것이다. 지금껏 새로운 대안이라고 악을 쓰는 진보를 지켜봐 온 사람들이 "쟤도 그랬고요 얘도 그렇고요"하며 고자질하고 앉은 똥묻은 진보에 공감을 하겠는가. 하다못해 동정을 하겠는가.

이 와중에 이정희 대표는 출마를 강행하여 승리로 보답하겠단다. 누구에게? 누구의 승리로 보답하겠다는 것인가? 그 승리를 누구와 함께 기뻐하며 당신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땀흘리고 피뿌려 가꾼 길을 당신의 냄새나는 당선으로 가꿀 수 있다는 것인가. 당신은 도대체 왜 진보인가. 어떻게 진보인가. 무엇하러 진보하는가.

지금 한 번 죽으면 크게 살 수 있는 것을, 정파의 이익에 사로잡힌 자들에 둘러싸여 또는 그들을 업고서 끝끝내 자신을 키워준 진보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경기동부의 원내진출'에 올인한다면 결국 그녀는 죽을 것이다. 그녀만이 아니라 결국은 진보도 독을 마실 것이다. 오호라 관악성은 함락되었고 감수성 풍부하고 울부짖기 좋아하던 기생 논개는 제 주인 진보의 허리를 가락지로 끼고 관악산 연주대에서 다이빙을 하려는구나. 몸바쳐서~~ 몸바쳐서~~~ 진보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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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온갖 말들이 설왕설래한다. 찬성론자들은 찬성의 입장에서 반대론자들은 반대의 입장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다 좋다. 민주주의란 시끄러운 것이니 FTA 같은 중차대한 일에 입을 다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신문을 보았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어떤 것이 좋아지고 얼마나 우리 경제에 플러스가 되는지 장미빛 청사진들로 가득하다. 과연 그럴까? 정부과 언론, 양대 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는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 그들 말대로 FTA는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며 손해보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알아서 책임질 것이라고 믿어도 좋은가? 혹시 권력과 권력의 나팔수들이 하는 말이 도리어 선동이며 우리는 그 선동에 놀아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참에 정부와 언론의 대표적인 말잔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한미 FTA에서 독소조항이라고 문제시되는 조항들은 다른 나라와의 FTA에서도 일반적인 것들이다?

이건 FTA 체제에 대한 기본 개념을 넘어서는 말이다. FTA가 어떤 협정인가? 과거 세계무역기구에 의해 규율화되던 국제무역을 1국가 대 1국가 혹은 1국가 대 1경제공동체의 직접협상으로 전환한 체제다. 다시 말해 99개의 나라와 A방식의 협정을 맺었더라도 1개의 나라와는 B방식으로 협정을 맺을 수 있는 것이 FTA다.

한미 FTA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대로 하는 무역협정이다.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다. 일단 한국과는 체급이 다른 상대다. 이런 나라와의 무역협상을 추진하자면 정부관료는 당연히 다른 99개 나라와의 방식을 기계적으로 따를게 아니라 특별한 방식들을 연구해야 옳다. 초등학생이 성인과 권투시합을 하면서 다른 초등학생과 싸우던 방식을 고집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칠레와의 FTA는 이렇고 다른나라와의 협정은 이렇고 떠들 일이 아니다. 칠레 같은 제3세계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과 미국은 그 경제규모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정부와 언론이 떠벌이는 FTA 일반논리는 일종의 일반화 오류일 뿐이다.

2. 많은 부분 우리에게 이득이 되므로 일부 분야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FTA 맹신자들은 말한다. 농축산 분야에서 피해가 있겠지만 전자, 자동차 등 많은 부분이 이득을 보니까 일단 추진하고 피해 분야는 정부가 구제하면 된다. 그럼 묻자. 농축산민의 희생으로 성장한 전자, 자동차 재벌이 그들이 거둔 초과이익을 농축산 분야와 나눌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재벌이 어떤 존재인가? 지금 같은 친재벌 정권 아래에서 만들어진 동반성장위원회가 주장하는 이익공유제에 대해서도 반자본주의적 방식이라며 펄쩍 뛰는 집단이다. 그런 그들에게 FTA로 얻은 이익을 피해 국민과 나누라고 한다면 그들은 무어라고 할까? 분배는 커녕 초과이익에 대한 초과세금만 부과해도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낼 작자들이다.

그럼 국가가 책임지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도 모순이다. 국가의 가장 큰 수입은 세금이다. 즉 FTA 피해분야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은 결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이익은 재벌같은 특정세력이 주로 가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이 분담하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FTA를 두고 무한경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일부를 전체처럼 말하는 것일 뿐이다. FTA의 진짜 얼굴은 이익을 보는 자와 책임을 지는 자가 다른 거대한 '특혜'다. 우리의 경우 그 특혜의 장본인은 당연히 1% 재벌이다.

3. 한미 FTA로 농산물, 쇠고기 등등의 가격이 낮아져서 물가가 내려간다?

한마디로 코메디같은 소리다. 개인적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하지 않으면 북한의 물공격으로 63빌딩 몇층까지 잠긴다며 모형을 만들어 TV뉴스로 보여주던 전두환 시절 이후 최고의 개그다.

그런 주장을 하는 정부 관료와 그걸 기사로 받아쓰는 기자는 대체 한국 경제의 규모를 뭘로 보는가? 질적으로는 아직까지 후진적이지만 양적으로 한국 경제는 이미 상당히 크다. 따라서 단순히 몇 개 품목의 가격, 정확히 말해 일부 품목에 부과되던 관세가 없어져 가격이 내리는 것이 전체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게다가 관세가 철폐될 많은 품목은 FTA 발효 이전에 이미 가격을 하향조정했다. 수입업자들도 살아야 하니까 발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나마 물가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지극히 단기적인 현상일 뿐이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현재 한국 물가의 고공행진은 고환율정책 때문이 아닌가. 고환율정책의 최대 수혜자 역시 재벌이다. 매년 재벌들의 배당잔치와 보너스잔치는 기록을 경신하는데도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는 기형적 현상이 물가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지 아니한가.

4. 한미 FTA를 반대하는 논리는 전부 오류과 선동일 뿐이다?

