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 이젠 강북좌파가 대세!

[시민정치시평] 경제적 약자들의 급진화와 강북좌파의 등장①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바야흐로 정치의 해다. 많은 이들이 한국 정치가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고,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정치를 둘러싼 담론은 늘 변화 담론을 동반한다. 사실 그동안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없었고, 선거를 전후한 시기 한국 정치는 늘 '일상적 궤도' 를 벗어나곤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2년 대선은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구체제 청산을 요구하는 진보적 흐름이 대세를 이루었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은 성장주의에 대한 경도,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사적 욕망이 다른 공적 가치를 압도하면서 마치 '진보의 시대'가 끝나고 '보수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계기로 다시 '진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렇듯 선거가 매번 정치변화를 수반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012년을 앞두고 다소 호들갑스럽게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피하리라.

2040세대 내 계층균열 본격화되다

2010년 이후 선거를
분석하면서 필자는 한국사회의 균열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작년 10.26 서울시장재보선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2040세대의 진보적 선택이 두드러지고 이것이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보수적 선택과 대비되는 등 세대갈등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세대갈등이라는 표층의 이면에는 계급 또는 계층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세대갈등과는 명백히 다른 변화라고 보았다. 그 근거로 경제활동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는 30대와 40대에서 저학력, 저소득층이 진보적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 전통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자영업층도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급진화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같은 징후들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더
강화되고 있는가?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이라는 특수한 시기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근 대중여론상으로는 경제적 약자들의 급진화, 진보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40세대 내 경제적 약자층의 진보화 경향 강화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2월 13일
발표한 2040세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지위를 상, 중, 하로 구분했을 때 하위층으로 갈수록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이념성향도 진보적 경향이 강해졌다. 상위층에서는 진보 55.3%, 보수 44.7%, 중위층에서는 진보 66.8%, 보수 33.2%, 하위층은 진보 68.4%, 보수 31.5%로 나타났다.

지지정당에서도 이같은 흐름들이 확인된다. 계층이 관계없이 대체로 민주
통합당 지지도가 높게 나타났지만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구체적 양상은 상이했다. 상층의 경우 민주통합당 31.1%, 새누리당(한나라당) 29.7%, 통합진보당 11.3% 순으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거의 비슷했다. 중위층에서는 민주통합당 42.6%, 한나라당 18.1%, 통합진보당 14.9%로 민주통합당이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위층으로 가면 민주통합당 39.4%, 통합진보당 19.7%, 한나라당 14.2%로 통합진보당이 2위로 올라선다. 가치지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중, 하위층으로 갈수록 분배중시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의견이 급격히 상승했다.

물론 이 조사는 20-40세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아직까지 50대 이상 중장년층 내에서 저학력, 저소득의 하위층은 보수적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20-40세대는 반공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집단이 아닌 자유로운 개인으로 존재하고 자율적 판단을 하는 주체라는 점 때문에 이 층의 변화를 통해 향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40세대에서는 경제적 지위에서 하위층으로 갈수록 진보적 지향성이 강화되고 있다. 세대갈등이라는 표면적 변화가 계층갈등이라는 결을 따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대갈등에만 집중할 경우 정작 세대갈등의 외양을 띠고 나타나는 계층갈등이라는 보다 본질적 측면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중간층 중심 민주주의의 한계, 사회경제적 의제는 외면해

ⓒ프레시안(허환주)

이 같은 변화, 즉 경제적 약자층의 급진화 경향이 왜 중요한가?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진보의 핵심 축은 고학력, 화이트칼라, 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중간층'이었다. 저학력, 저소득의 경제적 약자층은 영남, 고연령층과 함께 보수의 핵심 보루로 역할했다. 지식인들은 경제적 약자들이 정작 자신을 대변하는 진보 정치세력이 아니라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해온 것을 놓고 이들이 반공 극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를 배반했다고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배급배반 투표를 단지 이들의 무지몽매함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보수 독점의 정당체제 속에서 가난한 이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한편 가난한 이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계급배반투표를 할 때
부자들은 매우 강력한 응집력을 보이면서 계급의 이익에 충실한 투표를 해왔다. 강남 등 잘사는 동네에서 투표율도 높고 보수 후보 지지가 압도적인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그 결과 경제적 약자층이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공정한 질서가 고착되면서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욱 고달파졌다.

우리사회에서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핵심 계층은 '중간층'이었다. 이 층은 이슈에
민감하고 가치지향적이다. 의식은 진보적이되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지 않다는 점에서 '강남좌파'에 가깝다. 87년 민주화투쟁, 2002년 노무현 후보 당선 등이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쳐 나왔다. 자신이 처한 경제여건상 정치개혁 의제에는 관심이 높았지만 사회경제적 개혁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한계, 즉,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립했지만 사회경제적 시민권 확립이라는 실질적 민주주의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은 바로 '중간층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뉴타운, 상층과 중간층의 욕망일 뿐

2002년 대선까지는 진보개혁의 보루로 역할했던 중간층들이 2008년 총선에서는 뉴타운에 열광했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가치의 정치'를 버리고 '욕망의 정치'에 매몰되었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하지만 '욕망의 정치'는 저급한 것이고 '가치의 정치'는 칭송받아야 할 것인가?
문제는 '욕망의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독점', 즉 경제적 약자의 욕망은 배제되고 중간층과 상층의 욕망이 전체의 욕망인 것처럼 대표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경제적 약자들이 급진화, 진보화되고 있는 최근 변화를 보면 진보의 중심세력이 더 이상 '강남좌파'가 아니며 '강북좌파'로 이동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강남좌파'는 정치적 의식이 경제적 지위와 분리되어 있는 반면 '강북좌파'는 자신의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의식이 일치한다. 따라서 '뉴타운'과 '공익' 을 오가는 '강남좌파'와 달리 경제적 약자를 위한 '공적 요구'를 일관되게 할 수 있다.

이층이 표출하는 욕망에 주목하는 것은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이다. '욕망의 정치'가 뉴타운식의 '사익'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경제적 차별 해소라는 보다 공적인 것과 접속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북좌파'는 누구이며, '강북좌파'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후속 칼럼에서 이를 풀어볼 것이다.

[시민정치시평] 경제적 약자들의 급진화와 강북좌파의 등장②

앞의 칼럼에서 '강북좌파'라는 생소한 개념을 사용하면서 경제적 약자층의 급진화 경향에 주목했다. '강북좌파'는 누구이며 어떤 계기로 등장했는가? '강북좌파'의 '강북'은 서민을 상징한다. 강남좌파'의 '강남'이 풍요로운 중산층을 의미하는 것과 대비된다. 작년 한 해 '강남좌파' 논쟁이 후끈 달아오르면서 '강남좌파'에 대비되는 '강북우파', 즉 경제적으로는 궁핍한 서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층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강북우파'와 '강남좌파' 모두 정치적 선택이 자신의 존재와 분리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강북좌파'의 존재가 눈길을 끄는 것은 정치적 의식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강북좌파'는 고학력 서민층?

'강북좌파'는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지닌 서민이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서민은 저학력, 저소득으로 경제적 지위가 불안정한 집단을 지칭했다. 2040세대는 다수가 대졸학력이며 중졸이하의 저학력층은 소수다. 그런데 현실은 2040세대의 상당수가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지위는 하층에 가깝다. 학력과 경제적 지위와의 연관성은 약해지고 오히려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 즉 학벌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고등 교육을 받아 정치적 관심과 의식은 벼려졌으나 경제적으로는 팍팍함에 직면하면서 대졸 서민층이 2040세대의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2040세대에 대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중하층이나 빈곤층에 속한다고 본 응답자가 56.4%로 과반을 상회했다. 중간층이라는 응답은 36.6%, 상층이나 중상층에 속한다고 본 응답자는 7.1%에 그쳤다. 흥미로운 점은 대졸 이상 학력층의 49.8%, 즉 절반 가량이 자신이 경제적으로 하위층에 속한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초대졸 이상 학력으로 확장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해진다. 더 이상 교육이 계층상승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계층은 부모의 지위와 같은 세습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50대 이상 고연령층에서는 학력과 경제적 지위가 사실상 비례했던 데 반해 40대 이하, 특히 2030세대에서는 대졸 서민층이 다수가 되면서
기성질서에 대한 비판의식도 강화되고 있다.

'강북좌파'의 등장, 삶의 불안, 기성질서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돼

우리사회 정치적 변화의 핵심 축이 '강남좌파'에서 '강북좌파'로의 이동하고 있다면 '강북좌파'가 부상하게 된 계기와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 특히 2040세대의 분노가 극에 이르러 폭발 일보 직전이라는 점, 그 뿌리에는 불공정한 질서, 양극화로 상징화되는 극심한 격차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2040세대의 64.4%가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서기 어렵고' 78.8%가 우리사회가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녀의 계층 상승 기회가 닫혀 있는 폐쇄적 사회'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75.5%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비관적으로 응답했다. 특히 하위층으로 갈수록 비관적 인식이 높았다. 불공정한 질서에 대한 분노가 2040세대 내 경제적 약자층을 중심으로 누적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격차 심화에 다른 삶의 불안이 2040세대, 그 중에서도 경제적 약자층을 덮치고 있다. 그 불안감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에 이르게 되면서 정치적 의식도 급진화하고 있다. 미래는 현재보다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왔던 고학력의 중간층, 경제적 약자층이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좌절'을 느끼면서 '좌향좌'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정치적으로 시대를 거스른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변화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2002년 대선 '정몽준 바람'에서 징후 나타나

사실 강북좌파의 등장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 약자층이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중이 요구하는 우리사회의 최우선 해결과제도 그 전까지는 정치개혁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경제문제해결로 옮겨갔다.

문제는 이같은 대중의 요구에 주목하고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존재여부다. 2002년 대선의 '정몽준 바람'은 대중의 요구가 '경제
이미지'를 지닌 인물과 만나 증폭된 사례에 가깝다. 정몽준 바람을 점화시킨 것이 2002년 월드컵이라면 그 바람을 미풍이 아니라 태풍 수준으로 승격시킨 것은 경제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었다.

▲젊은 층 내에서도 대졸, 화이트칼라층이 노무현 후보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것과 달리 고졸학력층이나 자영업 등 경제적 약자층은 정몽준 후보를 더 지지했다.ⓒ연합뉴스

2002년 11월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간 극적인 후보단일화가 성사되기 전까지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층이 누구인가를 분석해보면 이 점이 드러난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핵심지지층이었던 20대와 30대가 후보단일화 이전에는 정몽준 지지와 노무현 지지로 나뉘었다. 젊은 층 내에서도 대졸, 화이트칼라층이 노무현 후보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것과 달리 고졸학력층이나 자영업 등 경제적 약자층은 정몽준 후보를 더 지지했다.

2040세대 내 경제적 약자층은 2002년 대선부터 정치개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문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줄 후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한 노무현 후보는 정치개혁에 몰입했고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서는
준비가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은 정몽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욕망'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그리고 2007-8년 국면에서는 '성장'이라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이명박 후보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여했고 일부는 아예 기권하였다.

강북좌파의 등장이 사회경제적 변화의 흐름위에 있다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물론 최근의 변화를 '강남좌파'가 지고 '강북좌파'가 뜨는 현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강남좌파'들이 다시 결집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공고화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사회의 민주적 가치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과거로 회귀하면서 중간층이 다시 분노하고 있다. 또한 중간층들 중 상당수가 양극화 심화 속에서 하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이들이 급진화되고 있다.

진보의 중심이 '강남좌파'에서 '강북좌파'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상층과 중간층 중심의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벗어나 경제적 약자층도 정치의 공간으로 들어와 시민권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당들도 이들의 욕망에 주목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보수독점 정당구조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실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30대에서는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 다음으로 높은 지지를 얻었고 새누리당은 3위로 처졌다. 진보적 정치의식이 진보 정당 선택으로 일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지는 일정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다. '강북좌파'들이 진보적 정치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유보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해답은
바로 '매력'도 '능력'도 없는 진보적 정치세력, 자신에게 있다. 경제적 하층이 정치적 의식이 낮거나 관심이 낮아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이 충분한 대안으로 간주되지 못하면서 외면을 받고 있다. 앞의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2040세대 내 경제적 하위층의 정치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정치적 의식도 급진화되고 있다.

진보정당이 가난한 자들의 열망을 담을
그릇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치적 선택은 어느 정당이 자신을 대변해줄 수 있는가와 더불어 그 정당이 실제로 대변해줄 수 있는가가 결합하면서 나타난다. 지지해봐야 내게 돌아오는 혜택이 미미하다고 느낄 때 즉, 정치적 효능감이 낮을 때 정치적 지향이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적 정치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진보적 정치세력이 '강북좌파'의 욕망에 주목하고 이 욕망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 2012년 정치의 해에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문제는 보수 정당이 아니라 진보 정당인 것이다. <끝>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224100649&section=01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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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부정선거] 선관위의 “디도스 대응” 신공 2탄

2012. 2. 23. 목요일

김기창


참여연대의 정보공개청구에 마지못해 2월14일에 선관위는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선거 서비스 장애 분석 보고서”(엔시스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그러나, 엔시스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에 선관위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DDoS관련 기술분석 보고서”(선관위 보고서)라는 것을 1월27일에 발표합니다. 이 자료를 보면 선관위가 10.26서비스 장애를 “디도스 사건”으로 포장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7시(정확히는 6:58) 전과 7시 후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7시 이전 상황


디도스 공격트래픽 유입은 5시50분에 시작되어 7시쯤이면 끝이 납니다. 엔시스 보고서3-2에는 6-7시 사이 유입트래픽의 평균 규모가 초당 221M 로 기록되어 있는데, 선관위 보고서는 유입트래픽의 규모를 “과장”합니다. 선관위 슬라이드4를 보면 “KT회선으로 초당 264M[회선 총용량의 85%]의 패킷 유입 확인“이라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래 그림을 보시죠(선관위 보고서 슬라이드13). 그림을 클릭하면 큰 사이즈로 보실수 있습니다.



왼쪽에 표시된 수치를 기준으로 보면 6시-7시 사이 유입트래픽 규모가 250,000 Kbps (즉, 250Mbps)를 훨씬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초록색 선은 유입트래픽이 아니라, 차단된 트래픽입니다. 유입트래픽 중에서 나쁜트랙픽이 걸러지고 차단되는 것이므로, 차단트래픽이 유입트래픽보다 많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째서 초록색 선(차단트래픽)이 고동색 선(유입트래픽)보다 높게 올라가느냐? 오른쪽에 표시된 수치가 차단트래픽의 수치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차단트래픽 240,000Kbps 가 그래프 왼쪽에 있는 유입트래픽250,000Kbps 보다 더 높게 보이도록 해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얼핏보면, 유입트래픽이 마치 250M을 훨씬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요.


유입트래픽이 초당 264M에 도달한 시점이 딱 한번 있긴 합니다. 6시15분경. 한번 잠깐 도달한 적이 있던 수치를 기준으로 유입트래픽의 규모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요. 6시-7시 사이 유입트래픽의 평균 규모는 초당 264M이 아니라, 초당221M입니다.


“회선 총용량의 86%”라는 말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선관위 회선 총용량은 465M입니다. KT두 회선(각 155M)만 생각하면 310M인것 같지만, 선관위는 L4스위치를 사용하여 트래픽 로드밸런싱과 서버 로드 밸런싱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주로 사용하는 KT 회선의 처리량이 많아지면 자동으로 LG회선으로도 트래픽이 오가도록 되있습니다. 따라서 선관위의 회선 총용량은 310M이 아니라, 465M입니다. “수신 트래픽이 폭주”했다느니, “급증”했다느니, “회선 대역폭을 고갈시키는 디도스”라느니, “과도한 유입트래픽” 등의 말만 난무했지, 실제로는 회선 용량(465M)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규모(221M)의 유입트래픽이 있었을 뿐입니다.


KT 두 회선으로 마치 “회선 총용량의 86%”의 트래픽이 들어오는 비상 상황에서 6:58에 KT망 두개를 자른 것처럼 선관위는 이야기하지만,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KT회선을 자르기 전에 이미 유입트래픽이 급격히 떨어져서 100M 수준까지 내려갔을 때(KT망 1회선 용량에도 못미칠때) 선관위는 KT망 두 회선을 모두 잘랐습니다.


6:58까지의 유입트래픽 추이


KT망으로 들어오는 유입트래픽이 6:50경부터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공격에 동원된 좀비PC(고작 200대 규모)의 ip를 KT도 파악하고 해당 ip에서 오는 트래픽을 6:50경부터는 아예 보내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관위 유훈옥 사무관은 공격PC의 ip를 KT와는 공유했으나 LG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7:00-8:32 사이의 상황


7시 이후에는 유입트래픽이 아예 없거나, 잠시 들어오다가 다시 0으로 떨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디도스” 어쩌구 저쩌구 할 상황이 아예 아니지요. 디도스 방어장비가 방어하고 말고할 트래픽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7:00-8:32 사이 유입트래픽 추이, 선관위 보고서 슬라이드13(부분)


6:58에 KT망 두회선을 모두 끊고 LG망 하나만 남겨두자, 유입트래픽이 “처음 몇분 동안”은 155M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네트워크 load balancing 설정이 “처음에는” 이상 없이 작동했었다는 뜻입니다. 복수의 망사업자에게 할당된 여러개의 ip를 통하여 유입되는 트래픽을 사용하여 하나의 웹사이트를 운용하려면 – 즉, 복수의 망사업자가 제공하는 회선들의 용량을 모아서(aggregate bandwidth) 사용하려면 – 웹서버측이 ‘트래픽 교통정리 방식’을 올바르게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한쪽 망이 끊기거나 부하가 늘어나면, 다른 쪽 망으로 트래픽을 보내는 규칙을 자세히 정해 두는 것이지요. KT망 두개를 끊으니, LG망으로 들어오는 트래픽이 빠르게 증가했다는 뜻은 선관위의 WAN load balancing(트래픽 교통정리 방식) 설정이 처음에는 멀쩡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7:05경에 유입트래픽이 갑자기 0으로(!) 떨어집니다. 선관위가 네트워크 load balancing 설정을 “건드리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7:10경부터 약 25분간 40M 규모의 트래픽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다가, 다시 0으로 떨어집니다. 선관위는 이것을 “1차 정상화”라고 부르면서, 마치 LG회선을 통하여 1차 정상화가 된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7:10 1차 정상화 이후 약25분간 LG U+망을 경유한 사용자는 접속이 원활한 상태” (선관위 보고서 슬라이드10).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6:58에 KT선을 자른 후에 LG망으로 “최대 30M 정도의 트래픽 유입”이 있었던 것처럼 선관위는 주장하고 있습니다(슬라이드12). 그러나, LG망으로 최대 30M 수준의 트래픽이 들어온 시점은 KT망을 자른 후가 아니라, KT망을 자르기 전입니다(7시 이전). 실은, 7:10-7:35 사이 기간 동안 LG망에 나타나는 트래픽의 규모는 10M에도 훨씬 못치는 수준입니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나타나는 원본 사이즈 화면의 첫 번째 그래프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7:10-7:35 사이에 선관위로 들어온 초당 40M 규모의 트래픽은 LG망이 아니라, KT 1번 망을 선관위가 열었고, 이렇게 복구된 KT 1번 망으로 약25분간 초당 40M정도의 트래픽이 안정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KT망으로 들어온 이 트래픽은 공격트래픽이 거의 없는 정상트래픽입니다. 선관위 유입트래픽 추이 그래프 중, 7:10-7:35 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초록색 선”이 바닥에 깔려서 0으로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즉 선관위 디도스 방어장비가 차단해야 할 트래픽은 아예 없었고 유입트래픽은 모두 정상트래픽이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KT는 이미 좀비PC들의 ip를 모두 확보하여 망사업자 단에서 이미 차단하고, 정상트래픽만을 선관위에게 보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관위는 이런 사실을 25분동안 차분히 지켜보며 “확인한 다음”, 7:35에 KT망을 다시 자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선관위는 “KT 망 공격여부 확인을 위한 일시적 회선 복구로 트래픽 유입”이라고만 적고 있습니다(슬라이드11).


하나만 물어봅시다. 7:10 부터 25분간 KT 1번망을 열어서 확인해보니, 과연 디도스 공격이 계속되고 있던가요? 깨끗한 정상트래픽이 KT 1번망으로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이 그렇게 겁나던가요? 그래서 KT 1번망을 7:35에 “다시” 잘랐나요?

김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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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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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7. 금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화해가 쉬울 거 같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화해야.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필요한 일이 또 화해야. 다들 알잖아. 한 번 틀어진 사이, 평생 안 볼 수 있어? 단 한 번 틀어진 사이가 되어 가지고 평생 화해를 못하면서 서로 보는 손해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으면서도 화해를 못해.

그만큼 화해가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야.

물론 화해할 대상은 따로 있어. 평생 절대 화해 못할, 아니 화해하면 안 되는 상대도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대국적 견지에서 화해해야 할 사람들의 집단들이 서로 화해를 못하고 계속 노려보고 있는 꼴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어.

최근에 벌어진 작은 사건 얘기를 하나 하면서 화해가 얼마나 어려운지, 하지만 그렇게 어렵더라도 화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얘기해 볼까.


민주당, 아니 이제는 민주통합당이지. 거기에 박지원이라는 정치인이 한 명 있어. 맞아, 나꼼수에 나왔던 민주당 쌍깔때기 박지원 말야.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나 이 사람 졸라 싫어해. 왜 싫어하는지 알 사람은 다 알거야. 이번 선거에 관련한 글에서도 나 이 사람 찍으라는 얘기 안했어.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찍지 말라는 뉘앙스로 얘길 했었어. 근데 이 아저씨는 싫다고 무시해버리기에는 너무 장점이 많아. 내가 싫다고 해서 부정하기 힘든 가치가 있다고. 그래서 지난번 선거 관련 글 (링크) 쓸 때 진짜 힘들었어.

모든 거 떠나서, 대북 문제에 있어서 박지원만큼 경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어?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 하던 정세현 정도라면 비교가 좀 되려나. 이론적인 면에서는 정세현이 위일지 몰라도, 실무적 차원에서는 박지원이 앞설지도 몰라. 실제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켰고, 그 뒷감당을 온 몸으로 혼자 떠받쳐 버린 사람이야.

또 해방 이후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을 가장 근거리에서 최장시간 보좌했던 사람이 바로 박지원이야.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별명까지 있어.

그것뿐인가? 민주당이 다 죽어가는 잡초처럼 비실거릴 때, 유일하게 혼자 일어서서 가카를 향해 소총을 조준하고 발사하던 정보통 스나이퍼였어.

언론을 상대하는 자세도 이 사람만큼 프로페셔널한 사람 별로 없어. 단어 하나하나 고르는 감각도 탁월하지.

자신이 보유한 빨대는 없는 곳이 없어.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야당으로 갔다 싶으면 그건 백프로 박지원에게 간거야. 오죽 정보가 많이 흘러나오면, 슬그머니 바이패스 시켜서 다른 의원들에게 폭로하라고 선물하기도 많이 한다니까. 내가 알기로는 내곡동 가카 사저 관련 문제도, 주진우 기자가 부동산 업자들 통해서 특종을 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미 청와대 빨대 통해서 박지원에게도 가는 바람에, 민주당 내에서도 어지간히 알려져 있었다고 하더라고.

이런 사람이라는 얘기야. 비록 맘에 안 들어도 같은 편이잖아. 심지어 저런 사람이 적이었으면 진짜 난감했겠다 싶을 정도로 실력있는 프로페셔널 정치인이라고. 뭐 그런 실력은 뭔가 좀 음습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말야. 아무리 그래도 실력은 실력이잖아.

이 사람이 어떤 꼴을 당했었나 볼까?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과 벌였던 모든 사업, 그 사업 전체가 참여정부 들어와서 대북송금특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한 번 걸러졌던 적이 있어. 이거, 참여정부의 거의 대부분의 참모들이 다 반대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독단적 결심으로 그냥 강행이 되었었지.

그 복잡한 내막을 다시 다룰 생각은 없지만 현실적인 결론은 모종의 문제가 있는 걸로 판명이 났어. 그 문제, 누가 책임져야 하나 하고 따져볼 여유도 없이 모든 책임을 박지원이 홀로 뒤집어 썼어.

그걸로 인해 박지원은 징역 3년형까지 선고 받고 실제로 징역을 살게 된다고. 물론 2007년에 사면되긴 하지만, 과연 박지원이 그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혼자서 징역형을 받아야 됐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한 번 심도 있게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는 거야.


무척이나 마초스러운 표현이지만, 박지원은 가오를 중시하고 의리를 지키는 남자야.

일단 자신이 속한 조직이 했던 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감방을 가는 것에서부터 포스가 나오기 시작하지. 그거, 거부하지 않고 받아 들였어. 자신이 모셨던 DJ가 한일, 그 일로 인해 벌어진 모든 책임을 자기 한몸으로 다 막아냈다고.

그리고 나서, 내가 기억하는 진짜 중요한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승냥이떼 같은 정치검사들에게 물어 뜯길 때, 심지어 친노의 적자라는 인간들까지도 모두가 다 모른 체 하고 뒷짐지고 딴 데 보고 있을 때, 혼자서 막아보려고 특유의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친노세력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진짜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되는거야. DJ에게는 모든 책임을 지고 깜방에 가는 박지원이 있었어. 노무현에게는 과연 누가 있던 거지?

박지원은 보다못해 자기라도 떨치고 일어선 거야. 나약하고 비겁하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고 있던 친노의 적자들이 보기 싫어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뒤를 잇는 참여정부의 정통성이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된다고, 홀로 나서서 사방팔방으로 발이 닳도록 뛰어 다니던 사람이 박지원이라고.

심지어 김대중과 노무현의 5년씩을 더해 도합 “민주정부 10년”이라는 레토릭을 만들어낸 사람이 박지원이야. (사실은 그의 밑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만든 말이기도 한데,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할 생각임.) 난 비록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를 접었던 사람이지만,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이 대목, 박지원 전 장관에게 눈물 나도록 고마워.


이렇게 노무현 주변에 사람이 없었나 하고 땅을 치면서 분통해 하던 그 시점에, 오히려 노무현에 의해 대북 송검특검이 시작되고, 노무현에 의해 감방에 갔던 박지원이 검찰에 쫓아다니면서 이래선 안 된다고 사정사정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다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진짜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차해지고 민망해지고 쪽팔렸었다고.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고생하고 다같이 분노했지. 그렇지만 나약했던 거… 아무도 부인 못할거야.

그런 박지원을 새로 발견하게 된 일이 생긴 거야.


이번에 민주통합당 당대표선거 했잖아.

거기에 박지원도 후보로 나서고, 나꼼수에도 나와서 후보로 나오는 바람에 점잖게 있으라고 해서 입을 다물고 얌전하게 있으려니 힘들어 죽겠다고, 한 마디라도 더 떠들어서 가카를 조금이라도 더 괴롭혀 드려야 할 텐데 안달이 나 죽겠다는 얘기까지 했었잖아.

그런데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뭐였지? 바로 FTA에 대한 입장이었잖아.

거기에, 몇사람이 모여서 만든 작은 단체가 있었어. “한미 FTA 폐기 국민행동” 이라는 이름을 내건 단체였어. 이 단체를 주도한 인물은 FTA 관련해서 가장 전문적인 행동을 해 왔던 이해영 교수하고, 나름대로 친노의 적자 출신인 노혜경씨였어. 거기서 출마한 모든 당대표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날리고, 그 답변에 따라 가장 성적이 좋은 후보, 즉 FTA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강경한 대책을 얘기하는 후보를 선정해서 당대표 선거에서 지지하겠다는 얘길 한 거야.

그리고 각 후보 진영에 질의서를 날리고 토론을 해버린 거였지. 누가 뽑혔을까?

바로 박.지.원.이야.

나도 놀랐어. 박지원이 직접 모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FTA를 추진할 때 찬성을 했던 분이었다고. 이건 현실이잖아. 그리고 박지원은 여태껏, 한미 FTA에 대해서 뭐 특별하게 반대한다거나, 확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었거든. 최소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그래. 난 당연히 박지원은 ‘기존의 FTA는 뭐 그럭저럭 좋지만, 이명박의 FTA는 안 된다’ 뭐 이런 약간은 물렁한 태도를 가진 걸로 간주하고 있었다니까. 나뿐 아니라 다들 그랬을걸?