정부의 이런 주장은 한마디로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협상초기부터 정부는 필요한 정보를 국민에게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협상단계에서 필요이상으로 정보를 공개할 경우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성질의 정보공개가 아니다. 협상 일정이나 결과에 목을 메어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했어야 할 정보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민단체나 야당의 압력이 거세지면 그제서야 보따리 풀듯 하나씩 풀어놓는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게다가 문제를 제기하면 정권과 친재벌 언론들은 이념 색칠부터 했다. 뭐든 의심을 하면 친북세력으로 매도나 하는 짓이 군사독재와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FTA에 반대하면 누구든 종북 좌파로 몰아 매장시키는 사회 분위기는 대체 국민이 FTA를 위해 존재하는지, FTA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일례로 현직 판사가 FTA를 비판했다고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 이유로 징계까지 받는 사회가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있을까? 대체 친정부 발언은 비정치적이고 반정부 발언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는 억지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 선동이라고 하면 정부나 재벌들의 FTA 찬성광고가 더 선동적이다. 체리나 레몬이 싸져서 다이어트가 어쩌고 저쩌고라니! 그런 류의 광고라면 수백 수만가지를 만들 수 있다. 쇠고기 값이 싸지니 국민의 단백질 섭취가 높아지고, 와인 값이 싸지니 국민의 음주문화가 개선되며, 농축산업이 황폐화되면 농촌의 산업구조가 도시화될 것이다 등등 갔다 붙이기 나름 아닌가? 선동은 권력과 재벌이 멈출 일이다.


열거한 것 이외에도 정부와 친정부, 친재벌 언론의 한미 FTA관련 주장들은 일방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FTA라는 국가간 경제협정은 상호무역에 관해 국가와 국가가 나라 전체의 분야를 걸고 맺는 협정이다. 강자의 이익과 약자의 이익을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뭉떵거려 하는 일이니 당연히 그 이익의 중심은 강자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은 것을 희생시켜 큰 것을 취한다는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FTA인데 문제는 희생되는 약자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약소국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국내적으로는 거대자본에 가려지는 소시민일 가능성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FTA란 약자의 희생을 딛고 체결된 후, 그로부터 발생한 이익은 강자들이 나누어 가지는 체제다.

따라서 99% 소시민의 의문과 반대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그걸 선동으로 몰기 전에 국가와 친재벌 언론들이야 말로 합리적 반대를 선동이라고 우기는 선동을 그만둘 일이다.

http://blupn.tistory.com/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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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가카'라는 책은 제목부터 잘 읽어야 합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라이또의 원뜻인 또라이 가카가 아니라 또, 라이(거짓말) 가카라는 의미입니다. 원래 책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데, 오늘 포스팅의 주가 되는 '또,라이 가카'라는 책은 조금 특별합니다. 부제가 'MB의 거짓말 100과 사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MB의 거짓말 백서입니다. 공동저자인 전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김성재 씨는 'MB의 거짓말을 100개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100개로 줄이는 것이 어려웠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거짓말은 많았고, '또,라이 가카'라는 책에는 MB의 거짓말이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또,라이 가카'에 나오는 MB의 거짓말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이명박 후보가 소유한 서울 서초구 양재동 12-7 번지의 영일빌딩 사진. 이 후보는 문제가 될 건물을 지난 1989년부터 소유했으며, 지하 1층은 421.2㎡(127평) 규모다. 해당 유흥업소는 지하 1층을 전부 임대했고, 2000년부터 유흥업소로 등록돼 있다.ⓒ 안윤학/오마이뉴스


'나 돈 없어요'.소득 거짓 신고

2007년 12월 대선 직전 이명박 대통령은 국세청에 자신 소유의 서초동 영일빌딩과 영포빌딩의 임대소득을 신고합니다.


강남 서초구에 있는 시가 150억 원 빌딩의 연간 임대소득이 겨우1억 전후입니다. 그리고 시가 200억 원 영포빌딩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적자가 났다고 합니다. 200억 원 투자해서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번다면 1억짜리 오피스텔 분양받아 임대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만 원 법니까?


경제에 그토록 자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의 부동산 임대 수익이 진짜 저 금액이었다면, 그는 아예 경제를 입에도 꺼내면 안 되는 최악의 경제능력을 소유한 인물이 됩니다.

▲ 이명박 후보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낸 국민건강보험료 내역.ⓒ 오마이뉴스

강남구 서초동에 빌딩을 소유하고 몇 백억원의 자산가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건강보험료 내역서입니다. 한 달 2만원, 어떤 때는 만오천원을 냈습니다.

50만 원짜리 중고차 한 대에 집 한 채 없는 제가, 겨우겨우 사정하고 농촌할인까지 받아 내는 건강보험료가 5만 원입니다. 이 금액도 주위에서는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강남에 몇백 억 원짜리 빌딩도 있는데, 달랑 만오천 원 냈습니다.

이런 거짓말과 꼼수를 부리며 상식을 지키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무슨 말인 듯 못했겠습니까?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경제 대통령'일자리 300만 개


"내 자신이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남의 일자리를 생각했고, 지금은 온통
나라 일자리를 만들 걱정만 하고 있다"
(2007년 12월27일 소망교회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 감사예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공약

'매년 7퍼센트 성장,
연간 60만 개씩 총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

청년실업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만든 평균 일자리는 겨우 20만 개였습니다.노무현 정부 5년 평균 취업자 증가는 25만 3000명이었는데, MB정부 때는 13만 2000명으로 반토막 났습니다.

반값등록금,청년 실업 절반을 외쳤지만 결국 일자리만 반토막 낸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정치] - 사기당한 국민,반값 등록금 공약은 돈이 아닌 마음만.

'값싸고 맛있는 미국산 쇠고기 드세요' 미국산 쇠고기 사랑


"미국산 쇠고기를 강제로 공급받는 게 아니고
마음에 안 들면 (국민들이) 적게 사면 된다.
우리 도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기를 먹고 있다.
(쇠고기 협상을 통해)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
(2008년 4월 일본 도쿄 호텔에서 열린 기자단 조찬간담회)

이명박 대통령은 유난히 미국산 쇠고기를 좋아했습니다. 질 좋은 고기라고 맛있다고 우겼습니다.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가 맛있다고 해서 국민은 너도나도 방송보고 미국산 쇠고기를 사 먹었습니다.

▲ 청와대 및 정부청서 등 70개 공공기관 쇠고기 원산지 현황 출처:서울신문

청와대, 정부중앙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정부부처,서울 시청 등 70개 공공기관에서는 쇠고기를 국내산,호주산,뉴질랜드산을 사용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무(全無)'


도대체 왜 공공기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았을까요?

정부중앙청사 식당 관계자는
'미국산'은 불안하다'는 인식을 떨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산을 쓸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대천청사 식당 관계자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미국산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에 미국산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약간 비싸더라도 안전한 호주산을 쓴다'고 전했다(2009년1월13일자 서울신문)


대통령이 그렇게 질 좋고 맛도 좋다는 미국산 쇠고기를 왜 안 드셨을까요?

진짜 국민에게만 미국산 쇠고기 먹으라고 강요하고 청와대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오히려 먹지 않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2011년 한해 대장균 감영 의심 미국산 쇠고기 59톤이 전량 리콜됐습니다. 그런데 이 중 35톤은 국내에 반입이 된 상태였습니다.

'원전수출 및 자원외교 자랑질. 또,라이 가카'

2009년 KBS 등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갑자기 '긴급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400억 달러 (약 47조 원)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공사를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 금액은 한국 역대 최대 해외공사수주이자. 최초의 원전수출 계약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2월28일 라디오 연설에서 자랑스럽게 이 사실을 발표합니다.

"정부와 많은 기업이 모두 함께 노력한 덕분이기는 하지마는
정말 천운이자 국운이라고 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역사상 처음으로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자력 발전소 수출 길을 열었다"

"오늘 UAE에서 돌아왔는데,아마 대기업 사람들과 약속했으면 양해를 구하고 안 왔을 텐데 (피곤해서) 입술도 터졌는데 이렇게 왔다"


한국 최대, 최초의 원전 수출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입술이 터지신 가카였습니다.그런데 이런 가카의 업적에 갑자기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계약은 이미 성사된 계약이었으며, 성사가 확실히 되자,MB가 UAE를 긴급 방문했다"

국민은 설마,절대로, 가카는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수주금액이 400억 달러에 이르는 UAE 원전 공사비 중
100억 달러가량을 우리 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확보한 뒤
28년 동안 회수하는 조건으로
UAE에 빌려준다는 이면 계약이 있다 (2011년1월30일 시사매거진 2580)

사실상 공사비의 절반가량을 우리 정부가 선 부담하는 구조로 계약이 맺어진 셈이었고, 정부와 한전은 이 같은 계약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었습니다. 또 원전 수주의 대가로 한국군을 UAE에 파병키로 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정치] - 특전사 파병에 숨겨진 어처구니 없는 진실

청와대는 가카의 업적이 발표되는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이라면 카퍼레이드를 할 일지만, 대통령은 조용히 나중에 평가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

이면계약, 그리고 한국군 파병으로 이루어진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조용히 (?) 했고, 그 평가를 어찌 감당하려고 저런 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했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원전수출처럼 가카의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기'는 계속됐습니다.

2011년 8월 카자흐스탄과 맺은 80억 달러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도 알고 보니 2년 5개월 전에 수주했던 사업이었고,2011년 11월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협력 합의했던 천연가스관 사업도 2004년 이미 결정된 사업이었습니다.

'또,라이 가카'의 추천사를 쓴 김용민 교수는 '이명박 거짓말 모으면 책 한 권 나오겠다고 낄낄 땠는데'라며 가카의 거짓말을 모은 이 책을 먼저 쓸 걸하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아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 블로그에 대부분 있었는데 ㅠㅠ)

▲ 또,라이가카(김성재,박민호 공저/책보세) 본문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인용했음.


'또,라이 가카'(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책 제목입니다. 요새 제 블로그에 이상한 일이 벌어져서 요새 조금씩 두렵습니다.) 를 보면 수없이 많은 가카의 거짓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거짓말을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덤덤해지고 있습니다.

"대중이 차분해지도록 하지 마라.
절대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마라.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마라.
절대 비난을 받아들이지 마라.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빨리 속는다.
그리고 거짓말을 충분히 자주 반복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그것을 믿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의 '큰 거짓말 이론')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벌써 탄핵이 아니라 하야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은 못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돌프 히틀러의 '큰 거짓말 이론'처럼 벌써 속았기 때문입니다. 멍청하게 가카의 거짓말에 속아 믿고 또 믿으며 계속 사시겠습니까?

거짓말쟁이가 스스로 거짓말을 반성하지 않으면 방법은 응징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행복해집니다.

http://impeter.tistory.com/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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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3월12일 '한국신문방송편집협회'가 주최한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5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말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습니다.

청와대에서 올린 토론회 정리본을 읽으면서 끝까지 이명박 대통령다운 화법만 구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이야 어려운 말로 대통령의 말을 정리했지만, 저는 일개 블로거답게 대통령의 말을 풀어보겠습니다.

'국민에게 했던 대통령 선거 공약은 다 어디로 갔나?'

이번 토론회는 2007년 열렸던 세미나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다시 참석하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킨 토론회라고 합니다. 이런 약속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서두를 시작했습니다.

"2007년 5월 경선후보 때 약속을 했는데, 아무리 선거가 급하더라도 공약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우스갯 소리로 했던 말이지만, 이 말을 듣는 필자는 가슴이 콱 막혔습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에게 대통령 당선되면 토론회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선거 공약이 무서운 분이 왜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에게 했던 말들은 안 지키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747공약 ⓒ 이명박


747공약을 비롯한 복지, 반값등록금 등 실제 국민에게 필요한 공약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주장했던 4대강 사업 관련 공약은 아주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믿고 뽑았던 사람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안겨 준 곳은 재벌과 토건족, 그리고 친인척과 부자들이었다는 사실에 국민은 화가 나 있는데, 대통령은 선거 공약 무서움만 알지, 국민 무서움은 모르고 웃기만 합니다.