그런데, 박지원의 FTA에 대한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이해영과 노혜경 앞에 드러난 그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는 거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거지.

“나는 FTA는 당장이라도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와 분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말 하기가 조심스러울 뿐이다.”

라는 거였어. FTA를 왜 반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잔뜩 자료를 챙겨간 이해영 교수 일행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얘기였지.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는 이래.

노무현 대통령이 FTA를 추진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적으로 찬성의 의사를 표시했고, 그 입장은 그 이후로 바뀐 적은 없었고, 자신은 두 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과 철학들을 존중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FTA를 반대한다는 소리를 이제 와서 함부로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는 거였어.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지금 FTA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면, 노무현 때문에라도 FTA에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친노 지지세력들과,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만을 바라보고 있는 세력 사이에 또 한 번 불필요한 오해와 반목이 유발될 거 아니냐고. 그래서 자신은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는 없었다… 이게 박지원의 입장이었던 거야.

그러고 나서, 이해영 교수 측에서 노무현 대통령 조차도 생전에 FTA에 대해 재고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는 얘길 해주자, 그제서야 그러면 맘 놓고 FTA에 대해 알아봐야 겠다고 그러더라는 거야. ‘이젠 살겠다~’ 라면서 말야.

그 후, 가지고 간 질문지를 전달하고 돌아온 뒤, 박지원은 그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직접 보좌관들하고 같이 만드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FTA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 최종 토론회에서는 가장 확실한 정보와 태도를 가지고 임하게 되는 바람에 최고 점수를 받게 된거지. 거기서 ‘미국은 제국주의적이다’ 라는 표현까지 쓰게 되고 말야.

난 이 얘기를 듣고 솔직히 놀랐어. 아니, 내가 놀라기 전에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해영, 노혜경이 놀랐던 거지.

난 그 순간,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원칙’이 떠 올랐어. 내가 잊고 있었던 문제 중의 하나였지. 정치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판단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그래선 안 돼. 정치인은 그를 지지해준 사람들의 “대리인”이라고. 정치인은 자신이 어떤 발언을 할 때, 자신을 지지해줬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헤아리고 나서 발언을 해야 하는 거야. 이건 원칙이라고.

투표의 본질, 대리자 뽑기.

발언뿐 아니지. 행동도 마찬가지야. 결과적으로 말해서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발언을 해야 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잖아. 물론 그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진짜 틀렸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반대할 줄도 알아야 하겠지만 그런 건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 아주 희소하게 벌어져야 하는 행동이고 말야.(그러니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정치인의 기본을, 박지원은 잊지 않고 있었던거야. 아니 잊고 안 잊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경험속에서 원칙에 더욱 가까이 접근해 갔던 제대로 된 정치인이었다는 얘기지.

여기서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박지원이 처해 있는 정치적 상황과, 박지원을 지지하는 그룹의 행보에 대해 나는 정치적으로 그다지 동의하지 않아. 하지만 박지원의 이런 행동과 언행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가 않아. 그리고 큰 바운더리 안에서 그와 그를 지지하는 그룹과 함께 가야 하는 건 당연한 현실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난 이 대목에서 정치인 박지원을 재발견했어.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졌어.

충분히 이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정치적 입장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해를 떠나, 멋진 건 멋진 거잖아. 멋지면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이건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행동이고,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내가 얘기하고자 했던 문제는 그 뒤에 발생을 하지.

내가 박지원을 재발견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전에 박지원의 새로운 면모를 재발견해버린 노혜경이 “한미 FTA 폐기 국민행동”의 결정, 그러니까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 가장 강력하고 충실하게 FTA를 반대하는 후보가 다름 아닌 박지원이라는 점을 발표했어. 게다가 그 발표와 함께 “박지원의 재발견“이라는 글을 써서 공개해 버린 거야.

이 글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지. 그리 많은 사람이 본 것도 아니고 그리 많은 파장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어. 문제는 그 글을 근거로 박지원 후보의 캠프에서 노혜경이 박지원 후보를 지지하는 것처럼 문자를 뿌려버리 게 되는거야. 선거운동에 활용해 버린 거지.

노혜경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면, 이조차도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어. 물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면, 박지원 후보 캠프 측에서 선거운동에 노혜경의 글을 써먹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당대표 후보였던 한명숙을 지지하던 가장 큰 세력이 바로 친노 세력이었고, 노혜경은 노무현을 만들어낸 친노세력의 핵심이었던 노사모의 대표일꾼까지 역임하고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까지 역임한 친노의 핵심 중의 한명이었다는 거야.

당장 물 밑에서는, 노혜경이 친노를 배신하고 박지원계에 붙었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어. 이해는 가지. 민주당 내에서 가장 대척점에 있던 친노세력들과 구민주당 DJ계 사이에 있던 알력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노혜경이 당대표 선거라는 민감한 시점에 “박지원의 재발견” 뭐 이런 글을 쓴 것 자체가 경솔한 행동일 수도 있었지.

하지만 DJ 지지그룹에서 노무현 그룹으로 정권이 넘어오면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겪어야만 했던 박지원, 그 박지원의 면모를 재발견한 친노 그룹의 일원이 그 박지원을 칭찬했다는 것이, 어쩌면 노무현 최후의 순간을 지켜주고, 전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의 정책과 철학을 존중하는 바람에 자신이 FTA를 반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조심하던 박지원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던 걸까?

남북협력 사업은 김대중 정부의 큰 업적이잖아. 그 업적을 계승해야 하면서도 대북송금 특검을 해야만 했던 노무현의 결정도 존중해야 하는 거잖아. 그 사이에서 벌어진 피해를 박지원은 자신 혼자서 몸으로 때웠잖아. 박지원은 어쩌면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권력의 톱니바퀴 사이에서 몸으로 완충작용을 해낸 공로가 있는 사람이야.

김대중 지지그룹과 친노 그룹 사이에는 분명한 감정의 골이 존재하고 있어. 그러면서도 민주통합당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공존하고 있다고. 그러면 당연히 두 그룹은 감정적인 화해를 이루어내야 하는 거야. 그 화해를 위해선 박지원이 행한 것 같은 희생이 존재해야 하고, 그 희생에 대한 칭송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이것은 화해의 첫걸음이야.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노혜경이 박지원을 재발견했다는 것은 박지원의 희생에 대한 친노의 수용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첫걸음이 되는 거잖아. 이러한 희생과 그 희생에 대한 수용이 서로 여러 차례 오가고 나서야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거잖아.

그렇지만 노혜경이 이러한 행동을 한 대가는 배신자 소리를 듣는 거였어. 한명숙 캠프나 지지자 그룹 사이에서는 지금도 노혜경이 친노를 배신하고 박지원에게 붙었다는 루머가 돌고 있는 게 현실이야.

이래선 진짜 안 되는 거지.


화해는 어려워. 정말 어려워.

서로 다른 두 그룹 사이에 서운한 일은 절대 잊혀지지를 않아. 고마운 일은 의도적으로 무시 되곤 하지. 그래서 어려워. 심지어 상대가 고마운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칭찬을 해도 배신자 취급을 받아. 그래서 더 어려워.

정말 옹졸해. 한명한명 개인을 놓고 보면 옹졸하고 속좁은 사람 하나도 없는 그룹에서도, 집단적인 감정의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을 보면 옹졸하기가 짝이 없어. 뭐 단적으로 남북간의 문제만 봐도 그렇잖아. 유치원 애들보다도 더 유치한 행동으로 서로를 자극하는 행동을 무려 육십 년 가까이 해 오고 있잖아. 물론 그 밑에 물밑으로 흐르는 권력의 거래 관계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옹졸한 것은 옹졸한 거고, 그로 인해 화해는 갈 수록 어려워져. 큰 경계선 안에선 서로 한 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어려워. 이런 상황이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의 야권연대는 얼마나 어렵겠어?

좋은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어. 하지만, 좋은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에라도 더욱 더 힘을 모아서 이루어내야 하는 거잖아. 목숨을 걸고라도 우리가 이루어내야지. 우리가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목숨뿐 아니라 우리 후손의 생존까지도 위험해 질 수도 있어. 어떻게 해서든 우리 세대에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내 보자고.

화해가 필요한 곳에 화해가 있도록 해보자고.. 쫌..

그런 의미에서, 이글을 편집한

취재 과정에서 사실관계 전달에 약간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해영 교수와 노혜경 시인이 박지원 후보를 방문하게 된 것은 “한미FTA페기 국민행동” 차원의 공식적인 방문이 아니라, 박지원 후보 쪽에서 먼저 FTA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다는 요청을 해 왔고, 그 요청에 응한 개인적인 방문이었던 것으로 정정합니다.

질문지는 공식 경로로 각 후보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며, 이것은 박지원 후보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정치부장 물뚝심송
twitter: @murutuk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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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은 무척 화려한 선수다. 한국에서는, 아니 아시아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한 차원 높은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였고 외모는 조각처럼 잘 생겼다. 이 귀공자 같은 축구선수를 우리는 테리우스, 또는 판타지스타라고 불렀다. 안정환이 아쉬운 은퇴를 선언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화려했던 안정환의 선수 생활을 되짚어 보고 있다. 하지만 안정환의 인생이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늘은 화려함 뒤에 가려진 안정환의 슬프고 외로웠던 시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정환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는 월드컵에서의 극적인 골보다 그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안정환은 패셔니스타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 옷이 한 벌 뿐이라 놀림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옷이 한 벌 뿐이었던 패셔니스타

안정환에게는 남다른 가족사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다면 아마 더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그의 힘겨웠던 유년 시절을 이야기 할 때 왜 그가 아버지 없이 자랐는지, 외할머니 품에서 커야 했는지를 소개하는 것도 언론인으로서의 의무이지만 그 전에 선수에 대한 사생활은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안정환은 자신의 가족사를 자극적으로 다룬 언론 보도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기 싫었다”라고 밝힐 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수의 사생활을 보호하려 한다.

안정환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친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그는 살 집이 없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여기저기 얹혀사는 신세였다. 돈암동, 흑석동, 신길동, 부천, 수원 등 한 학기에 10번 넘게 이사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자랐다. 배불리 먹어본 적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지금은 패셔니스타라는 평가를 받는 안정환이지만 당시에는 옷이 한 벌밖에 없어 일주일에 닷새 씩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넌 옷이 그거밖에 없니?” 친구들은 그런 안정환을 놀렸다. 그럴 때면 안정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똑같은 옷이 다섯 벌이야.” 항상 배고팠던 안정환은 수퍼마켓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모 집에 얹혀살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당시 학교에서 달리기를 잘하기로 유명했던 안정환은 “축구부에 들어오면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축구부로 찾아갔다.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들이나 한쪽 부모가 없는 친구들이 안정환과 함께 우르르 축구부로 향했다. 안정환은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시합이 끝나면 자장면도 사 준다고 하더라고요. 빵과 우유, 자장면에 혹했죠.”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프랑스 유명일간지 ‘르 몽드’는 “만화에 나오는 로마왕자 같은 외모의 안정환은 생김새와는 달리 춥고 배고픈 유년기를 보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안정환은 화려한 외모로 고생 한 번 안 한 선수처럼 보인다. 심하게 잘생겼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였다. (사진=안정환 공식홈페이지)

굿판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안정환

안정환은 노량진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운동이 끝나면 곧바로 한강둔치로 향했다. 지금은 한강둔치가 시민들의 공간이 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강둔치는 을씨년스러웠다. 무당들이 한강 주변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굿도 자주 열었다. 굿이 끝나면 떡과 과일을 그 자리에 놓고 갔는데 안정환은 무당들이 굿판을 벌인 뒤 남은 음식들로 허기를 채워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에게 있어 한강둔치의 떡과 과일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이마저도 없을 때면 배추밭에 가서 배추 밑동을 뽑아 먹었다. 안정환의 외할머니는 “배불리 먹지 못해 또래에 비해 체구가 유난히 작던 (안)정환이의 모습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집 없이 방황하던 안정환은 항상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이모 집에 얹혀살면서 축구를 시작한 무렵에는 이모와 이모부의 부부싸움이 잦았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밤늦게 이모 집으로 돌아와 문을 살짝 열고 집안의 동태를 파악하는 게 안정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 11시건 12시건 골목에 쭈그려 앉아 싸움이 잦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어머, 어린 애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니? 너 집 없니? 이거라도 먹어.” 당시 이모 댁은 중앙대학교 근처 언덕이었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면 대학생 누나들이 오가다가 건네 준 과자와 사과로 끼니를 대신했다. 힘든 훈련을 마친 어린 안정환에게는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수원에 살 때는 학교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무려 두 시간이나 가야했다. 오전 운동을 해야 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학생에게 이는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얹혀살면서 새벽부터 학교에 간다고 부산을 떠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두 시간 넘게 만원버스를 탄다는 것도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안정환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 그냥 학교에서 자자.’ 안정환이 생각해 낸 곳은 학교 창고였다. 그는 밤 늦게 몰래 학교에 남아 창고로 숨어 밤을 지샜다. 부모에게 어리광을 피울 11살의 나이에 안정환은 혼자 학교 창고에서 잠을 청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안정환은 K리그에 데뷔하자마자 화려한 플레이와 빛나는 외모로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의 유니폼에 써 있는 글귀가 그의 외모를 대변해주고 있다. (사진=안정환 공식 홈페이지)

안정환이 과일을 잘 깎는 이유

안정환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언제나 노력하는 선수였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실력으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난생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이건 무슨 과일이죠?”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안정환에게는 낯선 과일이 있었다. 바로 오렌지였다. 안정환은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오렌지라는 걸 직접 봤다. 생전 처음 본 오렌지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남은 오렌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동료들은 “(안)정환이는 먹을 것만 보면 욕심을 부린다”고 놀렸다. 하지만 안정환은 이 오렌지를 아끼고 아껴 집까지 가져왔다. 외할머니를 위해서였다. 생전 처음 먹어본 오렌지를 외할머니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안정환은 운동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합숙을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도 직접 그의 손으로 지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목동역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열심히 내 손으로 목동역을 지었다.” 결혼한 뒤 그의 아내는 안정환이 깎은 과일이 너무도 가지런해 놀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럴 이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신길동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이었다. 곱상한 외모지만 안정환은 막노동부터 웨이터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다.

“우리 학교로 오렴.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마.” 안정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명 대학교에서 그의 스카우트 전쟁이 펼쳐졌지만 그는 축구에서는 다소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대학교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안정환이라면 충분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에 입학할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입학하는 조건으로 그는 아주대를 택했고 팀을 대학 최정상으로 이끌었다. 1997년 대학 선발에 뽑혀 시칠리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한 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날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이동, 아주대 소속으로 대학축구연맹전 결승에 나서 두 골을 기록한 건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다. 당연히 프로팀에서도 그를 눈여겨봤고 졸업과 동시에 부산대우에 입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때까지 외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 드리고 어머니의 빚을 갚으며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안정환은 페루자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방출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사진=페루자 공식 홈페이지)

이탈리아로 날아간 테리우스의 시련

K리그에서 화려한 플레이와 빛나는 외모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안정환이 혜성 같이 등장해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던 1999년 부산대우는 483,655명의 경이적인 홈 관중을 불러 모아 K리그 사상 최초로 한 시즌 4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당시 부산대우는 2만 5천 석의 관중석 규모를 훨씬 웃도는 3만 명의 관중을 세 경기 연속으로 불러 모으며 ‘안전사고 위험 지대’로까지 불렸다. 1999년 준우승 팀에서 리그 MVP를 수상한 것도 안정환이 리그 최초였다. 안정환은 전국구 스타가 됐고 안정환이 되고픈 남자들은 머리띠를 하며 그를 흉내 냈다. 각종 광고 출연 등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린 것도 이때였다. 그는 실력과 상품성에서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였다. 이 실력과 인기를 등에 업고 이탈리아 페루자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탈리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동양 선수를, 그것도 한국인을 철저히 무시했던 당시 분위기상 안정환을 인정해주는 동료는 없었다. 안정환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벽 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페루자 측에서는 일본인들이 나타카 히데토시 영입 이후 티셔츠 구입 등 눈에 띄게 구단 매출을 올려준 것에 비춰 안정환 영입으로 한국인 마케팅을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력으로 입증했다. 5번째 출장이던 아탈란타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동점골로 데뷔 첫 골을 쏘아올린 그는 곧바로 치러진 바리전에서 연속골을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고 우디네세전에서는 두 골을 넣으며 이후 줄곧 주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이 경기에서 골든골을 넣은 안정환은 이후 괘씸죄에 걸려 페루자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페루자 가우치 구단주는 국영 방송에 나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녀석은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샌드위치 하나 살 돈 없는 ‘길 잃은 염소’와 같았다. 자신을 키워준 이탈리아를 몰라보고 적대적인 행위를 했다. 그는 더 이상 페루자에 머물 수 없을 것이다.”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안정환에게 살해 협박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그의 차를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안정환은 짐 정리도 대리인을 시켜서 해야 할 정도로 골든골 하나로 이탈리아인들에게 미움을 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안정환에게 2002 한일월드컵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스페인을 상대로 공격하고 있는 안정환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빚 갚기 위해 뛰는 축구선수

프리미어리그 블랙번과 협상이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페루자 측에서는 임대 후 완전 이적조항을 앞세워 “페루자 허락 없이는 어떤 팀도 갈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안정환을 노렸던 프리미어리그 여러 구단에서는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안정환 영입에 뛰어 들었다가는 분쟁이 생길 것을 우려해 난항을 표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더 있었다. 페루자와 현대산업개발의 분쟁으로 안정환은 몸값이 점점 떨어졌고 페루자는 이적료 수입에 부산아이콘스가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했다. 결국 FIFA는 페루자의 손을 들어주면서 안정환 측이 페루자에 380만 달러(한화 약 35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35억 원의 갚지 못하면 안정환은 그 어떤 곳으로도 갈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페루자에서 두 시즌 동안 연봉 13억 원을 받은 안정환은 이 중 대부분을 어머니 빚 갚는데 쓴 터라 돈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안정환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 그때 일본이 움직였다. 놀라운 건 전문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연예기획사에서 안정환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PM이라는 일본 연예기획사는 페루자에 대신 35억 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안정환과 계약했다. 안정환으로서는 35억 원이라는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PM과 손을 잡아야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는 이렇게 일본 연예기획사 소속의 연예인 아닌 연예인이 됐다.

PM은 안정환을 이용해 돈벌이에 나섰다. 안정환을 J리그로 진출시킨 뒤 시즌이 끝나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출연에 이용했다. 당연히 일본에서 본전을 뽑아야 하는 PM은 첼시와 라치오,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샬케04, 블랙번 등 유럽 구단의 입단 제의를 모두 거절했고 최전성기에 있던 안정환은 어쩔 수 없이 유럽 진출의 꿈을 접고 J리그에서 3년 동안 뛰어야 했다. 그런 안정환은 결국 J리그 진출 3년 만에 요코하마를 우승으로 이끌면서 35억 원을 다 갚고 홀가분한 신세가 됐다. 이때 안정환의 나이는 이미 서른 줄로 접어들었다. 당시 나고야에서는 안정환의 기량과 상품성을 인정해 30억 원이 넘는 연봉을 제시했지만 안정환은 뒤늦게라도 유럽에 다시 진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거액을 거절하고 프랑스 FC메츠로 떠났다. 그의 메츠 시절 연봉은 고작 연봉 8억 원이었다.


안정환이 지난 2007년 K리그 2군경기 도중 상대팀 서포터의 비난에 격분해 관중석으로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리는 안정환에게 무엇을 줬나

그는 3년 만에 유럽 무대로 복귀했지만 메츠가 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자 6개월 뒤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로 이적했다. 하지만 뒤스부르크 또한 리그 최하위로 강등되자 계약을 해지한 후 반 년 동안 무적 상태로 지내다가 2007년 K리그 수원에 입단, K리그에 7년 만에 복귀했다. 수원 시절에는 2군 경기에 나서 가족에 대해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내뱉은 상대팀 팬과 충돌해 벌금 1천만 원의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그 어떤 비난도 묵묵히 감수했던 안정환이지만 차마 가족을 욕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없었다. 경기 도중 관중석으로 진입해 팬과 충돌한 안정환은 벌금을 내고 사과문을 썼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켰던 팬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부산과 다롄을 거친 그는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더 오랜 시간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싶지만 이제는 그를 놓아줘야 할 때가 왔다. 우리가 그에게 해준 것이 많다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가 현역 생활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정환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 이탈리아에 진출했을 때는 일본인들처럼 티셔츠를 사주지 않아 구단에서 미운 오리가 됐고 국제 미아가 됐을 때도 손을 내밀어 주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대놓고 가족 욕을 하는 이도 있었다.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안정환에게 더 많은 걸 보여 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안정환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선물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혜성처럼 K리그에 등장해 우리를 설레게 했고 20세기 마지막 한일전에서는 일본의 자존심을 꺾는 멋진 골로 우리를 열광시켰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의 잊지 못할 활약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선명히 남아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원정 첫 승을 거둔 것도 그의 발이었다. 우리는 준 게 없는데 안정환은 너무나도 많은 걸 줬다. 그래서 그의 은퇴가 더 아쉽고 슬프다. 축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지만 이토록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선수는 몇 없었다. 안정환이 공을 잡으면 무언가 해줄 것만 같은 그 느낌은 여전하다.


한국 축구가 존재하는 한 절대 잊을 수 없는 이 장면.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영원한 판타지스타, 안정환

우리는 안정환의 화려한 모습만 봐 왔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 화려한 플레이 때문에 그를 풍족한 환경에서 축구에 매진하는 이로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얼굴만 믿고 공 차는 선수로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선수보다도 더 많은 시련이 있었다. 외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라 빵과 우유를 준다는 말에 처음 축구화를 신은 소년은 훗날 한국 축구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선수로 성장했다. 안정환이 매일 새벽 남몰래 땀과 눈물을 흘렸던 시절이 있었기에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먹을 게 없어 굿판을 전전했던 소년, 학교 창고에서 몰래 잠을 청하던 소년이 정상에 서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학연과 지연이 판치는 세상에서 오로지 실력 하나로 정상에 우뚝 선 안정환은 축구를 넘어서 이 세상에 큰 메시지를 던져줬다. 마지막으로 그가 던진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릴 적에는 어려운 형편을 많이 원망했어요. ‘아,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요. 하지만 그랬다면 아마 너무 마음이 편해서 쉽게 운동을 포기했을 것 같아요. 밑바닥에서 시작해 독기를 품고 노력해 축구선수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난에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지금껏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준 그에게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는 비록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언제나 우리의 판타지스타로 기억될 것이다.

footballavenue@nate.com

김현회
前 스포츠서울닷컴 기자
前 풋볼위클리 축구기자
김현회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130n03946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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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5. 수요일
아하스

정답은 하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뿐이다. 여기에 어떤 타협도 없다.


이 합의가 빠지는 순간 연대는 주제없고 소재없고 의미없는 야오이가 된다. 정치를 한갖 정치욕에 빠진 야동 수준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당장 석패율제 합의를 철회해야 한다.


석패율제는 일단 족보가 없는 제도다. 일단 ‘석패’해서 아까우니 붙여준다는 취지를 실제 제도로 구현시켜 놓은 곳은 일본만이 유일하다. 그나마 그것도 일본이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꾸면서 생길 급격한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안다. 독일이 석패율제? 웃기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다시 살아날 수는 있겠지만 제도 자체가 그에 초점을 맞춰 도입된 것이 결코 아니다. 독일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지켜내려고 하는 것은 아까운 낙선자가 아니라 의석 구성의 비례성이다.


선거제도의 핵심은 내가 알기로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대표성. 다른 하나는 비례성이다.


대표성은 뭐냐. 과연 당선된 저 놈이 우리 지역민들의 의사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다. 자연히 해당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득표를 했는가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여기서 중대선거구제가 걸리는데 대표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10% 미만의 지지로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될 수 있기에 이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비례성은?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집합이 국민 전체의 의사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다. 각 지역마다 당선되었다고 올라온 사람들을 모아봤더니 극단적으로는 1개정당이 전 지역을 석권한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결과를 그 나라 국민 전체가 여당을 100%지지한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간단히 줄여 대표성이란 선거구 개별단위의 대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비례성이란 선거구 전체국면의 대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가까이서 봐도 미인이고 멀리서 봐도 미인이어야 진짜 미인 아니겠나.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대의란 큰 뜻이란 의미가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 할 때 그 대의다.


굳이 내가 설날연휴에 딴지에 접속해서 글을 싸게 만든 문제의 기사다.


‘문재인, 석패율 조건부 찬성 선회…야권 논쟁 재점화’


아주 귀찮게도 문재인 트위터까지 디벼야 했다. 기사만 가지고는 대체 무슨 뜻으로 석패율제 지지발언을 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작 트위터까지 가 봤지만, 기사 내용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문재인이 석패율제 도입의 근거로써 제시했다 볼 수 있는 문장이라고는 “석패율제가 진보정당엔 혜택없다거나 양당의 기득권유지란 주장은 근거없습니다.과거선거에서 10% 이상 득표로 선전한 민노당 낙선자가 부산,광주,전남,대구,인천,경기등 전국각지에 많았습니다.선전만하고 늘 낙선하는 이분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뿐이다.


그런데 근거로써 제기된 위 가정은 말이 안된다. 과거 선거에 일찍이 석패율이 도입되어있었다 할지라도 10% 이상 득표한 민주노동당 후보자라 해서 부활하는 일은 없다. 당연하게도 민주노동당이 획득할 비례대표의석의 숫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 지역구 낙선자들이 비례대표로 돌아올 수는 있다. 다만 그 채워질 자리를 위해 강기갑이나 이정희 의원같은 다른 비례대표 의원들이 자리를 비워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낙선한 지역구 의원이 다시 당선된 것이 되면 지역구 활동에 도움이 되고,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틀린 생각이다. 부활하더라도 엄연히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이다.


이 조삼모사 같은 제도를 고장난 라디오마냥 일제히 이 시점에서 반복하고 있는 데에는 당연히 그 이유가 있을게다.

일단 내걸어 놓은 명분이라는 것이 그 놈의 ‘지역주의 완화’다.

나는 지역주의 완화라는 명분이 노무현이 무덤 속에 들어간지 3년이 지난 2012년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게 한심할 따름이다. 애초에 노무현 스스로 부산에서 헤딩하고 있을 때를 지역주의 타파의 기점으로 삼는다면 이게 대체 몇 년이냐. 십 년이 넘었다.


그래. 그건 인정하자. 지역주의 극복 중요하다. 근데 그 놈의 지역주의 완화라고 하는 목표는 도대체 언제 달성되는 거냐. 어떤 기준을 만족시켜야 우리나라가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그 지겨운 (지역주의로 재미를 가장 많이 본) 민주당 놈들 스스로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인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사골국물 끓여 먹듯 우려먹는 지역주의 장사를 언제까지 할 텐가 이 말이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장관이 되었을 때? 이미 노무현이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미 노무현이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이미 친노가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느 정당이 여당이 되었을 때? 이미 열린우리당이 했다.

자,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는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지역주의 극복의 증거로서 시효를 다했다면 대체 어떤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에 기반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이 목표의 비현실성과는 별개로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민주당이 득템한 배지 수 사이에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한나라당이 100억 차떼기를 하거나 말거나, 전당대회에서 금품을 살포하거나 말거나, 선거만 되면 한나라당을 밀어줄 사람들이 전국 평균 20%~25%는 존재하며 그 중 상당수가 경상도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그런 사람들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의원 몇몇이 경상도에서 당선된다고 하여 생각을 바꾸기라고 한단 말인가?


아직도 그리고 이 시점에도 지역주의 극복 외치고 앉아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소음에 불과하다. 그것이 중요한 줄 아는 사람들에겐 이미 그런 식의 투표를 하지 않기에 의미가 없다고 봐야하고, 그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겐 어차피 소 귀에 경 읽기가 될테니 의미가 없다고 봐야한다. 가까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정권을 잃어버린게 지역주의 때문이었나. 노무현 정권의 실정 탓이었다. 그런 연고로 기껏 설정한 아젠다라고 하는게 또 다시 ‘지역주의 극복’이라면 이런 후안무치도 따로 없다는 게 내 생각의 골자다. 요게 반성한 것이고 고민한 것인가? 이래놓고 진보정당 스스로 아깝게 떨어지는 후보들에 대해 고민이 없냐고? 허허. 참자.