' 부분적 언론 자유국, 세계 70위 언론 자유 하위국'

이명박 대통령은 탈북자 북송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고 국격이 높아지고 일류국가의 문턱에 와 있는 국가라고 하면 이 인권이라든지, 인류 보편에 대한 가치에 대해 중심을 얼마만큼 두느냐 하는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

우리 대통령은 국격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G20는 물론이고 어떤 사안마다 우리의 국격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이런 국격이 높아졌다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K-POP이 인기가 있다고 대한민국 국격이 높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류국가를 강조하시는데 이명박 정권에서 일류국가라는 표현은 엉뚱한 곳에 잘 써먹습니다. 지난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선진일류국가 전진기지'라는 표현을 했는데,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면 일류국가가 아닌 이류국가였을까요?

▲ 일본은 언론자유국가,한국은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발료한 2011 언론자유 보고서 ⓒ 프리덤하우스


1980년 군부독재시절 '부분적 언론 자유국'을 거쳐 1990년 '언론자유국'이 되었던 대한민국이 2011년에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 되었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인권,자유 감시 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은 그동안 ‘자유국’ 그룹의 하위에 머물렀으나 이번에 강등됐다.이는 정부의 검열 증가와 함께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상에서 삭제되는 친북 또는 반정부 시각의 글이 늘었고, 정부가 언론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형 언론사의 고위직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동료들과 함께 대형 방송사의 경영에 개입해 왔다."라며 대한민국의 인권 언론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습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가 왜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할까요? 국민 대다수가 볼 때에는 북한 인권보다 대한민국 인권이 더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통령만이 언론탄압도, 언론통제도 안 하신다고 하는데 왜 KBS,YTN,MBC 3사가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까요?

"국민의 볼 권리 이런 데 대해서 서로 협력해서 회사 스스로 빨리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대통령은 그저 국민이 군부독재시절처럼 예능프로,스포츠 프로만 보여주면 그만인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나 봅니다.

국민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퇴임 후가 걱정이신 대통령, 박근혜 위원장을 칭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세론과 한계론'에 대한 질문에 '대세론은 들어 봤어도 한계론은 들어본 적 없다, 유망한 정치인이다.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 몇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앞서 생각하는 언론도 많겠지만,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칭찬하는 말은 아주 오랜만에 듣습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부터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두 사람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욱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친이, 친박으로 나누어져 벌였던 기나긴 공방이 어쩌면 이 한 마디로 종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근혜측이 BBK 김경준씨의 입국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서, 2년 전에 썼던 포스팅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죽이기로 살 길을 모색했다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정치] - 이명박,망명대신에 박근혜 죽이기 시작.

당시에는 친이계가 박근혜를 몰아낼 것으로 봤는데, 지금은 완전히 박근혜 대세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납작 엎드리는 일밖에 없습니다. 아마 지금 퇴임 이후를 생각하며 물밑 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살길 위해 정적과 다시 손 잡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왠지 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 속이 훤히 들여 보이는 대통령의 꼼수'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신문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가 열리는 3월12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가 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야당대표가 생중계로 토론회를 갖는 같은 시간 이명박 대통령은 엠바고를 걸고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엠바고까지 걸면서 토론회를 했을까요?

엠바고를 거는 경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내용이 복잡해 보충취재가 필요할 때 보도를 유예한다.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한 시점만 모를 때 불확실한 내용의 보도로 수용자들을 혼란시키지 않기 위하여 보도를 유예한다.
* 비록 잘 아는 내용이라도 안보나 공익과 관련된 사항일 경우 보도를 유예한다.
* 해외 공관장 이동이나 상대방 정부와 동시에 발표하는 사안일 경우 보도를 유예한다.
* 취재원이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자료는 미리 입수하더라도 취재원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는 보도하는 않는 것이 관례이다. 국무회의나 차관회의 자료가 여기에 속한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에는 언론인이 모인 자리이며, 그들을 총선 전에 만나 토론회를 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입니다. 쉽게 말해서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 토론회 정리본 전문보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쓸데없는 일에 엠바고가 늘었습니다. 엠바고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까지 엠바고를 거는 정당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혹시나 야당대표의 관훈토론 생중계에 민폐를 끼칠까봐서? 그랬다면 일정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행보 하나하나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이런 대통령의 모습이 은근 옹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야권통합과 반MB정서관련 정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야권통합이다 반MB정서가 있다 했지만, 다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뭐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국민의 의식 속에 건강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토론회에 갔다 온 기자의 말을 빌리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감이 넘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음 그런 자신감이 얼마나 '허장성세'였는지, 국민이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할 지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http://impeter.tistory.com/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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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보궐선거에서 이긴 박시장이 취임한 뒤 강남 재건축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것

을 두고 박원순 효과라고 일컫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정말 비과학적인 보도가 아닐 수 없다.

이들 기득권 언론에 소개되는 부동산 전문가(라고 쓰고 부동산 투기 선동가라고 읽는다)라는 사

람들 가운데는 부동산 및 건설업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한건설협회 부설 건설

산업연구원(건산연)이나 대한주택협회 산하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은 말할 것도 없다. 삼성경

제연구소와 같은 재벌계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교수라고 해도 주로 도시계획, 토목학, 부동산학

등을 전공하다 보니 거시경제가 부동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경제적 이해가 부

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의 전망은 해마다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한 재벌 건설

업체는 건산연 연구자의 전망이 해마다 어긋나자 그를 강연 초청 대상에서 빼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기득권 언론들은 여전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들의 목소리를 고장 난 축음기

처럼 계속 틀어대고 있다. 이미 허튼소리로 판명된 게 적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 레퍼토리들 가운

데 일부를 정리해보자.

1. 토지보상금 40조 원이 유입돼 집값이 뛴다(2010년 이후). 지금까지 집값을 움직인 동력은 가계

부채였다. 더구나 LH공사는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며 토지 보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2. 부동자금 800조 원이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집값이 폭등한다(2009). 부동자금은 언론이 만들

어낸 거짓말이다. 800조원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기에 수도권 집값이 가라앉나?

3. \'보금자리 로또\'로 주변 집값이 뛴다(20099, 10월경 보금자리 주택 사전분양이 실시되기

). 이후 집값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

고 말을 바꿨다.