보다 본질적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 지역주의의 극복에 있어서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을 지닌 유권자가 사라지는 것을 지역주의 극복의 기준을 삼겠다면 그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미안하지만 그 사람들이 뜻을 바꾸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걸 기다리는 게 더욱 효과적인 자세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예측을 떠나서 한 번 다르게 보자. 그런 투표를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욕을 해주건 간에 그들은 그들 스스로 참정권을 지닌 국민의 한사람으로 생각의 자유, 양심의 자유가 있다. 그런 사람들의 투표 취지가 특정한 선거제도에 의하여 무위로 돌아가거나 그 뜻이 축소되어 대의된다면 그 제도 또한 잘못된 것이고 위헌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등장한 가스통 할배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면, 그 생각이 그르다하는 비판과는 별개로 그 요구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그것을 무마시켜버릴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제도라면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촛불시위를 해도 막혀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나는 그런 것을 꿈꾸지 않는다. 고로 그런 한계는 어떤 제도를 선택하느냐에서 결정되는 한계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그 자체의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지역주의 극복에 대한 새로운 진단기준은, 지역주의 투표가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에 대항하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난 투표 하나하나가 지역주의 몰표에 묻히지 않고 사표가 되지 않고 제 몫의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상태가 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봐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비례성의 원칙을 말함이고 이걸 실현하는 것은 다시 말하는 것이 아주 졸라 귀찮지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쉽게쉽게 얘기하는 몇 마디에 이런 장문의 글을 쓰느라 정말 귀찮지만,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다. 왜 정치인들 중 일부가 부득불 석패율제를 하려고 하는가. 나 같은 놈도 금방 생각하면 조삼모사 밖에 안된다는 걸 아는데 지역주의 완화에 공감이니 어쩌니 하며 이걸 어떻게든 이쁘게 포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가.


글 처음에 대표성이니 비례성이니 했던 얘기를 다시 상기해주었으면 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결코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으로 소선구제에 의하여 특정정당의 대표력이 과대평가 되는 곳이다. 그 특정정당이야 뻔하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다. 본래 그들 스스로 대의할 수 있는 권력 이상을 가져가고 있다. 여기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써 개혁을 얘기하면 그 양 집단이 가진 권력이 축소된야만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례대표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게 뭐가 힘들겠는가. 그런 건 양당이 합의만 하면 통과되는 거다. 가령 박근혜와 문재인이 결심하는데 그걸 소속 정당의 누가 거부할 수 있는가. 거부해도 어차피 공천은 없다.

그런데 석패율제는 어떠한가. 누가 주도해서 이 합의를 이끌어나가고 있는가. 그 누구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에 합의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만 나오고 있을 뿐. 문재인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석패율제가 중진 구제용이란 주장은 좀 웃깁니다.생판 안되는 지역에 무슨 중진있나요? 늘 떨어진 중진 있다면 구제해줄만하죠. 전여옥,나경원 구제 주장은 황당합니다.”


당연히 누구라고 특정할 수가 없다. 특별히 총대 맨 사람도 없다. 그저 암묵적으로 묵묵히 조용하게 진행될 뿐이다. 이게 바로 기득권 안에서 침묵의 카르텔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저런 변명에 중진의원 이름 아무개를 콕 찝(을 수도 없겠지만)어서 얘기해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못해 현재 양당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석패율제의 구체적 합의 내용이라도 들어본 사람? 석패율제는 실체도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 아깝게 패한 것을 구제한다는데 도대체 그 ‘아깝게 패했다’는 것의 판단기준이 대체 뭔가. 있어도 그게 어떻게 원칙이 될 수 있나. 내가 떨어지면 무조건 아깝고 남들이 1%차이건 0.1%차이건 별로 안 아깝겠지. 일단 진보정당들 맹목적이니 무책임하다느니 딱지 씌워서 밀어붙여서 석패율제 도입하고 나면? 이번 총선에서 2등으로 대거 탈락하실 분들은 수도권 한나라당 후보들이 8할이다.


그들이 일제히 경상도로 내려가 아깝게 탈락했다고 징징거리며 선동하고 다니면 어떨까? 억울한 놈이 한나라당에만 있는 것도 아닐테니, 훈훈하게 낙선의 아픔을 서로 공감하면서 자연스레 중대선거구제로 방향이 틀어질게다. 아니면 슬그머니 비례대표수만 늘리거나. 원래 가고자 했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빠이빠이. 그 때도 한나라당과 합의니 현실이니 핑계대면서 민주당은 빠질테고 말야.


그래서 이 정치포르노를 까발리고 마음껏 비웃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민주당 너희들이 무슨 정치개혁을 하고 싶겠니. 한나라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천년만년 해먹으세요. 민주화 운동 훈장달고 권력놀음으로 만회하면서 행복하시죠?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올해에 연이은 총선과 대선은 다시 없을 기회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바꾸는 데 있어서 정말 절호의 기회다. 민주당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지고 야권의 다른 정당들과 성실하게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이 다시오기 쉽겠는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말… 이명박 다음에 삼무현 오고 그 다음 다시 삼명박이 오고 나서… 말하기도 싫다.


이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려면 총선과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대선은 박근혜 지지율에 1%만 초과하면 된다. 하지만 총선은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할수록 좋다. 과반이 필요하면 과반이 되야 하고, 개헌선이 필요하면 개헌선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왠 석패율제? 석패율제 도입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윈윈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왜 필요한가? 민주당이 여유가 넘치다못해 오지랖이 넓기도 넓은 것 아닌가? 비단 인간미가 넘치는 것은 정연주의 무죄판결을 축하한 최시중 만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무척 희망적이다.

http://www.ddanzi.com/blog/archives/60756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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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정과 대통합 – 적과의 동침

2012. 1. 16. 월요일
편집부국장 필독

2001,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2, 노무현이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3, 열린우리당이 창당된다.

2004,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야합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같은 해 총선, 이른바 탄행역풍으로 열린 우리당이 개헌의석수를 돌파하는 듯 했으나, 박근혜의 전격 등장으로 반쪽짜리 성공에 그치고 만다.

2005,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 거절당한다. 본격적인 레임덕이 시작된다.

2007,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8, 노무현 전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귀향해 하방정치를 구상했다.

2009, 노무현 전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2010, 진보연합 혹은 야권통합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20111216, 민주통합당이 출범했다.

그리고 2012년 벽두, 선거인등록 70만 명이 넘는 혁명적인 모바일선거를 통해 민주통합당의 대표와 지도부가 선출되었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를 관통하는 이 일련의 정치사적 전개는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대한민국 정치는 이 흐름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흐름 속에서 노무현은 처절하게 실패했고, 참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에 드디어 상식과 정의를 부여할 수 있는 물결이기도 하다. 언론에서는 한명숙과 문성근을 두고 친노계가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한다. 그런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분할시킨 노무현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민주통합당은 이명박과 한나라당 심판의 기치 아래 모일 수 있었다. 새로 출범한 통합진보당도 박근혜를 저지해야 한다는 당위아래 민주통합당과 연대할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심지어 박지원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안철수를 지지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범야권이 한나라당 심판이라는 목표아래 하나로 뭉치고 있다.

노무현의 대연정 구상과, 그의 죽음이 남긴 결과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이 기사는 둘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고,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적진에 수류탄을 던졌더니 아군의 참호에 되돌아와 터졌다.”

참여정부 말기를 공중 분해시키고 노무현을 레임덕의 롤러코스터에 태운 대연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흘러나와 이제는 일반의 상식처럼 통하는 이 말은 당시의 상황과 전개를 잘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수류탄의 파편을 가장 많이 맞은 이는 다름 아닌 노무현 자신이었다. 그 탄흔(彈痕)이 훗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상처에 보태졌으리라는 것도, 우리는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당시 정국의 모든 인과(因果)를 설명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특히 노무현의 의도를 공격적이고 전술적으로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과연 한나라당의 분열과 그에 이은 거대야당의 정치력 약화를 기획했을까. 연정 제안을 수류탄에 빗댄 것은 결과론적으로 합당하다 -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으로는.

한나라당을 정치집단도 사상집단도 아닌 이익집단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옳다. 그러나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몽환적일 만큼 먹음직스럽고 또 위험해 보이는 떡밥을 내부에 투척했다고 해서, 물고기들이 아귀다툼을 벌일 거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이익집단은 아군과 적군의 구분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처럼 뛰어난 정치적 재능을 지니고 또 발휘했던 인물이 위와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수류탄을 던졌나.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재능의 범위는 마키아벨리식의 방법론 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략과 계산이 아닌 품성과 철학, 일상적인 생활방식으로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이도 있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정치철학은 이상적이었다. 이는 현실에서 순진함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도박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느냐, 잃느냐. 그는 크게 따고 크게 잃었다.

필자는 타로카드를 통해 이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한다. 타로카드란 유럽에서 미래를 점칠 때 써 온 주술도구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타로카드를 주술적 목적을 위해 쓰지는 않을 것이니 안심하기 바란다. 주술행위 자체에 대한 찬반을 떠나, 타로엔 유럽인들의 전통적인 인생관과 세계관이 집약되어있다. 어디까지나 각 카드에 해당하는 도안의 해석을 소재로 사용할 뿐이다. 해석은 보편적인 매뉴얼을 따랐으며, (타로카드 한 벌 세트)은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쓰이고 있는 유니버설 웨이트덱을 사용하도록 한다.

꿈이 높을수록 추락의 낙차(落差)도 깊다.

FOOL은 문자적으로는 바보, 그리고 광대를 의미한다. 물론 지적 수준이나 직업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진취적이고 순진한 태도와 정신을 나타낸다. FOOL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막을 수 없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낙천적이다. 눈앞에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웃으며 나아간다. 발밑의 강아지는 주인공의 성향을 재확인시켜준다. 손에 든 흰 장미는 순수함과 선량함을 상징한다. 지팡이는 타로에서 전통적으로 여행과 모험을 상징하는 기물이다. 이처럼 웃으며 모험을 떠나는 이유는 그 모험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난 속에서도 일말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은 정치적으로 FOOL이었으며 끝가지 이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지역감정 해소, 동서화합은 그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다. 그는 자주 말했다. “동서화합을 이뤄내자고 말하기는 쉽다.” 그는 화두를 말이 아니라 몸으로 던지는 도박을 했다. 노무현은 5공 청문회에서 스타가 되면서 얻은 정치적 자산을 대담하게도 부산 국회의원 출마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는 낙선이었다.

노무현은 경상남도 진해 출신이며 부산은 그에게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연고지다. 그러면서도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그는 자신의 모순적인 정치적 · 태생적 배경을 지역감정 해소에 적합한 촉매제로 해석했다. ‘우리 동네 사람이라는 원초적이고 소박한 지역주의가 한국의 유권자 대부분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만드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밀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강한 의무감을 느꼈다. 추측해보자면 동서화합에 적합한 용매(溶媒)가 자신이기 때문에, 몸으로 화두를 던져야 할 사람도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단순하게도 동서통합은 옳기 때문이다.옳기 때문에 한다.’ 이것은 노무현 개인의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다.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도 중요했겠지만, 이 주제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결국 부산은 노무현에게 애증의 땅이 된다. 그는 92년 국회의원 선거와 95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낙선했고 96년에도 국회의원에 도전하지만 역시 부산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바보(FOOL)라는 별명을 얻는다.

타로는 FOOL에 해당하는 사람의 운이 평탄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FOOL의 발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다. 따라서 모험의 결과는 날아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노무현은 발을 헛디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지만 이제 날아오를 때가 왔다. 오랜 바보스러움이 누적된 자산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천명한대로 동서화합을 향한 노력을 이 아니라 몸과 시간으로 증명해왔다. 노무현은 그 진정성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에서 거둔 전설적인 승리는 그 결과다.

노무현이 부산에서 호소해온 동서화합의 노력을 지역주의의 피해자인 광주의 유권자들이 보상해준 것은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무현은 가해자의 반성과 이기주의 극복이 지역주의 파해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 의미를 거꾸로 피해자가 이해한 것이다.

노무현은 본의 아니게 광주와 호남의 아들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의 단골손님인 지역 간 대결은 2002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노무현이 생각하는 진보엔 동서화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되는 데 있어 영남에서 발생한 표의 공백을 호남 유권자들이 메워준 것이 큰 역할을 했으니 슬픈 일이다.이는 보수언론이 노무현을 이른바 반쪽 대통령의 프레임에 가두어버리는 빌미를 제공했다(득표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 고약한 프레임 안에 전라도와 빨갱이가 있다. 노무현은 임기 내내 반공주의에 공격받아야 했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 보면, 노무현은 정몽준의 배신에도 불구하고(정몽준과 권력을 나누는 짐이 없어졌으니 결과적으로 행운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고졸의 아스팔트 변호사를 선택했다.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노무현이 가진 FOOL의 성향은 더 강화되고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의 입장이라면 누구나, 과정에 실패와 좌절이 있더라도, 의도가 선하면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게 된다고 굳게 믿었으리라.

비상(飛上)은 한 번 더 남아있었다. 탄핵국면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주도한 탄핵에 협조했다. 당연히 열린우리당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국정당의 필요성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역시 노무현의 정치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동서화합 추진은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입당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통합민주당이 출범하기 전까지, 민주당은 제1야당의 역할을 거의 해내지 못했다. 역량의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지역정당으로 퇴행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이은 제 2의 기득권세력이었다.

민주당이 빠르게 전락해간 모습을 보면, 열린우리당 창당은 어떤 면에서 혜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세력이 분할되지 않았다면 민주당은 지금보다는 정부와 여당을 잘 견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양날의 검은 노무현의 등을 찔렀고 그는 탄핵되었다. 그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현직 대통령을 구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길거리로 나서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 백년간 살아있는 권력이 대중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은 예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것이다.

기득권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탄핵 직후 치러진 총선에 고스란히 담겼다. 박근혜가 등장해 박정희를 부활시키지 않았다면,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넘겼을 것이다. 그랬다면 훗날 노무현이 그토록 허술하게 대연정 수류탄을 던지지도 않았으리라. 이때 호남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아닌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이 자신의 표밭에 사는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을 따라가지 못할 때, 그들은 실수를 용서받지 못했다.

호남을 포함한 국민들의 지지는 노무현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한 가지 명제를 굳게 믿을 만한 경험을 했다. : <옳다고 믿는 대로 정치를 하면 고난이 있을지라도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로 돌아온다.> 이 믿음이 모험가의 도박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또 전략의 부재(不在)를 낳지 않았을까. 위기 때마다 대중이 뒤에서 그를 밀어주었다. 그러나 탄핵 때처럼 대중은 분노할 줄 알기에, 노무현의 실수에도 분노할 수 있다. 대연정 제안은 그를 절벽 위로 몰아세웠다.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노무현은 훗날 대연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국민들을 너무 믿었다. 내가 오만했다.”

마법사,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창조적 재능을 가진 마법사는 무엇이든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테이블 위에 타로카드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지팡이, , , 펜타클(오각형 별), 흰 장미 등)이 모두 올라가 있다. 마법사는 이 풍부한 재료를 이용해 무언가 굉장한 것을 만들 참이다. 그 결과물이 어떨지는 마법사 외에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마법사 자신도.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마법사가 되었다. 고졸 대통령, 누구보다 도덕성을 강조해온 정치인, 청문회 스타,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낸 주인공으로서 그는 무언가 대단하고 만족스러운 것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 결과가 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마법사는 몰락하게 된다. 슬픈 일이지만, 몰락은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었다.

첫째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세력의 성격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회창을 중심으로 결집한 보수 세력을 두 번째로 좌절시켰다. 이익집단은 이익 때문이 아니면 분열하지 않는다. 또한 이익과 상관없이 타인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한 편이 아닌 노무현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국민의 반이 이익집단의 논리에 동행했다.

조중동은 한나라당과 공조해 집요하게 노무현을 괴롭혔다. 노무현은 조중동은 나쁘다는 언사로 대응했다. 어리석었다. 전략적으로 보면 권력을 이용해 제압하거나 아니면 유화정책을 썼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시로 일관하며 매도당할 빌미를 제공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저 솔직히 불만을 표시하고 묵묵히 두들겨 맞았다. 이런 순진한 언행은 국민은 결국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해주고 저들을 심판(혹은 압박)해줄 것이란 믿음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두 번째는 진보진영의 인사들과 유권자들의 성격 때문이다. 노무현은 자신을 선택한 나머지 반을 확실히 업고 가야만 했다. 그는 진보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정책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았으며, 최소한 지지자들이 기대한 만큼보다는 보수적이었다. “좌측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노회찬의 유명한 말은 노무현을 고립시킨 진보진영과 지지자들의 배신감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쪽을 배신(?)했다고 해서 보수 세력이 그를 인정해줄 리도 없다.

진보는 한 편이라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진보는 이익과 상관없이 등을 돌릴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성향이 진보의 약점일 수는 있어도 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에 대한 판단으로 지지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훌륭한 정치행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노무현이 시스템주의자라는 데 있다. <민주주의 2.0>이 보여준 철학이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기관의 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정책, 넷으로 일원화된 행정방식 등 그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유시민은 그 분(노무현)은 너무 시스템을 신봉했다. 나 같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스템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내실과는 상관없이, 마술적이지 않다.

노무현은 마법사가 아니라 대통령임에도 마법사의 운명을 강요받았다. 그 결과 그는 <두 개의 검 2 of Swords>카드 속의 여인이 된다.

먼저 안대를 풀었어야 했다.

그림 속의 여인은 양손으로 검 두 자루를 들고 있다. 검은 V자를 그리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균형을 상징한다. 그러나 검의 무게가 여인을 짓누르는 우울한 분위기다. 따라서 이 카드는 정체되고 구속된 상태를 뜻한다. 두 검이 각각, 노무현에 대한 보수진영의 변하지 않는 적대감과 진보진영의 비판적 공격을 의미하는 듯하다. 고립된 여인은 눈이 가려져 있다. 검을 휘둘러 이 상태를 벗어나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눈앞이 보여야 한다. 임기 말 노무현은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과 레임덕 현상에 묶여있었다. 여인과 비슷한 처지다.

이러한 상황이 노무현을 절박하게 만든 것 같다. 지역주의 해소는 그의 정치적 정체성이자 가장 원대한 목표였다. 그의 주요 공약이기도 했다. 최고권력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과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다. 권력이 붕괴되고 있었다. 대통령 직에 있을 때 하지 못하면 영영 기회는 없다.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권력을 행사한다. – 바로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노무현은 대연정을 통해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기로 했다. 그 대가로 선거제도를 대선거구제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지역주의에 눌려 사표(死票)가 되어버리는 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지역 간 대결의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의도는 좋다.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게 문제다. 한나라당은 수차례나 성공한 노무현의 도박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변이 없는 한 조금만 기다리면 집권여당이 될 텐데 무엇 하러 권력을 미리 나누겠는가.

노무현의 정치적 판단은 즉흥적인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는 7개월 만에 판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등기업무 분야를 쓸어 담은 생활형 변호사였다. 그가 아스팔트 변호사로 변신한 이유는 우연히 고문당한 학생들의 만나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는 5공 청문회에서도 무척 감정적이었다. 그런데 그의 뛰어난 점은 즉흥적인 판단이 거의 언제나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는 것이다. 진정 뛰어난 점은 판단 자체는 즉흥적일지언정 그 판단을 현실화하는 일에는 대단한 인내심과 진정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연정 제안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무모했다. 대연정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학부 리포트 수준으로 정리된 문서도 없다. 별다른 자료도 없다(필자가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로 타로를 선택하게 한 주요 원인이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충격을 받았을 만큼 충분한 논의도 없었다. 그야말로 뜬금없이 투척되었다.

전략이 있었어야 했다. 구체적 실현방안을 도출했어야 했다. 게다가 당장 못하더라도 기회는 있었다. 노무현은 퇴임 후 김해시장에 출마하는 하방정치(下方政治)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는 하방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지역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먼저 안대를 풀지 않고 성급하게 검을 휘둘렀고, 자신을 찌르고 말았다.

진보와 보수, 상식과 비상식

왼쪽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한 노무현은 진보일까 보수일까. 그는 이라크에 병력을 보냈으며 한미 FTA를 체결했다. 노명박이라는 말이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이름을 합친 이 말은 두 인물의 정책적 지점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한다. 노무현은 정말로 무늬만 진보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일부 진보성향의 비판자들이 말하듯이 신자유주의자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필자는 노무현이 <두 개의 검>카드 속의 여인이 된 이유에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모호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왜 진보이면서도 보수적이었을까. 혹은 그는 진보일까 보수일까.

한국에서 진보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진보이다. 경쟁보다는 분배를, 이미 검증된 현 체제의 장점(長點)을 수성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단계를 위한 실험을 추구하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진보다. 한편 진보란 말은 친일파로 시작되어 군사독재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부정한 기득권세력에 대한 대항을 뜻하기도 한다. 이때의 진보란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사회를 정체시키고 퇴보시키는 행위를 막으려는 의지다.

보수의 의미도 두 가지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사익추구를 권력의 목적으로 삼는 기득권세력이 보수로 불린다. 이들은 단순하면서도 생존법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익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 색깔론으로 대응한다. 사익추구를 반공으로 포장하고 급기야는 애국으로 승화시킨다. 이 생존법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악어의 그것과 같다. 악어가 수억 년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은 이유는 기존의 신체와 습성이 워낙 생존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어의 유전자는 악어에게만 필요할 뿐이다. 악어는 하마의 안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악어의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정치적 악어는 필요치 않다. 우리 사회의 보수를 수구로 바꿔 불러야 하는 이유다.

보수세력에 의해 빨갱이로 낙인찍혀 정치력을 상실해온 김대중과 노무현이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자, 미국식 경제주의자였다는 점을 상기하자. 노무현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에 <내가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펴냈다. 진보주의자가 링컨의 정치철학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저서의 주제가 링컨이라니 다소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이 과연 보편적 의미의 진보인가?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난 구체적 논의가 있어야겠지만, 필자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보수인가? 충분치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보수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상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노무현은(물론 김대중도) 진보와 보수를 논하기 전에 상식적인대통령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예컨대 그가 신자유주의자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상식적인 신자유주의자였다. 그로 하여금 빨갱이소리를 듣게 한 모든 정책들은 상식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이에 반해 수구세력은 이명박의 독재, 경제적 무능,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는무차별적 사익추구 등의 수많은 비상식을 보수주의로 윤색해왔다.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자, 친이계를 제외한 수구세력은 이명박과 자신들을 분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과 분리될 수 있을 뿐, 비상식과 분리될 수는 없다.

노무현은 상식적 보수에 가깝다. 그런데 그는 국민 앞에서 진보와 보수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지 않았다. 왼쪽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면서 진짜 진보까지 적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의 실수이자 불행이다. 자신과 참여정부가 진정한 보수임을 증명하고 알림으로써 수구집단을 비상식의 영역으로 소외시켰다면 어땠을까. 자신을 위험한 사회주의자로 매도하는 수구의 공격에 그들의 포장지를 벗기는 역공을 펼쳤다면 퇴임 후와 같은, 노무현 개인의 불행과 국가적 불행 모두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대연정과 대연합 우리에게 남은 술잔

<다섯 개의 잔> 카드다. 카드 속의 인물은 쏟아진 세 잔을 바라보며 슬픔에 젖어 있다. 이 인물을, 야권대통합을 지지하는 유권자라 생각해보자. 쓰러진 잔 하나는 노무현의 실패다. 그의 실패는 비극적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다른 하나는 20년 전으로 퇴행한 한국사회다. 이 퇴보는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으로 본격화되었다.

마지막은 한나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지금 한국사회의 모순과 폭력이 고착, 점증(漸增)하는 사태에 대한 우려다. 박근혜는 여전히 가공할 적이다. 그가 얼마나 컨텐츠가 없고 멍청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야권의 상대는 박근혜의 두뇌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강력한 이미지다.

그러나 아직 두 개의 잔이 남아 있다. 이 카드는 아직 남아있는 두 개의 잔에 주목하고 거기서 희망을 찾아 다시 일어설 것을 촉구한다. 한 컵은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국민들로 하여금 현 정권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여실이 체감하게 해 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다른 컵은 상식세력, 그리고 상식적 유권자의 존재다. 통합민주당 출범도, 야권대통합의 가능성도 모두 이 컵 안에 담겨 있다.

이제 나는 노무현의 대연정과 야권대통합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해소라는 거시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한나라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한나라당을 위시한 수구세력 심판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이념과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이들끼리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권연합은, 상식적 보수와 상식적 진보가 연대하는 상식연대이가 되어야 한다. 진보연대라는 표현이 야권연합, 야권대통합으로 바뀐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진보연대는 그 표현 자체로 수구세력이 뒤집어쓰고 있는 보수의 포장지를 인정하고 방치해버리기 때문이다.

야권대통합 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정치경제적 노선이 아니다. 상식과 도덕성이다. 우리에게는 기득권 이익집단의 독주를 저지해야 하는 시급한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상적인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수구세력이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아야 한다.

연대 당사자들끼리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일시적 연대인 만큼 어느 경유지까지 함께할 것인지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MB로 대표되는 수구세력 심판이라는 연대의 정당성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노무현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진보를 원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국가가 정상화되기를 원했다.그에게 있어 지역갈등은 비정상적인 환경이었다.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TK’의 기득권은 허구다. 이 사회에서 기득권에 든 가해자와 그렇지 못한 피해자는 주로 경제적 계층으로 나뉜다.

연대는 민주당이 지역정당으로 퇴행하는 아이러니를 바로잡고 한나라당이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반칙을 저지할 기회일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 자체의 허울을 벗겨낼 좋은 기회다. 유권자들이 선거가 계층싸움임을, 더 나아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임을 자각하게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큰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두 술잔은 아래 보이는 <두 개의 컵 Two of Cups>의 잔이 될 것이다.

두 남녀가 건배하고 있다. 연애운에서는 약혼을 상징한다. 직업운에서는 취업, 사업운으로는 좋은 계약을 뜻한다. 마주보는 눈빛은 평등하며, 두 인물 사이의 신뢰가 엿보인다. 두 사람은 국민과 통합야권일수도 있고, 범야권의 상식적 진보와 상식적 보수일수도 있다. 노무현의 처참한 실패에서 시작된 지금의 정치사적 흐름이 수구세력 심판과 상식의 회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명박 집권기의 끔찍한 퇴행조차도 미래를 위한 값진 거름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대의 당사자들이 상식과 도덕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야권은 바로 그 가치를 위해 뭉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심판 Judgement> 카드를 마지막으로 글을 끝내고자 한다.

심판이라고 해서 꼭 (악에 대한)처절한 응징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카드의 주제는 그보다는 더 구체적이다. 지금껏 있어온 선행과 악행, 그리고 갖가지 선택이 응당한 결과로 나타나는 카드다.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이 개이고 모든 것이 드러난다. 거짓이 있다면 들통 날 것이다. 노력이 있었다면 보상받을 것이다. 선의(善意)는 인정받을 것이며. 부당하게 얻은 명예와 권력, ()는 벌로 되돌아올 것이다. 필자는 이 카드가 우리 사회의 상식세력과 비상식세력에게 다가올 미래이길 바란다.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독자여러분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필독

http://www.ddanzi.com/blog/archives/59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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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때의 시장은 교과서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시장이 아니라, 바로 ‘삼성’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넘어간’ 것은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말하는 이광재가 아니었을까?

“광재마저도 이미 삼성으로 넘어갔는데, 나보러 혼자서 어쩌라구?”나는 이런 얘기로 대통령의 말을 해석했다. ‘2만달러 경제’ ‘샌드위치 위기론’ 등, 지난 정부의 국정을 토건으로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동시다발적 FTA 국면으로 끌고간 근본적인 힘은 삼성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제범죄로 구속되어 있던 이건희 회장을 끄집어낸 것은 전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주도했던 평창 동계올림픽 3차 유치 시도였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황당하지만, 삼성이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시도하는 사회와의 관계맺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도시 차원에서 진행되는 동계올림픽은 환경 파괴 등의 이유로 무조건 찬성 목소리만 나오지는 않는다. 푸틴이 직접 나섰던 지난 동계올림픽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주로 개도국인데, 한국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경제범죄자였던 이건희 회장을 사면하는 황당한 일을 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이광재를 축으로, 많은 국정의 기본 방향 설정에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삼성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 정부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명목상으로는 현대 출신 대통령이고, 같은 재벌가 출신이니 삼성도 좋아졌을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 정권 들어 국내 회사가 정부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좋아진 건 별로 없고, 진짜 한몫 챙긴 것은 외국 회사들이다.