4. DTI규제를 도입해도 이미 대세 상승기이기 때문에 집값이 안 꺾인다(20099DTI규제 재도

입 시점). 이후 집값이 가라앉자 DTI 규제 때문에 집값 침체가 왔다고, DTI규제를 풀라는 아우성

이 터져 나왔고 정부는 20108.29대책을 통해 DTI규제를 다시 풀었다.

5. 경기가 회복되면 외환위기 직후처럼 집값이 V자형으로 반등한다(2009년 이후). 2010년 경제성

장률은 6.2%나 됐지만 수도권 집값은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6. 전세가가 계속 상승하는 것은 실수요자가 그만큼 많다는 증거로 매매가도 다시 뛴다(2009

이후). 전세가 상승세가 지속됐지만 수도권 매매가는 오히려 떨어졌다. 최근 2,3년간의 전세가 상

승은 매매 포기 또는 매매 후 전세 전환 수요 증가로 일어나는 병목현상으로 부동산 침체의 징후

.

7. 다른 곳은 몰라도 서울 강남 등 오를 곳은 오른다(2009년 이후). 지금은 강남도 필패할 수 있

고 말을 바꾼다. 강남 3구는 고점 대비 실거래가로 이미 15%가량 하락했고, 수도권 주택 가격

하락세는 강남 3구와 용인, 분당, 평촌 등 버블 세븐이 주도하고 있다.

8. 중대형은 몰라도 중소형은 오른다(2009년 이후). 중대형 투기가 끝나자 상대적으로 남아 있는

주택 수요층이 범접할 수 있는 가격대의 중소형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나온 주장. 하지만 이는

사후적 설명이지 전망이 아니다. 더구나 용머리가 내리면 용꼬리도 따라 내리듯 중대형에 이어

중소형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9.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폭등한다(2009년 봄 이후). 수요량과 공급량은 가격에 의해 결정되

며 공급은 수요에 비해 상대적인 과부족이 있을 뿐이다. 여전히 주택 가격은 너무 높은데도 주택

수요는 고갈된 상태라면 주택 가격이 대폭 떨어지지 않는 한 주택 수요량이 다시 늘어나기 어렵

. 이처럼 고갈된 수요에 비해 공급은 여전히 과잉인 상태다.

10. 부동산은 심리다. 투기 심리가 확 쏠리면 한 방에 오른다(2000년대 내내). 강남 자산가들도

동산은 끝났다는 응답이 다수인 시기에도?

11. 정부 정치권이 집값 부양을 위해 인플레를 유발하고, 인플레가 오면 집값이 오른다(2009년 이

).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도권 집값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불경기

속의 물가 상승기에는 (실질) 집값 하락이 일반적이었다.

12. 5만 원권 화폐를 발행하면 인플레가 와서 집값이 오른다(5만 원 권 발행 전후). 신사임당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마라.

13. 지방은 몰라도 수도권 집값은 인구 증가로 계속 오른다(2008년 이후). 매년 3만 호 정도만 지

으면 모두 흡수할 수 있을 수도권 인구 증가세가 급감했다. 오히려 향후에는 바로 인구 요인 때

문에 집값 하락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14. 인구가 줄어도 1인 가구는 증가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2008년 이후). 1인 가구의 평균 소

득이 일반 가계의 40% 수준이고, 대부분 집을 줄여가는 60대 이상 가구에서 늘어나는데도? 이마

저도 안 통하자 이제는 남북통일이 되면, 이민자가 늘면 집값이 계속 오른다고 한다. 단기간에 될

일도 아니지만 북한 주민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이 4, 5억 원씩이나 되는 수도권 주택의 유효 수요

가 될 수 있을까?

15.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각종 개발 공약이 쏟아져 집값이 뛴다(2010년 이후). 오히려 개발

공약을 쏟아낸 후보는 떨어졌고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부동산 투기 선동가들은 모두 주택시장을 떠나는 지금이 집을 살 타이

이라는 역발상을 주문한다. 이쯤 되면 전망이라기보다는 제발 집을 사달라는 호소나 기도에

가깝다. 하지만 꿈 깨시라. 부동산 광고에 목을 맨 언론이나 부동산 정보업체의 호소나 기도를 들

어줄 수 있을 정도로 지금 가계 사정은 녹록지가 않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870639&pageIndex=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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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 대한 이해와 오해

2012. 3. 5. 월요일
히야신스님

작은 진중권은 작은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작은 진중권은 작은 트위터를 매우 사랑했답니다.

작은 세상 안에서 웃고 떠들며 놀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작은 나꼼수팬들이 날아와 작은 트위터 타임라인을 어지럽혀 버렸어요.

작은 진중권은 너무 슬펐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작은 진중권은 작은 산을 넘고…

작은… 계곡을 건너서…

작은 떡갈나무를 타고 올라가…

작은 나꼼수팬들의 작은 배때지에 하나하나 독설을 꽂았답니다.

씨발 누구든 작은 진중권을 건드리면 좆되는 거예요.

아주 좆되는 거야.

참조자료

진중권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요즘에는 나꼼수에 대한 비판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니편 내편 없이 비판하는 사람이지만,
아니 애초에 니편 내편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깔 거리야 가카 쪽에 더 많은 게 사실 아닌가?

나꼼수를 이다지도 열심히 까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그는 왜 이러는 걸까?

최근 트위터에서 크고 작은 전투들은 제외하더라도,

진중권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황우석, 심형래 사건이 있다.

그 유명한 황빠, 심빠 논쟁 외에도 진중권이 전투를 벌인 일은 큰 것만 봐도 이렇다.

서울시장 후보논쟁 : VS 강준만

진보정당 노선논쟁 : VS 김규항

곽노현 논쟁 : VS 시민단체 등

나꼼수 논쟁 : VS 나꼼수 출연진 등

부러진 화살 논쟁 : VS 영화팬 등

강준만 교수와는 안티조선운동에 동참하기도 하고, 김규항 씨와도 '아웃사이더'를 함께 만들었으니 동지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논쟁이 벌어지자 그런 그들에게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자기편 감싸도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중권의 소명의식

그가 최근에 입진보니, 관심병 종자니 하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다.

본지 UMC 인터뷰중에서(링크)

" 마 – 진중권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얘기 했는데, 그 부분을 좀 더…(^m^)

U – 누가 얘기 했더라. “하루 종일 트위터만 하면서…”, 이런 얘기, 너무 공감되서 죽을 뻔 했어요. 다른 걸 좀 하지?

이거는 논리적인 추론은 아니구요. 사람 몇 만나 보니까, 인터넷에서 글 써가지고, 그것도 하루죙일 들여다 보면서 글 써가지고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얻어내려는 거. 이렇게 얘기하면 “난 그런 거 얻어내려 한 적 없는데?”라고 얘기하겠죠. 그런데 이게 리플, 모바일 이전 웹시대에 리플이라는 게 있고 사람들이 그걸 이용했던 제일 중요한 심리적인 기저가 그거거든요. 불특정 다수가 본다. 사람들에게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걸로 인해서 어떠한 respect (존중, 존경 – 필자 마사오 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근데 그럴려고, 하루죙일 애쓰는 사람 치고 저는, 음…실제 세상에서 쓸모 있는 새낄 본 적이 없어요. 한 명도. "

최근에는 트위터로 종일 입씨름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니, 그런 말을 들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편내편 없이, 옳지 않은 것은 반드시 비판하고야 만다.

그 정도레벨이라면, 트윗 한 줄, 댓글 하나까지 답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일일이 대응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그 결과 팬도 많지만, 그보다 많은 안티들이 있다.

그 주위에는 오랜 동지라고 할만 한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약간의 우울증도 생겼다고 밝힌 바 있고, 경비행기를 타면서 소일하는 것도 팬도 안티도 없는 하늘이라는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외롭고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투철한 소명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편에 구애 받지 않고, 잘못된 건 비판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소명이자 그의 역할이다.

우리사회가 이런 투철한 정신을 가진 지식인을 가진 것은 감사할 일이다.

입진보니 뭐니 하는 그에 대한 비판은 절대 온당한 평가가 아니다.

글쟁이는 글로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또 불과 몇 년 전 촛불 정국 때 안경 깨져가면서 거리를 누볐던 것도 잊지 말자.

그런데 최근의 행보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의 전체적인 판단은 일리가 있다.

투표소 변경 - 선관위 디도스 조작 - 디도스 공격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벌이는 위험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투표의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이 석연치 않은 해명이 이어지고 있으며, 점점 의혹은 커져가고 있다.

무조건 음모론적인 접근은 피해야 겠지만, 이 나라는 농협의 해킹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버젓이 공식발표한 나라가 아닌가?

조금의 의혹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파헤쳐 보는 것이 당연하다.

진사마는 이와 관련한 트위터상의 토론과정에서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무지한 면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심지어 명백히 보고서를 오독하기도 했다.

(참고 : 트위터에서 본지 필진 '춘심애비' 님의 진중권에 대한 반박)

선관위 서버 디도스 공격 조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으므로, 그럴 리가 없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의 판단력이 흐려진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는 가장 큰 적은 언제나 선입견과 오만이다.

적어도 기술적인 문제의 분석에 있어서는 좀더 겸손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에 조지아 공대 교수의 트윗을 블록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가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는 것 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의 말대로 어떤 시스템이든지, 내부에 오류를 수정할 피드백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오류보고를 선입견이 중간에서 차단하고, 용케 보고가 돼도 무시해버리니, 자동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걸 비판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나꼼수에 대해서는 약간 균형을 잃었다는 느낌이다.

선입견과 오만에 사로잡혀 조그마한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왜 균형을 잃게 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걸 나꼼수에 대한 질투 때문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외로운 길 묵묵히 가고 있는 그의 행보를 볼때, 질투를 느낄 이유가 없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나꼼수로 대변되는 흐름과는 어떤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 아닐까?

내가 진사마의 머리속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아래의 글은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이글의 목적은 진중권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쓸데없는 오해는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본격 진중권 쉴드 쳐주는 글이다. (까는 것 처럼 보인다면, 오해입니다. 오해예요.)

진중권의 글쓰기

진중권과 생각을 같이하는 몇몇 논객들이 최근 팀블로그를 하나 꾸렸다.

리트머스 : http://blog.ohmynews.com/litmus/

그들의 글쓰는 방식도 나꼼수로 대변되는 흐름과 큰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세계관 자체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는 대중의 언어로, 쉽게 얘기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진중권은 어렵게 얘기하는 것이 목표처럼 보일때가 있다.

그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글을 쓰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촘스키는 진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의자위에 있는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은 지금 의자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의자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참~ 쉽죠잉?

즉,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는 말이다.

글이 복잡하고 어렵다면, 글쓴이가 자기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진실되지 못한 글이라는 증거이다.

…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에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표적인 진중권 키드인 한윤형의 글을 보면서였다.

처음에는 그 글을 보고 글을 못 쓴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좋은 글이란,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쉽게 전달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윤형의 글은 내 기준으로 보면, 별로 좋은 글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 참 글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심하게 글을 잘 풀어갔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82

댓글란을 한 번 읽어보자.

가끔 글이 어렵다는 지적은 진중권, 한윤형 뿐만 아니라, 이택광 등의 블로그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진중권과 패밀리라고 일부러 어렵게 쓰고 싶을 리가 있겠는가.

이것은 세계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보아야 한다. 쉽게 쓰면 좋겠지만 이건 부차적인 문제이고, 최대한 정확하게 쓰는 것이 그들의 우선적인 목표이다.

사실, 쉽고 간결하게 쓴다는 것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결하다는 건 정보를 선택한다는 것이고, 버려지거나 생략된 정보가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된다.

반면 정확하고 상세한 전달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다소 장황해지는 면이 있다.

진실된 글을 쓰면 그만이라지만, 현실세계의 진실이란 때로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가?

그러다 보니, 간단하게 보이는 얘기도 온갖 외국이론과 학자가 등장하고 아주 난리가 날 때가 있다.

그릴 그림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외국이론 소개하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 식으로 끝날 때도 많다.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표현하려는 겉멋인가?