참여정부에서 기업도시 건 등을 삼성이 먹었다면, 현 정권에서 진짜로 처먹은 것은 딱 두 종류, 유통자본과 외국 회사들이었다. 특히 외국 컨설팅 회사들은 중요한 국정과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사실상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시청료 인상을 비롯한 KBS 구조조정 방안은 보스턴 컨설팅에서 했다. 지금 야권 등원의 중요한 명분의 하나였던 농협의 신경분리나 한전 구조조정 방안 등 이전 정권에서는 주요 국책연구소에서 했던 일들을 매킨지에서 했다. 이게 도대체 나라 꼴이 아니다. 한술 더 떠서 외국계 컨설턴트들이 아예 청와대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후변화협약 기본 방향이니 이런 걸 잡겠다고 하니, 정부가 정부 꼴이 아닌 게 당연하지 않은가? 삼성이 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덜 쓴 건, 정권이 삼성을 견제해서가 아니라 외국계 회사가 약진하며 벌어진 기이한 사건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삼성이 취한 전략은 지역화, 즉 외국계 컨설팅 회사와 결탁이 덜 된 지방정부를 공략하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삼성 장학생이었던 이광재를 따라 강원도 도정에 들어간 건 물론 송도 신도시를 따라 인천,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전북 등 결국 동네마다 삼성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게 되었다. 중앙정부는 매킨지와 보스턴, 지방정부는 삼성. 이런 결탁 속에서 인천공항 매각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 한·미 FTA 국회 비준 이후, 주요 국정사업에 새로운 시어머니로 미국 상공회의소마저 적극 나서고 있는 게 최근의 형국이다. 이러니 국민들의 경제적 삶이 형편무인지경에 빠지고, 서민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 아닌가? 주요 국책사업을 외국계 컨설팅사에 넘기지 말라는 특별법이라도 신설해야 할 상황이다. 경제 민주화니, 금융 민주화니, 현 상황에서 너무 고급 개념이고, 국정이나마 한국 사람이 하는 것이 개혁의 내용이 될 지경이다. 지자체 중 가장 나간 건 안희정 지사가 있는 충남이다. 한국 농업의 최대 적이었던 카길을 유치하는 것을 도가 나서서 추진하고 있으니, 이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지, 미국 안마당에서 다국적 자본에 유린당하는 중남미 어떤 국가인지, 나라 꼴이 꼴이 아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삼성, 현대와의 관계이다. 작게는 삼성을 대기업 중의 하나일 뿐으로 보는 일, 넓게는 현대건설 등을 축으로 하는 건설사에 주는 특혜를 그만두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외국계 컨설팅사를 앞세운 매판자본들의 국정 농단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게 이제부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숙제다. 삼성 공화국, 이제는 그만하자! 삼성 장학생들이 법조계와 언론계를 장악한 건,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새로 출발하게 되는 시민의 정부에서도 삼성 장학생들이 한자리 차지해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삼성에 특혜를 주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삼성이 FTA를 불러왔고, 현대가 토건을 불러왔다. 이런 거, 다음 정부에서는 그만하자. 정권은 망해도 특혜 기업만 번영하는 기이한 지난 두 번의 경험, 충분히 했다.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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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든 주체 ‘DJ‧盧시대’ 성찰 안하면 역사 반복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
12.01.09 17:59 | 최종 수정시간 12.01.10 08:05

진보 지식인들은 걸핏하면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한다. 왜 꼭 대통령과 주위사람만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나? 그들도 사실 정치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국민을 외롭게 둘 수 없어 운명이라 생각하며 정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슬픈 건 그들이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노무현대통령 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정부 10년의 부족했던 점에 대해 모든 주체가 성찰하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믿는다. 특히 지식인과 언론의 성찰 없이 달라질 것이 없다고 본다. 맨날 비판만 하는 지식인은 성찰할게 없는가? 나는 현 시점에서 그들의 성찰이 한국사회 발전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출간된 내 논문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지식인의 성찰은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틀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장집교수를 비롯해 박상훈, 손호철 등 최장집 사단은 물론이고 오연호, 조국 심지어는 과학적 연구를 하는 정치학교수들조차 2007년 대선에 대한 분석은 잘못되었다.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잘못 때문에 이명박정권이 탄생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촛불집회나 최근의 정치적 상황,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는 한국 유권자를 잘해야 변덕장이 아니면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유권자는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존재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다. 선거연구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러한 과학적 진단 없이 잘못된 주장이 언론에 의해 퍼지게 되었고 선거연구자마저도 치명적인 방법론적 실수를 했다. 그래서 잘못된 담론이 하나의 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탄생 직후 이루어진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에 소위 전문가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진보언론과 학자들은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 반대시위라는 잘못된 해석을 했다. 촛불시위는 이명박정부의 권위주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표현의 자유를 주창한 문화적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었다. 경제보다는 정치문화적 잇슈가 참여의 핵심이었다.

2007년 진보진영의 대선 패배는 전적으로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대통합민주신당의 실패, 그리고 정동영의 잘못된 선거전략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고 정동영이 오판을 하는데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도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낮은 지지도가 참여정부의 정책적 오류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당재편성과정에서 피치못하게 일어난 변화 때문임을 이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소수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경제적 양극화에 따라 국민의 이념적 양극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있었기에 그렇다. 가장 큰 이유는 박정희의 성공신화가 아직도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성공신화가 김대중 노무현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한 국민의 경제적 보수주의 때문에 두 대통령의 정책도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진보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우리사회에 복지가 화두가 되고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분출하게 된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지식인들은 연구 좀 해보기 바란다. 노무현대통령이 임기 내 양극화를 의제화하고 결국엔 자신의 몸을 전져 진보의 미래를 쟁점화하고 복지에 대한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정부는 누가 당선되든 과거보다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경제적 진보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진보의 역량이 그만큼 성숙되었고 복지의 혜택을 본 국민들의 의식도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지 마시라. 45세가 넘으면 사람들의 생각은 하루 아침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심층적 여론조사를 해보면 아직도 국민 다수는 성장주의를 선호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무상급식이 투표를 가르는 핵심쟁점이 아니라 반MB로 야권이 단합한 것이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다.

진보지식인들의 역할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도록 수혜 계층인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사회는 여론이 정책을 결정한다. 선거가 다가오니 MB정책에도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유는 한나라당의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10대 말, 20대 초반에 형성된 가치관과 생각을 그 후에 쉽게 바꾸지 않는다. 전쟁이나 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젊었을 때의 정치적 선택을 평생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국민을 설득하는 어려운 길 대신 쉬운 길을 택한다. 정치인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정부에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게 과연 정부에 대한 객관적 공과에 대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진보진영은 정권을 잡아도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진보지식인들에게 묻는다. 정치인을 비판하는 당신은 자신을 던져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군가를 뜨겁게 안아본 적이 있냐고. 자신의 이익을 배반하는 유권자를 진지하게 설득해 단 한 명의 생각이라도 바꿔본 적이 있냐고.

지식인도 비판받아야 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한 사회의 담론 수준이 올라가고, 그것이 합리적인 정책으로 실현된다.

<논문의 요약>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과 논평가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가 2007년 대선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보수는 경제파탄, 진보는 양극화에 책임을 돌렸다. 양자의 진단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실패’라는 프레임에 동의함으로써 기정사실되었다. 그러나 노무현대통령의 지지도는 촛불집회에서 회복되었고 사후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 이러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글은 정당재편성 이론에 기초해 2007년 이명박후보의 승리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일견 모순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한국정치현실도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후보의 당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한나라당의 높은 정당지지도였으며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이명박후보 승리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은 경험적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노무현대통령의 정치개혁 성과와 복지주의 정책 도입으로 2002년 선거연합이 해체되었고 노대통령의 지지기반은 지역에서 계층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발전주의 이념으로 재연합되었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뚜렷한 정체성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해 정당해체를 경험한 것이 대선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570&PHPSESSID=4d8b9b8b2fbffd1811c11940aafc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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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검사가 있다. 조직 내의 신망도 있고 나름 능력있는 검사로 인정받았다.
누구와 친척이어서 어떻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적어도 수사 능력 면에서 그를 탓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품도 남자답고 호탕하다고 했다. 누구와 친척이 아니라도 충분히 검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필 그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수사를 맡았다. 천하쟁패의 순간에 검찰이 등장하는건 우리 사회와 정치의 비극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었지만.

그는 오늘 유감스럽게도,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숱한 증거자료와 의혹들에 기초하여 상식적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시민을 '촉나라의 개'로 만들었다. 그리고서 그 스스로 현인(賢人)임을 자임했다.

'蜀犬吠日'의 고사성어를 빌어 그의 입장을 변명하고, 수많은 의문에 답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이는 본래 촉나라는 산이 높고 안개가 항상 짙어 해가 보이는 날이 드물기 때문에, 개들이 해를 보면 이상히 여겨 짖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어째서, 무슨 이유인지 그는 멀쩡한 '해'를 '달'로 바꾸었다.

"(BBK 수사) 그때 수사검사가 10명이었는데 모두 출신지역과 학교 등이 달랐다"며 "10명의 검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향해 나아갔다"고 말했다.

나는 묻는다. 본래 검찰의 수사는 검사의 출신지역과 학교가 다르면 각자 그 연고에 따라 진실을 외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는 뜻인가? 과거엔 그렇게 그런 자세로 수사했단 말인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시 수사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노무현 정부 하에 임명된 장·차관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 수사를 지켜보고 있었다"며 BBK 재수사론을 일축했다 한다.

다시 나는 묻는다. 시민을 바보로 아는가? 대선 때 제기된 쟁점이고 당시 후보가 받았던 의혹이며 대부분 해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천하가 아는데, 대체 누가 그걸 이명박 정부에서 수사했다고 착각하던가? 후보자가 자신의 의혹을 수사하도록 지시하는 경우도 있는가? 아니면 당선된 후에 스스로 진실을 밝히려 했던 것으로 국민들이 착각하고 있단 말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당시의 (힘 빠진)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 정성진과 차관 정진호가 정말 진실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당신의 수사를 지켜보던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직전 장관 김성호가 이명박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이라는건 어찌 생각하는가? 정진호 직전의 차관 정동기는 또 어떤가? 그는 이명박의 비서를 거쳐 감사원장이 되려다 낙마하지 않았던가?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진 누구 편이었는가? 솔직히 말하라.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검찰에 몸담은 이들의 정치적 입장이 누구에게, 어느 편에 더 기울어 있었는지. 아니, 지금도 뻔하지 않은가?

하나 더 묻는다. 언제부터 검사가 법무부 장, 차관을 의식하며 수사했는가? 당신들이 더 신경쓰고 복종해 마지않는 이는 검찰총장과 검사장 아니었던가? 왜 총장이 아니라 하필 장차관을 따지는가? 총장은 너무도 무능한 이였기 때문인가?

"서울중앙지검의 최정예 수사팀인 특수1부 검사들이 동원돼 수사를 벌인데다 이후 특검까지 거쳤다"며 "(정봉주 전 의원이) 1심부터 2심, 3심까지 모두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냐"고 반문하고 "한국사회 시스템이 그리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또 묻는다. 한명숙 총리에 대한 억지 수사는 어디서 했는가? 그 잘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아니던가? 정부가 바뀌니 최정예가 갑자기 오합지졸로 바뀐 것인가? 유죄 판결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 진실이 되는가? 그 안에 담긴 사실을 요리하는 것은 당신들이고, 그 사실을 판단하는 이의 오판이 개입될 여지가 너무도 많지 않던가? 아니,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은 과거 명백한 사실도 애써 외면하고 피해자의 피맺힌 눈물을 '제도와 절차의 한계'라며 외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맹세할 수 있는가?
그 '만만치 않은 시스템'을 통해 무죄가 나면, 당신들은 왜 단 한번도 순순히 승복하며 반성하지 않는가? 그저 시스템은 강자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정하라는 것인가? 주권자의 상식과 판단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최근 BBK 재수사 논란에 대해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공직자로서의 처신을 생각해 그냥 이렇게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다. 그러면서 "중수부는 몰라도 중수부장은 올해 많이 바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공직자로서의 처신"이 무엇인줄 알긴 아는가? 진실 앞에 겸허하고 주권자인 시민 앞에 겸손하게 봉사하는 것 아니던가? 그 처신을 똑바로 하느라 '촉나라 개'처럼 짖어대는 시민을 그냥 놓아두고 바라봐 주는 은혜와 품위를 베풀었단 말인가? 중수부와 상관없이 중수부장이 바빠진단건 또 무슨 말인가? 선거에 이르면, 힘 있고 높은 자리를 이용하여 중수부라는 무기를 언제든 빼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끊임없이 협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인가?

오늘 자리를 던진 동료 검사의 이러한 소회는 어찌 생각하는가? “법률가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 여지없이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상소권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조차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건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다면 당연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중수부가) 정치권력이나 시장권력의 부정부패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상징으로서 그 정치적 편향성 시비로 인하여 검찰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권력의 사유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유혹을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더 공감을 얻지 않을까? 아니, 이 글을 보긴 봤나? 대체 무엇 때문에 비슷한 연배의 같은 검사 사이에 이토록 넓은 생각의 간격이 생긴 것인가?

“‘정치검사, 편파검찰’이라는 말 대신에 ‘국민검사, 개념검찰’이라는 말이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도록 모두 힘을 합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바른 것을 얻고 제대로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拿得定 見得透 事無不成)”는 중국의 경구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처신을 똑바로 하는게 더 급하고 중요한 일 아니던가?

결국 나는, 오늘 그에게 가장 합당한 고사성어는 ‘越犬吠雪(월견폐설)’이라 일러주고 싶다. 따뜻한 월(越)나라에는 눈이 내리지 않으므로 눈을 처음 본 월(越)나라의 개는 두려워 짖는다. BBK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아니 꼭 밝혀지고야 말 것이다. 그간 검찰이 눈을 부라리며 왜곡된 진실을 강요하던 어두운 역사는 이제 끝이다. 그러니 새로운 역사를 처음 경험하게 될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나는 그다지 놀랍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진실이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몰아낸다. 그리고 촉나라의 해는 검사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달로 변할 수 없는 것이다.

http://www.facebook.com/choepro/posts/343168549029128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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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놈만 팬다

토론/사설 2012. 1. 2. 13:29
나의 신년사 – 한놈만 팬다

2011. 12. 30. 금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어느덧 한해가 저물고 있다.

작년에도 이런 얘기 하면서 송년사 비스무리한 글을 쓴 기억이 나는데, 그새 한해가 또 흘러 버렸다. 씨바 나이는 왜 자꾸 먹고 지랄이야.

그래도 졸라 행복하다.

돈이 쥐뿔도 없어서 살기도 팍팍하고 위대하신 가카는 아직도 건재하지만, 그래도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내 주머니속에는 희망의 잔고가 훨씬 더 높아져 있단 말이다. 정치권은 아직도 뻘짓에 여념이 없고 한미FTA는 시시각각 우리네 가난뱅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늘어났다.

그래도 희망은 있더라. 얍!

희망은 언제나 그렇듯이 도둑처럼 왔다.

아니, 우리 안에 살그머니 숨어 있던 희망이 처절한 분노와 절망을 비집고, 끈적거리는 교착상태를 깨고 다시 솟아 나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내년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로 거기서 이 얘기가 시작된다.


시작은 나꼼수였다.

숱하게 망해버린 딴지의 다양한 헛발질중의 하나로 또 엎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나꼼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견고하게만 보이던 가카일당의 성벽은 불을 뿜는 나꼼수의 화력 앞에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균열은 우리쪽에서 보면 코미디, 저 쪽에서 보면 졸라 슬픈 비극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 시작은 가카의 미니미 오세훈에서부터.

발린 인간 1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강용석 따위는 근처에도 못갈만한, 채플린에 버금가는 희극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상천외한 코미디를 연발하던 오세훈은 결국 총수랑 친구먹는 거 말고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최근엔 무슨 등산 하다가 디스크가 걸렸다는 둥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남자가 허리 상하면 그걸 어따 써~)

무려 25.7% 라는 강렬한 투표율을 보이고 사라져간 오세훈의 뒤를 이은 코미디는 얼짱 나경원 여사.

발린 인간 2

나경원을 우리가 발라 버릴 수 있었던 원인은 딱 두 가지로 귀결되는 거 아닐까 한다.

하나는 막강한 안철수의 바람이 박원순에게 쳐준 버프. 또 하나는 위대한 누나전문 기자 정통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나경원에게 걸어버린 막강 디스.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은 주진우가 나경원에게 했던 얘기들이 다 구라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그건 지 발등 찍기였을 뿐이다. 주진우가 한 얘기는 딱 하나, ‘나경원은 모 피부과에 자주 갔는데, 그 피부과에서 피부관리를 받으려면 연회비 일억을 내야 한다더라~’ 라는 거뿐이다. 여기 어디 구라가 있어? 나머지는 다 제 발이 저린 나경원측에서 한 소리일 뿐이다. 나경원이 오백을 냈는지, 이억을 냈는지 누가 알아?

어찌 되었거나 나경원은 오세훈의 뒤를 이어 침몰했고, 이제는 언론에 노출도 안되고 있다. 재기할 수 있으려나… 스트레스로 인해 비싸게 손질한 피부가 망가졌을까봐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는 바이다.

아우 안타까워라~

가카를 향한 나꼼수 4인방의 충정은 갈수록 화력을 더해갔고, BBK는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우고 있으며, 내곡동은 가카의 아들넘까지도 휘청거리게 만들었으며, 저들은 이제 나꼼수를 어찌하지 못해 안달복달이 난 상태까지 와버렸다.

우리의 목줄을 죄게 될 FTA는 비록 의회에서 최루탄 가루를 뚫고 생 날치기로 통과되었으나 믿었던 미국이 발효를 연기시켜 버리는 바람에 가카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고, 80%가 넘던 FTA 찬성 여론은 과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거기에 더해진 나꼼수의 추가 일격. 디도스 사건.

이건 그냥 디도스 사건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그런 선관위의 업무를 무력화시킨 사건이란 말이다. 권력에 의한 헌정중단사태이며,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권퇴진이 논의되어야 하는 수준의 대형범죄란 말이다. 애써 아닌 척 못본 척 하면서 넘어가려고 하곤 있지만 사실상 디도스 한 건으로 나꼼수에까지 출연했던 자수성가형 독불장군 홍반장까지 날려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돈은 오가지 않았다 → 천만 원이 주어졌다 → 일억이 주어졌다. 이건 무슨 점층법도 아니고…

이제 쥐도스라고 불러볼까?

관련자들도, ‘일개 의원 운전수였다’, ‘술김에 한 짓이다에서 출발하더니, ‘국회의장 비서가 관련되었다’, 결국엔 ‘청와대 행정관’까지 등장. 알고보니 그 행정관은 홍준표의 인터넷 담당 비서 출신으로 청와대에서 기밀비까지 쓰는 인터넷 여론 관리 담당자였다는 얘기다.

이거, 결국 최종보스 가카에까지 연결이 안 될 거 같은가?

진짜 기스 많이 난다.

가카의 사촌처남, 손윗동서, 심지어 만사형통의 상왕 이상득 전하에게까지 검찰의 손이 내밀어지고 있고, 총체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는 거 같다. 하기사, 워낙에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 보니 뭐 이런 잔챙이들이야 감방이 미어터지도록 잡아들여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희망찬 상황 속에서도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거린다는 얘기다. 꿈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라고..

결국 그네공주가 문제다.


아, 그네공주가 문제라고 하니까 보통 생각하는 대로 그네가 또 구원투수로 등장해서 판을 뒤집고 한날당을 기사회생시킬 것에 대한 걱정인가 보다, 하고 넘겨 짚을 수도 있겠는데 그런 얘기 아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정확하게 25년 전.

우리는 엄청난 실수를 했다. 전국이 들불처럼 타올라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고, 그 결과 대머리 독재자가 항복을 한 적이 있었다. 세상은 밝아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줄 알았었다.

그리고 보통사람이 등장하더니, 6.29 선언이라는 희대의 사기술을 선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리멸렬하면서 양김의 분열을 필두로 무너진 독재자의 권력조차 회수하지 못하고 이름만 바꾼 독재가 연장되었던 기억이 있다.

물타기의 시작, 물태우의 6.29 선언

그 메카니즘은 뭐였을까?

핵심은 포커스다. 핵심을 담아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포커스가 잡히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독재타도 호헌철폐는 그 포커스로써 아주 훌륭했다. 그렇다면, 6.29 선언으로 그 포커스는 달성되었는가?

호헌은 철폐되고 개헌이 되긴 했다. 그런데 독재타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렇게 세상을 억압하고 때려잡고 망쳐먹던 대머리 독재자에 대한 타도는 어디로 스물스물 사라져 버렸는가? 포커스는 6.29의 주인공 보통사람에게로 돌아가 버렸고, 전두환의 책임은 백담사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독재를 타도하려면 독재자 일 인이 아니라 그가 이룩해 놓은 모든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타도로 이루어져야 했는데, 그저 일개인이 절간으로 숨어 버리면서 마무리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은 개헌 이후의 총선으로 돌아섰고, 노태우는 막강한 위력으로 선거를 조작해서 결국 양김의 분열을 이끌어 내고, 대통령 자리를 훔쳐갔다. 권력을 훔쳐갔단 말이다.

가카의 시대는 조만간 막을 내린다. 우리의 포커스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를 보고 있는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가카가 망쳐먹은 이 나라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자. 멀쩡한 강들을 파헤쳐서 수도권 주민들이 냄새나는 수돗물을 마셔야 하고, 전기는 부족해서 간판을 일찍 켜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덤비는 세상이 되어버린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인가?

예정보다는 좀 빠르지만 한나라당은 이미 그네공주 체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때 공주님이 나타나서 뭔가 획기적인 제안을 하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모든이의 관심, 모든 언론의 관심은 그네공주에게로 쏠린다. 심지어 등장하기 전부터도 모든 관심이 그네공주에게로 쏟아지는데, 등장하고 나면 어떨까.

다시 봐도 웃긴데, 웃을 수만은 없잖냐.

형광등 백 개의 아우라를 풍기면서 포커스를 가져가 버릴 것이다. 결국 전체 판때기는 공주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며, 공주와 안티공주의 싸움이 되어 버린다. 이래선 될 일도 안 된다.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포커스를 잡고 늘어져야 한다. 아젠다를 이 쪽에서 선점해야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야 할 상대는 지리멸렬하는 한나라당도 아니고, 세상물정 모르고, 해본 게 없어서 아는 것도 없는 공주도 아니란 말이다.

바로 가카다.

냠냠

이 나라를 이렇게까지 망쳐먹은 넘도 가카고, 국가를 자기 수익모델로 생각하는 일당도 가카 일당이며, 온갖 비리와 협잡의 중심이 되는 가족도 가카의 가족이다.

촌으로 내려가 행복하게 살려했던 전임자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죽인 정말 씨바스런 넘도 가카고, 국가기관인 검찰을 자기 팔로 부려먹으며 멀쩡한 사람들을 법정에서 고통받게 만든 넘도 가카고, 세계적으로 국격을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대한민국을 글로벌 호구로 만든것도 가카 정권이다.

지금 당장부터라도 디도스 사건을 “권력에 의한 헌정중단 사태”로 규정하고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야 하며,
내곡동 사건을 권력이 국가의 예산을 들여 사재를 축적하려고 한 권력형 땅투기 부패사건으로 규정을 하고 천만인에게 서명을 받아서라도 검찰에 고발을 해야 하며,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감사를 통해 동지상고 출신들이 어떤 기업을 통해 얼마나 돈을 띵겨서 가카에게 헌납했는지를 조사해야 되고, 비명에 숨져간 천안호 승무원들은 도대체 왜 죽어가야 했는가를 전면 재조사 해야 되는 게,

바로 지금의 당면과제란 말이다.

이렇게 할 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기껏 공주놀이나 할 생각이란 말인가?

그네공주는 그냥 누나전문기자 주기자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박정희로부터 그네공주로 이어지는 유구한 깔 거리들을 아마 박스로 쟁여놨을 거다. 그게 공개되는 순간 공주님께서는 눈사람처럼 녹아내릴 거다.


저들이 원하는대로 짜여진 판에서 놀지 말자.

저들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돌리지 말자. 강아지도 아니고 말야.

이러지 말라고.

전면에 나선 그네공주가 어떤 미끼를 던져 포커스를 옮겨가려고 해도 눈도 마주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다 수십 번 이상씩 써먹은 썩은 수작을 또 펼칠 게 뻔한데 도대체 뭘 기대한단 말인가.

우리가 그렇게 포커스를 옮겨 버리면, 가카는 따스한 햇살에 스러지는 안개처럼 사라진다. 뭐 가카가 사라지는 거야 당연한 얘기지. 때가 되면 누구나 역사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카가 저질러 놓은 일들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면 안된다. 절대 안 된다. 정말 큰일난다.

책임은 지라고 만들어 놓은 거고, 책임을 안 지는 게 반복되면 우린 망한다.

포커스를 유지하고, 아젠다는 우리가 설정한다고 외치며,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야 된다. 제2의 6.29 아니, 당시에는 “속이구”라고 불렀다. 그런건 다시 하면 안된다. 그런 허튼 수작에 또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한넘만 패자. 끝까지 패자. 패고 또 패서 다 토해놓을 때까지 패자.

오래 된 영화지만, [주유소 습격사건] 상기하자. 일단 한놈만 패자.

그렇게 확실하게 패놔야, 다시는 쥐는 살찌고 인간은 굶는 시절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패놔야, 공주고 뭐고 무서워서 꼼짝도 못할 것이다. 마르고 닳도록 한넘만 패자. 그것도 인상쓰면서 패면 힘들고 지겨우니까 해맑게 웃으면서 패자.

원래 웃으면서 패는 게 더 무서운 법이다.

‘그넘’만 패는 거,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나.


밝아오는 새해에는 그렇게 신나게 웃으면서 한넘만 팼으면 좋겠다.

실제로도 그렇게 될 거 같아서 밝아오는 새해가 정말 기다려진다.

새해 복많이들 흡입하시라.

http://www.ddanzi.com/blog/archives/3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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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어준]

토론/사설 2011. 12. 30. 11:13

엄마


글 : 김어준 (인터넷신문 딴지일보 총수)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다른 집에선 계란 프라이를 그렇게 해서 먹는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가 나왔다. 밥상머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계란도 딱 세 개만 프라이되어 나온 것이다. 순간 ‘장난하나?’ 생각했다.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옆 친구에게 한마디 따지려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고 깨닫고 말았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다는 것을.


그때까지도 난 다른 집들도 계란 프라이를 했다 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판씩은 해서 먹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는 손이 그렇게 컸다. 과자는 봉지가 아니라 박스 째로 사왔고, 콜라는 병콜라가 아니라 PET병 박스였으며, 삼계탕을 했다 하면 노란 찜통-그렇다, 냄비가 아니라 찜통이다-에 한꺼번에 닭을 열댓 마리는 삶아 식구들이 먹고, 친구들까지 불러 먹이고, 저녁에 동네 순찰을 도는 방범들까지 불러 먹이곤 했다.


엄마는 또 힘이 장사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온 집안의 가구들이 완전 재배치되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구 배치가 지겹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그 즉시 결정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잦으니 작은 책상이나 액자 따위를 살짝 옮겼나보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할 때나 옮기는 장롱이나 침대 같은 가구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끌려 다녔으니까. 오줌이 마려워 부스스 일어났다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목장갑을 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가구를 혼자 옮기고 있는 ‘잠옷바람의 아줌마가 연출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퍼포먼스’의 기괴함은 목격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새벽 세 시 느닷없이 깨어진 후 팬티만 입은 채 장롱 한 면을 보듬어 안고 한 달 전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로 장롱을 네 번째 원상복귀 시킬 때 겪는 반수면 상태에서의 황당함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재수를 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난생 처음 화장실에 앉아 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화장실 문짝을 아예 뜯어내고 들어온 것도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낼 파워풀한 액션이었다.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하여 화장실로 도피한 아들, 그 아들에게 할 말이 있자 엄마는 문짝을 부순 것이다. 문짝 부수는 아버지는 봤어도 엄마가 그랬다는 말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듣지 못했다.