이건 단순히 겉멋이라기보다는,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로 이해한다.

진중권과 엘리트주의

흔히 진중권을 엘리트주의로 몰기도 한다.

반면 트위터에서 맨날 진흙탕 싸움이나 하는 그가 엘리트주의라니 당치 않다는 반박도 있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면 그런 경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지적인 엘리트와 대중을 철저히 구분해 생각하고, 대중을 비이성적이고 단순하다고 바라보는 듯하다.

"김어준의 말은 ‘너희들은 경쟁력이 없다’는 시장의 자신감에 흠뻑 젖어 있다.

문제는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문장은 대중과 공유하는 그 코드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

그의 말대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순간, 대중은 다시 민주당/한나라당의 이진코드에 갇힐 것이다.

‘이성이 감정을 이긴 적이 없다’는 노골적인 반지성주의는 그러잖아도 이성의 결핍으로 고통받는 한국의 대중을 영원히 피/아, 호/오의 이진코드에 가둘 것이다.

피아나 호오의 이진법이 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간단하다. 그 복잡한 세상을 단 1bit의 용량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닥치고 정치’, ‘쫄지마 씨바’의 단순한 세계에서는 김연아와 인순이까지 ‘적’으로 분류한다."

- [진중권의 아이콘] 언어의 착취 중-
http://goo.gl/hlcSy

그는 나꼼수 열풍을 단순한 사고에 빠진 대중과 이를 간파한 김어준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엘리트와 대중을 철저히 구분해서 바라보고, 대중의 판단력을 철저히 불신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엘리트 주의가 아닐까?

트윗에서 진흙탕 싸움을 매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정도 되는 논객이라면 굳이 트윗 한 줄, 댓글 하나하나까지 답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찌질한 트윗 하나라도 일일이 대응을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은 엘리트로서의 소명의식 때문이다.

죽비로 후려치듯이 대중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주려는 것이 아닐까.

이것도 엘리트주의와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엘리트주의가 꼭 나쁘다기보다는, 근본적인 접근방식 자체가 나꼼수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나꼼수는 스스로 잡놈이라고 부르면서,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한다.

차렷자세로 어려운 용어를 풀어놓곤 하는 진보진영의 대화방식에 대한 문제의식도 엿보인다.

반면 진사마에게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음모론

진중권이 나꼼수의 많은 주장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도 어쩌면 세계관의 차이가 아닐까.

그는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는 편이다. 학자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디도스 공격은 확인된 사실이고, 한나라당 의원이 헌법기관을 테러했다.

이것에만 집중을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10.26 부정선거라는 틀로 전선을 확대했다가, 입증에 실패하면 어쩔건가?

이것이 그의 입장인 듯하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span style="font-size:16px;">

" 쉽게 말하면 1억짜리현찰을 내다버리고,

부도업체에서 발행한 10억짜리 어음을 선택한 거에요.

미련한 짓이죠. 거기들 낚여서 지금 뭔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퍼득퍼득… "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석연치 않은 정황과 해명들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므로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확인된 최소한의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

또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개연성이 있는 또다른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옳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진사마는 정론과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나꼼수가 전선을 확대해서 오히려 포커스를 흐릴 수 있다는 전술적인 판단과 충고를 할수 있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나꼼수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집중하는데, 이것도 우리사회에서 누군가는 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진사마 입장에서 이게 못마땅할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음모론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유연성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균형 감각과 유연성을 잃은 이유는 질투 등 개인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세계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연대의 가능성

나꼼수팬들은

나꼼수 까지 마라.

니들은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말하고 있고

진중권 팬들은

가카만 까면 그만이냐, 그 이후를 고민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

라고 반론하고 있다.

일단,

가카와 가카 같은 놈들을 끌어내리고 보자. 다음 문제는 그 이후에 고민하자 vs 가카 끌어내리고 나면, 좋은 세상 오는가? 어떤 게 좋은 세상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답은 없고, 각자의 세계관 차이라고 말할 수밖에.

1920년대 독일의회의 제1당과 제2당은 사회민주당과 독립사회민주당이 차지했다.

6대 의회만 빼고는, 두 개의 사회민주당의 의석수가 나치당에 미치지 못했던 때는 없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나치의 암흑시대를 막는 데 실패했다.

이런 불행한 일이 한국에서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MB 진영(이라고 치고…) 내에서의 세계관과 시각차이를 넘어선,

지속가능한 녹색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나꼼수를 까거나, 또는 나꼼수를 빨거나

진중권을 까거나, 또는 진중권을 빨거나

다 좋지만, 이를 넘어서는 연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히야신스님

http://www.ddanzi.com/blog/archives/71257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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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식민지, 부산의 잃어버린 20년

[정희준의 '어퍼컷'] 정주고 쪽박차고…부산은 지금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박근혜가 이번에는 대통령 한 번 해야 안 되겠나."

올해 초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이 전한 민심이다. "주변의 노인들이 열이면 열,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다를까? 그렇지 않다. '반 한나라당 정서'가 압도적인 수도권과는 달리 이곳 젊은이들의 보수와 진보 지지 성향은 반반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몰려나가 투표하더라도 달라질 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총선과 지방 선거에서 사하(을)의 조경태
의원 단 한명을 제외하면 부산의 진보는 '전패의 역사'를 걷고 있다. 정말 이곳 부산은 '푸른 피'가 흐르는 땅이고 부산 사람들에겐 '한나라당 DNA'가 새겨져 있는 것일까.

'박정희 타도'의 선봉장 부산

원래 부산은 야도(野都)였다.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군사 독재에 환멸을 느낀 부산대, 동아대 학생들이 '유신 독재 물러가라', '정치 탄압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산 시내로 진출하자 시민들이 합세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파출소, KBS, 구청, 세무서를 공격했고 독재 정권은 18일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투입한다.

그러나 민주화 시위는 19일 마산 지역으로 번져 나갔고 결국 노동자, 고등학생까지 합세하자 20일 마산에 위수령이 선포된다. 이때 연행된 사람 수만 1513명, 군사 재판에 회부된 사람 수는 125명이었다.
바로 '부마 민주 항쟁'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현장 시찰 후 박정희에게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이라고 보고한다. 또 시민들이 시위대에 주먹밥과 사이다, 콜라를 갖다 주고 이들이 경찰에 밀려면 집에 숨겨주기까지 하는 양상에 그는 놀랐던 듯하다.

결국 독재자 박정희는 26일 김재규의 총에 피살된다. 부산에서
저항이 시작된 지 딱 열흘 만의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 독재 아래서도 부산 시민은 쫄지 않았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 시민은 15개 지역구 중 14개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를 뽑아 반독재 민주화 진영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YS를 쫓아낸 한나라당을 사랑한 부산

ⓒ프레시안(최형락)

이러한 기개와 저항성이 완전히 엎어진 계기가 바로 1990년 1월 집권 여당 민정당(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간의 3당 합당이다. 이때 만들어진 민자당(민주자유당)은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지금의 새누리당으로 이어진다.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노태우와, 자신이 만든 통일민주당이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이 이끄는 평민당(평화민주당)에 밀려 제3당으로 전락해 대권 도전에 적신호가 켜진 김영삼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사실 3당 합당은 반독재와 민주화를 평생의 기치로 내걸었던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군사 독재 집단에 투항한 것이다. 한 마디로 '변절'이었고 '야합'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가 휘하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부산·경남(PK)의 정치적
자산을 대구·경북(TK)를 기반으로 하는 5공 세력에게 몽땅 갖다 바쳤다는 점이다. 이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던 이기택, 노무현, 김정길 등이 만든 정당이 일명 '꼬마 민주당'이다.

물론 3당 야합 덕에 김영삼은 대통령의 꿈을 이루긴 했다. 그러나 그가 퇴임사에서 밝혔듯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길었"다. 특히 자신이 국무총리에 임명했던 이회창은 민정계, 즉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김영삼을 철천지원수마냥 공격한다. 대선 직전 경북 지역에서 있었던 신한국당 전당
대회에선 현직 대통령의 (인형) 화형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영삼은 결국 대선 한 달 전 쫓겨나듯 당을 떠나야 했다.

이회창과 TK가 김영삼을 쫓겨냈고 또 김영삼을 지우기 위해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음에도 부산·경남은 한나라당을 대놓고
사랑했다. 부산의 상징 YS를 내동댕이친 TK인데도 부산은 TK를 '같은 편'이라고 착각했다. 남의 새끼인데도 내 새끼인 줄 착각하고 키워줬다. 그리고 마치 국정의 주체, 권력의 중심이라도 된 듯 뿌듯해 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TK 출신 대통령을 만드는 데 앞장섰고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등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상南도'가 아니라 '경상下도'?

그러나 대구가 지역구인 박근혜는 '뼛속까지 TK'다. 지난 2월의 '남부권
신공항' 파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는 대구 시장과 대구 지역 의원 만찬에서 작년 폐기된 '동남권 신공항'을 충청·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남부권 신공항'으로 명칭을 바꿔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부산이 미는 가덕도를 배제하고 대구가 원하는 밀양을 밀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그는 3시간가량 이어진 간담회 직후 "대구의 장래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까지 했다.

YS 때나 지금이나 TK는 PK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로. 사실 이는 적어도 200년 된 역사적 사실이다. 대구·안동 지역의 문벌들은 순조 때 김조순의 딸이 왕비가 된 이후 안동 김 씨 중심의 세도 정치로 패권을 잡았고 이러한 외척 세력의 득세는 대원군 때 약화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며 다시
부활한다. (당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안동 지역 지주 엘리트들도 있었지만 이는 소수였다.) 이후 이들이 남한 사회의 권력을 움켜쥔 것이다.

그런데 예부터 대구 지역 문벌들은 부산 등 경남 지역을 '남(南)도'가 아니라 '하(下)도'라도 불렀다. 이는 경남의 연안 지역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 기지 역할을 했고 따라서 문과급제자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 기장군의 경우 500년 간 1만4600명을 뽑는 동안 단 한명도 없었고 인근의 양산 지역도 비슷했다고 하는데 경상남도에 대한 경상북도의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사례는 많지만 우리
학교교수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철학전공했던 그는 대구 모 대학의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이 평소 찾던 칸트의 고서가 그 학교 앞 서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 교수를 앞세워 서점을 찾았다. 그 교수가 서점 주인에게 부산에서 온 교수라 소개하면서 그 책을 찾는다고 하자 서점 주인이 돌아서며 뱉은 말에 부산의 교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고 한다.

"부산 사람도 그런 책 읽어요?"

TK의 '투표 공출' 20년의 결과 : 정 주고 쪽박 차고…

PK는 TK 정치 권력에게 20년 넘게 표를 갖다 바쳤다. 조국 서울
대학교 교수의 말처럼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에 '몰빵'해줬다. 그러니까 부산의 국회의원들도 부산 시민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친이,' '친박'의 끈을 잡기 위해 애간장을 태우지 않던가. 즉, 부산 시민보다는 오직 TK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쪽에 가서 굴종한 게 부산의 국회의원들 아니던가.

그 결과는 참담하다. 부산은 한때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무려 27퍼센트를 혼자 담당했던 국가 중추 도시였다. 지금은 고작 3퍼센트로 쪼그라들었다. 모든 경제 지표에서 부산은 밑바닥에 깔려있다. 당연히 젊은 사람들은 부산을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무려 40만 명이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전국 7대 도시 중 자살률이 최고란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자살률 최고라니까 부산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란 말이 된다.

일제가 전쟁에 사용할 식량과 물자의 확보를 위해 실시한 게 공출이다. 경제 수탈 정책이다. TK 정치 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PK의 투표를 공출해갔다. 그런데 지난 20년 넘게 부산·경남이 TK 정치 권력에게 그렇게 표를 갖다 바치면서 얻은 것은 결국 경제 수탈이었다.

솔직히 정말 민망한 건 따로 있다. 인구 360만의 '메트로폴리탄시티' 부산에
동물원이 하나 없다. 놀이공원도 없고 워터파크도 없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 요즘 자식들 데리고 대구, 경주 같은 TK동네로 간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306041334&section=01&t1=n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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