물리적 힘만이 아니었다. 한쪽 집안이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하는 친척 어른들을 향해 돈 때문에 사람 가슴에 못을 박으면 천벌을 받는다며 가족회의를 박차며 일어나던 엄마, 그렇게 언제나 당차고 씩씩하고 강철 같던 엄마가, 보육원에서 다섯 살짜리 소란이를 데려와 결혼까지 시킬 거라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담당 의사는 깨어나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지만 엄마는 그나마 반신마비에 언어장애자가 됐다.


아들은 이제 삼십 중반을 넘어섰고 마주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할 만큼 철도 들었는데, 정작 엄마는 말을 못한다. 단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문짝을 뜯고 들어와서는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여기서 울고 있냐고,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 엄마, 사실은 바로 그런 엄마 덕분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롭게 사는 오늘의 내가 있음을 문득 문득 깨닫는 나이가 되었는데, 이제 엄마는 말을 못한다.


우리 가족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 엄마의 휠체어 앞에 엎드려 서럽게 울고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사신 거냐' 고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이 글은 월간 <샘터>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하는 '나눔의 글잇기' 연작으로 월간 <샘터 2003년 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글쓴이 김어준 님은 아름다운 재단이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1% 나눔' 캠페인에 참여해 이 글의 원고료 전액을 아름다운재단 공익출판기금에 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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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모든 걸 통제하고 개입할 필요는 없다. 상대성이론은 국가 개입 없이 발견되었고 아
이폰은 국가 지원 없이 잘 만들어졌다.

사법부가 모든 말의 진위 여부를 결정할 필요도 없다. 안기부 엑스(X)파일 검사가 실제로

떡값을 받았는지, <조선일보> 사장이 장자연의 성상납을 받았는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

병 감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등등 어떤 명제들은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확인이 불가

능하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인 ‘신은 존재하는가?’도 그 진위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수천년을 잘 살아왔다.

국가가 국민이 한 말이 허위라고 해서 잡아 가두거나 국가가 독점하는 기타 강제력을 행사

하려면 우선 그 말이 허위임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번 정봉주 전 의원의 유죄 판결은 이 당연한 원리를 송두리째 무시한 판결이다. ‘비비케이

(BBK)가 이명박 소유가 아니다’라는 입증이 없는 상황에서 정봉주 의원에게 ‘네 말이 진실

이라고 입증하지 못했으니 유죄’라고 하는 판결은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적

으로도 유례가 없는 판결이다.

대륙법과 영미법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도 진실인지 입증하지 못한 명제의 책임을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지우는 나라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야훼의 존재

를 입증하지 못한 죄로 모두 감옥에 가야 할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입을 다물라’는

것인데 이런 규범 아래서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상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안기부 엑

스파일 사건에서는 다행히도 우리 대법원이 정확하게 말했다. “안강민·홍석현·이학수가 법

정에 출두해서 ‘우린 떡값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증언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를 입증하

지 못한 책임을 노회찬에게 지울 수 없다”고. 이 대법원 판결의 원리를 완전히 뒤집은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깊게 우리 속살을 도려내야 하는지 보여준 판결이다.

이상훈 대법관은 ‘비비케이가 이명박 소유이다’라는 명제가 허위인지를 판시하지 않고 정봉

주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틀림없이 죄목은 ‘허위사실 공표’인데 허위인지를 판시하기 전

에 정봉주에게 자신이 한 말의 근거가 없다고 유죄를 때렸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형법 307조 1항이 진실인 경우에도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진실이든 허위이든 어차피 유죄이니 기소 죄목에서는 ‘허위’가 위

법성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진위를 판정하기도 전에 말한 사람이 얼마나 근거를 가지고 있

었는지를 따진다. 피고인이 한 말의 진위를 밝힐 생각은 안 하고 ‘피고인 너 그런 말 할 자격

있느냐’를 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권력비리는 캘 수가 없다. 권력비리는 침묵과 어둠의 장막 속에서만 이

루어진다. 이들은 이런 장막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막을 뚫고 간신히 올라오

는 단서들은 당연히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단서들을 제시할 수조

차 없다면 비리의 고발은 불가능하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1619.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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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맥주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2011. 12. 15. 목요일
블루칼라



지난 금요일, OB가 기습적으로 맥주 출고가를 7.48%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어. 평소 주(酒)님을 모시는 맥주 마니아(라고 쓰고 알콜 홀릭이라고 읽는다) 입장에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지.


술은 일반 제품과 달라서 공장에서 출고할 때부터 여기저기 엄청 세금을 매기다보니까 가격을 인상하려면 미리 국세청과 사전 조율을 하기 마련이야. OB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아(싹을 틔운 보리) 가격이 최근 2년 동안 45%나 급등했다면서 맥주 가격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국세청에 징징거렸지. 하지만 국세청이 물가 상승을 이유로 반대하니까 OB는 국세청 몰래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린 거야.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시일야방성대곡을 적는 심정으로 조낸 후다닥 키보드질을 해서 글을 하나 쎄웠는데 씨바, 이것들이 일요일 오후에 속보를 발표해서 가격 인상을 내년으로 미뤘다고 생색을 내지 뭐야? 휴일인데도 국세청에 불려가서 쪼인트 까인 거지. 연말 물가 잡느라 고심중이신 가카의 꼼꼼한 배려에 막 눈물이 날라카더라고.


근데 OB 이놈들은 가격 인상을 포기한 게 아니야. 단지 며칠 미뤘을 뿐이지. 이제 몇 주 지나 새해가 밝으면 OB는 가격 인상을 강행할 태세야. 그러니까 OB 맥주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이 글은 현시점에 꼭 필요한 태클이라 이거지. 내가 지난 여름, 맥주에 대한 글을 딴지일보에 실은 후로 후속타를 쓸까 하다가 참고 있었는데 오늘은 제대로 한 번 작두칼로 썰어주꾸마.

앞서 말했지만 실제로 세계 곡물 시장에서 맥주의 원재료인 맥아 가격은 최근 급등세야. 원재료 가격도 오르고 물류비도 상승하고 다들 죽겠다고 난리치는 이 와중에 맥주 회사라고 가격인상을 하지 말란 법이 있냐고? 다른 놈들은 몰라도 OB, 니들은 그람 안 돼.

자료출처 : 위대하신 조선일보

참고로 최근 몇 년 동안 OB 맥주의 영업이익률은 계속해서 올라가는 추세였고 2009년 영업이익률은 24.1%에 달할 정도야. 국내 상장 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8%라는 걸 감안할 때 OB는 다른 회사들보다 4배 이상의 높은 폭리를 취하고 있단 얘기지. (OB와 함께 국내 맥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하이트의 영업이익률 역시 17%가 넘음)

최근 2년 사이에 맥아 가격이 45%나 급등했다고 하지만 OB 맥주의 영업이익은 2008년 2263억원, 2009년 2514억원, 2010년 3000억원으로 계속 증가해왔어. 더구나 올해엔 매출이 늘어서 업계 1위인 하이트랑 시장점유율이 삐까삐까할 정도로 올라섰지.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또 가격을 올려? 더구나 말오줌에 탄산 섞은 것보다 맛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세계에서 제일 맛없는 맥주란 악명을 떨치는 놈들이?

역시나 출처는 그 잘난 조선일보

OB 맥주가 맛이 없는 건 싸구려 재료를 쓰는데다가 하이 그래비티(High Gravity)라는 공법을 도입해 질보다 양을 불리는 방식으로 맥주를 만들기 때문이야. 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지만 하이 그래비티는 맥주 제조 공정상 억지로 알콜 도수를 높인 뒤 나중에 왕창 물을 섞어서 양을 두 배로 늘리는 꼼수야.

맛있는 맥주로 유명한 외국 회사들 중에 하이 그래비티 공법으로 맥주를 만드는 회사는 없어. 심지어 중국산 칭따오 맥주도 그런 식으로는 안 만든다고.

그런데 OB나 하이트는 모두 하이 그래비티 공법으로 물 탄 맥주를 만들고 있지. 더구나 제대로 된 재료를 쓰지 않으면서 어떤 인공첨가물로 맛을 내고 있는지 밝히지도 않고 있고 말이야.

High Gravity Brewing, 우리말로 '술에 물타기'

그렇게 형편없는 맥주를 만드는 OB가 자그마치 24%가 넘는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건 국내 맥주 시장이 OB, 하이트 두 회사의 독과점 상태기 때문이야.더구나 정부가 알아서 수입 맥주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때려가면서 측면 지원을 해주니 OB와 하이트 입장에선 겁날 게 없지.

출고가 7.48% 인상이면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 가격은 오백 원에서 비싸게는 천 원까지 오르게 될 거야. 벌써부터 술집 주인들 사이에선 얼마나 값을 올려야하는지 고민들이더라고. 씨바, 이제 식당에서 500cc 맥주 한 병에 오천 원이나 주고 먹어야 하는 상황이 왔단 말이야. 정말 월급 빼곤 다 오른다지만 니들 OB가 거기 숟가락 얹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해두자. OB는 98년에 이미 두산에서 해외 자본에 매각해 버렸고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가 지금은 미국계 사모 펀드인 KKR(콜버그 크라비츠 로버츠)로 소유로 넘어갔어. 100% 외국 자본의 회사란 말이지. 그러니까 더 이상 OB는 '국산 맥주'가 아니란 얘기야.


이 KKR이란 회사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로 유명한데 잘 알겠지만 이런 회사들은 절대로 손해볼 짓 안 해.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영업이익률 24%가 넘는 OB 정도의 회사니까 걔들이 꿀꺽 삼킨 거라고.

자, 그럼 이 시건방지고 국내 소비자를 호갱님(호구+고객)으로 보는 OB 맥주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당연히 보이콧이지.

이것들이 원래는 10%까지 출고가를 인상하려고 했는데 그나마 7.48%로 깎아줬다고 생색을 내는 모양인데 이번엔 진짜 소비자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 국산이라고 해서 질 나쁘고 값 비싼 제품을 사주는 게 애국인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야.

기술이나 자본이 없어서가 아니라 독과점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의 제품은 철저하게 소비자들이 쌩까줘야 한다 이거야. 요즘 같이 열받는 세상에 술 마시는 것까지도 스트레스 받게 만드는 놈들한텐 당연히 응징이 들어가야지.

지금 마트에서 판매되는 최고가 수입 맥주의 가격이 대략 500cc에 5,6천 원 정도야. 하지만 바이엔슈테판, 슈나이더 같은 세계 맥주 애호가의 극찬을 받고 있는 맥주들이 독일 현지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대략 우리나라 돈으로 1400~1500원 정도지. 독일 국민 소득이 우리보다 두 배 정도 높으니까 실질적인 체감 물가로 따지면 독일인들은 700원 정도에 최고급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이런 맥주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180% 가까운 정부의 살인적인 세금 때문에 5~6천 원대의 비싼 가격이 되어 버리지. 서민들이 매일 한두 병씩 마시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잖아. 그러니 OB 같이 물 탄 맥주를 만드는 놈들이 신나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거라고.

독일 현지에선 OB 맥주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바이엔슈테판 맥주 한 병 사서 먹어봐. 기왕이면 OB 라거 한 캔 따먹고 나서 맛을 비교해봐. 수입 냉동 대패 삼겹살 먹다가 최고급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 먹는 것보다 더 큰 차이를 느끼게 될 걸. OB 이것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맥주를 만들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라고.

가격만 따지면 최고가 하이엔드 맥주지만 맛은 전 세계 최악인 OB. 이놈들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가격이 올랐어도 그래도 수입 맥주보다는 저렴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처묵처묵해? 아니면 아예 술을 끊어?

그람 안 되지. 나도 네츄럴 본 투 알콜 홀릭인데 OB가 싫다고 술을 끊으란 얘긴 너무 잔인하다는 거 안다고.

지난 여름에 내가 국산 맥주 대용으로 먹을만한 싸고 맛있는 수입 맥주를 딱 집어 소개해줬지? 웨팅어 헤페바이스. 바이엔슈테판이나 파울라너, 듀벨 같은 맥주들에 비하면 두어 수 등급이 떨어지는 맥주지만 그래도 국산 맥주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맥주였지.

당시 500cc 한 캔에 1650원이라는, 국산 맥주보다 저렴한 가격에 훨씬 맛이 있으니까 이 맥주를 추천했던 거였어. 그런데 이것들이 내 글이 기사로 나간 뒤에 매출이 조낸 늘었는지 가격을 올렸더라? 지금은 2290원으로 가격이 올라버렸는데 그래도 조만간 가격이 오를 OB 맥주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긴 해. 하지만 내가 처음 웨팅어를 추천했을 때보다는 가격대 성능비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

그럼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최종병기 그녀(?)를 소개해주꾸마. 이름하여 튀링어(Thuringer) 헤페바이젠(Hefe Weizen)


이게 둘마트나 집더하기 마트에선 안 팔고 껌마트에서만 파는데 500cc 한 캔에 1780원이야. 동네 슈퍼에서 파는 OB 맥주보다 더 싼 가격에 맛은 웨팅어랑 거의 동급이지.

실제로 튀링어는 웨팅어를 만드는 회사의 자매 브랜드야. 원래 동독 회사였는데 통일되면서 웨팅어가 인수한 거지. 내가 특정 회사를 밀어준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씨바 알게 뭐야. 현재 천 원 대에 먹을 수 있는 가격대 성능비 최고의 맥주니까 거침없이 추천해 줄 뿐.

튀링어 프리미엄 비어(Thuringer Premium Bier)는 국산 맥주랑 별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으니까 사진 기억해 뒀다고 꼭 밀맥주인 바이젠을 먹어보도록 해.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바이엔슈테판이나 슈나이더, 듀벨, 파울라너, 필스너 우르켈, 부드바 같은 좋은 맥주들도 한 번씩 먹어보길 권할게.


튀링어나 웨팅어보다 훨씬 더 맛있는 최고급 맥주들이 유럽 현지에선 국산 맥주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된다는 사실에 분개하게 될 테니까.

요즘 마트에선 수입 맥주 할인 행사를 자주 하는데 지금도 집더하기, 둘마트, 껌마트에서 모두 행사중인 걸로 알아. 330ml 병맥주 기준으로 2,000~2,500 정도에 할인 행사들 많이 하고 있으니까 종류별로 하니씩 사먹으면서 OB나 하이트는 가볍게 쌩까주잔 말이야.

맥주는 소주에 말아먹는 폭탄주 용도 뿐이라고 생각하는 횽들에게 난 진짜 맥주의 맛은 그런 게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OB나 하이트가 제대로 된 맥주를 싸게 판매할 때까진 철저하게 보이콧해야 해.

OB가 값을 올렸는데 하이트는 왜 못 올리는 줄 알아? 얼마 전 세무 조사를 받으면서 국세청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야. 겁나는 게 있으니까 함부로 가격을 못 올리는 거지. 그렇다면 진짜 겁을 내야할 대상은 소비자란 걸 알려주자 이거야.


내가 지난 여름에 쓴 맥주 기사에 약간 착오가 있었어. 그 전까진 정부가 OB와 하이트 두 회사를 비호해주기 위해서 새로운 신규 업체가 맥주 시장에 진입하는 걸 법적으로 막고 있는데 조금씩 개선될 기미가 보인다고 썼지? 그런데 실제로 2010년에 신규 업체의 참여가 허가되도록 법규가 개정됐다고 해.

지금 제주도에선 지자체가 후원하는 맥주 회사가 설립돼서 시험 가동 중이야. 그것도 하면발효(라거) 맥주밖에 없던 국산 맥주 시장에서 최초로 상면발효(에일) 맥주를 만들고 있다는 거야.

아직은 시험 생산 단계고 출시 초기엔 물량이 적어서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선 맛보기 힘들겠지만 이런 시도들이 계속돼야 OB나 하이트가 똥꼬 저리게 긴장탈 거 아니겠어? (제주도 맥주는 또 얼마나 가격을 높게 책정할지 걱정이지만 -.-)


참고로 OB를 보이콧하고 수입 맥주를 구입하려고 할 땐 주의할 점이 있어. OB 이것들이 지들 맥주 맛없는 건 제일 잘 아니까 자체적으로 수입하거나 라이센스 생산하는 맥주들이 꽤 많거든.

OB 맥주 안 먹겠다고 하면서 멋모르고 OB가 수입하는 맥주를 사먹으면 오히려 그것들 배를 더 불려주는 셈이니까 그런 짓은 피해야지. 내가 OB가 수입하는 맥주들 이름도 알려줄 테니까 보이콧 리스트에 같이 넣어둬.

일단 OB라고 크게 써있진 않아도 카스카프리는 OB가 생산하는 맥주야.
그 외에도 버드와이저(Budweiser), 호가든(Hoegaaden), 벡스(Beck’s),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레페(Leffe), 레벤브로이(L
?wenbr?u)는 OB가 수입하거나 라이센스 생산하는 맥주들이지.


저것들 중에 내가 먹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건 벡스랑 레페 정도인데 그것들 아녀도 더 맛있는 맥주들 많아. 그러니까 OB가 정신차리가 전까진 저기 적어준 수입 맥주들도 철저히 쌩까주는 거야.

하여간 더 이상 OB와 하이트의 만행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잖겠어? 이 기회에 국내 맥주 회사들 제대로 정신차리게 소비자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 계속 호갱님 취급을 당할 건지, 싸고 맛있는 맥주를 먹을 권리를 찾을 건지, 결정은 횽들이 해.


http://www.ddanzi.com/news/39771.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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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농협해킹과 저환율, 비자금이 있었다?


2011. 12. 15. 목요일
리턴오브사마리탄

잊은 건 아니지?


2011년 3월 4일.

농협에서 해킹으로 의심(?)되는 전대미문의 금융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약 두 달 뒤인 4월 말, 검찰은 '북한의 DDOS 공격에 의한 해킹'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수사결과는, 발표를 한 그 검사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말하자면 진짜 원인은 도저히 밝힐 수가 없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검찰의 '애걸' 정도로 봐주면 될 것이다.


대략 이와 비슷한 심정

그 금융사고는, 농협의 데이터베이스 아주 일부에 기록되어 있던 '금융거래 내역을 삭제'한 것이었는데, 누가 저질렀던 간에 왜 이러한 '작업'이 필요했을까 추정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최원병 농협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교 후배이다. 만약에, 그럴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4대강 공사를 수주한 포항 출신, 또 동지상고 출신 건설업자들이 수주의 대가로 리베이트를 누군가에게 전달했어야 했다면 어느 은행을 이용했을까? 한두푼이야 현찰로 거래한다지만, 수천 억, 수조 원의 돈은 현찰 거래는 어려운 법이다.


그 정도 거래를 믿고 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농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경영도 적당히 불투명하고, 귀찮게 굴 주주나 이사도 없고...

해킹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농협 이재관 전무이사


순전히 소설인데, 만약 그런 식으로 리베이트를 농협으로 송금했다 치자. 물론 가명에 차명 계좌를 이용했겠지만 그 거래내역은 태양의 흑점 대폭발로 지구상의 모든 전자기억장치가 한꺼번에 맛탱이가 가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바로 다음 정권까지는 쌩쌩하게 그 내역이 살아 있을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언제 그 비자금의 주인 발목을 잡게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삭제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농협 전산장애가 일어 났다고 하는 3월 4일 전후로 그 돈들은 농협에서 다른 은행으로 세탁을 거쳐 옮겨졌거나, 혹은 농협내 다른 계좌로 세탁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돈들은 어차피 국내에 두면 꼬리가 밟힌다. 더구나 차후에 외국인을 가장하여 인천공항을 매입하든, 수자원공사 지분을 매수하든 일단 외국으로 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어 없음에 주의 : 편집부 주)

여기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 이후 강만수의 고환율 정책에 따라 환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2010년 이후 약간 안정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1150원 이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였던 원-달러 환율이 2011년 3월 이후 1100원선을 깨고 갑작스럽게 내려 온다. 당시에 우리 환율이 특별히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저환율은 3월부터 시작해서 8월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9월이 지나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원래대로 또다시 환율은 치솟고 만다.

왜 이 시기에 환율이 떨어진 것일까?


해외에서의 자본 유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때만 유독 수출이 잘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프)

(2011 환율 추이 3월부터 8월까지만 저환율임을 볼 수가 있다)


(도표)

(유독 2011년 5~8월 동안만 저환율임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만약 4대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해외로 가지고 나가야만 한다고 가정해 보면, 환율이 떨어지는 것은 무척 유리한 일이다. 똑같은 돈 10조 원을 달러당 1150원으로 계산하면 87억 달러이지만, 1050원으로 계산하면 95억 달러가 넘는다. 10조 원인데, 무려 8억 달러나 차이가 난다.

우리 가카는 꼴랑 몇십억 원의 나랏돈을 빼먹고자 내곡동에서 온갖 추접한 짓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런데 8억 달러라니!!!


그런데, 더 이상한 자료를 하나 찾고야 말았다.

수출입은행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 현황이다. 말이 필요 없다. 일단 표를 한 번 보고 얘기하자.

(도표)

(출처: 수출입은행. 월별 해외투자 현황 단위: 천 달러)



위의 표를 잘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는 월 대략 2~30억 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2011년 5월에는 무려 113억 달러가 해외 투자 명목으로 빠져나갔다. 2월을 제외하면 6,7,8월 모두 평균 이상으로 많은 해외투자가 있었다.

사실, 누가 어떤 명목으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해외투자를 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카의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평범하지 못한 농협의 해킹(?) 사건, 그에 뒤이은 단 몇 달 간의 뜬금 없는 저환율, 게다가 그 시기에 집중된 해외 송금...

9월 이후에 원래의 환율을 되찾은 것 또한 그 시기에 다시 시작된 '인천공항' 매각과 연결된 것인지 누가 안단 말인가? 1050원에 나갔던 돈이 1180원의 환율로 귀환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자본 이득이 생기지 않느냔 말이다.


농담 맞다. 이거 다~ 괴담인 거 아시죠?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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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죽이기 - 우리와 그들의 깔대기 싸움

2011. 12. 14. 수요일
춘심애비


연대의 필수교양 - Stroop과 Heuristic




라면을 많이 끓여본 사람은 안다. 배고파 죽겠는데 물이 졸라 안 끓는 기분. 미동도 없어 보이는 냄비 속 물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미묘한 일렁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지랑이 같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의 결. 그리고는 작은 공기방울들이 냄비 바닥과 벽면에 자리 잡는다.

뒤이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소리를 낸다. 기계음 처럼 들리기도 하는 소음. 그 소리가 잠잠해짐과 동시에 물은 끓고 우리는 라면과 스프를 넣는다.

오세후니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안철수의 등장을 보고 총수는 주장했다. 역대 가장 빠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될 거라고. 총수는 그 때 발견했던 것 같다. 미묘하게 일렁이는 아지랑이 같은 대류를.

그리고 이제, 곽노현 구속수사, 박원순 당선, FTA 날치기, 한겨울의 물대포 등등, 한국의 구석구석에 공기방울들이 툭툭 터져나온다.

이걸 보고 이제는 나꼼수 죽이기가 본격화된다. TV토론회에서 <나꼼수 이대로 좋은가>를 놓고 토론을 한다. 정봉주가 깔대기 한번만 대면 각종 매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학생들이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나꼼수 이대로 좋은지 대화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살벌하다.

이제 들려올, 물 끓기 직전의 시끄러운 소리는, 예전의 정치권의 갈등, 권력과 권력의 갈등 수준이 아닐거다. 개개인이 서로서로 싸운다. 100분토론에서 눈꼴사납게 서로 덤벼들듯, 이제는 술자리에서, 담배피는 자리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살벌한 교전이 오간다.

계층과 계층, 가치관과 가치관 사이의 맞짱.

이건 아마도 전체 국민이 자신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참여하는 거대한 힘 겨루기가 아닐까 싶다.




전국민의 전국민에 대한 힘겨루기




질문 하나 한다. 예전엔 평소 정치에는 조또 관심 한 톨도 없던 사람들 앞에서 최근 들어 정치 얘기를 하면 반응이 어떠한가. 대표적인 예상 답변은 이렇다.

1. 나꼼수 듣고 인간이 바뀌었다. 가카 소식을 나보다 먼저 안다.

2. ㅆㅂ 나꼼수 안듣고 정치에 무관심하면 병신이냐며 졸라 짜증을 낸다.

3. 그대로다. 귀닫고 멍하니 있다.

내 주변은 확실히 1,2번이 압도적이다. 3번은 별로 없다. 그냥 성급하게 일반화를 해보자. 다들 그렇다고. 다들 정치에 관심이 많아지거나, 오히려 탈정치성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다고. 계속해서 멍하니 있는 사람의 비중이 줄고 있다.

노장사상의 무위(無爲)를 서술할 때 위무위(爲無爲)라고 쓴다고 한다. 즉,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무위가 아니라 <무위를 한다>는 소리.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액션인 거다. 그처럼 탈정치도 이제는 정치적 성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탈정치적 정치 성향>이 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트위터라는 매체 덕분에, 수면위로 올라오기 어려웠던 개개인의 사고나 성향 변화가 이제는 가시적인 데이터 및 미디어로써 그 외형을 드러내고 있다. 조중동이 그래서 쫀 거 아니겠나. 대중들 눈 가리고 지들 말만 믿게 만들어왔었는데 그 눈가리개 속으로 자꾸 뭐가 들어와서 보여버리는데. 신뢰도나 정통성 따위는 둘째 치고, 눈가리개 밖에 뭔가 있다는 걸 아는 그 자체가 무서운 거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의 정치적 변화는 연쇄적으로 그 변화를 촉진시킨다. 성향이 변한 사람, 성향을 지키고 싶은 사람, 성향을 계속 안 갖고 싶은 사람, 성향이 바뀌는 게 무서운 사람, 성향이 바뀐 게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의 성향도 바꾸고 싶은 사람 등등. 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늘어가고,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보수언론의 설레발 덕분에 원래 그 방법이 뭔지 몰랐을 사람들 까지 그 방법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만나는> 상황.





글은 대중들의 욕망을 낳고, 대중들의 욕망은 지옥문을 연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가리온이 본다면 그가 말한 그 지옥 자체일게다.


단적인 예로, 평생 내가 맑스 책을 보던, 회사를 때려치던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시던 울 어머니가 최근 딴지스로 활동하는걸 어떻게 아시고는 대뜸 물어보신다.

"우리 아들 좌파여?"

요즘의 시국이 그런거다. 평생 정치는 신경도 안 쓰고 사시던 분이 뭔가 시끌시끌한 요즘 분위기가 뭔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신 거다.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아들래미의 정치적 성향이 신경이 쓰이신 거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면 이제부터는 단순히 어떤 정당과 어떤 정당간의 싸움이라던가 한 정당 내의 어떤 후보와 어떤 후보 간의 싸움이 아니다. 전 국민의 전 국민에 대한 갈등과 힘겨루기다. 당장 나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아니라 울 어머니의 정치적 성향과 힘겨루기를 해야하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나라당이나 현정권과 싸우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편이 아닌 모든 사람들과의 힘겨루기를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훨씬 어렵다. 중단하기도 어렵고 도망가기도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명분을 만들기가 어렵다.

약자가 불합리한 강자와 싸우는건 그 자체로 명분이 된다. 하지만 내가 울 어머니를 설득시키는건 내 정치관이 완벽하지 않고서야, 유교적 관점의 가치관 부터 주변의 시선까지, 고려해야할 게 너무 많다.

내가 검찰과 싸우다가 졸라 잘 싸워서, 검사들이 거품 물고 쓰러지면 난 그냥 이긴 거지만 울 어머니랑 싸우다가 어머니가 거품 물고 쓰러지시면, 난 그냥 천하의 씨발놈 되는 거니까.





스트룹 효과 (Stroop Effect)




위 글씨를 읽어보자. 뭔가 생경한 느낌이 드시나. 평소 안쓰던 손으로 딸칠 때와 유사한 미묘한 이질감.

스트룹 효과는, 인지심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개념인데, 위 글씨처럼 어떤 기호의 외형과 그 기호의 의미가 서로 상충될 때 발생하는 버벅거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빨간색으로 쓴 <빨강>과 빨간색으로 쓴 <파랑>은 인지적인 용이성이 다르다. 외형과 의미가 일치할 수록 인지하기 쉽다. 그리고, 이 효과를 만들어내는, 서로 생경하게 매칭된 자극을 <스트룹 과제>라고 한다.

그러면 조금 더 응용해보자.



사과 참외 오이

사과 참외 오이


어떠신가. 위와 아래 중 굳이 조금이라도 더 읽기 편한걸 고른다면, 위쪽이 미묘하게 편하고, 아래쪽이 미묘하게 낯설다.

저런 식으로 새빨간 사과는, 홍옥보다 부사와 아오리를 주로 먹는 한국에선 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노란색 글씨 보다는 빨간색 글씨가 아주 조금이나마 더 편하다.

실제로 이정도 응용 실험은 많이 있었고, 결과는 예상대로다. 빨간색으로 쓴 사과가, 노란색으로 쓴 사과보다 인지처리 속도가 더 빠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이유를 생각해보면 서구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실물보다는 그림책이나 만화 등을 통한 교육이 많고 마케팅적인 이유로 글씨 색깔을 그 글씨의 의미와 유사하게 맞추는 일이 많기 때문에 더 익숙해서라고 볼 수 있는데 이걸 인지심리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이 어떤 개념을 저장할 때, 각 개념들간의 인접성을 가정할 수 있다. 엄마-아빠는 자주 함께 사용되므로 두 개념을 서로 인접하게 저장한다. 하지만 엄마-배타적경제수역은 동시에 쓸 일이 졸라 없기 때문에 인접하게 저장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인접성을 <거리>개념으로 비교를 하곤 한다. 이러한 개념간 <거리>라는건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보통 <연상작용>이라고 한다.

자, 이 단어의 순서를 외운다고 해보자.

개 - 고양이 - 나비 - 꽃 - 뱀 - 아담 - 이브 - 크리스마스 - 산타 - 코카콜라


몇 분 안에 외울 수 있을거다. 일반적인 현대인이라면. 그런데 이 순서를 한 번 외워보자.

나비 - 크리스마스 - 꽃 - 아담 - 개 - 코카콜라 - 고양이 - 산타 - 뱀 - 이브


씨바 필자가 쓰면서도 졸라 헷갈린다. 이건 그냥 쌩으로 외워야하기 때문에
암기력이 유달리 좋지 않고서야 좀 집중을 해서 맘 먹고 외워야 한다. 서로 개념적으로 인접할 수록, 거리가 가까울 수록 인지하기가 편하다는거다. 이쯤에서 좀 더 응용해보자.


박근혜 노회찬

박근혜 노회찬

이번엔 어떠신가. 정말 미묘하다. 사실상 위 아래간 친숙함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어느 한쪽이 우세하진 않다. 하지만 정말 아주 미세하게 미묘한 뭔가가 있다. 뭐 없다고 우기면 할말 없지만 필자는 정말 졸라 아주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고 본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저렇게 졸라 미묘한 거까지도 차이를 느낀다는 얘기는, 다시 말해 인간이 인지 과정에서 얼마나 귀찮은 걸 싫어하는가, 거리가 서로 먼 개념을 연결시키는걸 얼마나 귀찮아하는가에 대한 증거다.




인지적 구두쇠와 휴리스틱(Heuristic)



일전에 딴지 기사에서 인용된 바 있는 인지적 구두쇠 개념. 위에서 말했듯, 인간은 개념간 거리를 처리하는 데에 졸라 민감하고, 결과에 별 차이가 없다면 인지처리 해야 할 거리를 단축시키려 한다고 풀어볼 수 있다.

그 <거리의 단축>을 위해 인간들이 습관적으로 보이는 사고 및 행동 패턴을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예가, 비행기와 자동차의 안전성 비교. 비행기 공포증이란건 분명 존재한다. 비행기 사고가 무서워서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 반대로 차가 무서워서 차를 못 타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고 한층 병신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비행기 사고로 인한 사망률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묘하게 비행기 사고가 더 무섭다는 인상을 지닌다.

그 이유는, 비행기 사고가 훨씬 더 레어한 사고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더 크게 다뤄진다는 점과, 그 희소성 때문에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것. 기억에 잘 남는다는건 다시 말하면 생각이 잘 난다는 거다. 이러한 사고 패턴을 <가용성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또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이 슈스케 심사위원인데 흑인 한명과 몽고인 한명이 있다. 노래를 시켰는데 둘 다 노래를 씨바 졸라 못한다.

어느쪽이 더 의외일까. 흑인과 몽고인 중에서.

흑인이라 노래를 잘 할 것 같은 느낌. 그게 선입견인 줄 알지만 막상 반대되는 예를 볼 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의외성. <대표성 휴리스틱>의 예이다.

이 휴리스틱이라는 개념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은 매사 하나하나에 미주알고주알 따지는게 졸라 귀찮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덜 따지고 싶어한다는 거다.

필자가 심리학 개념을 거론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한번만 더 하자. 스트룹 효과, 휴리스틱 얘기를 한 의도는 뭘까. 단 하나다. <지극히 정상>이라는 거다.

미주알 고주알 다 안 따지고, 그냥 생각하기 쉬운 대로 생각하는 사고패턴.
그 사고과정에서 파생되는 행동. 이건 다 지극히 졸라 정상이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 절대적으로 많은 인간들이 절대적으로 자주 보이는 양태라는 점.

우리가 싸워야할 상대도, 힘겨루기를 해야 할 상대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이렇게 살고 있는거다. 최대한 덜 생각하고, 덜 따져가면서.




전국민의 팀 구분





김용민 교수의 <보수를 팝니다>에서는 보수를 모태보수, 기회주의보수, 무지몽매보수로 나누고 있다. 필자는 이 구분에 매우 동의하고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위 구분은 김교수가 책에서 밝혔듯이, 보수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각자의 <욕망>을 기준으로 했다는 말이다.

욕망. 졸라 중요한 키워드다.

일단 보수에 대한 구분은 김용민 교수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진보를 한번 나눠보자.

1) 이성진보

맑시즘을 필두로 한 근현대 진보 사상을 이론적으로 접하고 사상적, 이념적, 학술적으로 경도된 경우. 맑시즘을 학문적으로 접한 경우 자주 발생한다. 이들은 경제학적, 사회학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진보 이론의 프레임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내용상으로는 급진적이다. 이론적으로는 자본주의와 맑스의 꼬뮤니즘은 정반합 중 정과 합에 해당하므로 근본적으로 절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이라던가 중도적 해결이 졸라 불편하다.

반면, 이성진보의 상당수는 교육수준이 높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노동자계층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의 욕망은 사회구조의 혁명. 본인의 이성적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2) 감성진보

감성진보는 기본적으로 <분노>에서 시작된다.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 부자에 대한 분노, 상급자에 대한 분노, 구조에 대한 분노 등. 본인의 삶, 혹은 본인 주변인의 삶에서 직접적인 분노를 쌓아온 경우도 있겠고, 용산참사, 두리반 등의 사건에서 간접적으로 분노를 느낀 경우도 있다.

이들은 행동력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감정은 이성보다 훨씬 직접적인 동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행동력에 비해 사상적, 이념적으로는 온건한 경우가 많다.

상징적인 예로,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아동노동착취 기업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시위나 불매운동을 한다 해도 그들에게 <분쇄> 같은 단어는 별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역사적 유물론이나 노동자혁명은 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진보와 갈등하기 쉽다. 이성진보가 보기에 감성진보는 어리석은 선동가들이고, 감성진보가 보기에 이성진보는 뜬구름 잡는 입진보, 비겁자처럼 보인다. 감성진보의 욕망은 <저 새끼들의 패배>, <우리의 승리>다. 말하자면 일종의 복수이다.


3) 생활진보


생활진보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진보이론이 옳다고 느낀 경우이다. 그리 많지 않은 경우인데, 이들은 이념적으로나 행동력 측면에서나 급진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내 삶이, 내 가족들의 삶이 걸려있으니까. 그들의 욕망은 <지금보다 나은 나와 내 가족의 삶>이다.

아주 정밀한 구분은 아니지만, 이렇게 보수는 모태보수/기회주의보수/무지몽매보수로, 진보는 이성진보/감성진보/생활진보로 구성된다. 이제 하나 남았다. 중도. 무당파. 탈정치파. 등등. 중간에 있는 사람들.

이들 중 상당수는 그냥 무지몽매보수에 넣어도 무방하다. 이들은 게으르거나, 기회가 없었거나, 고민중이라는 이유로 정치성향을 정하지 못했거나 거절했다.

이들을 그냥 무지몽매보수에 넣어도 되는 이유는, 실제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적 침묵은 무지몽매보수의 정치적 활동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이들의 욕망은 똑같이 <먹고사니즘>이다.

자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무지몽매보수와 중도/무당파의 상당수, 그리고 생활진보는 욕망이 서로 같거나 유사하다. 나 자신의 더 나은 삶. 먹고사니즘. 내가 더 잘사는 사회. 이들은 일련의 과정에서 학습하거나 경험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편에 있을 뿐.

목적은 같다. 나의 삶.

뭐, 기타 등등으로 아예 계열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있겠다. 사이비종교신봉자, 급진적 힌두교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등. 이런 사람들은 일단 재끼겠다.



그들의 전략




맑스적 계급론을 기반으로 할 때 모태보수와 기회주의보수는 대다수가 브루주아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나머지는 대다수가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즉, 실제 대결구도는 맑스의 대결구도와 다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편이어야 할 인간들이 저쪽편에 가 있다는 소리. 그래서 <무지몽매>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만큼, 모태보수 및 기회주의보수가 달콤하게 유혹을 한거다. 초선에게 유혹을 받은 여포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이 무지몽매보수를 포섭한 건 정치구조적으로 당연하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치구조 상에서는 지지기반이라는게 필요하다. 다른 말로 대가리수를 채워야한다는 것.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 혹은 이득을 위해 자신들을 지지해줄 다수의 시민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사실 신자유주의, 재벌위주의 경제정책, 개방적 무역협상 등은 무지몽매 보수의 대다수를 궁핍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묶어두기 위해서는 분명 졸라 치밀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있다.

그 전략의 상당수는, 일반적인 인간 전반이 지니고 있는 심리학적 특성, 인지적 구두쇠, 휴리스틱을 근간에 둔다. 자, 스트룹 효과를 한번 더 응용해보자.



임을 위한 행진곡

친구야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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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친구야 친구



위쪽의 매칭과 아래쪽의 매칭. 어느쪽이 더 쉽게 인지되시는가. 물론 차이는 진짜 졸라 없다시피 할 정도로 미묘하다.

하지만 질문을 <어느 쪽이 필자가 '쉬운 쪽'으로 가정한 매칭인가>로 바꾼다면 딴지스 전원이 답을 맞출 것이다. 그 얘기가 이미,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는 얘기 되겠다. 아래쪽이 더 쉽게 인지되는 거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근데 생각해보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김일성이랑 뭔 상관이 있냐. 친북/주체사상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씨바 졸라 상관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상관이 조금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최소한 '친구야 친구'라는 노래보다는 훨씬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일성 - 북한 - 공산주의 - 진보 - 운동권 - 임을 위한 행진곡

이라는 연상작용 때문.


이론적으로 북한은 공산주의랑 졸라 상관이 없고, 요즘 세상에 한 운동권 대학생이 북한 넘어가서 '어머니 여기도 조국입니다' 이딴 소리 할 리도 없는데 아직도 우리는 저런 인식을 갖는다.

이건 마치, 사과가 진짜 새빨간 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먹는 사과는 노란색 부분이 졸라 넓은데도 불구하고 빨간 글씨로 쓰여있는 사과라는 글씨가 더 빨리 인지되는 것과 같다. 또는, 싼타가 먹는 콜라는 펩시보다 코카콜라일 확률이 졸라 훨씬 높아보이는 것과 같다.

계속된 노출과 반복주입으로, 서로 꽤나 거리가 멀어야 할 개념들을 가까이 둔다. 마치 소련이 공산주의였던 거처럼 보이도록, (실제로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였다. 맑스의 꼬뮤니즘에는 그도록 강력한 국가가 없다.) 시위를 하는 대학생은 친북인 거처럼 보이도록, 그리고 이런 것들은 내 삶을 위협하는 것처럼.

이러한 시각에서, 무지몽매 보수들이 지니고 있는 대표성 휴리스틱들을 돌이켜보면 <진보적인 무언가>는 죄다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매칭돼있다. 하다 못해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보다는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

즉,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대방(진보)과 관련된 모든 것을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공포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은 수십 년 간 졸라 차곡차곡 쌓여왔기 때문에, 국민들 전반에 집단 무의식과 컴플렉스를 구성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지몽매보수와 생활진보는 겁나 먼 심리적, 정치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기본원칙





이렇게 첨예한 전략 속에서 나꼼수는 무지몽매 보수의 상당수를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건 말하자면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와 유사한 방식이다.

바나나 껍질은 노랗다. 하지만 속살은 희다. 매일유업은 이 점을 토대로 오히려 약간 생경한 그 느낌을 마케팅에 활용했다.하얀 우유 같은데 바나나우유래. 아 맞다. 바나나 속살은 하얗지. 라는 과정을 통해 더 오래 기억에 남게 하고 싶었던 것. 뭐 결론적으로 대성공은 못했다.



흰색 바나나우유는 일종의 스트룹 과제다. 인지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특별함을 만든다. 게다가 흰색과 바나나의 개념간 매칭이 이성적으로 말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감을 준다.

만약에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가,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이기고 전국민의 바나나우유가 됐다면 이후에 나오는 모든 바나나우유는 하얗게 나올거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나면, 그 때는 노란색 바나나우유가 스트룹 과제가 된다.

나꼼수는 그걸 해낸 셈이다.

진보는 위험하다. 진보는 북한을 좋아한다. 진보는 우리의 삶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런 인지회로와 무관하게, 재밌고, 웃기고, 내 삶을 대변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게다가 들어보니 졸라 맞는 소리다. 신뢰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구도가 확장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번 주말에 소개팅에 나간다고 치자. 소개팅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실 맑스주의자에요"

평균적으로, 이건 나가리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저 박원순 찍었어요." 이거 나가린가? 아니다. 아마 대답이 이렇게 올 확률이 좀 더 높다. "꼼수 들으세요?" 오히려 상대방이 "아... 저는 나경원 찍었는데"라거나 "아... 저는 그날 일이 있어서..."라고 한다면 도리어 그쪽이 더 부끄러워할거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나꼼수가 깨놓은 인지회로의 성과만으로도, 진보적 개념의 키워드들이 <위험함>이라는 개념과 졸라 거리가 멀어졌다는 거다.
오히려 다소 긍정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 대상을 넓혀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특정 조건의 스트룹 과제는 기존의 인지적 거리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 특정 조건이란 이렇다. 지금은 생경한 이 자극이, 사실은 나의 인지적 수고를 훨씬 덜어주리라는 확신을 줘야한다.

바나나우유와는 달리, 하얀색 치즈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 왜. 우유는 진짜 하얗거덩. 바나나는 껍질이라도 노랗지, 우유는 진짜 흰데 치즈가 주황빛일 이유가 없다. 처음엔 분명 생경한데, 이게 졸라 맞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거다.

그리고 중요한건, 그게 확실히 <몸에 더 좋을 거>라는 사실이 단박에 이해된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치즈-주황빛이라는 인지적 거리를 유지하면 나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수고스럽더라도 치즈-흰색이라는 새로운 거리관계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

그러면 나꼼수는?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단순한 친북좌파적 식견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나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씹쌔끼들이 나를 졸라 위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다. 그것도 졸라 재밌게.

결국, 상대방의 <욕망>에 더 근접해야 한다는 점이다. 먹고사니즘이 최우선인 그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잘 살고 싶은 그들에게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스탠스가 오히려 그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으로써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물. 끓다.




필자가 대학시절에 항상 주장하던 <김부장론>이라는 개똥철학 이론이 있었다. 자수성가해서 연봉 9천 받는 대기업 김부장은 브루주아냐, 프롤레타리아냐, 라는 질문.

졸라 씨바 프롤레타리아다. 왜. 그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 브루주아는 일을 안하고, 돈으로 돈을 번다. 이게 핵심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의 노동을 통해 돈을 번다. 그걸로 먹고 산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모태보수와 기회주의보수가 될 수 없다. 기회주의보수가 됐다면, 그는 이미 노동자에서 브루주아로 전입했거나, 전입 예정인 사람이다.

즉, 일해서 돈 받고 먹고사는 인간이 보수라면, 그는 원칙적으로 무지몽매 보수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니라고 생각할거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필요하고, 과하지 않은 복지와, 적은 소득세가 필요하다고.

근데 씨바 이 생각은 못하겠지. 세금 덜내고 좀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당신이 착취당하는 삶과 가치는. 주말도 없이, 매일같이 룸싸롱가고, 정치싸움하고, 새벽에도 일터지면 달려나가는 근면함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당신의 인간적 가치는. 그리고 그걸 쪽쪽 빨아먹는 기회주의보수와 모태보수들은.

위에서 말했듯, 무지몽매보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구조 하에서 보수에게 필수적인 자산이다. 그게 없으면, 보수는 무너진다. 쿠데타나 불법을 제외하고는 권력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개개인이 힘을 겨뤄야할 상대는 무지몽매 보수에 해당하는 다수의 대중이다. 그들을 우리편으로 끌어오지 못한다면, 그들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린다면 희망은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갈고 닦아야 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당신의 삶은, 그런 식으로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확신.

나꼼수의 인기 비결이, 가카로 인해 피폐해진 국민들에 대한 위로라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건 위로라기 보다는 사실 확인이다. 그 사실 확인을 위해 나꼼수 4인방은 쉽고, 웃기고, 재밌고, 감동적인 방법론을 차근차근 쌓아나간 거다.

이제는 나꼼수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전국민의 전국민에 대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제 시끄러운 소음이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고 그 힘겨루기가 끝나면 물은 끓는다.

왠놈들이 커피 타먹지 못하게 배고픈 우리가 그 끓는 물을 쟁취해서 라면을 끓여먹을지어다.

끝.
춘심애비(@miiruu)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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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붕괴의 서막

2011. 12. 7. 수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솔직히 이미 늦은 거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하지만 당할 때 당하더라도 알고나 당하자는 뜻에서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불안하게 할 글을 하나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나 또한 심히 불안하고 불쾌하다.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름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와해에 관한 것이다.






우리 국가의 경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FTA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분야를 놓고 지적을 하고 있으며, 연일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이다. 그 수많은 문제점들 중에서도, 의료제도에 관한 문제는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할 중대한 문제이므로 그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제도로 인해 거대한 시장, 거대한 영업수익을 놓치고 있다고 불평하는 세력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시스템은 변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의료 영역을 공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가, 아니면 자본의 이익 차원에서 다뤄야 하는가 하는 철학의 충돌이다. 또한 그 밑에는 거대자본의 끈적거리는 욕망과 일반인들의 생존에 대한 절실한 욕구가 충돌하고 있는 치열한 전쟁터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다.


디테일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매우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성장해 왔다.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이렇다.


- 1977년 7월 직장의료보험제도 탄생

- 1989년 7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완성 (140개의 직장의보, 1개의 공무원, 교직원의보, 227개의 지역의보)

- 1998년 10월 지역의보와 공교의보의 통합

- 2000년 7월 지역+공교의보와 직장의보간의 통합으로 국민건강보험 탄생


말로 하니까 무척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저 통합의 역사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정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자본의 이해와 해당 행정부서의 보이지 않는 반발이 숨어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의료시스템은 나름 매우 훌륭하다는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문제 역시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의료보험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부담이 그리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핵심일 것이다. 소위 유리지갑이라 불리우는 직장인들이 소득이 잘 노출되지 않는 자영업자들에 비해 과도한 보험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또한, 엄청난 자산을 보유한 재력가들도 조그만 직장에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으면 보험 부담을 아주 낮출 수가 있기 때문에 악용되기도 한다.

또 일반인들의 입장 말고, 병원측의 입장에서는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어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발달된 첨단 의료기법을 도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료시스템의 우산 아래에서 우리 국민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진료를 매우 저렴하게 받고 있으며, 어지간한 병에 걸려도 치료비에 대한 걱정 별로 없이 진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병, 그러니까 암 같은 병에 걸렸을 때 아직은 보호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나마 지속되는 노력으로 인해 암환자들에 대한 보상효과의 수준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작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경우를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시스템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고마웠던 수준이라고 기억된다.


그러나...

이렇게 국민들이 피부에 와 닿는 보호를 받으면서도 이런 제도들이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런 공적인 시스템만 없어진다면 엄청난 이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자본의 욕구는 이 시스템을 붕괴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돈 벌어야 되니까 이런 시스템은 치워 버립시다' 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음험한 요구일 수록 스스로를 꽤나 화려하고 복잡한 명분으로 치장하기 마련이다.

그 중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지난 2009년에 있었다.

사실상 2000년도에 있었던 국민건강보험의 통합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주장의 당사자는 바로 이 땅의 의료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사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우두머리인 경만호라는 사람이었다.

경만호

주장의 근거는 지역의보와 직장의보간 재정의 불균형이다. 서로 부담율이 다른 이 두 개의 의료보험을 통합하게 되면, 부담률이 높아 상대적으로 재정이 안정된 직장의보에 가입된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매우 그럴싸한 주장이지만, 실제로 이 주장의 속내에 담겨있는 "꼼수"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의료보험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궁극적으로는 전국민 통합의보라는 강건한 시스템을 와해시키고, 병원 영업을 민영화해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두 보험 간의 불균형이 걱정이 된다면, 두 집단 간의 보험료 부담의 비율을 조절해내면 된다. 나아가서 직장인과 자영업자간의 소득규모를 투명하게 산정하는 방안을 찾아내면 된다. 이 문제는 투명한 조세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 현실적인 방안을 제쳐놓고 이미 통합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국민건강보험을 다시 쪼개자고 주장을 한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말과 실질적인 속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료사업은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그 거대한 비즈니스의 장을 오롯이 국내의 병원자본이나 의사들이 다루려고 한다고 생각하면 지나치게 순진한 판단이 된다.

국내의 경제 관료들이 오매불망 사모하고 있는 미국의 거대한 병원자본들은 이미 미국이라는 국가의 공적 의료시스템을 와해시키고 미국의 국민들의 엄청난 고통을 밑천삼아 거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거기에 또 끼어드는 의료관련 민영 보험들의 엄청난 수익도 있다.

이런 자본들이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우수하게 다듬어진 대한민국의 공적 의료보험 시스템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그 결과 등장하는 사안이 바로 영리병원제도이다.

국내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단체로 규정되어 있다. 환자를 치료하고 그 비용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게 된다.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제도 역시, 첨단 의료기술을 도입해서 한층 더 수준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미명하게 끈질기게 파헤쳐지고 있다.

이미 제주와 송도 등에 영리병원 설립이 진행중이고, 9개 지역에 영리병원이 추가로 만들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의 와해와 영리병원의 등장이 어우러지면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거대한 병원자본과 다국적 보험사들의 전쟁터가 만들어지려고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 흐름을 외곽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미 FTA가 된다는 것이다.

씨바... 졸라 살떨린다.





이 모든 흐름이 집약된 사건의 흐름, 그 시나리오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사건이 바로 내일 결판이 난다. 앞서 얘기한 2009년에 제기된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의 위헌소송. 그 위헌소송에 대한 헌재의 판결이 내일 나온다고 한다.

설마 헌재가 알아서 잘 판단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시는가? 낙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가카의 치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저런 위헌소송에 가장 적극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 집단은 어디일까?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그 자체이다. 최근까지 이 건강보험공단의 장은 매우 유명한 분이었다. 묵주 정형근 선생.

정형근. 의외지만 이 사람, 이사장 잘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은 이 정형근 이사장은 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 역할을 뜻밖에도 매우 성실하게 수행했다. 최근에 그만둘 때까지도, 건강보험공단을 통한 공공의료의 보장성 강화에 관한 긍정적인 주장들을 내놓았을 정도이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잘한 일은 잘했다고 해주는 게 맞다.

그러나 정형근의 뒤를 이어 가카가 임명한 이사장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행태 이전에 그 이사장 본인의 정체성 자체가 황당하다.

김종대.

두둥

1989년이면 노태우 집권 당시이다. 그 때 이미 지역의보와 직장의보의 통합에 대한 안건이 국회에 제출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김종대 씨가 등장한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종대는 이 의보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직장의보에 가입된 직장인들의 보험료 부담액이 2-3배 인상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담은 문건을 배포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직장인들이 분노하게 되고 이 여론의 힘을 등에 업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양대 의보의 통합을 담은 통합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만다. 실질적으로 1차 통합시도를 저지시킨 장본인이 바로 김종대 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다.

그 뿐인가?

김대중 정부시절에 들어와서는 1999년 당시 보건복지부 정책기획실장 신분으로 또 추진되던 통합에 반대하다가 짤리고 만다. 진짜다. 말 그대로 공무원 신분에서 면직되고 만다. 이 사람에게는 통합 국민건강보험의 설립이 그만큼, 자신의 직을 걸고 반대해야 하는 그런 것이었나 보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 노조에서는 2009년 경만호 의사협회장의 위헌소송의 배후에 이 김종대 씨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김종대는 국민건강보험 제도 자체를 반대하며, 그 통합 보험이 와해 되어야 의료산업이 발전한다는, 즉 병원자본 및 보험자본의 이익이 보장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최첨단에 서 있는 장본인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사람이 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된다.

이게 또 가카 치세의 특질인데...

통일을 반대하는 통일부 장관,
인권을 무시하는 인권위원회장,
방송을 죽이려 하는 방송통신위원장...

뭐 한도 끝도 없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람이 바로 "건강보험제도를 붕괴시키려는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종대" 라는 얘기이다.

대놓고 트로이 목마

아니나 다를까 취임하자 마자 자신이 기존에 주장해 왔던 건강보험 통합의 문제점에 대한 주장을 남발하고, 헌재 소송에서 건강보험은 스스로를 변론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뭐 더 말하기도 지친다.

자신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건강보험관리공단을 산산조각을 내 버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계신다.

이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내일 헌재에서 위헌 소송의 판결이 나온다.

위헌 소송에서 위헌판결이 난다면?

건강보험의 통합의 근거가 되는 관련법들이 무효화 된다. 즉, 최악의 상황에는 건강보험공단 자체가 다시 분리되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법리적 상황이 연출된다는 뜻이다. (물론 김종대 이사장은 "건강보험의 분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신다. 당연한거지... 우리가 다 오해한 거지...)

그 와중에, 한미 FTA는 발효에 필요한 수순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이 살아 있어도, 모든 병원이 당연히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는 당연지정제 자체가 FTA 기준으로 문제시 되어 철폐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씨바 외국은 개뿔... 다 미국이지)의 병원과 보험사들은 이 땅에 들어와 어떻게 해서든 영리 병원과 민영보험을 상품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에서는 배를 때리고, 뒤에서는 등을 치고 있다. 어느 한쪽을 막으려고 하면, 발뺌을 한다. 이것은 모두가 다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시도이며, 의료산업의 발전을 위한 일이 된다. 이젠 이런 오해 드립과 발뺌은 지긋지긋하다.

ISD이건 래칫 조항이건 FTA의 모든 조항은 다 이용될 수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정말로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다.

그 첫걸음이 내일 내려질 헌재의 판결이다. 모두가 주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위헌 소송이 내려진다면... 말 그대로 돈 없으면 아무리 아파도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보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세상, 진짜 올 지도 모름





씨바.. 우리 진짜 조때는 거야? 그런 거야?


조때기 싫으면 당장 뛰어나가서 물대포와 싸워야 한다. 거기 나가면 이런 깃발도 있다. 이 사랑스러운 깃발 하에 딴지스 모두가 뭉칠 것을 과감하게 제안해 본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아이들이 아빠엄마는 그 때 뭐했냐고 물을 것이다. 피 터지게 앞장서서 싸웠다고 말은 못할지언정, 멍청하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대답할 수는 없쟎냐 말이다. 졸라.

http://www.ddanzi.com/news/394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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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본 FTA : 니네가 우짤긴데?


2011. 11. 29. 화요일
majestyhasplans

(이 글은 오바마나 다른 실존인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2011년 11월 29일 워싱턴 D. C.

미한 FTA, 그대로 발효되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한국 쪽에서 문제가 꼬이고 있다. 어쩐지 우리 미국 쪽에 손해 볼 게 너무 없는 장사이긴 했지. 한국 쪽 외교관, 통상전문 협상가, 정부 관료라는 놈들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잘 움직여줬는데 말이야. 그냥 잘 지나가줘야 내 재선에 도움이 되는데…

FTA가 없어도 사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무지하게 개방되어 있는 나라였어. 적어도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외국 자본이 투자하기에 좋은 나라였지. 은행, 대부업체부터 쓰레기 처리까지 미국 돈이 안 들어간 분야가 별로 없는 나라였지. 요즘 같이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는 시대에 한국이 쌀, 쇠고기 등을 지키겠다는 것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했고 자동차 등은 매연 규제 등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었어. 미국 쪽에서도 한국 기업을 특별히 관세 같은 걸로 별로 차별하거나 하지는 않았지.


이미 없앨 장벽이 거의 없었는데 FTA는 왜 하냐고?




미국과 나의 이득: 정치적 경제적 승리 그리고 과대 포장하기 딱 좋은 전리품.

일단 지금이 내 재선에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거든. 내가 모던 십탱리, 시내은행 이런 애들 손 좀 봐 주고 아프간에서도 철수하는 바람에 재선 가능성이 엄청 낮아졌거든. 이 훌륭한 인품에 말발도 이렇게나 좋은데 말이야. 투자은행들이 몇십 년 동안 사기쳐서 전세계 경제에 구멍이 숭숭 난 게 왜 내 재임기간 중에 또 터지냐고. 아직 할 일도 많은데. 하여튼 이 때 미한 FTA라는 걸 발효시키면 나는 멍청이 공화당 부시가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무역협정을 종료하는 훌륭한 경제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이 되는 거야. 게다가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약한 미국의 중부 시골 같은 곳의 농부, 목장주, 거대 농축산물 기업 등의 표심을 잡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나까무라처럼 정신 나간 놈도 아니고 내 나라 미국에 이득이 없다면 하지 않아. 정보통신이나 의약품 같은 미국의 미래산업 관련업체들은 한국의 경쟁 기업들을 특허와 자본력으로 밀어 버릴 거야. 미국산 투기 자본들은 ISD로 한국의 사법, 입법 행정 전 분야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몇몇 분야만 예를 들어 줄까?

생물학적 약제(generic drugs)라고 싸게 특허료 안 주고 생산되는 약이 한국에는 무지 많아. 약효도 좋고 값도 싸고. 근데 FTA가 발효된 후에는 우리 쪽 제약회사들이 특허 등으로 공격하고 지네릭 생산 판매를 박살낼 수 있어. 약, 의료 서비스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하지.

그리고 난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 독창적인 온라인 게임 산업, 이런 거 다 부러웠거든. 미국 경제 맛 가고 내가 경기 부양을 위해 공적 자금으로 땅 파고 있는 줄 알아? 초고속 인터넷망 깔고 있다고. 이제 지적 재산권으로 한국 기업과 인터넷 사이트들을 공격할 수 있고, 내국인 대우에 최혜국 대우로 밀고 들어갈 수 있어. 문제는 아쉽게도 나까무라가 땅 파느라 정보통신 지원을 줄여서 이제 한국에 괜찮은 정보통신 기업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거지.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나 근무 환경이 중요한 산업을 왜 재벌이나 정부가 망가뜨리는 건데? 온전한 상태에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제발 그대로 놔두면 좋겠어.

농산물도 그래. 우리 미국에 과일이나 야채, 고기 뭐 이런 게 좀 많이 남아 돌아? FTA 발효되면 처음엔 한국에 쫙 싸게 뿌리는 거야. 그러다 한국 농민 다 망하면 그 때 미국 대기업형 농기업들이 값을 올리겠지. 뭐 나야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난 일단 재선이 되야 해.




한국의 이득: 누가 얼마나 이득을 보는 걸까?

나까무라나 재벌이란 놈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한국 언론들은 FTA로 자동차 부품과 섬유 쪽이 가장 이득을 볼 거라고 했다더군. 자동차 부품 분야는 말이 돼. 재벌의 관계회사들하고 나까무라도 직접 부품 공장을 가지고 있다니까.

근데 섬유? 아니 누가 한국 메리야스 더 사 입는대? 요즘은 중국, 베트남산도 비싸다고 중저가 제품은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세상인데. 혹시 한국에서 비정규직을 더 많이 써서 원가를 한 30~40년 전으로 돌린다면 모를까. 그래도 중가 제품 정도는 좀 더 팔아보겠다고 발끈해 공주하고 그 졸개들이 판치는 동네, 저 갱상 뭐라는데 거기 출신 재벌들이 좋아라 하는 것 같더군. 하지만 걔네 신소재 섬유 뭐 이런 거는 어차피 못 들어와. 신소재 섬유는 군산복합체랑 관련이 있어서 바로 FBI 뜬다. 또 우린 지적 재산권이나 영업 비밀 이런 거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한국이 신소재 섬유 이런 거 개발만 해 봐, 우린 걔네들 소송해서 박살내 버린다. 단단히 각오해야 될 꺼야.



FTA는 대세가 결코 아니다. 게다가 한미FTA 수준의 FTA는 존재하지 않는다.

FTA라는 문서 자체가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미국 자본의 씽크탱크에서 연구, 발명된 거거든. 그래서 미국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해. 그래서 사실은 미국하고 FTA를 맺은 나라가 별로 없어. 한국에서는 FTA가 전세계적인 대세고 어쩌고 한다는데 전세계 200여개국 나라 중에서 미국이랑 FTA를 맺은 나라는 20개국도 안 돼. 세계 경제가 미국식 뻥튀기 금융 시스템 때문에 이렇게 맛이 간 마당에 어느 나라가 미국식으로 경제를 바꾸고 싶어하겠어?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는 잘 맺으려고 하지 않지. NAFTA를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 그 이후 호주, 바레인, CAFTA-DR를 맺은 중미 6개국과 도미니카 공화국, 칠레, 이스라엘, 요르단, 모로코, 오만, 파나마, 페루, 싱가폴. 이게 다야. 게다가 이 중에 호주, 이스라엘, 바레인, 요르단과의 FTA에는 ISD가 아예 없고, 국민 건강에 집결되는 제약과 의료기구 분야를 FTA를 통해 활짝 연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이게 미국에 불리한 점은 없냐고? 정말 없어. 완벽해. 왜냐고?



미국 주 정부의 힘은 FTA 따위보다는 훨씬 강하다.

첫째, 미국 연방 헌법

미국 쪽에서는 FTA 이런 거 백날 해 봤자 다 미국 국내법보다 아래야. 기본적으로 미국이 그렇게 생겨먹은 나라거든. 내가 연방 정부 대통령이지만 주정부의 정책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어. 미국 헌법에 아예 그렇게 씌여 있어.[1] 각 주가 연방 정부에 위임하지 않은 권한은 그냥 주들이 가지고 있는 거야. 주 정부들이 연방 정부와 나한테 국제무역과 관련한 협상권한은 줬지. 그렇다고 전권을 위임한 거 절대 아니야.


둘째, FTA 부속서류

FTA 자체에 부속서류(Annexes I and II)[2]라고 있거든. 이건 한 마디로 예외 규정들이야. 내국인 대우[3], 최혜국 대우[4], 시장접근성[5], 최고경영진 및 이사회 구성[6] 등 FTA의 투자와 서비스 분야에 핵심적인 조항들에 대한 예외 규정들. 양쪽 시장이고 뭐고 다 까놓는 대신에 특별히 보호하는 분야들에 대한 리스트라고 할 수 있지.

우리 미국은 에너지, 광업, 라디오 방송 등등을 연방 정부가 조금 더 보호할 수 있는 분야로 부속서류에 열거하긴 했지만, 진짜 한 방은 따로 있지. 외국인이나 기업을 차별하는 미국 각 주[7]의 기존법령과 조치들은 건드리지 못해.[8] 리스트고 뭐고 다 필요없어. 주 정부가 외국산을 차별하고 있어도, 심지어 한국산만 꼭 찝어서 차별하고 있어도 괜찮아. 아무 것도 바꿀 필요가 없어. 어쩔 거야. 주정부 애들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미국은 그렇게 생겨먹은 나란데.

우리처럼 배째라로 강하게 나오는 애들이 또 없는 게 아냐. 호주도 바로 맞짱을 떴지. 지네도 지방정부에 기존에 외국인 차별해 왔으면 예외라는 거야. 뭐 어쩌겠어. 우리도 똑같이 요구하는데. 내가 호주 쪽이라도 당연히 그랬겠지.

근데 한국 애들은 그런 요구도 없더라. 미국제국이나 똥배짱 호주처럼 여러 개의 주로 나누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도 나름 지방자치네 뭐네 해서 나름 지방의 정책이 있고 그러던데. 선거도 자주 하고. 애니웨이, 뭐 아무 생각 없더구만.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자기 나라의 이익이나 미래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건지. 아니면 혹시 미한FTA 협약문을 아직 안 읽어봤나? 아님 읽어도 모르나?


셋째, 이행법안

한국은 FTA 해 보겠다고 이행법안 14개를 날치기로 통과시겠다고 하더군.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해. 그런데 미국은 이행법안이 하나고 이렇게 떡하니 쓰여 있어. FTA의 어떤 조항이나 그 적용이 미국법하고 충돌되면 그 FTA 조항이나 적용은 효력이 없다고.[9] 나아가 어떤 주법이나 그 적용도 미국 법원의 판결이 아니고는 무효화 될 수 없다고. 불만 있으면 미국 법원으로 오라 이거지. 누구 와 볼래? 어떻게 되나?




한국 투자자는 ISD로도 미국을 건드리지 못한다.

웃기는 건 ISD가 좋다는 한국 사람들이야. 교육열이 그렇게 높은 한국같은 나라에서. 나까무라는 그게 싸워서 지켜야 될 가치라나? 푸핫! 지가 왜 미국에서도 악명 높은 악질 기업들의 무기를 지킨대? 외국 투자자가 자국 법령 조지자고 직접 덤비게 해 주는 게 가치라고? 거기서 갑자기 가치가 왜 나와? 가치가 아니고 돈의 문제지. ISD는 사실 NAFTA 이후부터 꾸준히 미국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어 왔어. 나도 전에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있지만, 공공의 이익이 관련된 문제에 ISD가 사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미국 사람들도 외국 투자자들이 미국 시민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다고. 근데 나까무라와 그 졸개들은 좋다데. 호주, 이스라엘, 바레인, 요르단도 ISD는 자국 FTA에서 다 뺐는데. 웃기는 버내너야.

보통 나라와 나라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어떻게든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위원회도 만들고 정부 사이에서 협의도 하고. 미한 FTA의 22장도 결국 그런 일반적인 절차야. 만약 그런 절차들이 안 통하는 경우에는 국제재판소 같은 곳에 가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고, 보는 눈도 워낙 많아서 거기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지. 근데 ISD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행정 조치 모든 것을 직접 비밀리에 진행되는 중재를 통해 공격할 수 있어. 한국 정부는 사법권, 입법권, 행정권을 내놓겠다는 거지.

거꾸로 한국 투자자도 미국법이나 행정조치들을 공격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앞에서 내가 말했지. 미국 주법이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FTA이행법안에 따라서도 반드시 미국 법원에서만 결정될 수 있는 문제라고. 그리고 연방 정부가 서명한 FTA는 상충하는 주법을 건드리지 못해. 헌법상으로 그렇고 외국 투자자 차별 금지 조항의 예외이기도 하지. 한 마디로 미국은 ISD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 그리고 중재는 워싱턴DC에 본부가 있는 월드뱅크나 뉴욕에 본부가 있는 유엔의 산하 기관에서 영어로 하게 되지. 한국 정부도 미국 로펌을 고용해야 될 걸. 세금으로.

다시 말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ISD에 반대했어. 난 그래도 공익 변호사 출신인데 이건 너무 더럽잖아. 기업에게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정책을 붕괴시킬 무기를 쥐어 주다니. 하지만 어쩌겠어. 하자는데. 그리고 난 미국 국민을 지켜야 하고, 미국은 손해볼 게 없는 유리한 게임인데.




한국 정부는 어떤 산업을 보호하려 했나?

나는 한국이 적어도 부속서류를 통해서 호주처럼 정보통신 산업이라든지 모로코처럼 제약산업 및 의학관련 연구소 등등 미래의 전략산업 등을 보호하고 싶어할 줄 알았어. 그게 논리적이잖아? 그런데 정보통신 강국인 한국이 정보통신 분야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더군. 또 제약분야도 의약품 소매를 제외하고는 별 얘기가 없고. 특이한 것은 건설, 건설기계, 각종 유통업, 대기업이 운영하는 통신망, 부동산 개발업 등은 보호한다는 것이지. 나까무라가 건설, 유통 사업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부속서류에는 방송 통신 분야도 포함되어 있어. 국민들의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분야이고 다른 여러 나라들도 요구하는 분야이지. 하지만, 한국의 예외조항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어. 방송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대한민국 정부를 빼고는 공중파 TV방송국 전체 지분의 30%를 초과해서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어. 그런데 MBC라는 방송국에는 이 투명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적용이 안 되더라고. 미국사람인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한국 다음 대권주자라는 발끈해 공주가 직접이든 간접이든 지배하는 장학회가 MBC의 30%를 가지고 있다지. 한국 정부를 그 발끈해 공주가 접수해서 정부쪽[10]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넘겨도 투명성에는 영향이 없다는 얘긴데. 나까무라가 인천공항에 대놓고 침 흘리고 있듯이, 발끈해 공주도 나중에는 MBC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걸까? 발끈해 공주가 방송국을 좀 더 장악하고 위기감도 조성하고 그러면 우리나라 무기도 더 많이 사 주고 미군기지 분담금도 더 내놓겠지?




아직은 불안해: FTA는 발효되지 않는다 / 뒤집어진다?!

날치기 비준 이후 한국 국민들의 반응을 보니 다음 5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 같아.


1. 시위 좀 하다가 뒷심 부족 : 발효, 그리고 식민지화

지금은 분노한 한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지만 곧 나까무라 패거리들의 꼼수에 넘어가 맥이 빠지는 거지. 언론 장악, 괴담 생산, 자해 공갈, 때 아닌 북풍, 각종 가십 등. 으, 나까무라는 너무 저열해. 거기서 이득을 보는 내가 다 창피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처럼 될 것을 기대하나 본데, 잘해봤자 푸에르토 리코고 아니면 멕시코나 필리핀 꼴 나는 거지. 그리고 지금 미국이 좋아 보이니? (어, 이런 얘기하면 한국에선 빨갱이로 몰린다던데. 참 내! 지금이 1950년대야?)


2. 발효 후 새 정부의 해지 통보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까무라는 결국 발효를 해 버리지. 그러면 총선과 대선에서는 분노한 99%가 승리할 거야. 그 다음에는 이론적으로 그리고 FTA 문구 상[11]으로 새 한국 정부가 해지 통보를 미국한테 날리는 게 가능해. 그런데 이미 발효한 국제조약을 정말로 해지한다고? 그것도 전쟁과 오랜 군사 경제 동맹으로 엮인 두 나라 사이에서,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는 어버이들이 널려 있는 나라가 엄청 큰 수출시장이자 무기와 군대 공급국인 미국을 상대로 해지 통보를 날린다? 글쎄 그 많은 보수 여론들의 집중 포화 속에서 이런 발상이 현실화 될 수 있을까? I don’t think so. 그리고 해지 이전에 발효된 FTA에 따라 이미 인천공항이나 다른 여러 공공기업 등에 이미 미국 투자자들(혹은 미국을 통한 나까무라와 그 친구들)이 투자를 했다면? 해지 전 발생한 위반은 ISD로 다스려 줘야겠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격은 또 어떻고. 누가 이제 한국이랑 조약을 맺고 싶겠어?


3. 발효 후 한국 국내법이 우선하는 특별법의 제정

마찬가지로 물갈이가 된 국회에서 FTA를 비롯한 외국과 맺은 국제 조약과 한국 국내법 사이의 충돌이 있는 경우는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특별법을 통과시켜. 근데 이건 법적으로 좀 문제가 있어. 차별 안 하겠다고 계약서 사인하고 그 다음에 내부적으로 모의하여 발효된 계약을 엎겠다는 거잖아. 그 자체가 FTA를 정면으로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거지. 쉽지 않을 거야.


4. 발효 후 절차상의 문제로 비준 무효화

날치기 처리 이후 발효까지 시간이 너무 짧아. 언론의 자유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공권력은 남용되고. 그래서 결국 민심은 총선과 대선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헌법 재판소에 계류 중인 FTA 비준 무효 청구 건도 결국 정권 교체 이후에 판결이 나. 한국은 미국에게 FTA를 해지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비준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통보하고,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즉각 (재)비준을 요구하겠지. 한국에서는 아마 주요 쟁점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고 우리는 재협상을 거부하려 할 테고. 하지만 한국 국내법상 절차가 잘못되었다는데 더 이상 할 말은 없지. 개인적으로도 이해는 가. 적법한 절차. 이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이니까. 이렇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도 상당히 난감해. 잘못하면 내정 간섭으로 한국 국민의 애국심을 건드려 반미감정에 불을 붙이게 될 테니까.


5. 발효 전에 죽기살기로 막기: 나까무라 권력의 침몰

한국 국민들은 역시 대단해. 그 추운 날 물대포를 쥐몰이 하면서 쏴 대는데, 오 마이 갓! 그래도 끝까지 싸우더만. 자손 대대로 발목이 잡히는 국가간 조약을 기자도 막고 4분 안에 날치기로 통과시키다니. 사실 그 따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적법한 절차가 될 수 없어. 나까무라의 오판이었다고 봐. 한국 국민의 필사적인 저항과 헌법 소원으로 날치기 통과가 무효로 선언된다면 FTA 비준도 무효가 된다고. 절차가 잘못되었다는데, 국민들이 싫다고 발효 안 시키고 엎어버린다는데, 법대 교수 출신에 시민 운동가였던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인정. 에콰도르 경우에도 국민들이 안 하겠다는 데는 어쩔 수 없었거든.



과연 한국 국민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1] U.S. Const. Amend. X.

[2] 부속서류 중에 Annex I은 기존의 법령이나 조치들, Annex II는 기존의 법령이나 조치 혹은 새로운 법령이나 조치가 있을 분야를 포함한다.

[3]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FTA”), Art. 11.3 and Art. 12.2.

[4] FTA, Art. 11.4 and Art. 12.3.

[5] FTA, Art. 12.4.

[6] FTA, Art. 11.9.

[7] 미국의 주는 아니지만 푸에르토 리코의 법령과 조치도 FTA가 부과하는 내국인 대우, 최혜국 대우 등의 의무에서 면제된다.

[8] FTA, Annex I - United States - 12. 같은 부속서류에 주정부들의 기존 차별정책들이 맛보기로 열거되어 있지만 말 그대로 맛보기용 열거(illustrative list) 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9] Act to Implement the United States-Korea Free Trade Agreement, Sec. 102(a)(1).

[10] 방송문화예술진흥원

[11] FTA, Art. 24.5(2).

http://www.ddanzi.com/news/39011.html

Posted by skid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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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


2011. 11. 25. 금요일
딴지정치부장 물뚝심송






열받지?


맞아. 나도 졸라 열받았어. 열받아 죽겠더라고.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하여간 무조건 울트라 킹왕짱 열받아서 며칠동안 죽어라 술만 들이부었어.

원래 화 났을 때에는 술 먹으면 안 되는 건데. 꼭 사고치게 되는데.. 하면서도 막 심지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 눈물이 나더라니까. 애들 같이...


근데 언제까지 화만 내고 있을 수 없잖아. 그래서 슬슬 맘을 잡고 앉아서 먼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부터 따져보기 시작했어. 나라야 망하건 말건 일단 나부터라도 좀 안정을 찾아야 될 거 아녀? 맞아. 난 나라보다 내가 더 중요한 넘이야. 안 그런 사람도 있다고? 그거 다 구라야.

그렇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하고 곰곰히 따져봤더니 답이 나오더라.

먼저 내가 보기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진 넘들이 국회에 훨씬 더 많고, 그 자식들이 지 멋대로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결정을 막 날치기 해가며 내려 버리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이 제일 화가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손 뒤로 묶이고 실컷 두들겨 맞고 지갑 털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정도로 무력감이 느껴졌었어.

그런데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한 거지? 나도 유권자로 꼬박꼬박 세금 내고 비싼 투표권 얻어서 꼬박꼬박 투표하고 그랬잖아. 그런데 왜 저기엔 제정신 가진 넘이 저렇게 없는 거지?

우린 분명히 제정신인데...


정답은 단순해.

FTA의 문제점에 대해서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소수"라서 그런거야. 좀더 정확히 말해볼까? 우리가 마치 무슨 잠수함 속의 토끼라도 된 거처럼, 다른 사람들은 아직 인식도 못하는 위험을 먼저 인식하고 우리가 먼저 죽어감으로써 위험을 경고하는, 그런 구시대적인 비장미가 있긴 하지만 사실은 졸라 구차하고 트릿한 상황이라는 거지. 난 잠수함 선원이고 싶지 토끼 따위는 하기 싫다고.


이거 반대로 말하자면, 다들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데 몇몇 또라이만 중뿔나게 그거 하면 다 죽는다고 설레발 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니까. 이건 진짜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야든동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야 된다, 그게 비록 구찮고 짜증나고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이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는 거야. 결론은 지난번 FTA 토탈 정리에 이어서 다시 FTA를 원점에서 생각해보자는 거야.


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


FTA도 마찬가지야. 어느 날 갑자기 몇놈이 문득 생각해내서 이거 완전 새삥이니까 한 번 해보지 않으련? 이러고 들이댄 거는 아니라는 얘기지. 그 기원은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고스란히 원형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은 거란 말이지.

자본주의라는 리바이어던?


자본주의의 역사는 말 그대로 자본이라는 괴물과 민중의 권력과의 투쟁에 다름 아니야.

19세기 자본주의는 완전한 자유시장체제였다고 볼 수 있지. 정부는 빠져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조절되므로 내비두면 잘 돌아간다, 라는 그야말로 허황된 신화가 지배하는 시절이었잖아. 다들 알잖아. 국부(거시기 아님) 전문가 아담 스미스 말야.

그런데 그 신화는 얼마 못가지. 그냥 내버려 뒀더니 돌아온건 대공황이야. 그래도 19세기에는 호황과 불황이 교대로, 주기적으로 오는 거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공황에 빠져서 살아날 기미가 안보여. 대단했어. 아주 서구 사회가 몽땅 망했다니까. 망해도 대차게 망했었지. 얼마나 심각하게 망했는지 한번들 찾아봐. 요즘 우리가 불황이네 금융위기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그걸 해결한답시고 서구 진영이 들고 나온 무기는 바로 케인즈겠지. 이 자본이라는 괴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넘이니까, 우리가 선출한 정부권력이 통제를 좀 해야 된다, 호황에 들떠버리면 세금좀 더 걷어서 진정 시켜야 되고, 불황에 빠지면 돈 좀 풀어서 다시 경기를 올려주고, 그렇게 조절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된거야.

그래서 성공했냐고?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뉴딜 정책이 지속되는 기간에 경제는 그다지 살아나지 않았어. 실제로 1960년대까지의 호황이 오긴 했지만 그 호황은 바로 2차대전에서 죽어간 수천만명의 피값이었다니까.

그 와중에 재미있는 회담이 있었어. 바로 브레튼우즈 협정이지.

'브레튼우즈 금융 협정'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4년에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 모여서 내린 결정인데, 이게 국제 경제 체제를 완전히 뒤바꾼거라서 얘길 안 할 수가 없어.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한다.


이게 말만으로는 뭔가 감이 잘 안 오지? 이런거야.

: 그 전까지는 국내는 물론 국제 무역에서 사용되던 모든 화폐는 금이었어. 실제로 금을 주고받고 한건 아니지만, 모든 화폐는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에서 금을 보관하고, 그 금의 가치만큼 발행해서 돌린 거라는 얘기지. 언제든지 화폐를 그 나라에 가져오면 해당하는 값어치의 금으로 바꿔준다는 "보증"이 있었다는 얘기야. 그래야 사람들이 맘놓고 믿고 그 화폐를 쓰지. 그런 보증이 없으면 화폐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근데 브레튼우즈의 결정은, 그 보증을 그냥 미국이 알아서 하겠다는 거였어. 금 1온즈에 35달러. 국제 무역에서 모두 달러를 쓰고, 그 달러는 미국 정부가 보증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금고에 그만큼의 금이 있는지는? 그건 며느리도 몰라.

하지만 이 체제는 세계의 경제주체에게 모두 환영을 받았어.

왜냐면 1930년대 대공황 이후로 전세계(그래봐야 미국과 유럽 정도지만)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엄청난 보호무역체제로 들어갔거든. 관세뿐 아니라 무슨 수입물량 쿼터제 같은 것도 다 하고, 다 죽을 판이니 우리라도 살아야겠다고 빗장 걸어잠그고 아우성치는 시대였어.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호 교착상태를 깨고 다시 개방과 통상의 시대로 가야 된다는 요구가 있었던 거지. 누구의 요구냐고? 바로 대공황 때문에 갈길을 잃어 버린 자본들이지 뭐. 자기들이 세상을 어떻게 망쳤는지는 관심도 없고 속죄도 안하고, 어떻게 해서든 돈 될 거리를 찾아서 세계를 방황해야 되는데 다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으니까 말야. 답답했겠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


이렇게 달러가 국제 화폐로 자리를 잡고, 모든 국가의 화폐는 달러와의 교환가치로 그 존재를 보증 받는다... 라고 하니까 환율문제까지도 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일부가 된거고, 전세계 무역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 유럽의 각국 정부는 이제 뭐 금을 보관하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어진거야. 큰형님 미국이 보증하시겠다는데, 2차대전에서 쫄딱 망하게 생긴 유럽을 구해주신 큰형님인데 말야.

이 대목에서 무역을 보조하기 위해 그 유명한 IMF도 생기고 IBRD도 생기고..

그러면서 동시에 이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결성된 국제 무역을 관통하는 기준을 세운 조직이 바로 GATT인거야. 이 GATT, 가트(가터벨트 생각하지 말고...)가 바로 FTA의 할아버지 뻘 되거든.


정리하자면, 완전 자유시장경제가 세상을 뒤흔들다가 그 결과로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니까 잠시 찔끔해서 조용히 찌그러져 있더니, 대차게 전쟁한번 치르고 다시 자본에게 활력소를 주자고 만들어진게 브레튼우즈 체제고 그 체제의 실질 총책이 GATT였다... 는 얘기야. 이제 다시 거대 국제자본들이 활개를 칠 마당이 만들어진거지.


이번엔 좀 잘되었을까?


당연하게도 브레튼우즈 체제는 얼마 안가서 붕괴했어. 44년에 생겨서 71년에 붕괴했으니 얼마 못 간거 맞지. 전세계의 화폐를 몽땅 미국이 보증한다는 이 허황된 체계가 오래 가지는 못했을 거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잖아.

미국은 기축통화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고 돈 찍어내는 괴물이 되어 버렸고, 그 돈으로 전후복구가 시급한 유럽에도 뿌리고(이게 바로 마샬플랜) 여기저기 돈 퍼나르더니 베트남 전쟁까지 해치운거지.


물론 그렇게 돈 뿌리는 동안 세계 경제는 호황을 누리긴 했지. 거기다가 그렇게 미국이 돈을 뿌려댄 이유 자체가 '자본이라는 괴물을 통제하는 게 우리의 살길이다!' 라고 외치는 사회주의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거였기도 하고 말야. 냉전시대였잖아.

그런데 제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렇게 돈을 벌지는 못하고 찍어다가 뿌리는데 견뎌내겠어? 결국 베트남 전쟁 끝나고 국제사회는 미국의 보증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니까. 니들 진짜 35달러 주면 금 1온즈 줄 거냐고 태환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등장했어. 달러 줄 테니까 금 내놔라~

미국은 당연히 없다고 배를 쨌지. 실제로 없으니까 말야. 이게 1971년 닉슨 시절의 얘기야.

배 째...


씨바 35달러에 금 1온즈라메! 근데 이제 와서 없다면 그게 말이야 망아지야. 이렇게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게 되는거지. 그래봤자 미국을 패죽일겨 어쩔겨.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이젠 금하고 화폐하고는 관계 없다고 치고 나가자... 라는 더 막나가는 상황이 연출된거야.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통제되던 각국의 환율은 마구 자유화 되기 시작했고, 달러는 금의 대체제로서의 자격은 상실했지만 그래도 국가간 기축통화의 위치는 놓치지 않았어. 그거 버리려면 몽땅 죽을까봐 겁났던 거지.

그러면서도 브레튼우즈의 자식이었던 GATT는 계속 유지가 되기도 했지. 아니 유지가 되는게 아니라 더 확장되기 시작했어.

지가 무슨 복싱경기도 아니면서 무슨 무슨 라운드는 그렇게 많이 했는지, 이름도 다양한게 정신 하나도 없어.

- 제네바 라운드 : 47년
- 앙시 라운드 ; 49년
- 토키 라운드 : 51년
- 4번째 라운드(제네바) : 56년
- 딜론 라운드 : 60년
- 케네디 라운드 : 64년
- 도쿄 라운드 : 79년

그리고 끝으로 다들 한두번씩은 들어봄직한 우루과이 라운드로 끝을 맺어.

이러면서 GATT는 점차 쇠약해진게 아니라 점차 강해진다고. 원래 GATT는 일반 상품의 국제간 거래에만 관심이 있었어. 그런데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무역은 상품만 사고파는게 아닌걸로 변신하기 시작했잖아.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각국 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농수산물등은 건들지 말자 그러고, 서비스업 같은것도 복잡하니까 빼자고 그러는 게 GATT 였어. 하지만 이젠 앞뒤 가릴 게 없다,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건 다 집어넣자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래서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농산물, 특히 쌀 개방 문제가 우리나라를 뒤흔들게 되고 농민들이 외국까지 나가서 시위도 하고, 심지어 소중한 생명을 잃기도 하고 말야.

이경해 열사 장례식


결국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대 국제자본의 영역을 넓혀가더니 덜컥, 사생아가 하나 태어났어.


WTO의 등장


브레튼 우즈 체제를 실질적으로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는 역할을 하던 GATT의 확장보강판인 WTO는 좀더 포괄적인 무역업무를 관장하는 국제 기구로 태어났어. 일반상품에 농산품까지, 거기에 서비스업까지, 지적재산권도 포함시키고 심지어 각국의 위생, 검역 시스템까지 간섭을 하는 체제가 탄생한 거야.

사실상 이 정도면, 여기 가입한 국가들끼리는 거의 무역장벽이 없다고 봐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야. 뭐 있어봐야 사소한 관세 정도 붙이고 그러는 거 뿐이고. 보호무역? 이런 개념은 오래 전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상태가 되는 거지.

현재 이 WTO에 153개국이 가입이 되어 있고, 그들중 대다수는 개발도상국들이거든. 어떻게 해서든 잘사는 나라한테 물건 좀 팔아먹어 보려고 발악을 하는 중이지.

WTO회원국 파키스탄의 경제역군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WTO는 바로 거대국제자본의 영토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게 현실이지. 단적으로 얘기해서 WTO 체제 하에서 여기 편입된 개발 도상국이 좀 잘살게 되었다는 통계가 하나라도 있을까?

지하자원이라도 파내서 좀 팔아볼까 싶던 나라들은 일제히 한 방씩 "자본에 의한 빈집털이"를 당하는 게 현실이야. 우리라고 예외일까? 97년 IMF를 벌써 잊었어?


결국 이 WTO는 국제 무역을 활성화해서 세계 경제를 유지하자는 미명하에, 너무 비대해져서 자국 내에서는 더 이상 먹이를 찾기 힘든 거대국제자본들의 먹이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는 게 나뿐 아니라 많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되는 거야.

이와 동시에, 세계화라는 개념이 등장해.

완전 자유시장체제가 대공황으로 무너지고,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자는 케인즈가 득세를 하는 것 같더니, 결국 또 베트남 전쟁 이후의 불황이 다가오자, 예전의 과오는 어디다가 다 잊어 먹고 왔는지, 또 자유시장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어. 그게 바로 구닥다리 자유주의를 대치하는 신자유주의잖아.

이 신자유주의는 다시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비용을 절감해 줘야 우리가 산다고 외치면서 지들이 불황을 한번 타개해 보겠다고 나섰고 말야.

그렇게 얘들이 자본의 편에서서 자본의 영토를 확장해 주겠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주장한게 바로 세계화야. 그 있잖아, 영삼옹이 그렇게 좋아하던 세계화 말야. 그게 바로 이거야.

비슷한 커리어를 쌓아가는 두 사람

세계화 그러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상 GATT나 WTO에 의해 뒷받침되는 현실의 모습을 보면 그냥 전세계를 거대 자본(대부분 미국에 뿌리를 둔)의 먹이감, 사냥터로 만들어 주고 있는게 현실이고 말야.

그런데 진짜 열받는 건, 그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좋다고 외치더니 결국 현실에서는 전세계를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준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로 나타난거잖아.

실질적으로 쫄딱 망했잖아. 완전 실패한거라고. 그럼 좀 집어 치워야 될거아냐. 미국만 휘청거리나? EU도 망하잖아. 이걸로도 증거가 부족해? 이렇게 거의 전세계를 망가뜨리는 결과가 나왔으면 아니 이게 좀 아닌가베~ 해야 될거아냐. 왜 자꾸 망하는 길로 또 가냐고 말야.

이건 상식이잖아. 백보 양보해서 나같은 빨갱이도 돈 좋아하고 먹고 사는거 편해지면 좋아한다고. 안 그런 넘이 어디 있어. 세계화고 신자유주의고 뭐고 편하게 먹고 살게 해주면 빨갱이의 자존심 다 버리고, 아 네~ 하면서 룰루랄라 살아갈거야.

저 파라다이스로 난 냉큼 갈 꺼라고.

근데 씨바, 다 망했잖아.

해보니까 안되잖아. 근데 또 왜 해? 무슨 근거로 잘 될 거라고 주장하냐고? 이 씨바들아.

아니 GATT도 망하고, WTO도 망했는데, 왜 또 FTA야... 이 개새끼들아.

FTA가 뭔데 그러냐고? GATT를 열 배쯤 뻥튀기 하고, 거기에 WTO를 스물다섯 개쯤 갈아서 토핑으로 뿌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통합 딜럭스 증보판이잖아. 신자유주의 종결자라고, 종결자.

지금 FTA의 12개 독소조항이네 뭐네 하고, 민주당은 그 와중에 ISD만 물러주면 뭐 다 해결되는 거같이 얘기하지만, 그런 디테일 잡고 씨름할 시간도 없어.

말 나온김에 ISD 얘기해 볼까? 이거 WTO에도 비슷한 거 있었어. 자유 무역을 하다가 분쟁이 생기면 중재하는 조항이 있었다고. 그나마 WTO에는 니네 회사가 저 나라 가서 무역을 하는데 그 나라 정부가 방해하면, 너는 니네 나라한테 그 나라를 WTO산하 기구에 중재해달라고 요청을 해라. 이런 조금은 점잖은 조항이 있었다고.


근데 시바, FTA에는 그런 귀찮은 절차도 없어. 일개 기업이 상대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바로 제소가 가능한게 ISD라고. 자본이 이제 드디어 정부 권력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들어 주는게 FTA잖아.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먹혀봐야만 아나? 아니 씨바 우리 이미 97년도에 한번 먹혀 봤잖아. 당해 보고도 몰라?

이런 식이야.

이게 바로 우리가 직면한 FTA의 역사적 기원이 담긴 참 모습이라고. 망해도 한번 망한게 아니라 몇십년 주기로 반복해서 망하고 있는 체제에 들어가 같이 망하려고 발악을 하는게 FTA라는 얘기야.

실질적으로 이제 이 FTA체제에 안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우린 이미 GATT 회원국이었고, WTO의 정식 회원국이라고. 더 안 가도 충분히 개방 통상국가야. 거기다가 이 시스템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고, 언제 또 왕창 뒤바뀔지 모르는 낡아빠진 논리라는 거야. 왜 거기에 또 들어가려고 그래?

FTA해서 좆된 케이스를 눈앞에서 똑바로 봤잖아. NAFTA, 나프타, 이게 발음이 다르니까 다른건줄 알더라. 저게 바로 노쓰 아메리카 FTA잖아. 멕시코하고 캐나다 좆되는 거 다 봤잖아.


제발 그만 좀 하자. 제발 부탁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른다.


맞아. 진짜 답답하지만 몰라주지. 어쩌면 우리는 잠수함속의 토끼들이 맞는지도 몰라. 이렇게 죽어가야 되는 건지도 몰라. 그래도 해볼 수 있는 한 해 봐야지.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실제로 늦은 건가? 아냐, 아직도 시간이 있어. 죽기 전까지 해 봐야지.

몇 가지 내가 겪어본 가장 흔한 질문들을 정리해 볼게.

1. 시대가 어느 시대라고 쇄국정책이냐, 니가 대원군이냐?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대원군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쇄국정책 얘길 꺼내나.


우리나라가 GATT에 가입한게 1967년, 그리고 1995년 1월 1일부터는 WTO정식 회원국이었다고. 우리나라는 이미 개방해도 너무 해서 탈이지, 쇄국정책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간지가 오래야 이 사람아. 어디 우간다에서라도 살다 왔나.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하고 무역을 할 때 막힌게 어디 있어? 차를 못 팔아? 반도체를 못 팔아? 유럽의 수십 대 내려온 장인이 한땀한땀 꼬매놓은 명품을 못 사입나? 한대에 수십 억(맞나?)하는 부가티가 시내에 굴러 다니는게 우리나라야.

지금 어따대고 쇄국 정책 얘길하는겨? 정신차려 이 양반아.

2. 그래도 수출을 해야 먹고 사는데..

그치. 수출해야 먹고 살지. 뭐 박정희가 니 머리에 꽂아준 "수출입국" 구호가 아직도 머리속에서 남산 아래 저 소나무가 두른 철갑처럼 강력하게 둘러쳐져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 무역량이 세계 10위권 언저리야.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무역강국이라고. 수출 할 만큼 하고 먹고 산다고. 여자들 머리뽑아 가발 만들어 팔아먹던 6-70년대 마인드 좀 버려주면 안될까?


그래 좋아. 그래도 수출 잘 되면 무역흑자 생기고 좋긴 하지. 근데 수출 잘된다고 너한테 좋은 점 있어? 삼성이 돈벌면 누가 좋을까? 세금 늘어나니까 너한테 뭐좀 올거 같어? IMF 이후 여태까지 우리나라 쫄쫄 굶을 때 대기업들은 돈 팍팍 챙겨서 지금 창고에 현찰이 그득한데, 그걸로 당신 배가 불러?

결정적으로, FTA 하면 수출이 진짜 잘 될까?

지금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건 중에 관세 없어진다고 잘 팔릴 물건이 뭐 있을까? 자동차잖아. 근데 어쩌냐. 어차피 미국에 수출하는 현대기아차는 반이상이 현지 생산 분량이라 이미 관세 안 내고 있는데 말야. 그리고 앞으로도 현지 생산량만 왕창 늘리지 국내생산물량을 추가 수출할 일은 없거든. 차 싣고 갈 배값은 누가 꽁짜로 주나?

위대하신 가카께옵서 미국 디트로이트 가서 얘기했잖아. 여러분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그게 무슨 뜻인줄 알아? 앞으로 미국에 팔 현대기아차는 몽땅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서 팔겠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거지.

아, 그래도 현대차가 돈 벌면, 우리나라에 돈이 들어온다고? 현지공장 돈 벌면 세금 누구한테 내냐? 미국정부에 내지. 그래도 회사가 돈 벌면 돈이 들어오겠지. 회사가 돈 벌면, 누구한테 배당금이 가냐. 주주에게 가지. 현대 기아차 지분이 우리나라 사람이 많게, 외국인이 많게.

현대 기아차 미국 공장이 돈 벌면, 세금은 미국정부가 먹고 주주 배당금은 반 이상을 외국인 주주들이 먹는다고. 당신한텐 타이어 한 개 공짜로 안줘.

그래도 FTA가 수출 잘 되게 하니까 좋다고 그럴 거냐?

3. 값싸고 질좋은 외국산 농산물들 많이 들어오면...

장사할 때 말야, 가격을 어떻게 정해서 파나? 원가가 얼마니까 마진 10% 붙여서 팔아야지~ 이런 장사꾼이 세상 천지에 단 하나라도 있을까? 내 물건이 팔리는 한도 내에서는 무조건 비싸게 받는게 장사의 기본이야. 즉, 상품의 가격은 원가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거라고.

값싼 농산품이 들어와. 우리나라에 이미 있는 거야. 예를 들어 쌀이라고 치자. 그럼 우리나라 쌀보다 졸라 싸게 팔겠지. 원가가 싸니까 그래도 되잖아. 그럼 우리나라 쌀은 안팔리겠지. 그러면 사람들이 농사를 짓겠어? 못짓지. 그럼 우리나라 쌀이 없어지겠지.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은 쌀을 먹어야 되잖아. 계속 쌀을 먹는다고. 그러면 우리나라 쌀이 없어진 뒤에도 외국 쌀이 현재 우리나라 쌀보다 싸게 팔릴까? 안 사먹으면 죽는데?

이건 초딩애들 동화책에 나오는 원숭이한테 꽃신 팔아먹는 얘기랑 한치도 틀리질 않아. 거기다가 이 단순한 얘기 속에 스며 있는 농부들의 생명에는 당신, 관심 없나?

그 사람들이 누군줄 알아? 바로 너의 삼촌이고 내 아버지란 말이다. 그 분들 평생 농사만 짓다가 쌀 안팔리면 어떻게 될까? 목매달아 죽는다고. 정부가 보상하면 된다고? 이젠 FTA 체제가 되면 정부가 농민들에게 보상 하는 것 자체가 금지가 되는거야. 소송 걸려 돈 왕창 토해내야 되는거야. 씨바, 이젠 도와줄 길도 막혔어.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WTO각료회의 할 때, 우리 농민이 가서 할복자살을 했어. FTA보다도 한참 더 물렁한 WTO에 대해서도 우리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고. 근데
지금 마트에서 먹거리 살 때 니 지갑에서 나갈 돈 몇푼 절약해서 좋다고 그분들, 너와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거야.

4. 명품도 싸게 살 수 있다는데...(이 부분은 이해영 교수의 설명을 따옴)

명품 좋지. 그런데...

일단, 명품은 대략 유럽제가 많잖아. 이번에 얘기하는 건 한미 FTA야. 하기사 뭐 미국제 명품도 있겠지. 그리고 이미 체결된 한-EU FTA도 FTA니까.

근데 말야. 예를 들어 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백이 있다 치자. FTA가 되면 이게 얼마나 싸질까? 핸드백 등 피혁제품에 붙는 관세 8%가 없어지니까, 천만원에 8%, 80만원이 싸지겠네, 우왕 조아라~ 이렇게 될까?

... 이게 정부에서 홍보하는 내용이야. 근데 완전 구라라고. 고가 명품들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통관될 때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될까.

일단 수입원가가 있잖아. 거기에 관세를 붙여. 그리고 운송비나 제반 비용이 붙어. 그리고 도매상 소매상을 거치면서 마진이 붙어. 그리고 최종 소비자가격이 나오는거야.

근데 마진율은 얼마나 될까? 아주 착하게 정상적으로 수입된 것들오 기본 4-500% 마진이 붙어. 4-50%가 아니라 4-500%. 너댓배 받고 파는 거라고. 명품이 달래 명품인가. 마진 많이 붙어서 졸라 비싸니까 명품이지. 그러니까 관세율은 소비자 가격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게 함정이라고.

내가 좀 비싸...


그러니까 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백이 수입될때에 수입원가는 이백이 안 된다고. 그 이백에 관세 8%가 붙어. 16만 원이야. 80만 원이 아니라 16만 원의 비용이 줄어드는 것 뿐이야.

그러면 판매상들이 오오! 관세가 철폐되어 값이 싸졌으니 우리도 싸게 팔자~ 하면서 천만 원짜리 백을 파는데 가격표를 10,000,000원에서 9,840,000원. 이렇게 갈아붙이고 팔 거 같어? 그냥 싸구려 립스틱(원가 오천원짜리) 한 개 더 사은품으로 껴주고 말 거 같지 않아?

제발 속지 마. 지금 우리나라 형편 잘 알잖아. 제대로 된 언론은 나꼼수 하나밖에 없는 거 말야.



설득은 분명히 먹힌다.


실제로 먹히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FTA 얘기나오면 사람들이 다 수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농민들의 피해는 수출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보상해 줘야 한다고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을 했었어.

그 결과 FTA찬성율이 80%가 넘기도 했었어.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잠수함의 토끼들이 하는 말이 먹히고 있다고. 진짜야.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건 어째서건 지금 야당들은 한목소리로 반대를 하고 있잖아. 그리고 온갖 경로를 통해서 FTA의 문제점들이 속속 대중의 귀에 전달이 되고 있어. 물론 주류 언론들은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하고 있지. 걔들, 언론들이 나쁜 게 아냐. 그 언론들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자본의 힘이 그렇게 세다는 증거일 뿐이야. (물론 언론들도 죽일넘은 맞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비율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이제 거의 반반이 되었다고.

서둘러야 돼.

이번에 날치기 한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도 찬성비율이 약간 높아. 44% : 41% 정도 될거야. 이거 부족해. 많이 부족해.

FTA가 물론 졸라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고, 정부와 주류 언론이 우리나라 먹고 사는 길을 이거밖에 없다고 졸라 선전하니까 다들 그런가보다하고 있긴 하지만, 각개격파 하는 수밖에 없어. 만약 우리가 좀 더 손을 빠르게 써서, 날치기 하기 전에 FTA 반대 여론이 70% 넘겼으면 어쨌을까? 얘들 무서워서 날치기 못했을 거야.

이제라도 안 늦었어. 아직 FTA 비준 과정이 갈길이 멀다고.

그 진행을 최대한 지연시켜야 돼. 그리고 결정적으로 차기 총선까지 이어서 비준 철회를 하건, 재협상을 시도하건 무조건 막아야 되는거야. 물론 그것도 안되면 최후의 옵션으로 백악관에 팩스 보낼 대통령을 뽑아야 되는거고.

그렇게 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FTA 반대여론을 최고조로 올려야 된다고. 시간이 없어. 졸라 급해. 씨바거리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나처럼 무력감에 사로잡혀 술이나 퍼먹고 이러지 말자고.

뭘 하든 해. 벽을 보고 화라도 내자고.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SNS 해. 트윗도 하고 페북도 하고, 내가 요즘 하는 구글플러스도 해. 그걸 하면서도 맨날 반대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화만 내지 말고, 찬성하는 사람들을 만나. 맨날 보는 넘만 또 보지 말고 모르는 넘들을 막 만나. 그러면서 설득을 해.

이게 유일한 방법이야.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이야.

그렇게 판을 깔아놓고, 총선에서 FTA 무효화 시킬 넘들로 과반의석을 만들어 버리자고. 그럼 되는거야.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어. 난 생존의 위협 없이 편하게 살고 싶어. 최소한 내 딸아이한테 그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어.

우리들 하나하나의 작은 행동이 마지막 희망이야.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제 그거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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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背任罪). 말뜻은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배한 죄'다. 형법에는 구체적으로 "타인을 위하여 그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제355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면 사적 또는 공적으로 어떤 일을 위임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어기고, 자기에게 또는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하여 위임 당사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는 경우, 배임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가장 황당한 배임죄' 당사자인 내가 보기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세금 소송을 중단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사장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 연합뉴스
정연주

지난 '증언'에서 밝혔듯이 <한겨레>는 지난 11월 1일,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 뒤 기사에서 나의 '배임사건'을 가리켜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검찰 수사 중 법조계에서 가장 황당한 수사로 꼽는 사례"라고 밝혔다.

그렇게 '가장 황당하게' 배임죄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내곡동 사저 구입과 관련해 다시 불붙기 시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 논란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나의 배임사건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자세한 내용을 풀어나가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과 비교하기 위해 우선 간단하게 짚어보도록 하겠다. 내 사건에서 검찰이 엮어놓은 얼개는 대략 이렇다.

1994년부터 KBS와 국세청 사이에는 세금 분쟁을 둘러싸고 17건의 재판이 진행되어 왔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이 내려진 16건에서 KBS는 7승 9패(1건 미판결)였다. 이 7건의 1심 승소판결 소액을 모두 합치면 1764억 원이고, 환급가산 이자 684억 원을 합치면 KBS는 1심 승소금액 2448억 원을 모두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연임의 욕심에 사로잡힌 피고인(정연주 사장)이 예상되는 적자를 없애기 위해 서둘러 서울고등법원의 조정을 통해 환급액 556억 원만 받고, 그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국세청)에게 취득하게 하고, 같은 액수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KBS에 입혔다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 맨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피의자는 공사(KBS 지칭)가 조세소송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는 금액인 2448억 원(환급가산 이자 포함)을 합리적 이유 없이 포기하여 실제 환급액과의 차액인 1892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국가에게 취득하게 하고 동액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공사에게 가하였다."

여러 '기적적인 전제들'이 필요했던 나의 '배임사건'

검찰의 이런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러 '기적들'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검찰은 승소가 '매우 유력'하다고 했고, 그래서 1심 승소소송 가액 전액을 (가산이자까지 포함하여) KBS가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배임죄 구성의 대전제였다.

이렇게 배임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추가적인 '기적적 전제들'이 필요했다. KBS가 모두 승소를 하고, 그 다음 국세청은 KBS에 돈을 환급해 주고, 그러고도 세금을 재부과하지 않는 (징세권을 포기하는) 게 전제가 되어야 했다. 재부과를 하면 KBS가 다시 세금을 물어야 하니, 환급받으나 마나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징세권을 가진 국세청이 재부과의 징수권을 포기할 리 만무다. 더군다나 KBS가 승소한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국세청이 '추계과세'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국세청이 재부과를 할 경우, KBS는 이에 불복할 것이고, 그래서 다시 소송을 시작하게 될 터인데, 이 소송에서도 KBS가 다시 100% 이긴다는 또 다른 기적적 전제가 필요했다.

그리고 KBS와 국세청 사이의 세금 분쟁은 서울고등법원의 중재로 해소되었다. 내가 배임죄를 저질렀다면 중재를 한 서울고등법원은 배임의 공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배임사건이 '가장 황당한 사건'이 되어버린 여러 이유들 중 몇 가지만 간단하게 추려본 것이다(이밖에도 나의 배임 사건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떻게 이럴수가' 하는 내용들이 많다. 앞으로의 증언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내곡동 게이트의 알맹이를 전한 전 경호처장의 증언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 정황은 나의 '황당 케이스'와 다른 것 같다. 이익이 돌아간 대상이 '국가'라는 제3자도 아니고, 여러 기적적인 전제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익을 본 대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발생한 행위와 전후관계가 분명하다. 특히 내곡동 사저 파문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인종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들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김 전 처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처에서 후보지로 검토한 12군데 가운데 내곡동을 추천받은 뒤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사저 터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입자금은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돈'을 사용했고, 경호처 의견을 받아 들여 아들 시형씨 이름으로 구매를 했다는 것이다. 김 전 처장은 이와 관련하여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땅을 방문해 OK 하니까 샀지. 돈 투자하는데 내 마음대로 했겠나? (대통령의) 승인이 나니까 계약을 하는 거지."

"이번 사저는 각하 개인 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총무수석(김백준)이 알 필요도 없지. 그러나 알기는 알았지만..."

"(이 대통령이) 평생 사실 집이고 개인 돈을 투자한 것."

이런 발언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터 구매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청와대의 해명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청와대는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지자, 아들 시형씨가 내곡동 땅을 구매할 때 사용한 돈 가운데 6억 원은 부인 김윤옥씨의 땅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았고, 나머지 5억2000만 원은 친인척에게 빌렸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대통령실이 공동으로 구입한 서울 서초구 내곡동 20-17번지 일대 저택의 입구.
ⓒ 권우성
이명박 내곡동 사저

이명박 대통령의 배임과 관련하여 가장 적극적으로 추궁하는 이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다. 이 대표는 김인종 전 경호처장의 '증언' 이후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리고 준비중인 고발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민주당에서 고발한) 임태희 대통령실 실장, 김인종 대통령실 경호처장,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 등과 공모해 10억 원 상당의 이익을 취하고, 10억 원 상당의 재산적 피해를 대통령실에 입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배임)을 위반한 혐의가 있으며, 대통령 부부가 매수한 부동산을 아들 명의로 명의신탁하여 등기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가 있어 고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는 더 적극적으로 '배임'을 넘어 '탄핵 사유'로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내곡동 사저 구입에는 경호처가 개입하는 등 공권력이 관여했기 때문에 이것을 '대통령의 사적 비리'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당연히 내포하기 때문에 내곡동 게이트 같은 법치주의 훼손은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서 당연히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돈 교수 "정연주 사장이 겪었던 고초는..."

이에 앞서 이 교수는 10월 중순, 내곡동 사저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업무상 배임죄'로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월 25일 내곡동 문제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내곡동 게이트'는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정부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들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것이니, 드러난 사실만으로 보아도 최고형이 징역 10년인 '업무상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 이들은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기초적 임무를 위반해서 사익을 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곡동 사저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해서 범죄행위가 무마되는 것도 아니다. 도둑이 절도를 한 다음날 아침에 마음이 변해서 주인한테 훔친 물건을 되돌려준다고 해도 절도죄가 무혐의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하자면 범죄행위는 이미 완료된 것이다. 더구나 언론에 의해 폭로되자 할 수 없이 백지화한다고 했으니, 자고 일어나서 양심의 가책 때문에 훔친 물건을 되돌려준 도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수십억 원 대의 부동산 거래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과연 원상회복이 될는지도 알 수 없다. 대통령이 퇴임 후 어디에 살 것인지는 대통령 본인의 결심이 없이는 결정하기가 불가능한 것인데, 일개의 경호처장이 이런 일을 책임지고 저질렀다는 변명은 그냥 듣기에도 거북하다.

참여연대 박원석 협동사무처장을 비롯한 활동가들로 구성된 '이명박 대통령 사저 부지 방문단'이 지난 10월 17일 낮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 부지를 방문해서 '이곳은 범죄현장입니다'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부동산 실명제 위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 권우성
내곡동 사저

횡령죄와 달리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애매하기 때문에 검찰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회사의 간부가 회사에게 손해가 되고 제3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배임이 되겠지만 단순한 경영상의 실수가 배임죄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 구분이 모호할 수 있기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우려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검찰이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것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정연주 전 사장은 사장을 지내던 지난 2005년 국세청을 상대로 KBS가 제기한 법인세 부과 취소 소송의 1심에서 이기고 항소심을 진행하던 중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들여 556억원을 환급받기로 하고 소송을 취하해서 KBS에 1892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1심, 2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세금 환급을 철저하게 받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 전 사장을 기소했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일원인 검찰이 정부보다 공기업을 더욱 사랑한 셈이다.

보통 사람 상식으로는 정부기관인 검찰은 같은 정부기관인 국세청 편을 들어야 하는 법인데, 검찰이 별안간 KBS의 수호천사로 돌변해서 정연주 전 사장을 향해 칼을 빼들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정 전 사장이 겪어야 했던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 전 사장의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던 검찰이,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국고를 빼돌린 것으로 보이는 '내곡동 게이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 검찰이 마구 휘두른 '배임'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21일 한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지칭하면서 "아마 형사 처벌이 예약된 최초의 대통령 내외분이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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